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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 온달 ㅣ 힘찬문고 34
이아무개 (이현주) 지음, 김호민 그림 / 우리교육 / 2003년 12월
평점 :
품절
온달은 생명을 소중히 여길 줄 아는 아이였다. 마음이 순수한 아이였다. 그러나 사회적으로는 '바보'일 뿐이었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는 일은 해석이 되지 않는 일이다. 조건이 딱 맞지도 않는 사람들이 죽을 듯이 사랑하게 되는 일은 드라마에만 등장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그리고, 그 사람으로 인해 다른 사람으로 거듭나게 되는 운명의 전환도 결코 허황한 이야기가 아니다.
새학기에 아이들에게 26살의 자기소개서를 쓰라고 했다. 지금 16살인 아이들은 그 10년 동안 자신을 잘 이끌어줄 선생님 혹은 넓은 음악세계를 아는 친구, 공부에 마음 다잡은 운명적 변화의 자기자신을 만난다고 했다. 이 세상에 자신을 알아주고, 자신에게 숨겨진 잠재성을 발견해주고, 그것을 이끌어주는 사람을 만나는 일은 얼마나 멋진 일인가! 아직도 내 앞에 누군가가 나타나길 기다리는 그 마음, 나를 정신차리게 해주고 행복하게 해 줄 어떤 여인, 혹은 지도자, 스승, 선배, 친구...
평강이 온달을 사랑하게 된 것은 어린 날부터 거의 주입이 되다시피 한 어른들의 '교육'탓일 수도 있지만 이 책에서 그것은 별의 운명이었다. 그래서 온달이 바보이든 못난이든 평강에게 그 이름은 그 모습은 사랑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런 알 수 없는 운명의 끈 말고도 평강은 장군에게 두드려 맞고도 바위처럼 견뎌내던 온달의 품성에서 매력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생명을 사랑하던 숲의 아이 온달은 평강을 통해 사회적으로 가장 가능성 있는 인간으로 다시 태어난다. 못난이 온달의 모습을 깨 버리는 평강은 지혜롭기도 하고 모질기도 한 여인이다. 사랑이란 때로 상대방을 안정과 평화보다도 세상의 험난한 세파에 강하게 대처하는 사람으로 몰아부치기도 하지 않는가. 그렇게 온달은 자연의 아이에서 사회의 승자로 나아간다.
무엇이 옳은 것인지는 모르겠다. 본성을 거스르며 강하고 굵은 남성적 질서에 나아가 목숨을 잃어야 했던 온달. 그렇게 이끌어 낸 평강의 사랑이 진정한 것이 아니었다고 말할 수는 없다. 사랑은 옳은 길이 없으며 평강도 운명의 한줄기 강물에 흘러가는 사람이었을 뿐, 그녀가 신은 아니었으니, 그녀의 지혜도 인간의 그것에 불과했고 한계가 있었으니까...
나는 이 동화를 읽으며 여태껏 동화들을 읽을 때 느꼈던 행복감이나 평안함과는 다른 전율을 느꼈다. 그리고 이 책을 중학생들의 읽기 교재로 쓰려 한다. 어린 아이들이 읽는 동화이기에 설명될 수 있고 납득될 수 있는 구조여야 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도대체 이해되지 않는 온달과 평강, 곰 바우의 관계와 얽히는 비극들이, 끊임없이 제기되는 자기자신에 대한 갈등들이, 동화이고 역사 속 설화이면서도 우리 청소년들에게 던질 이야기가 많이 있으리라 싶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