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분
파울로 코엘료 지음, 이상해 옮김 / 문학동네 / 200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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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가 너무 좋았고 '피에트라 강가에서 나는 울었네'의 제목에 반해 읽었지만 두번째 책에서 고개를 갸웃했었다. 그런데 도대체 내가 왜 '11분'을 샀을까... 신문에  난 전면광고를 보고 그 문장에 또다시 혹했던가, 상품권에 눈이 멀었던가... 주문을 하고 난 후에야 이 책이 '성'을 다루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코엘료라면 실망시키지 않겠지, 쉽게 언급할 수 없는 '성'에 대하여, 흔히 말하듯이 그것이 성스런 사랑을 위해 밟아야 하는 수순이라거나 어찌할 수 없는 본연의 욕망이니 너무 죄의식에 사로잡힐 필요없이 자유로워야 네 영혼도 자유로우리라, 하는 식으로 나가지는 않을 듯하여 기대를 걸고 읽었다.

물론 그의 작품은 남달라 보이긴 했다. '창녀'란 이름과 상관없이 밤마다 일기장에 자신을 갈무리하는 진지한 마리아, 그녀에게는 막달라 마리아의 전격적인 개과천선도 없고 변화의 계기도 없다. 오로지 스스로의 내면의 빛과 힘으로 그 모든 것을 해낸다.

그러나  1년 동안 하루에 3명씩 숱한 남자를 상대하고도 영혼의 순결을 지킬 수 있었던 지혜롭고 지적이며 영적인 스물 세살의 그녀는 성녀인가? 성에 관한 그 모든 것이 억압인 대한민국의 여자로 태어나서 스스로 겪지도 않고 저지르지도 않은 모든 성적 일탈과 사고에 대해서조차 상상의 스트레스를 감내하기 힘든 이 땅에서 그녀의 모습은 차라리 화가 날 지경이었다. 그래서 산뜻하게, 딱 일년만, 돈만 많이 벌고, 남자를 상대하면서 제정신으로 게다가 그들에게 정신과적 심리상담까지 해주면서, 그리하여 정말 그녀가 원하는 만큼의 돈도 벌고 완벽한 남자를 만나서 완벽하게 사랑받고...

세 책에서 모두 서로의 영혼을 알아봐 주는 남녀가 만나 사랑을 하지만 오로지 뜬구름 잡는 이야기가 아니라고 느껴진 것은 '베로니카' 뿐이었다. 무슨 설화에서처럼 아름답고 완벽한 외모와 성스런 영혼과 진정한 사랑 그 모두를 가지며 오로지 그 사랑의 걸림돌은 현실의 어떤 고난도 남들의 비난도 상황도 아닌 자기자신의 영적 고뇌 외에는 없는 그들, 그런 사랑이 세상 어디에 하나쯤 있을 수는 있다고 쳐도 공감할 수는 없으며 그들을 사랑할 수는 더더욱 없다.

그리고,

뜬금없이 끝으로 가면 어? 이 책의 주제는 오르가슴 혹은 여성해방이었나? 싶은 주제로 방향을 튼다. 내가 이미 사춘기때 다 알아버린 지식들을 그녀는 그토록 숱한 남자를 대하면서도 얻지 못했던  진정한 오르가슴을 갑자기 느끼는 마리아는 여태 무지했기 때문인가 아니면 사랑 없이 섹스를 했기 때문인가. 여성이여,  자신의 오르가슴을 위해 노력하라는 것인가, 그렇다면 '돈'을 벌기 위해 자기 몸을 던진 그녀는 그토록 예찬받아도 되는 것인가...

코엘류를 그만 읽을까 싶다. 그리고 엄청난 광고전을 벌이고 있는 출판사에게, 문화를 주도하는 주체로서 과연 가슴에 손을 얹고 이 책이 그토록 문학적으로 아름답고 읽힐만 하기에 그토록 크게 광고를 하고 잇는지 묻고 싶다. 물론 정답은 '팔릴 만하기에'이겠지만 과연 그래도 되는 것인지를 묻고 싶다. 광고에 혹해 이 책을 선택한 나도 바보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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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예술 심리학
글렌 윌슨 지음, 김문환 옮김 / 연극과인간 / 200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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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차피 내가 연출자도 배우도 아닌 바에는 어쩌면 이 책을 읽을 필요가 없었는지도 모른다. 어쩌자고 단지 애호가에 불과한 내가 이 책을 집어들었던가. 연극이나 뮤지컬을 보면서, 무대에 선 배우들의 심정에 조금이라도 다가가고 싶었을 터이고 작품을 만들고 무대미술과 음악을 담당한 이들의 마음을 읽어서 좀더 깊이있게 작품을 음미하고 싶지 않았을까. 아니, 사람의 심리를 헤아리는 일의 그 신비한 능력을 조금이라도 어떻게라도 얻고 싶진 않았을까.

책  읽은 보람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갈증처럼, 객석에 앉아 있고 싶은 욕구에 늘 시달리는데, 책을 읽으면서 난 한번도 본 적이 없는 바그너의 작품을 구경하는 듯한 기분,  어두운 객석에 혼자 앉은 기분을 느꼈으며 공연장으로 달려가고 싶은 열망을 불태우기도 했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내가 아는 작품들이 별로 언급되지 않았기에 공감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았다. 오페라를 많이 예로 들고 서구의 오래된 영화를 많이 다루는데 차라리 예를 많이 들지 않을 바에는 좀더 분석적이기나 하던가...

아마도 연극영화를 공부하는 사람들에게 입문서쯤 될 것 같은 이 책의 필요성에 비해 흥미가 떨어지는 것은 씌여진지 오래되었다는 점과 저자가 생각하는 '공연'의 한계가 넓지 않아서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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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으로도 때리지 말라
김혜자 지음 / 오래된미래 / 200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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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아름답고 부유하고 유명한 배우였기에 감동이 더 컸다. 이렇게 힘들게 살지 않아도, 적당히 폼나게 인격 빛나게 살 수 있는 방법도 많았을 테니까. 그녀의 타고난 열정과 감수성과 순수함을 자꾸 아픈 땅으로 내몰고 자기 반성을 하게 한다. 그러면서도 그녀는 참으로 지혜롭다. 자신의 유명세와 지위를 이용해서라도 한 아이라도 더 살리고 행복하게 할 수 있다면 그것을 고민할 필요는 없다. 단순명쾌한 지혜.

개인적으로, 앞뒤가 안 맞을 듯 보이는 삶에의 열정과 허무의 양면성에 공감과 매력을 느끼면서,  둘 다 현실의 것에서 거리가 먼 것들일 수도 있는데 굳건히 땅에 발을 딛고 아이들을 품에 안는 그 사람의 힘이 뭘까 생각해 보았다.

그리고 전부터 '언젠가'라고 생각했던 것을 책 절반쯤 읽을 때 당장 실천에 옮겼다. 나는 당장 이 번 달에 '풀꽃 장학생'을 선정하여 장학금을 건넸다. '언젠가 내가 좀더 여유가 생기면 그 때 하리라' 하였던 일을 지금 당장. 나의 삶을 '당장' 바꾸어 놓은 두 번 째의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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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라겐 2005-02-18 13: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이책을 보고 난후 초코릿도 안먹고 원래 걸치는걸 싫어해서 보석류에는 관심이 없지만 결혼한느 동생들에게 한마디씩합니다.
다이아몬드 반지가 정말 네게 필요한것이냐구요....아 그리고 너무 멋지세요..
풀꽃장학생이라니....
 
마침표가 아닌 느낌표의 예술 - 박성봉 교수의 대중문화 읽기
박성봉 지음 / 일빛 / 200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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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재밌게 읽었다. 사실은 내가 잘 모르는 노래, 잘 모르는 만화, 영화들도 많이 등장했고 나는 그가 그토록 '관심가져 함부로 무시하지 말아야 할' 것들로 보듬어 안으려 하는 대중문화에 별 애착도 없으며 지은이가 언급한 '북극성'이  뜬 혹은 중요한 작품들이 매우 주관적이라 생각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책이 참 맘에 든다. 일단, 선생으로서 그가 가지도 있는 다양한 자료들과, 예술론을 가르칠 만한 그의 감수성과 정서가 좋다. 자칫 교수라 하여 이론적으로 다가가려 하여 놓치기 쉬운 열정과 적극성과 감성이 있다.

또한, 아마도 그의 수업을 듣는 학생들이 매우 재미있어 했을 것 같은, 아마도 말발과 거의 닮았을 듯한 재미있는 글발도 맘에 든다. 그는 최선을 다해 열정적으로 수업을 할 것 같다. 글을 쓸 때에도 그러했으니까.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가 이토록 대중문화를 감싸 안는 것은 그것이 어깨에 돈과 권력과 평론가들의 설왕설래로 힘을 빡 주고 있는 소위 '진짜 예술'들과 무엇이 다른가에 대해 끊임없이 문제제기를 하고 있다는 것, 그 문제제기의 정신을 놓지 않아야 할 예술가 혹은 평론가들의 자세에 대해 끊임없이 환기시키고 있다는 것이 아주 맘에 든다. 예술이냐 아니냐의 평가에는 혹시 권력의 문제가 개입되어 있지 않을까 하는 의심은 그야말로 진짜 예술을 가려내는 정의의 사도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또 하나, 그는 예술작품 뒤에 숨은 사람들의 노력에 대해 언급한다. 영화 하나가 나에게 말을 건다 안 건다는 지극히 개인적인 감성과 경험의 문제일 수 있다. '8월의 크리스마스'가 내겐 아무 것도 아닐 수 있으니까. 그러나 그 작품을 만들기 위해 감독이란 이름으로가 아니라 뒤에서 셋트를 세우고 소품을 준비하고 기다리고 했던 무수한 인력들의 수고가 위대한 작품의 진정한 토대임을 자주자주 언급한다.

그의 책이 정리되지 않았고 무슨 이론이라 할 수도 없는 내용이라서 불만이 많은 독자들은 그러나 최소한 그가 후까시 잔뜩 들어간 거짓말을 하는 이 땅의 무수한 베껴대기 왕자 학자, 교수들과는 다른 사람이라는 점에서 점수를 주어야 한다. 그리고 좀더 그를 기다려 보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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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에트라 강가에서 나는 울었네
파울로 코엘료 지음, 이수은 옮김 / 문학동네 / 200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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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태생과 취향을 다 벗어버리고 그 사람의 영혼을 사랑하게 된 사람을 안다.  영혼은 보이지도 않고 심지어는 말이나 표정에 묻어나지 않는 경우가 태반이다. 어쩌면, 영혼이 없이 몸만 살아가는 사람들이 이 세상엔 아주 많은 게 아닌가 하는 생각조차 든다.

그런데, 그 사람의 영혼을 보고 사랑하게 되었던 필라는 도대체 뭔가. 사랑하는 남자에게 편안하고 아름다운 집과 예쁜 아이들과 안락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물론 그런 헷갈림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그가 가지고 있는 영성을 저버리지 않기를 갈구했던 필라는 어찌 보면 현실적이고 영악한 요즘 처녀는 아닐 것이다. 만약 그녀가 처음부터 끊임없이, 자신이 그를 사랑하는 게 맞는지 의문을 갖고 자신이 그를 사랑함으로써 잃게 되는 안정된 미래에 대한 불안을 떨치지 못하고 그러면서도 사랑에 빠져드는 자기자신을 응시하고, 사랑으로 인하여 자신의 영혼마저 정화되고 고양되는 과정을 기쁘게 받아들이고 때로는 거부하고 싶어 하고,  영성을 버리고 현실의 사랑을 택하려는 그에 대해 진심으로 그건 아니라고 절망하고, 결국 아름다운 사랑의 출발을 위해 아름답게 약속하는 그 고뇌와 승화의 과정을 거치지 않았더라면 이 소설은 내가 아주 싫어하는 무슨 종교소설에 그치고 말았을 것 같다.

어느 날 잠자리에서 별로 재미있게 읽지는 않았던 이 책에 대해 잠시 생각하다가 필라의 영적 고양이, 눈물이, 방언이 참 낯설고 이해가 되지 않았던 대목을 떠올렸다. 난 신앙인이 아니니 그런 행위가 논리적으로 이해가 잘 되진 않는다. 그러나, 나에게도 영적 씻김의 기억이 있지 않았던가. 개심사 새벽 예불을 보면서 하염없이 내가 저 멀리로 둥둥 떠가는 듯, 혼의 분리를 느꼈던 기억, 바티칸의 성베드로 성당에서 오랫만에 기도하면서 미칠듯한 참회의 심정으로 눈물로 영혼을 씻었던 기억...

나는, 필라가 아름다운 그의 남편과 언덕 위 하얀 집에서 숲을 바라보며 학교에서 돌아올 아이들을 위해 따뜻한 음식을 준비하는 행복한 그림책의 마지막에 서 있길 바란다. 그러나, 서로의 영혼이 또 다른 하늘에 닿아 만나는 아름다운 체험으로부터 서로를 자기 곁으로만 끌어내리려 하지 않으며 또 그렇게 살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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