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크를 자르지 못하는 아이들 - 모든 것이 왜곡되어 보이는 아이들의 놀라운 실상
미야구치 코지 지음, 부윤아 옮김, 박찬선 감수 / 인플루엔셜(주)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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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국어교사이지만 학교에서 20년 가까이 상담업무를 맡아 해 왔다. 전문상담교사 자격을 가지고 지금과 같은 위 클래스 전문상담사 체제가 자리 잡기 전에는 수업과 상담을 병행했던 긴 세월이 있었다. 마음이 아픈 아이, 학습이 뒤처진 학생, 제대로 돌봄을 받지 못하는 아이들, 일탈을 저지르는 소년들을 가르치고 상담하고 담임 맡아 온 세월이 32년이다. 그럼에도, 이 책이 표제로 내세운 케이크 3등분도 못하는 소년원의 소년들이야기는 충격적이었다. 처음에는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들의 뇌구조가 일반인의 그것과 매우 다르다는 접근인 줄 알았다. 사춘기 청소년들의 뇌가 전두엽이 충분히 발달하지 않은 파충류의 그것과 비슷하다는 글을 처음 접했을 때 우습기도 하고 심각하게 여겨지기도 했던 것처럼, 범죄의 뇌과학이라면 그 소년들에게 어떻게 접근해야 한다는 말일까, 궁금했다.

 

예측과는 좀 달랐다.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학습 능력이 떨어지는 소년들이 범죄를 저지를 가능성이 높으므로 그들의 학습을 도와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가정적 요인이나 학교 적응 과정의 문제 등으로 또래와 같은 학습능력을 갖지 못하게 되면 그것이 여러 가지 영향으로 범죄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그런 측면도 있을 수 있다. 지적 능력이 떨어져 범죄를 저지를 수 있는 학생들에게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주장은 무의미하지 않다. 하지만 자칫, 공부를 못하면 범죄를 저지를 수 있다거나 머리가 나쁘면 공감능력, 신체능력이 떨어질 수 있다는 주장인가, 오해를 하게 만들 수도 있다는 게 이 책의 함정이다. 지능적이고 교활한 강력범죄들을 얼마나 많이 볼 수 있는가. 또한 고학력의 지위가 높은 이들이 저지르는, 살인, 폭력보다 더 심각하고 사회적 영향이 큰 경제적, 사회적 교란 범죄가 얼마나 많은가. 또한 이 책이 주장하는 인지능력 함양적인 학습만으로 가정의 돌봄을 못 받은 학생들의 범죄를 막기는 어렵지 않을까. 그들에게 교육은 꼭 필요한 것이지만 가정에서 채워주지 못해 학교나 사회가 채워줘야 할 것은 학습능력보다도 공감능력이나 인성교육이 더 절실한 것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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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한 편의점 불편한 편의점 1
김호연 지음 / 나무옆의자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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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한 편의점

 

 

 

이것은 청소년 소설이 아니었던가?

가볍게 읽을 수 있을 것 같은 따뜻한 표지와 제목에 끌려 학생들에게 읽힐 요량으로 책을 사서 휘리릭 읽으려고 외출할 때 챙겨갔다. 첫 번째 장에서 주인공 두 사람이 잃어버린 파우치로 만나는 것을 보고, 어머, 이거 우리 남중딩들도 재미있게 읽겠네, 게다가 훈훈한 내용이기까지... 라 생각하고 올해 처음 중1 한학기 한 권 읽기 책바구니 중 따뜻한 책상자목록에 이 책을 넣기로 결심했다.

 

그런데, 웬걸? 읽다 보니 청소년은 등장하지도 않는다. 게다가 공시생, 자식 때문에 고민하는 중년 아줌마 혹은 할머니, 노숙자 등등 청소년의 삶과 아주 거리가 먼 사람들만 등장한다. ‘사람 좋아 보이는할머니이자 이 소설의 주인공이며 또 하나의 주인공인 독고 씨를 발탁한 염할머니는 퇴임한 역사 교사다. 교사에게 악역을 부여하면 청소년 소설은 재미있어진다는 규칙을 깨고 사람이 좋다네. 그러면 뭐하나, 현직일 때 일탈학생깨나 바로잡았을 뿐 아니라 알콜성 치매로 기억을 잃어가는 독고 씨를 갱생의 길로 이끈 이 멋진 할머니는 정작 자기 자식 교육에 실패했는걸. 천하에 나쁜 이 아들은 엄마가 애지중지하는 편의점마저 빼앗으려 했으니, 염할머니의 선행은 설득력이 떨어지지 않을까.

 

하여간 결론은 이 책이 청소년 소설은 아니라는 거다. 물론 청소년들이라도 다 청소년 소설만 좋아하지는 않는다. 어른들이 흔히 하는 착각 중에 초등 중저학년 여학생들은 분홍색과 인형 캐릭터를 좋아할 거라는 게 있다. 많은 여자 어린이들이 이미 분홍색은 유치하다고 생각한다는 걸 어른들은 모른다. 그처럼 청소년 소설, 억지로 읽으라니까 읽을 뿐일 수도 있다. <나미야 잡화점>이 인기가 있는 게 거기 자기들 닮은 불량한 젊은 남자들이 등장해서라고 착각하면 안 된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을 책 상자에 담아 가 열심히 책소개를 해 볼 요량이다.

 

현실은 냉혹하지만 무조건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소설을 사랑한다. 이렇게 현실감각이 없어서야, 싶으면서도 덜 까칠하고 덜 냉소적이고 덜 위악적인 소설이 많았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한다. 이 소설도 그런 목록에 들어갈 것 같다. 해시태그를 달아보자면 #역설의 미학 #맥주의 미학 #익숙한 것과 낯섦 #있을 법하고 있기 힘든 #예측가능한 인기 대 실패의 기시감 정도 되겠다.

 

책 속에는 꼭 저자의 아이콘일 듯한 인물이 하나 등장한다. 책 속에서 자기 책 이야기를 한다. 쓰면서 성공을 예감했나 보다. 요즘 많이 팔리는 소설의 공통점들을 생각해 본다. 청소년 소설만도 아니지만 청소년도 읽을 수 있을 만큼 재미있고 쉬워야 한다. <아몬드>가 그랬고 <구미호 식당>이 그랬으며 <달러구트 꿈 백화점>이 그랬다. <나미야 잡화점의 비밀>도 마찬가지이다. 현실을 반영하지만 훈훈해야 한다. 미래는 절망적일 거야...는 현실이 충분히 이야기해주니까 소설만은 다른 이야기를 해줘야 한다. 어찌 보면 뻔한 이야기들인데 낯섦과의 배율을 잘 맞춰줘야 한다. 개과천선하는 착한 노숙자는 있을 수 있다. 현실에서는 거의 일어날 가능성은 없지만. 그래서 흐믓하다.

 

사실 이 소설은 맥주를 아주 좋아하는 사람이 썼나 싶다. 맥주 맛 좀 아는 사람이 쓴 게 분명하다. 편의점에서 파는 소백산 맥주(사 먹어 볼까 하고 검색해 봤는데 그런 맥주는 없었다) 이야기며 수제 맥주 이야기 따위가 알알이 박혀 있다. 인류에게 술이 없었다면 싸움도 자살도 연애도 헤어짐도 실수도 예술도 없었을 것이다. 맛있는 맥주는 인류의 동반자이다. 누군가에게는 소주나 와인이 그 역할을 하겠지. 아니면 옥수수 수염차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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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오디세이 - 클래식 음악과 함께하는 문화 여행
진회숙 지음 / 청아출판사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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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공부중이라 이런저런 에세이를 뒤적이고 있다. 이 책도 입체적인 공부를 위해 집어들었을 뿐 그다지 기대하지 않았고 읽었다. 그런데 재미있다!. 저자의 경험담과 음악 이야기가 잘 어우러져 더 재미있다. 물론, 저자가 나보다 열 살쯤 위로 어린 시절 이야기나 대학 시절 이야기에 공감할 수 있는 영역이 있어서 그런 것도 있긴 할 거다. 젊은 세대가 본다면 먼 옛날 이야기처럼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게다가 독특하게도 그 엄혹한 박정희 군부독재 시절에 대학을 다니며 운동권의 사고방식을, 그것도 음악을 공부한 학생이 경험하기란 쉽지 않았을 텐데 그런 독특한 경험이 더 독특한 에세이를 낳았다고 본다.

 

아마도 저자는 가치관의 혼란을 느꼈을지도 모르겠다. 그가 공부한 서양 음악은 뿌리가 귀족문화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의 철학은 약자와 함께 하는 것일 터. 이 간극을 어찌할까. 삶 곳곳에 그 가치관은 영향을 미친다. 나에게도 그런 갈등이 있었다. 그럼에도 클래식을 듣는 데 마음의 빗장을 풀 수 있었던 것은 국악은 촌스럽고 서양 고전음악은 고상하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며 음악의 영역에 상관없이 감성에 닿는 것은 높이 평가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나처럼 나이가 들면서 클래식을 만나고 싶되 어떻게 접근할지 몰라 망설이는 이들에게 이 책을 권한다. 그의 어린 시절이나 삶의 이력이 결코 일반적이고 평범한 것은 아닌데도 겸허하고 따뜻하고 소박한 품성이 글에 깃들어 읽는 사람들을 편안하게 해준다. 그는 클래식이라고 해서 어려운 용어를 사용하고 음악에 대한 해박함을 풀어놓아 독자를 불편하게 하지 않는다. “언니, 나 클래식 좀 들어보고 싶은데 어떻게 시작해야 해?”라고 잘 아는 이에게 묻듯이 이 책에 접근하면 그는 다정하게 이야기를 들려줄 것이다. 하루에 한 곡 정도씩, 책에 언급된 곡들을 들으며 이 책을 읽어 보자. 나는 구판으로 읽어서 하나씩 유튜브에 검색에 음악을 들으며 책을 읽었지만 개정판에는 큐알코드가 있다 하니 얼마나 좋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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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처럼 아름다운 클래식 이야기 - 모든 언어가 멈췄을 때- 음악 한 줄기가 남았다
이채훈 지음 / 혜다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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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덕분에 40년 만에 클래식의 세계에 들어갔다. 너무 재미있고 다정해서 아껴 읽었다. 중간에 친절하게 음악을 바로 들을 수 있는 코드를 넣어두었기에 글 조금 읽고 음악 듣고, 이렇게 책을 읽느라 시간이 오래 걸렸다. 중간에 베토벤 전기를 읽기도 했고. 방학을 틈타 2, 3분짜리 주요 부분만 듣는 방식이 아닌 전곡 감상을 도전해 본다. 팟캐스트 <월말 김어준>에도 마침 클래식 코너가 있어 그와 더불어 입체적으로. 방학마다 주제를 정해놓고 자가 연찬을 하는데 이번에는 클래식과 팟캐스트를 들으며 책을 읽거나 그림 연습을 하면서 보낸다.

 

베토벤은 내게 신세계였는데 발랄함보다 묵직함을 선호하는 나의 취향 때문에 모차르트는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다고 생각했던 것이 그야말로 편견이었음을 이번에 발견한다. 나는 모차르트의 피아노 협주곡들에 폭 빠졌다. 쇼팽이 자신의 장례 때 써달라고 했던, 나의 사랑하던 친구이자 강원도 선배가 젊은 날 하염없이 듣던 그의 <레퀴엠>만은 뒤로 미룬다. 브람스와 드보르작이 좋았고 호불호가 갈린다 하는 말러의 교향곡들 또한 내게는 참으로 좋았다. 책은 순서 없이 읽었는데 어쩌다 보니 쇼팽을 맨 마지막에 읽게 되었다. 이 글을 쓰는 지금은 쇼팽을 듣고 있다. 2월에는 그리그와 드보르작을 연주한다는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 공연에 혼자 가 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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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수학책 - 그림으로 이해하는 일상 속 수학 개념들
벤 올린 지음, 김성훈 옮김 / 북라이프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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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실에서 학생용으로 주문했는데, 어머, 이렇게 두꺼울 줄이야. 두꺼운 책은 일단 학생들이 집어들지 않는다. 하지만 다행히 안에 졸라맨 그림이 풍성하다. 남학생들은 수학을 엄청 싫어하면서도 엄청 좋아한다. 국어나 영어나 수학이나 다 염증을 느끼면서도 열심히 할 수밖에 없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수학은 그 중에서도 가장 남성성이 강한 교과목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이 책은 수학에 관심은 있지만 높은 경지에 나아가는 게 힘든 학생들에게 좋을 것 같다. 사실 우리 학교 학생들 수준을 생각하면 이과적 성향이 뚜렷하고 수학을 좀 잘하면서 인문 과목도 싫어하지 않는 학생들이어야 권할 수 있을 것 같긴 하다(남중생들은 전반적으로 학업성취가 떨어지다가 뒤늦게 고양되는 편이다). 게다가 미국문화를 좋아하는 학생이라면 더욱 재미있게 읽을 것 같다.

나는 전형적인 문과생이지만 수학과 과학을 문학적으로 기술해 놓은 책들을 재미있게 읽는 독자이기도 하다. 학생들의 독서 지평을 넓혀주기 위해 다양한 분야의 책을 살펴보기도 하지만 나 자신도 그런 독서를 즐기는 편이라 내 책장에는 가벼운 물리학, 천문학, 수학, 과학 일반 에세이들도 있다. 그리고 뭐, 그 책들 전부를 이해하려 애쓰지도 않는다. 재미있는 부분을 재미있게 읽고 관심 없는 분야는 적당이 후루룩 읽어줄 수도 있다. 이 책은 어떤 학생에게 어떻게 권할까. 독서 시간에 어떻게 책소개를 할까에 초점을 두고 읽긴 했지만 복권의 통계학이나 세금 부분은 꽤 재미있게 읽기도 했다.

 

지난 겨울 기말고사 수학 시험 감독에 들어갔을 때, 평소에도 질문이 많던 한 학생이 도형의 넓이를 구하는 문제에서 삼각형 빗변의 길이라고 적혀 있는 숫자가 이상하다며 인쇄 오류가 아니냐고 내게 질문을 했다. 교과목 관련 질문에 대해서는 감독 교사가 답하지 않는 게 원칙이다. 보통은 질문이나 이상이 없는지 출제교사가 교실 순회를 하기 때문에 그때 질문을 하도록 안내했다. 그러면서도 나 역시 궁금해졌다. 그 학생이 문제를 풀어보니 도저히 그런 빗변의 길이로는 문제를 풀 수 없었기에 이상하다고 느꼈던 거 아닐까? 내가 한 번 풀어볼까? 내가 대답을 해줄 수는 없어도 오류인지 아닌지 판단 정도는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데, 웬걸? 피타고라스 정리 수주의 중2 수학 문제가 왜 이리 어려운 건지... 루트 계산법도 생각나지 않고... 겨우 그 문제를 풀었는가 싶어 다음 문제에 도전해 봤지만 역시 허걱, 이었다. 그러다가 종이 쳤다. 감독교사는 문제지와 답안지를 나눠주고 걷고, 감독 날인하는 시간 외에는 내내 학생들 얼굴을 보고 있어야 하기 때문에 문제에 집중할 수 없었다고 변명을 해보련다. 그래도 두 문제라니!! 아무리 대학 입학 이후 수학문제 풀 일이 거의 없었다지만 말이다.

자리에 돌아와 이 책 앞 부분의 실수, 허수, 무리수, 유리수 부분을 다시 읽어 보고 루트 부분도 보았다. 물론 이 책은 그런 수학의 정석스러운 유형의 수학책이 아니다. 공식이 많고 수학 풀이에 도움이 되는 수학책을 보고 싶은 학생이나 학부모라면 이 책의 수다스러움이 마음에 들지 않을 수도 있다. 아무래도 난 문과인개벼, 한국에서 문과는 죄송한 일이라는데, 어쩌지? 이런 학생들에게 숨어있는 수학 1센티미터를 찾아주는 데 더 도움이 될 수도 있다. 물론 수학이란 수학은 다 너무 좋아. 이런 학생들이라면 더할 나위 없이 재미있을 터이고. 나에게는 버지니아 울프 문장의 남성성을 통계로 정리한 부분과 린데그린의 세금 이야기가 신기했다. 이 사람, 수학교사라면서 도대체 정치 문화 경제 모르는 게 뭐야? 그걸 다 이해하고 수학적으로 재해석했다는 게 더 신기했고.

 

그리고 사족이지만, 이 책을 읽고 나도 요렇게 사랑스러운 그림체로 중학생들이 국어를 재미있게 생각할 수 있게 책 한 권 쓰고 싶다는 생각이 잠시 들었다. 쓰지는 않을 거다. 그저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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