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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애와 루이, 318일간의 버스여행 1
최미애 지음, 장 루이 볼프 사진 / 자인 / 2002년 11월
평점 :
품절
나도 여행을 매우 좋아하지만 건강상의 이유로 열정적으로 여행을 즐길 처지는 못된다. 그래서인지 여행기를 읽는 것을 좋아한다. 가만히 앉아서도 여행을 떠날 수 있는 그 기분도 좋지만 여행이란 게 왜 원래 떠나면 고생인데도 돌아오고 나서 아련히 남는 그곳의 향기와 분위기에 대한 그리움으로 사람을 미치게 하지 않는가. 여행기는 말하자면 고생은 쏙 빼고 감성만 즐길 수 있게 하는 일종의 '상상여행장치' 비슷한 게 아닐까.
서점에서 이 책을 집어들고 살까 말까 망설일 때만 해도 그럴 듯한 사진들과 얼마 안 되는 글, 그리고 자신이 매우 특이한 사람이라는 자의식이 출판사의 상업적 목적과 버무려진 책인지 아닌지 판단이 서지 않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애, 그 사람의 얼굴이 어찌나 친숙하게 머리에 남아 있던지 이 책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
나라면 미애처럼은 여행하지 않는다. 나의 여행이래 봐야 지극히 평범한 '관광여행' '문화여행' 정도일 뿐이다. 내 맘 속엔 미친듯 포효하는 록가수를 키우고 설산에 묻혀죽는 염원이 있다 할지라도 실지로는 낮으막한 산 오르기도 힘겨워한다. 유럽 여행 갔을 때 하루 12시간씩 걷던 다리가 피곤한 게 아니라 10시간 넘는 비행기 안이 힘들어서 지병인 베체트의 반점이 돋아 올랐던 나이다. 그러니 고생을 사서 하는 수백일 간의 버스여행, 내게는 전혀 매력적이지 않다.
그러나, 한비야를 읽을 때에도, 한비야 식 여행이 탐났던 게 아니라 그녀가 사람들을 만나는 방식, 사물을 바라보는 시선이 좋았던 거였다. 미애 씨의 여행은 내가 이 생에 절대로 만날 리 없는 거리와 사람들을 대신 만나게 해주었을 뿐 아니라 미애라는, 누구보다도 독특한 끼와 역마살을 가지고도 정말 평범하고 따뜻한, 오만하지 않은 품성을 가진 착한 여자를 만나게 했다. 나는 모델 출신에 프랑스 사진작가와 결혼한 여자이면서도 화장기 없는 맨 얼굴로 아이들을 꼬질하게 입혀서 사진을 찍힐 수 있는 그녀가 맘에 든다. 계속 모델로 살면서 명품과 스풋라이트에 싸여 살기를 희망하지 않고 재밌게 메이컵아티스트의 길을 간 그녀가 맘에 든다. 오지를 다니며 여자들을 찍을 때 그녀만의 미적 감각으로 아름다운 여인을 찾아낼 수 있었던 그녀의 눈이 맘에 든다. 때묻지 않은 사람 눈에만 보이는 때묻지 않은 아름다움...
아무래로 사람은 꾸며놓아야 아름답다. 꾸미지 않은 여자의 아름다움을 보기도 어렵지만 그걸 볼 수 있는 눈을 가진 사람은 더더욱 만나기 어렵다. 아무리 아름다워도 촌스러우면 아름다움이 감해진다. 이건 나의 생각이다. 내가 생각하기에 진정 아름다운 사람, 매력 있는 사람은 잘 꾸민 사람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사람이다. 헌 옷을 입었든 드레스를 입었든, 화장을 했든 안 했든 자기한테 자연스럽게 하는 사람. 어떤 사람은 액세서리를 생전 하지 않는데 만약 그 사람이 목거리라도 한 줄 했으면 참으로 그 미모가 어긋났을 것만 같다. 어떤 이는 아주 작은 귀고리를 즐겨하는 데 그걸 그렇게 맛깔나게 하고 다닌다. 문제는 꾸미는가, 가 아니라 어울리는가 이겠지. 미애는 아름다운 사람인 것 같다. 그녀에게 화장을 하고 멋진 옷을 입혀놓으면 참 멋질 것 같다. 그런데 보라, 저 허름한 옷에 화장도 하지 않고 그을린 그녀의 얼굴이 주는 멋스러움을.
미애 씨는 내 또래다. 아이를 낳아 키운 비슷한 연배의 어머니의 감성에 공감한다. 물론 걱정이 안되는 건 아니다. 그녀가 돌아와서 어떻게 살까, 가 아니라, 그녀의 아이들, 그렇게 바람처럼 놓아 키운 아이들이 이 대한민국 땅에 와서 과연 적응할 수 있을지, 어머니에게 물려받고 어린 날 후각으로 체득했을 바람의 삶이 그 아이들의 피를 또 얼마나 근지럽게 할 것인지 말이다. 역마살도 예술혼도, 참으로 물려주기 두려운 영적 영역이건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