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나무들은 - 아이오와 일기
최승자 지음 / 세계사 / 199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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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꽂이에 최승자의 시집 네권이 나란히 꽂혀 있다. 스산했던 시절의 내 영혼에게 피와 살이 되어 주었던 시집들. 이번에 '어떤 나무들은'을 읽으면서 다시 찾아 읽는다. 다행인지, 10여년 전만큼 그 시들이 아프거나 절절하지 않다.

최승자가 어떤 사람일지 자주 궁금했다. 여류,라는 이름은 붙은 작가군의 특성을 조금은 안다.강렬한 자아, 대인기피증, 글을 만나지 않았으면 신경증 환자로 일생을 보낼지도 모를 상처, 혹은 예민함...

그 반대에는 이런 사람들도 있다. 역시 강렬한 자아, 자기집착, 오연함, 그리하여 몹시도 튀는 패션, 스포트라이트 집착증...

최승자는 왜 얼굴을 내놓지 않는 걸까. 그의 시집에 목말라 할 때도 풍부하게 내쏟지도 않을 뿐더러 번역서들에도 그의 약력이 화려하게 펼쳐지지 않는다. 자기가 밖으로 내비쳐지는 것을 극히 싫어하는 성격임에 틀림없다. 그런 그가 외국에 무슨 작가회의가 갔다는 것이 좀 안 어울리는 것 같기도 하다.

가 있는 몇 달 동안의 기록에서 그 사람의 변화가 보이기도 한다. 앞에 한 말 뒤에 또 하는 걸 보면 일기 맞다. 애써 고치고 다듬지 않은 것은 그 사람의 성격을 반영하기도 하고 이 글이 상업적인 목적으로 '기획'되지 않은 것임을 뜻하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이 책은 쪽수에 비해 오래 읽어야 했다. 요즘 나오는 책들처럼 활자를 키우고 자간, 줄간을 늘려 한 눈에 보기에 좋지만 순식간에 읽히는 그런 류의 책이 아니다. 물론 나온지 오래된 책이니까 그렇겠지만 개인적으로 난 이런 책이어야 책답다는 생각을 한다. 8포인트 정도의 깨알같은 식자체로 3단짜리 세로로 된 세계명작류를 읽은(번역도 엉망이었지만) 세대라 그런지도 모르겠지만.

최승자는, 자기 말대로 자기로 꽉찬 사람이다. 그래, 혼자 있는 시간에 절대로 심심하지 않게 잘 놀 수 있다는 말에는 나도 공감한다. 나 밖의 사람을 만나는 일에 나 자신하고 노는 일보다 열의를 다하지 않는 것도 비슷하다. 그러나 최승자는 외로움에 익숙하고 혼자를 다치지 않게 잘 다스리는 방법을 알 뿐 외롭지 않은 것은 아니리라. 하긴 주변에 남이 많은들, 내가 많은들, 외롭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으랴만은...

그의 글은 자기로 꽉차 있을지언정 잘난척하거나 미화하지 않는다. 그런 면에서 진정한 글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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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삶, 사랑 그리고 마무리
헬렌 니어링 지음, 이석태 옮김 / 보리 / 199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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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스코트 니어링 이야기인 듯 싶기도 하고 헬렌 니어링이 주인공인 이야기인 듯도 하다. 두 사람은 참으로 닮은 영혼을 지녔으니 누가 주인공이어도 상관이 없을 것이다. 지위나 돈이 아닌 명예조차에도 연연해하지 않을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많은 것을 가지지 않아도 저 사람, 깨끗하게 살다 갔다, 는 고고한 평가를 받고 싶은 것이 어찌 보면 인간적인 욕심이 아닌가.

대학 때, 가까운 친구 중 이런 평을 받는 이가 있었다. 사회주의가 앞날이 암연해 보이던 그 시기에, 사회주의 사자만 나와도 붉은 줄을 확 그어버리는 이 대한민국에서 참으로 진정 원칙적인 사회주의자라는, 그런 평가였다.그 평을 한 이는 숭고한 느낌으로 그 말을 읊조렸다. 순수하고 원칙적인, 진정한, 평화주의자? 사회주의자? 사해평등주의자? 그런 게 있는지 어떤지는 잘 모르겠으나 사심없이 자신이 믿는 올곧은 가치관을 위해 맑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몇 안다.

스코트 니어링이 자기자신에 대해 스스로 선언한 바가 있다. 나는 사회주의자, 평화주의자, 채식주의자가 되겠다. 나는 사교춤과 야회복을 포기하겠다. 나는 대중의 인기를 얻으려 애쓰는 성공적인 강연자 노릇을 포기하겠다. 나는 사회복지 공동의 가치, 공동 선을 드높이는 일에 헌신하겠다... 그리고 그는 그렇게 살려 노력하였다. 그리고 그런 노력의 끝에 죽음에 대해 진정 준비하여 맞이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아아, 나는 진정 잘 죽고 싶다. 고요하고 단정하게 죽음을 맞이하고 싶다. 나는 진정 스코트가 부럽다.

자기 의지로 삶을 찾아가는 것은 헬렌도 마찬가지였다. 그가 남편을 선택한 길이 그러했고 어린 날부터 고집스러이 채식을 주장한 것도 그러했다. 그러나 그에게서 위선적인 억압적인 금욕적인 그 무엇이 느껴지지 않는다. 자기 삶의 주인이었기에 자기가 선택한 것은 스스로를 행복하게 만들었다.

만약 그들이, 채식을 하며 그들의 은둔지에서 몇몇 마음이 통하는 친지들과만 교류를 나누고 그토록 고상하게 살았다면 그다지 닮고 싶은 삶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연약하고 맑은 사람들이 갖는 추진력과 활동력은 어디에서 오는가? 가끔 나는 아직 어린(?) 나이에 이만 세속의, 성공의 욕구를 접고 지금의 위치에 자족하며 아무의 눈에도 안 띄는 작고 작은 사람의 삶을 살고 싶은데, 그 점점 초탈한 듯한 태도를 핑계로 삼아 내 아이들에게도 더 깊은 욕심을 갖지 않으려 하고 일에 세상에, 불의에 열정을 접고 팔짱끼고 한발 뒤로 물러서려 하지 않는가 싶다. 그러면서 혼자 고결한 척... 실천하지 않으며 발이 땅에 닿아있지 않는 고상한 정신이란 것은 세상 어디에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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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재구의 포구기행 - MBC 느낌표 선정도서, 해뜨는 마을 해지는 마을의 여행자
곽재구 글.사진 / 열림원 / 200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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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의문이 든다. 처절한 삶을 살고 명징한 정신을 지녔던 사람이 아름답고 고요한 것들을 찾아 헤매면 그는 변절한 것일까, 초탈한 것일까? 글에는 삶이 반영되어 있는데, 아프고 가난한 삶을 갖고도 고운 글을 쓸 수 있는 사람은 뜬구름을 잡는 낭만주의자일까 아니면 걸러진 영혼으로 삶의 누추를 승화시킨 사람일까?

그가 부자이고 문화권력을 누리는 자이고 호사한 여행을 했다면, 그러면서 갯벌에 발 담그고 아낙들과 소주를 나누었다면, 그런 취재 끝에 깨끗한 호텔에서 뻘흙을 씻어내며 우아하게 잠들었다면... 그런 사람이라면 이런 재생지에 저 스산하기 짝이없는 낡은 나룻배들의 사진을 싣진 않았으리라고 믿는다면 나는 순진한 독자일까 아닐까?

느낌표는 정직하게, 내용이 쉽고도 문장이 아름다우면서 땅과 삶에 뿌리내린 책들을 족집게처럼 잘도 골라내어 그에게 베스트셀러의 영예를 내리는 트레이드 마크라 믿어 의심하지 않아도 되는 걸까? 곽재구는 어이하여 그의 역마살을 그토록 서해안 포구들에 부려놓은 걸까, 어떤 사연으로 하여... 단지 출판사에서 포구로 한 번 돌아보세, 한 건 아닐까..

그런 의문에도 불구하고, 나 그가 아직 교단에 섰던 80년대의 곽재구의 '시'를 더 사랑한다 할지라도, 그의 이 책이 글보다 사진이 더 아름답더라, 라고 말하여 그를 좀 서운케 할지 모를지라도, 그의 책에 나오는 이러저러한 지명들이 다 거기가 거기 같았다 할지라도, 감정의 과잉으로 너무나 따스한 그의 눈길로 인해 그의 연민은 땅의 것이 아닌 듯이 느껴졌다 하더라도, 그렇더라도,

바다를 따라 떠났던 그의 글을 읽는 동안 휴일 초저녁 꿈에 아지 못할 곳을 헤매고 난 후처럼 행복했노라고 감사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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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거인
프랑수아 플라스 글 그림, 윤정임 옮김 / 디자인하우스 / 200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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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을 보고 일곱 살 짜리를 위해 산 책을 내가 먼저 읽고 12살 짜리 아들에게 읽혔다. 그림과 서체와 디자인의 그 뛰어난 감각으로 하여 읽고 난 후 자신의 품격이 높아짐을 느낀다.

그러나 이 책은 단지 아름다운 그림으로 우아를 떨기나 하는 책이 아니다. 거인의 모습은 동양의 가난한 거리성자들의 외모를 닮았다. 그림으로 그들의 그윽한 눈빛과 밝은 표정을 조화시킨 것도 놀랍다. 그들에게는 '인간'이 이해하기 어려운 우주의 질서와 별빛의 목소리가 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함께 뒹굴고 놀며 작은 것에게 따뜻할 줄 아는 넉넉하고 여유있는 유머감각이 있다. 도대체 그 거인은 누구인가?

이 책에 매료된 나는 '들은 이야기 전달하기'라는 단원에 이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나에게 들은 이야기를 다음 사람, 또 다음 사람에게 전달하여 가장 정확하게 전하는 분단에게 사탕을 주는 그 수업에서 아이들은 이 이야기의 아름다움과 메시지에 자극 받은 듯 하였다. 그 다음 시간에는 이 원본을 읽고 그림을 볼 기회를 함께 가졌다. 그리고 이런 질문을 던진다. 거인은 무언가의 비유요 상징입니다. 그것이 무엇일까, 과연... 그 답을 생각해 보기 바랍니다. 그리고 '침묵을 지킬 수는 없었니?라는 말이 던지는 메시지가 있습니다. 그것을 알아낼 수 있어야 이 책을 잘 읽었다 할 수 있겠죠? 아이들은 그 답을 알아냈을까? 난 말해주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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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꽃선생 2005-03-05 09: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맑고 코가 시린 겨울날과 함께 눈도 참 좋아해요. 강원도에 근무하던 90년대 언젠가 강릉에 2미터의 눈이 온 적도 있었는데...
그런데 하얀별님의 국어샘이 어떤 분인지 궁금하네요. 이 책을 좋아하고 수업시간에 이야기해준 분이라면 저랑 통할 것 같아서... ^^
 
내가 떠보고 싶은 포근한 손뜨개
송영예 지음 / 시공사 / 200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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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째 구입한 송영예씨 책이다. 요즘 사이가 좋지 않은 아들에게, 그 애가 좀더 크기 전에 엄마가 널 많이 사랑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서, 좀더 커서 내가 떠준 옷은 아예 입지 않게 되는 날이 오기 전에 한 번 더 입히고 싶어서, 스웨터를 떠주마 했다. 그래서 이 책을 샀다.

내가 원하는 디자인은 눈에 띄지 않는 대신 이 책에서 '데님사'라는 것을 발견했다. 내가 좋아하는 아이비 블루, 베이지, 따위가 면사의 느낌으로 살아있는 실이다. 비록 이번엔 아들녀석이 카키색을 원하는 바람에 굵은 모사로 스웨터를 뜨고 있지만 다음번엔 진느낌이 나는 세련된 데님사 폴라 스웨터를 떠주리라...

데님사 뿐 아니라 그것으로 뜰 수 있는 생각도 못했던 아이템들이 많다. 실이 무척 비싸긴 하지만 실력이 늘면 담요나 베개커버를 떠볼 생각이다. 아쉬운 건, 인형옷으로 장식한 가디건이 너무나 예쁜데 그걸 뜰 수 있는 실력이 되면 내 딸이 너무 커버리지나 않을까 하는 것이다. 아이들이 더 어렸을 때, 진작 예쁜 옷 많이 떠줄 것을...

지금 뜨고 있는 것은 풀색에 가까운 밝은 카키색인데 4.5mm 굵은 바늘을 뜨고 있노라니 안데르센이었나, 마법에 걸린 오빠들을 위해 가시풀로 옷을 떠서 입혔던 막내동생공주 이야기가 떠오른다. 손가락을 찔려 가며 오빠들 생각으로 간절히 뜨게질을 하는 여동생, 그 옷을 받아입고 백조에서 다시 아름다운 왕자로 돌아오는 오빠들...

나는 스웨터를 뜨면서 툴툴거리고 무뚝뚝하여 별 사랑을 받지 못하던 내 아들에게 미안해, 사랑해, 라고 기도하듯 왼다. 더 크기 전에 엄마가 널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아주렴, 이 스웨터를 입으며 마법에서 풀리는 왕자님처럼 우리 사이에 좀더 따스한 날들이 다가왔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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