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ml version="1.0" encoding="utf-8"?><?xml-stylesheet href="https://blog.aladin.co.kr/blog/rss/rssUserXSL.aspx" type="text/xsl" media="screen"?><rss version="2.0"><channel><title> (풀꽃선생 서재)</title><link>https://blog.aladin.co.kr/nuribyul</link><language>ko-kr</language><description>이 생에서 모든 것을 가질 순 없지만
그리워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합니다.
살았었다는 것만으로도 사랑했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감사합니다.</description><copyright /><generator>Aladdin RSS(Alss) v0.9</generator><lastBuildDate>Wed, 24 Jun 2026 16:42:48 +0900</lastBuildDate><image><title>풀꽃선생</titl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myface/PT_784325133.jpg</url><link>https://blog.aladin.co.kr/nuribyul</link><width>100</width><height>100</height><description>풀꽃선생</description></image><item><author>풀꽃선생</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교과서 같은 책 - [안녕, 미스터 타이거]</title><link>https://blog.aladin.co.kr/nuribyul/17343448</link><pubDate>Fri, 19 Jun 2026 12:34: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nuribyul/17343448</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6457489&TPaperId=17343448"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253/55/coveroff/8936457489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6457489&TPaperId=17343448"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안녕, 미스터 타이거</a><br/>나혜림 지음 / 창비 / 2026년 05월<br/></td></tr></table><br/>* 이 글은 &lt;오늘의 교육&gt; 5,6월호에도 실렸습니다.<br>&lt;안녕 미스터 타이거&gt;는 내가 좋아하는 나혜림 작가의 새 책이다. 나혜림은 &lt;클로버&gt;라는 고양이로 변신한 악마가 등장하는 전작으로 이미 내 마음을 사로잡았었다. 이번 책도 만화 같은 표지에 드라마 &lt;미스터 션샤인&gt;을 연상케 하는 제목도 매력적이어서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새책이 나왔구나 싶어서 참 좋았다.  &nbsp;  하지만 이 소설은 ‘청소년 소설’이라고만 하기엔 너무 아깝다. 그 뛰어난 문장력뿐 아니라 이야기 속에 스며든 다양한 전설과 민담 같은 옛이야기며 조선의 문화, 당시 사람들의 정서, 근대의 풍경까지, 작가의 공부가 깊다. 감정이나 상황에 대한 묘사 또한 뛰어나다. 주인공인 계손향이 기생이 되기까지의 개인사에 깃든 슬픔과 그럼에도 당당하게 자기 삶을 펼쳐나가는 줏대 같은 것들이 과장되지 않아 실제 인물인가 싶을 정도이다. “내가 나를 버리지 않으면 아무도 나를 버리지 못한다.” 행수 기생 목단이 계손향에게 한 말을 빌어 말하자면 주인공이 사진을 찍고 외국어를 하며 자신만의 독특한 삶을 펼쳐나가는 모습이 참으로 주체적으로 느껴진다.미국에서 온 노월이라는 이방인은 또 어떠한가. 사진과 천문학에 대한 관심, 낯선 세상에 대한 관심과 인류 보편에 대한 진지한 이해는 일관성이 있다. 주인공인 기생 계손향에게 “그대가 이야기를 즐기는 마음은 내가 별을 보는 마음과 같아요”라고 말한다. 편견 없이 아름다운 관점 아닌가. 이 둘의 사랑은 아름다우면서도 점잖다. 갑신정변이며 기미 만세 운동까지 역사적 사실도 녹아든다. 기생 만세운동을 주도한 계손향의 절친 ‘영월’을 통해 이 소설은 일제강점기를 ‘로망스 가득한 벨 에포크’로 만드는 오류를 피해 간다.몇 년 전이지만 드라마 &lt;미스터 션샤인&gt;이 너무나 재미있으면서도 그 안에 담긴 의미며 언어 구사력이 아이들에게도 보이고 싶었던 까닭에 동아리 &lt;드라마 연구반&gt;을 만들어 꼭꼭 씹어먹듯이 같이 감상하고 공부했던 적이 있다. 이 책도 동아리에서라도 수업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 만큼 알차고 귀하다. 엄청나게 많은 작가들이 오늘도 끊임없이 멋진 글들을 쓰고 있다. 읽는 사람은 점점 줄고 있다는 현실이 안타까울 만큼. 학교는 그나마 어떻게든 이런 책들을 읽힐 수 있는 곳이어서 다행이다.  &nbsp;  아쉬운 마음도 한 줄 적어 본다. 청소년 소설을 꽤 많이 읽고 있지만 역시 창비 같은 큰 출판사에 쏠림 현상이 있다. 그리고 드라마 &lt;미스터 션샤인&gt;을 보면서도 비슷한 생각을 했는데 미국에 대한 호감이 담긴 작품은 논란의 여지가 있다. 일제 강점과 격동의 시대에 미국은 상대적으로 덜 미운 이방의 나라일 수 있다. 그러나 이렇게 합리적이고 젠틀한 이미지의 미스터들, 조선의 여인을 기꺼이 사랑하고 그녀들이 당당하게 살아가도록 도와줄 수 있는 존재들의 등장이 매번 반갑기만 한 건 아니다. 20세기와 21세기의 ‘미리견(미국)’을 겪어본 사람으로서 하는 말이다.  &nbsp;    &nbsp;    &nbsp;  ]]></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253/55/cover150/8936457489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2535592</link></image></item><item><author>풀꽃선생</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인류가 멸종하고 나면 - [찬란한 멸종 - 거꾸로 읽는 유쾌한 지구의 역사]</title><link>https://blog.aladin.co.kr/nuribyul/17322957</link><pubDate>Mon, 08 Jun 2026 09:3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nuribyul/17322957</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472932124&TPaperId=17322957"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4433/86/coveroff/k472932124_2.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472932124&TPaperId=17322957"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찬란한 멸종 - 거꾸로 읽는 유쾌한 지구의 역사</a><br/>이정모 지음 / 다산북스 / 2024년 08월<br/></td></tr></table><br/>&nbsp;AI의 관점에서 지구의 역사와 인류, 그리고 멸종된 동물을 바라보는 과학책이다. 호모 사피엔스가 많은 동물을 멸종으로 몰아넣고 지구의 온난화를 가속하며 결국 자신마저 멸망할 위기에 처하게 한다고, 사람들은 인류만 없으면 이 지구는 평화로울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이정모는, 아니 이 책의 서술자인 AI는 인류가 없었다면 아름다운 이 지구의 역사를 누가 기록했겠냐고 반문한다.   &nbsp;  인간이 등장하기 전까지 우주는 제 나이가 137억 살인지, 지구 나이가 46억 살인지도 몰랐다.호모 사피엔스는 우주와 지구의 존재를 ‘알게’ 해 준 존재란 뜻이다.  &nbsp;  우리가 인생을 살아갈 때, 생명체로서 생명 활동은 해나갈지라도 자신이 누구인지, 자신의 활동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누구나 염두에 두고 사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인식’이라고 한다. ‘이게 바로 ‘나’라고 깨달으며 스스로를 소중하게 여기거나 반성하는 일을 ‘자아 개념, 자아 인식, 자기 성찰’이라고 한다. 이 책의 저자는 스스로 다른 존재가 되어 생각하고 느낄 수 있는 것은 호모 사피엔스만의 엄청난 능력이라며 그랬기에 지구의 역사를 기록하고 그것에 의미 부여를 할 수 있었다고, 그러니 인류는 얼마나 소중한 존재냐고 되묻는 것이다.   &nbsp;  여기까지 읽고는 인류적 관점에서 자부심을 느낀다. 인간은 우리 자신의 문명에뿐 아니라 지구와 지구에 사는 생명체들, 아니 전 우주적으로도 의미 있는 존재였구나. 다만, 우리가 ‘자아’를 갖는 것은 타인을 의식해서이며 성찰이란 것도 다른 존재와의 관계에서 비롯되는 것인데 지구 인류만큼 그런 인식/평가/반성의 활동을 할 다른 존재가 없다면 그 값어치는 또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다. 물론 이 책의 저자는 인류가 멸망하고 난 후에도 한참을 남아있을 AI가 그런 평가를 내릴 것이라는 가정을 한다. 허무한 미래적 상상이긴 하다.   &nbsp;  이 책의 신선한 관점 하나 더. 멸종에 관한 책으로써 이 책은 멸종이란 ‘새로운 생명 탄생의 찬란한 시작’이라고 말한다. 우리가 흔히 꽃이 질 때, 꽃은 지더라도 그 자리에 열매가 맺히거나 새잎이 난다고 하면서도 어떤 동물이 멸종 위기에 처하면 (대개 그 책임을 인간에게 물으며) 종말을 슬퍼하곤 한다. 그러나 멀고 긴 지구의 역사를 보면 어떤 한 종의 멸종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음을, 또 다른 어떤 종 혹은 동물은 새롭게 진화함을 거시적인 안목으로 서술한다. 중생대의 지배자였던 공룡이 멸종한 후 비로소 신생대가 시작되면서 포유류가 기를 펴기 시작하고 그때 호모 사피엔스가 등장했던 예를 든다. 기후 위기 앞에서 우리는 인류의 멸종, 인류세의 종말을 두려워하지만 호모 사피엔스가 멸종하면 지구의 다른 생물들에게는 또 다른 신세계가 열릴 수도 있는 것이다.인간의 삶도 유한하고 하찮지만 우주적 관점으로 보면 슬퍼할 가치조차 없을 만큼 작다. 그래서 역설적으로 슬프지조차 않은 것이다. 이 책의 관점은 그러하다. 나는 이래서 과학이 좋다. 과학은 철학이 되고 어쩌면 종교적 성찰에 닿는다. 그렇다고 지금, 인류에 의해 많은 동식물 종들이 멸종해가는 시대를 낙관만 할 수는 없다. 종의 다양성이 줄어든 생태계는 건강하지 않단다. 게다가 인류가 자기만 살겠다고 인위적으로 자연을 파괴한다면 당연히 자연스러운 지구의 변화나 그로 인한 멸종과는 다른 결과로 나아갈 수밖에 없다.  &nbsp;  이 책이 좋았던 점 하나 더.과학 에세이를 평온의 도구로 삼는 내가 즐겁게 책을 읽으며, 아, 이건 중학생들 읽을 수 있겠다 싶어 중2 수업 도서로 가지고 들어갔다. 설명문 쓰기를 하기 위해 비문학 도서 50권 정도를 가지고 들어가 자신이 관심 있어 하는 분야의 책을 읽으며 주제 찾기를 하는 수업이다. 솔직히 중2가 읽을 수는 있어도 제법 배경지식이 있어야 하는 책이다. 소수이긴 하지만 이 책을 열심히 읽고 진화론이나 멸종에 대한 설명문을 쓰는 학생들이 있다. 페름기 대멸종 사건을 다루며 이 책을 참고하고 다른 자료를 더 찾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nbsp;  기억에 남는 구절만약 화성을 테라포밍하려는 노력의 1만분의 1이라도 지구에 쏟았다면 인류 종의 운명은 지금과 달랐을 것.  &nbsp;  지금도 수천 명이 거주할 수 있는 달 기지를 건설하려는 아르테미스 프로젝트(2017년 미국 주도, 2024년 현재 22개국 참여 개발 중)가 진행중이라는데 이도 마찬가지다. 우주로 나아가려는 시도와 노력은 결국 부유한 자들의 몸부림이다. 가난한 자들과 함께 오염된 지구를 버리고 떠나려는 그 노력 대신 여기서 함께 잘 살고자 하면 어떨까 하는 저자의 문제제기이다. 한편으로는 너희는 화성으로 떠나 감자를 심으며 먹고 살라, 우리는 너희가 떠난 지구를 서서히 복원시켜 여기서 잘 살아볼테다, 이렇게 말하고 싶기도 하다. 뭐, 부자와 빈자, 계급의 차이라는 건 빌런들이 떠나도 또다시 돋아나는 어떤 사회학의 공식 같은 걸지도 모르지만 일단은.  &nbsp;  그리고 저자는 지구 온난화는 지구 가열화로, 열대화는 지구 비등화로 용어를 바꿔야 한다고 주장한다. 찬성한다.   &nbsp;  또 재미있었던 장면은 달 이야기다. 달은 초기 지구 가이아가 원시 행성 테이아와 충돌한 후 지구와 함께 탄생한 천체다. 달이 태어나면서 지구 자전축이 23도 기울고 지구에 계절이 생김겼다. 달은 참 여러 가지로 드라마틱한 존재다. 이 역시 인간이 없었다면 달과 지구에 인간성을 부여하고 스토리라인을 만들지도 않았겠지. 인류가 멸망한다고 상상해 보면 수많은 세월 동안 인류가 쌓아 놓은 모든 문명과 문화가 무의미해질 터이다. 달을 두고 노래한 것, 달에 가고 싶어 애달복달했던 그 뜨거운 열망, 저 존재를 알고 싶어서 미칠 것 같았던 지적 욕구들 그 모든 예술적 학술적 감성과 업적들도 다 사라질 것이다. 인생은 그런 것이다. 살아있다는 것은 그래서 중요한 것이다. 살아남는다는 것은. 멸종에 대한 책을 읽으며 어떻게든 멸망하지 않고 살아야 할 당위를 다시 한 번 되새긴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4433/86/cover150/k472932124_2.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44338610</link></image></item><item><author>풀꽃선생</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가해자? - [친밀한 가해자]</title><link>https://blog.aladin.co.kr/nuribyul/17311068</link><pubDate>Mon, 01 Jun 2026 13:42: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nuribyul/17311068</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582135794&TPaperId=17311068"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434/90/coveroff/k582135794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582135794&TPaperId=17311068"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친밀한 가해자</a><br/>손현주 지음 / 우리학교 / 2026년 01월<br/></td></tr></table><br/>&lt;친밀한 가해자&gt;는 그 제목에 이끌려 문제작이 될 것만 같아 제일 처음 집어든 책이다. &lt;가짜 모범생&gt;의 충격적인 내용이 불편했던 기억이 있지만 어쩌면 가장 가까운 이가 가장 위험한 자일 수 있다는, 주변에서 흔히 보는 가정폭력이나 친구가 폭력에 관한 이야기일지도 모른다는 상상을 하면서. 하지만 제목은 좀 과했다. 그 가해자는 위험하고 사악한 자가 아니었기에. 그렇더라도 소설의 이야기 구조는 탄탄하다. 청소년 소설에 등장하는 청소년 주인공, 혹은 주변 인물들이 아무리 나쁜 짓을 하더라도 계도가 가능한, 근본은 선한, 나름 사연이 있어서 나빠졌거나 위선을 떨고 있는, 그런 인물로 그려진다면 손현주의 작품에는 변명에도 불구하고 결론적으로 나쁜 사람인 누군가가 등장한다. 그게 더 현실적일지도 모르겠다. 그 사악한 존재를 이해해주어야 하는 건지에 대한 작가는 생각은 어디에 닿는지는 잘 모르겠다. 나도 가끔은 감정을 싹 걷어낸 채 사악하게만 그려지는 영화나 드라마 속 가해자의 심정을 헤아려볼 때가 있다. 사람을 때리고, 죽이고 나서 두렵고 죄책감이 들었을 텐데, 인생이 끝난 절망감을 느꼈을 텐데. 가해자의 시점에서 서사를 이끌어나가는 것은 매우 위험하지만 시도해 볼 필요가 있다. 이 책은 그렇게 접근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잘못을 저지른 주인공 준형이를 동정할 마음은 들지 않는다. 아이의 행동도 그를 감싸는 부모의 행태도 어리석고 이기적일 뿐. 어떻게 정의를 구현하려고 소설은 이렇게 펼쳐지나 싶을 무렵 등장한 친구가 아니었으면 소설은 학원범죄물이나 전작처럼 비뚤어진 자식 사랑이 아이를 망쳤다, 류의 주제로 흘러갈 뻔했다.   &nbsp;  손현주의 작품이 주는 씁쓸함을 어떻게 가셔내야 할지 잘 모르겠다.&nbsp;그러나 남학생들이 주인공인 소설이 드문 이 ‘청소년 소설’계에서 제법 생각할 거리를 건네주는 소설은 귀하다고 생각한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8434/90/cover150/k582135794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84349016</link></image></item><item><author>풀꽃선생</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거짓말을 들어줄 사람이 필요해 - [소란한 비밀]</title><link>https://blog.aladin.co.kr/nuribyul/17311054</link><pubDate>Mon, 01 Jun 2026 13:33: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nuribyul/17311054</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6457438&TPaperId=17311054"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466/72/coveroff/8936457438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6457438&TPaperId=17311054"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소란한 비밀</a><br/>강은지 지음 / 창비 / 2026년 01월<br/></td></tr></table><br/>&nbsp;* 이 글은 &lt;오늘의 교육&gt; 2026년 3,4월호에도 실렸습니다.<br><br>청소년 소설은 재미있다. 나처럼 수십 권(후다닥)을 읽어대면 그 얘기가 그 얘기 같을 법한데 절대 그렇지 않다. 어느 소설에나 성장의 서사가 있고 고난의 가정사가 있지만 때로는 판타지로, 때로는 음습하게, 그러면서도 빛나는 메시지를 담는다. 책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청소년들에게도 선택받아야 하므로 무지하게 재미있을 수밖에 없다.   &nbsp;  &lt;소란한 비밀&gt;은 거짓말에 대한 소설이다. 청소년기에 거짓말은 흔한 경험이다. 어쩌면 거짓말의 터널은 성장의 무수한 터널 중 하나일지도 모른다. 누구나 겪는 흔한 경험일 수도 있지만 어쩌면 관계를 해칠 수도 있고, 심지어 몸에 배어 영영 그런 사람으로 살아가게 만들기도 하는, 중요한 경험이다. 살다 보면 어쩔 수 없이 거짓말을 해야 할 때도 많고 거짓 ‘말’이라기보다 마음과 다르게 표현해야 하는 상황도 있게 마련이다. 이 소설은 다섯 명의 청소년(소녀)들이 ‘거짓말 무덤’이라는 익명의 사이트에서 자신의 거짓을 털어놓다가 그것들이 세상에 다 까발려지면서 펼쳐지는 이야기이다.   &nbsp;   청소년이라고 늘 희망적이고 교훈적인 것만 읽으란 말이냐고 반문한다면, 그런 것들이 읽고 싶다면 그보다 넓은 문학의 세계로 나아가라고, 얼마든지 음습하고 끔찍하고 헤어나올 수 없는 현실 반영들이 있으니 거기까지 독서력을 확장해 보라고 말하고 싶다. 아니, 사실은 결론은 다 나름 훈훈할지라도 청소년 소설에도 아동학대, 임신과 출산, 버림받음, 배신과 살인, 이간질과 악플, 지독한 가난, 가출 등 비린내 나는 현실이 난무한다. &lt;소란한 비밀&gt;에도 입양, 부모의 이혼과 재혼, 특히 외국에서 온 새엄마, 치열한 경쟁, 그리고 왕따와 같은 문제들이 뾰족하다. 추리소설처럼 거짓말한 아이들을 추적하고, 그걸 폭로한 아이를 찾아내는 과정은 흥미진진하다. 이러다가 모두 파국으로 가(진 않겠지만)면 어쩌나 싶은 위기의 단계도 있다. 하지만 등장인물들 누구도 악인으로 흑화되지 않는다. 결말이 훈훈한 것은 독자와 타협을 했기 때문도 청소년 소설다운 ‘올바름’을 의식한 때문도 아니다. 실제로 거짓말을 하되 내면으로는 두려워하고 부끄러워하고 이겨내고 싶어 하는 아이들이 현실 속에 훨씬 많기 때문이다.  &nbsp;  거짓말 무덤에 묻고 싶었던 각자의 거짓들은 어떻게 극복될 수 있을까? 거짓이 드러나는 순간은 본인에게는 지옥문이 열리는 시간처럼 느껴지겠지만 그렇게 말고는 그 거짓의 시간을 극복할 수 있는 대안은 따로 없어 보인다. 작가도 말한다. 솔직하게 말하고, 화내고, 울음을 터뜨리라고. 그런 소통이 아니면 거짓을 말할 수밖에 없었던 네 마음의 지옥은 결코 헤어나올 수 없다고. 물론 그때 가장 중요한 것은 거짓을 털어놓을 수 있는 너 자신의 용기이겠지만 네 곁에는 꼭, 왜 그랬냐고 화내 주고, 그러나 다 들어주겠노라, 이제는 솔직한 네 마음을 들려달라고 곁을 지켜주는 친구나 가족이 있어야 한다고. 그렇게 하나, 빛나, 유진, 아율, 그리고 다온 이렇게 다섯 아이들은 거짓말 무덤을 열고 세상으로 나온다.   &nbsp;    &nbsp;  ]]></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8466/72/cover150/8936457438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84667224</link></image></item><item><author>풀꽃선생</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니체, 잘 모르는데 싫은 사람 이야기하는 괴로움 - [니체 극장 - 영원회귀와 권력의지의 드라마]</title><link>https://blog.aladin.co.kr/nuribyul/17311035</link><pubDate>Mon, 01 Jun 2026 13:19: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nuribyul/17311035</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4958049&TPaperId=17311035"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1766/79/coveroff/8934958049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4958049&TPaperId=17311035"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니체 극장 - 영원회귀와 권력의지의 드라마</a><br/>고명섭 지음 / 김영사 / 2012년 06월<br/></td></tr></table><br/>&nbsp;책 제목에 매우 공감한다(물론 저자의 이후 작품인 하이데거론도 ‘극장’이라 붙이긴 했지만) 나라는 독자야말로 아주 드라마틱한 한 인간론을 극장에서 본 것 같은 느낌으로, 니체의 모든 삶과 말을 하나의 무대에서 다채롭게 보여주는 느낌으로 책을 읽었으니까. 고명섭은 니체 작품들은 하나의 독특한 공간을 구성한다며 ‘극장’이라 이름 붙일 만한 공간이라고 했지만 나는 다른 의미에서 이 책의 제목이 매우 잘 지어졌다 생각하고 책을 즐겼다.  &nbsp;  세 번쯤 &lt;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gt;를 읽기 시작했지만 끝을 맺은 적 없다. 난해해서일까? 난해하기로라면 &lt;파우스트&gt;도 만만찮은데, 맥락이 없더라도 아름답고 강렬한 문장만으로도 나는 그 책을 좋아했을 법한데 왜 끝까지 읽지 않았을까? 아마도 니체가 주창하려는 것과 나의 가치관은 번번이 삐걱거렸을 것이다. 그렇게 단 하나의 원전도 끝까지 읽지 못했지만 칼 융의 &lt;차라투스트라를 분석하다&gt;를 읽으며 니체가 궁금해졌다. 융이 니체를 일컬어 ‘자아팽창’이라고 표현하는 것을 보고 무릎을 쳤다. 그래, 내가 그의 책을 읽기 싫었던 이유는 융이 지적한 대로 과잉된 자아(속세의 말로 하면 허세 쩌는 자의식이다)가 불편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가끔 또 좋아하는 작가들이 니체를 언급할 때마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니체를 말할 때마다 도대체 내가 보기에는 맥락이 합리적이지 않은 말들을 해댄 니체가 어떤 사람이길래 수많은 이들이 그토록 자기 삶에 영향을 주었다고 그를 언급하는 건지 궁금했다.  &nbsp;  그런데 고명섭이, 내가 아주 좋아하는 작가 고명섭이 니체 이야기를 한단다. 그래, 평론을 읽고 나중에 원전을 읽을 수도 있지 않은가? 우리 삶이란 게 원래 수많은 파생상품에 둘러싸여, 아니 더 멋진 파생상품에 둘러싸여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기도 하는, 뭐 그런 거 아니겠는가? 이참에 어쩌면 나는 이상하게 마음에 껄끄러웠던 니체에 대한 오해를 풀고 정식으로 그의 작품을 읽고 싶어질지도 모르지 않을까?  &nbsp;  그리고 내 예측은 틀리지 않았다. 이 두껍디두꺼운 책은 너무나도 재미있다. 니체의 모든 작품을 다 해설해 주었고 얼마나 어떻게 세상에 영향을 끼쳤는지 자세히 말해주었으며 왜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니체를 껄끄러워하는지도 설명해 준다. 그렇다고 그에 매몰되어 편을 들기만 하지도 않는다. 또 그렇다고 사실만을 나열하지도 않는다. 고명섭은 마치 아주 잘 소화된 이야기를 관객들 눈높이에 맞춰 들려주는 친절한 해설사 같다. 그런데 과하지도 모자라지도 않고 왜곡이나 편파의 오류를 범하지도 않는다. 잠이 안 올 때 &lt;니체 극장&gt;을 읽으며 긴 시간을 보낸 날이 많다. 머리맡에 철학, 과학, 소설, 만화 등 다양한 책들을 쌓아 두고 이책 저책 섭렵하다 잠이 들곤 하는데, 이 &lt;니체 극장&gt;은 다른 책으로 갈아타지 않아도 될 만큼 재미있었다. 하긴, 철학책이라기보다 인물사라고 보는 게 맞을 테니. 니체의 사상을 훑는 중간중간 그의 삶을 들여다본다. 보통 이렇게 두꺼운 책을 이토록 긴 시간 읽고 나면 주인공에 대한 애정이 생겨 책을 덮을 때 서운할 법도 한데 니체는 조금도 정이 가지 않았다는 것만 좀 특이하긴 하다.   &nbsp;  나는 니체가 숭앙받는 현상을 두고 ‘꿈보다 해몽’이라는 표현이 떠올랐다. 그가 말하고자 했던 바보다 더 많은 해석들, 그리고 해석의 해석으로 나아가는 무수한 니체 파생상품들이 거대한 문화권력이 되는 현상. 그리고 누군가에게는 천재이나 누구에게는 미친 자로 느껴지는 사람.자의식 과잉에 현대적 관점으로 볼 때 부조화와 불균형의 ‘이상한 사람’, 헛소리를 정성껏 아름답게 써놓은 자. 다만 그 표현력만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미친 천재를 숭앙하는 이 분위기에 적응이 되지 않는다. 누군가 나를 설득해주면 좋겠다. 왜 니체를 꼭 읽어야 하는지. 내가 그토록 좋아하는 작가인 고명섭조차 해내지 못한 그 일을.  &nbsp;  작가의 시대성이란 게 있다. 도덕의 잣대도 시대와 공간에 따라 다르다. 과거의 철학자를 현대의 도덕 관념으로 평가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니체의 민주주의 혐오, 여성 혐오를 받아들일 수는 없다. 그게 너무 불편해서, 아무리 니체가 천재라 해도 그 예찬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다.다만 라캉의 ‘승화’ 개념대로 니체가 뛰어난 필력과 사고력으로 이와 같은 저서를 쓰지 않았다면 그의 삶은 더 불행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 안에 들끓던 상념들이 사람들의 사고를 촉발하고 상상력을 북돋운 것, 비록 그의 가치관에는 문제가 많았을지라도 그로 인해 (반면교사로 삼으면서) 다른 세계로 나아갈 상념들을 체계로 구축한, 그러니까 니체에 빚진 많은 문학가와 사상가들을 생각한다면 그의 승화는 고마운 일이긴 하다.   &nbsp;  그래도 단지 재미만을 위해서 읽은 책도 아닌데 주인공인 니체에 대한 칭찬으로 끝을 맺고 싶다. 그가 던진 질문 중 가슴을 치는 것이 있었다(아마도 니체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그런 문장들을 붙잡고 자기 인생을 경작하면서 니체에게 감사함을 느꼈을 것 같다.)   &nbsp;  “지금까지 너는 무엇을 진정으로 사랑했는가? 무엇이 너의 영혼을 높이 끌어올렸는가?”   &nbsp;  한때는 높고 고결한 가치가 인생을 지배하던 시절이 있었다. 개인의 욕망을 부끄럽게 생각하면서 노력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책임감이 무거웠던 시절이 지나 점점 내 가족의 안위와 나의 평안을 꿈꾼다. 그런 시점에서 저 질문은 다시 한 번 ‘어떻게 살아야 할까’에 대한 성찰의 시간을 갖게 한다. 그런 의미에서 니체, 땡큐. ]]></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1766/79/cover150/8934958049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17667974</link></image></item><item><author>풀꽃선생</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소설을 이렇게 쓸 수도 있다 - [안녕이라 그랬어]</title><link>https://blog.aladin.co.kr/nuribyul/17260605</link><pubDate>Wed, 06 May 2026 14:56: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nuribyul/17260605</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462039240&TPaperId=17260605"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6566/52/coveroff/s632135953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462039240&TPaperId=17260605"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안녕이라 그랬어</a><br/>김애란 지음 / 문학동네 / 2025년 06월<br/></td></tr></table><br/>  &nbsp;  소설의 재미는 어디에서 오는 걸까? 급박한 사건의 전개, 퍼즐 맞추기처럼 뛰어난 플롯, 반전, 뛰어난 심리 묘사, 절묘한 문장.... 김애란은 어느 쪽일까?이번 소설집은 ‘사건이 주는 재미’랄 게 딱히 없이도 끝까지 읽고 싶어지는 매력의 단편들이 가득했다. 읽으면서 내내 이 재미의 정체가 궁금했다. 나도 한번쯤 겪어보았을 법한 미묘한 갈등이나 심리의 변화를 잡아내는데 그게 지루하지 않다. 그렇다고 기교를 부린 문장들이 난무하지도 않는데(최근에 본 어떤 인터뷰에서 놀라운 문장력을 구사하는 김애란을 보면서 저런 사람이었구나, 감탄한 적이 있지만 정작 그의 소설에서는 문장의 화려함이 시그니처는 아닌 듯했다.), 빠져든다.   &nbsp;  표제작인 &lt;안녕이라 그랬어&gt;는 온라인으로 영어수업을 하는 장면이 소설의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주인공이 왜 지방에서 직업도 가족도 없이 한적하게 지내야 하는지를 설명하기는 하지만, 그래서 온라인 영어 수업의 대화 중에 그런 곤혹스러움이나 외로움의 느낌을 납득하게 하지만 그게 그리 강렬한 사건들은 아니다. 그런데 영어 강사와 주인공 사이의 덤덤한 대화 사이에서 미묘한 흔들림, 특히 외로움 같은 게 섬세하게 묻어난다. 원래 우리들의 일상 대화도 별것 없는 대화와 대사들 사이에서 상대방의 감정은 무엇이었는지, 내 말투나 표현에 오해의 소지는 없는지 돌아보기도 하고 그러지 않는가. 절제된 감정을 뒤로 하고 마지막 수업에 남기는 인사, 그저 ‘안녕’ - 그 무수한 뉘앙스의 ‘안녕’으로 끝을 맺는다. 새벽에 책을 읽다가 결말이 탁월하다고 생각했다. 혹시나 다른 약속을 잡으려나, 약간의 고백이라도, 감사라도, 연정의 안개라도 피울까 싶었던 마지막 인사가 안녕,에서 갑자기 뚝 끊겨버린 결말. 잔잔한 가운데 낯선 충격이었달까. 소설을 어떻게 써야 할까에 대한, 독자로서가 아니라 작가의 관점에서 내내 책을 읽은 신선한 경험을 했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6566/52/cover150/s632135953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65665217</link></image></item></channel></r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