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아리 활동을 한다. 우리를 가르치는 사람은 보수 없이 재능기부 형태로 참여하다. 지역에 이런 동아리 하나쯤 괜찮겠다고 했고 선뜻 같이 하겠다고 했다. 항상 이 사람한테 불만이 있었다. 자신의 몸상태와 기분, 사람들이 얼마나 모였는지에 따라 연습량과 가르치는 스타일이 들쭉날쭉했다. 올해 공모사업에 지원해서 적은 금액이지만 보조금을 받는다. 강사비를 지급한지 얼마 안 됐지만 가르치는게 눈에 띄게 달라졌다. 시간도 웬만하면 지키고 제대로 가르치려고 노력한다. 나는 그동안 우리가 잘 안 나와서, 날씨가 흐려서, 이 사람 몸상태가 정말 안 좋아서 연습이 잘 안 된줄 알았다. 재능기부의 헛헛함이란.

 

 선의로 할 수 있는 일은 어디까지일까.

 

 

 

 

 

 

 

 

 

 

 

 

 

 

 여성주의 시각으로 경제를 해석한 이 책은 우리가 흔히 '경제적이다'라고 할 때 수반되는 가치가 우리 일상과 사고에 어떤 영향을 줬는지를 다룬다. 경제적이고 합리적인 인간은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선택을 한다. 하지만 사람은 자신의 이익만을 위해 움직이지 않는다. 사람이 어떤 행동을 하는데는 다양한 요인이 작용한다. 동아리의 경우 만약 참여자들이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하고 연습을 잘했다면, 가르치는 사람을 인격적으로까지는 아니어도 가르치는 사람으로서 존중해줬다면, 의례적인 치켜세우는 말이 있었다면, 혹은 어쩌다 활동과 관련된 상을 받는다면?

 

 경우의 수와 해야할 일들을 하나하나 처리하는 것보다 돈을 주는게 어쩌면 훨씬 간단한 일이 된다. 적어도 상식적인 '돈값'을 할 수 있으니 말이다. 그런게 싫어서 협동조합 공부하고 공동체 연구했는데 다시 도루묵이다. 어떻게 하면 사람들의 선한 의지를 훼손시키지 않으면서 자본이 아닌 가치를 나누며 함께할 수 있을까.

 

* 계란후라이를 두개 했다. 하나는 내 접시에 덜고 다른 하나를 아기 접시에 덜었는데 그을린 부분이 들어갔다. 그 부분을 떼서 내 접시에 담는데 아기가 '으힝'하는 소리를 낸다. 자기걸 내가 더 가져갔다는거다. 빙긋 웃으며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과장된 동작으로 접시를 보여줬다. 아기가 나를 따라서 웃는다. 나를 물려고 하는 아기한테 '무는 건 안 돼. 엄마가 너무 좋아서 앙하고 물어버리고 싶구나. 좋아하면 뽀뽀하는거야.' 아기는 춉춉 소리를 내며 내 볼에 입을 맞췄다. 그 느낌과 냄새, 촉감, 부드러운 양볼이 좋아서 계속 뽀뽀를 해달라고 했다. 아기는 다섯번까지 열심히 하다가 여섯번째에 '히잉'하고 싫은 소리를 낸다.

 

 아기가 어린이집에 적응할 때는 차라리 보내지 말까 고민할 정도로 떼쓰고 울고 종잡을 수 없었다. 어느 정도 익숙해지니까 를 지나 요즘 아기는 사랑스러움이 뚝뚝 떨어진다.  아기가 노는걸 가만히 지켜보면 맘이 몽글몽글해진다. 자기 맘대로 되지 않으면 히힝 짜증을 내지만 흡족할 때는 돌고래 소리를 내며 환호를 한다. 명확한 호불호에도 불구하고 말을 하면 또 가만히 듣고 수긍을 하니 예뻐할 수 밖에.

 

 그래서 한번쯤 둘째를 가지면 어떨까란 생각을 했다. 아기에게 동생이 있다면 더 좋지 않을까. 하지만 아기와 함께 놀 동생과 이즈음의 아기 키우는 재미 말고는 둘째에게 끌리는 이유가 없다. 둘째를 낳지 말아야할 이유는 별처럼 많다. 3년 가까이 아기를 다시 키우기 싫고 나이를 생각해야하고 모든게 다 준비된다고 해도 애가 생길지 모를 일이며 어떤 아이가 나올지 진심으로 걱정스럽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엄마도 있다.

'저런 장난꾸러기를 엄마가 왜 낳았겠니? 다 너 때문이야. 너만큼 예쁘고 착하고 멋진 애가 나올 줄 알았거든. 아아, 이렇게 예쁜 아기가 둘이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둘째를 낳은거야. 그러니까 둘째는 너 아니면 못 태어났어. 니가 조금만 덜 이쁘거나, 덜 멋졌으면 아기를 둘 갖고 싶단 생각을 엄마가 왜 했겠니?'

 

 첫째가 둘째를 시샘할까 만든 이야기라고 하지만 둘째도 첫째처럼 예쁜 아기일거라고 생각했다는 부분에서 깜짝 놀랐다. 나는 아기랑 정말 잘 맞아서 -이유없이 짜증내고 울어도 나는 왠지 다 알 것 같은 기분이 들 정도로, 실제로 모르고 당황하는데도- 둘째가 태어난다면 둘째는 첫째만큼 나랑 잘 맞지 않을 것 같았다. 세상을 낙관하고 포용하는 눈이 있는가하면 의심하고 비판하고 비관적으로 생각하는 머리가 있는데 나는 늘 후자쪽이다. 둘째 낳기는 계획에 없고 하늘을 볼 생각도 없지만 그렇게 생각한 이유가 짚이자 '역시나' 하고 말았다.

 

 아, 이 책. 제주도 여행 준비하려고 짚어든 책 중 제일 좋았다. 객관적인 여행 정보보다 저자와 아이들 얘기가 많고 때로는 오글거리기도 하지만 제주를 쫙 펼쳐서 보여주는 느낌이다. 도서관이 많이 나오고 아이들과 조금씩 성장하는 저자의 모습을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아이를 낳고 키운다고 부모가 다 성장하는 건 아니지만 육아야말로 스스로를 성찰할 수 있는 가장 빠른 방법 중 하나라는,

'부모가 된다는 것'이 생각 난다. 좌충우돌 엄마가 책과 함께 육아하는 얘기도 생각나고.

막 추천 추천, 쉣끼쉣끼 쉣끼바리세움?

 

 

 

 

 

 

 

 

 

 

 

 

 

 

* 한개는 짧고 두개를 붙이자니 제목이 궁해지는 페이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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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일은 전혀 사소하지 않습니다 - 아내폭력에서 탈출한 여성들의 이야기 대한민국을 생각한다 30
한국여성의전화 지음 / 오월의봄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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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대 중반, 일하다 친해진 언니네 집에 자주 놀러간적이 있다. 언니는 남자친구랑 같이 살고 있었다. 무슨 얘기 끝엔가 언니가 자신과 남자친구는 자주 싸우며 가끔 남자가 자길 때릴 때도 있다고 했다. '때린다'의 의미를 파악하지 못하고 '장난으로 그러는거야'라고 되물었다. 언니는 남자가 자기를 어떻게 때리고 어느 순간 폭발하는지 얘기해줬다. 어떤 느낌인지 상상이 안 갔다. 일찍 집을 나와 혼자 살던 언니가 유일하게 의지한 사람이 폭력을 행사하고 언니는 그걸 아무렇지 않게 얘기했다. 나는 폭발할 때까지 남자를 밀어부치진 말아야 한다는 콩인지 된장인지 모를 말을 내뱉었다. 언니는 심상한 분위기로 자신의 성격도 그렇지 못해서 결국 사단이 난다고 했다. 나는 그때 '아, 남자를 밀어부치면 안 되겠구나. 폭력적인 놈을 만나면 안 되겠구나, 언니 불쌍해서 어쩌지.'라고 생각했다.

 

 너무 심하게 때려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죽은 듯 매질을 견뎠다는 고모. 아빠의 폭력을 피해 맨발로 도망친 엄마. 열 손가락을 다 채울 정도로 도처에 매맞는 여성들이 있었지만 나는 그 감정을 이해할 수 없었다. 이혼하면 되는거 아냐? 아이 핑계로 왜 사는건데, 경제적으로 자립할 능력이 안 돼서 그러는거 아냐. 왜 그런 남자를 만났대. 도처에 뿌리내린 가정폭력보다 내 시각이 더 폭력적이었다. 엄마에게 그렇게 살지 말고 이혼하라고 했지만 엄마가 그 시기를 견딘 덕분에 화목한 가정까지는 아니어도 여전히 언제든 돌아갈 수 있는 집이 있다. 둘 사이를 가로막는 모순에 맘 한켠이 싸해진다. 가정폭력은 신체적 폭력뿐 아니라 관계와 편견의 폭력이라 다시 새롭게 살겠다고 선을 그을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란걸, 너무 늦게 알아버렸다. 여자 혼자 아이를 키우며 살기에 세상이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것도 이제서야 알게 됐다.

 

 가정폭력 생존자들의 '여성 살해의 현장에서 탈출한 여성들'은- 본 제목보다 정희진 선생의 개인적 의견이 더 나아 리뷰에서는 이 제목으로 책을 지칭한다- 가정폭력 현장에서 살아남은 생존자들의 수기이다. 가정폭력에는 이유가 없다. 그저 그래도 되니까 하는 것 뿐이다. 집 밖이었다면 당장 고소 당하고 형사 입건 할 사건을 집 안에서는 집안일이라며 쉬쉬하고 넘긴다. 가정폭력에 사회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문제해결을 하고 가해자를 구속한다면 어떨까. 구속을 넘어 무조건 감옥에 가야하고 사회적으로 매장당한다면? 아마 엄청난 분노조절장애 배우자도 상대방을 손끝 하나 건드리지 못할 것이다.

 

 타인에게라면 어떻게 저러나 싶을 행동들을 나는 a에게 한다. 했던 말을 다시 되물으면 불같이 짜증을 내고 얘기한대로 하지 않으면 눈을 부라리며 a를 공격한다. a의 유일한 낙은 술 먹는 것이고 자신도 나처럼 화내고 싶지만 그렇게 되면 우리는 같이 살지 못하니까 참는다고 했다. 나는 아빠를 꼭 닮았다. 아빠가 일하고 와서 쉬는 편안한 집, 내키면 가끔 청소 한번씩 하면서 생색내는 집에서 12시가 넘도록 열무김치를 담그는 엄마가 꼴보기 싫어 집에 잘 가지 않는다. 나와 가정폭력 가해자 사이에 어떤 차이가 있을까. 무엇이 내가 그래도 된다는 생각을 갖게 했을까. 그래서 나는 이 책을 읽고 마냥 거리를 두면서 성찰할 수가 없었다. 나 역시 관계를 무기로 다른 누군가에게 폭력을 행사하고 있으니까.

 

 언니를 다시 만난다면 언니와 그 남자를 떼어놓고 싶다. 언니 잘못으로 그놈이 도발하는게 아니고 그놈은 원래 그런 놈이라고  이건 사랑이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그리고 나는 a를 비난하는 대신 나부터 잘해야겠다. 집안일 개미지옥에서 벗어나 유연한 시선으로 타인을 대하고 싶다.

경험은 겪은 것이 아니다. 선택적인 기억이다. 경험은 철저히 정치적인 것이다. 무엇을 잊고, 무엇을 의미화하는가, 내가 겪은 일은 어떤 것인가. 경험은 저절로 기억되지 않는다. 자신의 경험을 인식할 수 있는 시각이 생길 때, 비로소 ‘떠오르고‘ 인지되고 해석된다. 남성 사회에서 여성에게는 자기 경험을 바라볼 수 있는 렌즈가 주어지지 않는다. 남성의 언어가 여성의 삶을 장악하는 사회에서, 여성들은 자기 경험을 믿지 못한다. 자기가 겪은 일을 남 이야기하듯 말한다. 나도 그랬다. 가부장제는 모든 인간을 ‘인간답게‘ 살지 못하게 한다. 가해 남성들과 상당하다보면, 자기가 저지른 일을 남의 얘기인 양 비웃고 ‘동료‘를 비난한다. 어떤 여성들은 자신이 겪은 폭력이 훨씬 심각한데도 ‘덜 맞은‘ 여성들을 보며 놀라고 걱정한다. 경험, 몸, 인식의 분리 속에서 우리는 생각할 능력을 상실했다.

8p

여기 실린 여성들의 글을 유심히 읽으면, 문장과 문장 사이가 떠 있음을 깨닫는 독자가 있을 것이다. 쉽게 말하면, ‘연결이 안 된다‘고 말할 수 있다. 그래서 글이 ‘비논리적‘으로 보인다. 이런 문장은 현실이 믿어지지 않는 데 일조한다. 왜일까. 내 해석은 이렇다. 녹취록처럼 가해 남성의 행동을 상세히 묘사해도 문장들 사이가 연결되지 않고 ‘뭔가 말이 안 된다‘. 그것은 남성들의 행동이 정말 그렇기 때문이다. 아무리 그들을 이해하려고 해도, 도무지 왜 저러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그러나 우리의 고민은 여기서 끝나야 한다. 왜 때리는가? 이런 질문이 바로 폭력이다. 그들을 이해할 필요가 없다. 그들은 때릴 수 있으니 때리는 것뿐이다.thdy do because they can. 단지 그 뿐이다. 대신 우리가 질문해야 할 것은 이것이다. 왜 사회는 여성의 경험을 믿지 않는가? 왜 국가는 이 문제를 사소하게 다루는가? 왜 우리는 언제나 이 문제가 ‘사소하지 않다‘고 외쳐야 하는가?

9p

나를 사로잡고 있던 두려움이 무엇이었는지 알게 되었다. 나에게도 가정성공신화가 있었음을 깨달았다. 아이들에게 상처를 주고 싶지 않았고 이혼을 내 인생의 실패라고 생각했다. 겉으로 보기에 아름다운 나의 유리거울이 깨져서 내 모습이 찌그러져 보이는 것을 견딜 수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나를 끊임없이 괴롭히는 남편이 마치 장애를 앓고 있는 자식처럼 여겨져 차마 버릴 수 없었다는 것도 알았다.

88p

지난 상처는 음식물 쓰레기 같은 것이라고. 묶어두기만 하면 언젠가는 빵 하고 터지는데 터지고 나면 수습하기가 더 힘들다고 말이다. 나 역시 그랬다. 남편의 끊임없는 강박적 요구에 내 마음속은 미움과 두려움이 쌓였는데, 그런 감정들을 표출하지 못하고 억압하고만 있었으니 속에서 그것들이 상하기 시작했다. 얼굴은 웃고 있어도 늘 어두웠고 가슴은 항상 답답했다. 나는 쉼터에서 그것들을 하나씩 열어보았다. 압력을 빼듯이 내 속에 무엇이 있는가를 알고 이해하면서 상처를 치유했다. 차츰 마음이 시원해짐을 느겼다.

89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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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7-19 03: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7-23 21: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아기를 어린이집에 보내놓고 일하고 싶어 안달이 났다. 나는 재생산 노동을 하고 어쩌고 20개월 가까이 아기를 온전히 돌봤는데 좀 쉬면 안 되나 어쩌고 해도 내심 맘이 조급해졌다. 빨리 일을 시작하고 싶었다. 입으로 계속 주장하는 '일' 말고 남들이 알아서 인정해주는 일을 하고 싶었다. 현실적인 잣대대로 살지 않겠다며 날을 세웠는데 그 잣대대로 스스로를 평가했다. 아무도 나를 찾지 않아 일하고 싶다며 떠들길 며칠. 마침 단기 아르바이트 자리가 났다. 당장 하겠다고 했다. 먼저 하던 사람이 취업 최종결과가 안 나와서 대기를 해야하지만 만약에 하라고 하면 할거냐는 추접스러운 제안이었지만 나는 급했다. 네네. 어쨌든 한다니까요.

 

 일주일 넘게 기다리다 그 사람의 취업확정과 동시에 일을 시작했다. 문서와 책 등의 자료를 목록화하는 작업이었다. 신났다. 시간이 돈이 되고 내 쓸모가 됐다. 시답잖은 농담에 활기가 넘쳤고 흰소리 듬뿍 담아내는 점심시간도 즐거웠다. 여느 직장 다니는 사람처럼 같이 먹는 점심이라니. 평소라면 툭툭 받아쳐냈을 말들을 주워삼키며 네네 그렇죠, 그럼요 모드가 됐다. 그러길 고작 하루. 다음날부터 지루해 죽겠는거다. 지금 하는 일은 돈이 된다는 것 말고는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의례적인 말은 의례적이라 질색이고 점심시간은 따분했다.

 

 그제서야 비로소, 이렇게 바닥을 툭툭 치고서야 과연 어떻게 사는게 나다운건지, 어떻게 살고 싶은지 다시 생각하게 됐다.

 

 주위 여성들이 임신 출산으로 생존단절(경력단절) 경험 후 밟는 비슷한 수순의 일들. 그 일 하나라도 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은 저 멀리 달아났다. 보람을 느끼고 어느 정도 돈도 되고 재미있는 일. 그런 일이 있을까. 돈 안 돼도 좋으니까 재미있게 할 수 있는 일은 있을까. 주부란 타이틀을 내걸고 노는걸 한번도 상상해본적이 없다. 남아도는 인력이 돼서 이곳저곳 불려다니고 언제든 불러다 쓸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다. 결국 돈벌이는 돈벌이 자체보다 지금 상황을 벗어나는 수단이었다. 돈을 벌어서 흔한 여행 한번 가고 싶다는 꿈도 꾸지 않았는걸.

 

  단순하고 의미없는 작업이 예정보다 일찍 끝났다. 나는 다시 자유의 몸이 되었다. 어쩌면 내가 했던 일은 잠시 머물렀던 기관의 자료 목록화에 지대한 영향을 줄 수 있는 큰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게는 의미가 없었다. 여전히 근사한 것, 대단한 것, 멋진 것을 막연하게 희망하면서 나에게 의미있는 것도 중요하다고 한다. 욕심이 너무 많아 선택을 못하면서 선택 못한 것들에서 흠을 찾아낸다. 고등학교 때 일기장에 썼던 그 마음에서 어떻게 한뼘도 자라지 않은걸까.

 

 밤이 깊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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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사는 곳은 두 부류의 인간형이 있다. 가치와 이상을 우위에 두고 살지만 생활에선 살짝씩 마이너한 사람들(a)과 고정관념을 온몸으로 재현하지만 관계에서는 편하고 너그러운 사람들(b). 명확하게 구분되는 기준은 아니다. 분류하고 규정하기 좋아하는 성격상 나눠본거지 두 부류에 걸쳐 있는 사람도 있고 왔다 갔다 하는 사람도 있다. 기준 자체가 똑 떨어지는 건 아니다.

 

 아이가 머리카락을 잘랐다. 아이는 갓난아이때부터 머리카락이 잘 안 자랐다. 그동안은 별로 없는 머리카락을 위로 하나, 양쪽으로 하나씩 세개로 섹션을 나눠서 묶어줬다. 꾸미기 좋아하는 이모들 영향이었는데 나도 아이가 이렇게 머리를 묶는게 좀 더 예뻐보여서 계속 고수했다. 그런데 어린이집 적응 기간이라 같이 있으며 아이의 풀린 머리를 다시 묶어줄 때 이상한걸 느꼈다. 아이 머리를 묶어주자 남자 아이가 자기도 묶어주라며 머리카락을 손으로 쥐고 내게 왔다. 남자아이의 머리를 묶는데 어느 순간 놀이방에 있는 아기들의 머리가 보였다. 여자아이들은 길든 짧든 머리를 묶고 있는데 남자아이들은 짧은 머리였다.

 

 왜 성별을 구분짓는데 여자아이들이 수고를 하는걸까. 안 그래도 분홍분홍하고 거추장스러운 레이스 스커트를 입는데 머리까지 묶고 여자란걸 드러내야할까. 간단하고 깔끔한 짧은 머리는 왜 남자들에게만 허용될까. 언젠가 페북에서 본 글도 생각났다. 신생아의 여남 구분을 위해 머리카락도 없는 여자아이의 머리통에 리본을 꽂는게 크리피하는 글. 맞아, 진짜 뭐지? 아침마다 머리를 묶겠다는 실랑이며 연약하고 보호받아야하는 공주 여성상까지 생각이 미치자 아기의 머리카락을 잘라야겠다는 생각이 확고해졌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b그룹은 아이 머리 스타일을 두고 남자같다, 왜 잘랐대, 숱이 더 없어보인다며 뇌에 떠오르는 생각을 바로 말했다. a그룹은 아치와 아이 머리 스타일이 멋지다고 칭찬한다. 그래서 하소연처럼 얘기했다.

 

- 다른 사람들은 이러저러한 말을 해요.

- 그런걸 왜 신경써. 나만 아니면 되지.

 

 통찰을 담고 있는 뉘앙스였지만 말인지 된장인지 모르겠다. 신경 안 쓰면 되는데 왜 그 많은 명절증후군이 생겼으며 사람들이 관계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단 말인가. 그분의 단언이 헛헛해서 웃었는데 긍정의 의미로 느꼈나보다. 계속 얘기하려고 해서 슬쩍 자리를 옮겼다.

 

 아이가  머리카락을 자른 후 보인 반응은 두 그룹의 성향차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이다. 두 사회의 교차점을 찾기는 쉽지 않다. a그룹에서 내가 사는 모습은 너무 당연하데 b그룹에서는 특이한 경우가 된다. b그룹중 한명은 a그룹이 너무 개성이 강해 사람에게 배려하는데 서툴다고 단언을 한다. 대화를 할 때는 가치관이 맞는 사람이, 생활할 때는 고정관념에 충실한 사람이 좋다. 영혼과 세속, 분별할 수 없는 언어들이 튀어나온다.

 

 어쩌면 어디에도 끼지 못하는 청개구리 습성과 여전히 특별하고 싶은 욕망? 같은걸 버리지 못한 내 존재가 두 세계를 구분하는 가장 큰 지표인지도 모르겠다. 신경쓰지말라니, 진짜 그게 말이야 된장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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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 시즌 2 - 우리 아이를 변화시키는 기적의 솔루션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 2
SBS 우리아이가 달라졌어요 제작팀 지음 / 영진.com(영진닷컴)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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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이름을 가명으로 소개하는데 본문에는 다른 이름이 나온다. 편집상 실수인지 뭔가 싶은. 남편 기 살리기 운운에서 학을 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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