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근대사 산책 1권 - 개화기편, 천주교 박해에서 갑신정변까지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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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익현을 어떻게 볼 것인가 하는 문제는 이항로에 대한 평가와 통하기 마련이다. 이항로는 상인들이 가난과 착취에 시달리는 반면 소수의 양반계층이 풍족한 물질생활을 누리는 것은 부당하다고 본 인물이었다. 그는 토지는 경작자에게 주어져야 하며 어떤 종류의 염출도 민간생산의 10퍼센트를 넘어선 안 된다고 했다.
이항로는 그야말로 민중의 대변자였던 셈이다. 이항로를 비롯한 화서학파에 대한 긍정적 평가는 바로 이런 애민정신에 근거하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애민정신은 그가 상위 개념으로 여기는 것의 도구적인 것에 지나지 않았다는 데에 있다. 화서학파의 애민정신은 기존의 강력한 사회신분제를 전제로 한 것이었으며 이들은 사회신분제가 무너지면 세상이 끝나는 걸로 아는 사람들이었다.
당시 서원이 민중에게 어떤 고통을 주고 있었는지 이항로는 과연 몰랐을까? 유초하는 "그는 나중에 그 나름의 근본적인 개혁의 주장에서 실상 몇 걸음 뒤로 물러선 것으로 보인다"며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138~139쪽

"더구나 그가 주장한 개혁은 결국 당시까지의 지배질서와 윤리를 보다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것으로 확립하기 위한 것이었고 그 질서.윤리 자체를 문제의 대상으로 삼은 것이 아니었다. 또한 이항로가 현실개혁에서 가장 근본적인 개혁을 끝까지 주아했다 해도(또 그것이 실현되었다 해도)그것은 도리 실현이라는 궁극목표를 위한 한 단계에 지나지 않았다. 그가 가장 우려한 것은 국가의 존망이 아니라 도학의 존부였던 것이다."-14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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뷰리풀말미잘 2009-07-13 22: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치님 준마니스트.
 
한국 근대사 산책 1권 - 개화기편, 천주교 박해에서 갑신정변까지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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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인박해는 1870년까지 지속되었는데 1866년에서 1868년 사이에 나타난 순교의 가장 큰 특징은 여성 우위였다는 점이다. 이 기간 중 검거된 천주교도 407명 중 남녀 비율은 남자 셋에 여자 하나였지만 배교하지 않고 순교한 수는 78명으로 남녀 비율은 남자 하나에 여자 둘이었다. 이는 여자의 신앙심이 더 깊었다는 증거지만 그 이유에 대해선 다양한 해석이 있다.
1866년에 처형된 베르뇌는 "조선 민중의 성격은 매우 단순하여 사리를 깊이 따지길 싫어한다. 성교의 진리를 가르치면 곧 감당하여 믿음에 들고 어떠한 희생이라도 무릅쓴다. 하지만 진리를 풀이하면 잘못 알아듣는다. 특히 부녀자들과 천민층 남자들이 그러하다."고 했다.
1868년 감옥에 갇힌 학식 많은 여신도 한성임은 "미련한 여인들은 겨우 한 구절의 성서만을 외우고는 바로 세례를 받는다. 그리하여 천당에 갈 줄 알고 기꺼이 죽임을 당한다. 마치 불꽃 속에 뛰어드는 부나비들과 같다."며 우매한 부녀자들의 값싼 신앙 태도를 한탄했다.
이규태는 "이처럼 터무니없이 빈약한 동기와 목적을 가지고서도 그 가혹한 형벌을 이겨내고 웃으면서 죽을 수 있었던 신앙심의 원천은 도대체 무엇이었을까.-96쪽

그것은 한국 여성이 대대로 감수해온 수난의 역사를 모르고는 이해하기 곤란하다"며 다음과 같이 해석했다.
"한국에 천주학이라는 신교가 들어오자 한국 여성들은 오랫동안 막연하게 그려오던 탈출구에 눈을 떴다. 유식하고 무식하고는 문제가 될 수 없었다. 그리하여 그들은 억눌려온 '모럴'에 저항했고 또 그토록 가혹한 고문을 감당해냈으며 사지를 찢기우면서도 웃으며 죽어갈 수 있었다. 즉 교리엔 무식하면서도 신앙심이 깊었던 것은 한국 여성이 당한 사회적 구속에 대한 반발이요 저항이었다. 천주학은 말하자면 그 레지스탕스에 어떤 계기를 만들어주었다고도 볼 수 있다."-96 이어서쪽

-최재우의 효수와 동학 탄압-
역설적이지만 서학은 물론 동학에 대한 이러한 탄압은 조선 조정이 자신들의 죄, 즉 민생을 도탄에 빠트린 현실을 잘 알고 있었다는 걸 시사하는 건 아닐까? 민생을 도탄에서 건져낼 수 없는 무능이, 언제든 민심을 폭발시킬 수 있는 위험요소 제거에만 총력을 기울이게 만드는 결과를 초래한 게 아니었겠느냐는 것이다. 바로 여기서 망국의 씨앗이 싹트로 있었던 건지도 모른다. -9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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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프레소 만들기 - 최고의 바리스타가 제안하는
가도와키 히로유키 지음, 김진경 옮김 / 우듬지 / 2006년 3월
평점 :
품절


  일하는 곳엔 에스프레소 머신이 있다. 평소에 커피를 좋아하진 않았지만 커피 전문점에서 수증기를 피워내고, 휘소리를 내는, 뚝딱 커피 한잔을 만들어내는 기계에 대한 호기심은 있었던지라 반가웠다. 다른 분이 알려준대로 포르타 필터에 갈아낸 원두를 수북히 담아 탬퍼로 강하게 눌러 머신에 장착, 내 생애 첫 에스프레소를 만들어봤다. 맛? 끝내줬다. 누군가 먹지 않는다면 장금이 부럽지 않을 요리솜씨이니 말 다했지. 

 무언가에 꽂혀 달아오름이 얼마나 지속될지 모르겠지만 에스프레소를 만드는 방법에 대해 좀 더 알고 싶어졌다. 같이 일하는 분 중에서 서비스란 이런거구나를 몸소 보여주는 분께서 책을 빌려주셨는데 그 책이 바로 '에스프레소 만들기'이다. 전일본 바리스타 챔피언인 저자의 커피 만들기는 생각보다 쉬웠고, 실용서적이 갖춰야할 디테일한 면에서도 기대치를 만족시켜줬다. 

 책은 두 부분으로 나뉜다. 원두를 골라서 볶고, 갈고, 커피를 내리는 전과정과 저자만의 커피 레시피. 커피를 만드는 과정에서는 원두 갈기의 분쇄기 종류, 매시의 모양, 기구에 담기, 기계의 설정, 추출, 스팀밀크 만들기, 원두의 배합과 볶기에 대해 상세한 설명이 나와 있다. 커피란게 손맛이 발휘될 종목은 아니지만 커피 알갱이의 크기에서 갓 볶은 원두를 어떻게 보관하고 어떤 원두를 섞는지, 템퍼를 누르는 손의 힘은 어느 정도인지에 따라 맛이 달라지는걸 보면 각 과정에서 저자의 개인적인 노하우가 들어있는건 시행착오를 겪게될 예비 바리스타들에게는 유용한 정보가 되리라 생각한다.  

 실용서적은 책만 읽어서는 안 된다. 책의 정보와 실제를 같이 병행해야, 앎이 체화되는 과정을 거쳐야 복합적인 상승체험을 할 수 있다. 그러니까 나 역시 해봤다는거다. 저자가 일러준대로 조심스럽게 커피를 갈아 포르타 필터에 원두를 담은 후 탬퍼로 꾹 누른 후 톡톡 쳐서 가장자리에 남은 커피 가루를 내려주고 다시 평평하게 다시 한번 눌렀다. 에스프레소 머신의 버튼을 눌러 커피를 추출해봤다. 처음엔 신맛이 났고, 쌉싸름한 맛이 도드라지다 설탕을 넣지 않았는데도 달콤한 맛이 입안에 가득 퍼졌다. 마지막엔 아련한 맛이라 일컬어지는 이 모든 풍미를 잠재운 후 나른한 감각을 깨우는 맛이 잠복해있다 도드라졌다. 아아, 신맛만으로 신이 났는데 이건 너무 좋잖아! 쌉싸름한 아이스 아메리카노, 부드러운 까페라떼, 풍성한 스팀밀크와 계피 가루를 뿌린 카푸치노. 차가운 우유와 카라멜 시럽과 좀 더 진하게 내린 커피로 만든 나만의 아이스 카라멜 마끼아또까지.  

 '커피맛이 다 거기서 거기지'는 평생동안 커피믹스를 드시던 아빠가 헤이즐넛을 드신 후 더 이상 하지 않게 된 말이다. 나 역시 먹는데 유난을 떨거 없다란 생각을 지금도 하고 있다. 하지만 이왕 먹을거고, 내가 정말 좋아하는 맛이 뭔지 알고 싶다면 유난떤단 생각은 잠시 접어둬도 된다. 게다가 이 맛들은 또 어떤가. 

 2001, 전일본 바리스타 챔피언을 따게 한 Mon Cheri(프랑스어로 사랑하는 사람이란 뜻). 초콜릿과 핑크색 케잌 모양이 층을 이룸. 만드는 방법? 긴 유리잔에 화이트 초콜릿 소스를 넣는다. 스팀밀크를 붓고 잘 섞는다. 딸기 시럽을 넣고 폼드 밀크가 떠오르면 밑부분을 머들러로 살살 젓는다. 에스프레소 리스트레토를 넣은 후, 코코아 가루를 뿌리고 박하 잎으로 장식한다. 젤라토 콘 까페는 내가 좋아하는 아이스크림에 커피를 넣어 만든거고, 모카치노는 에스프레소에 스팀밀크로 얼룩을 낸 듯한 모양을 보여주고, 칵테일풍의 카페 사게라토, 초콜릿 맛 술인 크렘 드 카카오를 넣은 카페 알렉산데까지. 

 디자인 카푸치노로 만드는 나뭇잎과 하트, 눈사람은 어찌나 해보고싶음을 충동질하는지. 

 나는 커피 주문이 들어올 때 가장 즐겁다. 특히나 에스프레소. 잔을 데운 후 다른때보다 더 힘껏 템퍼로 누른 후 정성껏 추출한 커피엔 크레마가 생긴다. 크레마는 커피가 식는 것을 막아주고 향이 날아가는 것을 방지한다. 에스프레소에 각설탕 하나를 넣어 수저로 휘저은 후 잔을 입가에 갖다대는 손님들의 얼굴을 보면, 얼굴에서 이만하면 괜찮다란 표정이 떠오를 때면 난 서슴없이 뿌듯해져서 몸둘바를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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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5-19 08: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5-19 17: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hnine 2009-05-19 14: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실용서적은 책만 읽어서는 안된다' 음...
저도 그렇게 말할 수 있었으면 좋겠는데 말이지요 ^^

Arch 2009-05-19 17:07   좋아요 0 | URL
우리에겐 드립과 커피믹스, 그 밖에 요상한 차들이 있잖아요. 라고 했는데
hnine님은 에스프레소 머신이 있다면. 흡!
 
성노동 - Sex Worker 여이연이론 14
여성문화이론연구소 성노동연구팀 엮음 / 여성문화이론연구소(여이연) / 2007년 10월
평점 :
절판



 일명 '토킹바'에 다니는 언니가 있다. 토킹바란 외국인을 상대로 대화를 하며 그들이 사주는 술로 돈을 버는 곳을 말한다. 토킹바의 스킨쉽 수위는 개개인마다 다르고, 일명 2차를 나가는 분들도 있다지만 대개의 경우 2차 나가기 싫어서 토킹바에 나간다는게 언니의 평소 지론이었다. 그래서 그런가보다 했다. 정말 2차를 안 나가는지, 언니가 돈없는 동남아시아 사람들보다 더 값어치 없다고 여기는 한국 남자들과 외국인은 얼마나 다른지, 원해서 자는거랑 남자가 비싼술을 샀기 때문에 자는거랑 어떻게 구별이 되는건지, 호텔에서 가끔 얻어먹는다는 점심은 어떤지 궁금했지만 워낙에 새침한 분이라 따로 꼬치꼬치 물어보진 못했다. 언니 말대로 싼티날까봐.

 얼마 전엔 언니랑 치안상태 어쩌고의 얘기를 하다가 HOOKER거리로 화제가 급전환되었는데 말의 내용과 분위기가 상당히 불편했다. 마치 자기 입에 그런 얘기를 올리기라도 하면 품격(그런게 있다면)이 손상될 것 같다란 인상이었다. 옆에 있던 같은 바에 다닌다는 언니가 자신이 어쩌다 HOOKER들을 본적이 있는데 대단히 괴상하게 생긴데다 인간으로서 결격사유가 다분해보인다는 얘기를 거들 즈음에는 웃기려는 수작인지 정말 그렇게 믿어서 말하는건지 판단불가 상태가 되고 말았다. 그제서야 대체 토킹바에서 일하는 것과 매춘을 하는게 뭐가 다르다는건지, 성적인 서비스를 파는건 같은건데 한쪽은 특정화된 성적 기관이란 것과 다른 쪽은 아니란 이유로 구별이 된다는건 어떤 논리인지 구분이 안 됐다. 게다가 왜 성적 서비스를 파는 입장에서 더 집요하게 다른 층위의 사람을 그토록 배척하는지, 그렇다고 달라보이는게 있는건지 궁금해졌다.

 내가 여성주의에 관심을 갖는건 바로 이런 의문에서 출발한다. 뭔가 불편한 느낌, 논리적인 설명까지 바라는건 아니지만 납득 안 가는 상황이 왜 그리 왕왕 출몰하는지에 대한 의문, 나란 사람의 정체성에 관련된 문제, 어쩌면 소위 말하는 여성스럽지 않은 자의식에 대한 몸부림일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너무 몰랐고 여전히 모르고 있으며 앞으로도 치열해지지 않는한 뜬금없이 멍청한 질문만 쏟아낼게 분명하다. 그렇지만 적어도 '왜'에 대한 좀 더 치열한 사람들의 얘기를 듣고 나를 돌이켜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란 생각이 들었다. 혼자 생각하는건 늘 그렇듯이 같은 자리에서 뱅뱅 도는 느낌만 줄 뿐이고, 알려고도 하지 않고서 명백해지기를 바라는건 쉽게 흥분만 일삼아 민폐를 끼치는 것만큼이나 터무니없으니 말이다.

 이 책, 성노동을 읽으면서 평소에 궁금했던 섹슈얼리티의 문제들이 명백하게 해결되진 않았다. 도리어 어느 정도 수준에서 아프지않게 따먹을 수 있는 맛있는 앎이 아니라 직접 생활 가운데서 뒤뚱거리며 생각해야할 문제들이 속속들이 드러나면서 점점 생각의 입지가 좁아져 암담해질 정도였다.

 책을 읽기 전에는 성매매, 성노동에 대해서 그들의 노동자성은 인정해줘야한다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정확하게 기억 안 나는 어느 나라의 합법화로 조직적인 매춘업소의 등장했다는 소식을 접한데다 인신매매의 문제, 낙인은 합법화만으로 해결이 안 된다란데까지 생각이 미치자 옴쭉달싹도 못하고 독 안에 갇힌 기분이 들었다. 노동자성을 인정하는 문제와 가부장적 구조로 인한 성별위계에 대해 고민해야하는 것을 따로 떼어놓고 보지 않았고, 뉴스가 절대적으로 팩트만 전달한다는 믿음에 문제가 있었다란 것을 책을 보고서야 알게 되었다.

 '성노동'은 성노동의 정치화를 통해 그간 성노동을 일컫는 말들의 정치성과 강제와 자발의 이분법을 넘어서는 실천적 쟁점을 도출한다. 또한 섹슈얼리티의 위계와 낙인의 문제- 성별전환인들의 성노동에 대하여 알아보고 비범죄화와 합법화의 진실과 오해에 대해서도 살펴본다. 각국의 성노동 관련법을 비판적으로 검토하며 나아가 성매매특별법에 성노동자들이 저항하는 이유와 앞으로의 쟁점과 방향을 다루고 있다. 책을 통해 그물망처럼 이어지던 생각들의 연결고리는 단단해졌고, 앞으로의 문제시되는 사안에 대한 적절한 해석할 수 있는 힘도 기를 수 있게 되었다.

 우리나라에선 성매매특별법을 계기로 보호라는 미명 아래 매매춘은 불법이라는 여성계의 입장과 성노동 여성의 생존권 충돌로 성노동자 운동이 촉발되었다. 주류 여성계(과연 이런 말이 있다면)가 한무더기로 몰려 공격을 받고, 각계각층의 목소리들이 튀어나와 여성운동이란 것이 어떤 것에 초점을 맞춰야하는지, 성노동자와 일반 여성을 구분지으려는 시도를 하고 있는건 아닌지, 대체 성거래는 무엇인지에 대한 논의까지 정리되지 않았지만 충분히 공감가능한 의견들이 제시되었다. 그런 와중에 성노동자의 권리를 인정하고 논의를 진행하려는 여성문화이론연구소 성노동연구팀에 의해 이 책이 만들어졌고, '상식 밖'이 아니라 실은 몰랐던 일들을 알 수 있는 지점이 마련되었다.

 성노동 운동은 성별위계가 철저한 가부장제 사회에서 편향된 사고에 생생한 균열을 내는 사안이다. 다른 선택이 있었다면 성노동을 했겠냐느니, 쉽게 돈을 벌며 사치를 하려고 성노동을 한다느니, 국가가 집장촌을 관리하지 않으면 성병이 만연된다느니(옮겨다니는 사람들은 누군데?) 성판매의 비범죄화로 성의 상품화와 성산업이 확장된다느니 오해와 편견은 끝이 없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대개의 직장인들이 이곳이 아닌 다른 곳을 꿈꾼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자신의 직업에 그다지 만족하지 않는 것을 볼 때 성노동에 한해서만 선택의 여지가 없다란 의문부호를 떠올려야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한다. 게다가 쉽게 돈을 번다는 언설도 이해가 안 되는게 그동안 여성들이 해왔던 노동, 특히나 가사에 대해선 아무런 금전적인 이익이 없었다. 설마 이 부분에 대해서 가족들을 위하는 것에 돈 운운은 너무 가혹하다란 입장이라면 가사 노동의 다른 형태인 세탁소나 음식점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가사뿐만 아니라 간호사나 서비스직의 여성들이 감당하는 육체적 노동뿐 아니라 감정 노동의 측면은 늘 저평가 받아왔다. 성거래가 어떻게보면 감정노동의 일종이라고 볼 수 있다는 정희진의 말을 놓고 볼 때도 이 일이 쉽지만은 않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꼭 경험해봐야하는 당사자성의 문제뿐 아니라 다른 직업에 대해 쉽다, 어렵다를 나눌 수 있는 기준이 오래 공부를 해서 어렵게 그 일을 시작했느냐의 여부라는 생각은 좀 터무니없다란 입장이다. 쉽게 돈을 벌어서 사치를 하고 싶어하는건 노동의 댓가를 통해 사람들이 추구하는 방향성에 관한 문제이지, 이것이 도덕적으로 지탄받아야하는 문제는 아니라고 본다.

 국가의 관리라 일컬어지는 합법화는 여러 가지면에서 모순을 보이고 있다. 국가에 등록해서 규제를 받는 것은 세금을 내야하고, 지정허가제를 운영하고, 개별 매춘인 등록제의 실시, 건강검진을 필수적인 요건으로 하는 경우가 많다. 국가는 제일 큰 포주라는 말이 아니더라도 국가는 자신에게 이득이 되는 쪽으로 권력을 넓혀갈게 분명하다면 성노동자의 사생활이나 시민권은 보호되지 않을 가능성이 다분하다. 이점은 독일의 합법화 논의를 통해 알 수 있다. 따라서 성판매를 성병의 온상처럼 규제해야한다는 입장은 성노동자의 인권문제뿐만 아니라 잘못된 선입관과 성구매자의 성병 여부에 대해선 아무런 책임을 묻지 않는다는 지점에서 잘못됐다.

 비범죄화를 통해 모든 통제로부터의 자유를 쟁취한 네덜란드의 입장은 괄목할만하지만 시작으로서 의미가 있는 것이지 해결책이나 성노동 운동이 도달해야할 지점으로 보이진 않는다. 내가 앞서 언급했던 대규모 성판매업소의 등장이란 뉴스 등 익숙하지 않은 방법, 사람들의 시야에서 벗어난 일들에서 느끼는 우려는 별반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제대로된 연구없이 관습적이 사고를 토대로 비범죄화를 이룩한 성노동자의 권리를 깎아내려하거나 인신매매를 이유로(자발과 강제의 경계는 분명히 구분해야함에도 불구하고) 다시 합법화나 보호해야한다는 입장이 불거져나오는 것을 보면 말이다. 따라서 비범죄화를 시작으로 성별위계질서의 균열을 일으키고 적극적으로 성노동자의 노동성을 인정하는 운동이 추진되어야 한다.

 앞서 언급했던 언니의 경우, 자신은 HOOKER가 아니므로 깨끗하단 입장이었지만 비로소 난 좀 더 제대로 그녀를 이해할 수 있게 됐다. 성애화된 노동을 파는 입장에서 언니나 성노동자는 별반 다를게 없다. 굳이 다른걸 찾는다면 성기결합을 한다는 '여성으로선 치욕적인(대체 왜?)'낙인과 깨끗한 여성에 대한 판타지만 존재할 뿐이다. 감정노동의 대부분을 여성이 맡고 있고, 좀 더 부드러워질 것을 요구받는 사회에서 사는한 나와 다른 여성들간의 경계, 성노동자와의 경계도 그다지 다를 것 같진 않다. '성노동'은 나와 다른 사람의 경계를 들여다보고, 그 안과 밖에서 사유할 수 있는 힘을 줬다.

 여성주의는 공부하면 할수록 더 갈증이 나고, 더더욱 모르겠는 학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성주의에 대해 알아가고 내 삶과의 접점을 확인하면서 난 좀 더 '나다움'에 다가가고, 좀 더 행복한 선택을 내릴 수 있으리라는 것을 믿는다.


 성노동이나 여남 문제에 관심을 갖는 분들 뿐만 아니라 자신이 너무 도식적으로 사고하는게 아닐까란 생각이 드는 분들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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람혼 2009-04-26 15: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Arch님 글 덕분에 책을 읽어보고 싶어져서 보관함으로 옮겼습니다. "감정노동의 대부분을 여성이 맡고 있고, 좀 더 부드러워질 것을 요구받는 사회에서 사는한 나와 다른 여성들간의 경계, 성노동자와의 경계도 그다지 다를 것 같진 않다. '성노동'은 나와 다른 사람의 경계를 들여다보고, 그 안과 밖에서 사유할 수 있는 힘을 줬다"는 말씀에 더욱 책에 관심이 갑니다.

Arch 2009-10-13 12:56   좋아요 0 | URL
람혼님 반갑습니다. 무척^^
성노동을 인정한다란 입장에서 시작해서 대체 성판매, 성구매가 왜 있는지에 대해 여러가지로 정리를 해야하는데 리뷰라기보다는 페이퍼 성격에 더 가까운 것 같아요. 그래도 저 덕분에 책을 관심있게 봐주셔서(내가 인세 받는 것도 아닌데) 고맙습니다.
 
야옹이가 제일 좋아하는 색깔은? - 0~3세 세계의 걸작 그림책 지크 34
제인 커브레라 지음, 김향금 옮김 / 보림 / 1998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여기 귀엽고 앙증맞은 고양이가 있어요. 이름은 따로 없고, 그냥 야옹이래요. 누군가가 야옹이에게 물어요. 넌 이 색을 좋아하니, 아니면 저 색을 좋아하니. 한참동안 여러가지 색들이 뭉텅이로 눈에 보이지만 야옹이는 다 별로래요. 이렇게 까다로운 야옹이라니. 강아지에게 묻는게 좋겠단 생각은 잠시 참아주세요. 아직 야옹이에게 더 물을게 있거든요. 마지막 장을 펼치면 야옹이가 좋아하는 색이 나오는데, 그때서야 아, 야옹이의 까다로운 안목이 결코 괜한게 아니란 것을 알 수 있을거에요.  

 그 색은 진짜니까요. 

 이 책은 아마 다른 알라디너의 서재에서 보고선 리뷰가 너무 좋아 보관함에 넣어뒀다가 옥찌에게 사줬던 것으로 기억한다. 3살 정도의 아이에게 읽어주면 좋겠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다. 지금은 옥찌가 물고 찢어서 거의 너덜너덜해진 수준이지만 지금 읽어도 여전히 좋으니까. 물감으로 쓱쓱 그린듯이 투박한 그림이 원색으로 펼쳐지면 옥찌랑 나도 정말 야옹이가 좋아하는 색은 뭘지, 여러번 읽어서 어떤색일지 뻔히 알면서도 첫장을 넘길때면 마치 처음 본 듯이 설렌다.  

 아이들은 원색을 좋아한다고 하지만 잘 믿지 않았다. 이렇게 말하니까, 다이어트 감량 선전 같다. '처음엔 저도 잘 믿을 수 없었어요, 그런데 몇달 써보니'로 시작하는. 그런데 정말 좋아한다. 특히 정말 파랗고, 정말 빨간 색들이 쑥쑥 튀어나올때면 옥찌가 손뼉을 치며 당장에라도 색을 삼킬듯이 환호했다. 아이가 좋아하면 나는 점점 말소리를 낮추거나 높이며 정말 야옹이는 무슨 색을 좋아할지 궁금해서 못견디겠단 포즈를 취하는데 옥찌는 이모의 과장이 하나도 어색해지지 않을 정도로 좋아해준다. 내가 이 책을 좋아하는건 동화책을 읽어주는 사람을 즐겁게 하려고 하는 것도 아닌데 같이 흠뻑 빠져들게 만드는 옥찌의 리액션에 있을테고, 리액션이 가능하도록 만든 책의 따뜻하고 포근한 색감과 이야기에 있을 것 같다.  

 아이랑 대화하면서 읽어주는게 제일 좋을 것 같지만 너무 강요하지는 말길... 동화책 읽는 습관 중에 제일 나쁜건 계속 아이에게 질문하고, 대화하기를 강요하는거니까. 그저 동화책 읽는 사람도 즐겁게 읽으면 아이는 금세 알아챈다. 다른걸 하다가도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궁금해서 소리와 색이 펼쳐지는 곳으로 북북 기어오거나 아장아장 걸어올테니까. 아마 눈은 첫장부터 즐거워지고 맘은 저도 모르게 스르르 따뜻해지고 말것이다. 

 사족을 붙이자면,(스포일러일지도 모르겠으나) 모든 동화책에서 천편일률적으로 엄마 아빠를 가정하는건 일반적인 입장이란 것에도 불구하고 어떤 면에선 폭력적이다. 결손 가정이란 말을 좋아하는건 아니지만, 다양한 관계들을 조명한다면 아이들의 시야가 넓어지는 것은 물론 좀 더 깊고 넓게 세상을 바라보지 않을까? 


한핏줄 책 - 물감으로 그린 느낌은 아니지만 강한 색대비로 아이들의 흥미를 끌 수 있다. 물론 주제도 야옹이랑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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