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좋아하는 서재분이 귀농귀촌 3종 세트 책을 권해주셨다. 이 책은 그 중에서 가장 좋았던 책인데 인용한 곳은 ‘살구나무와 이웃들 그리고 신입생’ 부분이다. 표지가 명랑해서 자의식 과도한 귀농형 인간의 회고록은 아닐까 걱정했는데 웬걸, 완전 괜찮은 책이었다. 도시에서도 고만고만 행복했으면서 시골에 가면 아주 많이 행복해질 것처럼 ‘시골을 낭만화’하는 것은 그곳에 사는 사람들을 타자화하는건 아닐까란 생각을 했었다. 이 책은 그 지점을 잘 짚어준 귀농, 귀촌 책이다.


  저자는 자신이 사는 동네의 성실한 기록자이다. 때론 성실함이 지나쳐 적나라하기까지 하지만 시골에서 사무장을 한다면, 시골에서 농사를 지으면서 살 수 있을까란 막연한 질문들을 곰곰이 되씹게 한다. 지리산 닷컴의 이장인 저자가 쓴 이 책은 내가 어렴풋이 꿈꿔온 기획이기도 했다. 벼의 사계를 담고 마을 사람들을 인터뷰하고 꼴리는대로 기록하고 알아가고 묻는 것 말이다. 지난해에는 마쓰모토 하지메를 닮고 싶었는데, 올해는 권산씨의 씩씩함을 닮고 싶어졌다. 몹쓸 변덕 같으니 



‘지정댁 방식’-시멘트 마당 때문에 오래된 살구나무를 베는 것-이 이곳 사람들 방식이고 그녀들로서는 당연한 것이기도 하다. 나는 여전히 이곳 사람이 아니다. 어쩌면 영원히 이곳 주민이 될 수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완전한 이곳 사람이 되는 것은 농약과 화학비료르르 인정하고 나 역시 그렇게 생각하고 행동하게 되는 날은 아닐 것이다. 나와 생각이 다르다고 그녀들이 살아왔던 더 많은 이야기들을 통째로 하나의 잣대로 규정하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

 

 ‘자연이다, 생태다’ 도시에서는 책에서 읽은 글들을 보고, 또는 간혹 여행길에 만나는 돌담과 흙길의 소담함에 마음을 두었지만 막상 시골에서 돌담과 흙마당은 애물단지다. 사는 사람들에게 돌담은 매년 보수해야 하는 귀찮고 낙후한 어쩔 수 없는 담벼락이며, 흙마당은 고추 하나 내어 말리지 못하는 질척거리는 땅에 불과하다. 철이면 철마다 건조시켜야할 작물이 어디 한두 가진가? 도시 사람들은 자연건조 태양초에 유기농이다 뭐다를 더해서 원하지만, 막상 그들이 찾는 자연광 건조를 쉽게 하기 위해서는 시멘트 마당이 적격이다. 시멘트 마당이 없었다면 도시에서 먹는 고추의 구 할은 건조기에서 말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돌담과 자연건조 태양초는 공존하기 힘든 것이 농촌의 현실이다. 지정댁은 ‘보로꾸 담’을 원하고 도시 사람들은 ‘자연건조 태양초’를 원한다.

 

 내가 왜 농약을 하지 않는지 그녀들도 잘 안다. ‘뭔 말인지 알어. 한번 혀봐.’ 이것이 그녀들이 나를 바라보는 기본 시선일 것이다. 나는 그 ‘차이’를 인정하고 완강하게 저항하거나 부정하지 않는다. 어느 정도 머물다보니 농약조차 그녀들 기준으로는 ‘작물들이 짠혀서’ 약을 주고 주사를 처방하는 일인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녀들은 작물들을 사랑해서 화학비료와 농약을 정기적이고 습관적으로 뿌려준다.

 

 그렇게 뿌리고 남은 농약을 이른 새벽에 두어 번 나의 텃밭에 뿌린 사실을 알고 있지만 그것을 무슨 인생철학이 손상된 것처럼 시비 걸 생각은 전혀 없다. 그녀드르 방식으로 나를 도운 것이다. 무엇보다 나의 텃밭은 생계형이 아니다. 분명한 것은 나의 생각을 이야기할 수는 있지만 주장하지는 않겠다는 생각 또한 그녀들의 본심을 염두해 둔 때문이기도 하다는 점이다.

 

 그녀들도 안다. 그래서 간혹 해거름에 나에게 말하는 것이다.

-고추 따갖고 가. 끝물이라 요즘은 약 안 흔께 걱정 말어.

 

나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무농약 텃밭이 아니라 이런 일상의 신뢰와 배려다.


 일상적으로 나와 이웃들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룰이 존재한다. 이곳 아주머니, 엄니, 할머니들은 지리산닷컴 사무실 문턱을 넘어서지 않는다. 용건이 있을 때면 가장 가까운 지정댁이나 운암댁, 대구댁, 대평댁은 각자의 방식으로 밖에서 나를 부르고 대꾸를 기다린다. 이제 창문이나 현관문 두드리는 소리와 박자, 강도만으로 누가 나를 찾는지 알 수 있다. 하지만 그녀들은 절대 지리산닷컴 문턱 경계선을 넘지 않는다. 차 한잔 마시자는 나의 제안은 항상 거절당한다.


 나의 초청을 거절하는 그녀들의 이유는 다양하다. 그리고 불쑥 창문을 두드리고 나의 인기척을 확인하면 밖에서 창문을 열고 감자나 옥수수 접시를 넣어주고 간다. 그녀들에게는 한가로이 앉아 커피를 나누며 방담을 나누는 문화가 없다. 그것은 사치다. 시간낭비며 그 시간에 ‘깨나 털겠다’라는 것이 살아온 이력이 남긴 유전적 문신이다.


 시골은 태생적으로, 구조적으로 도시와 다른 방식의 번잡스러움과 간섭이 많은 곳이다. 말이 나의 입술을 빠져나가기도 전인데 내가 하려 했던 말은 이미 마을 입구에 도착한 경우가 허다하다. 도시는 익명을 보장하지만 이곳은 익명이 존재할 수 없다. 마을에 외지 사람이 등장하면 금세 마을로 소리 없이 전해진다. 이를테면 ‘요즘 젊은 것들은 어른 앞에서 담배를 펴쌓더만’이라는 불특정 다수를 향한 불만이, ‘그 컨테이너 박스 있자녀? 아 그 즐믄 놈이 길 가상에 따악 하니 서서 담배를 펴쌓네’와 같은 구체적 대상을 향한 비난으로 진화한다.


 문제는 이런 상황이 귀찮고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마을과 담을 쌓는 경우이다. 그러면 마을의 그녀들은 친절을 주머니 깊숙한 곳으로 집어넣어버린다. 사생활을 존중하는 방식과 문화가 다른 것이다. 도시에서 온 사람들은 사생활을 침범당했다고 생각하고 이곳의 그녀들은 무시당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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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2012-01-02 22: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봄부터 가을까지는 바쁘시고, 겨울 한 철은 모두들
그야말로 아침부터 저녁까지 놀면서 지내셔요.
겨울에 초대를 하시면 즐거이 오시지요~

시골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저마다 다 다른 좋은 이야기를
마음껏 펼칠 수 있으면 좋겠어요.

Arch 2012-01-03 12:46   좋아요 0 | URL
된장님 반갑습니다. 서재에 한번 들른적 있었는데^^ 아이들이 참 예쁘더라구요.

모두가 자신의 이야기를 할 필요는 없겠지만 간혹 이렇게 날카로운 시선으로 촘촘하게 보듬는 이야기는 좋아요.

nada 2012-01-04 10: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농약을 치네 안 치네, 원주민들과의 실랑이는 어느 귀촌일기에나 나오더라구요.
근본적으로는 나라가 농업을 버렸기 때문일 텐데, 무조건 농민들 탓만 할 수도 없고..
참 어려운 문제예요.

길을 내든 뭘 하든, 어떻게든 나무 서 있는 자리를 피해볼 생각은 안 하고
그저 베면 된다고 생각하는 게 안타까워요.
그 자리를 몇 십 년 지킨 나무의 의사는 묻지도 않고.ㅠㅠㅠ

Arch 2012-01-04 14:32   좋아요 0 | URL
꽃양배추님, 말미에 국밥집 얘기 한 부분이 찡했다는거죠~ 저도 그랬어요.

농약도 유전자변형도 실시간으로 인체실험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농사를 짓는 분들이 문제가 아니라 예쁘고 윤기나고 단 야채나 과일을 사려고 하는 소비자들 문제 같단 생각도 들고. 생산지와 멀리 떨어져있다보니 농약에 대한 걱정도 별로 안 하는 것 같고. 걱정을 하는 맘을 돈벌이로 보고 유기농 마케팅에 열 올리는건 또 싫고. 정말, 그래서 어쩌라고...인 것 같아요.

끝부분에 왜 자기는 농촌에 와서 사람들을 바꾸려했는지 모르겠다며 도시 사람들을 바꾸려고 해보진 않았다는 얘기를 하는데 '미국처럼 미쳐가는 세계'에서 나온 얘기가 생각났어요. 스리랑카에서 쓰나미로 사람들이 피해를 입었을 때 서양 의료인들이 대거 투입되거든요. 물적 지원을 넘어서서 좀 과도할 정도로. 그렇다면 다른 나라 사람들이 911 테러가 일어났을 때 대거 미국으로 건너가 굿을 하거나 민간 치료법을 알려준다면 어땠을까요. 앞엣건 있을 법한 일인데 뒷 상황은 좀 뜬금없게 느껴지잖아요. 그 차이를 세밀하게 기술하고 느끼고 싶은데 잘 안 돼요.

나무 입장은 생각하지 못했어요. 저자의 심경변화나 농촌 적응기가 더 흥미로워서. 살구나무가 있는 마당을 시멘트 바닥으로 만들려고 베어낸거라 태양초 얘기가 나온 것 같은데.

2012-01-05 00: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1-05 12: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고등학교 때까지는 정말 변두리 동네의 개구쟁이였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세상이란 게 말이죠. 재미있는 것 너무 없지 않나요? 뭔가를 하고는 싶은데, 그냥 이대로 시시한 인생으로 끝나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취직한다고 해서 앞날이 보이는 만족스러운 인생이 되는 것도 아니고요. 그래도 그런 거 우선은 보류하고 대학이라도 가볼까 하는 생각을 했죠.”

 그러면서 그는, 이후 대활약하게 되는 호세 대학교와 만났다. 그의 눈에 퍼뜩 들어온 것은 전단으로 무장한 학생이 느닷없이 캠퍼스에서 집회를 시작하는 광경. 거기에서 그는 활기를 느꼈다. 재수 후 입학해서는 ‘노숙동호회’라는 가난뱅이 여행 동아리에 들어갔다. 얼간이들만 모인 것 같은 동아리였다. 후지 산정 합숙에서는 현지 집합, 현지 해산, 훗카이도 추위 견디기 합숙에서는 영햐 33도에서 노숙했다. 그는 그와 병행하여 ‘신문회’라는 동아리에서 신문을 만들기도 했다. 거기에서는 등록금 인상 같은 문제를 진지하게 다루었는데 진지하고 딱딱한 신문을 아무도 읽지 않는 게 현실이었다. 한편 노숙동호회 쪽은 별 볼일 없는 일을 한 셈이지만 인기도 높았고 주목도 많이 받았다.

 “2년 정도는 양쪽 활동을 모두 했지만, 3년째 되면서 운동을 재미있는 감각으로 하면 어떨까 했습니다. 그래서 아예 한술 더 떠서 ‘호세대학교의 궁상스러움을 지키는 모임’을 만들었던 겁니다.”

 그것이 1997년이다. ‘호세대학교의 궁상스러움을 지키는 모임’이란, 전국의 대학에서 진행된 대학의 ‘단정화, 아담화, 깔끔화’에 반대한다는 의도에서 시작되었다. 본래 너무도 궁상스러운 학교였는데 갑자기 깔끔해지면 다니기 거북할 것 같다는 단순하고 분명한 이유 때문이었다. 또한 호세대학교 당국이 대학은 “국가나 기업에 기여하는 인재를 양성해야 한다”고 한 것에도 저항했다. 대학은 취직 예비 학교가 아니다라는 슬로건으로 활동을 시작했다. 마음에 안 드는 것이라면 뭐든제 문제 삼겠다는 태도였다. 처음 한 일은 ‘학생식당 투쟁’

 “학생식당 밥이 양도 너무 적고 맛도 없어서 가격 인상은 도저히 허락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거 물리치러 가자는 식이었죠. 가격 인상은 20엔 정도였지만 모두들 화가 났어요.”

 친구와 세 명이서 전단을 수천 장 만들어 학내에 붙였다. 전단에는 “학생식당 돌입 집회 결행!”이라고 적었다. 겨우 세 명이 한 일인데, 당일 120명 정도의 학생이 모였다.

 “생각지도 못한 대성공이어서 캠퍼스 한가운데에서 집회를 했고요. ‘노숙도 하자!’는 분위기로 모두들 학생식당으로 돌진했죠. ‘비싸다!’라는 말을 외쳤고, 반쯤은 폭도처럼 식기를 훔치거나 하는 등 아주 엉망진창이었어요.(웃음) ‘밥 먹고 도망가자!!’는 구호도 외쳤고요(웃음)”

 힘을 얻은 ‘호세대학교의 궁상스러움을 지키는 모임’은 그 후 학생식당 투쟁을 확대시킨다. 그러나 타깃은 물론 학생식당이 아니었다. 그들은 그 후 ‘찌개 투쟁’이라는 싸움을 시작한다.

 “수업 끝나고 바로 귀가하는 사람이 많았는데요. 대학을 우리의 근거지로 하자는 의미에서 우선 귀가하는 사람들을 모았어요. 그리고 모두들 찌개를 끓입니다(웃음). 해방구를 만든다랄까, 모두들 맘대로 냉장고나 텔레비전이나 난로를 갖고 와서는 캠퍼스 한 구석을 점령해서 집으로 만들어버렸어요(웃음). 거기에서 매일 찌개를 끓이거니 고기를 굽거나 2주 정도 그냥 거기에 묵거나. 수업 끝난 사람들에겐 ‘술 마시러 갑시다.’라고 권하기도 했고(웃음).”

 찌개 투쟁은 학내에서만 끝나지 않았다. 신가이드라인-일본의 군사력 키운다는-이 화제가 되었을 때에는 ‘신가이드라인 분쇄! 방위청 앞 찌개모임’이라고 이름 붙이고, 방위청 앞에서 기동대에 둘러싸이면서 찌개 요리를 해먹었고, 남은 음식을 방위청에 쏟아버리는 투쟁(?)도 벌였다. 또한 가난뱅이 총궐기 집회를 열었고 캠프파이어를 했고 총장실 습격도 했다. 캠퍼스에서 주점도 열었고, 숙주 많이 먹기 대회나 낫또 많이 먹기 대회 같은 것도 개최했다. 오로지 호세대학교의 궁상스러운 냄새를 지키기 위해 매일 분주했다. ‘무엇을 위해?’라는 질문은 일단 내려놓자.

 그러나 대학 측은 이걸 멈추게 하려고 난리가 났다. 단정한 분위기의 대학으로 만들고 싶은데, 구질구질한 학생들이 대학 한 구석을 점거하고, 연일 고타쓰에 찌개 요리를 하고 있는 것이다. 곤란해진 대학은 마쓰모토 씨의 부모에게 “댁의 자녀가 학내에서 고타쓰를 내놓고 술을 마시고 있어서 문제입니다.”라는 멍청한 소리를 한 후 ‘견책 처분’을 냈다. 처분 이유는 캠퍼스에 난로를 내놓고 학내에서 술을 마셨다. 수업을 방해했다, 경거망동(!)했다 등이었다. 그러나 이 처분은 오히려 ‘호세대학교의 궁상스러움을 지키는 모임’을 유명하게 해버렸다.

 그들의 활동은 오픈 캠퍼스에서도 이어졌다. 

 “대학이 기업에 기여하는 인재를 만드는 곳이라고 하는 것에 반발했습니다. 오픈 캠퍼스 같은 것도 고등학생들 모아서 거짓말만 하는거 아닌가요. 그런 걸 방해했습니다. 대학 팸플릿에 우리 학교 취직률이 이렇게나 높다는 말 같은 거 씌어 있잖아요. 그래서 우린 가짜 팸플릿을 만들고 ‘취직할 수 없다.’는 말을 잔뜩 썼어요. (웃음) 또 오픈 캠퍼스 날, 양복을 입고 직원인 척 책상 앞에 있으면 착각한 부모가 자식을 데리고 와요(웃음). 그럼 그 사람들에게 ‘우리 대학은 최근 취직률이 낮아지고 있어요.’라는 말을 하곤 했죠. 또 역 앞에 가서 ‘오늘 오픈 캠퍼스는 취소되었습니다.’라는 입간판을 세워 모두 돌아가게 한다거나. 아무튼 큰 문제가 되었었죠(웃음).”

 처음 얼마간은 교수 중에서도 재미있어 하는 사람이 있었지만, 이게 계속되니 대학 측에서도 점점 진짜로 화를 내기 시작했다.

 “취직 설명회를 방해했고, 또 대학의 상징 같은 총장의 동상을 부숴버린다거나 했으니(웃음).”

 그러나 나중에 알고 보니 ‘호세대학교의 궁상스러움을 지키는 모임’은 전국 13개 대학으로 불똥이 튀었다. 각 대학에서 일어난 빈곤 대학화 운동은 ‘전일본빈곤학생총연합’, 줄여서 ‘전빈련’이라 불렸고 매스컴 등에서도 크게 다루어졌다.

 결국 마쓰모토 씨는 대학을 7년 다녔고 2001년 졸업했다. 그러나 다시 통신교육부에 재입학했다. 그러나 이번엔 경찰에 체포되어 퇴학당했다.

 “체포된 이유는 대학 총장을 페인트 범벅으로 만든 것이었어요(웃음). 어느 날 호세대학교에서 심포지엄이 있었는데, 호세대학교 총장이나 와세다대학교 총장, 오릭스의 미야우치 회장 같은 훌륭한 분들만 모였어요. 학생을 더욱더 기업을 위한 개가 되도록 교육시키자는 프로그램을 만들려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거기에 20명 정도가 난입했고요, 풍선에 페인트를 채워서 터뜨렸습니다(웃음). 훌륭한 분들 모두가 우왕좌왕하시고, 거기에 또 소화기를 뿌려댔더니 바로 체포되더군요(웃음).”

 그리고 마쓰모토 씨는 4개월 반을 유치장과 구치소에서 보냈다. 첫 체포의 느낌은......

 “정말 재미있었어요! 7명이 한 방을 썼는데 야쿠자나 외국인, 좀도둑, 살인죄, 사기죄로 온 사람이 섞여 있었죠. 밥은 맛있었고, 에어컨이 있고, ‘몸 상태가 안 좋다.’고 하면 바로 의사가 오고, 그런 행복한 생활은 없었죠!”

 그는 전혀 뉘우치지 않는 듯했다. 체포되기 전후로 마쓰모토 씨는 ‘가난뱅이대반란집단’을 만들었다. 2002년 5월에는 <가난뱅이 신문> 창간호를 발행했다. 그러면서 활동의 거점은 대학에서 거리로 옮겼다.

 “대학 때는 대학 안에서 재밌을 것을 해보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정작 대학을 나오고 보니 거리의 인간이 되더군요. 그래서 이젠 거리를 재밌게 만들고 싶어졌어요. 게다가 전에는 대학도 하나의 커뮤니티로서 존재했지만, 지금은 그냥 수업받고 취직하기 위해 이력 만드는 곳으로 변했죠. 그럼 직장은 어떤가 하면, 아무도 직장을 자기 커뮤니티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럼 거리나 동네 같은 장소에서 재밌는 공간을 만드는 건 어떨까 했죠.”

 처음 시작한 것은 역시, 거리에서 술 마시기였다. 신주쿠 역 앞에서 술자리를 시작하니 점점 사람이 모였다. 섣달 그믐날(12월 31일)에 했더니 굉장한 일이 되었다.

 “카운트다운 같은 것의 의미를 잘 모르는 경향이 있지 않습니까. 거기에 합세해서 사람들 분위기를 부채질했어요(웃음). 먼저 신주쿠역 앞에서 불꽃을 나눠주거나 하면 모두가 폭도가 되는 거예요(웃음). 발연통 같은 걸 그 근처 녀석들에게 주면 정말로 태우고요(웃음). 엉망진창으로 혼란스러워진 와중에 경찰도 로켓 불꽃을 맞기도 했죠. 그래서 정말 희한하게 분위기가 고조되었고, 그대로 ‘모두 야마노테선 타자!’고 하며 전철에 올라타서는 차량 대부분을 점거해서 잔치르르 벌였어요. 그리고 각 역마다 사람이 타지 않습니까. 그럼 새로 승차한 사람에게 술을 권하거나 했죠(웃음).”

 2003년 크리스마스에는 롯폰기힐즈에서 ‘크리스마스 분쇄 집회’를 열었다.

 “거리에 나오면 뭘 해도 돈이 드는 세상 아닌가요. 직장에서는 바가지만 쓰고, 노는 것조차 돈을 뜯기는 셈이고요. 공원 벤치도 사라지고, 쉬려고 해도 스타벅스 같은 곳에서 돈을 받아 챙기는 시스템이 되었잖아요. 그리고 그런 상업주의에 관련된 것이 크리스마스잖아요. 그래서 그 바가지주의의 상징 같은 롯폰기힐즈에 쳐들어갔던 거죠. 모두들 도테라를 입고는 냄비라든지 야채 같은 것들을 이것저것 가지고 롯폰기힐즈의 세련된 한 곳에 밥상을 차리고, ‘산타를 죽여라.’ 같은 현수막을 내걸었죠(웃음).”

 그런데 딱 그러는 순간에 경찰이 들이닥쳐 그들을 해산시켜버렸다. “롯폰기힐즈를 불바다로”라는 전단을 수천 장 배포했더니 경찰이 300명이나 동원되었던 거다. 단지 찌개 요리 때문에.

 지금 많은 젊은이들은 아주 가난하고, 또 그래서 즐겁게 살아가는 사람도 아주 적다. 어떻게 하면 마쓰모토 씨처럼 스트레스 없이 살 수 있는 것일까.

 “역시 가난뱅이 친구를 만드는 것 아닐까요. 친구가 있으면 어떻게든 되니까요. 아는 사람이 있어도 모두가 직장 상사이거나 고용 관계에 있거나 한데요, 그러면 평범하게 인간관계를 구축하는 건 어렵지 않나요. 그러나 가게를 만들거나 해서 외로운 사람들끼리 연결되면 재밌잖아요. 자기 하는 일을 푸념하러 오는 사람도 많을 테니까요. 저는 입만 열었다 하면 그런 사람들에게 ‘포기하지 않는 게 좋다’는 말을 해요. ‘가게, 여는 게 좋겠어요.’ 같은 말. (자기한테) 맞기도 하고 안 맞기도 하겠지만 더 자유로운 삶의 방식을 택하는 쪽이 좋다는 말이죠. 프리터 일이 괴롭거나 과로사할 것 같으면 바로 그만둬버리는게 나아요. 그냥 단번에 그만두어야 한다는 거죠. 어떻게든 됩니다. 저는 취직한 적도 없고 할 생각도 전혀 없지만, 뭔가 하고 싶은 일 같은 걸 하면, 어떻게든 될 거니까요. 일이 잘 안 풀려도 죽지는 않아요. 세상의 이상한 굴레를 먼저 벗어버려야 해요. 뭔가 진지하게 살아야만 한다고들 하지만, 그런 거 말이죠, 전부 환상이에요. 자기 집을 갖고 있어야만 한다든가, 차를 갖고 있어야 한다는 말들. 그런데 그런거 진짜 필요한가요.”

 "이젠 폭발해야만 해요. 이젠 어찌되든 간에 세상을 뒤죽박죽으로 만드는 편이 나아요. 세상이 맘에 들지 않으니까 이건 정말 즐거운 거예요. 말하는 거 안 듣겠다면서, 태도 바꾸고 정색하며 선언하면 좋죠. 아무것도 무섭지 않게 돼요. 그래서 동료를 만드는 게 좋은 거예요. 우선 무엇이라도 드러내세요. 이 부근에 사는 사람이 있다면 찾아와주세요. 고엔지로. 그러면 우선 동료가 1000명 정도 생기는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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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니 2011-11-01 10: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흐,재미있겠네요,이 책들.

Arch 2011-11-01 10:11   좋아요 0 | URL
저는 가난뱅이의 역습보다 프레카리아트에서 마쓰모토씨에 대해 나온 내용이 더 좋았어요. 아직 가난뱅이 난장쇼는 읽지 못했지만. 나는 내가 쫄지 않고 막 해대는 사람이었음 좋겠어요.
 

 

 

 

 

 

 

 

   기획사에 의해 프로그래밍되어 연예 시장에 출시된 아이돌스타들은 태생적으로 기획 상품 이미지를 안고 갈 수밖에 없으며, 그렇기 때문에 출중한 기량을 갖고 있더라도 저평가되기 십상이다. 전성기를 마감한 뒤 홀로서기를 위해 눈물겹게 노력해도 그들을 폄하하는 시선은 쉽게 사그라지지 않는다. 아이돌스타의 젊음을 예찬하다가도 조금만 인기가 시들하다 싶으면 바로 등을 돌린 채 연예계의 숨은 장인들을 찾아가는 예능 PD들과 팬들의 행보는 청년들을 따돌린 채 기성세대의 아성을 쌓아나가는 사회의 모습과 흡사하다. 젊은 우상들을 연예계 혹은 사회의 변방으로 내모는 장본인은 청춘 예찬과 과잉보호를 일삼으며 젊은이들을 기획 상품으로 길들여놓은 바로 그 어른들이다. 방송국 안에서도 밖에서도 우리 시대는 어린 세대의 나약함과 불완전함을 용인할 만큼 너그럽지 않다.

 여성 버라이어티 쇼. 기획 단계에서부터 습관적으로 끼어드는 매력 측정과 커플 강박증을 생각해보자. 공중파의 여자 버라이어티에 심판 역할의 남자 MC를 갖다 붙이는 관행은 놀랍지도 않다. ..‘골미다’는 모든 미션의 포상을 맞선으로 설정해 각개 경쟁을 부추겼는데, 어떤 남성 버라이어티에도 없었던 이러한 발상은 여성의 애인 없음을 공공연히 결핍 상태로 규정한다는 면에서 성차별적이다.
 여걸들이 싸워야 할 대상은 경쟁 시스템만이 아니다. 여성 예능인 집단을 불완전하고 깨지기 쉬운 것으로 여기는 편견도 그녀들의 입지를 위협한다. 물론 여성 예능인들에게도 책임이 없지 않다. 편의주의적 출연, 뜨고 나면 어려운 미션을 기피하는 안일주의, 자기계발과 성취에 이바지하지 못하는 과제 설정, 자극적인 토크 경쟁도 문제다. 
 아줌마들은 뭉치고 아가씨들은 대결하는 여걸 네트워크의 양상은 여전히 남성 중심으로 돌아가는 예능의 현실을 말해준다. 결혼과 출산으로 활동을 접었던 40대들은 조직력으로 지분을 넓혀야 하고, 경험과 역량이 부족한 20, 30대는 젊음과 매력을 내세워 살아남아야 한다. 예능이 골드미스, 영웅호걸 따위의 미명으로 아가씨들의 대결을 부추기는 현실은 안타깝고, 여걸들의 우정이 젊음과 아름다움을 포기한 뒤에야 실현된다는 사실은 서글프다. 양희은, 박미선, 송은이 캐스팅으로 여성들의 우정을 기분 좋게 묘사했던 여행 다큐 <행복한 수다 좋은 친구>와 같은 프로그램을 젊은 여걸들은 정녕 만날 수 없는가.

 예능에서 톱스타들이 존재감을 드러내는 방식은 예능활동으로 얼굴을 알려야 하는 직업 예능인이나 조연급 연예인들의 방식과 정반대다. 본업에서의 성취를 기반으로 톱스타가 된 이들에게 예능은 필수가 아니라 이미지메이킹을 위한 옵션이다. TV는 자기 작품을 홍보함과 동시에 소탈하고도 품위 있는 이미지를 대중에게 광범위하게 환기시킬 수 있는 수단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방송 노출을 최소화해 신비감을 극대화한 뒤 인기 프로그램이나 권위가 검증된 코너를 골라 출연함으로써 VIP로 대접받게 된다. 부재를 통해 역설적으로 존재감을 증폭시키는 행보는 공급을 제한함으로써 고객의 수요와 충성도를 끌어올리는 디마케팅의 전형이기도 하다.

 얼핏 보면 <우결>은 앞서나가는 연애담 같다. ‘결혼했어요’라는 과장법적 네이밍은 ‘살아보고 결혼하자’식의 진보론과 상통한다. 그러나 완벽한 연애를 향한 의욕은 진정성과 로맨티시즘에 대한 집착을 초래하며 <우결>을 보수적 판타지로 퇴행시킨다. 소녀시대 태연과 가상 부부였던 정형돈의 연인 공개에 대한 <우결> 팬들의 반발은 리얼을 가장한 드라마의 아킬레스건을 드러낸 사건이었다. .. 인위적 매칭의 부작용인 두 인격체의 충돌이 증발된 채 연인들의 소꿉놀이로 흘러가고 있다. .. 짖궂은 네티즌들이 인터넷의 <우결>관련 기사에 다는 “섹스하는 장면이 없다(그래서 가짜다)”는 댓글은 <우결>의 한계를 시사한다. 부부를 자처하는 닭살 커플들이 실제 연인이 아니라는 이유로 진한 스킨십을 피하는 순간, <우결>은 착한 어른아이들의 순결 예찬이 되고 만다.

 중견 배우 윤미라는 한 인터뷰에서 천박한 배역을 맡게 되면 실감나는 연기를 위해 실제 모델들을 면밀히 관찰하지만 그 생활에 무작정 뛰어들지는 않는다고 했다. “배우는 무슨 역할을 맡든지 품위가 있어야 하는데, 실제로 천한 생활을 하면 사람 자체가 천해지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수많은 채널과 기획사를 통해 프로그램과 방송 인력이 과잉 공급되면서, 소수의 고품격 프로그램과 톱스탈르 제외한 예능 제작자와 연예인들은 소비자의 시선을 붙잡기 위해 충격요법을 앞 다퉈 구사했다. 하지만 아무리 예능이 싼티와 자폭으로 진입장벽을 낮춰도 변하지 않는 사실이 있다. 소비자가 원하는 건 ‘세일’이지 ‘떨이’가 아니라는 것이다. 기획의 성실성과 최소한의 자존심마저 결여된 자기 비하는 상품의 신뢰성을 떨어뜨리는 하자 요인일 뿐이다.


  연예인이 무슨 공인이냐. 방송 자체가 국민의 세금과 간접지출(광고료)로 운영되는 공적 매체이고 연예인들의 활동 범위가 전적으로 시청자 여론에 따라 결정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그들은 사실상 공인으로 취급될 뿐 아니라 정.재계 지도자들보다 훨씬 엄격한 도덕성을 요구받는다고 할 수 있다.

 <한국인 코드>의 저자 강준만은 한국형 평등주의의 이중성을 “자신과 대등한 타인에게는 엄격하되 직접 대항할 수 없을 만큼 강력한 권위에는 순종하거나 침묵하는 형태”를 설명했다. 유행의 창조자이며 고소득자인 연예인들이 공적 영역에서 대중과의 교감을 추구하며 유행을 창조하는 TV 예능 프로그램은 ‘대등한 타인’과 ‘강력한 권위’의 중간 지점에 위치한다. 그렇기에 시청자와 여론의 이름으로 예능 프로그램과 예능은으르 비판하는 행위는 방송이라는 공적 영역에 대한 실력 행사로 귀결됨으로써 대중의 정의감을 충족시키는 수단이 된다.

 아마추어의 열정과 프로의 장인정신에 대한 열광이 진실한 인간관계에 대한 향수와 결합하면서, 근래의 서바이벌 쇼에는 하나의 뚜렷한 흐름이 보이기 시작했다. 한국형 오디션의 개성이라 해도 좋을 그 흐름은 나를 알아주는 참스승에 대한 그리움이다.


오늘날의 정보 쇼들이 예전보다 훨씬 실용적인 생활밀착형 내용을 다루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인포테인먼트 예능이 세상을 탐험하고 사회, 문화적 가치를 일깨웠던 진취성과 거시적 안목을 유보한 채 현대인의 불안과 자괴감이라는 네거티브 요소에 기대어 전문가 PR프로그램으로 기우는 것은 유감이다.

 시골 버라이어티. 삭막한 도시인과 푸근한 촌사람의 교류도 단골 플롯이다. 스타들과 현지 주민들 사이에는 젊은이들의 재롱과 어른들의 무조건적인 호나대라는 일정한 정서적 교환이 발생한다. 대학 입시와 취업 준비 양쪽의 부담감에서 해방된 1980, 90년대 대학생들의 나들이 같은 시골 체험은 농경사회의 기억, 치기에 가까운 청춘의 형기, 조건 없이 친밀한 관계에 대한 향수를 자극한다.
 농어촌이 자연과 낭만에 대한 도시인의 판타지를 충족시키는 수단으로 소모되는 현상과, 방송국 스튜디오에서 해도 무방했을 인위적 설정을 시골에서까지 고집하는 관성이 그것이다. 지금까지의 국가 정책이 도시인의 편의를 위해 농어촌을 희생시켜온 것처럼, 버라이어티 제작자와 시청자들도 농어촌을 언제든지 왔다 가면 그만인 일회용 관광지로 소모해온 것은 아닌지 반성할 때다.

 빈곤을 개인의 문제로 간주하는 무한경쟁 성공론의 확산도 방송 소재로서 가난의 소구력을 저하시키는 요인이 됐다. (지붕 뚫고 하이킥의 세경 자매의 궁핍함을 청승으로 받아들여 불쾌감을 표출한 네티즌들)


<등 토닥여주는 강호동과 서바이벌의 눈물>

 이유는 저마다 다르지만 울음의 기능은 똑같다. 눈물 흘림을 통해 그들은 자신이 따뜻한 마음을 가진 인간임을 확인한다. 심리적 상처와 회한을 눈물에 씻어냄으로써 패자는 실패의 상황을 받아들이고, 승자는 계속되는 경쟁의 법칙에 자신을 다시금 순응시킨다. 눈물로 정화된 자들은 더 이상 경쟁의 법칙에 저항하지 않는다. 눈물의 씻김굿을 통해 그들은 서바이어벌 전쟁터의 모범적인 전사로 살아갈 힘을 얻는다.
 예능 신파의 울음은-비록 창피하고 유치한 퇴행일지라도- 마음의 부정적인 감정을 안전하게 배설하는 행위다. 사람의 마음속에 질투, 분노, 자괴감 등의 악감정이 쌓일 때 그것을 해소하는 방법은 두 가지다. 그런 상황을 막지 못한 자신을 탓하거나, 자신을 그렇게 만든 타인과 바깥세상을 공격하거나, 울음은 두말할 것 없이 전자에 속하는 행위로서, 비극으르 막지 못한 자신을 스스로 단죄하고 징벌한다는 점에서 대단히 현실 순응적인 반응이라고 할 수 있다.
 현실이 사람을 힘들게 할수록 마음속의 응어리는 커진다. 속에 쌓인 것이 많을수록 감정의 배설 행위는 빈번하고 격렬해지기 마련이다. 그러므로 요즘 감동과 휴머니즘을 핑계 삼아 거세지고 있는 예능 신파의 물결은, 거꾸로 보면 현대인의 정신건강과 자존감이 심각하게 위협받고 있음을 증언하는 징후가 아닐까?


 예능을 통해 세상을 보는 시선, 흥미를 유발하는 소제목, 분야를 망라하는 다양한 예능에 대한 접근은 이 책의 장점이지만  '좀 더 깊은 내용을 보고 싶은' 욕망을 충족할 수 없다는 점과 단순한 결론은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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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10.asiae.co.kr/Articles/new_view.htm?sec=voice1&a_id=2011092206371473731  

 시작은 이 기사였다. '안테나 뮤직의 라디오 스타'에서부터 글을 잘 써서 눈여겨본 김희주씨의 '우리에겐 '88만원 세대'를 거부할 권리가 있다.'란 글. 
 88만원 세대론은 늘 있어왔지만 정말 그들, 혹은 내가 짱돌을 들고 맞서 싸우면 문제는 해결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최근 방영하고 있는 <하이킥>에서 백진희가 연기하는 88만원 세대가 지금의 20대를 보여준다면 희주씨 말처럼 '보스를 지켜라'의 은설은 20대가 나아가야할 방향을 낭만적이지만 적절하게 설명하고 있다.

 그녀(은설)가 잃지 않았던 건 '무엇'을 위해 고군분투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 지금껏 자신을 지탱해 온 삶의 자세를 지키고자 하는 마음이었다. 예컨대 돈과 권력 앞에서 비굴해지지 않는 것, 자신의 마음에 솔직한 것 말이다.

 대학까지 나왔으면서 직장을 잡지 못하고 그렇다고 뭔가 하지도 않으면서 불안을 검은 거미처럼 키워갈 때가 있었다. 그때는 정말 '안정된 직장인'이 되고 싶었다. 안정되지 않은 비정규직이 되어 이곳의 돌아가는 사정을 보고 있자니 답답할 때가 한두번이 아니지만 내가 이곳을 뛰쳐나가 할 수 있는게 없다는 것을 나는 누구보다 잘 안다. 그래서 김경의 시도가 아찔하지만 부럽다.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107042022395&code=990000&s_code=ao059 


 

 

  

그리고 그건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내 자신의 이야기였다. 주택 융자를 갚을 때까지, 혹은 그 집을 팔 수 있을 때까지만 버티자고 스스로 다짐하면서 무언가 꼭 필요하지도 않은 물건들을 열심히 사들이는 나, 그리고 본질적으로 남에게 소비를 권장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매체에서 월급을 받기 때문에 그 시스템이 안겨다 주는 어떤 치욕도 참아왔던 나의 이야기. 자신이 살기 위해 남들을 밀어내고, 끊임없이 무언가를 사고 팔기 위해 발버둥쳐야 하는 것이 현대인의 운명임을, ‘마치 거대한 기계에 휘어잡’힌 개인들이 ‘자기 삶의 주인이 아’닌 채 살아가야 하는 시대의 결과물이라는 사실을 담담히 그리는 조지 오웰의 이 소설을 읽고 나는 문득 깨달았다.

머지 않아 곧 내가 회사를 그만둘 거라는 사실을. 그래도 괜찮다는 사실을. 소설의 주인공은 그러한 자각에도 불구하고 여지없이 현실의 중력으로 다시 끌려 들어가야 했지만 나는 그럴 필요가 없다. 무엇보다 나에겐 우유값이나 학원비를 걱정하게 하는 아내와 아이들이 없으니까. 천만다행이다.

아마도 다음 번 글은 ‘하퍼스 바자’의 김경이 아니라 독립적으로 움직이는 프리랜서 라이터 김경으로서 쓰게 될 거라고 믿는다. ‘군중이 개인을 집어삼킬 수 있다’는 조지 오웰의 우려에 따라, 패션이라는 괴물에게 사로잡힌 군중과 억압적인 시스템에 나름대로 발랄하게 대항하기 위해서 글을 쓰는 명랑한 예비 소설가로서 말이다.


 구로사와 키요시 감독은 '밝은 미래' 감독 노트에서 이런 말을 했다.
 적어도 그들이 자신도 모르게 깔린 철로의 끝에 전세계의 미래가 있다고 착각하지 않기를 바란다, 고. 

 무라카미 류도 비슷한 말을 했다. 그들에게 복수하기 위해선 재미있어야 한다고, 내가 재미있게 살아야 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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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da 2011-09-29 21: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히야, 영원한 차도녀일 것만 같던 김경 씨도 마흔이 되니 전원주택에서 정원을 가꾸고, 흙집 지을 꿈을 꾸는군요.
브래지어와 하이힐에 대한 글을 쓰는 그녀보다, 다육식물 받침대를 손수 만들었다는 그녀가 훨씬 더 좋네요.
(지금 경향신문 링크 들어가서 지난 글들 몇 개 읽었어요.)
이 분, 애인 제대로 만나셨나 봐요. 역시 내 인생을 내가 못 바꾸면, 바꿔줄 사람이라도 만나야 한다는 진리.ㅎㅎ
에휴. 저도 흙집 짓는 게 일생일대의 꿈인데...



Arch 2011-09-30 10:02   좋아요 0 | URL
예전 김경 글에서는 멋부리는게 보였는데 지금은 부러 그러지 않아도 멋진 것 같아요.
맞아요. 그냥 스르르 뭔가 변하는 것 같아요. 나도 그래야할텐데~
저는 흙집 만들기 수강 들으려고 막 알아보고 그랬는데 그럼 시골로 가야하고, 농사를 지어야하고, 이런게 나랑 맞을까 싶어서, 사실은 게으름 때문에 무한보류중이에요.
 

http://www.ildaro.com/sub_read.html?uid=5826§ion=sc42§ion2=  

나도 팬할래요.  

버틀러: 몸, 주체, 성별, 성적 취향, 인권 등등이 인식을 가능하게 해주는 틀에 의해 구성된다. 

 인식 가능한 틀에 들어맞는 존재들은 인정받지만 그렇지 못한 존재들은 인권을 박탈 당하고 살아있다는 것조차 부인당한다. 인식 가능성의 매트릭스가 '몸'이라는 인식되는 것들을 생산한다는 위의 논의가 실제 아픈 몸과 어떻게 연결될까. 내 몸의 아픔은 내 몸을 이해할만한 인식론적 틀이 있느냐의 문제로 볼 수 있다.

http://www.ildaro.com/sub_read.html?uid=5447§ion=sc42 이것도 좋아요. 명박 그림은 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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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큐리 2011-09-24 00: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버틀러를 보면 어지럼증이 있는 저같은 경우... '섹스화된 몸'을 조금씩 들추고 있는데...남자라는 근원적(?) 한계가 페미니즘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닌가하는 의문을 달고 살지요..^^;

Arch 2011-09-24 10:17   좋아요 0 | URL
저도 어려운 책을 읽을 때면 어지러운데.^^
노동자성에 대한 얘기를 하려고 했는데 정리가 잘 안 되네요.

꼭 당사자여만 느끼는건 아닌 것 같아요. 당사자라고 해서 제대로 된 말을 할 수 있는게 아닌 것처럼. 머큐리님이 여자가 될 수는 없지만 버틀러가 말한 것처럼 여러 층위의 사안들을 접한다면 그녀가 무슨 말을 하는지 짐작할 수 있지 않을까요. 꼭 내가 철거민이 되고 정리해고된 노동자가 되지 않더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