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고맙다
전승환 지음 / 허밍버드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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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성비를 따져서 책을 고른다는 친구가 있다.

그 친구와 같은 책 고르는 기준을 가진 나라면 절대로 구입하지 않을 책.

 사진이 많고 활자가 적어서 읽는 재미가 떨어지는 이런 종류의 책을 잘 구입하지 않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선택한 것은 그만큼 지금 내가 많이 지쳐있기 때문이겠지.

 언제나 나는 자신만만한 얼굴로 나는 괜찮아라고 말하고 다닌다. 그 뒤에는 지쳐 혼자 쓰러져 회복을 기다릴지언정 절대로 사람들 앞에서 내색을 하지 않아야 한다고 믿고 살았다. 한 번이라도 힘들다 귀찮다 피곤하다 하기 싫다는 말이 나오면 그대로 모든 것을 던져버리고 도망칠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것이 내가 살아가는 삶의 방식이었다.

그런 내 성향은 완벽해야 한다는 생각과 결합되었을 때 더욱 무시무시한 결과물을 나타내기도 한다.

주말 내내 동굴에서 혼자 낑낑거리거나 가위가 눌린 채 뻗어있는 한이 있더라고 주어진 일은 반드시 해 냈으니까.

 그런데 문득 무엇을 위해서 나는 이렇게까지 하는 것일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기만족? 타인의 인정? 그것도 아니면 그런 행위들이 나에게 금전적인 보상이나 내 이름을 드높이는 역할이라도 한다는 근거 없는 믿음?

 그저 나는 내가 세운 틀에 맞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있었던 것뿐이었다.

그 누구도 나에게 그렇게 하라고 말하지 않았는데... 나조차도 그렇게 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포기하지 못하고 홀로 낑낑거리고 있는 내 모습을 보면서 참... 불쌍하고 안타깝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 나에게 선물을 한 책이 활자가 많고 정보가 많거나 내용이 풍부한 책이 아닌, 생각할 여지를 많이 주는 그런 책이 아닌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열심히 달리다가 걷고 싶은 순간이 생기기도 하고 때로는 그 자리에 주저앉아 쉬어가는 것이 인생이니까.

  고맙다고 말하자. 선물을 하지만 말고 나에게도 선물을 하자. 꽃다발도 안겨주고 잘했다고 칭찬을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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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피크닉
온다 리쿠 지음, 권남희 옮김 / 북폴리오 / 200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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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모두 함께 밤에 걷는다. 단지 그것뿐인데 말이야.

어째서 그것뿐인 것이, 이렇게 특별한 걸까.

 밤새 80킬로를 걷는 ‘야간보행제’ 북고의 학생들은 일 년에 한번 있는 그 행사를 시작하려 하고 있다. 그 속에는 이복남매인 것을 숨기고 있는 고다 다카코와 니시와키 도오루가 있다.

 서로를 무시하면서도 그 누구보다도 강하게 서로를 의식하고 있는 두 사람.

이 두 사람의 입장에서 온다 리쿠는 야간보행제와 그들 주변의 친구들과의 사연, 그리고 청춘에 대해 풀어내고 있다.

 고다 다카토는 이 ‘야간보행제’ 중에 자신과 작은 내기를 한다. 그에게 말을 걸어, 대답을 듣는 것. 이 작은 내기가 과연 이루어질까? 이루어진다면 어떤 상황으로 전개될까에 초점을 맞춰 읽다 보면 어느새 다른 흥미를 자극하는 이야기들이 등장한다.

 다카토의 친구이자 니시와키를 짝사랑하는 안나. 미국으로 간 안나에게서 온 엽서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 아마, 나도 함께 걷고 있을 거야. 작년에, 주문을 걸어두었거든. 다카코네의 고민이 해결되어서 무사히 골인할 수 있도록 뉴욕에서 기도하고 있을게.

주문은 또 무엇이고, 작년에 언제 어떻게 걸어 놓았다는 것일까? 그리고 고민? 무슨 고민을 말하는 것일까?

 니시와키의 친구인 도다 시노부, 다카코는 도다 시노부와 문제의 여학생이 같이 있었던 것을 기억해 낸다. 그 여학생의 사촌은 이 야간보행제를 통해 그녀가 낙태하게 만든 문제의 남자를 찾고 있다. 그렇다면…….

 작년 그 어느 반에서도 존재를 확인할 수 없었던 검은 야구모자를 쓴 소년. 그는 대체 누구였을까? 과연 올해도 등장할까?

 야간보행제 기간에 니시와키에게 고백하기로 결정한 우치보리 료코. 그 소문은 야간보행제가 계속되는 동안 모두에게 화젯거리가 되고 있다. 과연 그녀가 준비한 선물은 무엇일까? 니시와키는 그 고백을 받아들일까?

 

 그들이 걷고 있는 길과 주변 풍경에 대한 묘사를 읽으며, 그들의 생각을 듣고 있다 보면 어느새 나도 같이 그들과 야간보행제를 참가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어떻게 됐어? 몰래 도다 다카코의 뒤를 따라 걷다 니시와키가 있는 곳까지 내달려 뛰면서 아니라니까. 다카코 그렇게 생각하고 있지 않아. 라는 조바심을 내게 만든다. 조잘조잘 이야기를 하며 걷는 친구들. 피곤에 지쳐서 어느새 말을 잃어버리고 걷는 데만 열중하기도 하고, 주변 풍경을 돌아보며 야간보행제가 끝나는 것을 아까워하기도 한다.

그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어느새 나는 내 청춘의 시기에 대해 돌아보게 되었다. 나는 그들 만큼 무언가를 고민해 본 적이 있었던가? 맞아. 우리 때는 이런 행사를 했었어. 그때 나는 뭘 하고 있었지?

 기록을 남긴다는 것, 일기를 남긴다는 것은 사라져가는 추억을 붙잡을 수 있는 힘이 있다는 것을 그제야 깨달았다. 매일매일 새로울 수 있었던 시기를 넘긴 지금에서야 후회를 하다니……. 바래져가는 기억을 되살리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지난 기록을 훔쳐보는 것이 아닐까. 아쉽게도 나에게는 그런 기록이 남아 있지 않다. 이제 와서 어쩌겠는가. 찬찬히 기억의 조각들을 살피고 있자니 추억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들이 슬며시 떠오른다. 그런 기억을 찾아낼 때마다 입가에 피어나는 미소와 반대로 눈가가 시리는 것은 왜일까. 아마. 나에게도 청춘이라 부를 수 있는 그 시기가 있었다는 흐뭇함과 더는 그 시기로 돌아갈 수 없다는 아쉬움 때문이겠지.

 

해는 옛날에 저물었다. 그러나 수평선을 밝았다.

하늘도 바다도 완전히 밤의 소굴인데 수평선만이 어렴풋이 보이는 것이다. 분명 바다 저편에 광원(光源)이 되는 뭔가가 있다.

세 사람은 홀린 듯이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곳에 뭔가가 있다.

마치 수평선이 이 세상을 가로질러 금이라고 그어 놓은 것 같았다. 창호지인지 무엇인지가 그곳만 얇아져서 건너편 세계의 빛이 새어 나오는 것 같다.

그러나 위아래에서 밤이 공격하고 있었다. 조금 시선을 올렸다 내렸다 하면, 칠흑 같은 밤과 파도가 수평선을 향해 밀려오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지금, 저 수평선만이 낮의 마지막 아성인 것이다.- P106

캄캄한 양배추밭이 길게 이어지는 경치 좋은 길이다. 학생들이 들고 있는 회중전등 불빛이 깜박깜박 옅은 빛의 행렬을 지어 움직인다. 대단한 빛은 아닌 듯이 보이는데, 떨어진 곳에서 보고 있으면 직선의 빛이 하늘의 구름에 반사되고 있다는 것을 알아볼 수 있다.

"신비롭다."

"구름까지 닿아 있어."

"빛이란 직진하는 거 맞구나."

그런 사소한 발견이 기쁘다. 어두운 곳을 걷는 데도 익숙해져서 호흡과 보조가 어둠에 녹아들고 있는 것에 편안함을 느끼게 되었다.- P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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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를 부탁해
신경숙 지음 / 창비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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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마를 잃어버린 가족들.

그 가족들을 위해 일생을 살아온 어머니의 이야기.

가족을 위한 희생을 당연한 것처럼 여기는 한국 사회. 아니 남성들이 주축이 되어 만든 이 세상에 소리치고 싶은 책이었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렇다.

나 역시 어머니의 희생을 암묵적으로 강요하며 살아가고 있는 몰인정한 딸이기에 나에게 하는 비난의 말이기도 하다. 어머니의 손길이 느껴지지 않는 곳이 없는 이 집안에서 살고 있으면서 과연 나는 그녀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표절의 논란이 있기 전에도 있고 난 후에도 그다지 신경숙이라는 작가에 대한 관심은 없다. 오로지 그녀가 쓴 이 책이 어떤지 그리고 그 내용을 통해서 내가 어떤 감정을 느끼게 될까. 에만 관심이 있다.

물론 내가 마음에 든 구절이 있고, 그 구절 그대로를 표절했다고 한다면 이야기는 달라지겠지만 말이다.

 그래서 이 소설이 표절한 것이라고 주장한 작가의 에세이도 읽어보았다.

확실히 그 내용의 유사점을 부인할 수는 없겠다는 생각을 했다. 서두를 시작하는 말도 그렇고. 하나 그 내용을 가지고 ‘엄마를 부탁해’로 표현을 해 낸 것은 작가의 능력이지 않을까?

 이 책을 읽은 내내 옆방에 계시는 어머니와 아버지의 존재에 고마워했으니까 말이다.

손을 잡고 눈을 마주치고 웃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안도할 수 있었으니까 말이다.

 이 세상에 완벽한 창작물은 없다. 잘 만들어진 모방품만 존재할 뿐이다. 그럼에도 본인의 양심은 그 답을 알고 있을 것이기 때문에 양심에게 물어라. 양심이 아프다고 소리친다면 그것이 어떤 의미일지는 본인도 잘 알리라 믿는다.

 그럼에도 이 책을 추천하는 것은

난 울었거든요.

우선 내가 울었으니까 나한테는 감정이입이 될 만큼 좋은 책이라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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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월은 붉은 구렁을
온다 리쿠 지음, 권영주 옮김 / 북폴리오 / 200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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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삼월은 붉은 구렁을> 이라는 책을 찾는 노인 네 명이 청년 사메시마 고이치를 저택으로 초대한다.

그곳에서 고이치는 <삼월은 붉은 구렁을> 이라는 비밀의 책에 대해 듣게 된다.

  개인이 출판한 익명으로 쓴 4부작 추리소설, 그 책은 처음 나누어 줄 때부터 조건이 몇 가지 붙어 있었다.

작가를 밝히지 않을 것, 사본을 만들지 않을 것, 친구에게 빌려줄 경우 단 하루 한 사람에게만 빌려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책을 나눠준 반년 후에 작가의 대리인이 회수를 시작했다는 사실. 그래서 남아 있는 책들이 얼마나 되는지 누가 가지고 있는지 알려지지 않은 책.

  그 책을 어떤 경로로 읽은 네 명의 노인은 저택에 숨겨져 있을 그 책을 찾기 위해 매년 한 명을 초대하고 있었다.

고이치는 노인들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저택에 숨겨져 있는 책에 대해 추리하기 시작한다.

 이렇게 시작한 1부는 책 속에 등장하는 <삼월은 붉은 구렁을>처럼 총 4부로 이루어져 있다

<삼월은 붉은 구렁을> 속 내용이

1부 흑(黑)과 다(茶)의 환상, 부제: 바람의 이야기

노인 네 명이 전설의 벚나무를 찾기 위한 여행을 그리고 있는데 그 과정에서 여러 가지 이상한 사건들을 만난다는 이야기

2부 겨울호수, 부제 : 밤의 이야기

주인공 여성이 실종된 애인을 애인 친구와 함께 찾 다는 이야기

3부 아이네 클라이네 나흐트무지크, 부제 : 피의 이야기

가족과 함께 해변에 온 소녀가 생이별한 이복 오빠를 찾는 이야기

4부 새피리, 부제 : 시간의 이야기

작가가 소설을 쓰면서 그 생각에 대한 내용과 일상생활에 대한 내용이 혼재하는 이야기

 그리고 실제로 존재하는 (삼월의 붉은 구렁을)의 내용은

1부 기다리는 사람들

노인 네 명이 저택에 숨겨져 있는 <삼월은 붉은 구렁을>을 찾기 위해 매년 청년을 초대하는 이야기

2부 이즈모 야상곡

두 명의 출판가가 <삼월은 붉은 구렁을>의 저자를 찾기 위한 여행을 떠난다는 이야기

3부 무지개와 구름과 새와

이복자매의 죽음을 밝히기 위해 그녀의 친구와 그녀의 전 애인이 여행을 떠나는 이야기

4부 회전목마

(삼월의 붉은 구렁을)을 쓰고 있는 작가가 <삼월은 붉은 구렁을>내용 및 4부의 내용을 구상하는 이야기

  이 8편의 이야기들이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즉 각각의 이야기가 이 책 어딘가에서 언급된 적이 있는 소재들로 이루어져 있는 것이다.

 뭐지?라는 생각에 <삼월은 붉은 구렁을>에 초점을 맞춰 읽다 보면 어느새 (삼월의 붉은 구렁을)로 끝나가는 책...

 오랜만에 매력적인 책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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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가니 - 공지영 장편소설
공지영 지음 / 창비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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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절대로 안 읽을 거라고 각오한 책.

영화도 안 볼 거야. 예고편이든 뭐든 절대로 관심 안 가질 거라고 다짐하고 또 다짐한 책.

그 책을 결국 읽고 말았다.

 이 책이 세간의 관심사가 되었던 그 시기의 나 역시 관련 사실을 기사로 블로그로 찾아보고 또 찾아 읽었다. 그래서 차마 엄두가 안 났었다. 이 책을 읽을 자신이 없었다.

읽고 난 이후에 마주할 자신의 나약함과 비겁함을 견딜 수 없으리라는 확신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확신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 한순간에서 지금까지 느껴지는 이 감정을 뭐라고 표현하면 좋을지 여전히 모르겠다.

 무진에 부임한 강인호는 자신의 인생을 우유부단하게 살아온 사람이다. 적극적으로 책임지려고 하지도 않았고, 현실에 맞서 안달복달해 본 적도 없는 사람. 무진에 온 것도 아내의 적극적인 일처리가 아니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런 그가 타인의 삶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게 되었다. 자애학원. 그곳에는 그는 자신을 기다리는 아이들을 만나게 된다.

 남편을 잃고 아이 둘을 키우며 혼자 사는 여자. 그중 한 아이는 아프기까지 하다. 그럼에도 자신의 삶을 묵묵히 살아가는 서유진 그녀 앞에 대학 후배인 강인호가 찾아온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강인호로부터 소개를 받았다며 인권센터로 한 여성이 찾아온다. 그녀는 광란의 도가니 같은 사실을 털어놓는다.

 글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에 대한 질문에 바꿀 수 있다고 대답해 왔다. 단, 그것은 개인적인 차원에서 깨우침과 뉘우침의 영향으로 긍정적인 방향으로 삶을 바꿀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지 사회적인 차원에서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물론 다수의 고전들이 걸어온 행보에 대해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직접적으로 파장을 느껴본 적이 없는 내가 어떻게 알겠냐고 따지고 싶은 마음이지만...

이제는 안다. 개인의 관심이 얼마나 큰일을 할 수 있는지. 그 관심을 행동으로 바뀌는 순간 크던 작던 세상을 변화될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나는 강인호를 비겁하다 비난할 자격이 없다. 애초에 그처럼 행동할 마음 자체를 먹지 못할 위인이니까.

가끔 그런 일이 있다. 해일이 바다 밑바닥을 뒤집어놓듯이, 존재 자체를 뒤집어 내는 그런 일. 잊은 줄만 알았던 과거가 혼령처럼 불려 나와 아무리 술을 마시고 취해 엎어져 있어요, 마음속에서 누군가가 집요한 질문을 던진다. 지나온 자리마다 붉은 상처가 선연하고 돌보지 않은 상처들은 이제 악취를 풍기고 있다.
- P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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