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오후 다 비예보다.
후둑후둑 이제 막 내리기 시작하는 비를 보다
창비판 한 여인의 초상을 읽고 있다.

가장 가까운 도서관에 있는 것이 창비 큰글자본
대학노트 사이즈 200쪽짜리 4권이었다.

나무수업도 빌려와야지 하고 갔는데
여인의 초상이 4권이어서 부랴부랴 이것만 빌려서 나왔다.
1,2권만 빌리고 나무수업을 빌려도 되는데
친구대출증을 가져가서 괜히 혼자 심장이 벌렁벌렁
죄지은 사람처럼 쫓기듯 나왔다.

밤에 1권 다 읽고 오늘 반납해야지 했는데
100쪽 쯤 읽다가 졸려서 잤다.
어제 까놓은 보말로 칼국수를 끓여먹고 이제 막
다시 읽기 시작했는데 워버턴이 이저벨에게 청혼하는
장면이다.

˝최소한 시도는 해보시지요. 저 머리 꽤 좋거든요. 걱정하시는 게 -기후가 걱정이세요? 다른 곳에 살아도 아무 문제 없습니다. 세계 어디든지 마음에 드는 기후를 고르세요.˝
그는 이런 말을 굳센 팔의 포옹처럼, 그럴 수 없이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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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에 드는 기후를 고르라니, 우리의 이저벨은 이런 달콤한 말에 혹하면서도...(스포일러라 생략)

후반부가 기대된다.
본격적으로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헨리 제임스 (1843~1916)
제인오스틴 (1775~1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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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의 미술관

자아가 사라져간다.그렇게 생각하면 보통은 당황하거나 불안해져야겠지요. 하지만 오히려 마음이 편해졌습니다.소위 망아의 경지에 들어간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든 자기 자신에 대해 의지와 사고가 뭉친 어떤 딱딱한 덩어리 같은 이미지를 가지고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 덩어리가 녹기 시작한겁니다.111

클레나 로스코는 이처럼 자신과 세계를 쉽고 간단하게 연결 해주지 못하는 시대의 도래를 가장 빨리 깨달은 화가들입니다.  이들은 결코 표상할 수 없는 것을 표상해낼 방법을 탐구한 끝에 결국 그러한 표현에 도달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클레는 단편화된 기억을 모자이크처럼 엮었고 로스코는 모든 이야기를 용융시켜서 자기 자신도 타자도 존재하지 않는 모든 것이 한데 섞인 듯한 세계를 그렸습니다. 이들은 불가해라는 말로밖에는 형용할 수 없는 그 무언가를 어떻게든 표현해냄으로써, 새로운 시대의 이야기라고도 할 수 있는 것을 말하기 시작한 것이라고나 할까요. 아마도 그것 외에 다른 방법은 없었던 것입니다.120

원전 사고를 통해 뼈저리게 느낀 점은 문명에 푹 잠겨 있던 인간은 결국 두려워하는 마음을 잃은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공포심이 없어지면 사람은 본디 가지고 있던 생물로서의 예민함을 잃어버립니디ㅡ. 쾌적함과 편리함을 추구하는 가운데, 인간은 근거 없는 안전 신화 같은 것을 만들어냈지만 결국 그 때문에 몇십 만  몇백 만이 넘는 소중한 목숨을 위험에 노출시키는 커다란 실패를 범하고 말았습니다. 브뤼헐은 16세기 사람들뿐만 아니라 현대의 우리들에게도 경종을 울리는 ‘묵시록‘적인 그림을 그린 것입니다.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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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째 흐린 날씨에 가끔씩 해가 난다.
칼국수를 해먹을까하고 보말 주으러 바다 가는 길에
진한 분홍색 꽃이 핀 자귀나무(사랑나무, 합환수)를 보았다.
멀리서 봐도 눈에 띄게 수형이 아름다워 가까이가서
한참을 바라보았다.

얕은 물이라고 얕보고 저벅저벅 걷다가
넘어졌는데 잠깐 사이에 슬리퍼 한 짝을 잃어버렸다.
바닷가에서 대충 마련한 스티로폼과 비닐봉지로 간이신발을
만들어 신고 절뚝거리며 오는 길
양 옆으로 풀꽃들이 도열해 있었다.

타래처럼 꼬이면서 꽃이 피는 타래난초,
진보랏빛 꿀풀,
돌담에 다닥다닥 콩짜개,
연보랏빛 우아한 아가판사스(아프리카릴리)도
이제 막 피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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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침 산책은 좀 멀리 돌자 마음 먹고 길을 나섰다.
전날 지도를 보며 어림해둔 길은 2시간 코스.
작은 오름 하나를 넘는 길이 공사 중이어서
둘레길로 접어들었다가 좀 고생을 했다.

갑자기 길이 없어진 것, 밭을 가로지르고 밭담을 넘고 하느라
운동화가 엉망이 된 걸 모르고 성게미역국이나 먹을까 하고 들어간 식당에서 쫓겨났다. 청소 해놓은 바닥에 흙신을 신고 들어왔다고
기겁을 하셨다. 뒷마당가서 신발을 씻고 오라는데
어찌나 질색을 하시는지 기분이 상해서 그냥 집으로 돌아왔다.

분한 마음에 호박 두부 넣어 된장국 끓이고
하지감자 강판에 갈아서 감자전 하고
숙주와 부추를 데쳐서 나물도 하고
한 상 차려서 아침을 먹었다.

그래도 분이 안풀리네. 아줌마 밉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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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하루종일 날이 흐려 집에만 있기 아까워 낮시간에도 좀 걸었다. 올레길 21코스 지미봉 둘레길을 접어 들었는데 노랑 나비 한 마리가 힘없이 날고 있었다. 평소에 너무나 팔랑거리고 잠시도 앉지 않아서 사진으로 한 장 담고 싶어도 그렇게 기회를 안줘서 애간장을 태우더니, 오늘은 시부적거리며 날더니 예덕나무 이파리에 한참을 앉아 있었다.
비 오기 직전의 습기가 날개를 무겁게 한 탓인가 보았다.

덕분에 실컷 소원풀이하고 근처에 있던 예덕나무 꽃도 실컷 보았다.
꽃은 처음보는데 밤나무꽃 향기가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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