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에서 스님이 볶아 오신 에티오피아 코사를 내려 보온병에 담아서 법문을 들으러 간다.

(밤낮이 살짝 바뀌었더니 늦잠을 잘 수 있어서 좋군)

 

낮은 여름 밤은 가을이 며칠 연이어지고 있는데, 일교차만큼이나 육신도 쑤시는 것 같다.

잠을 못 이루어 커피를 멀리한 탓도 있겠다. 영육을 잠재우려면 일깨우기도 해야하는데 커피를 안마시니 정신이 차려지지가 않는다. 어떻게 하다 보니 커피장인들과 인연이 닿아서 커피 세계 입문의 언저리 정도에는 있게 되었다. 가을에 읽을만한 커피책은 단연 커피집을 하시겠습니까, 이고 커피를 마시며 읽을 만한 책으로는 울기좋은 방이다. ㅎㅎ

 

 

 

 

 

 

 

 

 

 

 

 

 

 

 

 

어제 법문은 집중하지 못했다. 몸과 마음에 욕심이 가득차서 어떤 말도 은혜롭게 들리지가 않은 탓.  어제 말씀 중에 "행복이 찾아서 되는 것이 아니고, 자기 본 모습 그대로가 온전한 것을 알고 타인에 대해서도 존중하면 그 자리가 평등의 자리이고 행복이다"라는 말씀만 겨우 건졌다. 말소리가 어찌나 산산히 귓가에서 부서지기만 하는지. ㅠㅠ 어제 알라딘을 여니 나를 사랑하지 못하는 나에게가 떴다. 스님이 말씀하신 '자기 본 모습 그대로가 온전한 것을 아는 것'이 나를 사랑하는 첫걸음이자 마지막 걸음이 아닐까한다. 있는 그대로의 자기 인정하기.

 

그런데 오늘 나는 그대로의 나를 인정하기가 싫다. 인정할 때도 인정하지 않을 때도 있는 것이고, 내가 꼭 나를 사랑하지 않아도 된다라고 생각하는 것, 사랑할 수도 사랑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더 행복하게 인생을 사는 것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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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기 좋은 방, 13월에 만나요의 작가 용윤선님이 성북동에 서점커피집을 열었다.

오늘 2시부터 6시까지 위의 두 책을 펴낸 달출판사의 대표인 이병률시인이 십삼월에 만나요 주방을 지킬 모양이다. 이시인이 내려주는 커피를 맛보실 분들은 성북동 가을나들이를 계획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박연준시인의 시집 베누스 푸디카를 읽고 있는데 베누스 푸디카의 뜻을 알고보니 최근 이병률시인의 사진이 실린 책 신화에게 길을 묻다에서도 베누스 푸디카이미지를 찾아봐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베누스 푸디카 뜻은 첫 시 각주에 달려있다.)

박연준시인의 시가 좋다는 얘기는 여러 차례 들었는데 이제서야 읽는다. 소문이 헛되지 않다.슬픔이 기저에 깔려있는 시들이 많고 그런 느낌들이 좋다. 기대하지 않았던 어휘를 사용해서 사유를 비트는 이런 시들이 내 취향인 것 같다.

사랑이 길어져 극단까지 밀고 가다
견디지 못하면
지구 밖으로 밀려나는구나
피가 솟구치다 한꺼번에
증발하는구나

베누스 푸디카 중 일부
-------

이파리로 가득한 숲속에서
나무는 얼굴이 어디일까 생각한다

바람의 힘으로 사랑에서 떨어질 수 있다면

이파리들은
나무가 쥐고 있는 작은 칼
한 시절 사랑하다 지는 연인

‘녹‘ 중 일부
-------------------

이미 태어난 슬픔은 악다구니를 피해
여전히 질투 나게 말랑한 누군가의 생활에 뿌리를 내리고
붉고 끈덕지게 새끼를 치고
나는 멀리에서 가벼워진 몸,
이라 생각하며
포기,포기,포기하겠다고 눈을 감지만

‘술래는 슬픔을 포기하면 안된다‘ 중 일부
----------------
시를 더 인용하고 싶지만 누워쓰는 북플이라 손목에 압박이 온다. 막더위가 속으로 들어와 오늘 내내 얼음물을 들이켰는데도 그 물이 시원하지가 않았다. 돌이켜보니 일주일 내내 그랬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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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리 2017-09-10 02:20   좋아요 3 | URL
커피집 분위기 참 좋네요. 시인이 내려주는 커피라니ㅠㅠ 서울이라면 당장 갈텐데ㅠㅠ

2017-09-10 08:23   좋아요 4 | URL
하리님껜 또 기회가 있을 듯 해요♡
 

 

 

 

 

 

 

 

 

 

 

 

 

 

 

가을은 정작 설익있었는데

가슴에 영근 것이 있어

나도 모르게 뒤돌아 보았다

 

땀이 흐르는데도

개는 가죽을 벗지 않고 있었다

어쩔 수 없는 일

 

땀이 흐르는데도

나는 외투를 벗지 않고 있었다

어찌하지 않은

.

.

.

미련이 많은 사람은

어떤 계절을

남보다 조금 더 오래 산다

 

오은 시 '계절감'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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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산책자- 강상중의 도시 인문 에세이
강상중 지음, 송태욱 옮김 / 사계절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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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경선의 도쿄- 나만 알고 싶은 도쿄여행
임경선 지음 / 마틸다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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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경선의 도쿄 - 나만 알고 싶은 도쿄여행
임경선 지음 / 마틸다 / 2016년 4월
평점 :
품절


도서관에 가서 키워드를 도쿄로 검색하니 최근 1~2년 사이에 나온 도쿄 여행책들이 다 대출이 되고 빌릴 만한 책이 없었다. 그러다 눈에 띈 임경선의 도쿄. 한참을 찾아서 겨우 찾았는데, 이유는 임경선의 도쿄가 책등이 없는 노트형식의 제본이었기 때문이다. 두께가 있는 책들 틈에 사이즈가 커서 비죽이 튀어 나온 노트 같은 것을 설마 이것이 책?하고 뽑아봤더니 임경선의 도쿄였다.

 

읽기 전에 리뷰를 대충 훑어 봤더니 혹평이 많았다. 그래서 기대감이 없었던 탓이었을까? 두 달 만에 스님을 뵈러 가는 버스 안에서 펴들었더니, 아주 괜찮은 책이었다. 김영하여행자도쿄가 스타일리쉬한 포토에세이의 느낌이었다면 임경선의 도쿄는 자기 관점에 입각한, 또는 자신이 경험한 도쿄 가이드북이었다. 여행을 권하는 느낌보다 풍경을 나래이션하는 듯한 차분한 톤이 좋았다. 잡지처럼 편집된 것도 여느 가이드북의 조밀한 편집보다 부담이 적어서 가독성이 좋았고, 많은 정보를 원하는 게 아니라 적당히 필요한 정보를 원하는 여행자들에게 맞춤했다. 보통의 가이드북들이 공부하듯이 읽어야 해서 부담스럽다면 이 책은 일기장을 보는 듯한, 외우지 않아도 되는 글을 읽는 편안함을 주었다.

 

많이 욕심부리지 않고 소요하듯 조용한 도쿄여행을 원하는 여행자라면 임경선의 도쿄를 읽고 가라고 권하고 싶다. 여성 특유의 섬세함과 일본 거주의 경험이 잘 녹아나 있기 때문이다. 샾이나 호텔, 카페를 소개하는 막간에 짧은 에세이에서 작가들의 이름과 책제목들이 많이 나오는 것도 좋았다. 특히 일본 작가들에 대한 소개도 많아서 일본현대문학에 관심이 많은 독자들도 좋아할 만하다. 나는 이어 읽기책으로 강상중의 도쿄산책자를 찜해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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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17-09-09 19: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방금 알라딘 들어오는데, (들어오는데 ㅋㅋ) 메인에 임경선 새책이 보이네요.
<교토에 다녀왔습니다.> 아... 근데, 도쿄는 이미 다녀왔군요.
부지런하셔라. ㅎㅎㅎㅎㅎ 부지런한 작가예요^^

2017-09-09 20:01   좋아요 0 | URL
고교시절,대학시절 그 곳에서 살았대요^^
유학아니구~~교토도 읽어보기로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