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키나와에서 헌책방을 열었습니다 - 세상에서 제일 작은 서점 울랄라의 나날
우다 도모코 지음, 김민정 옮김 / 효형출판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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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생각하면 왜 도서관이나 서점, 출판사 이런 데 취직할 생각을 해보지 않고, 무엇이 급해 졸업하자마자 결혼부터 하고 보았는지, 한심한 일이다. 그래서 평생 그런 직업들에 대한 궁금증과 환상을 가지고 살았다. 안 겪어봐도, 주변을 둘러보니 사서나 서점직원 출판사 편집자 모두 고단한 일들이라는 것은 알겠다. 그래도 지금이라도 누가 시켜준다면 네 하고 달려가서 열심히 일을 할 것 같다. 힘들어도 좋아서 하는 일이라면 신명이 날 것 같다.

 

그래서 <오키나와에서 헌책방을 열었습니다>같은 책은 제목만으로도 손이 가는 책인 것이다. 더구나 오키나와는 나의 환상의 섬이라, 일단 오키나와라는 단어가 제목에 들어갔으니 그냥 무작정 하트를 뿅뿅 날리면서 본다. 만약 그렇지 않은 사람이 이 책을 읽는다면 '뭐야, 이거 너무 소소하잖아.'할 지도 모르겠다. 책 앞부분에 나오는 '당신의 지팡이는 무엇인가요'는 정말 내겐 꿀잼 에피소드인데 요거 한 편만 읽어도 이 책을 살 가치가 있다고 생각할 정도다. 그리고 마키시 공설시장의 상인들의 이야기, 손님들 이야기도 잔잔하고 소소해서 정말 좋다.

 

 '책을 사랑하는 아와모리 가게 주인' 같은 에피소드도 별 이야기 아니지만, 내가 아와모리를 좋아한다는 이유에서일까? 그냥 입가에 절로 웃음이 지어지며 좋은 것이다.(아와모리는 그냥 마셔도 물을 타서 마셔도 얼음과 함께 마셔도 정말 맛있다ㅎ)뒤로 갈수록 짧은 글모음이라 마스다 미리 네 컷 만화를 읽는 것 같기도 하고. 가볍고 작아서 부담없이 가지고 다니기도 좋다. 그리고 원전과 위안부 문제와 평화와 폭력에 관한 담론들로 머리가 복잡하고 생각이 무거워 질 때(금토가 내겐 그런 날들이었다) 그런 책들은 다 집에다 두고 하루 종일 비를 보는 창가에 앉아 읽는 둥 마는 둥 들춰 보기 좋았다. 나의 소소함이 너의 소소함으로 위로 받는다고나 할까. 무튼 하루종일 비가 여름처럼 내린 봄날. 봄 같은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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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reka01 2016-03-05 21: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언제 기회만드셔서 책모임 사랑방 카페라도 하셔야겠는데요^^..

2016-03-05 21:58   좋아요 1 | URL
언젠가는 그런 날이 오기를ㅎㅎ

세실 2016-03-05 21: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좋다!
이 책을 아직 안읽었는데 당장 읽고 싶게하는 글입니다.
그렇단 말이죠~~~ 뭔가 지난번에도 이런 말 했던 기억도?ㅎ
이곳에도 여름비처럼 내렸는데 참 좋았어요^^

2016-03-05 21:58   좋아요 1 | URL
며칠 째 들고 있어서 페이퍼도 두어 장 작성한 듯요ㅎ
제 꿈의 직업을 가진 부러운 세실님^^

프레이야 2016-03-05 22:3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졸업하자마자 결혼,이란 대목에서 급찔립니다ㅎㅎ
이책 찜해두고 있어요.

2016-03-05 22: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온 더 무브 - 올리버 색스 자서전
올리버 색스 지음, 이민아 옮김 / 알마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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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이 내게로 왔다. 책 속에 길이 있다. 너무 흔해서 진부함이 느껴지는 말들이다. 그런데 정말 책이 내게로 왔고 책 속에 길이 있었다. 갑자기 수화를 배워야 하는 상황인데, 수화를 배우기가 싫었다. 난감했다. 그런데 오늘 읽은 <온 더 무브>에 길이 있었다. 나는 어떤 사안이든 총체적이고 맥락을 따져 접근하는 걸 좋아하는데, 무조건 수화로 자음 모음부터 배운다는 것이 싫었다.  그렇게 배워봤자 학습속도가 무지하게 느리거나 중도 포기 할 확률이 높았다. 그런던 차에 <온 더 무브>에 이런 부분이 눈에 띄었다.

 

캘리포니아대학교출판부의 스탠 홀위츠가 청각장애에 관한 이 두 편의 에세이가 좋은 책이 될 것 같다고 제안했다. 그 생각이 마음에 들었지만 그러려면 두 부분을 연결해주는 몇 단락이 필요하겠다고 느꼈다. 언어와 신경계에 대한 개관 같은 것으로 말이다. 이때는 전혀 그렇게 될 줄 몰랐는데, 이 몇 단락은 오히려 책에서 가장 큰 부분이 되었고, 그렇게 해서 나온 책이 <목소리를 보았네>다. 324쪽

 

그래서 급 <목소리를 보았네>을 검색했고, 알라딘 소개글은 이랬다.

 

"완전한 언어 수화, 그 아름다움을 올리버 색스만의 언어로 말하다. 올리버 색스는 우연히 청각장애인들의 세계와 그들만의 독특한 언어인 수화에 관한 글을 읽고 새로운 탐구에 대한 의욕을 갖게 되었다. 그것이 이 책의 시작이다.

‘귀머거리이자 벙어리’인 채로 수천 년간 살아온 청각장애인들의 세계 그리고 그들의 가족, 학교, 청각장애인들을 위한 특별한 대학인 갤러데트대학을 접하게 되면서 올리버 색스는 매혹과 경악을 동시에 느낀다. 그리고 그 감정은 언어에 대해서, 말하기와 가르치기의 본질에 대해서, 아동발달에 대해서, 신경계의 발달과 기능에 대해서, 공동체와 세계와 문화의 형성에 대해서 완전히 새로운 관점을 주었다.

이와 동시에 올리버 색스는 또 다른 영역을 인식했는데 그것은 단순히 생물학적인 영역이 아니라 문화적인 영역이었다. 올리버 색스는 청각장애인들이 완전히 다른 종류의 언어를 구사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 언어는 인간의 사고력에 도움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풍요로운 공동체와 문화의 매개체 역할도 했다. 바로 ‘수화’다"

 

보통은 한 권의 책을 읽고 나면 두 세권 이상의 책이 파생되곤 한다. 그런데 자서전을 읽는 경우는 좀 예외다. 자서전의 주인공이 작가일 경우 그 작가의 책을 거의 다 읽고 싶다는 함정에 빠지게 된다. 그의 모든 것을 알고 싶은 것. 그 시작이 <목소리를 보았네>가 될 것 같다. 그리고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청각 장애인들과 '완전히 다른 언어'로 의사소통을 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단지 기능적인 형태만을 익히고 감정 없이 교류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좀 더 깊고 넓게 이해하고 아우르는 마인드를 <목소리를 보았네>가 알려 줄 것 같다.

 

 브루너의 저서를 읽고 난 뒤 나는 언어를 단지 언어학적 측면만이 아니라 사회적 측면까지 함께 고려하여 생각하게 되었고, 이 생각은 내가 수화와 청각장애인 문화를 이해하는 데 절대적으로 중요하게 작용했다. 326쪽

 

  이사벨은 사고가 정교하고 엄밀한 사람이었다. 나는 얼렁뚱땅 되는 대로 생각하다가 온갖 기괴한 연상과 정신적 일탈로 빠지기 일쑤였는데, 그런 나와 의외로 처음부터 죽이 잘 맞았고 지금까지 아주 가까운 친구로 지내고 있다.

 이사벨은 부정확하거나 과장되거나 확증 없는 발언은 내게는 물론 자신에게도 절대 허용하지 않았다. "근거를 대봐." 이사벨이 늘 하던 말이다. 이런 점에서 이사벨은 부끄러운 오류가 될 뻔했던 나의 노지를 허다하게 구제해준 내 과학적 양심의 파수꾼이었다.

 

이사벨은 루리야의 스승 비고츠키(1896~1934)가 쓴 이 글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내게 주입했다.  

 

시각장애나 청각장애가 있는 어린이가 일반 어린이와 같은 수준의 발달을 성취하려면, 결손 있는 그 아이는 또다른 방식, 또다른 과정, 또다른 수단으로 이를 이루어내야 한다. 교육자에게는 독특하다는 점을 이해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며, 아이를 지도할 때는 반드시 그 이해가 기반이 되어야 한다. 장애에 따른 약점을 보상작용에 의한 강점으로 변모시키는 것이 독창성의 핵심이다.

329쪽

 

수화를 사용하는 청각장애 부모는 갓난아기에게 수화로 '재잘거리'는데 일반 부모가 갓난아이를 보면서  말로 재잘거리는 것과 같은 이치다...청각장애 자녀는 일찍이 수화 공동체에 노출 되지 않는 한 언어라 할 만한 것을 전혀 학습하지 못한 채 성장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브롱크스에 있는 한 청각장애학교에서 이사벨과 함께 만난 많은 어린이가 독순술과 구술 언어를 익히고 있었는데, 몇 년에 걸쳐 막대한 인지 부하가 요구되는 아주 힘든 과정이다. 그렇게 하고 나서도 이들의 언어 이해력이나 구사력은 평균을 크게 밑돈다. 나는 그 곳에서 충분히 유창한 언어 능력을 얻지 못했을 때 인지 능력과 사회 능력에 어떤 파괴적인 효과를 가져 오는지 확인할 수 있었다.

 

청각장애인은 일반인에 비해 시각 능력이 '초활성화'되는 경향을 보이지만(이는 태어난 첫해부터 두드러진다) 수화를 학습할 경우에는 그 능력이 더욱 향상된다. 33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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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두를 찾아라
배혜경 지음 / 수필세계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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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떠나있던 알라딘 마을을 다시 기웃 거릴 때였다. 어떤 글을 읽고 어, 이 분. 내가 아는 그 분이 아닌가. 했더니 역시 그 분이었다. 그녀는 배혜경에서 프레이야가 되어 있었다. 이름을 가리고도 분별이 되는 무엇. 그녀의 글에는 색깔이 있다. 향기라고 해도 좋고 리듬이라고 해도 좋을 독특함은 그녀가 가진 고유한 것이다. 그림을 그리는 사람도 많고 글을 쓰는 사람도 많지만 저만의 고유함을 가지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행위하는 주체가 분명한데도 주체의 개성이 쉽게 드러나지 않는다는 것이 창작하는 사람들의 고뇌일 것이다. 그런 면에서 그녀는 이미 어떤 경지를 이루었다고 보아도 좋겠다.

 

 그녀는 일상을 단단히 직조하는 사람이다. 그녀는 그런 일상에서 꾸준히 우물물을 퍼내듯이 글을 써왔다. 남들이 하기 싫어하는 일을 기꺼이 맡기도 하고 누가 뭐래도 자신이 하고 싶은 일만 꼼꼼히 하기도 하면서 주어진 일에는 책임을 다했다. 그녀의 글을 읽으며 <중국인 거리>가 생각났다. 오정희 선생님은 일과 생활을 잘 병행하셨다는 말을 들었다. <중국인 거리>에는 매일 아침 저녁으로 잘 닦은 툇마루의 감성이 있다. 오래 먼지를 쌓아두다가 어느 날 하루 맘 먹고 북북 닦아 봐야 나올 수 없는 그런 반짝임. 헌신과 꾸준함의 나날들이 반짝이는 툇마루에는 쌓여있다. 울툭불툭 변덕 부리지 않고 자기 앞의 생을 꾸준히 고르게 살아 온 사람의 단정함. 이렇게 말하면 그녀가 쪽지고 하얀 모시저고리 입고 툇마루에 앉아 있는 이미지가 떠오를지도 모르겠다. 아서라. 그녀는 뜨거운 여자다.

 

이 책은 4부로 이루어져 있다. 1부와 2부는 유년의 기억과 성장과정 그녀가 살아 온 이야기들, 에피소드에 이어지는 심상들이다.

 

그럼에도 우리의 위대함은 누추한 삶을 구원해 줄 청모 입은 손님을 기다리며 살아 봄 직한 삶을 이어가는 데 있다. 자만과 자책으로 착각과 권태가 불쑥불쑥 고개를 쳐들고 하수구의 비누거품처럼 싸구려 욕망이 들끓을 때면 청포도 한 알 한 알을 굴려서 깨물어 볼 일이다. 우리의 시절, 청포도가 익어가는 시절에. 45

 

 뒤집어 볼 일이다. 잘 유지되는 좋은 관계는 정말 하고 싶은 속내를 얘기하지 않는 경우에 많다고 한다. 사실과 속마음을 다 드러내는 게 과연 옳을까. 처음부터 그냥 있는 그대로 말하며 살면 과연 더 좋을까. 송어가 노니는 물처럼 사람의 마음도 그렇게 수면 아래가 다 보일 정도로 투명하다면 과연 감당할 수 있을까.

 오스카 와일드의 말이 생각난다. "사람은 있는 그대로일 때 가장 솔직하지 못하다. 가면을 건네주면 그는 진실을 말할 것이다."75

 

얼마 전의 일이다. 솔직하려고 하다가 동티가 난 일이 있었다. 나는 잘 덮어두는 걸 좋아한다. 시간이 흐르면 그냥 내 입으로 다 털어 놓는 일이 다반사지만, 일단은 덮는다. 그래서 남들이 의뭉스럽다고 말할 지도 모를 비밀을 지니고 사는 편이다. 가족에게조차 사생활이 중요해서 남편이 모르는 절친도 많다. 다 까발리고 나면 허전해서 살 수가 없다. 남들에게 솔직함을 요구하지도 않는다. 솔직한 사람이 오히려 부담스럽다. 좀 모른척하고 사는 일이 아름답다 여긴다. 이 글을 보는 누군가는 또 이렇게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아니, 대체, 그렇게 다 표현하고 사는 사람이 말하지 않는 비밀은 뭐래?...흠, 암튼, 누군가 나에게 솔직하라고 하면 폭력을 당하는 것 같은 기분을 느낀다. 솔직은 나의 문제다. 상대가 요구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녀는 이런 나의 격한 감정을 이렇게 순연하게 표현해주었다.

 '송어가 노니는 물처럼 사람의 마음도 그렇게 수면 아래가 다 보일 정도로 투명하다면 과연 감당할 수 있을까'

 

3부는 짧고 긴 기행의 흔적이 소담히 담겨있다.

 

눅눅했던 운동화가 보송보송해져 있다. 발바닥으로 온후한 태양의 온기가 퍼진다. 잰걸음으로 선착장을 향하는 오후 두 시의 태양은 뜨겁고 다른 섬으로 향하는 내 가슴은 오히려 서늘하다. 무형의 바람이 가슴에 한동안은 불어 댈 테고 마음을 좀 더 열어 두라고 귀엣말할 것이다. 동서남북 전 방향의 출발점, 섬은 소유를 사양하지만 세상을 다 가진 듯 무량하다. 113

 

꽃이 지듯 매미 소리가 지듯 시간도 진다. 매달려도 부질없는 일이다. 지는 꽃송이에서는 사랑이 송가가, 지는 매미 소리에서는 생명력의 찬가가 들린다. 124

 

나무는 혼자 서서 시간의 무게를 견딘다. 사람은 홀로 서기에는 너무 무기력하고 권태로운 습성에 젖어 있는 건 아닐까.

"차라리 우리 이 나무에 목을 매달까?"

고고를 디디가 만류하고 그들은 다시 기다림을 선택한다. 나무에 목을 매다는 대신 어깨동무를 하고 서로 돌보는 편을 택한다. 그것이 무기수의 생을 견딜만한 놀이로 바꾼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알아 간다.

 기다림은 그리움의 다른 말, 미련한 환상인지도 모른다. 그 환상 마저 불가하면 무엇으로 버틸 수 있을까.

"심장이 뛰는 한 기다리겠어요. 당신과 함께라면 좋겠지요. 내일은 꼭 그가 온다고 하니 한 손에는 꽃을 들고 있을까 해요." 138

 

이런 글을 쓰는 사람은 여행을 해도 될만한 사람이다. 아름다운 것을 보고 그만한 가치로 표현하고 글로 그 아름다움을 나누는 사람은 여행에게도 사람에게도 가치를 더하는 삶을 사는 것이다. (여행을 좋아한답시고 돌아다니기는 하는데, 좋다. 죽인다. 술 가져와라. 이런 말만 남발하는 나님을 반성하게 하는 이 깊이!)

 

4부와 5부는 영화와 연극 감상기, 문학관 기행기다. 5부는 여느 다른 에세이집에서 볼 수 없는 특화된 꼭지다. 최명희 문학관, 요산 김정한 문학관, 이병주 문학관을 다녀와서 그녀가 성심을 다해 쓴 글들인데, 문학관이라 하면 떠오르는 어쩔 수 없는 진부한 감상들을 깨는 반전이 있다. 문학관 하면, 내가 가진 이미지는 잊혀지고 죽어 있는 공간이다. 하지만 그녀는 그런 공간을 가보고 싶은 곳으로 바꿔 놓았다. 그 사람을 알고 사랑하고 공감하려한 그 다감함에 다시 한 번 그 작가에 대해 그 작품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감정이 드러나지 않은 탐방기 정도에도 그녀의 문학에 대한 열정이 고스란히 읽혔다.

 

 나는 보랏빛 우체부가 되고 싶다

 기산여고 3학년 때 전국문예콩쿠르에서 장원으로 당선 된 수필 <우체부>의 결문이다. 여고생 특유의 몽상가적 문장으로 보이지만 전체적으로 최명희는 우체부가 주는 "흐뭇하고 서민적인 평화를 좋아한다"고 썼다.188

 

전시실 안쪽으로 좀 더 들어가면 작은 나무책상이 창가에 덩그러니 앉아 있다. 그 위에 명함과 메모지가 방금 누군가의 손이 닿은 것처럼 놓여 있다. 가운데에는 꼼꼼히 기록하여 만들어 둔 단어장들이 누렇게 빛바랜 색을 하고 열람되어 있다. 작품 속에 낱낱이 드러나는 향토색 짙은 단어와 생생한 현실의 언어는 이런 꼼꼼한 습관으로 이루어진 것이었다. 204

 

그녀의 글은 전체적으로 깔끔하다. 하나의 사물, 하나의 사건, 하나의 풍경을 보더라도 그녀는 다각적인 사유를 한다. 그런 겹을 깔끔한 문장에 다 담아내려는 그녀의 열정은 처음 한 두 편에서 좀 어색하게 다가오기도 했다. 논리적이고 명징하기만 문장을 구사하기에 그녀는 너무 예술적인 감성을 가지고 있다고 느꼈다. 다음 책에선 그런 감성이 좀 더 산만하게^^ 펼쳐지길 기대해본다.

 

 세상에 생산되어지는 모든 것은 궁극의 쓰레기다. 박경리처럼 박완서처럼 쓸 것 아니면 글을 써서 세상에 내는 것은 죄를 짓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왕 태어난 거야 할 수 없지만 가능하면 지구한테 죄 짓지 말고 조용히 덜 남기고 가자 했다. 그렇다면 그녀는 쓰레기를 생산해낸 것일진대, 나는 지금 쓰레기 앞에서 숙연하다. 그녀의 책이 나오고 내가 그 글을 읽고 그녀가 누군지 알겠고, 또는 모르겠고, 여기서 거기서 과거에서 현재로 이렇게 마음을 나눌 수 있다니 공감하고 찡하다. 어떤 한 문장에서 맺힌 게 풀어지고, 그냥 좀 더 살아볼까하는 생각이 든다. 요즘 좀 위로가 필요했다. 이런 내 마음을 떼어가고 또 보태주는 책이 있어 다행이다. 친구가 있어 다행이다.

 

(음..다시 읽어 보니 내가 그녀와 백만년전쯤부터 알고 있고, 백 번쯤 만난 친구라고 오해할 만한 글이다. 나는 그녀와 서재지인이고, 한 달여 전 야나문에서 있었던 소심한 출판기념회에서 딱 두어 시간 얼굴을 마주했을 뿐이다. 그렇다고 이 글이 뻥은 아니다. 나름 직관과 토..통...찰..력..을 동원..해 썼을 뿐....   (..  ). 그렇다. 그녀와 나는 책으로 오래 오래 만났다. 백 번쯤이라고 해도 비밀이나 거짓말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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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2-12 11: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2-14 12: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yureka01 2016-02-12 11: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실시간 답글..감사합니다..^^..아 일해야 하는데 알라딘 이웃분들 서재만 돌아다니네요 ㅎㅎㅎㅎ

2016-02-12 11: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꿈꾸는섬 2016-02-12 17: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좋아요를 백만번은 누르고 싶은 리뷰에요.^^

2016-02-12 17:05   좋아요 0 | URL
군더더기란 표현 적확하지 않아 수정하고픈데 집이 아니라. 난감. 제 뜻은 전달 된거죠? 어휘를 넘어선 ㅋㅋ

꿈꾸는섬 2016-02-12 17:08   좋아요 0 | URL
깊은 사유..풍성한 나무..충분히 공감가는 이유이긴한데 역시 군더더기는 부정적으로 보이긴 하네요.ㅎ 어떤 단어로 바뀔지 궁금해요.

2016-02-12 18: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2-14 06: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2-14 12: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2-14 13: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About Coffee 어바웃 커피 어바웃 시리즈 1
쇼노 유지 지음, 박문희 옮김, 히라사와 마리코 그림 / 디자인이음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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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랍게도 커피를 맛있게 끓이는 마법은 누구나 가지고 있다.

그럼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커피 이야기를 시작해보자.

 

로 시작하는 <어바웃 커피>는 정말 심플한 책이다. 책의 두께, 내용, 그림을 보자면 그리 '본격적'이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핵심을 이렇게 알기 쉽게 간단히 말 할 수 있다면 그는 분명 고수이다. 많이 알고 오랜 경험이 있다고 해서 누구나 이렇게  요약 정리를 잘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커피에 관심은 있지만 딱히 어딘가 등록해서 배우거나 할 만한 시간이 없거나

오프에서 수업을 들을만한 열정까지는 가지고 있지 않거나,

본격적인 커피 공부 이전에 한 번 전반적인 것을 훑어 보고 싶거나

여러 책을 읽어도 내용은 많은 데 머릿 속에 정리되지 않아 답답한 분들이 읽는다면 좋겠다.

 

심플한 일러스트와 짧은 문장들 작은 사이즈.  찬찬히 도구를 살피고, 이렇게 가만히 따라해보면 굳이 선생님을 찾지 않아도 나만의 커피를 만들어 마실 수 있겠다. 그러다 기회가 되어 커피를 실전에서 배우게 된다해도 여기서 썩 그렇게 더 나가지 않는다. 이게 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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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실 2016-01-23 11: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호 굳이 샘을 찾지 않아도..라 끌리네요. 요즘 핸드드립에 뿍 빠져 살거든요^^
 
여행자의 인문학 노트 - 스페인에서 인도까지, 여행에서 만난 사람들
이현석 지음 / 한티재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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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슨,

스페인의 남부 안달루시아 지방은..으로 시작 되는 윌슨 편. 윌슨은 어릴 적 읽었던 소년생활 칼라북스 셜록 홈즈 시리즈의 친구 왓슨을 닮았다. 그 시리즈 일러스트가 뇌리에 남아 있는데 여행자의 인문학 노트의 일러스트와 느낌이 비슷해 특별히 정감이 갔다.

 

스페인의 남부 안달루시아 지방이라..이쯤 되면 지도책을 펼져주는 센스~ 스페인에서 인도까지 여행에서 만난 사람들이란 부제를 달고 있다. 여행에서 만난 사람들? 쯤에서 기대하는 기대치가 있기에, 첫 장을 읽는 순간 책장을 덮을 사람들이 있을 수도 있겠다. 왠~가벼운 여행기가 아닌가벼..저자는 사람 이전에 지역의 지리와 역사를 더듬고 있다.

 

뒷면에 있는 소개글 첫 문장이, 여행하며 공부하는 바보들이 있습니다. 이다. 달리 말하면 공부하지 않고 여행하면 재미가 없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겠지. 그냥 다니기만 하는 여행은 밍숭맹숭하다. 그래서 과거를 오늘에 비추어 보며 사유를 확장하는 이런 글.. 읽으며 지도를 보고 싶게 하고 생각하게 하는 글을 읽는 것이 몸을 움직이는 여행이 낫다는 생각도 든다. 삶을 돌이켜 보게 하는 찜찜함은 있지만, 이런 다소의 불편함을 일깨우는 것이 책을 읽는 이유이기도 하다.

 

여행에서 만난 사람들을 이야기하며 이런 사유들이 따라 나온다는 것이 작가의 내공이고 공부의 흔적, 작가의 용어대로 따르자면 살아 온 인생사 삽질의 총체라하겠다. 역사와 건축에 관심이 많지만 지구력이 딸려서 역사책은 못 읽는 나. 여행이야기 틈새에 끼워 넣은 역사적 사실로 여행서를 읽으며 공부가 되는 이런 스타일의 책이 감사할 따름이다.

 

"마주치고 싶지 않은 과거가 기억날 때가 있다. 그리고 그런 기억은 의도적으로 지우려고 애쓸수록 다시금 생각하게 되고, 생각할수록 기억은 또렷해진다. 사랑에 대한 기억은 이러한 아이러니를 가장 극적으로 보여준다. 우리는 모두 한두 번쯤 지옥 같았던 시간이 있었고, 그때 분명 그것을 지옥 같다 생각했음에도 생각할수록 또렷해지는 것은 고통과 함께 했던, 혹은 그 이전을 장식했던 아름다운 기억이다. 그러다 보면 우습게도 지옥이 천국으로 환원되고 허우적거렸던 시간이 아름답기만 한 순간이 온다.시야의 바깥은 진창이 되었음을 알면서도 그 시간에 대해 하염없는 감상에 젖게 된다. 부질없이 옛 기억을 또렷하게 만드는 것을 두고 우리는 '전문용어'로 삽질이니, 꼴값이니 부르게 되는 것이다."

 

이 책에서 가장 이 책 답지 않은 부분을 옮겨 적는 이유는 '삽질'과 '꼴값'이 마음에 훅 들어왔기 때문이다.

 

" '뇌가소성'이란, 같은 생각이나 행위를 반복할수록 대뇌피질에 그것을 기억하는 회로가 생기는 것을 뜻한다. 지우고 싶은 기억을 지우기 위해 끊임없이 그 기억을 떠올려야 하는 역설은 왜 사람들이 사랑을 하고 나면 '삽질'을 했다고 고백하면서 '꼴값'을 떠는가에 대해 설명해준다. 그러나 삽질이니 꼴값이니 업신여기면서도 하게 되는 것, 그것도 사람의 일이다."

 

멋있다. 심지어 삽질이니 꼴값을 없신여기지도 않은 내 마인드. 살면서 얼마나 삽질과 꼴값을 반복할 것인가. 인생아.

 

"이베리아 반도는 프랑스와 접한 부분을 제외하면 사면을 바다가 두르고 있지만 유라시아 대륙의 서쪽에 붙어 있기에 여름철 무역풍을 타고 불어 오는 바람이 무척 건조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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