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 원두와 보헤미아 원두를 탈탈 털어 마지막 커피를 내렸다.온 가을 내내 겨울까지 어느 분의 호의가 멀리 이름모를 사람들의 모임 자리를 향내나게 하였다.
감사하다.

어제 도서관 강의에서 우연히 알게 된 분이 어깨를 톡톡 두드리시더니 건넨 시집 한 권.
제목을 보고 소름 돋았다.

나의 해바라기가 가고 싶은 곳.

나의 해바라기라니.
나의 해바라기라니.

나는 해바라기에 대해서라면
정말 할 이야기가 많다.
그래서 아무 말도 할 수가 없다.
시집은 아직펼쳐보지 않았지만
이렇게 또 하나의 감사가 쌓여가는 겨울 날.


댓글(0)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그것보세요, 공작. 제노바도 루카도 보나파르트 일가의 영지, 영지나 다름없이 되어버렸잖아요. 미리 말씀드려두지만, 그래도 전쟁 같은 건 없다고 하시거나 반그리스도의(정말 저는 그자가 반그리스도라고 믿고 있어요) 추악하고 무서운 소행을 변호라도 하실 생각이라면, 저는 당장 당신과 절교하겠어요. 당신은 더이상 제 친구도, 당신이 늘 입버릇처럼 말씀하시는 제 충실한 노예도 아녜요. 어쨌든 잘 오셨습니다. 잘 오셨어요. 제가 당신을 놀라게 해드린 것 같군요. 자, 앉아서 말씀을 들려주세요."

 1805년 7월 마리야 페오드로브나 황태후를 가까이 모시면서 이름을 떨치고 있던 女官 안나 파블로브나 셰레르는 자기 집 야회에 맨 먼저 도착한 위세 있는 고관 바실리 공작을 맞아들이면서 말했다. (13 )

 

----

 

전쟁과 평화를 읽기 시작했다. 4권이 완간된 기념으로 뭔가라도 하고 싶었고 그 뭔가는 일단 책을 손에 드는 것, 하루에 한 시간 백여쪽씪 읽어보자고 맘 먹었는데, 결론을 말하자면 사흘 동안 백쪽을 못 읽었다. 하루 한 시간씩 투자를 못했고, 다른 책들과 달리 한 시간에 백여쪽 읽기가 안되는 책이었다. 시작부분은 이름과 상황이, 대화부분을 활자를 달리해서 뭔가 가독성이 떨어졌다. 그래도 첫부분 진도가 안나간다는 팁을 미리 들었기에 참고 책장을 넘길 수는 있었다. 40여쪽 지나가니 적응이 되었고, 하루에 시간을 정해놓고 읽기는 부적합한 책이란 생각이 들었다. 하루 지나서 펼쳐보니 금방 또 낯설어졌기 때문이다. 주말에 죽기살기로? 읽어서 두어권씩 읽어 버리는 것이 내겐 맞는 방법인 것 같다.

 

1권은 565쪽이고 3장으로 되어있다. 각주가 자세히 달려 있는 편인데, 처음에 아예 각주를 좀 따로 읽고 책을 읽는 것도 좋은 방법일 듯하다. 첫 부분과 각주 1)을 읽고 들머리를 장악해버리면 읽기가 좀 쉬워진다. 시간과 체력을 핑계로 송년모임은 거의 고사했는데, 연말연시에 읽기로는, 왠지 '전쟁과 평화'가 넘 어울린다. 겨울밤에 읽는 소설로 모양새가 그만이다. 기쁘고 즐겁다.

 

------

 

 

주1) 1~5장에서는 1800년대 초 페테르부르크 상류사회 살롱의 생활상이 재현되고 있다. 안나 파블로브나 야회에 온 손님들의 대화에는 조정의 정통주의자적 페테르부르트 사회"'유행''시사 문제'가 반영되어 있고, 특히 이시기 유럽의 정치 투쟁과 관련된 역사적 사건의 반향을 느낄 수 있다. 이탈리아와 이집트 원정에서 군인으로서 명예를 획득한 나폴레옹은 1804년 황제의 칭호를 받아들이고 새로운 전쟁을 준비하면서 노골적으로 영토 침탈을 감행했다. 그는 1797년 첫 이탈리아 원정 때 제노바를 점령해 리구리아 공화국에 분여했고, 1805년 점령지 공화국을 이탈리아 왕국으로 선포한 뒤 스스로 이탈리아 왕이 되었다. 1799년에 침탈한 루카는 1805년 그의 여동생인 엘리자와 그의 남편인 바키오치에게 분여했다.(567)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아버지의 유산이 출간 되었다는 걸 알고 너무 기뻐서 바로 주문을 했다. 가 아니라 내가 지금 이런 걸 읽을 때가 아니지 하는 마음으로 책사기는 있는 뒤로 미뤄 둔 상태다. 당장 급한 책들만 e북으로 읽거나 도서관 가는 사람에게 부탁해서 읽는 정도.

 

그럼에도 불과하고 어쩐지 허전한 마음과 '아버지의 유산'을 읽기 전에 뭔가 로스를 정리해 두고 싶어서 머리 맡에 있던 '에브리맨'을 읽었다. 로스의 책들은 하도 몰아치듯이 읽어서 '미국의 목가'나 '네메시스','나는 공산주의자와 결혼했다','포토노이의 불평','전락'을 제외하곤 글의 내용이 머릿 속에서 뒤죽박죽 섞여있다. 다시 찬찬히 읽고 싶은 이유다. <에브리맨>을 읽으면서 <에브리맨>을 읽은 것을 알게되었고, 이제 확실히 <에브리맨>의 줄거리를 기억하게 되었다. 그래서 내가 아직 못 읽은 로스 책이 <콜롬버스여 안녕>과 <휴먼스테인1,2>라는 게 인식이 되었다. 그전에는 읽은 책과 안 읽은 책들이 오락가락 종잡을 수 없었는데 그나마 시험기간에 책상정리한 효과가 이나마는 있었다고 해얄까.

 

'500days in Ireland'라는 작은 활자에 끌려 <너는 어떻게 나에게 왔니>를 들춰 보았다.

 

'가장 낮은 곳에서 세상을 바라보던 그 때, 소외도 괴로움도 외로움도 없었던 나의 500일. 동화 같은 세상에서 겪은 진찌 동화 같은 나의 이야기'

 

'키 작은 동양 소년이 꼬박 이틀에 걸쳐 도착한 유럽의 작은 마을, 여기저기 들려오는 음악 소리에 마음이 진해지던 곳, 다섯 채의 집과 끝없이 펼쳐진 들판. 검은 밤하늘에 흐르던 은하수와 별빛이 가득 채운 나의 마음. 깊은 밤을 날아 적어 내려가던 작은 일기들을 보며 다짐하던 일'

 

'올리버가 잠들기 전에 나는 항상 오늘 하루 있었던 일을 이야기해주었다. 우리가 오후에 산책을 하면서 본 개미떼 이야기, 젖소가 새끼를 친 이야기, 내일은 비가 올 거라는 이야기, 오늘 만든 핫초콜릿은 영 맛이 없었다는 시덥잖은 이야기까지. 새로울 것 하나 없는 이야기들로 마무리 짓던 밤, 우리에겐 늘 내일이 찾아 올 거라는 믿음이 있었다. 시시콜콜한 내일도, 지루한 모레도, 꼭 찾아 와주길 바랬다'

 

<너는 어떻게 나에게 왔니>는 군대를 다녀 온 이십대 초반의 한국 청년이 영국 시골의 장애우공동체마을에 가서 지낸 일상의 순간들을 담백하게 묘사하고 풍경과 마음을 잘 그려낸 감동적인 에세이었다.

 

<한 걸음씩 걸어서 거기 도착하려네>는 봄에 나온 나희덕 시인의 에세이집인데, 나란히 꽂혀 있길래 손에 들었다. 여는 시, '길을 그리기 위해서는'의 마지막 단락이 책의 제목이 되었다.

 

길을 그리기 위해서는

마음의 지평선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는 것

누군가 까마득히 멀어지는 풍경'

그 쓸쓸한 소실점을 끝까지 바라보아야 한다는 것

 

나는 한 걸음씩 걸어서 거기 도착하려네

 

중년의 시인은 길 위에 있는 사람으로 보인다. 짧은 글들의 면면이 여행의 경험을 살린 차분한 글들이다. 쿠사마 야요이 전시회를 본 소회를 적은 '소멸의 방'이나 고흐와 안네 프랑크, 카프카의 방들을 엮어서 이야기한 '그들은 방 속으로 걸어들어갔다' 처럼 한 가지 주제를 엮어서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은 그만큼 아우를 수 있는 공간을 다녀 보았다는 것이다. 어떤 이야기를 꺼내도 가지를 다섯 갈래는 칠 수 있을 것 같은 작가의 경험과 사유가 돋보인다. 작가가 직접 찍은 사진들도 잔잔한 글들과 더불어 조화롭다. 연말에 사람 많은 곳을 피해 조용히 있고 싶을 때 이런 책들을 손에 잡는다면 편안한 쉼이 될 듯하다.

 

요즘 곁에 두고 아무 데나 펼쳐서 읽는 <고마워 영화>. 자전거를 탄 소년에 이어 눈에 띈 영화는 '서칭 포 슈가맨'이다. 밥 딜런, 롤링스톤, 엘비스 프레슬리 시대에 공존 했던 가수 로드리게즈에 대한 다큐.

 

그는 자신이 살던 디트로이트에서 음반 두 개를 내고 달랑 6장만 판매되고, 잊혀진다. 그런 로드리게즈의 40년 후 반전의 삶이 펼쳐진다고 하면 적확한 표현이 아니고, 이미 반전의 삶을 살아 왔었다고 해야 하나...배혜경님은 이 영화의 OST를 사서 듣고 주변에도 선물을 했다고 했다고 하는데, 나는 이 영화를 주변인들도 봤으면 하는 열망이 넘쳐서 친한 친구와 중학생이던 딸을 데리고 다시 영화관을 찾았었다. 서칭 포 슈가맨을 본 사람들은 아마 대개 그랬을 것이다. 혼자만 보기엔 너무 아까운 영화. 보는 내내 다 보고 나면 정말 묵직한 감동이 밀려 오는데, 그 묵직함을 저자는 이렇게 정리하고 있다.

 

'기적은 화려한 것도 뜻밖의 기이한 것도 아니다'

 

독서를 한다는 것은, 책을 읽는 것이다. 영화보기도 읽는다는 행위로 묶을 수 있는 '어떤 움직임'이다. 그 행위들이 자신의 삶에서 구체화 되었을 때 비로소 읽기에 의미가 부여 되는 것 같다. 고마워 영화를 읽으면서 저자는 영화 읽기나 책 읽기가 자기 삶에서 구체화 되는 분이라고 느꼈다. 한 행위가 다른 행위로 전이되고, 보다 더 구체화되어서 삶에서 녹아 날 때 비로소 살아 있다고 말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읽는다 라고 감히 말 할 수 있으리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고마워 영화>의 목록에서 젤 먼저 눈에 들어 온 영화는 '자전거 탄 소년'이었다. 누군가 내게 좋았던 영화를 추천해 달라고 한다면 랭킹 안에 들여 놓을 그런 영화. 지금은 <플랑드르의 화가들>을 읽고 있어서 벨기에 출신 감독이 더 친근하게 여겨지는데, 영화를 볼 당시에는 너무 서늘하고 엔딩이 슬퍼서 마음이 착 가라앉았더랬다. 구차하게 설명하지 않는데, 말해지는 그리고 다 보여지는 영화가 '자전거 탄 소년'이었다. 이런 풍경을 배혜경님은 이렇게 표현했다.

 

'다르덴 형제의 언어가 다정하고 곰살맞게 변한 건 아니다. 말을 아끼고 감정은 헤프게 드러내지 않으며 아무렇지 않은 것 같은 장면도 가만히 응시할 수 있게 한다. 무심한 말과 말 사이, 평범한 듯 빛나는 장면과 장면 사이에서 읽히는 감정의 결이 미세하다. 하루하루 생계를 위해 열심히 노동하며 쉽제 않게 살ㅇ아가는 소시민들의 모습과 팍팍한 현실에 굴하지 않는 사람들을 담아내는 것도 여전하다' 26쪽

 

'무심한 말과 말 사이, 평범한 듯 빛나는 장면과 장면 사이에서 읽히는 감정의 결이 미세하다.'정말 그렇다. 무심한 말과 말 사이, 평범한 듯 빛나는, 미세한 감정의 결이 돋보이는 영화가 다르덴 형제의 <자전거 풍경>이다. 두 번을 봤는지 비교적 장면 장면이 섬세하게 기억이 나는데, 이렇게 글을 읽으며 복기할 수 있어서 세 번 본 기분이 된다. 아, 참 좋구나.

 

도서관 반납 기일이 가까워서 어제 급하게 읽은 <플랑드르 화가들>-네델란드 벨기에 미술기행도 참 괜찮은 책이었다. 도서관 신간 코너에서 제목이 땡겨서 빌려 온 책인데, '화가들'에 관한 이야기라기 보다 '플랑드르 화가 12명의 삶과 작품을 따라 네델란드 벨기에의 도시들을 탐색한' 이야기였다. 개인적으로 피터르 브뤼헬의 화풍을 좋아해서 그의 나라나 그의 주변 화가들에게도 관심을 가지는 편인데, 그런 호기심을 충족시켜 주었다. 화가의 고향 마을을 둘러보며 이런 저런 인문적인 지식을 설명듣는 듯한 인문기행서의 느낌이다.

 

렘브란트는 고향 레이덴이 수로가 발달한 도시여서 풍차 방앗간이 많았고, 렘브란트는 방앗간 집 아들이었다. 평생 가난하여 물감 살 돈이 없었다는게 내가 가진 렘브란트에 대한 기억이었는데, 그 가난의 배경을 알 수 있는 서사가 흥미로웠다. 렘브란트는 서민 가정에서 태어났으나 어린 시절 운좋게 잠깐 귀족 교육을 받았고 평생을 귀족의 취향대로 살았기 때문에 돈이 없었던 것이다. 렘브란트의 수집 취미가 그림을 그리기 위한 것이었는지 단순한 수집 취미였는지 확실히 나와있지 않아서 렘브란트 개인을 더 깊게 파보고 싶은 호기심이 일었다.  렘브란트 자신은 이탈리아 유학을 한 적이 없지만 두 명의 스승이 모두 이탈리아 유학파 출신이었고, 카라바조의 제자들이었다. 유럽의 북쪽 끝에 살았던 렘브란트가 어떻게 남쪽 끝의 카라바조의 화풍과도 연결되는지 알게 하는 대목이었다.

 

외에도 고흐, 프란스 할스, 얀 반 에이크, 헤에로니무스 보스 등등 꼭지 꼭지가 모두 읽을거리가 넘쳤다. 도시건축을 전공하고 지금 네델란드에 거주한다는 저자의 글솜씨가 예사롭지 않아 찾아 보니 <터키 과자> 번역자이기도 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서재질을 하면서 느끼는 재미 중의 하나가 이런 경우이다. 알라디너님들의 새 책 출간소식을 들을 때.
두 해전 앵두를 찾아라를 읽으며 공감하고 힐링 받았는데 어느 새 이렇게 또 한 권의 책이 묶여 나왔다. 51편의 영화이야기니 시절과 사연이 고루 담겨 있음은 물론이겠다. 한 번에 통독이 가능하지도 않거니와 그리 읽으면 오히려 의미가 반감될 듯 해서 두고 두고 야금야금 읽으며 다시 힐링 받으련다. 멀리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든든한 맏언니 같은 프레이야님의 출간을 진심으로 축하드린다.

저는 10편 정도 본 영화네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