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서니 호로비츠가 쓴 소설 《맥파이 살인 사건》(열린책들, 2018)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누가 한 말인지는 몰라도 책으로 인생이 바뀌려면 떨어지는 책에 맞는 수밖에 없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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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보현 작가는 "좋은 사람을 알아보고 좋은 사이가 되면 점점 더 좋은 사람들을 만나고 생활이 풍성해진다"고 말했다. 나는 첫 책을쓰며 이 문장을 고스란히 옮겨 적었는데 여러 사람이 이 문구에 공감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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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선과 위악은 간단하게 나눌 문제가 아니지만, 위선이 위악보다 나았던 이유는, ‘선을 위조한다는 것‘은 적어도 위조해야 할 선이 무엇인지를 인지하기에 가능한 것이라 상대와 ‘선‘에 대해 따로합의할 필요 없이 엇비슷한 선상에서 대화할 수 있어서다. 그리고 위선을 부리는 사람은 대개 자신에 대한 타인의 평가를 아주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에 웬만하면 타인의 말을 귀담아들으려 노력한다.
반면, 선이 무엇인지 모르거나, 설령 안다 한들 그것을 위조라도 하려는 노력이 전혀 없고(그렇다. 선을 위조하는 데에는 큰 노력이 필요하다), 아무런 포장 없이 자신의 마음 밑바닥을 그대로 드러내는 것을 솔직함의 미덕
"이라고 여기는 사람과는 일단 말부터가 통하지 않았다.
서로 윤리관이 전혀 달랐다. 그런 부류의 사람을 볼 때마다 가끔 나는 ‘위악‘이라는 말이야말로 위선적으로 느껴지곤 했는데, 어떤 의도에서든 바깥으로 방출하는 행동이 ‘악‘이라면 그건 그냥 ‘악‘일 뿐인 것을, ‘위악‘이라는 말 뒤로 숨는 것 같기 때문이다 - P57

 그게 가식이거나 말거나 한번 시작한 이상 앞으로도 대범한 척, 마음 넓은 척하는 가식을 부리는 데에 최선을 다해볼 생각이다. 가식의 단계에 얼마나 오래 머무르게 될지 모르겠지만, 그 단계를 넘어 진짜 대범한 사람이 될 수 있을지모르겠지만, 뜻하지 않은 ‘위선 권장 영화들에서도 문제는 늘 위선을 벗었을 때 생기지 않는가. 영원한 위선은 결국 선으로 남을 테니까, 이 위선과 가식이 헐거워져서 쉽게 벗겨지지 않도록, 위선과 가식으로 아주 똘똘뭉쳐 살고 싶다. - P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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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목놓아 울 수 있는 자기만의 바다가 필요하다.

누구나 목놓아 울 수 있는 자기만의 바다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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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이라는 옷수선?집
외계인
우주여행


다시, 다시, 다시 태어나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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