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에 손바닥을 대본다 예서의시 18
박천순 지음 / 예서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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꽁꽁 언 겨울이 머뭇거리며 사라져 가는 1월

굳은 내 맘속에도 연초록의 씨앗 조심히 품는 계절이다.

어쩐지 그간 한 번도 시가 고파온 건 겨울은 아니었는데..

불현듯 짤막하고 농밀한 글의 뭉치가, 운율이, 시상이 궁금해져 선택하게 되었다.

시집은 아마도 처음 서평 하는 것 같다.

이번 책으로 알게 된 시인 박천순의 시집은 5부로 나누어져 있다.

1부에는 제목에 쓰인 대표작 '나무에 손바닥을 대본다' 가 수록되어 있다.

시의 마음이 계절이라면 봄이 가진 설렘처럼 사랑과 희망의 암시가 녹아 있다.

가만히 다가가 살을 대야만 느껴지는 미세하고도 확실한 숨결.

그곳에 시인은 손을 얹는다.

다 전송되지 않은 마음들과 눈, 눈. 그 눈의 결정들이 담겼다.

2부에는 1부에서 심어둔 시의 씨앗들이 움튼다.

빗 망울들이 구름이 되기도 하고 후드득 떨어진다.

'사랑의 눈동자', 회담 숲의 편지, '허밍 버드', '노부부' 등에서 느껴지듯 사랑을 가만히 들여다본다.

그리고 긴 응시와 피어남. 마음껏 흐드러지는 느낌. 그 속에서 가을 같은 이별 또한 만난다.

3부에 접어들면 겨울은 마음 깊이 숨어지고 어딘가 새로운 봄이 먼저 온다. '발효되는 것'(시인의 표현)은 아픔으로 피어나는 미지의 영역 어디쯤이었을까? 아픔에 무뎌지는, 더뎌지는, 표현이었으리라.

시 '리셋'(p88)처럼, 조금씩 흐트러진 선들을 천천히 다듬어 나간다.

4부에는 안개가 사라져야만 떠오르는 말간 아침처럼 일상의 새로움을 발견한다. 우연히 느껴지는 포착이 아닌 무수한 관찰에 의한 발견임이 표현에 스며있다.

5부에는 봄을 열망하는 마음이 가득하다. 봄은 아마도 사랑일까? 한 편의 시로 꽃피울 글과 형용사들일까. 나날이 새로워지는 삶의 단면일까.

새로운 캔버스를 준비하는 느낌이었다. 버리는 것이 클수록 얻는 것 또 한 크다는 어느 스님의 말이 생각났다. 많은 것들을 털어내고 새 '면'을 준비하며 끝과 시작을 함께하는 암시.

빠른 호흡보다는 느긋하게 즐기고픈 글감이 바로 '시'이기에

시를 한 번에 몰아 읽는 것은 내가 생각하는 음미에 맞지 않다고 생각되긴 했지만. 책을 읽는 동안

어느 날은 여러 시가 후두둑 들어와 안기기도 했고 또 어떤 날은 시 한 편으로도 책을 덮기도 했다.

해서, 시가 도착 한지 꽤 오래 되었음에도 이제야 서평을 남긴다.

시인의 시상은 여기저기에 콕콕 숨어 있었다.

흐드러지는 사랑이 피고 지고

삶의 기운과 여운이 어우러지는 듯

따로 또 같이.

그녀는 장마 속에도, 검은 아침과 비가 가득한 커피 잔 그 안에서도 일상의 세밀한 감각을 애타게 찾는다.

4부 '초록 시집'의 나비들처럼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시상을 향한 화자의 고찰이 여기저기 묻어 있었다.

전체적으로 어떤 한 편의 시가 짜릿하게 전이되지는 않았지만 부분 부분 섬세함이 잘 숨어 있어 보석을 발굴하곤 했다.

나는 시집에 담긴 시를 눈이 아닌, 소리 내 읊기도 했는데 이윽고 말을 걸어오는 시 때문에

질문과 생각이 빗발치는 사색의 순간은 분명 즐거움이었다.

오랜만에 만난 시집 한 권. 누군가의 머리맡에 가볍게 놓아 주고 싶다.

시인의 글 사랑이 느껴지는 대목이 있어 조금 옮기며 서평을 줄인다.


‘마법의 달이

발밑에서 떠올라도

별이 이마를 때려도

머리를 열고

하늘을 보는 거야



모래알보다 많은 글씨가

지평선에

신기루로 떠오르면



한 줄 한 줄 읽으며

한평생 걸어가는 거야‘



- p84~ 85 ‘읽기 쓰기‘ 중 일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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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장사의 신이다 - 일단 돈을 진짜 많이 벌어봐라 세상이 달라진다!
은현장 지음 / 떠오름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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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마음 한편에는 부자에 대한 꿈의 기억이 있었으리라.

나는 살면서 카페 알바를 했던 기간이 인생에서는 참 정겹고 추억에 오래 남았는데, 아마도 이 즈음인 것 같다.

언젠간 나도 작은 나만의 가게를 차려 직장에서 버는 정해진 돈이 아닌 소소한 '중박' 정도 일궈보고 싶다.라는 흔한 맘을 품은 것이.

하나 세월은 전혀 상관없는 일로 오늘까지 흘러왔다. 아주 빠른 속도로.


나는 자영업자가 아니다. 하지만 직장인 역시 아니다. 돈을 버는 형태 자체는 다르겠지만 누군가 먼저 걸어간 부자의 길이라니 궁금했다.

사실 '은현장'이 누군지도 몰랐다. 제목을 보고 자수성가 한 사업가인가? 정도를 유추했는데 맞았다. 그는 내가 사는 나라에선 보기 드문 자수성가 한 분임에는 틀림없었다.

책은 우리의 예측대로 그가 걸어온 인생에 대한 과거와 현재 그리고 부자가 되기 위한 '마인드맵' 이 담겨있다.

기본적으로 '형은 말이야'의 느낌이다. '존나게' 라는 표현이 더러 있어 거친 느낌으로 읽혔고 문체가 강경했다. 하지만 맥은 있다.


편안하게 말하는 듯하지만 고민과 격정의 노동. 그리고 무수히 노력한 흔적이, '제대로 버텨라! 버텨야 이긴다'와 '불이 꺼지지 않는 가게', '일만 잘하는 것보다 성실함도 필요하다' 등에서 잘 드러난다. 진정성, 노력과 인내 어쩌면 다 뻔한 이야길지도 모른다.

4장으로 단원이 나뉘어 있지만 저자가 말하는 비결은 하나로 귀결된다.

행동할 것.

내가 보기에 이 책에서 시사하는 가장 큰 바는 '지금 당장 시작하라'는 사인(sign)이다.


'뜨거운 음식은 뜨겁게,

차가운 음식은 차갑게'

가장 기본적인 것 같지만 가장 어렵다.는 책 속의 말처럼

기본적이고 다 아는 이야기 같지만 그게 사실이고 가장 어려운 것이다.

장사를 한다는 가정하에, 내가 점주라면 현재 장사업 중인 동네의 잘나가는 원탑 가게보다 1시간 먼저 시작해 일하고 1시간 늦게까지 일 할 수 있는 인내와 노력을 가지고 실천하라고 말한다.

두 배 세배 네 배로 노력하는 일. 그의 말대로 컨설팅은 사업 가이드 이기도 하지만 인간 자체에 대한 잔소리일지도 모른다. 모두가 알지만 아무도 안 한는 것. 하지 않아 되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매 파트에서 강조한다.

나는 문득 언젠가 유명 강사가 하던 말이 떠올랐다.

공부 잘하고 싶다고 하는 학생들의 질문에, '공부를 안 하는데 어떻게 잘 할 수가 있느냐'라고 되묻던 아이러니. 그렇다 우리는 어쩌면 답을 이미 다 알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책을 읽으면서 가장 많이 드는 생각은 모두가 어렴풋 알법한, 하지만 생각보다 지켜내기 어려운 기본의 마음. 초심자의 마음가짐이다.

갑작스러운 성공이라는 것은 어디에도 없음을. 강력하게 어필한다.

그럼에도 그의 이야기에는 주목할 만한 다른 하나가 더 있다.

물론 직장인에게도 동일하게 통하는 내용이라면, 100만 원 받고 하는 일이라면 300만 원의 가치를 뿜어내라! 정도로 해석될 수 있겠지만 장사와 프랜차이즈를 운영하는 사람들의 경우에 해당되는 '꿀팁'이 이 책에는 있다.

광고를 어디에 해야 하는지, 소득의 얼마를 해야 하는지, 어떤 사람을 쓰는지, 사실 이런 것들은 배움의 어느 단계에 놓인 학술적인 게 아니다.

살아오면서 터득하는 사람 보는 눈,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통찰. 자수성가를 통해 습득한 사업 노하우. 분명 그만의 철학이 있다.

나는 책을 읽고 저자가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책에 언급된 바 있다)에서 현재 진행형의 그를 보았다.

죽어버린 말과 글만을 나열하는 사람이 아니라 직접 뛰고 있었다. 새로운 사업을 하시는지는 나로서는 정확히 알 수 없었으나 자영업 요식업계 종사자라면 분명 귀감이 되고도 남을 것 같다. 나는 TV를 잘 보는 편은 아니지만 백종원의 골목식당은 소문으로 익히 알고 있다. 비슷한 스타일의 콘텐츠로 유튜브판 골목식당을 꾸리고 있었는데, 이 역시 책에서 그가 추구하는 세계관과 사업관이 잘 녹아 있다. 최근 올라온 영상 속에는 지쳐 쓰러져가는 사업가 한 분이 있었는데 나는 영상을 보다가 울게 되었다.. 사연이 그리 먼 이야기가 아니었기에. 비슷한 아픔을 가진 나는 신청자도 대단하게 느껴졌다. 끝에 다다른 자의 외침. 저자는 대번에 다가가 그들에게 일침 하고(무료 컨설팅 외) 방향을 제시한다. 한치의 머뭇거림 없이 손을 내미는 그야말로 쿨한 모습은 금전적인 도움 그 이상이었다. 누군가를 일으키는 모습은 오래 잔향이 남았다.


문득 내가 애정 하는 몇 개의 가게의 공통점을 생각해 봤다.

모든 게 일치하지는 않았지만 '맛', '친절', '납득 가능한 가격'. 점수를 주는 항목은 기가 막히게 같았다. 사람마다 조금씩 차이는 있겠지만 '감동'에는 서열이 없다.

나도 누군가에게는 손님이지만 또 다른 누군가에겐 일꾼이듯 마음에 고요히 한 포의 영양제를 꽂아본다.


언젠가 내가 하는 일도 멋지게 잘 이뤄 내리라, 나눔에 인색하지 않고 나의 길을 오는 후배들을 위해 귀감이 되는 삶을 살고자 했었다.

나는 사실 내 길에서는 실패한 사람이다. 카페를 꿈꾼 것을 말하는 것은 아니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어쩌면 내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게 이 길이 맞는지조차도 의문이 든다. 요식업계뿐만 아니라 디자인과 일러스트, 그림, 기타 자연을 구하는 생활용품 판매처 등 다방면에서 제2의 은현장, 제3의 은현장이 나오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먼저 성공한 형의 따끔한 안내서 '나는 장사의 신이다'는 지쳐가는 직장인, 자영업을 꿈꾸는 청년, 소년, 중장년 그 누구라도 좋겠지만 아마도 가장 좋은 건 역시 현직 자영업에 종사 중인 사장님(점주)들이 아닐까 생각된다.

부디 유튜브의 선행이 돌고 돌아 선순환이 되길. 또 나아가 멋진 대한민국이 되길 나 또한 아스라이 먼 꿈을 그려보며 글을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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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컬트 미술 - 현대의 신비주의자를 위한 시각 자료집
S. 엘리자베스 지음, 하지은 옮김 / 미술문화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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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침에도 나는 별자리 운세와 띠별 운세를 보았다.(점성술과 별자리) 종종 멀티 게임 블랙 서바이벌에서 '생명의 나무'를 채집하거나 '에메랄드 태블릿'을 만들기도 하고. 우리는 신비로운 마법의 능력을 가진 도구나 게임과 영화에 등장하는 사물과 캐릭터 아이템의 이름으로, 아주 오래전 사상의 흔적이 깃든 이름을 가져와 사용하곤 한다. 가끔 이 시대의 것이 아닌, 색다른 느낌을 주는 사물의 이름을 만날 때가 있다. 그때 느껴지는 찰나의 신비함은 수 세기 전부터 그 신비가 간직된 채 풀리지 않은 인류의 창조적 호기심 때문일까? 가만히 주변을 둘러보면 일상 속엔 오컬트와 관련된 것이 생각보다 많이 녹아 있다.

현재 창조적인 일을 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늘 영감에 목마를 것이다. 그림 그리는 사람, 일러스트레이터 혹은 스토리를 만드는 기획자, 광고 디자이너, 또 각종 예술가들 등... 그 장르라도 아이디어와 호기심이 재료가 되는 창조적 일을 하는 사람은 역사 속 미술 작품에 영향을 미친 재미있는 이야기라니. 게다가 마술과 연금술이라니. 영감의 총체를 지나칠 수 없을 것 같다.


이 책은 읽을거리보다는 볼거리가 많다. 이 볼거리는 단조롭지 않고 다채로워서, 그리고 이 세상의 것이 아닌 무형의 것이라는 공통된 주제를 가지고 있어 흥미롭다. 보는 동시에 생각할 거리 또한 많다. 궁금해진다. 책에서 말하듯 현재를 살아가는 신비주의자를 위한 '시각'자료집임에 틀림없다는 생각이 든다.

책을 다 보고 나면 오히려 분야별로 더 많은 도서를 찾아 읽고픈 갈증이 몽글몽글 거리며 생겨나는 책.

우주, 신적 존재들, 실천자들. 오컬트 미술(The Art Of The OCCULT)는 크게 3부로 나뉜다.

1에는 형태와 기하학, 별과 점성술 그리고 황도십이궁과 연금술. 2에는 미술 속에서의 신, 불멸의 존재, 카발라, 헤르메스 사상이 나온다. 마지막으로 3에는 마법의 약, 마녀와 마술, 심령주의, 미술에서의 점술, 또 의식과 마법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보통 시험의 출제 범위가 그런 것처럼 카테고리의 범주가 방대하면 각 시대의 중요한 큰 사상들만 시험에 출제되듯 책 역시 각 학술별로 유명했던 그림과 작품 위주로 설명이 되어있다. 머리말에서 먼저 볼 수 있듯 책에서는 이 불가사의한 예술적 탐구를 연대순으로 다루지 않고 헤르메스 주의, 연금술, 카발라, 프리메이슨, 신지학, 심령주의 등 오컬트 테마 등을 소개하고, 그로부터 영향을 받은 미술가와 그들의 작품을 소개한다.


국내에서도 너무나 유명한 1490년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비트루비우스 인체도부터 존 컬트 하트의 2017년 아비조우까지. 한 점 한 점 그야말로 다채롭다. 묘하다. 색채와 표현 또한. 어떤 작품은 아이가 그린 것처럼 유연하다. 또 어떤 작품은 원래는 보통 사람이었다가 영적인 존재의 부름을 받거나 듣고 갑작스레 그림과 작품에 뛰어든 사람도 있다. 각 학술과 마술에서 슈퍼내추럴한 현상을 겪거나 동류의 모임에 가담하여 영향을 받은 것이 동기가 된 이런 경우가 세기별로 늘 있어왔던 것처럼 다양한 연도에 발견된다.

사상과 연결된 것들은 그 자체로도 매력적이고 이 매력을 느낀다는 것이 결국은 영감을 준다.

영감은 또 다른 영감 속에서 신비함을 낳고 낳고. 또 낳기를 반복하며 잉태한다. 황도 십이궁과 별자리 점성술은 말할 것도 없다. 우주 창의력의 가장 보편적인 결과물처럼 느껴진다. 어린 시절 지리산 자락에서 본 밤 하늘의 별을 아직도 기억한다. 흙이 느껴지는 땅에 드러누워 바라본 밤 하늘의 은하수. 그때의 감각은 시각과 촉각에서 그치지 않고 일상 너머의 어떤 것과도 연결된 느낌이었는데 도대체 저 반짝임의 저변에는 무엇이 도사리고 있을까 하는 미지를 향한 호기심과 의문. 끝을 알 수 없는 설렘이 있었고 이것은 여전히 해소되지 않았다. 과학적 설명으로는 어쩐지 너무나 부족하기만 한 세상의 묘함. 지금도 대문만 열고 나가면 하늘을 우리는 볼 수 있다. 아무리 바라보아도 너의 신비는 알 수 없는 것. 신비로와 아름다운 것은 또 아닌지.


책에서 흥미로운 작품이야 모두가 그렇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만 특이했던 점은 마녀를 소재로 한 작품 23개로 가장 많았던 것이다.

생에서 가장 아름답고 해로운 것이 있다면 여성일까. 마녀일까. 인상적이었던 그림이 몇 장 있었는데, 가티야 켈리의 '알케미 알케미아'(p81)와 베리 윈저 스미스의 '마녀'(p174)였다.

알케미 알케미아는 마녀는 아니지만 '가장 깊은 어둠 속에도 빛이 있다.'라는 글쓴이의 해석 때문인지 한참 응시했다. 그림 자체가 신비롭기도 했지만 빛으로 묘사된 흰 부분은 2D로 표현된 작품임에도 뭔가가 꿈틀거리는 느낌마저 있었다. 또한 1978년 베리 윈저 스미스의 '마녀'는 보자마자 시선을 빼앗겼다.

정면을 응시하는 마녀의 큰 두 동공과 날개를 움츠린 듯한 모포 아니 어쩌면 어깨가 그렇게 발전한 것일까? 새의 발처럼 보이는 발톱이 있는 발, 주변을 가득 메우는 야생 풀들.

어쩐지 애니메이션 하울의 움직이는 성, 하울이 생각났다.(그도 마법사다) 하울이 힘을 사용한 대가로 저주에 빠져, 우울에 휘감겨 자신의 동굴로 들어가 나오지 않던 장면이 있는데 마치 그 씬과 지독하게도 닮아있었다. 베리 윈저 스미스의 작품에 영감을 얻어 만들어졌다고 해도 흥미로우나 원작자의 상상 속 마법사의 모습이 잘 표현되었다고 해도 흥미롭다. 중요한 것은 분명 마법과 마술 연금술 등은 인간의 예술과 미술의 모터처럼 신비함의 원동력 그 자체임에 틀림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에 담긴 다양한 작품들을 모두 언급할 수는 없겠지만 그 또한 책을 접하는 독자들을 위한 재밋거리로 남기고 싶다.

흥미롭고 신비한 미술 작품은 늘 그래왔듯 한 폭의 그림 속에서도 세월의 내음이 담긴 한 권의 책을 만나는 기분이 든다.

단 며칠 안에 이 책 속에 담긴 그림의 모든 정수를 느꼈다고는 결코 말할 수 없다.

당연하게도 저자의 말처럼 꼭 이 신념을 받아들이고 실천할 필요 또한 없다. 하지만 특별한 그림을 그린다거나 새로운 무언가를 창작하기에 앞서 오래전 우리가 속해 있는 우주에 대한 인류의 끈질긴 고찰과 이해, 이 테마 자체를 평생을 걸쳐 연구한 철학자와 예술가들의 흔적을 밟으며 현재에서도 골몰할 수 있다는 것. 한 폭 한 폭 머물러 사물과 우주를 다른 각도에서 재해석할 수 있는 재미있는 도서다.


무엇보다 시대를 막론한 오컬트 작품들을 한데 모아 한 번에 볼 수 있다니 그만으로도 충분히 소장할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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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우리는 불평등한가 - 쉽게 읽는 피케티 경제학 EBS CLASS ⓔ
이정우 지음 / EBS BOOKS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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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다 읽고 나니 최근 몰입해서 구독 중인 한 유명 건축가 교수님이 떠오릅니다.


이정우 작가, 그러니까 이정우 교수님 역시 명강의를 하신 분으로 보이네요.


경제학이라고 하면 보통은 접할 일이 없을 것만 같았는데, 내가 세상에 나오기도 전에 이미 구현되어 있던 이 세상 속에서, 사회생활을 하며 시간이 흐를수록 제아무리 발 버둥쳐도 내가 꾸던 꿈과는 거리가 점점 멀어지는 것 같았던 날은 늘 있었기에. 그렇다고 해서 '왜 우리는 불평등한가' 스스로 자문한 적은 따로 없었지만. 어쩐지 오래전부터 뼛속 깊이 느끼고 있었던 것은 또 아닌지, 자연스레 제목이 던지는 질문에 응하고 있었습니다.


경제나 정치 분야는 나의 내면과 마찬가지로, 학창 시절 배우는 기본 지식만으로는 이해하기가 어딘지, 한없이, 밑이 깊고 또 먼 느낌이 있습니다. 그러던 중 좋아하는 교양프로를 마구 쏟아내고 있는 EBS에서 경제학을, 게다가 피케티 경제학의 해제라니. 제목을 마주하자, 읽고 나면 내면의 궁금함이 어느 정도 가실 것만 같은 강한 기대감이 일었고 주저 없이 책을 선택했습니다.


샛노란 표지 디자인 역시 시선을 잡았는데, 서로 같지 않음을 보여주는 부등호의 수평선 위에 테이프로 덧붙인 듯한 디자인이네요. '서로 같지 않다'라는 의미를 '불평등'에 비유한 것 같아 왠지 적절했습니다.



책은, 부제 '쉽게 읽는 피케티 경제학'이라는 말 그대로 피게티의 『21세기 자본』과 『세계 불평등의 보고서 2018』, 『자본과 이데올로기』라는 총 피케티의 3부작을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소개하고 방향과 대안 제시에 이릅니다.


구성은 크게 10부로 나뉘어 있고 서문을 보면 '피게티의 불평등'을 주제로 2020년 8월부터 EBS 강연을 바탕으로 한 것이 책의 뼈대가 되었다고 하는데 강의 내용은 아마도 피케티 책이 주력적이었던 것으로 보이네요.



첫 번째 단에서 피케티라는 경제학자에 대한 소개로 출발합니다. 그가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았던 300년 분량의 방대한 자료를 연구하고 한동안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그 유명한 피케티 비율('r>g -β'라는 등식(자본 수익률(r), 국민소득 증가율(g), 부/소득 비율(β)등.), 즉 자본과 소득의 비율, 소득과 불평등의 상관관계를 파헤쳤습니다. 피케티의 이런 놀라운 발견은 몇 개 국가에 국한되지 않고 여러 나라 사이에 유사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 의미가 매우 큽니다.



인류의 세월. 그러니까 1910년부터 2010년에 이르는 세기의 데이터를 토대로 일정 구간 비슷한 U자 형태의 곡선을 그려왔으며 이 U자 형태의 곡선은 자본이 국민소득의 몇 배나 되는지를 나타내는 그래프입니다. 19세기 말 이 자본 대 소득의 비율이 6,7 정도였던 것이 20세기 들어 2,3까지 내려갔다가, 다시 지난 40여 년간 오르고 전 세계적으로 U자 형태의 모습인 것입니다. 자본/소득 비율이 이렇게 올라간다는 것이 의미하는 것은 그만큼 불평등이 심화된다는 bad sign이라고 책에서는 설명합니다. 중요한 것은 이것이 또 반복될 거라는 21세기의 우울한 전망인데 실로 아주 심각하게 느껴졌습니다.



2~3 번째 장에서는 대공황과 뉴딜, 황금시대, 광란의 시대에 대한 이야기와 당대의 대통령들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피케티의 처방, 도금시대, 금권주의에 대한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자본주의 역사의 황금기를 표현하는 각국의 표현들이 인상 깊었는데 우리들이 한 번쯤은 들어보았을 겁니다. 프랑스의 영광의 30년, 독일의 라인강의 기적, 일본에서는 소득 배증, 우리나라는 한강의 기적.이라 부르던 시기를 일컫는 말입니다.



반대로 광란의 시대를 일컫는 '재즈의 시대', '잃어버린 세대'가 있죠. 그리고 가장 궁금했던 뉴딜의 작용과 부작용에 따른 교훈. 그리고 광란의 시대에 꽃피워진 소설과 예술에 대한 것은 가장 불평등의 gab이 컸던 시절 예술이 부흥했던 것인데 인간에게 삶의 고통이 때로는 땔감이 되기도 하는 슬픈 아이러니라니, 역설적이게도 슬픔 속에서 꽃피워낸 예술의 흔적은 인간 특유의 생존을 향한 저항의 한 형태가 아닌가 생각되기도 했습니다.


결국 소득 불평등 그래프와 매우 맞닿아 있었던 '위대한 개츠비 곡선'은 너무나 재미있게 보았던 피츠 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 소설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었는데 당시 사회적 배경을 잘 담아낸 문학작품을 경제학적 관점에서 바라보니 이전에 보았던 소설과 영화 등이 버무려져 이해가 더 잘 되었던 것 같습니다. 이 밖에도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 『고리오 영감』 등 당대의 다양한 문학적 작품들의 언급은 각 시대를 환기해 주며 작가의 의도대로 이해를 도왔습니다. 사실 문학, 도서와 음악, 영화 예술 작품들은 어쩌면 가장 경제학적인 장르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마저 듭니다. 그도 그럴 것이 어느 장르를 막론하고 우리가 살아온 시대적 배경에 경제 상황을 결코 무시할 수 없는 그 때문입니다.



4장에서는 토마 피케티에 대한 각국의 여러 평가와 함께 필자 역시도 평생 오해하며 살았던 '누진소득세'에 대한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경제가 가장 부흥하고 잘 돌아가며 성장률이 높았던 황금시대의 세금이 80퍼센트였다는 사실은 이해 못 할 부분이 아님에도 섣불리 받아들이기 어려웠는데 그것은 아마도 잘못된 정보의 습득으로 살아온 긴 세월과 한국의 정치적 배경이 크게 차지하는 것처럼 생각되었습니다. 그리고 한국의 문제점 중 하나인 경제학 모델에도 이의를 제기합니다. 작가는 한국 경제학과 교수들에게 논문의 개수로 점수를 매기는 방식이 추상적이고 수학적인 모델이라고 이야기했는데 꽤 통감되는 부분입니다. 논문의 질보다 개수에 치중해 점수를 매기는 시스템은 비단 학계에만 있는 것은 또 아니어서, 누가 들어도 의구심이 생길만한 부분입니다.



5장에서 8장에 이르기 까지는 얼마나 세계가 불평등한지, 그 불평등함은 정당한지 도표와 사례를 들어 환기합니다. 이 파트에서 세계 소득 불평등 추이와 부익부 빈익빈의 실존하는 미국과 러시아의 사례도 등장합니다.



6장 부터는 피케티의 『자본과 이데올로기』에 대한 내용을 다루는데, 책이 무려 1,300쪽으로 책에도 소개되었듯 첫 책 『21세기 자본』이 주로 서구를 분석 대상으로 했다면 『자본과 이데올로기』는 세계 전체를 분석 대상인 점이 달랐습니다. 역시 소제목을 언급하지 않을 수가 없는데, 불평등 체제의 역사, 삼원사회의 불평등, 노예제도, 인도의 카스트 등을 통해 얼마나 불평등의 역사가 깊고 오래되었으며 큰 문제였는지를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7장에 이르면 드디어 소유자 사회, 경쟁 지상주의에 관한 내용이 나옵니다. 금권 사회와 비교하면 실력주의가 좋은 것처럼 보이지만 이 또한 맹점이 있음을 시사합니다. 불평등의 이면에는 앞서 언급한 것과 같이 아름다운 예술이 꽃 피는 아이러니가 있었는데, 프랑스의 '벨 에포크'가 여기 나옵니다. 아름다운 시대라. 듣기만 해도 황홀하지만 미국에서는 이 즈음을 '도금시대'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이 또한 우리가 잘 알고 있는 톰 소여의 모험을 쓴 작가의 익살스러운 표현이라고 해서 재미있었네요. 단편적인 감상이지만 책은 각 단원마다 소제목이 붙어 있는데, 그것들을 표지판 삼아 읽는 것과 '강도 남작'이라든지 '도금시대' 등 이런 시대를 대변하는 표현들 또한 저는 이 책의 재미로 느껴졌습니다.



앞서 언급했지만 당대를 대표하는 문학과 작품 천재들의 만남 등에서 오는 동감 요소는 경제를 이해하는 데 사회적 배경을 보태어 이해하기 쉽게 불을 지펴주는 좋은 재료라고 생각되었고, 피케티나 경제학, 연일 보도되는 부동산 투기와 부조리. 또 이것이 왜 부조리인지 이해하기 어려웠던 것들, 그리고 무의미한 논문들을 계속해서 내라고 하는 학교의 시스템, 정치, 잘못된 기사들, 오보, 그것의 방치, 세금, 너무 많은 것에 관여하고 있는 뿌리 깊은 불평등등 다채롭게 각개 분야에 대해 오래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8장부터 10장까지 이 책의 가장 큰 키워드와 대안이 나옵니다. 피케티는 불평등과 민족. 불평등 문제는 재산이라는 단어로, 민족 문제는 국경이라는 단어로. 피케티는 3가지 해법을 제시합니다. 사회국가, 누진소득세 강화, 그리고 세계 자본세. 세계 자본 세는 저로서도 참신하게 느껴졌지만 9장에서 다시 말하듯 자연스럽게 한국 경제가 가야 할 방향에 대해 함께 고민하게 됩니다. ​


장마다 모두 중요한 경제를 이야기하기에 그 내용이 방대하고, 한 개의 단원만으로도 긴 이야기가 가능할 정도로, 그만큼 중요하고 많은 요소를 집약적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피케티가 정리한 자료 자체로도 긴 세월의 통계임과 동시에 세계 각국의 축약이고 추이인 만큼 전제되고 포함해 생각해야 할 사회적 배경과 역사, 문화, 정치적인 것 등이 무수히 많기 때문이라 여겨졌습니다.​



특히 일각의 다른 통계들과 달리, 피케티가 말하는 자본에는 '부동산'이 포함되는 것이 인상적이었는데 우리나라의 가장 큰 문제 중 하나인 부동산 관련해서는 슬프게도 너무나 사실적인 이야기이며 동시에 우울한 현실로 다가오더군요. 아무리 평생을 벌어도 내 집을 가질 수 없을 거라는 시대적 슬픔. 태어나 40여 년 동안 큰 변화가 없었던 것이 사실이니까요. 그래도 희미하게나마 20여 년 전에는 내 집, 내 땅의 자산적 소박한 꿈이 있긴 했었습니다. 자수성가에 대한 환상 역시 있었을 테고요. 막상 현실을 살며 세상에 부딪히며 자연스레 스러져버린 꿈들이기에. 아마 소작농을 닮은 월세의 삶을 강요받는 지금의 청년, 중장년층에게는 마냥 낯선 이야기는 아닐거라고 생각됩니다.



문제적 세기를 떠나 세습 자본주의의 악영향만큼 그에 대한 저항의 몸부림 또한 미약하게나마 계속 시도 되어 왔다는 것 또한 통계를 통해 알 수 있었는데 그 시도 자체도 실패한 루틴을 반복하고 있다는 점이나 실력주의와 불평등. 부와 계급의 독점, 형태만 바뀐 채 반복 상속되고 있는 세습적인 자본주의 관습 때문에 많은 이들에게는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다는 사실, 이 모든 것을 재인식 할 수 있었습니다. 개개인이 깨어나고 인식해야 하는 부분이 많다는 것 또한. 점진적이나마 제도와 체제가 바뀌어 간다면, 정치와 시스템이 절대 이상과 꼭 같을 수 없다 하더라도 피케티가 보았던 지난 어느 황금시대가 다시 돌아오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꿈을 꾸어봅니다.



​책을 통해 피케티의 경제학적 관점과 통계 자료의 분석, 불행에 기여하는 경제적 사실, 그리고 불평등. 무지로 살아온 시대에 대한 새로운 시선까지. 아나키스트, 야경국가, 잊고 있던 스코틀랜드 민요 '애니로리' 까지. 굳어 있던 어느 감각을 다시 누른 것처럼, 애매하게 알던 것을 자각하고 정립할 수 있는 자료가 되어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무엇보다 소득의 재분배, 분할의 방식에 따라 결과값이 달라지는 것 만큼은 과거를 통해 알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어쩌면 현실을 똑바로 마주 보고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사실 아무것도 몰랐던 것은 아닌지, 또 어쩌면 세상을 바꿀 수 있는 기로에 서서 과연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지 생각해 보았던 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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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리 이야기 - 집고양이 릴리, 길고양이가 되다
윤성은 지음 / 북스토리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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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고양이라든지 길 고양이 라던지의 이야기는 아니라 말하고 싶습니다만

사실 둘 다이기에, 그저 한 고양이의 사랑이라고 할까요?

'릴리 이야기'는 길에서 만난 '사랑(사람)과 함께 살다 어느 날 집을 벗어나 잠시 모험을 감행했다가 돌아온 고양이를 보며 집사가 생각했을법한, 고양이들의 이야기를 냥(릴리) 시점에서 써 내려간 이야기입니다.

'사랑'이라는 사람을 우연히 만나 이름처럼 사랑에 물들고, 이내 그녀의 할아버지가 릴리의 집사가 되지만

그마저도 오래되지 않아 '모험'이라 이르는 고양이의 가출로 이어집니다. 집을 떠난 릴리의 이야기, 그 끝에는 사람과 고양이가 교감하게 된다면 사람들 사이의 우정처럼 동물도 똑같이 느끼기에 집사에게 스스로 돌아온다는 설정입니다.

할아버지에게 돌아왔을 때는 이미 새로운 집사가 릴리를 기다리지만, 그 마음만큼은 우리가 충분히 느낄 수 있는 따스함을 품고 있었네요. ​

이 이야기에는 사람의 생이 짧아 보이지만 사실 고양이의 생이 집사보다 먼저 끝나곤 합니다. 그들의 인생 시계는 사람보다 한없이 빠르기에.

어쩌면 1, 2년이라는 사람의 세월은 고양이에게는 반 평생일 텐데 그 긴 시간 동안 어떤 사람을 만나 어우러지고 사랑받고 또한 받은 사랑을 돌려주며 살아간다면. 집이라는 울타리를 떠나는 일이 있다 하더라도 이내 다시 돌아올 이유는 충분하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는 종종 과학이나 상식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사람과 동물의 교감 사례를 많이도 보아 왔기에, 공통된 언어가 없으매도 그 눈빛, 부빔, 소리만으로도 충분히 공명할 수 있고 사람의 동물에 대한 사랑, 동물들이 느끼는 사람과의 신뢰가 있기에 이런 이야기조차 가능하다고 저 또한 믿게 되죠. ​

냥덕인 저로서는 묘연을 만나 할 터 운 길을 벗어나게 되고, 사람의 울타리에서 지내다, 간혹 집을 뛰쳐나오기도 하고, 새로운 친구 고양이들을 만나 무려 사람이 살고 있는 집으로 데려오기까지에 이르는 일. 사실 도처에 매우 많이 일어나는 소재라고 생각되긴 합니다만 모든 고양이는 하나하나 모두 특별하기에, 릴리의 이야기 역시 특별하다 느껴집니다.​

무엇보다도 설정된 고양이의 말이나 성격보다 우리가 만난 적 없는 '사랑'이라는 여인과 '할아버지' 그리고 릴리 이 셋의 이어짐은 그저 사라지는 우연이 아닌 '가족'의 내음이 나는 것만은 확실합니다.

동화 같은 느낌이 있지만 고양이 시점에서는 또 매우 사실적인 스토리. 누군가의 짧은 사랑과 관심이 한 생명에게는 평생을 사는 사랑의 힘이 또 아닌가 생각되는 릴리의 여행이었던 것 같습니다.

평소 고양이를 많이 알고 좋아하는 사람들은 물론이고 오히려 고양이를 잘 모르는 어른들의 동화이기를 바라며 서평을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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