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강 소설
한강 지음 / 문학동네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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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
by 한강

요즘 책을 읽을 때 무의식중에 틀어 두는 음악을 껐다. 향을 하나 피우고, 창 밖에 나는 소리를 들으며 읽었다. 시를 읽는 듯한, 그런 먹먹함. 문장 하나 하나를 곱씹으며 천천히 음미하며 읽었다. 한강의 단어들은 명료한 가운데 내포된 힘이 있다. 간결하고, 묵직하다. 개인적으로 이 작가의 글을 그녀의 모국어로 읽을 수 있다는 것, 온전히 그대로 접할 수 있다는 건 축복이라고 생각한다.

각각의 책들이 주는 이미지랄까, 책들이 나에게 강요하는 주변환경이 뚜렷한 경우들이 있는데, 예를 들자면 메이브 빈치의 ‘그 겨울의 일주일’은 햇볕이 포근한 겨울 낮 즈음에 담요를 폭닥하게 뒤집어 쓰고 밀크티를 따듯하게 마시며 읽고 싶어지는 책이다. 반면에 한강의 ‘흰’은 계절적 배경은 동일하게 겨울일 수 있겠으나 찬 공기가 오롯이 느껴지는 어두운, 혹은 동트는 새벽 즈음, 적막을 배경삼아 흰 입김을 조금씩 내뱉으며 읽어야 할 것 같다. 조금은 늦은 밤, 와인도 음악도 없이 천천히 읽어볼 것을 권한다.

“어느 추워진 아침 입술에서 처음으로 흰 입김이 새어나오고, 그것은 우리가 살아 있다는 증거. 우리 몸이 따듯하다는 증거. 차가운 공기가 캄캄한 허파 속으로 밀려들어와, 체온으로 덥혀져 하얀 날숨이 된다. 우리 생명이 희끗하고 분명한 형상으로 허공에 퍼져나가는 기적.”

“길었던 하루가 끝나면 침묵할 시간이 필요하다. 난롯불 앞에서 자신도 모르게 그렇게 하듯. 침묵의 미미한 온기를 향해 굳은 손을 뻗어 펼칠 시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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