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 이별

 

열매를 다 털어낸 늙은 나무가

마지막 숨을 몰아쉬기 시작한다.

시든 나무 그늘도 떠날 준비를 하고

가지 사이 거미도 거미줄을 걷어들일 즈음,

우울한 부나비 한 마리 날개 접고

새들이 날아간 석양 쪽을 바라본다.

 

잠시 잠들었었나, 잠시 죽었었나

모든 사연이 휘발한 땅이 그새  문 닫고

피곤에 눌려 커다란 밤 장막을 내린다.

아 그러나, 우리는 손해본 게 아니었구나.

청명 밤하늘의 이 별들, 무수한 환희들!

헤어진 별 옆에서 새로 만난 별이 웃고

집 떠난 밝은 유성은 잠시 발 멈추고

죽어가는 나무에게 가볍게 입맞춤한다.

 

갑자기 나무 주위에 환한 꽃향기 넘치고

누군가 만 개의 새 별들을 하늘에 뿌렸다.

어디선가 고맙다, 고맙다는 메아리 울리고....... .

 

초겨울의 서정을 시와 함께 맛보라고 저에게 시집을 보내주신 님.

함께  묵직한 책을 선물해 주신 님께 심심한 감사의 말씀을 전해드립니다.

 

오늘 아침에는 갑자기 찾아온 이별에 준비 안 된 슬픔을 맞고 있습니다.

마종기 시인은 이별의 깊은 의미를 때맞추어 노래하고 있군요.

 

가시지 말라거나 가시거든 부디 돌아오시라고 간청하지 못했습니다.

어디 계시든 잘 지내시라 전하지도 못했구요.

 

"언젠가는 떠나야 할 그날이 빨리 왔을 뿐이네"라고

유행가 가사만 읖조리고 있습니다.

 

안녕, 체셔고양이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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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06-12-12 11: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왜 그러셨을까요? 비록 가깝게 지내지는 못했지만 그분의 떠남이 못내 아쉽네요.

비연 2006-12-12 11: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떠남은 항상 씁쓸함을 남기기 마련인데. 왜 가신걸까요?

니르바나 2006-12-12 21: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너무 아쉽습니다.
스텔라님, 다시 돌아오시라고 기도해주세요.^^

니르바나 2006-12-12 21: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연님은 오래도록 알라딘 서재에 남아주세요.
성탄절에는 산타비연님의 출연을 기다리겠습니다.^^

2006-12-14 10: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니르바나 2006-12-15 13: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쉬운 님, 거짓말 잘 하셨어요. 이렇게 말씀드리니까 말이 좀 이상하긴 하네요.
그래도 그런 거짓말은 부부사이에 꼭 필요한 말이랍니다.
초등학교 교장으로 정년을 맞은 저의 작은 아버지는 경기도의 거의 모든 지역으로 전근을 다니며 교사생활을 하시다보니 평생을 주말부부로 보냈습니다.
작은 어머니는 그저 손님대하듯 남편과 생활하신 셈이었지요.
휴일 하루만 지나면 남편 잔소리에서 벗어나니까 참아야지 하면서요.
그런데 얼마 전에 일이 있어 장시간 버스로 이동하면서 어머니의 최근 근황을 들어보니
부부생활이 아주 심각하시더라구요.
제 2의 신혼생활까지는 아니지만 여유있는 노년생활이 시작될 줄 알았는데 오히려 그 반대로 사사건건 서로 충돌하여 애들이 아니면 이혼하고 싶다고 하시더라구요.
평생 자신의 직업에만 충실했던 작은아버지는 어떤 의미로는 그 가정의 손님이었던 셈이지요. 그러던 분이 하루아침에 안방을 차지하고 있으니 전직 방 주인 작은어머니는...
여기까지는 정년이나 명퇴로 하루 아침에 방이 전용공간이 되어버린 남자들의 이야기가 되겠군요.
그런 의미에서 불편한 점이 불만사항으로 넘어가지 않게
거짓말을 하시는 애교(?)로 반짝이는 빛을 내신 생활의 지혜가 참 아름답습니다. ^^
 

" 또 한 가지 조건이 있는데, 집이 충분히 커야 한다는 것이다.

큰 집 싫어할 사람이야 없겠지마는 내게는 좀 특별한 이유가 있다.

책을 정리해둘 공간이 필요한 것이다.

주변에서는 자꾸 책 좀 버리라고 하지만,

나는 내 책들을 버릴 수가 없다.  아직 내 공부가 덜  끝났기 때문이다."

                                                              - 장회익, 서울대 물리학과 명예교수-

 

그렇다.

아직은 책을 버릴 때가 아니다.

정작 나는 공부길에조차 들어서지 못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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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무비 2006-12-08 11: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그렇다, 아직은 책을 버릴 때가......

너무 귀여우시잖아요.^^

2006-12-08 11: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니르바나 2006-12-08 17: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드무비님은 비우려 애쓰는데 저는 채우려 기쓰는게 너무 차이가 나지요.
그래도 귀엽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2006-12-09 10: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6-12-11 16: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祭亡妹歌

 

              

                           - 월명사(月明師)

 

 

생사의 길은

여기 있으매 두려워지고

나는 간다 말도

못다 이르고 갔느냐

어느 가을 이른 바람에

여기저기 떨어지는 잎처럼

한 가지에 나서

가는 곳을 모르는구나

아 미타찰에서 너를 만나볼 나는

도를 닦아 기다리련다

 

 

  

 

     !  **님

 

**님이 주신 방명록의 글을 읽고서 한참이나 멍한 상태로

무슨 말씀으로 인사의 말머리를 열까 고심하며 오후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님의 행복한 블로그에 꽤 긴 시간동안 새 글이 올라오지 않아서

바쁘신 일이 있겠거니 생각하며, 잠시 쉬어가는 정도로만 헤아리고 있었습니다.

아버님께서 저 세상으로 돌아가셨다는 슬픈 소식이 정말 믿어지지가 않는군요.

 

사고로 다치시고 병원입원 치료후 많이 좋아지셔서 퇴원하시고

댁에서 재활치료하시면서 아버님 어머님의 재미있는 일상을 전해주셔서

요즘은 추수철을 맞이하여 농사일로 여념이 없으실 부모님들을 그리고 있었으니까요.

효녀, **님 부부가 일손을 도우러 친정을 방문하는 풍경도 그리고 있었구요.

하루가 다르게 커가는 손자손녀의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시며

웃으시는 얼굴도 떠올리고 있었답니다.

 

그런데 이 어인 슬픈 소식이랍니까.

예쁜 막내딸이 행복하게 사는 모습을 겨우 요만큼만 보시고 돌아가시다니요.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산 자는 죽게 마련이고, 만나면 헤어지는 것은 神이 마련한 불변의 진리이긴 하지만

너무나 이르게 피안의 길로 떠나신 아버님이시군요.

뒤도 돌아보지 않으시고 바쁘게 길을 재촉하신 아버님때문에

삶의 긴 여정을 함께해 오셨던 어머님의 깊은 슬픔에 어떤 위로가 가당키나 하겠습니까.

큰 집에 허허로이 지내실 어머님 곁에 아버님의 부재라는 사실은

앞으로도 긴 시간 메꿀 수 없는 심리적 간극으로 다가올 터이니까요.

 

**님, 고등학교 고전문학 시간에 삼대목이니 일연이니 하면서 신라의 향가를 배울때면

왜 이렇게 따분한 글들을 익힐까하며 하품하며 공부하였습니다.

그렇게 시험을 대비한 구절 해석만 하였더니 시험이 끝나면 더 이상 내게 해당사항이 없는 

글로만 여겨지고 그래 이내 기억속에서 사라졌지요.

그러다 죽음으로 이별하는 슬픔을 노래한 시인의 해설에서

더 이상의 절창이 없겠다싶게 저에게 이 시가 찾아온 것은

제 주위에 생사의 문제가 절실하게 케이스로 닥아왔기 때문일겝니다.

 

그렇습니다.

돌아가신 분을 추모하며 남은 가족들, 친구들, 이웃들은 마땅히 道를 닦으며

순식간에 가까운 우리의 인생이 끝나면 있을 생사의 江을 넘어 만날 인연들을 위해

열심히 살아가야 할 의무가 있다고 봅니다.

 

**님,

이 세상을 예쁘고 착하게만 살아가는 **님께 해일처럼 찾아온 아버님이 전해준 별리의 슬픔이

**, **와 아빠와 함께 기쁨으로 살아가는 동안 만날 행복에게 전하는 메세지가

아버님께서 남기신 커다란 뜻이리라 믿습니다.

 

열심히 땅을 일구며 자연과 함께 사시다가 이제는 그 자연이 되신 아버님의 영혼에

**님 친구인 제가 아버님 영전에 큰 절 올립니다.

부디, 아버님의 명복을 빕니다.

 

***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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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6-12-05 09: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호승 시인의 시 제목인 줄 알고 들어왔습니다.
날씨가 쌀쌀한데, 마음마저 너무 쓸쓸하지 않도록...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stella.K 2006-12-05 10: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니르바나님 오랫만이라 반가웠는데, 서재 어느 분이 슬픈 일을 당하셨군요. 제가 서재활동 반경이 그리 넓지가 못해 직접 위로를 전해 드리지도 못하겠군요. 그분이 여기 오시겠죠? 모쪼록 니르바나님의 많은 위로를 받게 되시길 바랍니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2006-12-05 10: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6-12-05 10: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이누아 2006-12-05 14: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재에서만 오늘 두 번째 부고를 접합니다. 이렇게 죽고 사는 일이 일상이거니 하여도 닥치면 쏟아지는 슬픔과 알 수 없는 분노를 가누기 어렵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그 부재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또한 견딜 수 없어집니다. 지금에 무슨 말이 위로가 되겠습니까...허나 생사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어 그저 마음으로 고인의 명복을 빌며, 잠시나마 남은 이에게 위로를 전합니다.

혜덕화 2006-12-05 18: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는 일 자체가 고통임을 이런 슬픔에서 느낍니다. 님의 글이 그 분의 마음에 가 닿기를......

2006-12-06 16: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니르바나 2006-12-07 08: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체셔님, 스산한 바람이 일면 벌써 마음엔 커다란 파문이 일겠지요.
그리고 사랑은 슬픔이 기쁨에게 전하는 말이랍니다.
체셔님의 위로에 감사드립니다.^^

니르바나 2006-12-07 08: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텔라님, 오랜만에 만나뵈서 반갑습니다.
그분은 알라딘 서재인이 아니랍니다.
그래도 스텔라님의 따뜻한 마음은 전해드릴께요.
감사합니다.^^

니르바나 2006-12-07 08: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0:22 님, 올해는 제 사촌동생들이게 큰 아픔이 있는 해가 되었습니다.
지난 여름 저 세상에 간 동생이야기는 말씀드린 적이 있고,
최근에 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생도 있으니 이런 일이 남의 일 같지 않군요.
건강을 빌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니르바나 2006-12-07 08: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0:38 님, 금촌댁~

니르바나 2006-12-07 09: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누아님, 안녕하세요.^^
맞아요. 죽음은 추상이라서 비록 아무리 연습한다해도
막상 마주하면 설명할 수 없는 혼돈의 상태로 우리를 빠뜨리지요.
이누아님 위로의 말씀은 더욱 마음에 감동으로 전해져 오는군요.

니르바나 2006-12-07 09: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혜덕화님, 안녕하세요.
말씀하신대로 생로병사의 고통에서 벗아나는 삶의 공부길이
그분에게 마련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그것이 먼저 가신 분의 뜻이기도 하겠지요.

니르바나 2006-12-07 09: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2-06 16:05 님, 조금 이른 도착일 뿐입니다.^^
즐감하시길...

2006-12-07 10: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니르바나 2006-12-07 17: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노바님, 새벽에 일어나서 일을 하신다니 열심히 사시는군요.
신간의 경우 인터넷 화면에 나온 정보로는 가늠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 경우가 그랬습니다. 또 하나의 편역이겠거니해서 이전의 평전으로 만족하려고 했지요.
그런데 오랜만에 찾은 교보문고 진열대에서 실물확인하고 만족하였답니다.
사진도 마음에 와 닿았구요. 행동은 더 마음에 드는 분이시지요.
댁에선 책이 여러가지 일을 만드는군요.ㅎㅎ
다정다감한 인사 말씀에 고개숙여 감사드립니다.
 



 

이 글은 뭐니뭐니해도 알라딘 최고의 지름신이신 하이드님께 드리는 헌사입니다.

 

가을이면 독서의 계절이라며  최근 일도 아닌데 인문학의 위기를 시끄럽게 이야기하고

인문출판과 도서관시스템 그리고 대학의 장서와 관련한 이야기를 하다

어떤 지방대학 도서관 장서가 4천권쯤 이래서 깜짝 놀란 적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자세히 헤아려보지는 않았지만 저의 집에 있는 책 분량밖에 안되겠구나 싶어

요즘 별로 보지 않는 내 책을 몽땅 그 대학에 기부해 볼까 잠시 망서렸습니다.

물론 요즘 대학생들이 많이 찾는다는 베스트셀러는 거의 없고 따분한 책들만 있어서

별로 환영받지 못할 것란 생각도 했지요.

 

거의 걸책 수준에 가까운 초기의 책 수집형태와 완연히 다르게

요즘은 권 수로 보다는 질(?)로 승부하다가

어제 오늘은 더 이상 쌓아 올릴 곳이 없다보니

좁아터진 집구석이 더 좁은 내 속알딱지에 시비를 걸어

더 이상 책을 사들이지 말자는 쪽으로

일단은 타협을 보고 있는 형편입니다.

 

그러나  판 벌여 놓자 레오가 행차하는 모습을 담은 이미지 컷(아래 연결 참조)과 함께한  명대사,

앗, 무엄하도다, 레오!!

는 제 마음속에 살아남아 사재기의 마지막 꿈이 되었습니다.

 

이 글을 쓰기 위해 하이드님의 페이퍼를 찾아 확인해보니 어느새 일년도 지난 꿈이야기이자

참 오래도록 품은 끝에 부화된 펭귄들이로군요.



 

오늘 저는 한국축구의 명언인 꿈은 이루어진다 처럼 현물과 만나는 감격을 앞두고 있습니다.

아쉽게 알라딘에는 없는 품목이라서 감사의 표시도 못했지만

좋은 책을 만나고 지를 수 있도록 안내해주신 하이드님께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최근에 비록 마음에 안드는 구석이 많더라도 알라딘서재에 오래도록 계셔서

저처럼 무지몽매한  중생들을 쳐서 일깨워주세요.

 

하이드님, 감사합니다!



 

* 책에 대한 강력한 지름을 받으실 분들은 아래 주소를 눌러보세요.

마이페이퍼 링크 주소 : http://www.aladin.co.kr/blog/mypaper/744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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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6-11-18 11: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휴... 이건 정말 쉽지 않은 유혹입니다 ^^

잘 지내고 계시지요?
겨울 초입인데 오늘은 일기도 화창하고,
페이퍼가 올라와 있는 걸 확인하니 반가움이 더합니다.
요즘 제 컴터 바탕화면에 그런 말이 써있어요.

"몰랐어요. 하나님 세상이 이렇게 아름다운 줄..."

아름다운 날, 아름다운 님께 인사드리고 갑니다.
샬롬-

2006-11-20 09: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6-12-02 17: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6-12-03 09: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6-12-06 03: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니르바나 2006-12-07 09: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2-06 03:51 님, 마음에 드셨다니 제가 더 고맙습니다.
자유로운 두 영혼과의 교유로 세모의 마음길을 잘 다스리시길 빕니다.^^
 
 전출처 : 로드무비 > 작가 권정생, "교회나 절이 없다고 세상이 더 나빠질까"

한겨레 조연현 기자
» 〈강아지똥〉 〈몽실 언니〉작가 권정생 선생
〈강아지똥〉과 〈몽실 언니〉를 쓴 권정생(69) 선생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독자가 많은 동화작가다.
많은 사람들이 그를 만나려고 경북 안동시 일직면
조탑리의 오두막으로 그를 찾아오지만 그는 사람들을
만나주지 않는다. 기자는 말할 것도 없다.
인터뷰 같은 것을 한 적도 없다. 어려서부터 앓아온
전신결핵의 고통으로 신음하면서 홀로 살아가는 그는
“너무 아파서 인상을 찌푸리지 않고 사람을 맞을
자신이 없어서” 사람이 찾아와 불러도
아예 문조차  열어보지 않는다.

그런 그가 김장배추 속에 숨은 흰 속살 같은 얼굴을
내보였다.
지난 29일 그의 마을 정자 나무 아래서 한 ‘드림교회’
예배에서였다. ‘드림교회’란 이현주(62) 목사가
지난 4월부터 주일이면 좋은 사람과 좋은 장소를 찾아
예배를 드리는 ‘건물’ 없는 교회다.
이 목사는 이 마을에 찻길조차 없던 1970년대
이오덕 선생으로부터 숨은 ‘인간 국보’의 소식을 듣고
그를 찾아다녔던 지기다.
그는 ‘드림교회’가 뭔지도 몰랐지만 그런 이 목사의
청으로 엉겁결에 마을 정자 나무 아래 앉았다.
그를 만나고파 전국에서 이날 예배에 온 20여 명과
함께였다.

» ‘교회 종지기’의 나무 아래 예배 - 권 선생은 사람들의 시선이 부끄러운 듯 모자를 눌러쓴 채 얘기를 했다. 그와 수십 년 지기인 이 목사도 “이렇게 한 자리에 오래 앉아 있는 것도, 이렇게 말씀을 오랫동안 하는 것도 처음 본다”고 했다. 권 선생이 생전 처음 베푼 말잔치는 소리 소문 없이 온 산하를 물들여버리는 가을 기운 같은 축복이었다.

작가 권정생이 말하는 하느님과 인간의 뜻

침묵 기도 뒤 사람들은 기도를 나누었다. 참석자들 대부분은 “하나님께 ‘저를 왜 이곳에 불렀느냐?’고
물었다”며 하나님께서 이러저러한 응답을 주었다고 말했다.

“차를 타고 이곳에 온 게 하나님 뜻인가요?”

이 목사 옆에 다소곳이 앉아 있던 권 선생이 말문을 열었다.
무슨 일을 하든 관성적으로 ‘하느님의 뜻’에 갖다 붙이는 그리스도인들의 ‘습관적인 말’에 대한
일침이었다.

“이라크에서 전쟁을 일으키는 것도, 사람들에게 그 많은 고통을 주는 것도 하나님의 뜻인가요?
인간이 한 것이지요.”

권 선생은 한참 동안 말을 하지 않았다. 그는 마을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낙엽만이 침묵의 공간 속을 뒹굴었다. 마침내 여든여덟 살 난 마을 할머니 얘기를 꺼냈다.

인간이 저지르고 하느님 뜻이라니… 천당 가는 것보다 따뜻한 삶이 중요

“할머니가 네 살 때 부모가 일본으로 끌려갔다. 그 뒤 아직까지 소식을 모른다.
그는 지금도 ‘아버지 어머니가 나를 버렸을까’ 아니면 ‘어쩔 수 없이 못 오셨을까’만 생각한다.
결혼해 자식 손자까지 다 있는데도 할머니는 아직까지 네 살짜리 아이로 살아가고 있다.
그것도 하느님 뜻인가. 하느님이 일제 36년과 6·25의 고통을 우리에게 주었는가?”

권 선생은 “아니다”라고 자답했다. 그 고통 역시 “인간 때문”이라는 것이다.
얘기 중에도 허공을 응시하는 듯한 눈으로 산과 들과 마을을 바라보던 그가 다시 마을 얘기를 이어갔다.

“우리 마을엔 당집이 있다. 거기엔 할머니신을 포함해 세 분이 모셔져 있다.
한 분은 후삼국시대에 백제에서 온 장군인데, 죽을 줄 알던 마을 사람들을 모두 살려줬다.
또 한 분은 비구니 스님인데, 이 마을에 전염병이 돌 때 와서 사람들을 살려줬다.
당집에선 한해 동안 싸움 안하고 가장 깨끗하게 산 사람이 제주가 되어 정월 보름마다 제사를 지내면서,
또는 당집 앞을 지날 때마다 스스로 착하게 살려고 자신을 다잡는다.
그렇게 마을 사람들은 평안하게 살아간다.”

“사람들이 교회에서 ‘착하게 살아가라’는 설교를 귀가 따갑게 들으면서도 한 가지도 행하지 못하고,
서로 싸우기 일쑤인데 왜 그럴까. 세상에 교회가 없었더라면 어땠을까?”

그는 또 “교회나 절이 없었더라도 더 나빠지지 않았을 것 같다”고 자답했다.
그는 “세상에 교회와 절이 이렇게 많은데, 왜 전쟁을 막지 못하는가”라며 다시 낙엽을 바라보았다.

“‘선택받은 민족’이라는 유대인들은 아우슈비츠에서 600만 명이나 죽는 고통을 당하고도
왜 그렇게 남을 죽이고 고통스럽게 하는가.
1940년대 유대인들이 처음 팔레스타인 땅에 돌아올 때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키부츠 등에 땅도 내주고
함께 살자고 했는데, 이젠 ‘처음부터 막았어야 했는데’라며 후회한다고 들었다.
영화 〈쉘부르의 우산〉의 배경이 된 전쟁은 베트남전이다.
프랑스는 당시 베트남인들을 노예처럼 끌어다가 칠레 남부의 섬에 가둬 비행장 건설 노역을 시켰다.
그러다 전쟁이 끝나자 베트남인들은 그대로 남겨둔 채 자기들만 고국으로 돌아가 버렸다.
그 섬엔 아직도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한 베트남 노인들이 살고 있다.
프랑스인들은 세계대전을 일으킨 독일의 악행만 얘기하지 자신들이 한 것에 대해선
한마디도 하지 않는다.
중국도 일본이 난징학살 때 30만명이나 살육한 것을 지금까지 그토록 분개하면서도
티베트인들을 그렇게 죽인 것에 대해선 한마디도 하지 않고 지금까지도 억압만 하고 있다.
미국은 자기는 핵무기를 만 개도 넘게 가지고 있으면서도 다른 나라들만 나쁘다고 한다.”

권 선생은 “모두가 자기는 잘하고 옳은데, 상대방이 문제라고 한다”고 했다.
그것이 불화와 고통의 원인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나는 죽어서 가는 천당 생각 하고 싶지 않다.
사는 동안만이라도 서로 따뜻하게 사랑하며 살아가야 하지 않겠는가.”

인간사의 일들이 ‘하느님의 뜻’이 아니라 ‘인간의 짓’임을 분명히한 권 선생의 말에
자신의 행동도, 세상의 해악도 하느님에게만 돌리던 핑계의 마음은 쓸려가 버렸다.
그러나 권 선생은 “하느님은 언제나 ‘인간이 하는 것’을 보고 계신다”며
“그렇기에 홀로 있어도 나쁜 짓을 할 수 없고, 착한 일을 했어도 으스댈 수 없다”고 했다.

안동 / 글·사진 조연현 종교전문 기자 cho@hani.co.kr

장애와 천대 보듬은 ‘몽실언니’처럼
자기를 녹여 꽃피운 ‘강아지똥’처럼

권정생의 문학과 삶 / 마을 뒤편 작은 개울가에
있는 권 선생의 오두막은 멀찌감치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속 깊은 곳에서 뭔가 울컥
솟구치게 할 만큼 쓸쓸했다.
이끼로 덮인 바위를 지나 들어선 앞마당 잡풀
사이에 권 선생이 불을 때 밥을 한 것으로 보이는
솥이 걸려 있었다.
오두막은 5평 남짓.(사진)
그러나 그도 평생 읽어온 책들이 대부분 자리를
 차지했다. 그가 사용하는 공간은 몸을 웅크려야
겨우 누울 수 있는 0.3평이나 될까.

장애와 천대를 안은 채 살아온 가련한
이들에 대한 따뜻한 시선이 그대로 드러나는
〈몽실 언니〉의 삶을 그는 우리나라 최고의
작가가 된 지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그대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는 일제 때 일본 도쿄의 빈민가에서 태어나
광복 후 외가가 있는 경북 청송으로 귀국했다.
그러나 가난 때문에 가족과 헤어져 나무장수,
고구마장수 등을 했고, 전신 결핵을 앓으면서
걸식을 하다 열여덟살에 이 마을로 들어왔다.

스물두 살에 다시 객지로 나가 떠돌던 그는
5년 뒤 이 마을로 돌아왔고, 스물아홉살 때부터
16년 동안 마을 교회 문간방에서 살며
교회 종지기로 살았다.

〈하느님의 눈물〉, 〈하느님이 우리 옆집에 살고 있네요〉, 〈도토리 예배당 종지기 아저씨〉,
〈우리들의 하느님〉 등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승화한 작품들이었다.

고운사 경내에서 함께 걸으며 그에게 “시골 마을에서도 이제 모두 새집 지어 살아가는데,
왜 그렇게 사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그는 “그 집도 1983년에 120만 원이나 들여서 지은 집”이라며 “그런데 면에서 나온
공시지가를   보니, 89만원밖에 안 한다더라”고 했다.
그러면서 “마을 할머니들이 죽기 전에 그 집이라도 팔아서 돈을 쓰라고 한다”고 했다.
종지기 때와 다름없이 살아가는 그의 모습을 본 할머니들이 너무도 안타까워 하는 소리일 터였다.
그는 무언가를 관찰해 쓰는 작가가 아니라 자신은 끝내 녹아 없어져
아름다운 민들레꽃으로 피어나는 〈강아지똥〉의 실제 주인공이었다.

조연현 기자

'한겨레'에서 퍼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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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팽이 2006-11-01 20:31   좋아요 0 | URL
세상엔 숨은 현자들이 많습니다.
비록 세상에 나아가 일을 하진 않지만
보이지 않는 세상의 균형맞추기를 이 분들이
하고 계신 것은 아닌가 하고 생각합니다.
잘 읽고 갑니다.

니르바나 2006-11-03 19:20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달팽이님.
님이야말로 사상과 실천의 균형을 잘 맞추며 사시는 분이 아니신가요.
저는 이웃에 사시는 현인으로 생각하는데요.^^

2006-11-08 15: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6-11-16 17: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니르바나 2006-11-17 01:10   좋아요 0 | URL
살짝 걸어주신 님,
아쉽게 제 컴퓨터에선 들을 수 없네요.
얼마 전에 만원에 천곡싸이트 가입한 후
최근에 제 컴퓨터에 들어있는 음악파일들이 지 맘대로 변신해서
경로를 찾을 수 없다고 자꾸 대화상자를 만들어주네요.
이제 싸이트를 탈퇴할 시간인 모양입니다.
말씀하신 음반은 미샤 마이스키 앨범을 듣는 것으로 만족하고 구입하지 않았어요.
특별히 첼로음악 좋아하시니 함께 들으시며
행복한 초겨울 시간을 보내시길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