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호는 운동선수와 어울리지 않는 감수성이 풍부한 청년이었다."
시카고 화이트삭스 불펜포수 이만수 코치(47)의 아내 이신화씨가 25일(한국시간) 이코치의 인터넷 홈페이지(www.leemansoo.co.kr)에 텍사스 레인저스 박찬호(32)에 대한 글을 올렸다.
이코치 부부는 지난 17일 박찬호를 집으로 초청해 저녁식사를 함께 했다. 이날은 박찬호가 화이트삭스전에 선발등판한 날이었다.
이씨는 "선발투수로 뛴 날이라 에너지소모가 많았을 것이고, 피곤해서 입맛도 없을 것이라 생각해 뭘 메뉴로 정할까 오전 내내 고심했다"며 주부다운 고민을 먼저 털어놓았다.
또 "내가 만나 본 박찬호는 운동선수 직업과 잘 어울리지 않는 감성적인 사람"이라며 "예민한 감수성 때문에 무딘 사람은 겪지 않아도 될 마음고생을 더 했을 것"이라고 첫 인상을 적었다.
이씨는 "이 자리에 오기까지 칭찬과 질타 속에 자신을 지켜야 했을 어려움을 생각하니 남편 말대로 등을 툭툭 두들겨 주고 싶었다"고 덧붙였다.
이씨는 이 코치가 한국 프로야구 최고 스타로 뛰던 시절을 회상하며 "남편의 현역 시절 '유명함이 주는 편리함에 중독되지 말자'고 다짐했다"며 "인기의 덧없음을 알려면 '자연인으로서의 자신'을 늘 자각하는 노력이 필요한 것 같다"고 남편의 한참 후배인 박찬호에게 조용한 충고를 했다.
이어 "박찬호 선수가 유명하고 인기있었다는 평가보다는 '최선을 다하고 성실하며 실력있는 야구인'으로 기억됐으면 한다"는 바람도 숨기지않았다.
특히 "박찬호 선수가 목이 마를까봐 얼음냉수를 가져다주니, 사양하고 자기가 가져온 미지근한 상온 생수를 마시더라"며 박찬호가 얼마나 자신의 몸관리를 철저하게 하고 있는 가에 대해 간접적으로 소개했다.
다음은 이씨가 올린 글의 전문이다.
며칠전 아침식사준비로 분주한 나에게 남편이 오더니
저녁에 손님을 데려올테니 맛있는 음식을 좀 준비하란다.
경기 마치고 집에 오면 밤 11시가 다 되는데 왠 손님? 하며 궁금해 하니
박 찬호 후배와 저녁식사를 하겠다고 했다.
그동안 남편덕분에 유명한 사람, 높은 (?)사람 많이 만나보았지만
온 국민이 성원하는 박찬호 선수를 집으로 데려온다니 마음이 갑자기 분주해졌다.
원정팀 선수들 숙소와 우리집이 멀기도 할 뿐만 아니라
살림살이를 아직도 고스란히 한국에 두고 미국에서는 유학생같은
생활을 하고 있던터라 손님 초대하기에는 좀 그랬지만,
텍사스에만 가면 늘 자신의 집으로 초대해 식사를 대접해 주었다는
남편의 말을 여러차례 듣고 고마운 마음이 많았었는데 마침 시카고
경기이니 잘 되었다 싶었다.
선발투수로 게임을 뛰는 날이니 에너지소모도 많았을것이고,
피곤해서 입맛도 없을것이고, 늦은 밤이기도 하고, 그래서 무슨 메뉴를
할까 오전 내내 고심했다.
오후가 되어 한국에서 부쳐온 고사리와 도라지를 물에 불려놓고
너비아니구이와 새우냉채, 된장찌게, 북어국으로 메인메뉴를 정하고
부지런히 식료품점을 왔다갔다 했다.
아이들이 옆에서 지켜보더니 “엄마, 찬호형 온다고 너무 신경쓰는것
아니야?” 하며 놀린다.
문득 남편의 현역선수 시절이 떠올랐다.
중요한 시합이 있을때마다 무슨메뉴로 어떻게 맛있게 해줄까?
동분 서주 했던 그 시절……
그때가 그립기 보다는 늘 긴장의 연속이었던 것만 기억이 난다.
그날따라 비록 만루홈런은 맞았지만 호투했고, 이기고 있을때
마운드에서 내려온 박 찬호 선수는 그후 삭스팀이 동점을 내는 통에
1승을 고스란히 날려보낸 터라 마음이 안좋겠다 싶어
집에서 기다리는 나와 아이들은 조금은 신경이 쓰였다.
큰 아들은 친구들에게 찬호형이 우리집에 온다고 자랑도 미리 해놓고
싸인 받을 공도 미리 준비하고 샤워까지 하고 들떠서 기다리는데 비해
막내는 부시시한 츄리닝 차림으로 제 할일만 하고 있길래
옷좀 갈아 입으라고 해도 들은척도 하지 않는다. 하기사 부시 대통령이
온다해도 눈썹도 꿈쩍 안할 아이 이기는 하지만…(둘이가 참 달라서
키우는 재미가 보통이 아니다.)
11시가 다 된 늦은 시간에 남편과 함께 들어선 박 찬호 선수는
TV 화면보다 훨씬 잘생기고 키가 큰 청년이였다.
식사를 시작할때 시합하고 와서 목이 많이 마를 것 같아 얼음냉수를 갖다주니
차가운물이 몸에 맞지 않는다며 자신이 가져온 미지근한 상온의 생수를
마시는 박 찬호 선수를 보며 자신의 몸관리를 철저히 하는 프로다운
점이 인상적이었다. – 현역선수시절, 커피숖에 가서도 하얀 우유 시켜먹던
남편 모습이 다시 오버랩 되는 순간 이었다.
식사를 마친후 차를 마시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대화의 대부분은 야구이야기 였다.
요즘 던지는 구질에 대해, 게임 운영에 대해
다른 투수들의 장점에 대해……
나는 야구의 기술적인 면을 잘 몰라서 다 이해할수는 없었지만
야구를 좋아하는 남편과 박찬호 선수의 야구 이야기는 끝없이 이어졌다.
또 늦은 나이에 (고2) 미국에 와서 낯선 환경에 잘 적응하고 있는 큰 아이를
격려해 주기도 하고 ,이제 곧 다시 낯선 환경인 군대 입대를 앞둔 아이에게 맏형처럼 자신은 어려움을
어떻게 극복했는지 자상하게 이야기 해주기도 하고 ,키가 크고 덩치가 좋은 막내하고는
키재기도 해보며 짧았지만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내가 만나본 박찬호 선수에게서 떠오르는 것은
‘운동선수’라는 직업과는 잘 안어울리는 듯한
‘감성적’ 이라는 단어이다.
생각도 많아 보이고 감수성도 풍부해 보이는 박찬호 선수 인지라
무딘 사람은 겪지 않아도 될 마음고생을 남보다 더 했을꺼란 생각을 해보았다.
일반인들이 생각하기에는 천문학적인 액수의 연봉,
넓은 미국 땅 덩어리에 알려진 그의 이름,
그가 던지는 일구 일구에 기뻐하기도 하고, 욕 하기도 하는 한국의 많은
팬들, 그가 하는 사소한 말 한마디도 본인의 뜻과 상관없이 왜곡되고
부풀려 지는 많은 기사들, 만나는 사람마다 인간 박찬호가 아닌 야구선수
박찬호에 대한 칭찬과 질타. 이런 소용돌이 속에서 자신을 지키고
이 자리에 오기까지 치루어야 했을 많은 어려움을 생각하니 남편의
말대로 등을 툭툭 두들겨 주고 싶었다.
박찬호 선수만큼은 아니지만 꽤 유명한 남편과 오래 살면서
나는 가끔 유명함의 득과실에 대해 생각해본다.
현역선수 시절 남편과 내가 틈만 나면 다짐한 것 중에 하나가
‘유명함이 주는 편리함에 중독되지 말자’ 는 것이었다.
은행에 가도, 동사무소에 가도, 식당에서도, 심지어 병원에서 조차
순서를 무시하고 특별대우를 받게 되는 유명인들은 자신도 모르게
<나는 특별한 사람>이라는 생각에 젖을수 있다.
예전에 어떤 실력파 여배우의 인터뷰를 우연히 본적이 있다.
그분 왈 “연예인을 포함한 유명인들은 <공주병><왕자병>에 걸릴수 밖에 없다. 왜냐하면 마주치는 사람
들이 면전에다 대놓고 싫다라는 표현은 거의
하지 않고 인사치레로라도 잘한다, 당신 좋아한다, 훌륭하다, 하기 때문에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공주나 왕자가 되어있다.” 고 한다. 맞는 말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요즈음은 인터넷의 발달로 유명인에 대한 안티들의
활동도 또한 만만치는 않다.
나도 한번씩 남편에 대해 사실과 전혀다른 엉뚱한 글들을 인터넷에서
대할때면 한 개인의 인격과 사생활이 ‘유명인’ 이라는것 하나 때문에
이렇게 무참하게 가쉽거리가 되어도 되는가? 하는 의문이 든적도 있다.
어쨋든 남의 입에 오르내리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은
특별대우가 되었든, 가쉽의 소재가 되었든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한
그런 일들을 잘 관리해야 하는 숙제를 안고 살아가야 한다.
요즈음 사람들이 그렇게 얻기 원하는 <유명함>,<인기>, 이런것들의
덧없음을 알려면 시간도 필요하겠지만, 어떤 칭찬이나 어떤 욕에도 흔들리지 않을
‘자연인으로서의 자신’을 끊임없이 자각하는 노력도 참 필요한것 같다.
아주 늦은 밤, 남편과 함께 박 찬호 선수를 숙소로 데려다 주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이런저런 생각을 해보았다.
우리 아이들이 미국에 와서 메이저리그 선수들의 화려한 생활과
엄청난 연봉들을 보면서 가끔씩은 “엄마, 우리아빠도 10년만 젊든지,
메이저진출을 좀 빨리 했으면 미시간 호숫가에 그림같은 집에
살고 있겠지?..” 하고 너스레를 떤다.
그럴때 마다 난 늘 이렇게 대답한다.
“아빠는 아빠시대에 해야할 일을 최선을 다해서 했고, 결과도 좋았기
때문에 참 복많은 사람이다” 라고….
프로야구 초창기의 척박한 환경속에서도 직업야구선수로서
최선을 다해준 남편이나, 메이저리그의 높은 벽을 실력으로 넘어서서
후배들에게 길을 열어준 박찬호 선수나 유명했다, 인기 있었다,
하는 평가보다는 ‘최선을 다하고 성실하고 실력있는 야구인’ 으로 오래 기억되었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본
다.
헐크 아내 이신화 씀
최민규 기자 didofido@ho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