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일을 해내는 데 세월이 필요하다면, 그건 긴 시간이 곧 그 일의 핵심이기 때문이지요. (24)
사랑은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관계입니다. 사랑은 내 안에 있거나 상대의 마음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나와 너 사이의 좁혀지기도 하고 넓혀지기도 하는 공간에 불안정하게 존재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끊임없이 흔들리는 그 조그맣고 불안정한 공간과 모든 것을 변화시키며 흘러가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사랑을 지켜내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열정이 아니라 노력이고, 본능이 아니라 본능을 넘어선 태도입니다. 관계에 대한 모든 것은 배워야만 하고 갈고닦아야만 하지요. (56)
"원칙은 큰 일들에나 적용할 것. 작은 일들에는 연민만으로도 충분하다." – 카뮈 (78)
상기하는 것이 아니라 상기되기 마련인 기억의 존재 형식은 능동태가 아니라 수동태일 겁니다. 그렇게 기억은 무시로 우리를 급습하고, 일상의 사소한 접점에서 예기치 않게 격발당한 우리는 추억 속으로 침잠됩니다. 그렇기에 추억은 두렵기도 하고 신비롭기도 하죠. 당신은 오늘 어떤 기억의 문고리를 잡아당기셨습니까. (120)
아무리 탁월한 재능이라고 할지라도 걸작은 의도와 야심으로 탄생하는 게 아니라는 것이지요. 그것은 만드는 이의 능력과 향유하는 이들의 반응과 작품이 놓이는 특수한 상황이 시공간의 은총을 입어 절묘하고도 신비롭게 결합되었을 때에야 가능해집니다. 창작 역시 시간과 공간이 빚어내는 일종의 우연으로부터 큰 영향을 받는다는 사실 앞에서, 예술은 비로소 이 비루한 삶에 진정한 위안이 됩니다. (162)
"기다리는 사람은 시간을 초대한다." - 발터 벤야민 (196)
면역도 통하지 않는, 삶에서 반복해서 자주 받게 되는 상처는 어쩌면 그 사람이 삶에서 어떤 지향성을 갖고 있는지를 역설적으로 드러내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계속해서 같은 함정에 빠진다는 것은 그 함정이 그에게 그만큼 매혹적이라는 뜻이지 않을까요. 그렇기에 분자 구조가 조금 바뀌어도 인식하지 못하는 것이구요. 이를테면, 강점이 아니라 약점이 그가 진짜로 어떤 사람인지를 더 잘 드러낸다고 할까요. (259)
"지나간 모든 끼니는 닥쳐올 단 한 끼니 앞에서 무효였다." – 칼의 노래 "모든 밥에는 낚시 바늘이 들어있다." - 김훈 (3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