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빛책방 - 잠 못 드는 밤을 위한 독서 처방전
조안나 지음 / 나무수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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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모르게 내 속에서 살고 있는 널 죽일거야.’…우리는 모두 마음 속에 묘지를 하나씩 품고 있어야 한다. 그래야 상처와 우울에도 의연하게 대처할 수 있다. (66)

추억이란 그것이 슬픈 것이든지 기쁜 것이든지 그것을 생각하는 사람을 의기양양하게 한다. 슬픈 추억일 때는 고즈넉이 의기양양해지고, 기쁜 추억일 때는 소란스럽게 의기양양해진다. – 서울 1964년 겨울 (136)

가난과 햇빛으로 다져진 카뮈의 구릿빛 문장은 문학적이라기보다는 기계적이다. 모두 그의 성실성 때문이다. (143) … 카뮈의 쇠 같은 문체는 군더더기 없고 청결해서 읽으면 그저, 문장 속으로 눈을 감고 싶어진다. (139)

당신의 마음을 전율케 하는 무언가가 솟아오르면 마음껏 표현하라. 당신의 말에 귀 기울이는 사람이 별로 없다는 사실을 마음껏 누려라. 한마디 말에도 무너지기 쉬운 유명인이 아니라는 게 얼마나 다행인가.(207)

글쓰기는 근육을 이완시켜 준다. 잘못을 저지르거나 실수를 한다고 해도 신경쓸 것은 없다. 이처럼 글을 빨리 쓰고 있으니 대상을 향해 직접적으로 순식간에 돌진하게 된다. 그러니 닥치는 대로 단어를 찾고 골라서 펜을 잉크에 묻히느라 쉬는 시간 말고는 간단없이 그 단어들을 내던져야 한다. – 버지니아 울프 <어느 작가의 일기> (245)

실비아 플라스는 당대 최고의 천재 영국시인 테드 휴즈와 결혼한 여성 시인이다. 크게 주목받지 못하던 시인이었던 그녀가 ‘신화’가 된 이유는, 서른 살의 젊은 나이에 가스 오븐에 머리를 처박고 자살했기 때문이다. 또한 남성의 세계에서 희생된 여성 시인의 전형, 즉 페미니즘의 기치를 든 ‘피 흘리는 여신’이 되기에 충분한 조건을 가지고 있었다. 혹자는 플라스의 이야기를 "해피엔딩만 빼고 모든 요소를 갖춘 동화"라고 말했다. (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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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은 책이다 - 시간과 연민, 사랑에 대하여 이동진과 함께 읽는 책들
이동진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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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일을 해내는 데 세월이 필요하다면, 그건 긴 시간이 곧 그 일의 핵심이기 때문이지요. (24)

사랑은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관계입니다. 사랑은 내 안에 있거나 상대의 마음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나와 너 사이의 좁혀지기도 하고 넓혀지기도 하는 공간에 불안정하게 존재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끊임없이 흔들리는 그 조그맣고 불안정한 공간과 모든 것을 변화시키며 흘러가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사랑을 지켜내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열정이 아니라 노력이고, 본능이 아니라 본능을 넘어선 태도입니다. 관계에 대한 모든 것은 배워야만 하고 갈고닦아야만 하지요. (56)

"원칙은 큰 일들에나 적용할 것. 작은 일들에는 연민만으로도 충분하다." – 카뮈 (78)

상기하는 것이 아니라 상기되기 마련인 기억의 존재 형식은 능동태가 아니라 수동태일 겁니다. 그렇게 기억은 무시로 우리를 급습하고, 일상의 사소한 접점에서 예기치 않게 격발당한 우리는 추억 속으로 침잠됩니다. 그렇기에 추억은 두렵기도 하고 신비롭기도 하죠. 당신은 오늘 어떤 기억의 문고리를 잡아당기셨습니까. (120)

아무리 탁월한 재능이라고 할지라도 걸작은 의도와 야심으로 탄생하는 게 아니라는 것이지요. 그것은 만드는 이의 능력과 향유하는 이들의 반응과 작품이 놓이는 특수한 상황이 시공간의 은총을 입어 절묘하고도 신비롭게 결합되었을 때에야 가능해집니다. 창작 역시 시간과 공간이 빚어내는 일종의 우연으로부터 큰 영향을 받는다는 사실 앞에서, 예술은 비로소 이 비루한 삶에 진정한 위안이 됩니다. (162)

"기다리는 사람은 시간을 초대한다." - 발터 벤야민 (196)

면역도 통하지 않는, 삶에서 반복해서 자주 받게 되는 상처는 어쩌면 그 사람이 삶에서 어떤 지향성을 갖고 있는지를 역설적으로 드러내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계속해서 같은 함정에 빠진다는 것은 그 함정이 그에게 그만큼 매혹적이라는 뜻이지 않을까요. 그렇기에 분자 구조가 조금 바뀌어도 인식하지 못하는 것이구요. 이를테면, 강점이 아니라 약점이 그가 진짜로 어떤 사람인지를 더 잘 드러낸다고 할까요. (259)

"지나간 모든 끼니는 닥쳐올 단 한 끼니 앞에서 무효였다." – 칼의 노래
"모든 밥에는 낚시 바늘이 들어있다." - 김훈 (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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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 넘어 함박눈
다나베 세이코 지음, 서혜영 옮김 / 포레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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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한테는 매일 밤 돌아오는 남자라는 것이 무슨 기적 같다. 세상 어느 여자를 봐도 남자가 모든 역경을 물리치고서라도 매일 밤 꼭 돌아오고 싶어지게 만드는 여자는 없는 듯하던데…그래도 남자들은 돌아온다.
그리고 세상 여자들은 남자가 매일 밤 돌아오리란 것을 의심하지 않는다. 그 여자들은 어느날 갑자기 남자가 돌아오지 않든가 아니면 처음부터 남자가 없었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을까. (78)

‘여보, 즐거웠어요. 재밌었어요. 덕분에 잘 살았어요. 고마워요, 고마워요…’ …부부로서의 인생이 끝날 때, ‘즐거운 삶이었어. 재밌었어, 고마워’라고 상대에게 말할 정도의 행복이 또 있을까? 이런 말을 할 수 있는 상대를 인생에서 만날 수 있었던 것에 어찌 감사하지 않을 수 있을까? (172)

일의 재미라고 하는, 금단의 나무에서 딴 열매 맛을 이 아이도 알아버렸다. 결국 알아버렸다. 그건 여자의 행복에 반하는 것일지 모른다. 하지만 결국 모르고 지나치는 것보다는 알고 사는 것이 더 행복한 거라고...생각을 정리한다. (1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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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 있는 나날 민음사 모던 클래식 34
가즈오 이시구로 지음, 송은경 옮김 / 민음사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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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이제 나는 다음과 같이 단정하고 싶다. 즉 ‘품위’는 자신이 몸담은 전문가적 실존을 포기하지 않을 수 있는 집사의 능력과 결정적인 관계가 있다. 모자라는 집사들은 약간만 화나는 일이 있어도 사적인 실존을 위해 전문가로서의 실존은 포기하게 마련이다. 그런 사람들에게 집사로 산다는 것은 무슨 판토마임을 연기하는 것과 비슷하다. 슬쩍 밀거나 약간만 비틀거리게 만들어도 가면이 떨어져 내려 가면 뒤의 배우가 제 모습을 드러내고 만다는 점에서 말이다. 위대한 집사들의 위대함은 자신의 전문 역할 속에서 살되 최선을 다해 사는 능력 때문이다. 그들은 제아무리 놀랍고 무섭고 성가신 외부 사건들 앞에서도 결코 흔들리지 않는다. 그들은 마치 점잖은 신사가 정장을 갖춰 입듯 자신의 프로 정신을 입고 다니며, 악한들이나 환경이 대중의 시선 앞에서 그 옷을 찢어발기는 것을 결코 허용하지 않는다. 그가 그 옷을 벗을 때는 오직 본인의 의사가 그러할 때뿐이며, 그것은 어김없이 그가 완전히 혼자일 때이다. 이것이 바로 내가 말하는 ‘품위’의 요체이다. (58)

게다가 내가 내린 그 작은 결정은 일대 전환의 계기가 되었다. 다시 말해 그 결정이 상황을, 훗날의 사태를 낳게 될 숙명적인 길로 내몰았다고까지 말할 수 있을지 모른다. 어쨌거나 때늦은 깨달음에 의지해 과거를 뒤져보노라면 그러한 ‘전환점’들이 도처에서 눈에 띄게 마련이다. (216)

"달링턴 나리는 나쁜 분이 아니셨어요…그리고 그분에게는 생을 마감하면서 당신께서 실수했다고 말씀하실 수 있는 특권이라도 있었지요. 나리는 용기있는 분이셨어요. 인생에서 어떤 길을 택하셨고 그것이 잘못된 길로 판명되긴 했지만 최소한 그 길을 택했노라는 말씀은 하실 수 있습니다. 나로 말하자면 그런 말조차 할 수가 없어요. 알겠습니까? 나는 ‘믿었어요.’ 나리의 지혜를. 긴 세월 그분을 모셔 오면서 내가 뭔가 가치 있는 일을 하고 있다고 믿었지요. 나는 실수를 저질렀다는 말조차 할 수 없습니다. 여기에 정녕 무슨 품위가 있단 말인가 하고 나는 자문하지 않을 수 없어요."(299-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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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경사 바틀비 - 미국 창비세계문학 단편선
허먼 멜빌 외 지음, 한기욱 엮고 옮김 / 창비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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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사실은, 천성이 그(니퍼즈)에게 술을 대어주는 격이었으니, 그는 태어날 때부터 성마르고 브랜디 같은 체질로 꽉 차 있어서 차후의 음주가 조금도 필요하지 않았던 것이다. (56)

나의 첫번째 감정은 순수한 우울과 진지하기 그지없는 연민의 감정이었다. 그러나 내 상상 속에서 바틀비의 절망적인 고독이 커지면 커질수록 그에 비례하여 바로 그 우울감이 공포로, 연민이 반발로 바뀌었다. 비참한 모습을 생각하거나 보면 어느 정도까지는 최상의 애정이 우러나오지만, 특별한 경우 그 정도를 넘어서면 그렇게 않다는 것이 과연 사실이며, 너무 섬뜩한 사실이기도 하다. 이런 일이란 어김없이 인간 마음의 타고난 이기심에서 기인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잘못된 것이다. 이는 차라리 과도한 기질적 질환은 치유할 수 없다는 절망감에서 나오는 것이다. 감수성이 예민한 존재에게 연민은 고통이 아닌 경우가 드물다. 그런데 그런 연민으로는 효과적인 구원에 이를 수 없다는 지각이 마침내 생기면 상식에 따라 영혼은 연민을 버릴 수밖에 없다. 그날 아침 목격한 것으로 말미암아 나는 그 필경사가 선천적인 불치병의 희생자라는 것을 납득하게 되었다. 내가 그의 육신에 자선을 베풀 수는 있다. 그러나 그를 아프게 하는 것은 그의 육신이 아니다. 아픔을 겪는 것은 그의 영혼인데, 그 영혼에는 내 손이 미치지 않았다. (74)

그 소문은 이렇다. 즉 바틀비가 워싱턴의 배달 불능 우편물 취급소(Dead Letter Office)의 말단 직원이었는데, 행정부의 물갈이로 갑자기 그 자리에서 쫓겨났다는 것이다.…배달 불능 편지라니! 죽은 사람 같은 느낌이 들지 않는가? 천성적으로 혹은 불운에 의해 창백한 절망에 빠지기 쉬운 사람을 생각해보라. 그런 사람이 계속해서 이 배달 불능 편지를 다루면서 그것들을 분류해서 태우는 것보다 그 창백한 절망을 깊게 하는 데 더 안성맞춤인 일이 있을까? 그 편지들은 매년 대량으로 소각되었다. 때때로 창백한 직원은 접힌 편지지 속에서 반지를 꺼내는데, 반지의 임자가 되어야 했을 그 손가락은 어쩌면 무덤 속에서 썩고 있을 것이다. 또한 자선헌금으로 최대한 신속하게 보낸 지폐 한장을 꺼내지만 그 돈이 구제할 사람은 이제 먹을 수도 배고픔을 느낄 수도 없다. 그리고 뒤늦게 용서를 꺼내지만 그것을 받을 사람은 절망하면서 죽었고, 희망을 꺼내지만 그것을 받을 사람은 희망을 품지 못하고 죽었으며, 희소식을 꺼내지만 그것을 받을 사람은 구제되지 못한 재난에 질식당해 죽어버린 것이다. 삶의 심부름에 나선 이 편지들이 죽음으로 질주한 것이다. (10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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