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와 한국어 사이에는 아직 뚫리지 않은 회로가 무궁무진합니다. 어떻게 보면 번역이란 그 미지의 회로를 뚫는 작업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번역의 탄생 157p)
가장 지독한 부류는 의식의 흐름에 따라 글을 쓰는 자들이다. 번역을 잘하려면 저자의 머릿속에 들어가 저자의 눈으로 보고 저자의 귀로 들어야 하지만 오감이 아니라 의식의 차원에서 글을 쓰는 사람의 머릿속에는 들어갈 방법이 없다. 이에 반해 저자가 잘 쓰고 편집자가 잘 다듬은 이른바 ‘웰메이드’ 책은 번역하기 수월하다.
판단을 회피하거나 텍스트를 해석하지 않고 원문 뒤에 숨으면 상당수의 오역을 면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문장이 오역이 아닐 수 있는 이유는 번역이 아니기 때문이다.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없는 문장은 실은 의미를 파악할 수 없는 문장일 가능성이 크다.
번역에 대한 보상은 노력이 아니라 결과를 기준으로 주어지며 결과는 질보다 양으로 측정된다. 실력보다 속력이 중요하다.
어느 직업이나 마찬가지겠지만 번역가도 장인으로서의 자부심을 느끼지 못하면 오랫동안 일할 수 없다.
사람을 그리워하는 사람은 번역에 적합하지 않다. 외로움이 병인 사람은 번역가가 되어서는 안 된다. 번역은 누군가와 같은 공간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북적거리는 카페나 공동 작업실에서 일할 수도 있지만 그때도 남들이 침범할 수 없는 자기만의 영역을 확보해야 한다.
전공자의 가장 큰 약점은 이른바 ‘지식의 저주’다...자신에게는 너무도 당연한 것이 독자에게는 지극히 생소할 수 있음을 감안하지 못한다. 전공 공부란 암호 해독술을 배우는 것과 비슷하다. 일반인은 감도 잡지 못하는 텍스트를 읽으면서 내용을 파악하고 행간을 읽어내는 기술을 습득한다.
전공자의 글이 쉽게 읽히지 않는 이유 중 하나는 인지 부하가 크기 때문이다. 인간의 단기 기억은 용량의 한계가 있기 때문에 문장을 덩어리로 나누어 처리한다. (통사론 용어를 쓰자면) 트리 구조에서 작은 트리를 완성해가면서 읽을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완성되지 않은 트리는 독자의 단기 기억을 점유하기 때문에, 안은문장을 길게 쓰면 앞에 나온 단어를 잊어버려서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야 하는 경우가 있다. 이런 문장을 ‘정원산책로(garden path)’ 문장이라 한다. 논문은 엄밀성이 중요하기 때문에, 용어와 표현을 한정하다 보면 문장이 덕지덕지 길어지기 마련이다. 이런 글을 읽고 쓰는 데 익숙해지면 그러지 못한 일반 독자와의 소통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우리가 외래어 표기법을 지키는 이유는 외국어 인명이나 지명을 정확하게 불러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끼리 소통하기 위해서다. 정확한 표기보다 중요한 것은 발음하기 쉬운 표기, 즉 한국어 음운 체계에 맞는 표기다. 각 언어권은 자기네 음운 체계에 맞도록 외래어를 수용했다...고유명사 표기에서는 정확성보다 통일성이 더 중요하다.
번역가의 장비는 소박하다. 컴퓨터는 워드프로세서와 브라우저만 잘 돌아가면 충분하다. 원서와 노트북만 달랑 들고 동네 카페에 가서 작업하는 번역가도 많다. 번역가가 업그레이드해야 할 것은 머릿속이다. 장비의 효율성은 뇌의 효율성을 따라가지 못한다.
한국어 어휘력이 부족한 사람의 문제 중 하나는 공기(collo-cation)를 제대로 맞추지 못한다는 것이다….공기의 정보는 사전에서 찾을 수 없기 때문에 이것을 자연스럽게 구사하느냐의 여부는 번역가의 한국어 어휘력에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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