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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막 난 시체의 밤
사쿠라바 카즈키 지음, 박재현 옮김 / 21세기북스 / 2012년 7월
평점 :
품절
2007년 나오키 상 수상작가라는데, 개인적으로는 이름도, 작품도 전혀 몰랐던 작가다. 그래서 처음에는 그저 <화차>와 비슷한 주제의 이야기겠거니 생각하고 읽기 시작했다. 소비자금융의 위험성과 다중채무자들의 말로를 그린다는 점에서 주제는 확실히 일맥상통하는 구석이 있다. 다만 20년이라는 집필 시기의 간극 때문인지, <화차>가 실종된 인물을 추적해가는 추리소설의 얼개를 유지하며 그 과정에서 문제를 짚어내는 데 주력하는 반면, 이 책은 이미 곪을 대로 곪아버린 문제의 단면을 다각도에서 대단히 적나라하게 그려내며 그 배후를 직설적으로 까발린다. 덕분에 작가의 주제의식과 실제 사태의 심각성이 훨씬 더 명료하게 드러난다.
- “…사실은 그러한 지극히 평범한 사람이 신용회사나 소비자금융의 주요 고객이야. 따라서 다중 채무에 빠지기 쉽지…. 좀 더 자세히 말하면, 저소득층의 평범한 사람. 금융계에 몸담고 있는 사람이 말하길, 주요 타깃이 되는 이는, 연령이 이삼십대로 비교적 젊고, 연봉이 이백만 엔대의 고객이래. 왜 그런지 알겠니? 연봉이 사오백만 엔 정도 되면, 모처럼 고금리로 돈을 빌려도, 몇 년만 분발하면, 원금에 이자까지 전액 갚아버리기 때문이야.”
“하지만 그러면 좋은 일이잖아요?”
“그런데 금융 회사의 입장에서 보면, 필사적으로 매월 금리만 갚고, 원금을 갚지 못하는 사람이 훨씬 좋은 먹잇감이지. 그들은 그것을 ‘최고의 상환’이라 해. 그런 고객은, 예컨대 오십만 엔을 빌리고, 몇 년에 걸쳐서 금리만 갚아나가, 총 오십만 엔 이상을 반제했는데도, 원금은 줄기는커녕 오히려 늘어나…. 저소득층 젊은 사람이 빚을 끌어안고 있어도, 이상하게, 새로운 금융 회사의 심사를 통과해. 업계 용어로 ‘돌린다’고 말하는 상태에 빠뜨리기 위해서지. 여러 회사가 한 사람의 젊은이를 캐치볼처럼 이리저리 던져 대출금을 눈덩이처럼 불리는 거야. 문득 제정신이 들었을 땐, 월말마다 빚은 노예로 전락해 있어…. 결국 평생토록 몇천만 엔이란 돈을 갚아도, 죽을 때가지 다중 채무로 남아. 이것이, 소비자 금융이 수익을 올리는 방식이야.” (249-250)
그러나 이 소설에서 인상적인 것은 주제뿐만이 아니다. 읽어갈수록 뭔가 지독한 늪에 빠져드는 느낌이 들 정도의 기분 나쁜 흡입력과 자본주의의 전성시대를 살아가던 인간들의 추악한 욕망을 바닥까지 꿰뚫어보는 서늘한 통찰력이 돋보인다. 왠지 알 수 없는 이유로 읽는 내내 대단히 불쾌하고 질척대지만, 중간중간에 비수처럼 날아와 꽂히는 기막히게 정확한 묘사들 때문에 도저히 읽기를 중단하지 못한 채 오히려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식이다. 그런 면에서 처음에는 대단히 비호감으로 느껴졌던 표지 그림과 색상이 글의 느낌을 잘 대변하고 있다는 생각도 든다.
- 요시노 군처럼 특별히 잘생기지도, 스타일이 좋지도 않은 평범한 아저씨에게, 여자가 걸려든 이유를 알 것 같았다.
… 틀림없이, 그 욕망이 너무나, 무거워서.
여자라는 것은 어리석은 동물이라서, 애정이나 성의, 사회적 안정, 그 어떤 것도 아닌, 자신을 향한 남자의 욕망의 깊이와 어둠에,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고꾸라지고, 데굴데굴 추락하고 만다. 나라는 여자는 여전히 매력적이라고, 우쭐한 마음이 되어서. 그것을 알고 욕망을 연기함으로써 노련하게 노는 남자도 있지만. (154)
개인적으로 읽고 난 느낌이 산뜻하지 않아서 다시 이 작가 책을 읽게 될지는 의문이지만, 작가가 하려는 말을 대단히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소설이란 점만은 아무도 부인할 수 없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