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순간에 아군이 적이 되는 순간이 있다.

그리고 상황에 따라 적이 아군이 되는 순간도 있다.

당연한 애기겠지만 후자는 슬프지 않다.

그러나 전자는 슬프다.

 

살면서 적과 아군을 보자마자 구분하는 방법 같은건 없다.

그건 최악의 상황에 닥쳐보아야,

그리고 서로 다치지 않겠다고 방패를 드는것은 물론

창까지 들어야만 알 수 있는 상황이다.

 

그 창으로 나를 얼마나 깊이 찌르는지.

그리고 정말 나를 없앨 생각으로 그 창에 독까지 바르는지를 보고 나서야

우리는 적과 아군을 구분할 수 있다.

 

단적인 예로 우리의 아버지들은

어리석게도 친구라는 이름의 적을 아군으로 알고

보증을 서다가 쫄딱 망하기도 한다.

 

적과 아군이 바뀌는건 순식간이다.

사람은 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그 사람의 적이 될 수도 아군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은 사람을 믿는다.

이 사람 만큼은 내게 적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어떤 상황에서든 자기를 보호하긴 하겠지만

그 보호를 명목으로 나를 찌르지는 않을 것이라고.

 

그런데 문제는 정작 내가 누군가에게 적이 되는 순간이다.

나는 그의 아군이라고 생각했는데

어느 순간 보면 내가 그의 적이 되어있다.

그리고 그는 나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방패를 들고 창을 든다.

그리고 함께 보낸 모든 기억들과 시간이 무색할만큼

나를 깊게 찌른다.

왜냐면 나는 그의 적군이므로.

 

더 슬픈건 내가 그의 적군이라는 사실이 아니라

마지막 까지도 그에게 내가 적군이 아니고 싶다고 생각하는 내 자신이다.

이미 이쯤되면 적이 분명한데도

나 역시 방패를 들고 나를 막고 창으로 그를 찌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그의 적군이 아니었으면 하고 바라는 것이다.

그게 제일 잔인한 일이다.

차라리 앞뒤 볼 것 없이 

되도록이면 깊게 찌르고

되도록이면 방패로 나를 최대한 방어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 사실을 잠시 망각하는 그 순간

아군이었던 그 적이 찌르는 창은 참으로 아프다.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며 따지는 순간.

니가 그랬으니 내가 이런다고 말 하는 순간.

그리고 넌 언제나 그런 식이라고 말 하는 순간.

우리는 순식간에 아군에서 적군이 된다.

 

이제 남은건 내가 적군임을 인정하는 것일까?

그래서 나 역시

인간에 대한 예의고 뭐고 간에

나를 지키는 것에 최선을 다 해야 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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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alei 2010-03-04 17: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전하시군요. 세상의 고민은 절반쯤 떼다 지고 계신거 같아요.

플라시보 2010-03-04 21:05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고민없이 살았으면 좋겠네요.^^
 



빨간색을 좋아하지만 

빨간색이 좀처럼 어울리지 않는 나는 

저렇게 빨간 슬리퍼를 신는 것으로 

빨강에 대한 내 욕망을 조심스럽게 표현한다. 

난 진정 니가 좋단다. 

다만 내게 어울리지 않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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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시보. 위약효과. 브라이언 몰코가 있는 밴드 이름. 

그리고 내가 몇 년 전 부터 썼던 내 애칭? 아이디? 별명? 

그래. 그런때가 있었다. 

플라시보로만 내가 존재하던.

알라딘 마을의 플라시보는 어디로 간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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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phistopheles 2010-02-25 21: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여기 있어요....(친절한 금자씨 이영애 버젼으로) 부탁드립니다.

플라시보 2010-03-01 17:37   좋아요 0 | URL
네. 방금 그렇게 읽었어요.^^ 그때의 금자는 정말이지 천사같았어요. 그죠? ㅎㅎ

가시장미 2010-02-26 00: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기.바로여기.계시잖아요. ^^

플라시보 2010-03-01 17:37   좋아요 0 | URL
네. 여기에 있습니다. 그렇지만 동시에 없기도 합니다. 무슨 소린지는 저도 잘...흐흐흐.

비로그인 2010-02-26 10: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돌아와욧!

플라시보 2010-03-01 17:37   좋아요 0 | URL
네. 돌아갈께요. 나~ 돌아갈래^^ (이것 역시 영화의 한 장면처럼 외쳐야 하는 것이겠지요?)

2010-02-26 14: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플라시보 2010-03-01 17:38   좋아요 0 | URL
네. 고맙습니다. 어딘가에 있다는 것은 알고 있어요. 숫자들이 말해주거든요. 아직도 나를 기억하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을요.^^
 

4년 전인가? 후배의 생일 파티 장소가 나이트 클럽이어서 어쩔 수 없이 정말 몇백년만에 나이트 클럽을 가게 되었다. 그때 우리는 2층 룸에 자리하고 있었는데 당시 한참 유행하던 '텔미'가 나오자 나이트 클럽내의 모든 남녀들이 일제히 군무를 추기 시작했다. 다들 집에서 텔미를 녹화해서 습득이라도 했는지 그들의 동작은 한치의 어긋남도 없이 원더걸스가 추던 그대로였다. 그때 생각했다. 아..이제 내 인생의 나이트는 여기서 끝이구나. 나는 이들과 섞여 텔미를 출 수도, 추고 싶지도 않구나. 그렇다고 해서 저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나만의 춤사위를 펼치기에는 좀... 그래 20대때 운동화 바닥이 닳도록 갔으니 원도 한도 없다. 여기서 나이트는 그만 접자. 라고 다짐했었다. 

며칠 전. 단골 술집의 5주년 기념 파티가 있어서 참석했다. 무려 사은 선물로 헤네시를 돌리는 등 역시 테이블 단가가 높은 집은 뭐가 달라도 다르구나 하며 친구와 함께 늘 마시던 와인잔을 기울였다. 그런데 이 친구가 아는 지인이 어찌나 많은지 그 자리에서 나는 수없이 양주를 받아 마시게 되었다. 그렇게 얼큰하게 취해서 그녀와 헤어졌다. 그리고 문제는 여기부터다. 술을 아예 왕창 마시면 괜찮은데 어설프게 마셔버려서 예의 그 '나 오늘 완전 마셔버릴래' 가 발동한 것이었다. 그래서 그 시간. 어디선가 술잔을 기울이며 헤롱대고 있던 지인을 불렀다.  

그녀와 나. 길거리 한복판에서 '됐나?' '됐다!' 를 외치며 내가 늘 가던 Bar로 향했다. 거기서 우리는 각자 칵테일을 마셨고, 나는 단골 좋다는게 뭐냐며 사장을 설득. 무대위에 올라가서 김동률의 출발을 부르는 추태까지 부렸다. 그러나 여기까진 괜찮았다. 다행스럽게도 그 가게에 손님이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심지어 주인도 나중에는 코러스를 넣네 어쩌네 하며 옆에서 같이 불러제꼈다. 그 언니도 왕년에는 좀 노셨더랬다.) 

내가 노는 꼬락서니가 영 심상찮았던지, 오늘 이것이 작정을 했구나 싶었던지 지인은 갑자기 클럽에 가자고 했다. 아니 이 나이에 나이트도 아니고 클럽? 아직 솜털 보송한 아해들과 머리에 실핏줄마저 다 마르지 않은 아해들이 넘실대는 그곳? 그러나 여기서 나는 또 에라이 모르겠다 하며 난생 처음 가 보는 클럽 (클럽 자체를 처음가보지는 않았으나 그 클럽은 처음 갔다.) 에 입장료를 내고 들어갔다. 그녀는 이왕 마시는거 왕창 마시자며 위스키를 시켰고, 이미 위스키와 꼬냑과 와인과 칵테일이 짬뽕이 된 나는 뭔들 어떠리, 다 술인것을 하며 좋아라 마시기 시작했다. 그리고 우리는 각자 꼬이는 발로 스텝을 밟아가며 열심히 놀았다.  

한참 춤을 추는데 어떤 남자애가 말을 걸었다. '누나 몇 살이세요?' 음.... 대체 뭐라 대답해야 할지 막막해서 그러는 너는 몇 살이냐고 물었다. 딱 열 살 차이였다. 그래서 말했다. 여자 나이는 물어보는게 아니라고. 그러자 녀석은 나 듣기 좋으라고 그랬는지 아니면 클럽의 조명이 하도 어두워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20대 중후반으로 봤다. 기분이 좋지도 나쁘지도 않았다. 내 나이를 보면 어떻고 또 못 보면 어떤가. 하지만 내 입으로 내 나이를 말하기엔 좀 그랬다. 괜히 그 아이들에게 이제 이 클럽도 한물 갔어. 세상에 그 누나 나이 들었냐? 같은 대화가 오가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 

마침내 클럽이 문을 닫을 시간이 되고, 친구와 나는 맡겨둔 가방과 코트를 챙겨서 거리로 나섰다. 그런데 그때, 우리는 서로의 모습을 보게 되었다. 화장은 이미 다 지워져서 맨 얼굴로 나와서 놀았다고 해도 믿을 정도였고 무엇보다 다크서클이 엄지발가락에 걸려있었다. 어디 강제 노역이라도 뛰고 온 이들마냥 우리의 모습은 정말 초췌함 그 자체였다. 그 순간 느꼈다. 이러고 노는 나이가 다 따로 있구나. 이제 정말 내 인생에 이런 식으로 춤추고 노는건 마지막이겠구나.  

물론 내 나이에 맞는, 그러니까 좀 아저씨도 있고 아줌마도 있는 그런 나이트 클럽을 갈 수는 있다. 하지만 나는 그런 분위기를 워낙 싫어하기 때문에 아마 별 이변이 없는 한 그런 나이트 클럽까지 찾아가면서 춤을 추고 놀지는 않을 것 같다.  

누군가에게 이 이야기를 했더니 나이에 맞게 멋있게 늙어가라고 했다. 나는 이승환의 노래 중에서 나이가 들어도 넥타이와 양복 대신 청바지를 입고 자기가 하고 싶은대로 남들 눈치 보지 않겠다는 노래를 무척 좋아했었는데 그 순간 생각했다. 치. 지는 연예인이니까 그렇지.  

나이라는 것이 그렇다. 인정해도 서글프고 인정하지 않아도 서글프다. 아직 마음은 청춘이라는 말. 정말 장난같이 들어 넘겼던 말이었다. 그러나 지금의 나는 그 말이 무슨 말인지 백퍼센트 이해한다. 비록 하드웨어는 세월의 흔적을 비껴가지 못하고 늙었지만 소프트웨어는 말랑말랑한 사람들. 이제 그만 젊은 아이들에게 자신이 있던 자리를 내어 주고 데스크에 앉아 대장 노릇을 해야 하지만 마음만은 일선에서 뛰고 싶은 사람들. 우린 대체 어떻게 늙어야 멋있게 늙어가는 것일까? 

예전에 지하철에서 나이에 맞지 않은 젊은 복장을 한 늙은 여자를 보고 속으로 비웃었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이제는 비웃을 수 없을 것 같다. 어떤 마음인지 너무 잘 알것 같기 때문이다. 그 나이엔 그나이에 맞는 삶이, 복장이, 환경이 갖춰지는게 맞긴 하다. 그게 가장 자연스럽게 늙어가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줄을 쭉 서서 늙어간다는거. 그렇게 남들과 더욱 더 비슷해져 간다는거 많이 서글프다. 

누군가가 나와 같이 어중띤 사람들을 위한 클럽을 만들면 좋겠다. 아예 가격도 비싸게 해서 애들은 들어올 엄두도 못 내는. 그렇지만 젊은 애들이 노는것 못지 않게 놀 수 있는 사람들이 갈 수 있는 곳. 아직은 늙었다고 생각하며 주말이면 TV나 보며 시간을 죽때리고 싶지 않은 사람들을 위한 곳. 부킹이나 껀수 하나 올리려고 가는게 아니라 정말 음악도 듣고 신나면 일어나서 춤도 출 수 있는 곳. 야한 쇼 같은것도 없고 짧은 미니스커트를 입은, 가게에서 동원한게 분명한 손님 끌기용 언니들이 없는 곳.  

그런 곳이 생긴다면 내 인생에 마지막 클럽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이 여건에서는 그래야 한다. 이제 나는 더 이상 클럽을, 나이트를 가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생각해봤는데 나중에 좀 잘 살게 되면 지하에다가 혼자 무대도 만들고 사이키 조명도 달아놓고 해서 지인들이랑 놀아도 괜찮겠다는 좀 정신나간 생각도 들었다. (근데 막상 그림을 떠올리니 많이 정신나간것 같긴 하다.) 

사람들이 어려보이는 것, 즉 동안을 좋아하는 이유는 나이만큼 늙지 않아서 세월을 비껴 갔다는 의미도 있겠지만 젊다는 것이 그만큼 많은 가능성을 갖고 또 그만큼 많은 것을 할 수 있어서는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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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노아 2010-02-25 01: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 엄마랑 외출하면서 엄마는 마음의 나이가 몇 살이야? 했더니 30대라고 하셨어요. 본인 나이의 절반 쯤 되는 나이지요. 아, 나랑 동갑이다... 했어요.^^

플라시보 2010-02-25 17:28   좋아요 0 | URL
그럼 저도 지금부터 제 나이를 딱 절반으로 생각해볼까요? ㅎㅎ

심술 2010-02-25 23: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돈 벌고 나면 자기 집 지하에서만 하지 말고 그런 나이트 클럽 하나 차리세요. 제 생각엔 님처럼 생각하시는 분들의 수요가 있을 거 같은데요.

플라시보 2010-03-01 17:39   좋아요 0 | URL
차리려면 상당히 많은 돈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음... 일단 책이 완전 대박나는 수밖에는 하하하하
 


그럴 때가 있다. 청소 정도의 의미가 아니라 집 전체를 발칵 뒤집어엎은 다음 거의 밤새 매달려서 정리 정돈을 하곤 한다. 자주 있는 일은 아니지만 마음이 심란하거나 당장 넘겨줘야 할 원고가 좀처럼 답이 안 나올 때, 가끔 나는 집을 뒤집는다. 어제도 그런 날이었다. 한동안의 밀린 일을 쳐내느라, 그간 연락을 못한 사람들을 만나느라 연일 강행군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또 다시 집을 엎고 싶은 충동에 시달렸다. 다행스러운 건 그나마 내 작업실로 쓰는 방 하나만 엎었다는 것. 그래도 그 방에 잡동사니가 제일 많은지라 계절이 바뀔 때 옷장 정리하는 것 못지않게 하드했다.


먼지만 뒤집어쓴 채 눈길한번 받지 못하는 장식품들, 그리고 서랍 속에는 뭐가 그렇게 많이 들어앉아 있는지 그 물건들을 내가 전부 어디선가 물어다 날랐다는 것이 믿어지지가 않았다. ‘아무것도 못 버리는 사람’이라는 책에 의하면 잡동사니며 쓰레기를 끌어안고 사는 것은 들어오는 복도 나가게 하는 지름길이라던데.. 내가 복이 없다면 순전히 이 작업실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더 이상 보고 싶지 않은 장식품들을 상자에 담고, 왜 이걸 여기다 그냥 처박아 뒀지 싶은 물건들을 다시 꺼내고, 물건들의 위치를 조금씩 바꾸었다. 가구 배치를 달리하면 기분 전환이 된다지만 그런 무거운 물건을 옮기는 건 엄두도 나지 않으니 죽으나 사나 그저 잡다한 물건들의 위치를 요렇게 조렇게 바꿀 밖에.. 그러다 장식장 위에 올려 진 납작하고 작은 원목 서랍장을 열어보게 되었다. 주로 다 쓴 통장과 누군가에게 받은 생일 카드, 기억도 나지 않는 사람들의 명함들 속에 그 편지는 있었다.


샛노란 색의 봉투를 보았을 때 나는 그 편지를 누군가에게 받은 편지라고 생각했다. 대체 누구 길래 편지의 컬러 선택이 이리도 과감하나 싶어 열어보기 전까지는 내가 썼던 편지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봉투보다 더 진한 두 장의 노란색 편지지에는 익숙한 내 글씨가 있었고 편지를 쓴 날은 2003년 7월 8일이었다. 그러니까 지금부터 무려 7년 전에 쓴 편지였다. 하지만 편지는 별로 7년의 세월을 견뎌온 흔적 없이, 마치 어제 누군가에게 쓴 편지마냥 해사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편지는 사랑하는 Piggy 에게 로 시작되었다. 피기. 그래 내가 피기라고 부르던 남자가 있었었다. 그는 결코 뚱뚱하지 않을뿐더러 오히려 말라서 인상이 좀 날카로웠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항상 그를 피기라고 불렀다. 그리고 지금 생각하면 손발이 좀 오그라들지만 그는 내게 아기라는 호칭으로 불렀더랬다. 아마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을 것이다. 만나는 사람에게 이름이나 당신 혹은 자기라는 말 대신 무언가 우리 둘 만의 언어처럼 비밀스럽게 서로를 불렀던 것이. 뚱뚱하지 않은 피기처럼 나 역시 베이비 페이스의 인간은 아니었지만 어쨌건 우린 서로를 그렇게 불렀다.

편지의 내용은 별 것 없었다. 이 편지가 지금 내 손에 있는 걸로 보아 이미 그때도 추측이 가능했었던지 시작은 ‘이 편지가 당신에게 전달될지는 알 수 없지만’ 이었다. 허나 주지 않을, 혹은 차마 주지 못할 편지에 담기기 마련인 절절함이나 애잔함 같은 건 없었다. 그저 우리가 생각보다 오래 만나고 있다는 것, 그리고 싸울 때 너무 모질게 굴어서 미안하다는 것, 사랑인지는 모르겠지만 많이 익숙해져 가고 있다는 얘기가 주된 내용이었다. 생각해보면 못 전할 편지도 아니었지만 굳이 글로 써서 주어야 할 만큼의 내용도 없는 그냥 그런 밋밋한 편지였다.


그러나 나는 그때를 기억한다. 분명 행복해 라고 말 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확실하게 편안했다고 말 할 수 있었던 시기. 불같이 타오르고 영원히 함께 하고 싶다는 욕망을 느끼지는 않았지만 지금 이대로가 좋아요 라고 말 할 수 있었던 시간들이었다. 그는 모나지도 않았고 특별하지도 않았다. 지금 떠올려보면 내가 만났던 사람들 중에서 가장 무난하다는 단어와 어울리는 그런 평범한 사람이었다. 그때만 해도 특별하지 않은 사람은 인간 취급도 하지 않았던 내가 어째서 그런 남자를 만나게 되었는지, 그리고 스스로 인정했다시피 꽤 오래 만났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를 만나는 동안 나는 그 시절을 기억할 만한 날카로운 추억 같은 것 하나 없을 만큼 아주 평온하게 하루 하루를 보냈다는 것이다.


어쩌면 결혼을 생각 했더라면 그런 남자와 했을지도 모르겠다. 날마다 비명을 지를 만큼 행복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비명을 지르며 서로 싸울 일은 없는 사람. 어제도 오늘도 똑같아서 좀 지겹기는 하겠지만 그래도 먼 훗날의 언젠가 적어도 한결 같은 사람이었다는 생각은 할 수 있는 사람. 나에게 크게 바라는 것이 없어서 가끔은 이 사람이 나를 원하고 있는지 어쩐지 궁금해지지만 그만큼 나에게 자유와 편안함을 허락하는 사람. 그래. 결혼을 했다면 이런 남자와 해야 했을 것이다.


그가 그렇게 밋밋하지 않았다면 나 역시 이렇게 밋밋한 편지 같은 건 쓰지 않았을 것이다. 내가 남자들에게 쓴 편지는 언제나 절절했었으니까. 어떻게 하면 글로 내 마음을 전할까, 아니 실제의 내 마음 보다 그가 더 감동하고 감탄하게 만들 수 있을까를 고민했었다. 행여 헤어지게 되더라도 나중에 그 사람이 내 편지를 다시 꺼내어보면 내가 이렇게 근사한 여자와 왜 헤어졌을까 고민하게 만들고 싶었었다. 그러니까 나는 편지의 힘을 너무나 맹신하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쓴 편지는 누군가에게 닿는 순간 내가 전달하려고 했던 것 보다 더 큰 울림과 감동을 전달 할 것이라고 믿었었다.


그러나 이제 더 이상 나는 편지를 쓰지 않는다. 언제 어디서든 실시간 문장 대화가 가능한 메신저와 절대 분실사고가 일어날리 없는 이메일은 생각보다 빨리 종이 편지를 대신하게 되었다. 누군가에게 편지를 쓴 것은 정말 까마득히 오래전 일이다. 왜 내 글씨는 이 모양일까 생각하면서, 여분의 편지지가 없으면 행여 잘못 적을까봐 조심하면서 적었던 기억은 사라졌다. 대신 나는 전화를 하거나 핸드폰으로 문자를 보낸다. 그래서 내 마음은 그만큼 간편해졌고 짧아졌다.


최근에 딱 한 번 누군가에게 편지를 쓰려고 시도를 한 적이 있었었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종이에 손으로 쓰는 편지는 그 내용이 무엇이건 간에 감정 과잉처럼 느껴졌다. 최대한 심플하고 캐주얼한 말들만 한다 하더라도 편지는 그 하드웨어적 이미지에서 이미 그런 것과는 거리가 멀어져 버렸다. 이제 세상에는 편지를 대신할 것들이 너무나 많아졌으므로. 그래서 편지를 쓴다는 것은 무언가 굉장한 마음을 담은 굉장한 행위처럼 느껴진다.


글을 다 써가는 지금 나는 그 노란 편지를 잘게 찢어서 쓰레기통에 넣었다. 이제 더 이상 그런 감정들을 보관한다는 것이 버겁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주 잠깐 동안 그 편지를 보면서 나는 편지만큼이나 밋밋했던 그 사람을 떠올렸다. 그리고 그는 늘 그러했듯 그 잠깐의 되새김 이후에는 그를 잊고 살 것이다. 더 이상 내가 편지를 쓰지도, 그게 필요하지도 않은 것처럼.


행여, 만약에라도 지난날 나의 과장스럽고 구구절절한 편지를 아직까지도 갖고 있는 누군가가 있다면 이제 그만 버리라고 말해주고 싶다. 그때의 나도, 그때의 당신도 이제 이 세상에는 존재하지 않을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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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2-24 02: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3-01 17:39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