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 연애를 시작한 친구들을 만나면 우린 이런 얘기들을 종종 듣게 된다.

완전 우린 천생연분이야. 그 많은 찌게 중에서 우리 둘 다 해물순두부찌게를 좋아한다니까, 흔해빠진 김치찌게도 된장찌게도 아니고 그냥 순두부도 아닌 해물순두부찌게라는게 믿어지냐?' 

'이건 하늘이 맺어준 인연이 틀림없어 내가 작년에 홍콩 갔던거 기억나지? 그때 상하이 샤워 난궈 퀴진이라는 레스토랑에서 게살 씨우룽빠우를 먹고 있었는데 그 사람도 그때 그 식당에서 누군가와 식사를 하면서 게살 씨우룽빠우를 먹을까 하다가 찹쌀이 들어간 딤섬을 먹었다는거야.

'뭣보다도 우린 일단 핸드폰 통화 연결음이 둘 다 Sugar ray 의 아브라카다브라야. 브아걸이 아니라 Sugar ray라는게 중요해. 이건 인연도 보통 인연이 아니란 얘기지. 나 아무래도 곧 결혼할것 같아'
 

음. 해물순두부찌게는 나도 좋아하고 홍콩이 상하이 샤워 난궈 퀴진 이란 레스토랑은 스타벅스 절반 정도의 가맹점을 갖고 있는지 돌아다닐때마다 '어 또 저 식당이네' 할 정도였고 Sugar ray의 아브라카다브라는 나도 싸이월드 미니홈피에 깔아놓은 배경음악이다. 그러나 그녀들은 나와는 유사점을 찾지 않는다. 왜냐면 나는 그녀들의 '그' 가 아니기 때문이다.

전세계 인구가 60억명이라고 칠 때 그들은 자신이 그들과 만날 확률이 60억분의 1이라고 생각한다. (참 코스모폴리탄적이기도 하지 짐바브웨이에 있는 이름모를 청년도 해당사항이 있고, 무엇보다 심각한것은 여자와 어린애 및 노약자와 임산부가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그들의 말을 빌어 전세계 인구가 60억명이라 치면, 그런 우연은 밑도 끝도 없이 일어난다. 오죽하면 케빈 베이컨 게임이라는 것도 다 있겠는가. 심지어 한 방에 모인 사람 중에 생일이 같을 확률이 50%가 넘는 두 사람이 있으려면 23명이면 족하다.

그러니까 그녀들이 인연 혹은 임자 만났다고 생각하는 모든 것들은 우연의 일치일 뿐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절대 나는 솔직하게 말하지 않는다. 왜냐면 나만 해도 특정한 누군가와 휴대번호 앞자리는 다르지만 같은 이동통신사를 쓰다니 하며 오~ 놀라워라를 연발했던 기억이 있으니까. 사랑에는 확률이나 우연은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인연과 필연이 있을 뿐이다. 
 

그래서 그녀들의 말에 맞장구를 쳐 준다. 마치 그녀와 그녀의 그가 만날 확률은 로또 일등에 당첨될 확률과 맞먹는 대단한 인연이라는 듯, 아침에 일어났더니 빌 브라이슨이 옆집으로 이사와서는 한국에서 살게 되었는데 아직 물정을 잘 모른다며 잘 부탁한다는 인사를 건네오기라도 했다는 듯. 그렇게 신비하고 놀라워하며 함께 기뻐해준다. 사랑은 원래가 좀 그런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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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0-03-18 07: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결혼 혹은 헤어짐이 연애의 끝이라 생각했는데, 지금은 다른 결말도 있지 않을까 싶어요. 갑자기 `우리 곧 결혼할 것 같아'에서 든 생각.ㅎㅎ

플라시보 2010-03-23 18: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겠죠? 그런데 그 다른 결말을 사람들은 잘 생각하지 않는것 같아요. 헤어지거나 아니면 결혼하거나. 분명 다른 선택도 있을 수 있는데 말이죠. 참고로 전 펴엉생 연애'만' 하고 싶은 인간이었답니다. ㅎㅎ

topoke 2010-04-01 13: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작가님!!
이젠~완전히 페이퍼로만 도배하기로 전향하셨나용^^
마이리뷰-리스트 보고 그책들 읽는 재미로 책읽는 보람을 느꼈었는데..
책에대한 무지로 인해 작가님 댓글들이나 리스트보면서 도움을 느꼈었거든요..
많이 바쁘신가봐요..욕심에 그만 바쁘시고 읽을거리 업데이트좀 해주셨으면 정말 감사할텐데..ㅎㅎ
여긴 비가내리는 고장이라 이몸도 좀 고장난 것 같아 집에가서 책이나 읽어야 몸이 좀 풀릴듯 하옵니다!!
좋은하루 보내세요^^

2010-04-01 17: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PM 3:00
중대한 결정을 해야 하는 순간. 이대로 좀 더 삐대고 있다가 모자를 쓰고 방송국으로 갈 것인지, 아니면 우리 프로그램의 유일한 여자 게스트로서의 사명을 다 하기 위해 샤워를 하고 화장품도 좀 찍어 바르고 가 주실 것인지. 결국 샤워는 하지만 화장은 안하고 얼마 전 면세점에서 건진 시커먼 마크제이콥스 안경으로 얼굴을 가리기로 결정.

PM 4:30
한 것도 없는데 어쩜 이렇게 시간이 빨리 가는지 매우 놀라워 하며 아파트를 나섬. 그런데 어이쿠야 선글라스를 끼고 나서야 아큐브를 착용하는 것을 깜빡 했다는 사실을 발견. 가방을 뒤져보니 다행스럽게도 평소 잘 안쓰는 안경 중 하나가 굴러다님. 안도의 한숨을 쉬며 택시를 잡아탐. 보통은 택시 안에서 원고에 쓴 책들을 그제서야 읽는 시츄에이션을 벌이지만 오늘은 다행스럽게도 두 권 모두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은 책이라 뿌듯함. 여유롭게 창밖으로 보이는 희뿌연 풍경을 감상함. 당췌 보이는게 없어서 햇볕이 쨍쨍 내리쬐는 날씨에도 불구하고 모든것이 매우 몽환적으로 보임. MP3에서 흘러 나오는 브렛 앤더슨의 목소리와 기똥차게 잘 맞아 떨어짐. 

PM 5:00
거의 마하의 속도로 달려주신 택시 운전기사 덕분에 30분만에 방송국에 도착하는 기적을 행함. 방송국 수위 아저씨는 이제 내 얼굴을 익힐때도 되었건만 여전히 어딜 가냐고 질문해주심. 주여..하고 작게 뇌까리고 싶은걸 꾹 참음.

PM 5:05
PD, 엔지니어, 스튜디오 안의 아나운서와 인사를 하고 원고를 받음. 이젠 시키지 않아도 알아서 B스튜디오로 감 (거의 비어있음) 간만에 앉아서 원고 연습이나 해 볼까 했으나 뭐가 잘못된건지 아무리 눌러도 스튜디오 스피커가 꺼지질 않음. 할 수 없이 핸드폰을 켜고 친구와 실시간 문자 날리기 놀이를 함. 핸드폰이 너무 안보여서 액정이 맛갔나 싶었는데 여전히 선그라스 끼고 있음을 발견. 안경으로 바꿔 쓰니 빛이 있으라 하시되 빛이 있음.

PM 5:10
생방송 하던 PD 잠시 짬을 내어 건너오더니 '오늘은 커피도 못 드리겠네요' 함. 바쁘단 소리임. 안그래도 그의 커피, 설탕, 프림의 조화가 매우 입맞에 맞지 않았던차에 오히려 반가움. 명랑하고도 쾌활한 목소리로 내가 알아서 마시겠다 함. 대체 PD는 왜 나에게 커피믹스를 타서 주는 간편함 대신 자기가 직접 제조하는 불편함을 감수하면서 그러는지 잘 이해가 안감. 더구나 요즘 커피믹스는 설탕 조절까지 되는데 말이지.

PM 5:20
생방 들어가기 5분 전. 아무리 내가 쓴 원고라지만 그래도 한번쯤은 봐줘야 할 것 같아 대충 살펴보니 맙소사 말 안되는 문장 너무 많고 말로 하기 힘든 문장 역시 너무 많음. 재빨리 볼펜으로 내 것만 고침. 진행자는 알아서 잘 하시겠지 방송 경력 20년을 자랑하는 베테랑인데 암만. 
 

PM 5:25
스튜디오에 들어가서 제일 먼저 핸드폰부터 끔. 예전에 생방 도중에 진동이 울려서 난감해서 죽을뻔한 기억이 새록새록 돋아남. (한 손으로는 원고 잡고 입으로는 말해가며 한 손으로 부시럭대며 가방을 뒤져 꺼야했던) 이 트라우마는 절대 안 없어질 듯. 거의 생방송 1분전. 진행자 매우 여유롭게 등장.

PM 5:30
방송 시작. ON AIR 에 불이 들어오고 진행자와 나. 무척 친한척 하며 서로 원고를 주거니 받거니 읽음. 도중에 진행자 갑자기 에드립 치기 시작. 황사에 대해 아무 생각이 없었던 나는 '괜찮던데요?' 라고 얼빵한 소리나 해댐으로써 더 이상의 에드립은 용납치 않겠다는 의사를 확실히 표현해줌. 이토록 잘 쓴 원고에 왜 자꾸 에드립을 쳐대는지 알다가도 모를일임. 더구나 에드립을 치면서 얼굴도 안보고 원고만 뚫어지게 쳐다봄. (어쩌면 거기다가 자기 에드립을 적어놨을지도..음...)

PM 5:35
한참 한비야의 경력을 얘기하는데 국제 NGO 긴급구호 팀장이라는 말을 하고 난 다음 머릿속에서 '옆집에 사는 개 이름 빙고라지요~ BINGO BINGO BINGO 빙고라지요' 하는 노랫말이 떠나질 않음. 결국 그녀가 나온 어려운 발음의 미국 대학 이름을 틀리게 발음함. 방송 경력 2년 게스트 경력 5년차 답게 '죄송합니다'라는 멘트를 하고 다시 정정함. 생각해보니 그냥 넘어갔어도 아무도 몰랐을텐데 괜히 정정했다 싶어 후회막급.

PM 5:45
드디어 두 번째 책 소개로 넘어감. 근데 미쳤지 이석원을 정석원이라 썼음. 아놔 미치겠음. 그것도 내 원고가 아닌 진행자 원고라 수정도 불가능함. 다급해진 나 진행자가 들으랍시고 이~석원 하고 눈치를 줬으나 베테랑 답게 내 멘트는 하나도 안듣고 있다가 원고에 쓰인 그대로 정석원이라 발음하심. 순간 공일오비에 너무 미쳐있었던 지난날이 약간 후회스러움

PM 5:55
이제 슬슬 마감을 해야 할 시간임. 그러나 진행자 전혀 시간 안 봄. 오늘도 역시 내가 스스로 원고 건너뛰며 짜집기 쇼를 하여 시간을 맞추느라 쌩쇼를 다함. 그제야 진행자 시간을 보더니 우리의 마감이 56분 30초 라는걸 떠올렸는지 급히 마무리 멘트 읽어주심. 다음 이 시간에 더 유익한 책으로 찾아뵙는다는 클로징 멘트가 너무 지겹지만 달리 쓸 말이 없어서 진행자, 5년째 같은 말을 하고 있음. 뭐 책은 어지간하면 다 유익하니까 하며 스스로를 위안하며 애청자 여러분들께 끝인사 날림.

PM  5:57
진행자. 클로징 하자 마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남. '수고하셨습니다' 라는 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바람같이 사라짐. 아무래도 스튜디오에 최대한 늦게 들어오고 최대한 빨리 나가기가 직업 윤리인것 같음.

PM 6:05
'수고 하셨습니다. 아~ 오늘 책 선정 좋던데요' 5년째 PD에게 늘 같은 말 들음. 내 클로징 멘트 만큼이나 당신도 참 할 말이 없으신가보구료 싶어 잠깐 동질의식 비슷한걸 느낌. 내 방송 날짜도 아닌데 게스트 하나가 펑크내는 바람에 땜빵을 해달라 하심. 그 땜빵 여부도 이틀 후에나 알려준다 하심. 아무리 내가 최장수 게스트라 만만해도 그렇지 책을 두 권이나 읽어야 하고 원고까지 써야 하는데 너무하는거 아니냐고 말 하기에는 보도자료들에게 미안해서 차마 암말 못함. PD 약간 미안했는지 애청자들에게 나눠주는 독일 유기농 화장품 교환권을 주심. 순간 얼굴에 화색이 돌면서 '방송 하루전에만 말씀해주세요' 라며 깨방정을 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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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0-03-17 10: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헤헤헷 브렛 앤더슨을 들으셨다니 괜시리 제가 반갑!

플라시보 2010-03-17 12: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크하하 왜 아니 그렇겠습니까? 안그래도 쓰면서 님의 서재 이미지가 떠올랐더랬습니다.

세실 2010-03-17 22: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호호호 마지막 멘트 깨방정 표현에 웃음이 팍팍..
남녀탐구생활 보는 듯합니다. 재밌어요~~~

플라시보 2010-03-23 18:42   좋아요 0 | URL
흐흐 감사합니다. 깨방정 떤 덕분에 오늘 방송했어요. 원래 하는날 아닌데 말이죠. ㅋㅋ

2010-03-23 09: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3-23 18: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3-25 21: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3-26 00: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이미 지난 일들에 대한 생각은

수천가지의 혹시를 낳고

또 수만가지의 어쩌면을 낳는다.

그리고 그 생각의 생각이 꼬리를 물고 머릿속을 온통 점령할때 즈음

두뇌는 나를 보호하기 위해 그만 생각하자 라는 결론을 내리거나

혹은 사건들이 점차 희미해져서는

어떤게 진실인지 어떤게 내 머릿속에 일어난 상상일 뿐인지의 경계가 모호해지면서

그렇게 시간이 지나면 세월이 약이라는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서서히 잊혀지는건 아닐까?

 

아직까지는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되도록 빨리 잊혀지는 시간들이 오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내게 일어난 모든 일들이 그저 꿈처럼 아련하게 느껴질 날이 언젠가는 오겠지만

그 언젠가가 정말이지 빨리 좀 왔으면 좋겠다.

 

힘들다는 말을 하는 것도 힘이 들때쯤

그때쯤에는 그럴 수 있을까?

더 이상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고

완전하게, 깨끗하게 끝이 났다나는 것을 인정하고

그 모든 사건과 시간들을 머릿속에서 리플레이 하는 일을 멈출 수 있을까?

 

시간은 약이다.

그러나 그 약이 효과를 발휘하기까지는 시간이 걸린다.

타이레놀 ER처럼

잘 녹는 절반과 잘 녹지 않는 절반.

그 잘 녹지 않는 절반이 효과를 내기까지 시간이 필요한 것 처럼

 

어쨌건 시간이 약이다.

세월이 흐르면 못 잊을것도 없다.

어쩌다 생각이 나겠지만

그건 정말 '아 내가 그랬었구나' 정도의 떠오름이지

지금처럼 모든 것들이

마치 네비게이션을 3D 모드로 전환했을때 처럼

평면이던 건물이 여기서 쑤욱 저기서 쑤욱 솟아오르듯

그렇게 생각들에 잠식당하지는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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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3-22 22: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플라시보 2010-03-23 18:50   좋아요 0 | URL
네버에버님 감사해요.^^
 

 

 

 

 

 

아바타라는 영화를 보면서 나는 생각했다.

이 영화에 다들 왜 그렇게 난리지?

자동차 극장에서 아바타를 봤다는 내 말에 지인은 펄쩍 뛰면서

'세상에 자동차 극장에서 본 아바타는 아바타가 아니야, 진정한 아바타는 아이멕스에 3D로 봐야해'

그래서 나는 그 지인을 비롯 3명이서 함께 아바타를 봤다.

그러나 여전히 감흥이 없었다.

 

제임스 카메론이 만든 아바타의 신세계는 볼만했다.

지구상에서 볼 수 없는 생명체들을 그렇게 하나 하나 화면에 다 심어놓았다는 것도 대단해 보였다.

그런데 내가 본 아바타는 잘 만든 컴퓨터 게임. 딱 거기까지였다.

극중 주인공과 네이터리의 사랑은

이건 뭐 거의 엄마잖아? 싶을 정도로 여주인공이 무한대의 사랑 뿐 아니라

마치 평강공주처럼 그를 성장시키기까지 한다.

그야말로 몸주고 마음주고 사랑주고 정주고 돈까지 주는 경우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겠다.

 

사랑은 그렇다 치고.

현실에서는 다리를 다쳐 하반신 불구에

더 중요한건 그런 현실을 받아들일 수 없어서 캡슐에 누워서 잠이나 자던 그가

아바타를 조정하고 부터는 완전히 몰입을 해서는

마침내 그 세계로 건너가 버린다는 것이다.

아바타는 그가 아니다.

단지 그의 정신만 건너갔을 뿐이다.

인간에게 있어 육체는 단지 정신만을 담는 그릇이 아니다.

나는 정신과 육체가 결코 분리될 수 없는

하나의 짝이라고 생각한다.

부실한 육체에 멀쩡한 정신

혹은 불온한 정신이 건강한 육체에 존재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아프면 그것들은 마치 쌍둥이들이 그러하듯

다 같이 아프다.

그런데 아바타에서 중요한건 오직 정신이다.

현실 세계 같은건 전혀 중요하지 않다.

오직 자신의 판타지를 실현할 수 있는 곳이라면

그곳이 현실이건 어디건 상관없다는 식이다.

 

그 영화를 보면서 나는 매트릭스를 떠올렸다.

만약 아바타의 남자 주인공이 네오였다면

그는 빨간 알약을 결코 먹지 않았을 것이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실제가 아니라

자신의 뜻대로 할 수 있는 판타지의 세계이기 때문이다.

 

매트릭스에서 자주 등장하는 요원 하나가 모피어스를 잡아놓고 이런 말을 한다.

처음에 만든 매트릭스는 너무 완벽했다고

그런데 인간이 그만 죽어버리더라고

너희 인간들은 완전한 것들은 받아들이지 못한다고
맞다. 인간은 그렇다.

우리는 완전하지 못하기 때문에 이토록 치열하게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꿈꾸는게 모두 이루어지는 세상

그래서 누군나 마음만 먹으면 대기업 회장이 되고 유명 작가가 되고 인기 초절정 연예인이 되는 세상이라면 과연 그 세상에서 인간은 자살하지 않고 살 수 있을까?

 

아바타에 끝내 동의할 수 없었던 부분은

그가 아바타 자체가 되어버리는 부분이었다.

그 병사가 아바타 프로젝트를 무사히 마치고 그들과 우리들의 공존 방법을 찾아내고

그런 다음 실제 자기 자신으로 돌아와서

다리도 수술하고 무언가 자신의 삶에 의미있는 것을 찾아내고

네이터리와의 사랑을 그리워하고

뭐 이랬어야 나는 아바타를 그럭저럭 괜찮은 영화로 평가했을 것이다.

 

나의 지인은 할 수만 있다면

지금 별 불만은 없지만 이 세상에서 아바타의 완벽한 세상으로 건너가고 싶다고 했다.

그러나 나는 지금보다 현실이 더 지랄맞을지라도

그냥 이 세상에 남고 싶다.

나에게는 하이퍼리얼리즘이고 뭐고 간에 진짜가 중요하다.

리얼한 무언가가 아닌

리얼 그 자체.

 

그래서 나는 종교가 없는지도 모르겠다.

모든 종교는 지금 현생 보다는 후생을 이야기한다.

기독교는 하나님을 열심히 믿으면 천당을 갈 수 있다고 하고

불교는 부처님을 열심히 믿으면 열반에 도달해서는 역시 다음 생에는 더 나은 존재로 태어나게 된다고 말한다.

그 다음. 그 다음. 그 다음.

지금 생이 아닌 그 다음.

솔직히 알게 뭔가?

그런게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 완벽한 세상에 존재하는 내가 지금의 기억을 갖지 못한다면

그것은 과연 나라고 말 할 수 있는 것일까?

그게 나이기는 한 것일까?

내가 설사 지금의 모습이 전생에 복을 쌓은 덕에 개미에서 인간이 되었다 하더라도

나는 이미 개미가 아니다.

그냥 나는 지금 나라는 인간일 뿐이다.

그 기억에도 나지 않는 전생 혹은 후생이 그렇게 중요한 것일까?

 
컴퓨터 게임을 좋아하지 않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그곳은 실제의 세상이 아니다.

그리고 실제 세상을 닮지도 않았다.

거기에는 오직 크나큰 기쁨만이 존재하며

마음에 안들면 언제든지 리셋 버튼을 눌러버리면 새로 시작할 수 있다.

우리가 사는 것과 닮지 않아도 너무 안 닮았다.

우리는 하나의 아이템을 획득했다고 해서 승승장구 할 수 있지도

또 지금 내 모습이 맘에 안든다고 리셋 버튼을 눌러서 새로 시작할 수도 없다.

 

진짜로 누릴 수 없는 것들을

마치 진짜인것 처럼 해 주는 모든 것들은

언젠가는 진짜로 돌아갔을때 그만큼의 허탈감만 안겨 줄 뿐이다.

 

지인이 물었다.

'아바타로 건너가면 니가 유명 작가가 된다면 그래도 안갈거야?'

난 물론 가지 않는다고 했다.

지금의 무명작가보다 물론 유명 작가로서의 삶이 훨씬 더 좋겠지만

그건 내가 아니다.

그저 내가 바라는대로 다 이루어져있는 가짜 세상일 뿐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그냥 이 진짜의 세상에 산다.

진짜 세상에서는 가끔 견디기 힘든 일들도 일어나고

내 마음대로 되는건 거의 없다고 볼 수 있다.

그렇지만 이 진짜가 중요하다.

영원히 깨지않는 달콤한 꿈 보다는

그냥 달콤한건 고사하고 써서 토할것만 같은 현실이라 하더라도

그냥 이 현실에 존재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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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립간 2010-03-12 10: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실례를 먼저 사과드려야겠군요. 처음 읽기 시작할 때 플라시보님을 생각했는데, 다 읽을 때 쯤 왜 stella09님으로 생각했을까요?

플라시보 2010-03-12 16: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 스텔라09님과 제가 글 스타일이 비슷했나봐요^^

2010-03-22 22: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플라시보 2010-03-23 18:49   좋아요 0 | URL
현실에 불만이 많으면 아바타가 좋아 보일것 같아요. 아무래도 그렇겠죠. 그런데 현실에 불만이 좀 있어도 그냥 여기서 인간으로 사는 내가 괜찮아 라고 느끼면 아바타에 별로 공감을 별로 못 하는것 같아요.^^
 

이승환의 천일동안이라는 노래를 나는 참 좋아한다.

그런데 끝내 이해할 수 없는 대목이 있다.

 

헤어지자는 말은 참을 수 있었지만

당신의 행복을 빌어줄 내 모습이 낯설어 보이진 않을런지

 

헤어지자는 말을 어떻게 참을 수 있는지 모르겠지만

그리고 헤어지는 마당에 상대의 행복을 빌어주는 사랑이 얼마나 성숙한 사랑인가를

내 모르는바 아니지만

그 모습이 상대에게 낯설어보이지 않을까 걱정한다는 것은

그동안 그가 그런 모습을 한 번도 보이지 않았다는 얘기일 것이다.

 

누군가에게 나는 헤어지면서 '잘 지내라' 는 말을 한 적이 있었다.

그러자 상대가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진심이니?'

그렇다. 진심 아니었다.

나는 그가 잘 지내기는 커녕, 나 없이 얼마나 잘 살지 두고보자는 심정이었었다.

가시는 그길에 꽃잎을 뿌려드리긴 커녕

지뢰라도 심어둬서 여기서 펑 저기서 펑 터지길 바랬었다.

 

그와 만나는 동안

나는 싸울때마다 독한 말들을 했었다.

내가 생각해도 너 좀 돌았구나 싶을 정도로

상대의 심장을 후벼파는 얘기들을 했었다.

들으면 아프다는 것을, 그리고 말은 내뱉으면 영영 사라지는게 아니라

누군가의 가슴에 박힌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나는 일단 싸우는 동안에는 이기고 봐야 했다.

그랬다. 많이 유치했다.

심지어 싸우다가 상대방이 울면

약간 안되었다는 생각이 반, 이렇게 어설퍼서 세상 어떻게 살래 싶은 맘이 반이었다.

나 때문에 마음아파서 우는 상대에게

나는 고작 그따위 생각이나 했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알고 있었던 것이다.

잘 지내라는 내 말이

그저 마지막에 할 말은 없고 좀 멋있기는 해야겠고 해서 뱉은 말이라는 것을 말이다.

차라리 아무 말이나 말았으면 좋았을걸

난 그때 왜 그랬을까?

 

앞으로 누군가를 사랑하게 된다면

그리고 언제나 그렇듯 헤어지게 된다면

그때 내가 잘 지내라고 진심을 다해 말 할 수 있을까?

그리고 그 말에 상대가 낯설어 하거나

피식 하고 웃지 않을 수 있을까?

 
그런데 잘 모르겠다.

나는 정말 나 자신보다 더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을지.

내가 다치는 순간 조차도

그에게 행복을 빌어주고, 나 때문에 조금의 피해도 입지 않기를 바랄 수 있을지.

 
그래도 있다고 믿어야겠지.

그래야 내가 세상에다 대고 하는 모든 사랑의 충고들이

헛소리 하고 있네가 되지 않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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