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니즘의 도전 - 한국 사회 일상의 성정치학
정희진 지음 / 교양인 / 200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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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각해보면 나는 내 또래 여자아이들 치고는 꽤나 차별 없는 환경에서 자랐다. 우리 집에는 귀한 아들. 내게는 오빠 내지는 남동생쯤 되었을 그들 대신 나와 내 여동생 이렇게 딸만 둘이었으니까. 가끔 사람들이 아빠에게 정말로 아들을 보지 않을 것인지 물으면 아빠는 말했다. 딸로도 충분하다고. 자식은 아들이나 딸이나 다 똑같다고. 정말로 아빠는 단 한번도 남의 집 아들을 부러워하거나 혹은 아들을 낳고 싶어 하지 않으셨다. 오히려 주위에서 보면 눈살을 찌푸릴 정도로 여동생과 나를 금이야 옥이야 키우셨다. (벌초를 하러 가면 우리의 종아리가 풀에 베일까봐 하나씩 업고 산을 오르셨다. 처음에는 욕을 하던 친척들도 몇 해 그렇게 하니까 자연스러워져 버렸다.)

그래서 나는 다른 집 딸들도 다 나와 내 여동생처럼 자라는 줄 알았다. 그러나 초등학교를 들어가서 그게 꼭 그렇지만은 않음을 알게 되었다. 인형놀이를 하다가도 우리 집에서 같이 수다를 떨다가도 오빠가 있는 애들은 일정한 시간이 되면 벌떡 일어났다. 나는 저녁을 먹고 가라고 했지만 그녀들은 말했다. '가서 오빠 라면 끓여줘야 해' 혹은 '가서 오빠 밥 차려줘야 해' 심지어 내 친구 중 한명은 남동생에게 주기적으로 얻어맞기까지 했다. 우리 집에서는 여동생이 나를 때리는 하극상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으므로 (물론 나도 여동생을 때려서는 안 되었지만) 어떻게 동생한테 맞을 수가, 아니 그 보다 그걸 부모님들이 아는데도 왜 그 남동생을 가만히 둘까 라는 생각을 했었다.


남동생이나 오빠가 없어서였건 아니면 우리 아빠의 생각 때문이었건 아무튼 집에서는 여자라서 차별을 받거나 하는 일은 전혀 없었다. 그러나 사회는 내게 아빠처럼 해 주지 않았다. 초등학교에서 반장 선거를 할 때. 나는 자격이 되었지만 부반장이 되었다. 반장 선거에는 아예 나갈 수가 없었다. 왜냐면 나는 여자였기 때문이었다. 전교 어린이 회장을 뽑을 때도 나는 나갈 수 없었다. 전교 어린이 회장은 반장만 출마할 수 있는데 그 반장이 되려면 내가 남자여야 했기 때문이었다. 내가 최대한 학교에서 감투를 쓸 수 있는 것은 부반장 내지는 전교 어린이 부회장이었다. 그건 내 실력이나 모자람 때문이 아니라 단지 내가 남자아이가 아니기 때문이었고 나는 그 사실을 받아들이기가 유독 힘들었었다.


중학교와 고등학교는 여자 아이들만 다니는 곳에 있어서 그나마 별 차별을 느끼지 못하며 살았다. 그러나 대학에 들어가니 또 다시 초등학교 때 느꼈던 차별을 느껴야 했다. 과대는 전 부 남자였고 여자 후배들은 남자 선배들 앞에서 감히 맞담배를 피울 수 없었다. 술자리에서 담배를 피우는 여자 후배들은 종종 따귀를 맞기까지 했다. 담배를 피운다는 사실을 누구나 알고 있었지만 우리는 대단한 남자 선배들 앞에서는 마치 담배를 피우지 않는 여자들처럼 행동해야했다. 나는 남자 선배들 앞에서도 담배를 피우고 싶었다. 그래서 영화와 뮤직비디오를 만들 때 남자처럼 일했다. 나도 밤을 새우고 40kg 짜리 카메라를 어깨 빠지게 들고 있었다. 그러자 드디어 그들은 내게 큰 인심을 쓰는 양 입에 담배를 물려주고 불도 붙여줬다. 나는 그때 내 노력으로 마침내 나도 남자 선배들 앞에서 담배를 필 수 있게 되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그건 억지였다. 여자로써 도저히 무리인 4일 연속 밤새기 (낮에 수업 듣고 밤에 편집하고 촬영을 하는데 여학생들은 보통 이틀 밤을 새고 집에 한번 갔다가 온다.) 를 무리하게 했던 것이다. 나는 그때 평등이 그런 건줄 알았다. 내가 남자들과 똑 같아지는 것. 그래서 그들이 누리는 것을 나도 누리는 것. 비교적 평등한 환경 속에서 자랐던 나조차도 남녀평등을 그렇게 알고 있었던 것이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나는 페미니스트들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언젠가 아빠가 그런 얘길 했었던 게 기억이 난다. 페미니스트 중에서 예쁜 여자를 본 적이 있냐고. 전부 페미니스트 아니면 딱 안 될 것 같은 얼굴들을 하고 있지 않냐고. 내가 기자 일을 할 때 취재를 나가면 사람들이 가장 놀랐던 것은 내가 안경을 쓰지 않고 바지를 입지 않고 머리카락도 길다는 것이었다. 여기자 하면 딱 정형화된 이미지가 있었고. 그 이미지에 맞지 않는 나를 그들은 매우 신기하게 여겼었다. 그것과 마찬가지로 페미니스트들에게도 이런 편견이 존재한다. 그녀들은 못생기고 뚱뚱하고 자기 자신의 외모를 가꾸는 것에는 전혀 관심이 없을 것이라는, 그래서 페미니스트이며 페미니스트 일 수밖에는 없을 것이라는 편견. 예쁜 여자들이 페미니스트가 아닌 것은 그녀들은 그냥 예쁜 여자로서의 특권을 누리는 게 훨씬 더 이익일 텐데 뭣 하러 못생긴 다른 여자들과 섞여서 남녀평등을 주장하겠는가 하는 것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부끄러운 생각이 아닐 수 없다. 여자인 내가 이렇게 생각하는데 단 한번도 여자로 살아보지도 또 여자의 삶이 어떤지 생각조차 안 해봤을 남자들은 어떻겠는가? 그들은 분명 페미니스트를 못생기고 목소리 큰 여자들로 생각 할 것이다.


이 책 페미니즘의 도전은 제목은 과격하나 내용은 결코 과격하지 않다. 투쟁해서 쟁취하자는 익숙한 구호도 눈에 뜨이지 않는다. 책은 우리에게 여태 잘못 알고 있었던 점들을 조목조목 지적 해 준다. 정말 아무 생각 없이 썼던 말들. 이를테면 중앙에서 누가 연설을 할 때 뒷자리에서 떠들면 지방방송을 끄라고 하라던가 (엄연한 지역적 차별이다. 중앙방송은 떠들어도 되고 중앙방송이 하는 동안에 지역 방송은 무시되어도 상관없다는 논리에서 나온 말이다.) 국민은 국방의 의무를 지닌다는 말 (여자들은 국방의 의무가 없고 따라서 이 말은 여자는 국민이 아니라 2등 국민이라는 소리가 된다.) 모두가 엄연한 차별적 발언이다. 페미니즘의 도전은 물론 여성들이 이 사회에서 차별을 당하는 현실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하지만 그 뿐 아니다. 우리가 여성이라고 규정지은 속에 장애인 여성, 늙은 여성은 포함되지 않는다는 것도 말하고 있다. 페미니즘에 대한 말을 많이 들어봤지만 그 말 속에 또 다른 차별이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한 책을 읽어보는 건 처음이라 나는 꽤 충격을 받았다. 나도 모르게 여성이라고 함은 당연히 20대 초반에서 30대 후반까지를 말하는 것이며 (그 전은 어리고 그 이후는 너무 늙어서 여자라기보다는 엄마 혹은 아줌마로 대표된다고 생각했다.) 그녀들은 보통의 아이큐와 정상적인 신체를 가지고 있다고 너무나 당연하게 생각했었다. 그러니까 내가 말하는 여성에 너무 어리거나 나이 들거나 혹은 신체적 정신적으로 이상이 있는 여성은 여성의 범주에 집어넣지도 않았던 것이었다.


사실 차별은 겪어보지 않으면 마음에 확 와 닿기가 힘들다. 내가 겪지 않은 일을 단지 듣는 것으로 똑같이 느끼기는 어렵다. 하지만 가만 생각해보면 우리가 겪은 많은 일들 중 확실하게 차별은 존재했었고 성희롱도 존재했었다. 다만 그걸 사회생활 하다 보면 혹은 세상이 다 그러니까 하며 어영부영 넘어갔을 뿐이다. 우리가 대단한 폭력을 신체적이던 정신적이던 겪지 않았다고 해서 세상이 여자들에게도 남자들과 똑같은 기회와 편의를 제공하는 것은 아니다. 사무실이 지저분하면 남자들은 전부 여자 직원을 쳐다본다. 커피를 마시고 싶어도 여자 직원에게 말한다. 좀 상냥한 부탁 어조로 바뀌긴 했지만 커피를 타서 줘야하는 사람이 우리라는 사실은 변함없다. 시키는 방법이 좀 더 부드럽고 좀 더 예의 있게 바뀌었다고 해서 본질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김 양아 커피 타와라' 나 '미스 김 커피 한잔 부탁해요' 나 결국 자기가 마시지도 않을 커피를 타서 남자에게 주어야 하는 것은 김씨 성을 가진 여자인 것이다.


책을 읽으면서 정말 많은 생각을 했다. 그리고 많은걸 새로 알게 되었다. 여태 몰랐던 것들 그리고 알았지만 그게 뭐 큰일인가 하고 넘어갔던 부분들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는 계기를 가지게 되었다. 이 책은 읽고나서 당장 페미니스트가 되라고 말하지 않는다. 남자들을 향해 그리고 세상을 향해 외치며 투쟁하라고 강요하지도 않는다. 다만 우리가 너무나 잘못 알고 있었던 혹은 알지만 그게 문제인지조차 몰랐던 것을 알게 한다. 흔히 미술대학을 가면 오직 그림을 그리는 실기만이 중요하다고 생각을 한다. 그러나 여동생의 말에 의하면 이론도 그 못지않게 중요하다고 한다. 그녀는 자신의 학교에 과제도 많지만 각 미대를 순방하면서 세미나를 했던 프로그램이 가장 좋았다고 했다. 나는 페미니즘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구호를 외치고 실천하고 행동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이전에 나는 이론적으로 확실하게 정립이 되어야 한다고 본다. 막연하게 여자도 남자와 똑같다고 주장하는 것이 페미니즘은 아닌 것이다. 그렇게 되면 여자도 군대를 갔다 와야 한다고 생각하고, 나처럼 4일 밤을 새고 그 무거운 카메라를 드는. 평등이란 남자 같아지는 것 이라는 오류를 범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이론서로 조금의 부족함도 없다. 물론 더 알아야 할 것이 많겠지만 적어도 이 한권만 읽는다 하더라도 우리는 많은 것들을 다시 생각하고 판단하게 될 것이다.


여성이 얼마나 차별을 받는지 혹은 피해를 받는지에 대한 사례를 늘어놓아서 분노를 끓게 하고 그것을 행동으로 옮기게 하는 여타 페미니즘 관련 서적들도 물론 필요하겠지만. 나는 이렇게 차분하게 이론적으로 하나하나 풀어가는 책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 책을 읽고 또 위에서 언급한 책을 읽을 때 비로소 우리는 페미니즘에 대해 조금은 알게 되었다고 말 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리고 아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행동과 실천으로 옮길 수 있을 것이다.

 

덧붙임 : 끝으로 좋은 책을 선물해주신 마태우스님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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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2-21 13: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플라시보 2005-12-21 13: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삭이신분. 그러게나 말입니다.^^

코마개 2005-12-21 13: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이 책 좀 다르게 읽었는데, 조만간 저도 리뷰를 쓰려구요.
플라시보님 아마 이제 100만권 여성학 교과서를 읽는 것보다 절절하게 여성의 한국내 정체성을 깨닫는 순간이 곧 올겁니다. 짜잔~

플라시보 2005-12-21 13: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강쥐님. 으음. 그건 곧 있을 제 결혼 생활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흐흐. 이 책을 어떻게 다르게 읽으셨는지도 되게 궁금해요.^^

로드무비 2005-12-21 15: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산사춘님의 선물로 이 책을 읽고 너무 좋아서 두어 분께 선물했어요.
이렇게 생생하고 조목조목 잘 짚은 리뷰라니, 감탄하고 갑니다.^^

2005-12-21 21: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플라시보 2005-12-21 21: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드무비님. 그러셨군요. 이 책 정말 읽어야 할 필독서인것 같습니다. 여자건 남자건 말이죠. 리뷰칭찬 감사해요. 부끄러워요. 흐..^^

속삭이신분. 고마워요.^^

마추픽추 2006-02-08 22: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전엔 티비를 보면 남자상사가 여자부하 직원에게 커피 심부름을 시키는 것에 대해 반감을 가졌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직접 회사를 다녀보니 그런 생각이 오히려 사라지더라구요
왜냐하면 여자는 커피나 정리를 하는 대신 남자는 무거운 물건을 들거나 뭐 그런 일을 하더라고요..
저는 그것이 차별이 아닌 남녀간의 암묵적인 역할 분담이 아닐까 생각한답니다.
부모님 세대를 보면 엄마, 아빠의 가사 역할이 음식/ 못 박기 그렇게 대략 나뉘어지는것처럼요..

그런데 여기서 불만의 소지가 생길 수 있는것은 설겆이를 하는 횟수나 커피 타는 횟수가 남자의 그 수고스러움보다 훨씬 많기 때문이 아닐런지..
다행히도 저는 강압적인 부탁(?)을 받지 않았고 남녀 차이로 인한 스트레스를 받아
보지 못해서 긍적적으로 생각한답니다.
상사는 나의 발전을 이끌어주는 사람이고 그런 사람에게 자의든 타의든 커피를 타주는 것은 나의 자그만 배려라구요..참 행운녀인 셈이죠 ^^
이상 커피에 관한 저의 견해를 몇자 적어보았습니다.
'지역 방송 꺼'는 미처 생각해보지 못했던 되새겨볼만한 말인데요..^^

 
마시멜로 이야기 마시멜로 이야기 1
호아킴 데 포사다 외 지음, 정지영 외 옮김 / 한국경제신문 / 200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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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시멜로. 먹어보긴 했지만 그 맛이 어떠했는지 잘 기억이 나질 않는다. 뭐 별 맛 없이 그저 달콤하고 약간은 불량식품스런 향이 났다는 것 이외에는 특별한 기억이 없다. 그러나 헐리우드 영화나 드라마에서는 캠프 같은 곳에서 쇠꼬챙이에 마시멜로를 끼워서 구워먹는 장면이 종종 등장했다. 그럴때면 별 맛이 없었던 기억에도 불구하고 나는 화면 속에 그려지는 마시멜로가 참 맛있겠다고 느꼈다.

마시멜로 이야기는 이 마시멜로가 너무나 달콤하고 맛있다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당장 눈앞의 달콤한 마시멜로를 먹는것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만약 그것을 참으면 하나의 마시멜로를 더 준다고 할때. 이론상으로는 다들 참을것 같지만 실제로는 그러지 못하는게 인간다.

주인공 찰리는 사업가 조나단의 운전기사이다. 그는 어느날 사장인 조나단으로 부터 마시멜로 이야기를 듣게 된다. 조나단이 4살이 되던해 어떤 실험을 하게 되었는데. 그것은 바로 눈앞의 마시멜로 하나를 15분동안 먹지 않고 참으면 뒤이어 바로 또 하나의 마시멜로를 준다는 것이었다. 조나단은 억지로 이것을 참았으며 15분 후에 2개의 마시멜로를 먹을 수 있게 되었다.

마시멜로는 그러니까 당장 눈앞에 보이는 기쁨이나 쾌락쯤으로 보면 된다. 문제는 훗날을 위해 그것을 얼마나 참고 견디는가 하는 것이다. 학교를 다닐때 늘 그랬었다. 시험기간이 다가오면 공부를 해야 한다는걸 알지만 그때마다 소설책은 얼마나 재미있고 라디오는 또 얼마나 들어야 할 것들이 많았는지. 분명 라디오를 끄고 소설책을 덮고 공부를 하면 좋은 성적이라는 두 개의 마시멜로를 먹게 될 것을 알았지만 그때마다 나는 번번이 눈앞에 놓인 마시멜로를 먹어버렸다.

성공하는 방법은 모두 제각각이다. 10대때의 나는 늘 그런 생각을 했었다. 현재를 희생한 미래가 무슨 의미가 있겠냐고. 10대를 희생한 20대는 이미 10대를 잃어버린 후고, 20대를 희생해서 30대가 좋아진다고 하지만 이미 20대는 지나가 버려서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꺼라고. 그렇지만 그 순간들에 내가 만약 조금만 생각을 달리 했더라면 내 인생의 마시멜로는 몇 개로 늘어났을까?

사실 나는 아직까지도 미래를 위해 무조건 현재를 희생하는 것에는 그다지 호의적이지 않다. 하지만 그 필요성은 다른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잘 알고 있다. 희생은 그걸 하지 않을때는 희생처럼 느껴지지만 막상 실행을 하면 더 이상 희생이 아니다. 그때부터는 또 다른 기쁨일수 있고 삶의 방법일 수 있다. 그러나 나는 미래를 위해 무언가를 참아야 하는 현실은 언제나 희생이고 또 잃어버리는 세월이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마시멜로 이야기는 아주 단순하다. 사장인 조나단은 차를 탈때마다 운전사인 찰리에게 무언가 하나씩 얘기를 해 주고. 찰리는 그에 맞춰 변화한다. 이거 어른이 읽기에는 너무 싱거운걸? 하는 생각마저 든다. (내 생각에는 초등학생이 읽어도 별 무리가 없을듯하다.) 그렇지만 가장 단순한 사실도 실천을 하지 못하면 알아도 아는게 아니다. 다 아는 얘기긴 하지만 이걸 읽고나서 뭔가 실천하고 행동할 수 있다면 이 책은 그 값어치를 충분하게 하는 것이다. 다만 조금 더 높은 수준의 책을 원했던 나에게 이 책은 약간 동화스러웠기에 그리 좋은 인상만 남긴것은 아니다. 이런 책은 초등학교 내지는 중학교때 읽었으면 딱 좋았을뻔 했다.

마시멜로 이야기는 장사를 아주 잘 했다. 아나운서 정지영씨에게 번역을 의뢰한게 그것이다. 사실 내 경우는 거의 그것때문에 책을 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냥 제목만 봤을때 이 책의 경우 전혀 내가 끌려할 만한 책이 아니기 때문이다. 잘 읽기는 했지만 마음을 쿵 하고 울리는 감동까지는 받지 않았다. 그저 다 아는 사실의 확인 정도? 아무튼 이 책은 자기계발 서적을 단 한번도 읽지 않았던 사람에게 추천하고 싶다. 어려운 말 없이 우화를 통해 비교적 쉽게 삶의 방식에 접근을 하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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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추픽추 2006-02-08 23: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장사를 잘 하는 방법으로 그런게 있었네요... 꽤 괜찮아보이는 아나운서가 번역했다는 사실에서 호기심이 생기는 저 같은 사람을 위해서요 ^^
 
랄랄라 하우스
김영하 지음 / 마음산책 / 200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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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나는 마이 페이퍼에서 미니 홈페이지를 신랄하게 비판한 적이 있었다. 이른바 셀카족, 얼짱각도, 도토리 (사이트 내의 지불 수단)를 유행시킨 이 사이트는 크기가 매우 작아서 글을 올리기에는 좀 부적합하고 사진을 올리면 딱 맞는 정도의 사이즈였다. 그래서 사람들은 타 홈페이지에서와 달리 자신들의 일상적인 사진을 열성적으로 올렸다. 연예인 내지는 특수직 종사자가 아닌 다음에야 하루하루가 빤한 민간인들은 전혀 흥미롭지도 새롭지도 않은 자신들의 반복적인 일상을 죽어라고 올렸다. 이 미니 홈페이지는 디지털 카메라 보급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음은 물론이다. 과거 모 여자 연예인의 매우 개인적인 비디오 파일이 인터넷과 컴퓨터 보급에 앞장섰듯이 말이다.


내가 비판하는 이유는 다름 아닌 자신의 얼굴 사진과 자신이 먹은 음식 사진을 올리는 그 쓰잘데기 없음과 나르시즘의 묘한 결합이었다. 대체 그 짓을 왜 할까 싶은 생각부터. 세상에서 얼굴 팔리는 것을 가장 죄악시하는 나로서는 그 오픈 된 공간에 자신의 얼굴을 여보란 듯 올리는 사람들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이 미니 홈페이지의 기능은 단지 자신의 사진을 올리는 것에서만 그치는 건 아니었다. 그 컨텐츠가 가장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다름 아닌 사람 찾기 기능 때문이었던 것이다. 동창 찾기 사이트가 한참 유행을 하고 그 유행이 시들해질 무렵. 사람들은 그래도 여전히 찾고 싶은 사람들이 있었던 것이다. 미니 홈페이지를 만든 회사는 이를 발 빠르게 받아들여 태어난 연도와 이름만 알면, 혹은 이메일 주소만 알면 사람을 찾을 수 있는 기능을 만들어 놓았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꼭 동창뿐 아니라 옛 친구, 동네친구, 옛 애인 할 것 없이 자신이 찾고 싶은 수많은 사람들을 찾고 그들의 일상과 현재를 사진으로나마 훔쳐볼 수 있게 되었다. (흔한 이름일 경우 똑같은 이름으로 몇 페이지가 뜨지만 사람을 찾는데 혈안이 되어 있는 사람에게는 그 사람의 이름을 클릭 하여 일일이 홈페이지를 둘러보는 수고쯤은 아무것도 아니리라)


세월은 흘러 그렇게도 미니홈페이지에 대해 안 좋은 감정을 품고 있던 나마저도 그것을 하게 되었다. 물론 시작은 거금 140만원을 들여 장만한 디지털 카메라의 사진 자료를 보관할 마땅한 곳이 없을까 에서 출발했다. 그러다가 사람들이 하나둘씩 나를 찾고 (내 이름은 내 생년월일로 찾으면 대한민국에서 딱 한사람 내가 나온다.) 그들의 댓글에 댓글을 달고 1촌 신청을 하고 어쩌고 하다가 보니 내가 비판했던 사람들과 나와의 구분은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 [검은 꽃]의 저자 김영하. 그가 자신의 미니 홈페이지에 쓴 글들을 엮어서 책을 만들었다. 오직 사진만 올리는 게 미니 홈페이지 기능의 전부라 믿었던 나에게는 꽤나 신선한 충격이었다. 책의 내용은, 굳이 비교를 하자면 그의 전작 포스트잇과 비슷한 성격의 가벼운 산문집쯤 되겠다. 미니 홈페이지의 글을 옮긴 만큼 책 표지나 내부 편집 모두 미니 홈페이지 (이하 미니홈피)를 들춰보는 듯한 느낌을 냈다.


카테고리는 크게 Free Talk. 사진첩. 방명록으로 나뉘어져 있고. Free Talk 안에는 또 다시 방울이와 깐돌이, 길 위에서, 문학 앞에서의 세 가지로 나뉜다. 방울이와 깐돌이는 김영하가 키우게 된 길냥이 (길에서 주운 도둑고양이) 에 관한 내용이며 길 위에서는 이런 저런 잡다한 얘기들이. 그리고 문학 앞에서는 말 그대로 작가 김영하가 생각하는 문학 그리고 몸소 체험한 문학에 대한 얘기들이 있다. 그 외에 멕시코 에니켄 농장으로 건너간 한국인을 다룬 소설 [검은 꽃]의 취재차 여행을 갔던 곳들의 사진이 사진첩 카테고리에 담겨져 있으며, 방명록에는 김영하의 홈페이지를 방문한 사람들의 글들이 실려 있다.


책의 내용은 대체로 심각하지 않고 재미있다. 특히 방울이와 깐돌이, 길 위에서 에는 중간 중간 큰 소리로 실소를 터트릴 만큼 유머러스한 부분들이 많다. 김영하의 유머 실력은 이미 [포스트 잇]과 [김영하 이우일의 영화이야기]에서 증명된바 있으나 또 봐도 질리지 않는다. 꽤 심각한 소설을 쓰는 작가이긴 하지만 그의 개인적인 산문집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그것과도 비슷하다. 소설과는 철저히 다르게 가볍고 재밌을 것. 하긴 심각한 소설을 쓰는 사람이 또 심각한 산문집이나 수필집을 낸다면 그것만큼 따분한 것도 없으리라.


이 책은 저자도 밝혔듯이 뭔가 유익하고 교육적인 책은 전혀 아니다. 친구 집에 놀러갔다가 친구가 잠깐 자리를 비운사이 졸업 앨범도 들춰보고 일기장도 슬쩍 훔쳐보는 그런 기분으로 볼 만한 책이다. 요즘 들어 좀 무거워져 버린 독서라는 행위에 대해 원초적인 기쁨을 깨우쳐 주는 책이라고나 할까? 아무튼 독서를 꽤나 재미있게 만들어주는 책이다. 인터넷과 영화의 홍수 속에서 책은 홀로 고전적인 텍스트를 가지고 고군분투하고 있다. 어쩌면 저자 김영하는 이런 사태에 대해 책도 인터넷과 영화 못지않게 재미있고 흥미로운 취미거리임을 일깨워주기 위해서 이 책을 냈는지도 모른다. 미니 홈페이지에 가면 볼 수 있는 것을 굳이 책으로 엮은 이유를 찾자면 그 정도가 아닌가 싶다.


출 퇴근의 지하철 안에서 혹은 잠시 잠깐 일상의 작은 짬 속에서 읽을만한 책 중에서 단연 돋보이는 책이다. 거기다 각 챕터들이 짧기 때문에 읽다가 중단을 하더라도 전의 내용을 몰라서 난감하지는 않을 것이다. 간만에 소리 내어 웃으면서 볼 책이 나와서 개인적으로는 무척 반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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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mila 2006-01-27 02: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싸이질 시작하신 사연이 여기에 있었군요^^
 
언제까지나 너를 사랑해 언제까지나 너를 사랑해
로버트 먼치 글, 안토니 루이스 그림, 김숙 옮김 / 북뱅크 / 200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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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태까지 나는 참 많은 사랑을 했었다. 가족들을 사랑했고, 친구들을 사랑했고 또 가장 흔한 이성간의 사랑도 했었다. 그래서 나는 세상에 존재하는 사랑은 거의 다 해 봤고 알고 있다고 자만하고 있었다. 그런데 한가지가 남아 있었다. 자식을 향한 사랑. 사실 아직까지는 잘 모르겠다. 태어나서 꼼지락 거리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해서 내 배를 발로 뻥 찰만큼 크지도 않았으니까. 그렇지만 아주 어렴풋하게 알것 같기도 하다. 이게 엄마가 아이에게 가지는 느낌이구나 하고 말이다.

모성신화라는 말을 좋아했었다. 모성은 신화라고 생각했다. 엄마가 나를 사랑하는걸 보면서도 나는 그걸 순수하다고 생각하는게 아니라 자기만족. 내지는 이 사회가 마땅이 그래야 한다고 씌워준 규칙을 따르는 것 뿐이라고 생각했다. 맹목적인 사랑이라고 말로는 그러지만 내가 보기에 우리 엄만 나에게도 끊임없이 뭔가를 바랬다. 그게 사랑이건 혹은 물질적인 형태이건 말이다. 그런데 이제는 조금씩 깨달게 된다. 사랑은 이기적이라서 무조건 주기만 하는건 없다는걸 말이다. 내가 주면 나도 받기를 바라는거다. 그게 비록 나를 향해 웃는 미소. 어설픈 옹알이라 할지라도 말이다. 단 우린 그걸 댓가라고 생각하지 않지만 어찌되었건 피드백이 없는건 아니다.

이 책은 모 알라디너께서 내가 임신한 사실을 알고 선물한 책이다. 아직은 태어나지 않은 아이이지만 나는 이 책을 붙잡고 열심히 읽었다. (그에게도 시켰으나 안 들으니만 못했다. 어찌나 목소리가 걸걸하신지) 그리고 왕년에 방송국에서 목소리로 먹고 산 실력을 발휘. 매우 닭살스러운 목소리로 읽었다. (한국어 닭살은 괜찮으나 영어 닭살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내 억양 및 발음에 영 자신이 없어서 소리내어 읽는건 그다지 많이 하지 않았다. 행여나 나중에 식민지 발음을 할까봐...

아직은 잘 몰라서 뭐라고 말하기 힘들지만. 나는 엄마가 아이를 사랑하는건 그런거라고 생각한다. 내 몸에서 열달 동안이나 품고 있던것을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느냐고 말이다. 물론 그게 사람들이 말하는 목숨과도 같은 사랑일지 아니면 그보다 더 가벼울지는 개인적 차이다. 같은 사랑을 해도 남자가 바뀔때마다 불같이 타오르는 여자들이 있는가 하면 저게 연애질인가 싶을 정도로 밍밍한 사람들도 있으니 말이다. 자식을 향한 사랑도 그런것 같다. 유난하고 극성스럽고 대단한 무언가만 모성애는 아니다. 낳아서 길러야지 라는 마음. 그 마음을 먹는것도 사실은 참 큰 사랑이다. 사랑 없이는 어떻게 한 인간을 책임지고, 그 인간이 나와 비슷해질때 까지는 돌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겠는가 말이다.

책의 내용은 엄마가 아이를 끝까지 사랑한다는 내용이다. 사랑한다는 노래 부분이 반복된다고 하는데, 아쉽게도 테이프 레코더가 없어서 듣지 못하고 있다. (우리 나라는 벌써부터 CD 천국 아닌가. 영국은 좀 더딘가보다.) 그의 말에 따르면 약간 서글프기까지 하다던데. 뭐 사는게 다 그런거 아니겠는가. 특히나 엄마가 아이에게 주는 사랑은. 또 다른 누군가의 자식들인 우리들만 봐도 알듯. 그대로 돌려받기는 어려우니까 말이다.

언젠가 아이가 태어나고 한국말을 다 하고, 그리고 나서 이걸 종알종알 읽는날도 올까? 아직은 요원해 보이는데 시간이 흐르면 그런 날도 오겠지? 그때까지는 내가 읽으면서 기다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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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딧불,, 2005-12-14 13: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건 정말 님을 위한 책이예요.
아이와 정말 정말 사랑하면서 살게 되길 빌면서...^^

커피우유 2005-12-14 14: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프렌즈]에 보면 조이가 레이첼의 딸 엠마의 첫 생일날 이 책을 너무나 멋진 목소리로 읽어주는 장면이 나오죠. (실은 선물 살 돈이 없어서 때우려고..^^;)
다 읽어주고 나니까 레이첼이 감격에 겨워서 눈물이 글썽~ ^^*

조선인 2005-12-14 15: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어책에는 시디 보다 테이프가 더 많아요. 그리고 디지털 음질이 아이의 정서에 좋지 않다는 낭설(?)을 덩달아 신봉하여 테이프를 골랐지요. 그 좋은 노래를 못 들었다니 안타깝네요. 히잉.

플라시보 2005-12-14 18: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반딧불님. 네. 정말 그랬으면 좋겠어요. 서로 어떤일이 있어도 사랑하기...^^

커피우유님. 정말요? 프렌즈 시리즈를 그렇게 눈알이 해태가 되도록 다 봤는데 (심지어 저는 CD에 구워서 가지고 있기까지 했었는데 -지금은 누가 가져가고 없음-) 왜 기억이 안나지요? 오오... 우리 애한테 은근히 얘기해줘야겠습니다. 돈 없어도 괜찮으니까 엄마 생일에는 이걸로 떼우면 된다구요.^^

조선인님. 아... 그렇군요. 테이프 레코더를 하나 사야겠습니다. 본가에 예전에 쓰던 미니카세트가 있었던가? 끙... (저도 테이프 못 들어서 아쉬워요)
 
끝났으니까 끝났다고 하지
그렉 버렌트 지음, 이수연 옮김 / 해냄 / 2005년 10월
평점 :
절판


몇몇 책들은 그렇다. 읽고나서 꽤 흥미롭고 재미있었기에 후속편이 나오면 망설임없이 구입하게 되는. 그리고 그런 책들 중에서 또 몇몇은 그렇다. 그냥 전편만 읽고 치울것을. 색스 앤 시티의 작가 그렉이 쓴 이 책 역시 마찬가지이다. [그는 당신에게 반하지 않았다.] 를 읽은 후, 나는 이 책도 당연히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책을 덮은 이 순간. 그렉 역시 장사꾼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자신의 명성과 전편의 책을 이용해서 별 다른 내용이 없는 이 책도 순식간에 베스트셀러 반열에 올려놓았을테니 말이다.

이 책에 대해 좀 더 배신감을 느끼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전편 그는 당신에게 반하지 않았다의 경우는 아직 시작하지 않은 연인들. 즉 저 사람이 나한테 호감이 있을까? 혹은 이 몇번의 데이트로 그는 내게 반했을까에 관한 얘기였다면 이 책은 헤어지고 나서 죽도록 힘든 사람들에게 충고를 해 주는 책이다. 사실 전자야 좀 틀려도 상관없다. 물론 나한테 반하지 않은 그 혹은 그녀를 사귀면 역시나 힘들어지겠지만 실연의 아픔으로 죽을것 같은 사람들과 비교할수는 없다. 그런 사람들에게 아이스크림통 표지를 찍고 나와서 장사를 해 먹는다는 것은 (아무 내용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책을 파는) 좀 너무한거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든다.

사실. 사랑에 관한 모든 충고는 진부하다. 그리고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사실들이다. 그러나 전작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꽤나 참신했었다면 끝났으니까 끝났지는 뭐랄까 이런 기분이다.

나 : 정말 슬퍼 죽겠어.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아. 아... 살기 싫어

친구 : (겁나 또박또박. 바른 목소리로) 너무 슬퍼하지 마. 슬픔 뒤에는 반드시 행복이 숨어서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잖아.

혹은.

나 : 사는게 정말 왜 일케 힘드냐? 진짜 하루 하루가 지옥같다.

친구 : (겁나 또박또박. 바른 목소리로) 그래도 최선을 다 해야지. 하늘은 스스로 돕는자를 돕는 법이라구.

백번 옳은 소리지만 엄청난 슬픔에 빠져있는 사람에게 저런 교과서같은 소릴 해대면 정말이지 한대 확 후려갈겨주고 싶다. 무조건 열심히, 무조건 최선을 다해서 살아야 한다고 믿는 사람들에게는 적절한 충고인지 모르겠지만 그렇지 않은 대부분의 사람들은 저렇게 너무 바른 소리만 하면 속으로는 재수없다고 생각한다. 이 책에 대해 내가 재수없게 느끼는 부분이 바로 그런 것이다. 슬퍼 죽겠는 사람을 대상으로 쓴 만큼 뭔가 좀 어르고 달래는 맛이 있어야지. 이건 처음부터 끝까지 '니 슬픔 다 안다. 벗뜨 그러나 안 벗어나면 너 바본거 알지?' 라는 분위기다. 이거 하지마라 저거 하지마라. 죽도록 사랑했던 사람과 헤어진 마당에 곱게 차려입고 나가서 상쾌하니 조깅을 하고 (심지어 다이어트 하게 샐러리를 손에 들고 하란다.) 친구들마저 멀어지면 안되니까 그들에게 절대 하소연하지 말고. 그렇게 어서빨리 자기 페이스를 찾아서 더 좋은 사람을 만나라고 한다. 참 말이 쉽다. 사실 저게 가능하다면 우린 애초에 이따위 책을 집어들지도 않았을꺼다. 그렇지 않은가?

가끔은 충고 대신 위로가 필요한 법이다. 몰라서 안하는게 아니다. 도저히 할 수 없어서 하지 못하고 있는 사람에게 이미 그 사람도 훤히 다 알고 있는 사실을 잔인하게 좔좔좔 늘어놓으며 바보 취급하는건 참을 수 없다. 물론 따끔하고도 확실한 충고가 필요할때도 있다. 하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누군가의 죽음 만큼이나 심각한 정신적 데미지를 입히는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에는 적어도 저런 충고가 필요하지 않다. 어떻게 극복을 해야 하는지. 혹은 지금 슬퍼하는 것이나 미련을 두고 있는게 내가 천하의 바보 멍충이라서가 아니라 누구나 다 그럴 수 있다는 위로를 받고 싶은 것이다. 이미 헤어진 사랑에, 돌아선 사람에 연연하는 이들은 이미 스스로도 충분히 바보스럽고 한심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거기다 대고 팔짱을 낀채 '너 참 한심하다 쯧쯧쯧' 하고 혀를 차 줄 필요는 없다.

내 생각에는 이별을 겪고 힘들어하고 있다면 이 따위 책은 아무런 도움도 되질 않는다. 이 작가의 전작은 분명 도움이 되었지만 이 책은 순전히 지 마누라랑 지랑 돈벌겠다고 만들었다 이외에는 다른 생각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최악이다.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늬들이 이별의 슬픔을 아주 죽도록 겪었다고? 그래도 어쨌건 지금은 부부끼리 쿵짝이 맞아서 이따위 책이나 팔아먹고 (거기다 표지에 찰싹 들러붙어 행복해하는 그 사진이란. 이게 누굴 대상으로 쓴 책인데 그런 염장질 시츄에이션인가? 양심도 없나?) 있지 않느냐고 말이다.

이별을 겪고 있거든. 혹은 이별해야 할 상황이라면 울어서 퉁퉁 부어서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이 책을 집어들기 보다는 차라리 책 표지에 있는 아이스크림통을 열라고 말하고 싶다. 적어도 아이스크림은 당신을 향해 '이 바보야 이미 끝났는데 지금 니 꼴 좀 봐. 얼른 일어나서 꽃단장하고 조깅하지 못해?' 라고 말하는 대신 그저 약간의 달콤함을 그리고 시원함을 (울어본 사람들은 안다. 목구멍에 시원한게 넘어갈때 잠시나마 살것 같다는걸) 줄 뿐이다. 그리고 생각은 자기가 하는거다. 이런 충고는 필요하지 않다. 가서 죽도록 매달리고 싶은가? 그럼 그렇게 해라. 정리하고 싶은가? 그럼 그렇게 해라. 뭘 하건 내가 보기에 아름다운 이별 따위는 적어도 이성간에는 없다. 그 아름답고 쿨함을 위해서 자신을 혹사시키느니 (속으론 죽겠는데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게 사는게 더 자신을 혹사시키는거다. 내가 해봐서 안다. 속으로 골병든다.) 차라리 좀 덜 아름답고 덜 쿨해도 가서 죽도록 매달려보고 안되면 욕이나 팍 한번 해 버리는게 낫다. 이왕 헤어지는 마당에, 또 내가 죽겠는데 빌어먹을 체면이 다 뭔가?

내 예상컨데 이 작가는 또 다시 책을 낼 것이다. 그건 아마도 한참 연애질을 하고 있는 남녀들에 대한 지침서겠지? 이렇게 사랑해라, 요렇게 사랑해라 하면서 말이다. 색스 앤 시티가 재밌는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렉. 당신이 연애 박사는(그따위는 있지도 않고 있길 바라지도 않는다만은) 아니다. 알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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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우유 2005-12-14 14: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는 연애 해볼거 다해보고 이쁜 부인이랑 잘 살고 있으니 이런 책도 쓸 생각이 난 거겠죠.
한번 마눌한테 채여야 정신을 차리려나? ㅎㅎㅎ
몇번씩 우려야 맛있는 건 곰탕밖에 없지요. 정말 이제 펜을 좀 놓으시라..

플라시보 2005-12-14 18: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커피우유님. 그러게나 말입니다. 처음 책은 신선했는데 이번 책은 영 아니네요. 다음에 책을 낸다면. 글쎄요. 그때는 안살것 같은데... (몇번씩 우려도 맛나는건 곰탕뿐이라는 의견. 예술이었습니다.^^)

여행가방 2006-08-16 01: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정말 속시원한 평가예요. 책한권보다 이 글이 더 영양가 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