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그들은 부엌으로 갔다
최영재 지음, 김용해 사진 / 가나북스 / 200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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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라는 말만 들으면 떠오르는 단어들이 있다. 파 3.5cm 간장 3 테이블 스푼, 소고기 150g. 이런 말들을 들으면 파와 간장과 소고기가 각각 3.5cm의 크기로 3 테이블 스푼과 150g의 양으로 들어가는군 하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다만 저렇게 요리하다가 빌어먹겠다는 생각이 들 뿐. 자와 계량스푼과 저울을 가지고 어느 천년에 음식을 만든다는 말인가. 허나 그렇다고 해서 파 적당한 굵기 간장 적당량 소고기 적당량은 더 황당스럽다. 그 적당량을 안다면 뭣하러 요리책을 보고 요리 프로그램을 보겠는가 말이다.

사실 음식은 순전히 손맛이다. 음식 잘하기로 소문난 사람 치고 나는 계량컵들고 저울에 재료 올려가며 만드는 사람을 한번도 보지 못했다. 눈대중과 손끝에서 나오는 그 무언가가 똑같은 재료를 가지고 똑같은 음식을 만들어도 다 다른 맛을 내는게 아닌가 싶다. 그리고 이런 솜씨는 단지 몇번 만들어 보는 것으로 이뤄지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음식을 만들때 너무 조급하다. 한두번 실패할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는게 아니라 처음 만들자 마자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그 음식맛이 나기를 바란다. 다른 일은 그렇지 않으면서 유독 요리에는 사람들이 모두 인내심이 없는것 같다. (하긴 입에 넣어야 하니 인내심을 기르기가 힘든지도 모른다.)

이 책은 28명의 인사들이 자신들만의 요리를 선보인다. 토종 한국식이기도 하고 퓨전이기도 하고 때로는 이탈리아 요리이기도 한 다양한 음식들이 한 책안에 있다. 그러나 그 레시피는 매우 놀랍도록 간단하다. 절대 10줄을 넘지 않은 레시피로 그 어렵다는 요리를 요약해놓은 솜씨가 놀라울 뿐이다. 그러니까 이 책은 보고 이렇게 만들어 보세요가 아닌. 명사들은 이런 요리를 할 줄 알거나 혹은 좋아한다는 것이다. 여기에 나오는 사람들은 모두 남자이다.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아는 유명 인사인 이들은 두 부류이다. 평소 요리를 곧잘 했거나 아니면 기사를 위해 (신동아일보에 연재되었다고 한다.) 그날 처음으로 앞치마를 둘렀거나. 아무튼 그들은 요리를 하고 요리 이외에도 여러가지 얘기들을 한다. 일부러 그런 사람들을 모아놓은지 모르겠지만 그 분들의 한결같은 특징은 밖에서는 호랑이지만 아내에게는 꼼짝못해요 라는 것이다. 한때는 저런 타입의 남자들이 무척 신선했는지 모르겠지만 지금은 좀 진부하다. 부부끼리는 왜 평등하지 못하고 한쪽이 말 잘듣거나 꼼짝을 못하는 분위기가 연출되어야 하는 것일까?

책을 보고 요리를 그대로 해 보겠다고 마음먹지 않는다면 이 책은 그냥그냥 재미삼아 읽어볼만 하다. 하지만 뭐 그렇게 꼭 권하고 싶지는 않다. 그들이 들려주는 얘기도 요리도 내겐 큰 도움이 되지 않았다. 아예 얘기들이 재미있던가 아니면 요리를 진짜 따라할 수 있도록 레시피가 디테일하거나 했다면 훨씬 좋았을텐데... 너무나 마초적인 냄새가 나지만 그걸 요리 냄새와 화목한 가정의 향기로 가린 느낌이라고나 할까? 존 그리샴의 그래서 그들은 바다로 갔다를 카피한 책 제목은 좋았지만 그들의 부엌에서 나는 아무런 감흥도 받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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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phistopheles 2006-02-13 19: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메피스토입니다..^^
음식이란 타이틀을 내민 책이지만 왠지 음식냄새는
안나고 `명사들'에 촛점이 맞춰진 듯 하네요...^^

플라시보 2006-03-17 17: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맞습니다. 음식은 좀 뒷전이고 오직 명사만 가득한 책입니다. 쩝.
 
달려라, 아비
김애란 지음 / 창비 / 200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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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T가 컬러플한 옷을 입고 캔디라는 곡을 신나게 불러제낄때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이제 내가 오빠 혹은 언니라고 부를 수 있는 연예인들은 점점 줄어들겠구나. 그리고 어느덧 TV속에는 나보다 훨씬 어린 연예인들이 나오는게 당연해졌으며 내게 있어 언니나 오빠였던 우상들은 하나같이 망가진 모습으로 푼수처럼 가끔씩 등장할 뿐이었다. (그들은 그걸 변신이라 불렀지만 나는 한때나마 멋졌던 그들의 모습을 기억하는 팬으로서 씁쓸함을 감출수가 없었다.)

76년생에 95학번인 나는 80년대에 태어난 사람들도 어른이 되어있다는 사실이 그리고 00학번도 존재한다는 사실이 영 믿겨지지가 않았다. 예전에 내가 60년대 혹은 50년대 생을 보면서 저 사람들 참 오래되었구나 하고 느꼈던 것을 80년대생이나 00학번이 나를 보면서 느끼겠지 하는 생각은 나를 불편하게 했다. 그러나 내가 딱 한군데 위로를 받는 곳이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책을 쓰는 작가들에게서 였다. 아직까지 그들은 내가 작가님이라 불러도 어색하지 않은 그러니까 나 보다 단 한살이라도 더 많은 사람들이었다. 76년 이전에 태어난 그들은 내가 좋아했던 연예인들과 달리 살아남기 위해 우스꽝스럽게 변하지도 않았고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더 빛나는 작품들을 발표했다. 역시 글은 연륜이 어느정도는 있어야 하는 것이지. 암. 연예인처럼 몸으로 먹고 사는 직업이 아니잖아 하며 나는 기뻐했다. 그러나 김애란을 만나고 나니 그 기쁨도 접을날이 멀지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 (김애란은 내가 그때 태어난 사람도 어른이 되었다는 사실이 아직도 신기한 80년생이다.)

작가를 여자와 남자로 나누어서 생각한다는 발상이 좀 웃긴지 모르겠지만 나는 남자와 여자가 다 똑같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아니므로 (차별의 의미가 아닌 다름의 의미) 자주 작가들을 그렇게 나누어서 생각한다. 남자 작가들에 비해 여자 작가들이 앞서는 것은 디테일과 감정적 표현이다. 물론 아닌 경우나 예외도 있겠지만 대부분의 여자 작가들은 감정을 무척 섬세하게 잘 표현해내고 상황을 디테일하게 설명해준다. 그래서 마치 우리가 겪지 않은 일임에도 불구하고 겪은 일 처럼. 현재 상황처럼 느끼게 한다. 그에 비해 모자라는 점이 있다면 취재력과 유머감각이 아닌가 싶다. 체력적 한계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나는 여자 작가들의 작품에서 발로 취재를 했겠다라는 느낌을 받은적이 별로 없었다. (역시 아닌 경우도 많긴 하지만 내가 말하는 것은 전체적인 부분이다.) 상상력이 풍부하고 머릿속에서 그려내는 능력이 탁월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그리고 또 한가지를 더 들자면 여자 작가들의 작품은 하나같이 다 심각하다는 것이다. 문학이 장난이냐고 말하면 할 말은 없겠지만 나 같이 뭘 모르는 독자들은 가끔 재밌고 가벼운 작품도 읽고싶은 것이다. 이를테면 무라카미 하루키가 실제로는 심각한 소설을 쓰지만 단편이랄지 산문집에서는 한없이 널널한 모습을 보이는 것. 김영하가 작품과는 달리 소소한 글쓰기에서는 무척 유머러스한 것. 나는 이런 글을 여자 작가들에게도 보고 싶었다. 여자가 남자보다 유머감각이 떨어지지는 않을텐데 어째서 그녀들은 늘 진지하기만 한지. 어쩌면 세상 일이 다 그렇듯 문학판에서도 역시 여자가 살아남으려면 치열해야 하고 그 치열함이 작품속에서도 녹아 그런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김애란의 단편집 달려라 아비를 보면서 나는 드디어 속시원한 여자 작가의 유머러스함을 발견했구나 싶어서 무척 기뻤다. 늘 진지하기만 한 여자 작가들의 작품만 보다가 김애란의, 내가 여태 남자 작가들에게서만 발견했던 유머러스함 (박민규의 삼미슈퍼스타즈 같은) 을 읽었을때 기쁨은 훨씬 더 컸다. 그렇다고 해서 김애란의 작품이 문학적으로 가볍고 할랑하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녀는 유머를 알고 가벼움의 미학을 알며 진지함을 아무렇지 않은척 풀어내는 재주가 있다는 것이다. 나는 어떤 상황이건 농담이 통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심지어 누군가와 싸울때도 나는 농담을 해서 상대방을 웃긴적이 있다. 이건 아마도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은 것일텐데 아버지는 야단을 치시다가도 우릴 웃겨서 늘 엄마에게 실없는 양반이란 소릴 들으셨다. 아버지가 세상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웃음이었다. 어떤 상황이건 유머는 존재해야 한다는 당신의 생각은 곧 내 생각과 내 삶의 방식이 되어버렸다. 그래서인지 나는 유달리 유머와 웃음에 집착한다. 코메디프로의 그 억지스런 웃음이 아닌 인간이 접하는 모든 문화와 예술과 생활에 녹아있는 웃음이 좋다. 그 중에서도 특히나 나는 책에서 웃음을 찾는 것을 무척 좋아한다. 아무리 문학적으로 뛰어나고 좋은 책이라 하더라도 재미. 즉 웃음이 없으면 나에게는 좀 지루하다는 느낌이 든다.

코메디언 흉내를 내거나 유행하는 말을 해서 웃기는 것과 재치가 있고 유머를 알아서 상황을 웃기게 만들어버리는 것은 분명히 다르다. 웃기는 사람. 웃기는 삶이 좋은 만큼 나는 나를 웃게 하는 책이 좋다. 그리고 아주 간만에 나는 여자가 쓴 책을 보면서 원없이 웃었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나는 여자 작가의 책을 보며 운적은 있어도 웃은적은 별로 없었던것 같다. 그래서 그런지 김애란의 책은 뻘에서 뜻밖에 진주조개를 잡은것 같은 기분이다. (뻘에서 진주조개 잡는게 가능한지는 나도 모른다.) 그렇다고 해서 그녀의 책이 그저 참 웃기고 재미있다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다. 그녀는 다른 여자 작가들 못지않게 섬세하며 디테일하고 또 상상력이 풍부하다. 여자 작가들이 가진 장점을 고스란히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간 부족한듯 했던 유머러스함을 갖추었다는 것. 이것이 김애란이란 작가를 더더욱 빛나게 하는 이유인것 같다. 앞으로 그녀가 낼 책들이 몹시 기다려진다. 한 작가를 만나고 그 작가를 믿으며 다음 작품을 기다리는 것. 그건 아마도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가장 큰 기쁨이 아닌가 싶다. 2005년이 얼마 남지 않은 지금. 나는 그런 작가들의 이름에 김애란이란 이름 하나를 즐거운 마음으로 추가시킨다.

덧붙임 : 나는 이 책을 구입하려고 마음을 먹었을때만 해도 아비가 사람 이름인줄 알았다. 그런데 알고보니 아버지라는 뜻의 그 아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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끼사스 2005-12-28 18: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호... 멋진 리뷰네요. 사놓고 개시 못하고 있는 <달려라, 아비> 빨리 읽어봐야겠습니다.

플라시보 2005-12-28 21: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훈성님. 네. 읽어보세요. 저는 재밌더라구요. 님께도 재밌는 책이면 좋겠습니다.^^

poptrash 2005-12-28 23: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그래도 이 책을 찾고 있었는데. 참, 좋은 아버지를 두셨네요.

깐따삐야 2005-12-29 01: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을 읽고 오랜만에 상큼한 재간둥이 작가 하나를 발견한 것 같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저와 동갑내긴데 나는 왜 이런 신선한 사고를 못하나, 자괴감도 들었구요. ^^

플라시보 2005-12-29 01: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poptrash님. 흐흐. 네. 모든 면에서 좋은 아버지는 아니었지만 분명 어떤 부분에 있어서는 좋은 아버지였습니다. ^^

깐따삐야님. 작가가 저보다 무척 어리다는 것에 커다란 충격(?)을 받으며 읽었었는데 님은 또 님 나름대로 동갑이라 충격이셨나보군요.^^ 아무튼 님 말씀처럼 상큼한 재간둥이 작가입니다. 흐흐.

검둥개 2005-12-29 07: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자작가들은 유머가 떨어진다는 것, 예리한 지적입니다. ^^ 재미있게 리뷰 읽구 추천하고 갑니다. 이 책 점점 더 참을 수 없이 읽고 싶어지는데요. ;)

플라시보 2005-12-29 16: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검둥개님. 흐... 뭐 재가 책을 많이 안읽어봐서 혹은 불행하게도 유머러스한 여자 작가들의 작품을 읽어보지 못한 탓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여태 본 책들은 그런 경향이 있더라구요. 기회 닿으시면 한번 읽어보세요. 저는 재밌더라구요.^^

hnine 2005-12-29 18: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기다려요

플라시보 2005-12-29 19: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hnine님. 흐... 같이 기다립시다요.^^

픽팍 2006-01-06 10: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살까말까 심각하게 고민중이었는데;;;
책이 너무 얇아서;;얇은 책이 재미있으면 읽는 내내 아쉽더라구요 ㅠ

울보 2006-01-06 17: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축하드립니다,
플라시보님 이주의 마이리뷰 당선 되신것이요,,

책속에 책 2006-01-06 22: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축하드려요~플라시보님^^

Kitty 2006-01-07 06: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 축하드립니다~ 짝짝짝
이 책 저도 샀어요. 오기만들 기다리고 있는 중~ ^^ 기대됩니다~

paviana 2006-01-07 11: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축하드려요..ㅎㅎ
 
개를 위한 스테이크
에프라임 키숀 지음, 프리드리히 콜사트 그림, 최경은 옮김 / 디자인하우스 / 200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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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세상은 언제나 금요일은 아니지' 라는 책을 읽고 난 이후. 나는 그런 부류의 책에 집착하기 시작했다. 제목이 약간만 할랑하여도, 또 작가 자신의 삶을 조금만 비튼 흔적만 보여도 망설임없이 책을 구입했다. 이 책 '개를 위한 스테이크'는 심지어 중고 서점에서 책값 만큼이나 배송료를 주고 사기까지 했다. (모든 곳에서 다 절판이었다.)

세상은 가만 있어도 심각한 곳이다. 얼마나 심각한지는 말 하는것 조차 입이 아프다. 그 많은 고지서들 (그냥 받기만 하나? 돈을 제 날짜에 내야하고 아니면 연체료를 물거나 공급받던 도시가스나 전기 따위가 끊길수도 있다.) 몇몇은 그 곳으로 향하는게 너무나 즐겁겠지만 대부분은 그렇지 않은 일터. (그 안에서 일어나는 일은... 말도 말자.) 챙겨야 할 수 많은 기념일들 부터 시작해서 점심은 뭘 먹을 것인지 집에 마실 물을 끓여놓을때가 되지는 않았는지, 엔진 오일을 갈았는지, 세탁소에 맡긴 코트는 찾아왔는지, TV를 너무 많이 시청하는건 아닌지 등등등. 생각해야 할 것이 한 두가지가 아니다. 그리고 가끔은 생각한다. 이렇게 많은 것을 생각하고 고민하고 살아야 하는데 미치지 않는 이유는 뭘까?

내가 이런 부류의 책들. 그러니까 심각한 세상 살이를 한없이 가볍고 할랑하게 그려놓은 책을 좋아하는 이유는 딱 한가지이다. 현실이지만 (소설이 아닌. 대부분은 작가 자신의 삶을 그린다.) 전혀 현실적이지 않은 것에서 오는 부조화가 나를 웃기게 만들기 때문이다. 어차피 우리 삶은 그렇게 늘 웃기거나 재미있을 수 없다. 어쩌면 TV코메디 프로가 아니라면, 박장대소를 하고 웃을 일 조차 없는지도 모르겠다. 그런 우리에게 삶이 이럴수도 있다 혹은 이랬으면 좋겠지라는 책을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렇지만 나는 그냥 '세상은 언제나 금요일은 아니지' 에서 그쳐야 했는지도 모르겠다. 그 이후에 샀던 비슷한 부류의 책들은 모두 세상은만 못했다. 어쩌면 다른 책들을 다 읽고 마지막에 세상은을 읽어야 했는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이미 초컬렛을 먹은 사람에게는 코코아맛 사탕이 더 이상 달지도 맛있지도 않은 것 처럼. 나는 이 책 역시 밍숭맹숭했다. 솔직히 말해서 단 한번도 유쾌하게 웃지 못했다. 그냥저냥 재미는 있었지만 개를 위한 스테이크는 솔직히 말해서 살짝 웃긴 소설책 만큼도 나를 웃게하지 못했다.

삶을 비틀고 약간 우스꽝스럽게 꼬으고 다른 모든 사람이 심각하게 생각하는 일을 가볍게 넘기고, 반대로 가볍게 넘기는 일에 머리털 빠지게 고민하는 모습 만으로 이런 책은 완성되지 않는다. 그 안에는 유머가 있어야 한다. 감히 그렇게 살지 못하는 일반인들을 웃게 만드는 그 무엇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나는 개를 위한 스테이크에는 그것이 부족했다고 본다. 개와 딸과 아들과 잘난 마누라의 환상적인 조합은 그런 유머를 구사하기에 부족함이 없지만 어쩐지 이 책은 끝내 시원한 웃음을 터트려주지 않는다. 참을만한 재채기. 그건 안하니만 못하다. 코만 간질거리게 하고 시원하게 재채기를 하는 모습만 상상하게 해 줄 뿐이니까. 결정적 한방이 없는 책은 그래서 언제나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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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무비 2005-12-26 15: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결정적인 한 방도 사람들마다 모두 다른 법이니까요.^^

마태우스 2005-12-26 15: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이 책 사라고 한 적 없음을 밝힙니다!

플라시보 2005-12-26 16: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드무비님. 흐흐. 그러게요. 제가 기대를 너무 많이 한 탓도 있는것 같습니다. 거기다 절판되었다고 하니 더더욱 절실해 지는 그 무엇 때문이었기도 하구요. 흐흐.

마태우스님. 암요. 님 탓 아니여요. ^^

코키리 2005-12-29 10: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혹시 김영하님 탓이 아닐까요?? "랄랄라 하우스"를 읽고 여러 책이 땡겼다는...ㅋㅋ

플라시보 2005-12-29 16: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코키리님. 흐... 맞습니다. 랄랄라 하우스 읽은 다음에 저 책 사봐야지 했습니다.^^

DJ뽀스 2006-01-10 14: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랄랄라 하우스 읽고 이 책 빌리러 도서관에 갑니다.
'세상은 언제나 금요일은 아니지' 이런 책 또 뭐가 있나요? 플라시보님 좀 알려주세요.

플라시보 2006-01-14 00: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DJ뽀스님. 비슷한 종류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제 리스트 중에서 웃다가 죽으리라를 한번 찾아보세요. 거기 제가 웃기는 책들을 적어뒀습니다.^^ 물론 제 기준에서지만요. 흐흐. (최근에는 김애란씨의 작품이 꽤나 웃기더군요.)

nada 2006-03-24 19: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남자의 고달픈 하루하루를 들여다보는 동안 터져 나오는 웃음을 주체하지 못했다면 당신은 '유머'가 뭔지 아는 사람입니다." 책 표지에 이렇게 써 있는 거 보고 대략 혼절했잖아요. "너야말로 유머가 뭔지 알긴 아는 거야?" 편집자에게 묻고 싶더라니까요. 그래도 웃음을 주체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라도 가끔 실소할 정도는 되더군요. 김영하 말 한 마디에 이 책을 읽은 스스로에게 많이 실망했다는...ㅋ 어쨌든 위의 분 말씀처럼 사람마다 다른 거겠지만요.^^
 
연탄 - '따뜻한 한반도 사랑의 연탄나눔운동'과 함께하는 스물네 개의 훈훈한 이야기
김지하 외 지음 / 문학동네 / 200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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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내가 유치원을 다닐 무렵쯤이다. 당시 우리집은 아파트였는데 요즘 아이들이 들으면 뻥이라고 하겠지만 그때는 아파트에도 연탄 보일러인 곳이 많았다. 이른바 서민 아파트라고 불리우는 그 연탄 보일러 아파트는 방2개에 거실이라 하기에는 좀 뭣한 마루, 타일이 깔려 있어서 신발을 신어야 하는 부엌, 그리고 화장실이 있었다. 욕실은 아예 없었다. 지금은 수도꼭지에서 따뜻한 물이 나오지 않는건 상상도 하기 힘들지만 그 아파트에서는 따뜻한 물을 쓰려면 연탄보일러 위에 커다란 솥을 올려놓고 물을 데워야 했었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조막손으로 연탄을 갈거나 솥에 물을 길러놓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러기에 난 너무 어렸고, 엄마는 집에서 살림만 하셨으므로. 그냥 우리집에 연탄이 있었다는 것 정도. 겨울이 되면 마루에 있는 연탄광 (아빠가 마치 옷장처럼 직접 짜서 붙박이로 만들어놓은) 에 연탄을 차곡 차곡 쟁여 놓던 기억이 전부이다. 이상하게 엄마가 연탄을 가는 모습은 떠오르지 않는다. 거기에 가끔 마른오징어나 고구마, 밤 같은걸 구워주던 기억은 나지만 말이다.

그 이후 우리집은 기름 보일러를 쓰게 되었고 뒤 이어 가스보일러 (LPG), 다음에는 도시가스를 쓰게 되었다. 그러나 그 전에 딱 한번 나는 갈곳이 없어서 혼자 생활한 적이 있었다. 아마도 중학교 1학년 정도 였던것 같다. 아빠도 나를 맡을 수 없는 상황이었고 엄마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나는 허름한 동네에 단칸방에서 혼자 살게 되었다. 밥은 아빠의 그녀네 집에 가서 먹었지만 (거리가 멀지 않음) 그 이외에 모든걸 다 내가 해결해야 했다. 그 단칸방은 연탄보일러였다. 참 지독스럽게도 연탄을 많이 갈았다. 꺼트리기도 많이 꺼트리고 말이다. 그때 나는 창피해서 아무에게도 내가 연탄을 가는 집에 혼자 산다는 사실을 말하지 않았었다. 아침이면 그녀들과 마찬가지로 욕실에서 따뜻한 물에 샤워를 하고 등교를 하는 척 했었다. 사실은 마당에서 발꼬락이 다 얼어붙을것 같은걸 간신히 참아가며 머리를 감고 양치를 했지만 말이다.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나는 이게 가난이구나 싶었다. 중1 짜리가 혼자 살면서 연탄불이 꺼질까봐 조마조마해 하는것. 내 부모들은 그때 기름 보일러를 때며 살았었지만 나는 그렇지 못했다. 나는 나 혼자 가난했다.

그 기억이 남아있어서인지 나는 한옥을 보면 운치있다는 생각 보다는 가난이라는 단어가 먼저 떠 오른다. 저 욕실도 없고 화장실도 불편한 한옥. 수도 꼭지에서는 차가운 물만 나오는 한옥. 겨울이면 허술한 집 구멍으로 찬바람이 휙휙 불어닥쳐서 여기가 집 안인지 밖인지 구분도 안가는 그곳. 그래서 그런지 나는 주택도 싫어한다. 오직 성냥갑처럼 답답해도 사방이 콱콱 다 막혀있는 아파트가 좋다. 늘 거기서 살았던게 습관이 되어서인지 아니면 거기 살때는 단 한번도 춥다는 생각을 못해서였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연탄은 각계각층의 스물 네 사람이 연탄에 얽힌 추억들을 얘기한다. 지금이야 어지간해서는 찾아보기 힘든 연탄이었지만 80년대 까지만 하더라도 연탄은 흔한 난방연료였다. 골목마다 겨울이면 연탄재들이 쌓여 있었고 빙판길에는 어김없이 잘게 부신 연탄재가 뿌려져 있었다. 전체적으로 수필집을 읽는 것 같은데 한 사람이 쓴게 아니라 지겹지 않으면서도 연탄이라는 한 가지 주제로 몰려 있어서 느낌이 새롭다. 연탄하면 딱 떠오르는 서민들의 고난한 삶, 어머니의 사랑 (연탄을 가는 사람은 늘 어머니니까) 같은 따분한 얘기를 하는 사람도 있지만 가끔은 연탄이 트라우마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어서 책은 지겹지 않다.

많은게 그렇듯이 언젠가는 연탄도 그저 책 속에 혹은 생활전시관 같은 곳에서나 볼 수 있는 물건으로 전락하겠지만 아직까지는 그래도 연탄을 몸으로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다. 젊은 세대들에게 연탄한번 안 갈아본 것들이 뭐 인생을 논하느냐라고 말 할것은 없지만 그들은 연탄을 모르고 또 모르는 만큼 추억도 없는건 맞다. 그게 좋은 추억이건 나쁜 추억이건간에 세월은 모두 다 아련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그래서 연탄의 그 매케한 냄새도, 맞추기 힘든 불구멍도 아련하게 느껴지는 것이리라. 연탄을 갈아봤다면, 연탄의 따뜻한 아랫목을 기억한다면 올 해가 가기 전에 이 책은 그 추억들이 방 바닥으로 다시 굴러다니게 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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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마개 2005-12-22 18: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연탄...저희집도 연탄보일러였죠. 보일러 속뚜껑 위에 밤을 올려 놓고 겉뚜껑을 닫은후 한참 놀다 오면 군밤이 되어 있는 즐거운 기억과 연탄가스를 마시고 몽롱하게 쓰러져 있던 기억도 있고. 연탄은 항상 아빠가 갈았죠. 가끔 아무도 없을때 제가 갈면서 보일러 내부에서 다 탄 연탄이 홀라당 깨져버릴 때의 그 당혹스러움..ㅋㅋ

플라시보 2005-12-22 21: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강쥐님. 맞아요. 그 안에서 깨지면 정말 답이 없었죠. 연탄가스 사고도 참 많았었는데... 이젠 겨울이와도 골목에서 연탄재를 보는 일이 드물어졌습니다.

BRINY 2005-12-22 22: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희집은 아버지가 오랫동안(막내동생이 태어난 직후부터 대학생이 될 때까지!) 지방으로 단신부임하셔서 엄마 혼자 무척 고생하셨던 기억이 납니다.

플라시보 2005-12-23 00: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BRINY님. 아..정말 오래 떨어져서 지내셨네요. 어머님 고생이 많으셨겠어요.

산사춘 2005-12-25 21: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울엄마도 연탄 때문에 무지 고생하셨는데... 플라시보님은 직접 고생을... 흑흑
저는 연탄만 보면 고작 불장난이나 해서 디지게 얻어맞은 기억밖에 없시유...
 
페르세폴리스 1 - 나의 어린 시절 이야기
마르잔 사트라피 지음, 김대중 옮김 / 새만화책 / 2005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이란이란 나에게 그저 이라크와 오랫동안 전쟁을 하고 있는 나라, 석유가 나는 나라, 우리나라 건설업자들이 가서 일을 많이 했던 사우디아라비아와 인접한 나라라는 것 정도의 이미지였다. 내분과 전쟁이 끊이지 않는 이유는 석유 때문이라는 것. 그래서 힘 있는 나라가 아니라면 자원이 풍부해도 문제 없어도 문제구나 하는 생각이나 겨우 했었다. 그러다가 우연한 기회에 이란 여성이 쓰고 그린 이 만화책을 알게 되었다.

마르잔 샤트라피는 사람들이 그녀의 나라 이란에 대해 너무나 잘못 알고 있으며 알아도 단편적으로만 알고 있다는 것이 안타까워 이 만화를 그리게 되었다고 한다. 만화의 주인공은 실제 만화를 그린 그녀이며, 여기에 등장하는 에피소드나 인물들도 모두 실제로 있는 사람들이다. 따라서 이 책은 안네의 일기를 그림과 함께 했다 정도로 보면 될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쥐' 와 비교하는데 난 그건 안봐서 모르겠다.)

어린 마르잔은 비교적 자유로웠던 시절부터 차도르를 쓰게 되고 전쟁과 내분이 끊이지 않는 시기에서 마침내 외국으로 떠나게 되는 때 까지를 이 책에 고스란히 옮겨 놓았다. 아직 나이가 어린 그녀이지만 마르잔은 자신의 조국에 대해 무척 생각이 많은 아이이다. 거기다 실천을 두려워하지도 않는다. 1권은 마르잔이 오스트리아로 가기 전까지의 이야기인데 아마 2권부터는 그녀가 외국에 살면서 자신의 조국 이란에 대해 느끼는 점과 외국 생활에 대해 적혀있을 것이다.

이란출신의 작가라던가 혹은 이란의 책은 처음 읽는것 같다. 제3세계라고 해 봐야 프랑스와 독일 정도가 전부인 내 짧은 독서 이력에 이제 이란이라는 국가도 하나 더 추가하게 된 것이다. 책은 그렇게 어렵지 않아서 어른이 읽어도 되고 또 아이들이 읽어도 괜찮을 것 같다. 다만 불만이 있다면 책이 하드커버라서 그런지 너무 무겁다는 것과 잉크를 뭘 썼는지 냄새가 너무 심하다는 것이었다. 특히나 요즘 냄새에 민감해져 있는 나는 읽는 내내 속이 메슥거리는 느낌을 받아야 했다. 가격도 꽤 받으면서 왜 좋은 잉크를 안썼는지 이해할수가 없다.

아무튼 여태 봐왔던 혹은 읽어왔던 만화들과는 사뭇 달랐고 또 잘 몰랐던 이란이라는 나라에 대해 이모저모 알게 된 책이라 반가웠다. 무거움과 잉크 냄새만 해결했다면 좀 더 좋은 별점을 받았을텐데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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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seol 2005-12-21 16: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첨보는 책인데 만화라길래 눌러보니 가격이 꽤나 하네요..
렛츠룩보니 그림체나 무겁지 않게 전달하는 내용은 괜찮은 거 같아요..
보고 싶어져 추천!
p.s 전 시력이 안좋아 책을 무지 가까이 보는데
이걸 볼때는 안경쓰고 좀 떼고 봐야겠네요 ㅋ

플라시보 2005-12-21 20: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미레님. 그렇죠? 가격이 꽤 하죠? 이거 2권도 읽어야 하는데 저도 가격때문에 살짝 망설이고 있습니다.^^

마추픽추 2006-02-08 23: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두 보고싶네요..만화라고 하니 부담없이 읽을 수 있겠는걸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