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가 말하는 의사 부키 전문직 리포트 3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지음 / 부키 / 200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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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전문직 중에서 아마 내가 가장 많이 만난 사람이 의사일 것이다. 그럼 내가 의사와 관련된 직업을 가지고 있느냐. 그건 아니다. 그러나 생각해보라. 일주일에 한번씩 피부과를 가고 이주에 한번씩은 산부인과를 가니 한달만 해도 나는 두명의 의사를 무려 여섯차례나 본다. 거기다 어딘가 아프기라도 하면 이 횟수는 더더욱 늘어난다. 내가 어릴때부터 만났던 의사들을 일렬로 세운다면 아마 어지간한 종합병원 하나는 차릴 것이다. 허나 이건 비단 나만의 얘기는 아닐 것이다. 아마 사람들은 살면서 최소 10명 이상의 의사들은 만나며 살았을 것이다. 다른 전문직 보다는 월등하게 많이 만났을 것이다.

허나 이렇게 많이 만난 의사이지만 의사에 대해 말해 보라고 하면 할 말이 없다. 다소 권위적이라는 것. 내 병세나 처치에 대해 자세하게 얘기해주지 않는다는 것 정도? 그 이외에 아는것은 없다. 그저 그들이 남들보다 훨씬 더 많이 그리고 오래 공부를 했고, 벌이가 보통 월급쟁이들 보다는 훨씬 많다는 것 정도가 더 있을수도 있겠다. 그리고 가끔 들리는 얘기들. 친구가 의사랑 선봤는데 뭐를 얼마나 해 오라고 요구하는 바람에 헉겁을 했다는 그런 것들. 그러고보니 내가 의사에게 가지는 감정은 좋은쪽 보다는 부정적인쪽이 더 많은것 같다.

의사가 말하는 의사는 사람들이 자주는 보지만 잘 알지 못하는 의사들에 대해. 의사들이 자신들에 대해 직접 들려준다. 의대생부터 인턴. 레지던트. 그리고 전문의와 각종 의료계에 종사하는 의사 및 예비 의사들은 자신들이 어떤 과정을 겪어서 의사가 되는지 또 의사가 되고 난 이후의 삶이 어떤지에 대해 얘기한다. 그리고 그들이 내는 목소리는 비교적 솔직해 보인다. 그리고 그동안 내가 가졌던 의사에 대해 알게 모르게 가졌던 편견들이 조금은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어쩌면 내 모든 편견들은 그들도 나와 똑같은 사람이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아서인지도 모르겠다. 생명을 다루는 의사니까 그들은 당연히 자기 자신보다는 환자를 더 생각해야 하고 돈 보다는 의술을 펼쳐 아픈 사람의 고통을 덜어줘야 한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의사도 역시 하나의 직업이다. 물론 다른 직업들보다 윤리적으로 더 많은 책임이 따르긴 하지만 말이다.

이 책은 의대진학을 꿈꾸거나 혹은 의사의 길을 가기 위해 준비하는 사람들이 보면 딱 좋을 책인것 같다. 이 책에 나오는 의사들은 자신들을 미화시키지도 그렇다고 요즘은 벌이가 예전같지 않다며 징징거리지도 않는다. 그들이 겪었던 어려운 일들. 또 절망스러웠던 순간들을 솔직하게 고백한다. 또 그와 동시에 의사 되길 잘했어라는 기분을 느꼈던 순간들도 같이 말이다. 이들은 돈 벌려고 의사된건 아니다 어디까지나 의술을 펼치기 위해 같은 얘기는 하지 않는다. 그들도 의사는 돈을 많이 번다는 것을 솔직하게 인정한다. 그런데 이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오히려 의사 자신보다 의사를 아들 혹은 친척으로 둔 사람들이 더 의사에게 바라는게 많은것 같다. 죽게 공부했고 돈도 많이 들었으니 이제 의사면허를 가지고 돈을 끄는 일만 남았다는 듯이 말이다. 언제나 그렇지만 개천에서 난 용들은 아직도 개천에 남아있는 이무기들 때문에 발목이 잡힌다.

이 책 이외에도 이 출판사에서는 PD가 말하는 PD, 간호사가 말하는 간호사등 전문직 종사자들이 쓴 짧은 글들을 엮은책이 시리즈로 나오나본데 기회가 된다면 다 읽어보고 싶다. 제 3자가 지켜보고 이러쿵 저러쿵 한게 아닌. 또 딱 한사람의 종사자만 말하는게 아닌 무려 20명의 현직 의사 혹은 의사가 되려는 과정에 있는 사람들이 들려주는 얘기이니 만큼 책의 내용은 생생하다. 거기다 마지막에는 의사가 되려는 사람들의 질문에 대답을 해 놓았는데 수입이나 그런것에 대해 비교적 솔직하게 써 놓은게 인상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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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6-05-19 08: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시리즈, 상당히 궁금합니다. 솔직히 저보다는 앞으로 진학을 준비해야 하고 미래를 준비해야 할 제 남동생(내년에 고등학생이 됩니다 흐흐흐) 읽어야 할 것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마태우스 님의 서재에서도 이 책이 좋은 점수를 얻더니, 플라시보 님 서재에서도 그렇군요. 추천 하나, 보관함에 옮기는 절차. 후훗.
그리고 얼마전, 서점에 갔다가 CmKm을 보았는데 김진표의 사진들을 보는 순간 플라시보 님 생각도 잠깐 났어요. 어느정도 그의 사진을 좋아하시던 게 생각나서요.

플라시보 2006-05-19 13: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Jude님. 으흐흐. 진표씨의 사진. 아주 좋아라 하지요. 사진을 잘 몰라서 그런지 그 사람이 찍은 사진이 그렇게 좋더라구요. 사실 사진 작가도 아닌데 말이죠. (그리고 훨 더 잘 찍는 사람도 많은데 말이죠) 저도 이 책 마태우스님 서재에서 보고 산 책입니다. 생각보다 재밌고 유익했어요. (아..고루한 표현력^^) 남동생이 진학해야 한다면 한번 선물 해 보세요. 분명히 도움이 될 것 같아요.

로드무비 2006-05-19 16: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요리사가 말하는 요리사 찜해 뒀답니다.^^

플라시보 2006-05-24 10: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근데 요리사가 말하는 요리사는 요리사들이 섭외가 잘 안되었다고 하더라구요. 한번 다시 살펴보시고 구입하세요.^^
 
GO
가네시로 카즈키 지음, 김난주 옮김 / 북폴리오 / 200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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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내가 알고 있는 재일 조선인. 그러니까 일본에 살고 있지만 국적은 조선 국적을 가지고 있으며 조총련이라는 단체 하에 있는 사람들의 삶은 답답하거나 안되어 보였었다. 패션의 최첨단을 걷는 일본에서 아직까지 치마저고리를 입고 학교에 등교하질 않나, 그렇게 자유로운 땅에 살면서 어떻게 김 부자를 거의 신격화시키는 교육을 그대로 믿을 수 있을까 싶을 뿐이었다. 그리고 아주 가끔. 치마저고리를 입은 여학생들이 거리에서 놀림감 내지는 희롱의 대상이 된다는 기사를 접하면서 혀를 찰 뿐이었다. 나쁜 일본놈들 하다가도 그러게 왜 치마저고리를 입고 나 잡아 드슈 하냐 싶었다.

만약 그들의 삶을 영화나 소설로 옮긴다면 어떨까? 그건 분명 발랄함과는 거리가 멀 것이다. 한국 국적을 가지고 있어도 일본인들에게 무시를 당하는 판국에 조선 국적이라니. 사상이고 뭐고 다 떠나서 일단 가난한 나라의 국적을 가진 외국인들은 어딜가나 서럽게 마련이다. (우리가 방글라데시나 필리핀 사람들을 미국이나 영국 사람들과 똑같이 대하지 않듯이) 그러나 가네시로 가즈키의 Go는 이런 내 생각을 한방에 날려버린다. 칙칙해야만 하고 칙칙할 수 밖에는 없으며 칙칙한것 이외에 달리 무슨수가 있겠냐는 상황에서의 전혀 그렇지 않음. 그게 바로 이 소설이 가진 매력이다.

사람들은 누구나 편견을 가지고 있다. 문제아는 반드시 결손 가정일 것이며 그도 저도 아니면 가난하거나 아님 엄마 아빠가 날마다 죽이네 살리네 싸우거나. 물론 아주 틀린말은 아니다. 집안 환경이 지랄맞으면 지랄맞을수록 아이는 힘들어질 것이고 힘들다보면 유혹에 약할수도 있다. 그러나 막상 통계를 내어보면 멀쩡한 가정에서 자란 아이나 우리가 흔히 문제 가정이라고 부르는 곳에서 자란 아이들이나 비슷비슷하다. 그러니까 어떻게 보면 환경 탓만을 하기에는 뭔가 부족한. 그러니까 개인의 의지가 많이 포함되어 있는 문제라는 것이다. 재일 조선인인 소설의 주인공도 마찬가지이다. 그도 분명 차별을 당하고 또 심지어는 사랑하는 여자아이로부터 일본 국적이 아닌 다른 국적. 그 중에서도 한국 국적을 가지고 있는 외국인이라서 너와 사귈 수 없다는 통보를 받기도 한다. 그렇지만 주인공은 그걸로 좌절하거나 이놈의 세상 하며 무너지지 않는다. 그냥 있는 그대로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또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은 받아들이지 않는다. 참으로 간단하고 심플해 보이지만 사실 이렇게 살 수 있는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다. 인간들은 언제나 자기가 어쩔 수 없는 부분 마저도 통제하고 또 자신의 마음에 들길 바라니까 말이다.

당연히 어두운 내용으로 가득할 것이라 생각했던 소설은 초반부터 이런 바램을 배신한다. 국적을 떠난 어디까지나 이건 자신의 사랑얘기 라고 선언하는 것에서 부터 출발해서 시종일관 유쾌 상쾌 통쾌로 이어진다. 허나 그렇다고 해서 가벼운 그렇고 그런 소설이라 생각하면 오산이다. 심각하되 그 심각을 찌푸리지 않고 웃으며 말하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표지에 그려진 일러스트가 어쩐지 멋지다 마사루류를 떠올리게 해서 샀는데 읽는 내내 재미있었다. 다만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힘이 약간은 부족한듯 보이는게 흠이라면 흠이다. 그러나 그걸 뺀다면 이 소설은 매우 재밌으면서도 읽고나면 옮긴이의 말 처럼 만루 홈런과 같은 후련함과 통쾌함을 전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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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빵 2006-05-17 21: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네시로 가즈키군요. 요것두 보고 싶넹.

플라시보 2006-05-18 18: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프락사스님. 네. 재밌었어요. 크게 심각하지도 않고 잘 읽혀요. 흐.^^

비로그인 2006-05-18 18: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화를 먼저 본 다음 책을 보았는데, 어쩌면, 두 장르가 하나도 빠지지 않았던 기억이 나요. 헛둘, 헛둘, 하며 빨간 스카프 목에 매고 운동장 구보하는 것을 상상하며 고개젓던 주인공의 모습이, 하나도 눅눅하지 않고 오히려 유쾌하기까지 한 것은 어쩌면 그 어린, 혹은 젊다는 것에서 오는 에너지였을까요?
제가 구입한 판본은 표지가 바뀌기 전의 것이었는데, 흰 바탕에 오렌지색으로 GO 라고 떡하니 씌어져 상당히 간결하면서도 상쾌한 것이었습니다. 새로 바뀐 판본의 표지는 이전의 깔끔함에 비해 영 별로, 라고 생각했는데 플라시보 님의 마지막 단락을 읽으니 새로운 판본도 좋아보여요.^^(저, 팔랑귀입니다. 흐흐흐)

플라시보 2006-05-18 20: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Jude님. 저도 그러고 보니 저 영화 언뜻 스치듯 TV에서 본것 같기도 합니다. (아마 주인공이 여자애에게 자기 국적을 밝히는 장면이 아니었나 싶어요) 음.. 저게 새로 나온 표지였군요. 흐흐. 전 몰랐어요. 음... 오렌지색의 상큼한 Go도 이뻤을것 같아요. (역시 팔랑귀 하하)
 
과자, 내 아이를 해치는 달콤한 유혹
안병수 지음 / 국일미디어(국일출판사) / 200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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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엄마를 따라 슈퍼마켓에 가면 언제나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얻어먹곤 했었다. 사실 나는 아이스크림 보다는 빙과류라 불리는 하드 종류를 더 좋아했었는데 엄마는 거기에는 색소가 많이 들었으니 이왕이면 천연 성분이 더 많이 든 (유지방) 아이스크림을 먹으라고 했었다. 그렇게 장을 보러간 엄마를 따라간 나도, 장바구니에 콩나물이며 두부를 담던 우리 엄마도 그때는 몰랐었다. 오히려 아이스크림에 유지방이 들어가있어 더욱 해롭다는 것을 말이다. 엄마가 주목했던건 오직 우유에 든 성분인 유지방이 들어가 있다는 사실 하나였지만 그 속에는 또다른 진실이 있다. 바로 아이스크림의 원료인 물과 유지방 즉 기름이 섞이게 하기 위해 위험한 화합물질이 들어간다는 것을 말이다. 거기다 해로운 정제당분이 대량으로 들어가는건 말로 더 할 필요도 없다. (책에는 없지만 아이스크림은 보통 실온에 존재하는 다른 것들보다 더 달다. 한번은 녹은 아이스크림 물을 먹다가 너무 달아서 기절할뻔 한 적이 있었다. 차가움이 혀를 어느정도 마비시키기에 어지간히 달지 않고는 아이스림에서 단맛을 느끼기가 어려우므로 거기에는 이루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정제 당분이 들어가는 것이다.)

이 책은 과거 유명한 제과회사에 다녔던 중역이 쓴 책이다. 거기서 신제품 개발을 담당하고 있던 저자는 일반인에 비해 비교적 과자의 폐해에 대해 잘 알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을 읽어보면 전혀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된다. 누구보다 과자를 잘 알고 있는 그였지만 어떤 사건이 일어나기 전까지 그는 과자 예찬론자였으며 자신은 물론 자신의 아이에게도 과자를 열심히 먹였었다. 즉 그 분야에 있어 전문가였으나 그는 과자에 들어가는 각종 색소와 맛을 내기 위한 향료 그리고 인공 감미료나 정제당이 얼마나 위험한지 그 개별적인 것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이 없었던 것이다. 그러다가 거래하는 일본의 슈크림회사 사장이 병으로 죽고 나서야 그는 본격적으로 자신이 개발하고 또 소비했던 나아가 슈퍼에 진열되어 이땅의 수많은 사람들에게 먹혀졌던 과자에 대해 다시 생각한다. 그리고 그것은 비단 과자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그는 모든 가공식품. 그러니까 자연 그대로의 형태가 아닌. 어떤 식으로건 가공 내지는 첨가물이 들어간 제품들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고 살펴본다. 그리고 그 결과는 실로 아찔하다. 정말 슈퍼마켓에서는 인간이 먹어서는 안될 것들만 쌓여있구나라는 생각이 절로 들 정도이다.

인스턴트 식품이나 패스트푸드 제품이 좋지 않다는 것은 일반인들도 모두 아는 상식이다. 하지만 일반인들이 알고 있는 이 상식은 어디까지나 몸에만 국한된 것이다. 이 식품들이 정말로 위험한것은 몸 뿐 아니라 정신건강. 즉 뇌에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사실 인스턴트 식품과 패스트푸드를 먹는다고 해서 정신질환에 걸린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나 역시도 그런 정크푸드가 나쁜 이유는 오로지 몸에 해롭기 때문이라고 알고 있었다. 단지 기름끼가 많으니까 혹은 설탕이 많이 들어가 있으니까. 하지만 이 책은 말한다. 그 기름과 설탕이 왜 나쁜지를 그리고 그것들은 몸뿐 아니라 정신건강에도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말이다.

책에서 본 가장 놀라운 사실 중 몇가지만 소개해 보겠다. 우선 우리가 매우 좋은 기름으로 알고 있는 식물성 기름에 대한 것이다. 나는 콩에서 기름을 추출하는 식용유가 정말 안전하고 좋은 기름인줄 알았었다. 그래서 식용유로 튀긴 요리나 식용유로 볶은 요리는 비교적 안전하다고 생각했었다. 내 머리 속에는 분식점에서 파는 쇼트닝이라는 고체 기름에 튀긴 음식만 나쁘다고 인식되어 있었다. 하지만 이 식용유로 불리우는 것들이 얼마나 나쁜지 이 책은 말한다. 흔히 아는 참기름처럼 단지 콩을 넣고 압착을 해서 기름을 빼 내는게 아니다. 콩에서 그 많은 식용유를 빼기 위해서는 여러 공정이 필요하며 그 공정에는 화학물질 과 고온이 필요하다. 따라서 깨끗하고 맑고 괜찮은줄 알았던 식용유는 사실 우리 몸에는 해로운 지방이었던 것이다. 어떤 가정에도 하나쯤은 있는 식용유. 감자도 볶고 달걀도 부치는 그 기름이 안전하지 못하다니 정말 충격이었다. 내친김에 기름 얘기를 더 하자면 마가린이 나쁜것도 처음 알았다. 버터보다 싸고 또 동물성이 아닌 식물성 지방이니 좋을것이라 믿었던 마가린. 하지만 이건 버터보다 훨씬 나쁘고 식용유보다도 더 쓰레기이다. 원래는 액체 상태여야 하는 옥수수기름을 고체 형태로 만들기 위해 역시 인위적인 가공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 가공 과정을 거친 마가린은 2년이 지나도 곰팡이 하나 피지 않는다. 이걸 식물성이라고 좋아하며 빵에 발라먹던 지난날의 내 모습이 아찔하게 떠오른다.

요즘들어 많이 보게 되는 광고는 천연 무엇무엇을 첨가한 제품들이다. 이를테면 비타민이나 뇌에 좋은 DHA성분 혹은 칼슘이 들어간 제품들은 그게 들어가있지 않은 것 보다 훨씬 비싸다. 소비자들은 좋은 성분이 첨가되었으니 당연히 좋을것이라 생각하고 구입하지만 이 책을 읽어보면 그에 대한 진실이 나온다. 그리고 식품업계가 얼마나 일반 소비자들을 우롱하고 있으며 소비자인 우리 또한 얼마나 아무 생각없이 슈퍼에 진열된 식품들을 구입하는지에 대해 생각하게 해 준다. 제목은 과자 내 아이를 해치는 달콤한 유혹이지만 과자 얘기는 앞장에 주로 나와있고 뒤로 가면 갈수록 과자 이외의 위험한 식품 (이라 부르기도 힘들지만 아무튼)과 그것을 섭취한 현대인들이 노출된 각종 질병과의 상관관계에 대해 나온다.

책에는 우리가 몰랐던 사실이 너무도 많이 나온다. 아무 생각없이 먹던 햄과 소세지는 식품학자가 꼽은 가장 나쁜 가공식품이라는 사실을 아는지. 비타민이 들어있으니 청량음료보다는 훨씬 좋다고 믿었던 드링크류가 사실은 비싼 청량음료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 자일리톨이네 어쩌네 하며 천연성분을 강조하고 마침내는 이를 닦지 못하면 이걸 씹는게 가장 좋은 대안처럼 광고되는 껌이 얼마나 몸에 해로운지 우리는 전혀 알지 못했다. 그저 패스트푸드점에 파는 음식들이 몸에 해로우려니 인스턴트 음식이 안좋으려니 정도로만 알아서는 이 많은 나쁜 음식들과 식품들 사이에서 무사히 건강하게 살아남기란 거의 불가능해 보일 지경이다.

사실 이 책은 아주 잘 쓰여진 책은 아니다. 그래서 읽으면 흥미롭다거나 아니면 잘 읽혀진다거나 하지는 않는다. (비슷한 책 패스트푸드의 제국은 매우 잘 쓰여진 책이라 책장이 잘 넘어간다.) 그렇지만 담겨진 내용의 충격 때문인지 이 책은 한번 잡으면 도저히 손에서 놓을수가 없다. 내가 안전하다고 혹은 별로 해롭지 않다고 믿었던 식품이 어떤 탈을 쓰고 있고 그 탈의 뒷면에는 어떤 모습이 도사리고 있는지 너무나 궁금하기 때문이다. 좀 딱딱하고 재미없는 내용도 있지만 그래도 꼭 필요한 것이기에 어느 하나도 소흘하게 읽을수가 없다. 이 책은 제목만 보면 아이를 둔 엄마들이 읽어야 할 것 같지만 내 생각에는 시골에서 손수 나물따서 반찬해먹는 사람이 아닌. 적어도 도시에서 장을 보고 가공식품을 먹는 사람이라면 모두 읽어야 할 책이다. 먹거리는 이제 더 이상 밥담당인 엄마만의 문제가 아니다. 식탁에서도 그렇지만 식탁 이외에서도 우리는 끊임없이 먹을꺼리를 섭취하기 때문이다. 아무 생각없이 마신 드링크 한병. 천연 과즙이 들어가 있다고 광고하는 음료 한병. 아이스크림 하나가 얼마나 위험한지는 엄마 뿐 아니라 모든 사람이 알아야 할 문제이다.

몰랐던 사실을 너무 많이 알려준 고마운 책이라 불만을 얘기하긴 쉽지 않지만 사실 아쉬움이 없는건 아니다. 좀 더 쉽고 재미있었으면 하는 바램인데 전문적이라 당연히 재미없고 쉬울수가 없다는건 편견이다. 전문적인것도 충분히 쉽고 재미있을 수 있으며 그건 어디까지나 저자의 글실력이자 역량에 해당하는 부분이다. 하지만 이 책은 그런 불만마저도 크게 가질수 없을 정도다. 내용이 그만큼 충격적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좀 더 쉽고 재밌었으면 하는 아쉬움은 그래서 더 많은 사람들이 읽었으면 하는 바램에서였지 읽는동안 재미없어 혼났네라는 식의 불만은 아니다.

한가지 걱정되는 것은 책을 읽고나서 과연 어떤 대안을 찾아야 하냐는 것이다. 자연식을 하는게 좋기는 한데 이미 우리는 거기서 너무 멀어져 있기 때문에 이게 좀처럼 쉽지가 않다.(사실 식용유의 대체유를 어디서 찾겠는가 말이다.) 다음에는 저자가 위험한 식품을 피하면서 요리하는 방법이라던가 대체품등을 알려주면 더욱 좋을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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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6-05-16 18: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발 하겐다즈 아이스크림은 괜찮을거라고 말해주세요 흐흑…실은 집에서 듣던 엄마 잔소리를 다시 듣는 기분입니다. `매일 먹는 게 아니니까 괜찮을거야’라고 생각하며 최선을 다해 안들으려고 했던 말들을 고스란히 책에서 접할 때의 그 뜨악함이란. 보관함으로 가져갑니다. 그런데 정말, 대안책은 무엇일까요?

sooninara 2006-05-16 18: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 낳고 키우면 이런 책이 남의 일 같지 않죠?
저도 과자 안먹이려고 해도 아이들이 먹고 싶어해서 사주게 돼요.
그래도 전보단 덜 먹이려고 애씁니다.

플라시보 2006-05-16 18: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Jude님. 오직 가공하지 않은 식품들만 먹는건데.. 그게 쉽지가 않죠. 우리 보통은 식용유를 가공식품이라 생각하지 않잖아요. 근데 그것마저 안된다고 하니... 음.. 그리고 하겐다즈. 혹시 바 형태 말씀하시는 건가요? 그렇게 초컬렛이 씌여져 있는건 더 나쁘다 하더라구요. 초컬릿이 아니라 모양만 초컬릿인데 그게 그렇게 해롭다고... 아.. 영 안먹고 사는건 힘들지만 이거 읽고나니까 냉장고에 있는 아이스크림을 못 먹겠더라구요. 쩝.

sooninara님. 흐.. 아무래도 그렇겠지요. 제목 부터도 아이가 들어가있고 또 과자에 관한 내용이니까요. (애들과 과잔 정말 뗄 수 없는 관계지요.) 근데 어른들도 과자 끊기 힘든데 아이들은 정말 힘들것 같아요. 더구나 과자에 많이 노출되어있는 요즘 애들은 더 끊기 힘들꺼구요. 쩝.
 
이현우가 사는 법
이현우 글.그림 / 북폴리오 / 200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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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나는 이현우라는 가수를 매우 싫어했었다. 꿈을 부를때. 그 엉거주춤하게 서서 건들거리는 춤하며 마이크를 그냥 잡지 않고 애끼 손가락에 끼워서 폼내는것 하며 어느 하나 마음에 드는 구석이 없었더랬다. 외국물 먹고 온걸로 밀어부치려고 하는 그저 그런 댄스가수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다가 그를 약간 다르게 본 사건이 있었다. 꿈 리메이크 앨범이었는데 앨범 하나를 전부 꿈이라는 노래 하나가지고 무슨 버전 무슨 버전 하면서 리믹스를 해 놓은 것이었다. 처음에는 아주 꿈 하나로 뽕을 뽑는구나 싶었는데 나중에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거 반대하는 사람도 많았을텐데 (안팔린다고) 그래도 고집을 부리면서 만들었겠구나. 생각보다 고집있는 사람이겠구나. 하고 말이다. 그러다가 이현우는 예의 그 대마초 사건에 연루되어 가요계를 떠났다. 꿈 하나 달랑 히트시키고는 사라진 것이다. 그리고 나도 이현우라는 가수를 금새 잊었다.

이현우가 다시 나타난건 '헤어진 다음날' 이라는 곡을 들고 나오면서였다. 그러더니 옥탑방 고양이에서 시종일관 같은 표정으로 연기하는 실장역을 했고 어느새 어색한 김광민 옆에서 어눌하게시리 수요예술무대 진행도 하고 있었다. 당시 수요예술무대는 친구와 함께 녹화때마다 세종대에 가서 꼬박꼬박 방청할 정도로 열광하던 프로그램이었는데 거기서 본 이현우는 꿈을 부르며 춤추고 마이크를 폼내서 잡던 그 사람이 아니었다. 그리고 한참후. 나는 이현우가 낸 요리책을 봤다. 뭐 참고해서 만든 요리는 없지만 (사실 내가 본 수많은 요리책 중 실제로 해본 요리는 하나도 없다. 다 그냥 재미로 본다.) 그래도 재밌게 읽었었다.

이현우가 이번에 낸 책 이현우가 사는법은 더이상 요리책도 그의 싱글 이미지를 살린 책도 아니다. 그냥 인간 이상원 (이게 본명이란다.) 연예인이자 사업가인 이현우가 있을 뿐이다. 그는 자신의 요리책도 또 자신에게 붙어있는 쿨한 싱글이라는 이미지도 전부 연예계 생활을 하다가 보니 붙여진 것이라 했다. 그렇다고 해서 그는 나는 원하지 않았지만 이라는 말로 피해가지는 않는다. 그는 자기가 그렇게 비춰졌다면 자기 안에 그런 부분이 조금이라도 있기 때문이 아닐까로 생각한다고, 한때는 그도 자기에게 가공된 이미지가 버거웠지만 지금은 그냥 그것도 일부라고 인정한다고 했다.

그리 멀지 않은 장소로 여행을 가면서 읽었는데 읽는 내내 재미있었다. 비록 소리를 내서 키득거리는 그런 재미는 아니지만 책장은 수월하게 넘어갔고 책이 넘어갈수록 남은 페이지의 줄어듬이 아쉬워지는 그런 재미였다. 이제는 마흔살이 된 미혼의 남자 이현우. 그는 더 이상 이곳 저곳에 휘둘리지 않을 만큼 나이도 먹었고 세상 경험도 많이 했다. 그래서 꼭 그냥 아는 선배가 자신의 사는 얘기를 주절주절 (허나 재미있게) 얘기 해 준다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책을 읽으며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의 이미지 중에서 느릿하고 어눌한것 때문에 이현우가 대부분의 시간을 널널하게 책이나 보고 휴식을 취할꺼라 생각하지만 의외로 그의 삶은 바쁘다라고 할 정도로 팍팍하다. 본업인 가수 이외에 연기도 하고 라디오 DJ도 하고 거기다 사업체도 세 곳을 운영하고 있다. 남들은 하나도 하기 힘든걸 이 어눌해 보이는 남자가 몇 가지 씩이나 한다고 하니 좀 신기하기도 하고 의외기도 하다. 그에게서 으례 느껴지는 느림과는 좀 다른 현실이다.

연예인들이 쓴 책을 접할때면 꼭 드는 느낌이 있다. 이 사람들이 얼마나 바쁜 사람들인데 화보를 찍었으면 찍었지 책을 직접 썼을라구. 그리고 실제로 연예인들이 낸 책의 대부분은 대필 작가들의 솜씨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현우의 책을 읽으면서 그가 정말로 이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쓰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미국에서의 생활이며 대마초 사건. 그리고 혼자 사는 현재 자신의 모습에서 그를 괴롭히는 스토커에 대한 생각까지. 비록 대필 작가가 인터뷰한 내용을 바탕을 썼다 하더라도 여기에서 그는 꽤 솔직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어쩌면 중요한건 어떤 문장을 써서 얼마나 책을 잘 썼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솔직한 자신의 마음을 담았느냐 인지도 모르겠다. 요리책의 경우 거의 실제 자기와는 다르다는 고백을 해 두었고 미디어에 의해 얼마나 자기가 포장되고 가공될 수 있는가를 느꼈다고 한다. 하긴 거기서 이현우 좀 심하게 요리를 잘했었다. 그리고 그 요리책이 아닌 이 책에 공개된 이현우의 주방은 소박하기 그지 없다. 설거지를 하는 모습을 찍었는데 싱크대가 정말이지 내가 혼자 살때의 그 싱크대랑 별반 다를바가 없다. 요리책에서는 매우 화려했었는데 말이다.

연예인이 낸 책 치고는 참 사진이 많이 들어있지 않다. 특히나 이현우 자신의 사진이 거의 없다. 표지의 꽤 멋진 사진을 보고 저런게 여러장 있을꺼라 생각하면 실망할 것이다. 그나마 있는 몇 장의 사진도 멋진 이현우와는 좀 무관한 뭐 이런 사진밖에 없었나? 싶을 정도의 사진 뿐이니 말이다. 대신 이현우라는 남자의 생각이 그리고 그가 사는 법 (이렇게 말하면 거창하지만 누구나 살고 있고 그렇다면 사는 방법 같은게 있게 마련이지 않겠는가?) 이 들어있다. 하루만에 이 책을 다 읽은걸로 봐서 분명 재밌는 책이기도 하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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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파피필름 2006-05-15 21: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현우가 벌써 마흔이 되었군요.. 한때 이현우를 좋아했었는데
노래때문이 아니라 그가 주는 이미지때문에요.. ㅋㅋ
내용이 궁금해지네요..

플라시보 2006-05-16 00: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은 꽤 재밌습니다. 이현우가 직접 썼다면 글 솜씨가 보통이 아니여요. 그렇다고 해서 굉장히 새련되고 재밌게 잘 썼다기 보다는 솔직하고 담백한. 그런 글입니다.^^ (그래서 어쩐지 그가 직접 썼다고 확 믿게 만드는 구석이..흐흐)
 
허삼관 매혈기
위화 지음, 최용만 옮김 / 푸른숲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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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오래전. 방바닥에 누워서 과자를 먹으며 읽었던 책 한권이 생각난다. 왕룽과 오란이 나오는. 그렇다. 그 책은 펄벅 여사의 (어째서 그녀만 여사라고 부르는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다들 그렇게 부르니까) 대지이다. 나는 그 책을 읽으면서 거기에 나오는 모든 인물과 모든 장소와 모든 물건들을 그리고 그것들이 합쳐져서 내는 모든 상황들을 상상했었다. 실증을 잘 내는 인간임에도 불구하고 대지는 드물게 열번 정도는 읽었던것 같다. 읽을 책이 없거나 심심하면 꺼내서 읽었고 그 증거로 대지는 지금 나달나달해진 채 내 책장에 꽂혀있다. 그러나 그렇게 여러번 읽었음에도 불구하고 대지는 단 한번도 지겹거나 재미없거나 한 적이 없었다. 오히려 뒷 내용을 알지 못하는 다른 새로운 책들보다 이미 내용을 다 아는데도 한번 손에 잡으면 멈출 수 없을 만큼 매번 몰입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어제. 나는 다시 펄벅의 대지같은 책을 만났다. 허삼관 매혈기. 제목만 들었을때는 '혈의 누'나 '무정' '화수분' 처럼 고만고만한 시대에 쓰여진 우리 소설인줄 알았었는데 이게 중국 소설가의 책이었다. (근데 이상하게 제목이 너무 친숙했다.) 내가 알고있는 한자가 얼마 안되었지만 그래도 매혈기라는 뜻 풀이는 가능했다. 그러니까 뭐 피를 판다 이런 말인데 과거 우리도 어려운 시대에 피를 팔아서 돈을 받는 사람들이 있었듯 중국에도 그런 사람들이 있었나보다.

내가 대지를. 정확하게는 왕룽과 오란을 좋아하는 이유는 그들이 가난하지만 절대 궁상을 떨거나 혹은 작가가 그들을 불쌍하다는듯한 느낌으로 쓰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만약 그들의 가난이나 그들이 처한 상황. 특히나 고생만 진탕 한 오란을 너무나 안되었다는 식으로 썼었더라면 나는 그 책을 결코 재미있어 하지 않았을 것이다. 모든 판단 모든 느낌은 독자에게 넘겨준 채 펄벅은 왕룽과 오란을 아주 담담한 문체로 그려내기만 한다. 그리고 허삼관 매혈기도 마찬가지다. 허삼관과 그의 아내 허옥란. 그리고 그 아들들인 일락, 이락, 삼락이의 얘기를 그 어떤 군더더기나 과장없이 우리에게 전해준다. 마치 작가는 자기가 이야기를 만들어낸게 아니라 어디 이웃서 본 얘기를 감정없이 그리고 더하지도 빼지도 않고 있는 그대로 우리에게 그대로 읊어주는 것 같은 착각이 들도록 한다.

허삼관과 허옥란은 왕룽과 오란을 닮았으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전혀 닮지 않았다. 왕룽이 일세대이고 허삼관과 허옥란이 삼세대쯤 된다고 상상했을때 정도의 닮음과 다름이다. 왕룽은 땅에 집착하고 집안을 일으키는 것이 인생 최대의 목표였다. 그리고 그 목표는 곰처럼 일만 하고 아무 불만도 말하지 않는 아내 오란을 만남으로 인해 현실이 된다. 그러나 허삼관은 좀 다르다. 허삼관은 그저 하루 하루를 살아낼 뿐이다. 거창한 목표가 있는것도 더 잘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그저 큰 일이 벌어지면 물을 여덟 사발쯤 들이킨다음 오줌보가 터지기전에 재빨리 병원에 가서 두 사발쯤 피를 팔고 그 돈을 벌어진 일을 해결한다. 그렇다고 해서 허삼관을 아무 생각없이 사는 인간이라고 생각하면 곤란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름 고뇌와 번민이 있다는 것이 아니라 그냥 허삼관만의 삶의 방식이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허삼관이 아닌 우리가 뭐라고 할 수 없는 것이기도 하다.

어떤 분도 말했지만 허삼관 매혈기를 읽다가 딱 한번 뒹군적이 있었는데 기근이 들어 배가고픈 허삼관네 식구들이 전부 누워서 각자 먹고싶은걸 말하는 장면이 있다. 그 장면이 어찌나 리얼하고 또 재밌던지. 꽤 심각한 상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런 가상의 요리를 해 대면서 또 그 안에서는 너무나 진지한 허삼관과 그의 식솔들을 보고 있자니 그분의 말마따나 그 장면을 생각하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서 웃을 지경이었다.  

처음 이 책을 읽기 전에는 지지리도 가난한 남자가 거의 매일 피를 팔다시피 해서 정말 궁상스럽게 살아가는 내용일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읽어보니 별로 그렇지도 않다. 책에서 피를 파는 대목은 그리 많지 않다. 심지어 허삼관은 10년에 한번 11년에 한번 피를 팔기도 한다. 물론 중간에 큰일이 생겨서 자주 피를 뽑다가 생명을 잃을뻔 하기도 하지만 인생 전반에 걸쳐서 늘 피를 뽑아야 하는건 아니다. 그렇지만 큰 일이 있을때마다 허삼관은 피를 뽑는다. 허나 그는 피를 뽑는 자신을 불쌍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피를 뽑을 수 있으니 자신은 건강하며, 또 피가 자신의 돈나무라 생각을 한다. 허옥란도 마찬가지로 내 예상에서 빗나가는 인물이다. 오란처럼 허삼관을 하늘같이 모시고 아무 군말없이 그저 일이나 죽도록 할 것이라 생각했었는데 그렇지 않다. 그러나 곰같이 일하는 오란 못지않게 허옥란도 매력적인 인물이다. 허옥란에게 매력이라는 말이 어울리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말이다. 제목은 허삼관 매혈기이고. 분명 허삼관은 피를 팔아서 큰 일을 치르곤 하지만 책의 큰 줄거리는 허삼관의 피 파는 이야기가 전부는 아니다.

남의 인생을 이토록 담담하게 들여다볼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여화는 허삼관과 허옥란의 이야기를 있는 그대로 우리에게 담백하게 전해준다. 어떤 양념도 어떤 고명도 얹지 않아서 약간 심심할 정도이지만 그래도 이 책은 오래오래 잊혀지지 않을 맛을 전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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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6-05-12 17: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웃다 보면 어느 순간 눈물이 핑 돌았던 소설입니다.

반딧불,, 2006-05-12 18: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왕룽과 오란이라니..
오란의 그 매정하게 딸내미 전족시키던 장면이 슬그머니...;;

비연 2006-05-13 11: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좋은 책이었어요. 마지막까지 마음이 찡하고 그러면서도 재미있는...

플라시보 2006-05-13 12: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Jude님. 네. 좀 안되었긴 했지요. 그런데 뭐 그다지 궁상스럽거나 많이 슬프지 않아서 좋았습니다.

반딧불님. 아.. 맞아요. 전족하던 장면 기억나네요. 오란은 전족을 안해서 왕룽에게 이쁨을 못받는다 생각해서 딸에게 만큼은 그렇게 해 주려고 전족을 했었지요. 그때가 아마 왕룽이 첩을 들였을때였지 싶은데.. (제 기억이 맞다면..)

비연님. 네. 간만에 꽤 좋은책을 만난것 같아서 저도 읽는 내내 기분이 좋았어요. 님 말씀처럼 재미도 있었구요.

밑줄긋는남자 2006-05-19 05: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항상 훔쳐보기만 하다 처음 흔적을 남기는군요
플라시보님보다 먼저 읽은 책이 있다니 신기하기도 해서 그런가 봅니다.
아마도 또 계속 훔쳐보지 않을까 싶군요
권위에 약한편인데 에디터스초이스 다음으로 신뢰가는 플라시보님의 리뷰 잘 보고 있습니다^^

플라시보 2006-05-19 13: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밑줄긋는남자님. 아.. 아이디가 참 마음에 드네요. 저도 그 책 재밌게 읽었었거든요. 음.. 이 책 읽으셨군요. 저도 읽고나서 리뷰쓰려고 보니까 리뷰수가 정말 많아서 놀랬어요. 유명한 책이었구나 하고 그제야 알았죠. 에디터스초이스 다음으로 신뢰해주신다니 흐흐. 영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