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평소 자주 들어가서 글을 읽는 알라딘 주인장 두 분께서 이 영화를 강력하게 추천했었다. 그래서 나는 다음날 보려고 하다가 그 글을 읽은 그날 바로 이 영화를 봐 버렸다. 단 하루도 못참고 조바심이 났기 때문이다. 대체 얼마나 재밌길래? 하면서 말이다.

결론부터 말 하자면. 그 두분께는 죄송스런 말이지만 이 영화는 별로 재미가 없었다. 그 이유 중에서 상당 부분은 바로 엄청나게 기대를 하고 가면 모든 영화가 다 그저 그렇다라는 것이 크게 작용했음은 부인할 수 없다. 그렇지만 대체적으로 잘 만든 영화인건 분명하지만 그래서 볼만은 했지만 꼭 봐야할 2004년에 개봉된 영화의 목록에 들어가기에는 어딘가 2% 부족하다. (이말 요즘 자주 쓰는데 실제로 나는 저 이름의 음료는 안사먹는다. 맹물에 복숭아주스 몇 방울 떨어뜨리면 만들 수 있다고 굳게 믿기 때문이다.)

한국 은행에서 50억을 인출해 나가는 사고가 생긴다. 각 은행마다 현금이 부족할때 무슨 증서인가를 주고 한국 은행에서 돈을 타 나가는데 박신양을 비롯한 사기꾼 일당이 그 증서를 위조한 다음 50억을 받아 간 것이다. 하지만 계획대로만 일이 술술 풀리면 무슨 재미겠는가. 박신양은 도망을 가다가 차가 폭발해서 죽어버리고 나머지 사람들은 서로 그 50억을 누가 가지고 있는지 끊임없이 의심을 하게 된다. 특히 백윤식은 그 돈을 찾아서 형사 못지않은 활약상을 펼친다.

영화의 스토리는 그럭저럭 괜찮은 영화이다. 물론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에 해당하는 비밀이 처음부터 너무 어설퍼서 금방 눈치를 깔 수 있었다는 점을 제외하자면 후한 점수를 줄 만한 스토리였다. 그다음은 배우들. 사실 이 영화에서 엄청나게 연기 기대를 했었던 박신양과 엄정화 백윤식이 배반을 때려버리고 예상외로 형사로 나오는 천호진의 연기력이 돋보였었다. 백윤식의 경우는 영화 내내 가장 힘있게 스토리를 끌고 나가는 중요한 역활이었는데도 불구하고 그의 연기는 평이했다. 어쩌면 지구를 지켜라에서 지나치게 연기를 잘 해 버렸기 때문인지도 모르고 이 역활 자체가 아주 고난위도의 연기력을 요하지 않아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평범한 정도였지 결코 잘했다고 말 할만한 수준은 아니었다. 염정아 역시 전작 장화홍련에서 본 카리스마는 오간데 없고 무난한 연기만을 선보였다. 그리고 이 영화의 핵심인물 박신양. 그에 대해서는 다음줄에 따로 얘기를 해야겠다. 할말이 많다.

사실 나는 대학에서 연기를 전공했다. (놀라지마라. 나도 안믿긴다.) 그때 지도교수님이 러시아에서 박신양과 함께 연기공부를 한 분이셨다. (여자다.) 연기하면 헐리우드라고 생각 하겠지만 사실 연기의 이론적인 부분들은 전부 러시아에서 나왔다. 스타니 슬라브스키라는 상당히 소련틱한 이름을 가진 사람이 연기 이론에 대해 획을 그었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배우의 감정 이입에 관한 부분이다. 감정이입이란 내가 실제로 극의 주인공이 되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를테면 심리치료의 역활극 같은 것이다. 나는 나 이지만 역활극을 하면 내가 내 어머니의 입장이 되어서 연기를 한다. 그 입장이 되어보는 것. 그 입장이라고 스스로 생각하는 것이 바로 감정이입이다. 이러이러 했을 것이다가 아닌 정말로 극중 인물이 되어서 생각하고 행동하고 느끼는 것. 그것이 감정 이입의 핵심이다. 이론적인 부분보다는 감정과 감성에 호소하는 연기이다. (이렇게 길게 썼는데 틀리면 상당히 쪽팔리는 일일 것이나 아무튼 나는 이렇게 기억하고 있다.)

박신양은 바로 이런 연기공부를 하고 온 사람이다. 그런데 그의 연기를 보고 있노라면 대체 감정 이입이란걸 하긴 하는지 궁금해질 만큼 밍숭밍숭한 연기를 펼친다. 물론 이 영화에서는 나름대로 상당히 노력하는 점을 보여주긴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계산된 이론적인 연기를 보여주고 있을 뿐 스타니 슬라브스키 아저씨의 가르침을 받잡은 연기는 아닌것 같다. 행동. 말투 외모상의 변화로 박신양은 1인2역을 상당히 괜찮게 소화하기는 했지만 이상하게 와 닿지가 않는다. 감정이입 연기의 가장 큰 장점은 관객들로 하여금 배우가 정말 극중 인물이라는 착각을 불러 일으킬 만큼 강렬한 무언가를 느끼게 해 주는데 (최근 패션오브 크라이스트의 예수역을 맡은 배우나 올드보이의 최민식 같은 배우가 그 예라고 본다.) 나는 박신양을 보면서는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다. 박신양은 1인 2역을 하면서 두 사람을 연기해야 한다는, 그리고 그 두사람은 확연하게 달라야 한다는 부담감을 느껴서인지 모르겠지만. 그들의 다른 모습과 말투는 잘 표현했을지언정 그들의 감정을 표현하는 부분은 완전하게 실패해 버렸다.

내가 보기에는 박신양은 아주 연기를 못하는 배우는 아니지만 아직까지는 자기에게 딱 맞는 역활을 찾지 못했다는 생각이 든다. 결과적으로 내가 이 영화가 재미 없었던 이유는 제일 비중이 컸음에도 불구하고 내내 함량미달의 연기를 보인 박신양 때문이었다. 사실 박신양이 맡았던 역활은 상당히 노력이 필요한 역이었고 또 전적으로 배우의 연기력에 따라 승패가 좌우되는 역이었건만 박신양을 캐스팅한 것은 무리수를 둔 것이었다. 도레미파솔라시도 까지 올라가는 가수에게 도레미파솔라시도를 넘어 레미 까지 부르게 한 것이다.

그래도 이 영화는 스토리가 상당히 괜찮다. 물론 감독의 조바심이 영화 곳곳에 들어가 있어서 전체적으로 편안한 영화는 아니었지만 (스토리와 무관하게 편안한 연출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편집을 상당히 역동적으로 했음에도 불구하고 다소 지루하다는 느낌이 드는 부분도 있었지만 그래도 이만하면 잘 만든 영화라는 생각이 든다. 다만 박신양이 아닌 다른 배우가. 염정아가 아닌 다른 여배우가 맡아서 그들의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는 영화가 되었더라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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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nnerist 2004-04-23 12: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줏어들은 이야긴데, 그런 방식의 연기의 단점이 배우가 정신분열을 일으키기 딱 좋다가 아니었는지요? (틀리면 님보다 더 쪽팔린 거겠죠. -_-;)

플라시보 2004-04-23 12: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후훗. 맞습니다. 일상생활에서도 광끼를 팍팍 드러내는.. 주로 영화나 TV쪽 보다는 연극 배우들이 상당히 그렇지요. 그들이 아마 영화나 TV보다는 훨씬 더 연기력과 에너지를 필요로 하기 때문에 그런거 아닌가 싶습니다. 못하면 바로 코앞에 관객이 앉았으니 바로바로 표가 나잖아요^^

마태우스 2004-04-23 12: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구, 죄송합니다. 저도 님께서 보신다기에 걱정했는데, 역시나 재미가 없으셨군요! 그 벌로 담에 한판 뜰 때 제가 쏘겠습니다. 푸르른 오월에요.

플라시보 2004-04-23 12: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잉...그러시면 제가 괜히 미안하잖습니까. 재미가 없었다기 보다는 박신양이...저기 그러니까 스타니 슬라브스키가...으흑. 결국 절 울리시는구만요..쩝.

stella.K 2004-04-23 13: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박신양. 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요. <함량미달> 가슴에 와 팍 꽂칩니다요. 글고 플라시보님 연극전공하셨군요. 남 같지 않습니다요.^^
저그 그림은 좋네요.

진/우맘 2004-04-23 13: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흠....박신양, 연기 잘 한다고만 생각했는데...그리고 이번의 날건달 스타일, 굉장히 귀여웠는데.^^
역시, 플라시보님도 반전을 추측해냈군요. 소굼님도 그렇고...너무 똑똑한 것도 가끔 재미 없는일인 것 같아요.

플라시보 2004-04-23 13: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stella09님 연극 전공이라 하긴 좀 그렇고 연기수업이 좀 많았습니다. 흐흐 그소리가 그소린가? 영화연기. 연극연기. TV연기 이렇게 3가지를 배운 기억이 나는군요.
진/우맘님. 날건달 스타일 귀엽기는 귀여웠어요. 저건 어디까지나 제가 기대를 많이 해서 그런거구요. 후훗^^

마냐 2004-04-23 17: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구...죄송함다...님께서 2% 부족한 영화에 돈 들여, 시간 들여, 머리아프게 연기 분석까지 하도록 해, 그나마 잘한 것도 아닌 연기를!...이거 어찌 갚아야 할지 모르겠슴다....역시 "기대가 높았기 때문"이라는데 책임을 전가하고 싶지만...암튼.....'아라한...'은 꽤 괜찮다는게 제 주변 평인데..새로운 시도로 기분 확 살면 좋겠슴다. ^^;;;

플라시보 2004-04-23 17: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이 별말씀을요. 아닙니다. 괜찮은 영화였습니다. 돈주고 봐주기 아깝지도 영화관에 가서 보기 아깝지도 않았구요. 모처럼 예전에 배웠던 기억을 되살릴수 있었던 시간이었습니다.^^

sooninara 2004-04-24 12: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미있었는데..역시 영화는 기대없이 봐야지 재미있다니깐요
한국영화도 좋아졌네 싶으면서 뿌듯한 마음이라서..점수가 더 후해진것 같네요^^
 


오늘 나는 이 영화를 혼자서 봤다. 몇 번이고 보려고 했었지만 몸 상태가 좋지를 않아서 계속 미루고 있다가 오늘 출근하면서 바로 표를 끊었고 사무실에 출근 체크기에 카드를 밀어넣고 부리나케 내려와서 아침 9시 30분 첫 프로를 봤다. 오늘은 금요일이라 메가박스에서 무료로 볼 수 있으며 (KTF멤버스 카드는 매월 1회 금요일날 영화를 무료로 볼 수 있게 해준다.) 또 오늘은 별로 바쁘지 않을것 같고, 또 지금 아니면 언제 보겠냐는 생각에서였다. 물론 회사에서 알면 정말 날벼락 맞을 일이다. 사우나가서 몇시간 개기고 오는 부장이나 출근해서 영화보는 나나 오십보 백보인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 영화를 완전하게 봤다고는 말 못하겠다. 중간에 한번 사무실에 들어가야 할 일이 있어서 20분 정도 자리를 비웠으며 마지막에 예수가 죽는 장면 이후로는 회의에 참석하느라 아예 끝까지 못봤다. 그래도 뭐라고 쓰고 싶어서 그냥 내가 본 것에 대해서만 쓰기로 했다. 비록 완전하게 본건 아니지만 말이다.

영화의 내용은 다들 알리라고 생각한다. 예수의 일대기 중에서도 골고다 언덕에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는 얘기는 워낙에 유명하므로 종교인이건 비 종교인이건 거의 다 아는 얘기이다. 영화는 유다가 (예수의 12명의 제자중 한명) 예수를 은 30냥에 예수를 파는 것에서 부터 시작한다. 바리새파 사람들에게 예수를 넘기는 댓가로 유다는 돈을 받고 예수는 그 길로 모진 고문을 당해가며 골고다 언덕에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는다. 내가 본 영화의 끝은 예수가 십자가에 못박혀서 죽는 장면까지 였다. 그 이후에는 이 영화가 어떤 결말을 맺었는지 모른다. 알다시피 그때 나는 듣지도 말하지도 않는 회의에 참석 중이었기 때문이다.

어릴때 누구나 한번쯤은 교회라는 곳을 혹은 성당이라는 곳을 가보게 된다. 집안이 불교를 믿는다면 모르겠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크리스마스나 뭐 그럴때는 친구들을 따라 가 볼수도 있었을 것이다. 나 역시 그랬다. 동네 어귀에서 놀다가 전도를 당해 교회에 발을 들여놓게 되었다. 사실 나는 그때 아무것도 모르는 꼬마였고 마침 크리스마스를 준비하던 중이었던 교회는 아무것도 모르는 나에게 얌전하게 떠들지 않고 잘 앉아 있었다는 이유 만으로 성냥팔이 소녀에서 주인공인 성냥팔이 소녀를 시켜 주었다. 내가 교회하면 아직도 떠 오르는 것은 누더기를 입고 '성냥사세요'하고 외치던 내 모습과 성냥을 키는 법을 몰라서 몇날 며칠을 성냥을 가지고 씨름을 했던 기억이다.

그 이후 교회는 내 기억에서 사라졌다가 고등학교때 다시 내 인생에 끼여들었다. 당시 교회에 한참 열중하던 고모가 거의 반 강제로 교회로 나올것을 종용했었고 집안 사정에 의해 고모 집에서도 신세를 져야만 했던 나로써는 거절할 도리가 없었다. 고모의 강압으로 교회를 나갔던 나는 단 몇주만에 그 곳을 파악했다. 어른들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내가 속한 중고등부는 남녀 학생들의 사교장쯤으로 생각하는 애들이 대부분이었고 성가활동이나 그 외 특별활동은 모두 좋아하는 여학생이 그걸 한다던지 찍어논 남학생이 거기 있다던지 하는 이유였었다. 나는 이내 실증을 느끼고 고만 다니고 싶어졌다. 당시 나는 놀랍게도 남학생에게 관심이 없는 여학생이었고 아침잠이 많은 나에게 일요일 아침마저 일찍 일어나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것은 안식일날에는 무조건 쉬어야 한다는 주님의 말씀에도 어긋나는 아주 귀찮은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내가 잠깐이나마 교회에 정을 붙였다면 당시 액면나이 대학생이었던 나를 정말 액면 그대로 봐버린 목사님이 초등부 선생님을 하라고 했을 때였다. 처음에는 왜 고등학생인 나에게 시키지? 하고 의문을 가졌지만 뭐 주님 뜻이려니 하면서 그냥 하게 되었다. 내가 하는 일은 예배가 끝나면 아이들 한 열댓명을 인솔한 다음 성경 공부를 시키는 것이었다. 나참. 성경이라면 나도 한개도 모르는데 그걸 가르치다니. 다행스럽게도 교재가 따로 나왔고 나는 그 교재에 맞는 그림을 여동생에게 강제로 그리게 한 다음 아이들 앞에서 떠듬떠듬 가르치기 시작했다.

유다니 바르새파인이니 골고다 언덕이니 하는 단어들을 기억하는 것은 그나마 그때의 공과공부 시간 덕택이었다. 그게 아니라면 나는 저 단어들 조차도 모르는 그야말로 나일론 신자였을 것이다. 훗날 내가 고등학생임을 알게 된 목사님이 기겁을 하며 아이들을 다른 선생님 반으로 분산시키기 전 까지 약 석달 정도를 그렇게 아이들을 가르치며 지냈고 어린 나이에 누군가가 선생님이라고 불러주는게 너무너무 좋아서 나는 사탕이나 초컬렛같은걸 일일이 포장해서 나누어주는 어울리지 않는 짓까지도 하면서 나름대로 열심히였다.

나에게 누가 하나님을 믿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아니라고 대답한다. 그러나 신을 믿느냐라고 물으면 그렇다라고 대답한다. 즉 신이 있는것 같기는 한데 그 형태가 하나님인지 부처인지 알라인지 정도령인지는 잘 모르겠다는 소리다. 사실 나는 인간은 인간의 영역이. 신은 신의 영역이 있어서 그 두가지가 섞일 일도 마주쳐야 할 이유도 없으므로 각자 잘 살아 가는것이 장땡이라고 생각하는 인간이다. 따라서 내게있어 신의 존재 유무는 '왠지 있을것만 같아' 이지만 신의 형태에 대해서는 '글쎄 뭘까?' 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신이 하나인지 여럿인지에 대해서도 '잘 모르겠다'이다. 아무튼 그냥 막연히 있을것 같다는것 이외에 내가 아는건 또 믿는건 아무것도 없다.

그래서 나는 이 영화를 주님의 종이 아닌 그냥 한 사람이 한 남자의 이야기를 보는 심정으로 봤다. 성경이라는 책에 쓰여 있는 실화를 바탕으로 했으니 논픽션이고 지금 내가 쓰고 있는 2004년이라는 숫자가 그 남자의 나이라는 것 정도만 생각하며 봤다. 이 영화는 내게 종교라기 보다는 한 인간의 희생정신 내지는 고통에 관한 이야기였다.

영화의 평 중에서 너무 잔인하다는 평이 압도적으로 많았던 이 영화는 사실 생각해 보면 홀로코스트나 마루타, 그런걸 멀쩡하게 다 봤던 우리들에게 그다지 충격적인 영화가 아니다. 다만 여태까지 영화에서 예수는 오직 빛으로 표현이 되거나 배우가 등장을 해도 후광이 하도 빛이나서 얼굴이 제대로 보이지 않고 언제나 흰색 옷을 입고 있으며 머리 뒷쪽에 둥근 빛무리를 달고 다니는 것 정도로만 표현이 되었었다. 그래서 나는 막연하게 나마 너무 위대한 존재라서 영화에서 조차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것을 꺼리는구나 하는 생각만 했었다. 그런데 이 영화에 등장하는 예수는 얼굴도 또렷하게 보여줄 뿐만 아니라 우리는 그의 벗은 몸 까지도 볼 수 있다. 아마도 영화사상 이토록 예수가 자세하게 또 오래 나온적은 없었을 것이다. 예수의 뒤에는 후광도 없고 둥근 빛도 없는 그냥 한 남자로 나왔다. 다만 눈빛이 금색에 가까운 갈색이었다는 것이 예수의 유일한 특징이었다.

예수는 그냥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을 올라가 양팔과 다리에 못이 박힌채 죽은것이 아니다. 그는 온갖 모진 고문을 당하고 계속해서 채찍질을 당해서 십자가에 못이 박히기 전에 이미 절반 정도는 죽은 상태였다. 영화는 그 부분을 너무나도 리얼하게 보여준다. 마치 온몸이 얼룩무늬 의상이라도 걸친듯 심한 채찍자국과 그를 때리는 사람들. 예수는 가시로 만든 관을 쓰며 피를 흘리고 때리는 사람들에게는 맞아 쓰러지고 무거운 십자가 때문에 거의 다 죽어갈 정도로 힘들어 한다. 나는 어디서도 그렇게 생생하고도 자세한 예수의 마지막을 묘사한 영화를 보지 못했었다. 여태까지는 이미지만 주던 예수를 리얼하게 그린 이 영화는 그래서 잔인하다는 평을 얻은것 같다. 만약 이게 예수가 아닌 그냥 한 남자.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책 성서에 등장하고 세계에서 가장 많은 인간이 믿는 종교의 신이(유일신 하나님의 아들이자 인간이긴 하지만) 아니었다면 사람들은 이 영화를 잔인하다고 평가하지 않고 리얼하다고 말을 했을지도 모른다.

영화의 대부분은 예수의 수난을 보여준다. 물론 잠깐씩 과거를 회상하는 장면이나 예수 주변사람인 제자들과 그의 어머니인 마리아를 보여주기도 하지만 가장 주된 내용은 예수가 광장에서 죽을만큼 맞고 채찍질 당하고 가시관을 쓰고 무거운 십자가를 이고 역시 째찍을 맞아가며 돌언덕을 오르고 결국에는 양 손과 발에 못이 박혀서 십자가에 매달린다음 고통스럽게 죽는 것이다. 맞는 장면도 끔찍했지만 특히 손에 못을 치는 장면. 한손에 못을 치고 다른 한손에다 못을 치려고 하는데 십자가에 미리 뚫어놓은 못구멍에 예수의 손이 닿지를 않자 이미 못박힌 손을 확 잡아당기는 장면. 그리고 발에다 못을 박을때 튀기는 피들은 너무나 사실적이여서 눈을 감게 만들었다. 이미 오래전에 그리고 여러번 들었던 이야기여서 그런지 그 충격은 훨씬 더 컸다. 이건 모르는게 아니라 이미 내가 다 알고 있는 얘기였고 그 얘기의 실제 모습은 그러했던 것이다.

나는 이 영화를 보며 딱 두번 울었다. 예수의 어머니인 마리아가 피투성이인 예수를 처음으로 대면하는 장면에서 보여준 두 배우의 눈빛. 그리고 또 한번은 기억이 나질 않는 어느 부분에선가 울었다. 종교적인 이유에서가 아니라 그냥 인간적으로 너무 심하게 불쌍했기 때문이었다.

이 모든것들이 사실이었다면 나는 이걸 신의 뜻이라 보지 않는다. 이건 잔인한 인간들. 그들의 군중심리가 한 인간을 얼마나 잔인하고 고통스럽게 죽였느냐 하는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종교에 대해서 잘 모르므로 인간들이 신에 뜻에 의해 혹은 악마의 꾐에 빠져서 그랬는지 어쨎는지는 모르겠다. 그렇지만 분명 채찍을 내리치고 돌을 던지고 살아있는 사람 손에다가 말뚝만한 못을 박은것은 인간들이었다. 사람이 얼마나 잔인해 질 수 있는지를 또 한번 느끼게 해 준 영화였다.

나는 사람이 참 잔인한 존재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자신에게 피해가 돌아가지 않는게 확실시되거나 자기보다 월등하게 못해서 맘대로 해도 되는 존재가 있다면 조심스럽게 괴롭힌다. 그런다음 점점더 강도를 더해간다. 그러면 안된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이미 시작된 일이며. 어쩌면 잘못을 저지른 스스로를 벌하기 위해서 더욱 더 잔인해지는지도 모른다.(이상한 소리지만 타인에게 고통을 주고 그 고통을 바라봐야 하는 자신의 고통이 스스로에게 내리는 벌이다.) 그리고 이제는 되돌릴수 없다는 체념이 그 잔인성을 더욱 부추긴다. 상황이 이쯤되면 인간은 인간을 잘근잘근 씹어 먹을수도 있고 아예 기계에다 넣고 윙 갈아버릴 수도 있다. 그만큼 인간은 잔인한 동물이다. 생존을 위해서뿐 아니라 생존과 무관하게도 얼마든지 잔인해질 수 있는 종. 그것이 인간이다. 하물며 1:1로도 이렇게 잔인할수 있는데 그것이 1대 다수가 되는 경우는 그야말로 상상을 초월하게 되는 것이다.

누구도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되는 상황. 모두함께 돌을 던져서 내 돌이 이마를 맞췄는지 니 돌이 정강이를 맞췄는지 모르는 상황이라면 인간은 모두 돌을 들고 던질 수 있다. 그 속에는 1:1로도 돌을 던질 수 있는 사람도 있겠지만 1;1인 상황에서는 도저히 그럴수 없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그 사람도 이런 경우에는 돌을 들고 힘차게 던진다. 한번 발동이 제대로 걸린 인간의 잔인함은 무얼로도 막을수가 없다. 단 하나 있긴 있다. '다 책임져야해. 댓가를 치뤄야해'라고 말하면 그들은 조용히 하던짓을 멈추고는 자신이 한 짓을 보며 울부짖을 것이다.

특정 종교를 믿지 않는 나에게 이 영화는 신의 아들에 대한 얘기라기 보다 잔인한 인간들에게 희생당한 한 인간 남자의 얘기였다. 그는 자신이 왕이며 구름을 타고 승천할꺼다라는 소리 이외에는 모두 인간에게 이로운 얘기만 했었고 누구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았다. 그리고 마지막까지 그는 자신의 손에 못을 치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했으며 아무도 원망하거나 미워하지 않았다. 신의 아들이 아닌 한 인간으로 보자면 그는 과연 신이라고 불리울 만큼이나 참을성이 강한 의인이다. 그러나 그는 참 힘들게 죽는다. 차라리 심장마비 같은걸로 미리 죽었으면 싶을 만큼이나 모질고 길게 고통을 겪으며 죽는다. 내가 그 자리에 있었다면, 그를 살릴수 없었다면, 목숨줄을 빨리 끊어서 고통이라도 줄여주고 싶을 정도로 말이다.

영화에는 예수와 함께 십자가를 지는 사람이 나온다. 그는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이었고 병사들이 십자가를 함께 지라고 했을때 '내가 왜 그래야 하느냐'며 분개하고 결국 지게 되면서는 '저 사람(예수)이 죽어도 내 탓은 아니라고 한다.' 그러나 그 사람은 나중에는 병사들에게 저 사람을 더이상 때리지 말라고 말한다. 더 때리면 자기도 가지 않겠다고. 그리고 넘어지려는 예수를 몇번이나 일으켜 세우고 그를 안타깝게 지켜본다. 이 영화에 대한 나의 입장을 말 하라면 딱 그사람. 예수 옆에서 십자가를 함께 진. 믿지는 않지만, 처음에는 꺼림직해 했지만 인간들의 잔인함에 치를 떨며 제발 때리지 말라고 울던 그 사람이 아닌가 싶다. 이게 비 종교인인 내가 종교 영화인 패션 오브 크라이스틀 보고 느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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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달걀 2004-04-17 02: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틀 전에 다운받아서 삼분지 이정도 봤습니다. 집안이 개신교라 어릴적 부터 교회에 다녔고 5살정도였던 겨울 성탄절 특집으로 예수의 일대기를 연극으로 봤는데 십자가에 못박혀서 병사들에게 고통받는 장면에서 어찌나 눈물이 나던지...나중에 영화로도 몇편봤는데 항상 그 장면만 나오면 눈물이 나더군요. 지금은 교회와는 담을 쌓고 있어서 친척들이 모이는 자리는 교회 다니라는 성화에 잘 가질 않습니다. 우리들에게는 여러 성스런 인물들이 있었지만 예수만큼  인간이 구현해야 할 최고 지점까지 도달 하려 했고 했었던 인간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얘기가 좀 그렇지요. 하여튼 누가 그러더군요. 존재하는건 사랑이라고. 두서도 맥락도 그렇군요(음주라서)  아무튼 예수의 사랑이 모든 만물속에서 피어나길.... 우선 나부터


플라시보 2004-04-17 09: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비록 기독교는 아니지만 (그렇다해서 다른 무슨 교도 아니지만) 예수가 틀린말은 하나도 하지 않은것 같아요. 님 말씀처럼 인간이 도달 하려고 했던 최고의 지점에 간 사람이 아닌가 싶습니다. (하나님 아들이긴 하지만. 어찌되었건 부활하기 전 까지는 예수는 분명 인간이었으니까요.) 삶은 달걀님 다시 교회 나가보세요. 님 보니까 나가시면 좋을것 같은데...(하하 제가 꼭 기독교신자 같네요^^)

붉은달걀 2004-04-17 15: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얼마전 친척의 소개로 대구에 내려가 소개팅을 가장한 선을 보았는데 그 여자도 그러더군요. 교회에 다니면 좋겠다고 저는  싫다고 분명히 말하고 그 여자와는 다시는  안 만났습니다. 무척이나 이쁘고 여성스러웠지만 그리고 며칠전에 또  소개팅을 했는데 그 사람도 역시나 교회를 다녀야한더군요.  교회는 정말로 싫습니다. 친구가  그러더군요 다녀라 교회 장가가려면  아! 슬프다 내신세여  ㅎ ㅎ ㅎ .


플라시보 2004-04-17 17: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흐흐. 저는 안 믿어서 잘 모르지만 종교도 결혼생활의 갈등 요인중에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아마 미연에 그런일을 방지하고자 여자분이 교회 다니면 좋겠다고 말한것 같습니다. 그래도 종교의 자유는 국가에서도 보장해주는데 개개인도 상대방의 종교의 자유를 인정하면 좋겠습니다.

붉은달걀 2004-04-17 19: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긴 하죠. 상대방이 교회에 다니는건 머  말리진 않습니다. 의견이나 신념이 다를 수 있죠. 저도 신에 대해서는 주인장님과 비슷하지만 문제는 종교 같은데서 제도로 집단으로 해서 야기되는 겻가지들을 수용 할 수 없다는거고  부처든 예수든 그들이 무리지어서 자신들을 신격화 시켜라고 하지도 않을 뿐더러 계율이나 방침을 중시하고 알맹이를 늘 빼서 먹는 모습이 좀 그렇군요. 요사이 tv에서  침튀기며 강의 하는 김용옥씨도 기독교에서 원수를(마져도)사랑하지 않으려면 믿지 말아라 하더군요.  전 뭐 그렇습니다.


작은위로 2004-04-18 18: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음 저도 이 영화봤어요.. 전 뭐, 흔히 말하는 모태신앙자이긴 한데 교회에 더이상 정을 붙일 수가 없어서 떠난...^^;;; 그렇죠.. 오히려 세상의 다른 사람들보다 더한 사람들이 교인들이더군요.. 안그런 사람들 물론 많겠지만.. 저는 그런 것들로 인해 떠났었지만.
같이 영화를 본 친구가 그러더군요.. 왜 우느냐고? 불쌍해서인지.. 아니면 그렇게 살겠다는 건지 아니면 그렇게 살지 못하겠길래 우는건지? ... 덕분에 심난해져서...-_- 그날 하루종일 우울했다는...^^;; 아무튼 인간인 예수의 모습에서는 그가 참 대단하다 느끼긴 하죠.. 원수를 사랑하라..글세요... 전 불가능해요...^^;;;;

플라시보 2004-04-20 10: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삶은달걀님 김용옥씨 강의 종종 보시나봐요. 저도 챙겨보는건 아닌데 간혹 틀다가 나오면 유심히 보곤 합니다. 좋은 말은 많이 하더군요. (다만 아쉽다면 너무 스타성이 강하다고 해야하나 아님 인기를 의식해서 관리한다고 해야하나 아무튼 그런점이 좀 걸리더군요) 원수를 사랑하지 않으려면 믿지 말라는 말 저도 공감합니다. 가장 기본적인 가르침이자나요. 그 종교에서 말입니다.
작은위로님께는 이 영화가 더 특별했을것 같네요. 너무 심란해하지 마시구요. 마음이 시키는대로 하세요. 그리고 원수를 사랑하는거. 저도 못합니다. 미운사람 더 미워하지 않는것. 더 나아가서 제 인격이 어느정도 경지에 이른 어느날(이런 날은 오지 않습니다.흐흐) 원수를 용서하는 것 정도는 해도 원수를 사랑하긴 글쎄요. 정말 힘들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 드라마의 제목은 다소 길다. 짧게는 파란만장 미스김으로 불리우지만 실제로는 파란만장 미스김의 10억 만들기 이다. 어떤가. 제목만 들어도 감이 팍 오지 않는가? 이건 결코 심각하거나 눈물을 짜거나 진지한 드라마가 아님은 제목에서 부터 여실하게 느껴진다. 

드라마의 내용은 다소 만화틱하다. 미스김이라 불리우는 여성은 결혼을 약속한 남자에게 결혼식 당일날 버림을 받는다. 마침 이때 사진을 찍으러 온 박군은 미스김의 불쌍한 상황을 지나치지 못하고 그때부터 그 둘은 엮이게 된다.

이 두 사람에게는 공통점이 있는데 둘 다 돈을 아주 많이 벌고싶어 한다는 것이다. 미스김은 돈 때문에 자신을 배신한 애인 때문에, 박군은 죽은 형이 뭍혀있는 집을 다시 사들이기 위해. 그들은 10억을 목표로 의기투합해서 돈을 벌려고 한다. 처음에는 우유배달과 아르바이트등 다소 몸을 혹사시키고도 돈은 얼마 못 버는 상황이었으나 지금은 둘이서 꽃집을 냈다. 이제 남은것은 그들이 꽃집을 혹은 꽃집 이외의 다른 방법을 이용해서 10억을 버느냐 마느냐 하는 것이다.

이 드라마는 요즘 불고 있는 10억 열풍과 잘 맞아떨어졌다고 볼 수 있다. 이미 사람들은 책과 신문을 통해서 그래도 10억 정도는 있어야지 하는 심리가 상당히 조성되어 있다. 그래서 이 판국에 그걸 소재로한 드라마가 하나쯤 나오지 않으면 이상하고. 이상하지 않으려고 바로 본 드라마가 나온 것이다. 허나 이 드라마는 심각하지 않다. 10억을 번다는 것 자체가 상당히 심각하고도 또 어찌보면 스트레스마저 받게 할 가능성이 농후하므로 제작진들은 10억 벌기라는 소재를약간의 코메디와 버무리기로 했고 결과는 아직까지는 성공적이다.


나는 이 드라마를 보면서 지진희의 발견 이라는 소리가 절로 나왔다. 물론 그동안 입술만 뒤집어졌지 대체 왜 인기가 있을까 싶던 김현주가 제법 오바해도 밉지않은 (오바 연기의 두 파가 있다면 김정은과 김하늘인데 김현주는 김하늘에 더 가깝다. 즉 연기를 아주, 썩, 매우 잘하지는 않지만 그래서 오히려 오바했을때 살짝 귀여워 보이는 연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 연기를 선보이므로써 입술 이외에도 하는게 있구나 하는걸 알려주긴 했지만 그래도 지진희를 향한 놀라움과는 게임이 되질 않느다. 저 남자. 대체 어디 있다가 이제서야 나타났던 것일까? 대장금에서 그 역활의 필요성은 충분히 이해가 가나 대체 왜 나왔지? 하는 의문을 가지게 했던 심심한 연기력을 선보이던 지진희. 그러나 이 드라마에서 지진희는 물을 만난 물고기처럼 펄떡펄떡 뛰는 연기를 보여준다.

이런 느낌은 옥탑방 고양이에서 래원이를 봤을때와 비슷하다. 약간은 껄렁껄렁하고 시덥잖고 별 볼일 없으며 하찮지만 자꾸 보면 귀여운 구석도 보이고 또 착해 보이기도 하고 짜식이 웃으면 나오 씨익 하고 웃게되는 매력이 있다. 여기서 지진희의 표정 연기는 가히 예술이다. 그가 저토록이나 얼굴 근육을 다양하게 움직일줄 알았는데 왜 대장금에서는 이러나 저러나 똑같은 얼굴만 하고 있었을까 궁금할 지경이다.

내가 알기로 지진희는 원래 사진을 하다가 연기자로 진로를 바꾼 것으로 알고 있다. 그래서인지 극중 그가 맡은 사진사 역활을 너무도 자연스럽게 해 내고 있다. 특히 어제 보였던 웨딩사진을 찍으며 그가 날린 멘트들은 도저히 실제 경험에서 나온 에드립이라고 밖에는 생각되지 않았다. (만약 대본대로라면 작가는 사진을 좀 아는 사람이 아닐까 싶다.) 그동안 배우들이 극중 직업을 연기하면서 한없이 리얼리티가 떨어지는 모습을 보이곤 했었는데 간만에 정말 저 배우가 저 일을 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확 드는 연기를 보았다. (물론 진짜 해 봤던 일이라서 그런거겠지만 그래도 그게 어딘가? 신신애는 간호사로 한번도 나오질 않았지 않는가!)

잘 어울릴것 같지 않은 지진희와 김현주는 예상외로 잘 어울렸다. 하지만 역시 이들이 엮이는 분위기가 될 것 같아서 심히 걱정이 된다. 엮이기야 이미 엮였지만 그쪽 말고 이쪽 말이다. 제발 둘이서 어느날 삐리리한 눈빛을 주고 받으며 뽀뽀를 하려다가 그만 누가 들어와서 어색해지는 연출 따위는 하지 말아줬으면 하는 작은 바램이 있다. 그냥 그들이. 둘이서 힘을 모아 열심히 돈을 벌고 각자의 꿈을 이루고 또 각자의 사랑을 찾는 100점짜리 드라마가 되었으면 한다. 남녀가 나오는 드라마는 무조건 둘이 사랑하고 결혼시켜 엮으려고 드는 이 현실 속에서 그 두 사람 만큼은 그냥 친구로. 동성보다 더 친한 이성친구로 남았으면 좋겠다. (좋은사람 있으면 소개시켜줘의 공형진 신은경처럼 말이다.)

지금까지 총 4회를 했고 주연은 물론 조연들도 맛깔스런 연기를 잘 해주고 있다. (지진희 쫒아 다니는, 어떤 연기건 매번 똑같은 얼굴과 똑같은 말투로 소화해내는 이름모를 여자애와 어디를 건드렸는지 표정연기가 안되는 김성령 빼고) 다음회가 기대되는 드라마. 드라마는 모름지기 그래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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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시보 2004-04-15 14: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흠..TV만 켜면 공짜로 볼 수 있는 드라마를 외국에서는 빌려봐야 하다니 안타깝네요. (외국 사시는거 맞죠? 아님 어쩌지?) 돈 주고 빌려 보셔도 크게 아깝지 않을꺼에요.

panda78 2004-04-15 15: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드라마 정말 웃기더라구요.. 지진희가 웨딩사진 찍을 때 했다는 애드립이란 "머리 하나도 안 커요" 일까요? ^^;; 어찌나 웃었던지..

마태우스 2004-04-15 16: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진희가 남자에요? 음...전 사진의 여자가 지진희구나, 했는데...

플라시보 2004-04-15 16: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panda 78님 딩동댕^^ 흐흐. 정말 자연스럽지 않더이까? 저도 보는 내내 웃을 수 있는 드라마라서 참 좋았습니다. 요즘은 당췌 웃을일이라곤 없어서 말이지요.
하하. 마태우스님. 지진희는 몰라도 김현주는 아실텐데. 과거 최진실에 이은 삼성전자의 지면광고 (혼수장만 이런거) 모델이여서 모든 남자들의 사랑을 독차지 했다고 하던데... 마태우스님은 TV와 연예인은 담을 쌓고 사시나 봅니다.^^ (담을 쌓아야만 님처럼 재밌는 글을 쓰는 작가가 될 수 있는 걸까요? 아아아아~~~ 절망스럽소이다.)

panda78 2004-04-15 16: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현주가 얼굴도, 이미지도 좀 변했더라구요.. 그래서 못알아보신 거 아닐까요..아님 정말 모르시나요,마태우스님? ^^ ㅋㅋ
플라시보님, 그게 애드립이 아니라 원래 대사라면, 이 드라마 끝까지 진짜 재미있을 것 같아요! (그건 그렇고 어디서 그런 배우를 구해 왔을까요? 얼굴이 이--따시만한..)
그리구 대머리 의사랑 결혼한 회사동료가 조은숙인가요? 엄청 얄밉더라구요.. 제 친구였던 아이 중에 꼭 그런 식으로 말하는 애가 한명 있었더랬죠. ^^;;

마태우스 2004-04-15 17: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전 김현주를 한번도 TV 에서 본 적이 없습니다. 담을 일부러 쌓은 건 아니구요... 제가 좋아했던 드라마에 김현주가 나온 적이 없어서 그런 거거든요. 그리고 글쓰는 내공은 님이 더 높으시면서...부끄럽사옵니다.

sooninara 2004-04-15 17: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현주가 박경리님의 '토지'에서 서희역에 캐스팅되서..말들이 많던데...
서희는 역시 최수지가 멋있었는데..이드라마는 서희찍기전에 몸풀기로 찍는다고 하더군요..
저는 아직 안봤는데...한번 봐야겠네요..결혼식 드레스 입고 오토바이타고 가는거 지나다가 본것 같네요..앞부분이 일본드라마 '롱베케이션'하고 비슷한듯해요..

플라시보 2004-04-15 17: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흠. Panda78님 조은숙 같은 캐릭터가 실제로 제 옆에 있다면 아마 퍼 맞았을 껍니다.하하. 아무튼 속을 확 뒤집는 캐릭터더군요. 더구나 그게 아무 생각이 없어 그런다는게 더 싫더군요. 뭘 알구 일부러 그러는게 아니라 왜 머리가 단순하며 띨하여 최선을 다해 말해도 그것 밖에는 안되는 인간들 있자나요. (전 기본 이하의 무식은. 무식도 죄라고 생각하는 부류입니다.) 그리고 얼굴 이따시 만하던 그 여자는 뭐 재연 드라마 그런 곳에서 본것 같기도 하고 아무튼 별로 앞으로는 보고 싶지 않으면서도 상당히 잊혀지지 않는 인상의 소유자더군요^^
마태우스님. 하긴 김현주가 나온 드라마 저도 본적 없습니다. 그냥 그녀를 알고만 있을 뿐이죠. 그리고 글쓰는 내공... 이거 놀리시는거죠? 버럭!! 후훗^^
수니나라님. 저도 박경리 토지에 김현주가 나오는건 별로네요. 안 어울려요. 서희의 카리스마를 표현하기에는 좀 이미지가 안맞죠. 예전에 최수지는 연기는 그저 그랬지만 일단 그 역에 잘 어울렸던것 같아요. 최수지 어릴적을 안연홍이 했었나? '찢어죽이고 말려죽일테야' 그 명대사를 치던이 말입니다. 뭐 웨딩드레스 입고 오토바이 타는거야 영화에도 뻔질나게 등장하니 (천장지구만 기억납니다만 찾아보면 더 있지 않을까요? 흐흐)... 님도 한번 봐 보세요^^

panda78 2004-04-15 20: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친구"였답니다" ^^;;; 그 친구 머리도 좋고, 잘하는 사람한테는 엄청 사분사분 잘 하던데, 유독 저한테 가끔 그러더군요.. 제가 <리빙센스>를 보고 있으면, 옷입는 센스도 없는게 그런 걸 보냐 뭐 이런식... ^^;;;;
 

이 영화 만큼은 꼭 극장에서 보고 싶었었다. 하지만 그때 무슨 바쁜일이 있었는지 시기를 놓쳤고, 장사가 안되면 후닥닥 영화를 내려버리는 멀티플렉스 영화관의 특성상. 한번 어긋나 버리니 다시는 극장에서 볼 기회가 주어지질 않았었다. 그래서 나는 어제 비디오로 이 영화를 보게 되었다. 몸이 좋지를 않아서 프리다처럼 내내 침대에 누워서 봐서 그런지는 몰라도 무지하게 확 하고 와닿았다. 아마 영화의 완성도 보다는 내가 프리다 칼로를 좋아하고 또 그 전기영화 또한 무척 기다린 탓이 컸으리라고 본다.

프리다 칼로를 알게 된 것은 몇년 전의 일이었다. 마돈나가 프리다 칼로를 좋아해서 그녀의 그림중 하나(뭔지는 까먹음)를 자기의 침실에 걸어뒀다는 인터뷰를 봤을때 였을 것이다. 그 이후 나는 프리다 칼로의 전기를 읽게 되었다. 전기도 재밌었지만 그녀의 그림이 참 좋았다. (초현실주의적인 그림을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만 어렵지만 않다면 나는 그림을 그렇게 가리지 않는다.)

지중해. 남미 이쪽 나라 사람들이 보면 색을 쓰는게 장난이 아니다. 물감같은 파란 바다와 때깔고운 과일들이 산재해 있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그쪽 사람들이 그린 그림을 보면 원시적이면서도 강렬하고 원초적인 느낌이 든다.

프리다 칼로는 멕시코에서 태어난 화가이다. 동료 화가인 디에고 리베라를 만나서 스승과 제자에서 결국은 남편과 아내의 관계가 되지만 그들의 결혼 생활은 많은 예술가들이 그러하듯 그다지 순탄하지 않다. 프리다 칼로는 학창시절 버스 사고가 나면서 골반이 부서지고 다리에 11군데의 골절을 입는 대형 사고를 당하게 된다. 버스 손잡이가 질을 관통해서 골반을 뚫고 나가버렸으며 척추뼈도 크게 다쳤다. 한마디로 살기만 해도 기적인 상황이었다. 프리다는 절망하지 않고 수십차례의 수술과 그림을 통해서 다시 살아난다. 하지만 그 사고는 그녀에게 있어 단지 끔찍한 기억이 아니라 살아가면서 내내 겪어야 할 불행한 고통이었다. 여성 편력이 심했던 디에고 덕분에 마음 고생도 많이 하지만 프리다 역시 자유분방한 연애를 즐겼으며 죽기 전까지 자신을 주제로 한 많은 작품을 남겼다.

프리다의 그림이 좋은 것은 그 그림이 스스로를 치료하기 때문이다. 그림의 내용이 워낙 파격적이라 훅 하고 끼쳐오는 충격이 만만찮다는 것도 매력적인 요소이긴 하지만 무엇보다도 자신의 고통을 말로만 듣던 예술로 승화시켰기 때문에 그녀의 그림은 사실이 아닌 진실이라는 생각이 든다.

정확하게 말 하자면 사실과 진실의 경계선의 모호한 어딘가쯤에 그녀의 그림은 자리를 잡고 있다. 그렇게 많은 그림을 그렸지만 대부분 그녀 자신을 그렸던 이유는 자신의 고통을 어떻게 해서건 해소를 해야만 했기 때문이라고 본다. 그녀가 당한 사고는 인간으로써 그리고 여자로써의 삶을 엉망으로 만들어버리기 충분했으며 보통의 기혼여성이라면 가질 수 있는 아이마저 가지지 못하게 되었다. (가졌지만 유산을 했고 그 이후로 다시는 아이를 가질 수 없었다.)

그녀 자신도 말 하지만 그녀의 인생에서 가장 큰 사고는 버스 교통사고와 함께 남편인 디에고 리베라를 만난 것이다. 디에고는 처음부터 성실과는 거리가 멀다고 말했지만 그래도 프리다는 남편이 바람을 피우지 않기를 바랬을 것이다. 여러번 바람을 피우는 것을 제법 쿨하게 봐 넘겨줬던 프리다도 자신의 여동생과 남편이 바람을 피운것을 알고는 몹시 상처를 받는다.

겉으로 볼때는 이보다 더 강할수는 없다의 표상인듯 보이는 프리다는 사실 단단한 껍질 속에 다치기 쉬운 살을 가진 갑각류처럼 그 속은 한없이 약한 인간이었다. 교통사고가 그녀를 외면적으로 강하게는 해 주었지만 그녀의 천성은 그렇게 강한 사람은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그녀의 그 많은 그림들속에 그녀를 보면 항상 절규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담담하게 있는 사실을 그리고 자신이 생각하는 진실을 그려놓은것 같지만 어딘가 모르게 그림속의 프리다는 끊임없이 눈물을 흘리는 것 같다. 그 까만 눈동자가 너무 울어서 멍이 든 것 처럼 보인다.

물론 프리다 역시 조신하게 살다 간 여자는 아니었다. 그녀도 이성간의 사랑 뿐 아니라 동성간의 사랑도 즐길만큼 개방적이었지만 일 부분에 있어서는 꼭 그녀의 선택이었다기 보다 디에고에게 똑같은 아픔을 주기 위한 복수가 아니었나 싶은 대목도 간혹 보인다.

사랑은 집착이 아니다. 사랑은 그냥 서로의 곁에서 그 수많은 세월중 찰나를 서로의 곁에서 머물 수 있게 하는 이름일 뿐이다. 하지만 말이다. 저게 말은 쉽지 막상 저렇게 생각하기란 얼마나 힘든가 말이다. 나를 사랑하면서도 다른 이성을 만난다면 질투를 하지 않을래야 않을 수 없을 것이며 그 질투를 막기 위해 어디있는지 무엇을 하는지 누굴 만나는지가 궁금해 지는 것이다. 사랑이 집착으로 발전하지 않기 위해서는 부단한 노력이 필요하다. 적어도 사랑한다면서 구속하는 사람들을 다 정신이상자로 내몰기는 힘들다는 소리다. 평범한 사람도 사랑을 하면서 잘못 삐끗하면 집착으로 빠질 수 있으니 말이다. 집착과 사랑은 어쩌면 종이 한장의 차이인지도 모른다.

어찌되었건 프리다는 자신의 육체로 인해 또 연인인 디에고 리베라로 인해 참 고난한 인생을 살다가 간 여자이다. 사고로 인해 몸이 엉망이 된 것도 모자라서 아이를 잃고 나중에는 다리까지 절단해야 했으며 평생 철제 코르셋에 의지해서 살아야 했다. 그리고 그녀가 사랑했던 유일한 남자인 디에고는 심한 여성편력도 모자라서 그녀의 동생과 바람을 피우기까지 했다. 이 모든게 한 사람의 인간이 혹은 여자가 감당하기에는 죽을만큼 벅찬 일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프리다는 이 모든 일에 일일이 토를 달고 슬프다 아프다고 말 하기 보다는 그림으로 표현을 했다. 누구보다 씩씩해 보이던 그녀였지만 그녀의 그림이 울고 있다고 느끼는 이유이다.

사실 영화는 그다지 완성도가 높았다거나 하진 않다. 프리다의 그림을 이용해서 초현실적인 표현을 해냈던 몇몇 부분들. 그리고 그림이 현실로 자연스럽게 바뀌는 부분 같은것은 많은 신경을 쓴 흔적이 있긴 하지만 전체적으로 너무 산만했으며 프리다의 내면에 촛점을 맞추질 못했다고 본다. 이 역활을 두고 마돈나가 그렇게나 탐을 내었다고 하는데 셀마 헤이엑은 겉모습은 근사할만큼 프리다와 비슷했고 연기도 비교적 훌륭했지만 난 왠지 마돈나가 더 어울렸을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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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4-04-05 20: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은 참 영화도 많이 보시오!
이 몸은 원체 영화와는 담 쌓고 사는 인간이라~
로댕을 통해 까미유를 알았듯, 디에고를 통해 프리다를 알게 되었지요...그러다 언젠가부터는 주객이 전도된 듯 하야 그녀들의 삶과 예술에 관심을 갖게 되었구요...<모나리자 신드롬>을 보기 위해 오랜만에 극장엘 들렀었지요. 시간나면 이 영화도 보고 싶군요...

플라시보 2004-04-06 10: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잉...모나리자 미소 아니었던가요? 흐흐. 님이 착각하신듯.(이라고 당당히 말하기에는 뭔가 미심쩍어 정말 모나리자 신드롬이 있는건 아닐까 하고 소심해지는 저 입니다.)
영화를 뭐 그다지 많이 본다고 내세울만 하지는 못하지만 좋아는 합니다. 어릴때 자막도 못 읽어도 영화관에 대려다 놓음 울지도 않고 잘 봤다는 엄마 아빠의 증언이 있었을 만큼 아기때 부터 영화를 좋아했어요^^ 아마 진짜 세상이 아닌데 진짜 세상처럼 착각을 불러 일으키고 또 사람에 따라 각가지 해석이 가능해서 좋아하지 않나 싶습니다. 물론 영상미도 빼 놓을수 없는 즐거움이구요^^

비로그인 2004-04-06 10: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상에나~세상에나~
모나리자 스마일이거늘....^^;;; 나이가 드니 가끔씩 기억력도 가물가물한 것이....근데 뜬금없이 모나리자 신드롬은 왜 나왔을까요? ^^
전 영화만을 집중해서 잘 못 봐요. 화면을 보고 있더라도 꼭 딴 생각을 하게 되죠. 이상하죠?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이건 제목 맞습니까? -.-a
여하튼 극장에선 놓쳤지만 그 영화도 조만간 보려고 해요...
한 편의 영화에 대한 다양한 해석.....좋군요.^^

플라시보 2004-04-06 12: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 이건 제목 맞습니다. 그런데 님. 고백하건데 저도 님과 같은 증상입니다. 영화가 재미가 없는것도 아닌데 이상하게 딴생각을 하거나 집중을 하지 못하고 있는 저를 발견합니다. 그래서 전 같은 영화를 많게는 5번까지 봐도 볼때마다 새롭습니다. '어 저런게 언제 있었지?' 하면서 말입니다. 님을 만나니 반갑군요. 흐흐

明卵 2004-04-07 02: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모나리자 신드롬은 책 제목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프리다... 보고 싶군요. 그런데 왜 제가 보고 싶은 건 전부 빨간딱지 붙여서 나오는지 모르겠어요; 아니, 볼 수 있는 건 보고싶을 때 보는데 그것들은 못 봐서 그냥 기억에 남을 뿐인 건가?
 


나는 이 영화가 개봉하기 전 부터 아주 오랫동안 기다려 왔었다. 내가 좋아하는 배우인 이미숙(비주얼이 너무 끝내준다. 연기도 좋지만 나는 이미숙의 비주얼을 능가하는 배우는 전에도 지금도 앞으로도 없을꺼라 확신한다.)과 전도연 (연기는 별로지만 다른 여배우들이 지나치게 스타성에 기대는 것에 비해 전도연은 그나마 배우라는 느낌이 든다.) 이 나오고 또 내가 총애하는 이재용 감독의 작품이기 때문이었다. 이재용 감독은 정사와 순애보를 찍었었는데 나는 정사도 순애보도 전부 재밌게 봤었다.

이 영화는 영화관에서 개봉하자 마자 봤었다. 그리고 어제 아파서 골골 하면서 비디오 가계를 가서 또 다시 빌렸다. 과연 극장에서 처럼 화면이 아름답게 나올까 싶었지만 그건 극장에서 이미 실컷 감탄을 했기에 이번에는 내용을 좀 더 보고 싶었다.

영화의 내용은 이러하다. 사촌간인 조씨부인과 조원은 서로 좋아하는 사이였지만 이뤄질 수 없는 사랑이다. 자유분방한 성격의 조씨부인은 어느날 조원에게 자신을 상으로 내걸고 남편이 첩으로 들이는 소옥이라는 아이에게 임신을 시켜 줄 것을 부탁한다. 하지만 조원은 소옥이 정도는 너무 싱거우니 혼인도 치르기 전에 남편이 죽어서 9년간 수절하여 열녀문까지 하사받은 숙부인의 정조를 무너뜨리겠다고 한다. 이때부터 조원과 조씨부인의 게임은 시작된다. 조원은 숙부인에게 꾸준하게 작업을 하는 와중 소옥이에게도 작업을 하고 이 작업에 조씨부인도 적극 개입을 한다. 처음에는 장난으로 시작했으나 점점 숙부인에게 빠지고 있는 조원을 보는 조씨부인은 질투를 하게 되고 이 질투 때문에 조원은 죽게되고 숙부인도 자살을 하며 조씨 부인은 가문에서 쫒겨나게 된다.


이 영화를 보면서 난 참 서글펐다. 결국 진짜 사랑을 차지할 자격이 있는 여자는 남자들이 보기에 답답하고 조신해보이는 여자라는 것 때문이었다. 처음에는 장난이었지만 조원은 숙부인에게 빠지게 된다. 숙부인의 매력이라고는 내가 볼때 정숙한것 밖에는 없다. 극중 이미숙의 입을 통해서도 표현이 되지만 '생긴것 만큼 말도 어찌나 재미없게 하는지' 또 꾸미고 가꾸는 것에는 한없이 무관심한 여자이다. 천주학을 배우고 봉사를 실천하긴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그녀가 시대를 거스르는 안목 같은것이 있어서가 아니라 자신의 마음의 평화를 찾기 위한 것이다. 관습에 따라 평생 수절 과부로 살 각오를 하고 있으며 언제든 자신이 능욕을 당하면 찌를수 있게 은장도를 잘때도 이불맡에 두고 잔다. 그런데 조원이 그녀에게 빠지게 된다. 그것은 숙부인의 매력 때문이라기 보다는 한번 자고 난 다음에 벌어지는 일이다. 처녀였던 숙부인과 잠자리를 한 조원은 온갖 태크닉을 쓰지 않아도 감도가 좋았다고 하면서 몇번이나 절정에 올랐는지 모른다고 한다. 즉 조원은 정복했다는 (처녀성을) 것과 감도가 좋았다는 것 이 두가지로 인해 숙부인에게 사랑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그에비해 누가 보더라도 매력적인 조씨부인이 결국 조원의 사랑을 받지 못하는 것은 소위 헤픈 여자이기 때문이다. 다른 남자와 함께 정사를 벌인 후의 장면을 보이고 개방적인 성격을 가졌던 그녀. 조원은 그런 그녀를 한번 자고 싶어만 했을 뿐 사랑하지는 않았던 것이었다. 사실 조원의 숙부인을 향한 마음도 어차피 잠자리에서 벗어나지 못하는것 같지만 그것 마저도 조씨 부인에게는 허락되지 않았다. 조씨 부인은 조원과 비교를 할때 막상막하의 이성편력을 자랑하며 질투를 했다는 것 만으로 다시는 돌아올수 없는 길을 떠나게 된다.

정조라는 것은 참 우스운 것이다. 숙부인처럼 내가 너와 사귀니 섹스 또한 너하고만 하겠다. 이것이 정조인가? 아니면 다른 남자와 잘 망정 마음만은 네게 있었다는 조씨부인의 그것이 정조인가! 정조는 마음과 육체가 하나가 될 수도 있고 그 둘 중 하나는 없을수도 있는 것이다. 만약 나에게 정조의 깊음에 순위를 매기라고 한다면 마음과 육이 하나가 된 정조에 물론 가장 많은 점수를 주겠지만 육과 정신중 하나를 고르라면 나는 정신을 고르겠다.


하지만 그토록 자유로운 성격을 가졌고 섹스에 관해서도 열심히 즐겼던, 그나마 좀 깨어있던 조원조차 여자가 후자인 정신을 택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정신을 택하게 되면 조씨부인처럼 다른 남자와도 섹스를 할 수 있으며 사랑하는 사람에 대해 질투도 할 수 있는. 예전에 무슨 모바일 서비스처럼 사랑은 움직이는 거야를 외칠 수 있어야 하는데 조원은 그것보다는 육체적인 정조를 지키느라 자신에게 정복당한 흔적으로 피를 한바가지씩 흘리고 또 질투 같은건 감히 생각도 못하며 죽을때 까지 자신하고만 몸을 섞을 안전한 숙부인을 택했다. 나가서야 개차반처럼 놀더라도 내 마누라 내 여자 만큼은 나와는 달라야 하는 남자들의 심리에 영화는 충실하게 따라갔다.

하지만 결국은 조씨부인만이 살아남았다. 조원은 조씨부인의 질투에 불을 당기고 그 질투대로 가만 있지 않고 설치다가 결국 죽음을 당했고 숙부인은 역시나 정조를 지키느라 자신의 처녀성을 가져간 남자가 죽어버리자 미련없이 얼음강에 몸을 던진다. 하지만 조씨부인은 집안에서 자객을 보내 쥐도새도 모르게 죽여버리려고 했으나 벙어리 하인을 데리고 배를 탄다. 언젠가 조원이 꺾어다 주었던 꽃을 비단천에 고이 싸고 말이다. 이로써. 내 생각이지만 영화는 조씨 부인의 손을 들어 주었다. 사랑도 섹스도 전부 살아있어야 가능한 것이지 죽어서 사랑이고 섹스고 뭐고간에 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어떻게 보면 조원과 숙부인은 닮아있다. 남자는 한량이어도 되는 시기였기에 잘생기고 훤칠한 조원은 한량으로서의 기질을 마음껏 발휘하며 살았으며 여자는 정조를 지키고 열녀문을 하사받고 툭하면 은장도를 꺼내 부들부들 떠는것이 최선책이였던 시대라 숙부인은 27년동안 남자를 한번도 품어보지 않고 정조를 지키며 살았던 것이다. 그들은 전부 시대에 딱 맞춰서 산 사람들이다. 그 반대였다면 그 반대로 살았을 것이고 또 시대상이 달랐다면 다른대로. 허나 역시 시대와 관습을 거스르지 않은 정석대로 살았을 것이다.

조씨 부인은 아무리 봐도 매력적이다. 그 성격과 그 외모. 모든것이 그녀가 매력적이라는 것을 충분하게 나타내어주고도 남는다. 하지만 말이다. 그녀는 시대가 이렇게나 지난 지금이라 하더라도 결코 사랑하는 남자를 차지하지 못할 것이다. 영화가 아닌 현실에서는 거의 100%에 가깝다. 사랑이 아닌 쾌락으로 섹스를 즐길 수 있다고 드러내놓고 말 할 수 있는 여자가 사랑을 할 수 있다고 나는 생각하지 않는다. 적어도 아직은 그런 시대가 아닌것 같다.

걸레 소리를 듣는 여자가 사랑하는 남자를 만나 사랑할수 있게 될 확률은 너무도 희박하다. 하지만 농부 소리를 듣는 남자들은 그래도 짝을 잘만 만난다. 오히려 젊었을때 놀던 놈들이 막상 결혼하면 가정에 충실하다더라 라는 개소리까지 들리는 판국이다.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여자는 걸레이고 남자는 농부라서? 그래서 다른 것인가? 어차피 똑같은 인간인데 왜 누구에게는 씻을 수 없는 오명이 되는 것이고 누구에게는 그래도 말이야 막상 결혼하고 나면 어쩌고 하면서 긍정적인 반응을 불러 일으키는 것인가.

내가 만약 자유롭게 섹스를 하는 여자라 하더라도 나는 절대 그것을 드러내지 않을 것이다. 적어도 지금 이 시대를 살면서 그걸 드러내는 것은 자살행위나 다름없다. 결혼이 문제가 아니라 사랑하는 남자를 만나 사랑할 자격조차 주어지지 않을 확률이 너무 높다. 그래서 나는 아마 나 혼자만 그렇게 살아갈 뿐 조씨부인처럼 부러 보여주려 하거나 드러내어놓고 그러지는 못할 것이다. 숨는것은 비겁하지만 드러내서 총칼을 맞는 것 보다는 낫다.

이 영화는 서글프지만 결론은 마음에 든다. 조씨 부인이 끝까지 자기 사랑을 간직하는 것. 그리고 살아남는 것. 그것만으로도 희망적이다. 내 바램 같아서는 조원같은 쫌생이놈이 아닌 섹스도 잘하고 거기다 생각도 깨어있는 남자를 만나서 잘 되어서는 좋겠지만 그것까지 바란다면 아직은. 적어도 지금은 너무 욕심이 과한 것이다. 아. 그리고 마지막 한가지. 조씨 부인은 비록 떠났지만 제2의 자신을 만들어 놓았다. 마치 조씨부인인양 화려하게 꾸미고 앉아있는 소옥이 엔딩 크레딧과 함께 보인다. 그녀는 조씨부인보다 훨씬 더 똑똑하게 즐기며, 사랑도 하게 될 것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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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INY 2004-04-05 15: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비주얼합니다. 왜 이 영화를 못 봤을까!

플라시보 2004-04-05 15: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직 못 보셨다면 비디오로라도 꼭 한번 보세요. 물론 DVD로 보실 수 있다면 더욱 좋을꺼구요. 후회는 안하실듯 합니다.

플라시보 2004-04-05 16: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이지 대단히 아름다운 비주얼을 보여준 영화였습니다. 위에서는 다 설명하지 못했지만 의상이며 소품이며 배경이며 모두 하나같이 '아니 우리의 영상미학이 이토록이나 발전을 하다니'하면서 감탄하게 만들었습니다. 영화에서의 우리나라의 옛 이미지 하면 서편제같이 다소 칙칙하고 여백만 끝내주게 많은 것만 떠 올랐었는데 이 영화로 인해 바뀌어서 흐뭇합니다. 부디 해외에서 많이 상영이 되어 내용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어차피 리메이크 작품이니) 영상미 만이라도 좀 알려졌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제발 백의민족 이라는 모노톤을 벗고 색색가지 화려한 컬러의 이미지를 가지길 바랍니다.

마냐 2004-04-05 19: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새벽별을 보며님과 동감. 정말 이미숙의 카리스마, 그녀를 둘러싼 그 모든 아름다움, 표정부터 눈빛, 옷과 장신구, 집까지...화려하다는 표현이 부족한 그 극치미..그것만으로 너무 황홀했어요....칙칙한 열녀인 전도연이 얼마나 빛 바래보이던지...쩝.(실제 제 '드레스 코드!'는 전도연에게 가깝다는 점이 슬프군요...) ...게다가 ㅎㅎㅎ, 배용준이 최근 장동건이 그랬듯 "잘생긴게 연기도 잘하네" 라는 한탄까지 자아냈으니...

플라시보 2004-04-06 10: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흐흐. 이미숙씨의 팬이 많군요. 저도 이미숙을 줄곧 좋아했지만 저 영화를 보고는 정말 압도당해버렸습니다. 그 고혹적인 자태와 고급스런 섹시함과 지적인 화려함 (이게 전부 말이 되긴 되는건가?) 한마디로 거대한 블랙홀 같이 저를 확 빨아들였습니다. 천상 배우란 것이 저런 것이구나 저렇게 뒤에 아우라가 이글이글 거리는 것이구나 싶었습니다. 남자 배우와는 또 다른 독특한 여배우의 아우라. 간만에 느낀것 같습니다.

2004-04-09 01:18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