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고르는 방법은 여러가지 일 것이다. 어떤 배우가 나오는지, 장르가 무엇인지, 얼마나 흥행을 하고 있는지 혹은 할 것인지, 그리고 마지막으로 감독이 누구인지도 영화를 고르게 하는 한 부분이다.
나는 영화를 고를때 한 가지를 보지는 않지만 감독이나 배우의 힘을 믿는 경우가 많다. 그 중에서도 감독을 믿는 경우가 더 많은데 팀 버튼이랄지 데이비드 핀처, 데이비드 린치, 코엔형제, 워쇼스키 형제 등의 감독은 신작이 나왔다 하면 장르가 뭐건 어떤 배우가 나오건 간에 선택을 하게 된다.
한국에서도 그런 감독을 꼽으라면 나는 홍상수와 김기덕을 꼽겠다. 물론 이 두 감독은 앞에서 열거한 것들과는 다소 의미가 다르다. 앞에 열거한 감독들은 내가 무조건 애정을 바치는 감독들이고 이 두 감독은 그냥 왠지 봐 줘야 할것만 같은. 의무감이라고 하기에는 좀 뭣하지만. 일단은 영화관에 가서 표를 끊게 만든다. 사실 두 감독 다 내가 추구하는 재미있는 영화를 만드는 감독들은 아니다. 그들은 다소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고 파격적이며 보고 나서 생각이 많아지도록 한다. 그럼에도 나는 이 두 감독을 끝내 외면하지 못한다.
홍상수 감독이 신작 영화를 찍었다고 했을때. 나는 또 봐줘야 하는구나 라는 생각을 했다. 그나마 전작 생활의 발견부터 조금씩 내가 소화하기 쉬워지고 있기 때문에 적어도 강원도의 힘처럼 어렵지는 않겠지 하는 얄팍한 믿음마저 가지면서 말이다.
홍상수가 선택한 배우는 유지태와 김태우 그리고 성현아다. 칸의 레드카펫을 밟을지도 모른다는 추측이 돌고 있는 가운데 나는 어제 이 영화를 봤다.
남자A와 남자B는 오랜만에 만나서 학창시절을 얘기한다. 그러다 그들이 함께 공유했던 여자 C를 떠 올린다. 그들은 낮술을 먹은김에 C를 찾아 나선다. 그리고 그들은 또 다시 C를 함께 공유한다. 이게 영화 내용의 전부이다. 나는 아무리 노력해도 이 이상 줄거리를 말할 자신이 없다. (이거보다 훨씬 더 길게 이 영화를 소개해 놓은 분들이 참으로 존경스러울 지경이다.)
홍상수 감독의 영화는 일상의 소소함을 징그럽도록 디테일하게 그려낸다. 전작들도 그랬고 이 영화 역시 마찬가지이다. 욕지거리가 나올 만큼이나 현실과 닮았다. 아니 닮았다는 표현도 무색할 만큼. 내 친구는 홍상수 영화를 다큐멘타리라고 말했는데 어쩌면 그말이 꼭 맞아 떨어지는지도 모른다.
나는 이 서재에서 일상으로의 초대라는 카테고리를 가지고 있다. 거기에는 말 그대로 내 일상들이 적혀있다. 물론 일어난 일을 그대로 적긴 하지만 거기다가 어느정도는 손을 댄다는 고백을 해야겠다. 있는 일들만 그대로 올려 놓으면 절대로 재미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약간의 가공을 거친 일상은 꽤나 재미있고 때로는 스펙타클 하기까지 하다. 내 짧은 생각인지 모르겠지만 만약 내가 있는 일상을 조금도 틀리거나 가공하지 않고 날것을 그대로 올린다면 아마도 지금처럼 사람들이 읽어줄지 의문이다. 일상이 되었건 뭐가 되었건 간에 재미가 없는걸 사람들이 견딜리 만무하기 때문이다.
홍상수 감독의 영화를 보면서 언제나 느끼는 것은 마치 전혀 건드리지 않은 진짜 일상이 스크린 속에서 펼쳐지고 있다는 착각을 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분명 거기에는 배우도 있고 카메라도 돌아가고 있으며 감독과 스텝들이 화면 바깥에 존재하고 있겠지만 그런 사실조차 망각하게 만들만큼. 징글징글하게 사실적이다. 어떨때는 이럴바에야 영화 뭐하러 보나 싶을 정도로 저건 일상이고 우리 주변에 충분하게 있을 만한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또 하나. 홍상수가 정말 영화에 나오는 캐릭터들에게 애정이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그가 그리는 인간군상은 하나같이 비열하고 치졸하며 뻔뻔스럽다. 심지어 그 뻔뻔함에 관객들이 치를 떨 지경이다. 그게 하나의 사건이 아니고 영화 내내 인물들이 너나 할것 없이 수시로 하기 때문에 홍상수의 영화를 가만 보고 있노라면 사는건 참 치사스러운 일이며 인간은 너무 간사하고 가벼운 존재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홍상수의 영화가 작품으로 인정받을 만 한지도 모른다. 그러니 칸의 경쟁부분에 초청이 되었겠지. 그렇지만 매번 똑같은식인 (김기덕도 마찬가지지만) 영화들은 약간씩 질린다. 홍상수의 모든 영화들은 한데 다 같이 버무려놔도 어색하지 않을만큼 소소한 일들로만 가득하다. 영화속 인물들은 무조건 아름다우며 현실적이지 않아야 한다는 것은 아니지만 그의 영화를 보고 있노라면 저런 인간들은 살면서조차 만나지 말았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
내가 보기엔 오히려 엽기코드를 가지고 있는 김기덕 감독이 차라리 캐릭터들에 대한 애정도 뚜렷하고 전달하려는 메세지도 확실해서 훨씬 보기가 편하다. 물론 그의 영화에는 피가 난자하고 가끔은 구역질이 올라올 정도이긴 하지만 그래도 홍상수의 영화처럼 뜬금없이 시작해서 뜬금없이 끝나지는 않는다. 홍상수의 영화는 첫 영화인 돼지가 우물에 빠진날을 빼고는 피도 칼도 나오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홍상수의 영화를 보고 나면 화면가득 피칠갑을 한 영화를 봤을때 보다 더 심기가 불편하다. 어쩌면 현실인지도 모르지만 그걸 마치 거울보듯 스크린 속에서 발견하고 싶지는 않은 내 마음과 영화의 충돌에서 나오는 것일수도 있다.
홍상수의 영화는 눈치없이 구는 친구와 함께 가는 모임같다. 친구의 눈치없는 행동에 부끄럽지만 내 친구라서 끝까지 지켜보긴 해야겠고. 그만 하라고 아무리 눈치를 준다고 해도 결코 알아차리지 못해서 한대 쥐어박고 싶기도 하고 차라리 눈을 확 감고 이 모든게 꿈이길 바라는 그런 기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