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겨울 내 친구중 한명이 이 영화를 보자고 아주 질기게 졸라댔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나는 이 영화를 볼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한번 놓친 기회는 좀처럼 다시 오지 않았고 나는 이제서야 이 영화를 비디오로 빌려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생각과는 아주 다른 영화구나 하는 느낌을 받았다. 사실 나는 이 영화가 그저 그렇고 그런 로맨틱 코메디쯤 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기 때문이었다.

이 영화는 꼭 크리스마스 선물처럼 여러개의 사랑 얘기가 등장한다. 그 사랑은 남녀간이기도 하고 부모와 자식간의 사랑이기도 하다. 영화는 꼭 이렇게 말 하는 것 같다. '어떤 사랑이건 간에, 세상에 아름답지 않은 사랑은 없어'라고 말이다.

영화의 첫 시작은 공항에서 포옹을 하고 눈물을 흘리는 사람들을 보여준다. 그리고 나레이션이 깔린다. 자세하게 기억은 나지 않지만 마지막 대목이 인상적이다. 9.11테러때 사람들은 극한 상황에서 전화를 걸어서 모두 사랑의 메세지를 남기고 죽었다고, 세상이 험악하다고 하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은것 같다는 뭐 대충 그런 내용이었다.

여러개의 사랑 중에서 내가 가장 인상깊었던 사랑은 친구의 신부를 사랑하는 한 남자의 사랑얘기였다. 그는 자신의 감정을 숨기기 위해 노력했지만 친구의 아내에게 그만 들켜버리고 만다. 그리고 이왕 들켜버린 그 남자는 신부에게 자신의 마음을 고백한다. 부담을 주거나 어떻게 사랑을 이뤄보기 위해서 고백을 하는것이 아니라 그냥 고백을 하는 것이다. 자기의 마음을 이렇게라도 알리지 않으면 평생 후회할 것 같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행스럽게도 친구의 신부는 크게 혼란을 겪지는 않는다. 다만 이뤄질 수 없는 사랑을 하는 그를 가엽게 여길 뿐이다. 그래 딱 여기까지가 영화에서 보고 싶은 사랑이다. 만약 그와 그녀가 사랑이라도 하게 되어버린다면. 이건 내가 영화에서 보고싶은 사랑이 아닌 것이다.

영화에 등장하는 사랑은 전부 일정한 선을 지킨다. 어느 누구도 아주 고통스럽게 사랑하지도 않고 추잡하게 사랑을 하지도 않는다. 모름지기 영화 안에서의 사랑은 이래야 한다는 듯 말이다. 그러나 싫지는 않다. 어차피 영화는 영화일 뿐이니까 딱 영화같은 사랑을 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모든 사랑이 홍상수 감독의 영화처럼 처절할만큼 리얼리티를 추구할 필요는 없는 거니까 말이다. 어린시절 읽은 동화책에서 공주와 왕자님이 만나면 언제나 행복하게 살았듯. 이 영화도 마찬가지이다. 그 이후에 왕자와 공주가 서로 바람도 피고 지지고 볶기도 하고 자식 문제로 머리를 싸매는 애기 같은건 등장하지 않는다. 왜냐면 그건 우리가 원하는 사랑 얘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우린 사랑이 생활이기를 바라지 않는다. 사랑은 뭔가 특별하고도 일상이 범접할 수 없는 고귀한 무언가이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아니라는 걸 충분하게 알지만. 또 그렇게 착각하는 이도 아무도 없지만 적어도 책이나 영화에서 만큼은 그 환상 그대로를 유지시켜 주길 바라는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표지처럼 크리스마스날 본다면 딱 어울릴것 같은 사랑 얘기다. 하지만 외로운 사람들은 보지 않기를 바란다. 그러면 너무 슬퍼질수도 있는 영화이다. 아무것도 아닌 장면이지만 외로운 사람의 말랑한 감정에는 바늘보다 더하게 박힐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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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알라딘 마이 페이퍼에 처음으로 MOVIE & TV라는 카테고리를 만들고 나서 쓴 영화평이 킬빌1이었다. 그래서 이 영화평을 쓰는데 감회가 새로우면서도 한편 칭찬 일색이었던 킬빌1과 조금은 다른 소리를 해야할것 같아서 마음이 찝찝하다.

딱 잘라서 얘기해 보자. 나는 만약 내 주변 사람이 '킬빌2 볼만해?' 라고 말하면 '아니'라고 말 할것이다. 물론 이것은 킬빌2에 관한 내 주관적인 생각이지만, 극장을 나설때 웅성거리는 관객들의 반응으로 봐서 내 생각이 그들과 크게 다르지는 않더라는 부수적인 설명쯤은 붙일 수 있다. 또, 만약에 누군가가 킬빌1도 킬빌2도 보지 않았다고 말하면 나는 킬빌1을 DVD로 보고 킬빌2는 비디오로 보라고 하겠다. 킬빌1은 DVD로 봐야할 이유가 충분하지만 킬빌2는 굳이 DVD로 봐야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 즉 내가 킬빌1에 매료되었던 액션도 피튀김도 없다는 것이다.

킬빌2는 킬빌1을 설명하는 가이드 북 같은 역활을 한다. 원래 빌과 브라이드 (우마서먼)은 어떤 관계였는지, 그리고 애꾸눈을 하고 간호사복으로 갈아입은 다음 브라이드를 죽이려고 했던 여자는 왜 애꾸눈이 되었는지. 그리고 결정적으로 브라이드의 결혼식에 왜 빌은 자신의 부하를 풀어서 쑥대밭으로 만들었는지에 관한 설명이 등장한다. 아. 그리고 1편에서 임신중에 총상을 입고 코마상태에 빠졌던 우마서먼의 딸의 존재도 확인이 된다.

내가 킬빌2에 바랬던 것은 딱 하나이다. 전편보다 더 신나는 액션. 아니 전편만큼만 되어도 나는 심히 만족을 하며 돌아섰을 것이다. 그러나 킬빌2에서 제대로 된 액션은 우마서먼과 애꾸눈 여자가 트레일러에서 싸우는 장면 하나 뿐이었다. 전편에서 우마서먼이 루시루와 술집에서 대결하면서 보여줬던 88인과의 싸움에 비하면 그야말로 조족지혈이다.

킬빌을 보면서 내가 정말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은 쿠엔틴 타란티노가 어째서 여전사에게 모성애를 접목시켰느냐 하는 것이다. 나는 사실 여성에게 모성애를 강조하는 분위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절로 생기는 모성애가 아닌 사회적 분위기에 의해 어거지로 씌여지는 듯한 모성애는 모든 육아를 여성에게 떠 맡기려는 음모로 밖에 보여지지 않는다. 여자의 역활은 오직 좋은 엄마, 헌신적인 엄마만으로 한정되어 있고 남자들은 육아에서 벗어나서 사회생활을 좀 더 편하게 한다. (여성의 경우 아이를 낳고 사회생활을 하더라도 늘 그걸 미안해 해야 한다. 하지만 나는 한번도 사회생활을 하는 아빠가 아이에게 미안해 하는걸 보지 못했다. 똑같은 돈을 벌면서도 여자는 미안해 해야하고 남자는 가장의 의무를 다 하는 것이다.) 브라이드는 아주 멋진 여 전사였다가 2편에서는 엄마가 되기로 결심을 한다. 칼이고 뭐고 다 접어두고 좋은 엄마의 역활에 안주하려고 한다. 칼을 들고 싸울지언정, 킬러였을지언정 일단 아이만 하나 낳기만 하면 여성은 여성의 본능이었던 부드러움 다정함 친절함 등을 마치 슈퍼마켓에서 구입해다가 몸속에 집어넣은 듯 자연스럽게 변하게 된다는 것을 나는 믿기 힘들다.

몰론 모성애라는 것은 엄연히 존재하고, 만약 모성애가 없다면 동물의 새끼중에 가장 연약한 인간은 아마 어른으로 성장하기도 훨씬 전에 죽어버릴 것이다. 그런 관점으로 보더라도 인간에게 있어 모성본능은 중요한 것이다. 하지만 왜 그게 여자에게만 한정되어 있는지 모르겠다. 남자가 나가서 사냥을 하고 여자가 먹이감을 지키는 선사시대도 아닌 지금은 좀 달라져야 하는거 아닌가 싶다. 여자들도 자기의 역활을 남자 못지않게 해내고 있는 이 시점에서 자꾸 여자의 모성애를 자극해서 '그래 일이고 사회적 지위고 다 때려치우고 내아이 하나 잘 기르는 좋은 엄마가 되자' 하고 여자를 한 인간이 아닌 엄마와 아내에서 그 역활을 한정지으려고 하는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물론 이 영화에도 어김없이 쿠엔틴 타란티노의 각종 오마주가 등장해서 쏠쏠한 재미를 주긴 한다. 예를 들면 애꾸눈 여자인 데릴 한나가 입은 의상은 펄프픽션에서 우마 서먼이 입었던 옷과 똑 같으며 메트릭스에 나오는 네오의 방 번호와 빌의 방 번호는 똑같다. (원화평은 메트릭스와 킬빌에서 모두 무술감독을 맡았다.) 또 우마서먼과 데릴한나가 싸우는 트레일러에는 데릴 한나가 출연했던 블레이드 러너의 포스터가 걸려 있으며 브라이드가 생매장될때 나오는 음악은 황야의 무법자에서 나왔던 음악이며 빌은 브라이드에게 '네추럴 본 킬러'(쿠엔틴 타란티노가 각본을 썼던 영화다)라고 말한다. 하지만 이것 만으로 전편의 화려한 액션의 계보를 이어주길 기대했던 관객을 만족시키기에는 역부족인것 같다. 액션은 약했으며 지나치게 전편의 설명이 주를 이룬다. 거기다 우마서먼을 죽이려던 킬러와 (동양계같아 보인다.) 우마서먼은 모두 눈물겨운 모성애의 소유자들이다.

칼을 휘둘러서 베고 찌르고 짜르고 했던 전편의 주인공들은 권법으로 혈막기, 눈알뽑기, 뱀에 물리기 등 다소 약한 이유로 죽어가고 1편에도 내가 지적했던 것 처럼 지나치게 이미지만으로 접근했던 일본인의 이미지가 이번에는 중국인의 이미지로 이어진다. (우마서먼의 스승인 쿵푸의 고수 타이메이의 독특하고 우스꽝스런 행위 하나는 관객들이 실소를 금할 수 없을때 까지 반복된다.)전편에서 그렇게나 빌을 죽이기 위해 온갖 화려한 액션을 구사하던 우마서먼이 막상 빌과의 대결시에는 초간단한 (뭐 배우긴 어려웠다고 나온다.) 권법 하나로 후다닥 빌을 죽인다. 그토록이나 유명한 한조의 검(전편에서 빌의 스승인 일본인이 만들어준 검.) 을 제대로 한번 휘두르지도 않고 말이다.

결과적으로 실망스런 영화였다. 이 영화를 보고 나오면서 친구의 반응이 끝내줬다.

'눈알이라도 안뽑았으면 어쩔 뻔 했어'

괜히 봤다는 친구의 말에 나는 이렇게 말했다. 어차피 킬빌1을 재밌게 봤던 우리는 영화가 이랬건 저랬건 볼 수밖에 없는 영화였다고 말이다. 어쩌면 킬빌1을 봤던 관객들에게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 될 영화가 킬빌2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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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우주 2004-05-14 11: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모성애를 강요하는 사회란 생각 많이 했었는데. 저도.

플라시보 2004-05-14 11: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모성애야 인간 본능이고 또 가장 필요하긴 하지만 그게 꼭 여성에게만 강요된다는 것이 좀 그렇죠?

연우주 2004-05-14 12: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게 말입니다... 여성에게만 강요되는... 그래서 때로 부인하고 싶어지기도 했었습니다.

마태우스 2004-05-14 14: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니 우주님, 여긴 웬일이십니까? 저희 서재엔 통 안오시고....
플라시보님/이거 볼 건데요, 보고나서 읽을께요!!!
 

이미 이 영화를 본 알라딘의 여러 님들은 입에 침이 마르게 칭찬했던 영화. 마침 공짜표가 생겼던 나는 일주일에 영화 1편이라는 원칙을 깨고 (원래는 목요일날 킬빌2를 보는것이 이번주의 계획이었다.) 아라한 장풍 대작전을 보러 갔다.

이 영화가 재미 없을꺼라며 끝까지 버팅기는 친구를 데려가며 나 역시 약간은 불안한 마음을 감추기 어려웠으나 영화는 예상외로 무지하게 재밌었다. 물론 다른 사람들이 재밌다고 입을 모았으나 평소 의심많은 성격인 나는 내 눈으로 직접 보기전 까지는 그저 그렇겠구나 했었다.

영화의 내용은 간단하다. 어리버리한 순경인 류승범이 어느날 깡패들에게 죽실나게 터지고 나서 무술을 배우려고 한다. 그래서 류승범은 무술을 배우게 되고 알고보니 이 아해가 무술에 엄청나게 소질이 있었더라 뭐 그런 내용이다. 물론 중간중간 다른 심각한 얘기들도 좀 등장하지만 너무 빠삭하게 알면 재미없으니 이쯤에서 관두도록 하자.(사실 스토리는 좀 빈약해서 너무 많은 말은 하지 않는게 좋을듯 싶다.)

이 영화를 보면서 나는 한권의 만화책을 떠 올렸다. [드.래.곤.볼.] 나와 내 동생이 한동안 이 만화에 미쳐서 정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했을 만큼 우리의 마음을 송두리째 앗아간 만화. 일본만화라고 어른들은 걱정했었지만 나는 그 만화를 보면서 힘. 즉 파워의 위력과 매력을 동시에 느꼈었다. 가장 원초적이고도 기본적인 인간 육체에서 나오는 힘이 그렇게도 멋지다니. 난 주인공들이 '구오오오오' 할때마다 내 입으로도 직접 그 부분을 '구오오오~~' 하고 소리를 내며 읽었었다.

마치 그 만화 드레곤볼을 화면에 옮겨놓은듯한 파워플함이 이 영화의 가장 큰 매력이었다. 비록 류승범은 무술동작을 소화하기에는 별로 멋지지 않은 몸을 가지고 있지만 (그 점에 있어서는 윤소이가 한수 위였다. 그 긴 팔다리로 휘저으니 어찌나 아름답던지) 그래도 힘은 느껴졌다. 정두홍 무술 감독이야 말 할것도 없었고 말이다. 아무튼지간에 나는 이 영화에 대해 그저 멋져 멋져라는 바보스런 감탄사 이외에는 달리 표현 할 길이 없다.

사실 스토리가 약간 딸리기는 하지만 그건 문제가 되질 않는다. 또 영화에는 류승완 감독의 오마주들을 볼 수 있는데 메트릭스와 소림축구 그리고 앞서 말한 드레곤볼 등등. 익히 알고 있는 장면들이 등장해서 반갑기도 했었다.

워낙에 아무 생각 없이 영화를 보러 가서인지 모르겠지만 나는 모처럼 영화를 보고 스트레스를 확 날리고 오는 카타르시스를 경험했다. 어찌나 속이 다 시원하던지..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말하듯 류승범의 연기는 최고였다. 어리버리한 연기를 류승범보다 더 완벽하게 할 수 있는 인간이 그 누구겠는가. 정우성이 똥깨에서 어리버리하려고 했으나 그 잘생긴 얼굴은 가릴수가 없었다면 류승범은 완벽하게 어리버리하다. (그 얼굴을 보라. 솔찍히 지 형이 아니고선 걔가 어디 배우할 얼굴인가. 류승범은 연기를 못하면 절대로 살아남을 수 없는 숙명을 이미 지니고 태어난거나 다름없다. 그래서 연길 잘 해야만 하고 잘 할수밖에 없는 것이다.) 밥을 먹는 장면이랄지 마지막 대결에서 스승인 안성기가 어디있는지 찾는 장면에서는 어리함의 끝을 보여준다. 대사도 아주 자연스럽게 치며 (공효진이나 류승범이 예전에 사귀어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둘은 대사치는 느낌이 약간 비슷하다. ) 가끔 귀여운 모습까지 보너스로 보여준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나는 제일 많이 웃은것 같다. (물론 류승범이 스승인 안성기를 찾을때 날린 대사에도 많이 웃었다.) 카메라가 뒤로 쌰악 빠지면서 류승범과 윤소이가 계속 싸우면서 장풍을 날리는데 진짜 웃겼다. 아무튼지간에 이 영화는 백마디 설명보다 일단 한번 봐야한다. 단점이 분명하게 있는 영화이긴 하지만 장점 또한 분명한 영화이다. 개인적으로는 류승완이 잠깐의 외도에서 다시 자신만의 분위기를 찾은것 같아서 참 다행스럽다. 아. 끝으로 나는 감독이 개인적으로 친분이 있는 사람을 영화 주인공으로 내세우는 것을 좀 싫어하는데 (컷스로트 아일랜드의 지나 데이비스처럼 지 마누라를 무조건 주인공으로 하는 감독들은 정말이지 꼴불견이며 그 계보를 믿었던 리치가이가 잇고 있어 더더욱 실망이다.) 류승완은 언제까지나 류승범과 작업을 했으면 좋겠다. 비록 워쇼스키나 코엔 형제처럼 감독을 같이 하진 않더라도 승완 승범 브라더스가 함께하는 영화는 꽤 믿음이 가고 결과물도 만족스러우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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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우스 2004-05-12 12: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전 류승범을 보면서 저보다 안생겨도 배우 할 수 있구나 싶었어요. 이 말을 다른 사람한테 했더니 아무도 동의하지 않더군요. 플라시보님의 유쾌한 영화평 잘 봤습니다. 역시 님은 영화의 대가며 페이퍼의 고수이자 문학리뷰의 왕입니다.

플라시보 2004-05-12 12: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 곰도리님 저는 지금의 류승범이 별로라고 한게 아니구요. 그냥 요즘 워낙 잘생긴 배우들이 많으니까 그 배우들에 비해서 외모가 조금은 약한게 아닌가 하고 한 말이었습니다. 지금이야 저도 류승범이 충분히 매력적이라고 보고 있으나 그건 그의 연기가 더해져서 그런 것이지요. 만약 류승범이 형의 도움을 받지 않았다면 영화 오디션같은걸 보는 과정에서 외모로 인해 불이익을 당했을 것이고 연기력으로 평가받기 위해 더 어려운 길을 걷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에서 한 말이었습니다.^^
흠. 마태우스님. 자꾸 그렇게 택도 아니게 비행기 태우시면 저 삐집니다. (아. 그리고 님은 분명 류승범보다는 잘 생긴거로군요. 하하하^^ 맨날 하위 5%라고 우기시더만 아닌가벼~)

책선생 2004-05-14 16: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으로 보고 싶은 영화인데.. 이것도 역시나 DVD나 나오면.. 아님.. 영화파일로 다운 받아 보던지.. 영화 소개글 잘 보고 가요~
 


이 영화의 배경은 1960년대 부터 1979년까지 이다. 내가 76년에 태어났으니 훨씬 이전의 얘기이자 76년부터는 또 나와 무관하지 않은 시대적 사건을 다루고 있는 영화인 것이다. (79년 박대통령이 돌아가셨을때를 나는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당시 아기였던 나는 밖에 나가 놀고 싶어했고 그때만 해도 살아계셨던 할머니께서 부채과자를 주며 '나라에 큰 어른이 돌아가셨으니 니가 나가서 아~ 거리고 놀면 큰일난다'며 나를 방에 붙잡아 두셨다. 그때 문 밖에서는 사이렌 소리가 났으며 뭔가 모르게 술렁이는 분위기에 나는 상당히 신기해 했었다.)

부정선거로 대통령이 된 이승만 박사가 물러나고 박정희 대통령이 군부정권을 세운 시절 청와대 근처의 효자동에는 효자 이발관을 하고 있는 성한모(송강호)가 있다. 그는 면도사였던 민자(문소리)를 꼬드겨 임신을 시키고 아이를 낳지 않겠다고 버팅기는 민자에게 사사오입을 주장하며 당연히 아이를 낳아야 한다고 말한다. 돈은 별로 못벌지만 인생은 편하게 살 수 있는 낙안이라는 이름을 이름짓는 곳에서 받아온 성한모는 민자와 아기와 함께 이발소에서 행복한 가정을 이룬다. 그러다 청와대에서 나온 사람을 간첩으로 오인해서 신고하고 신고정신의 투철성을 인정받아 청와대에서 상을 받게 된 성한모. 그는 그때부터 대통령의 이발사가 된다. 그러다 북에서 간첩이 내려왔고 마침 이 간첩들이 설사를 한 것을 발견. 설사를 하는 사람들은 간첩과 접선을 하여 일명 마루구스 병에 걸렸다고 하여 국가에서는 설사하는 사람들은 무조건 잡아들여 고문을 한다. 마침 성한모의 아들 낙안이 설사를 하는데 성한모는 자신이 청와대 이발사인 만큼 모범을 보이기 위해 낙안을 직접 경찰에 데려가나 잠시 맡겨둔다는 그의 생각과는 달리 낙안은 끌려가 고문을 당하고 다리를 못쓰게 된다. 성한모는 아이의 다리를 낫게 하려고 백방으로 노력하지만 아이는 끝내 걷지 못한다. 세월이 흘러 박대통령이 돌아가시고 전두환이 새로운 대통령이 되자 성한모는 다시 대통령의 이발사가 될 뻔 한다. 그러나 성한모는 머리를 이발하기 위해 의자에 앉은 전두환에게 이렇게 말한다. '각하 머리가 자라면 다시 오겠습니다.'

이 영화는 한마디로 그 존재만으로도 무게감이 실리는 배우 송강호의 영화이다. 시대상황과 가상을 적절히 엮은 시나리오는 훌륭하긴 하지만 만약 송강호가 아닌 배우가 맡았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경상도 사투리를 거의 완벽에 가깝게 구사한 문소리도 연기를 잘 했으며 박대통령 역활을 맡은 목소리 끝내주는 배우와 그 밖의 조연들도 썩 좋은 연기를 보여주었지만 뭐니뭐니 해도 이 영화는 송강호라는 배우로 인해 빛나는 영화임은 분명하다.

내가 송강호를 좋아하는 이유는 딱 하나이다. 코믹과 동시에 진지함을 유지할 수 있는 배우이기 때문이다. 그의 연기를 보고 있노라면 실소를 금할수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영화 내내 웃기기만 하는 배우는 아니다. 대체 어떻게 하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하긴 알면 내가 배우하지 뭣하러 여기 앉아 있겠는가!) 송강호는 웃기다가도 갑자기 진지해지는데 관객들은 그 사이의 갭을 전혀 느끼지 못하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코믹과 진지함 사이의 간극이 존재하지 않는 배우 송강호. 나는 그래서 그가 좋다. 늘상 코믹하지만도 않고 늘상 진지하지만도 않은. 어떤 역활을 맡아도 송강호 버전이 되어버리는 극중 인물들. 복수는 나의것을 제외하고 송강호는 단 한번도 코믹하면서도 진지한 역활을 포기한 적이 없었다.(복수는 나의것에서는 계속 진지해야만 하는 역활이었다.)

또 송강호의 가장 큰 매력중 하나는 평범한 소시민같은 그의 외모이다. 그는 비록 잘생기지도 매력적이지도 않지만 둥그스름한 얼굴과 짝눈을 가지고 마치 옆집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아저씨 같은 인상을 준다. 내가 송강호라는 배우를 처음으로 눈여겨 본 것은 조용한 가족에서 삼촌 역활을 맡았을 때였다. '학생 아닌데요' 하는 이 단순한 대사 한마디를 송강호처럼 처 낼수 있는 배우는 장담하건데 대한민국이건 전세계건 다 뒤져도 송강호 하나 뿐이다. 단지 연기를 잘한다 혹은 극중 역활을 잘 해석하고 배역에 몰입한다 정도로는 설명할 수 없는 송강호의 독특한 연기는 송강호 이전에도 없었고 이후에도 아직까지는 없다. 배우치고는 그다지 잘 생기지 않은 송강호는 그래서 오히려 어떤 역활이건 자연스럽게 소화 해 낼수가 있다. 장동건의 잘생긴 외모가 인기의 비결은 될 망정 연기의 걸림돌이 될 수 있었던 것의 반대로 송강호의 외모는 외모만으로 환영받을 스타는 안될 지언정 그의 연기에 어떠한 장애도 되지 않았던 것이다. 어떻게 보면 그의 잘 생기지 않은 외모는 장동건보다 덜 치열하게 연기잘하는 배우로 인정받을 수 있는 장점이 되었다고도 볼 수 있다. (장동건이 단지 잘생긴 연예인에서 연기를 잘 하는 배우로 거듭나기 위해 들인 노력은 옆에서 지켜보기 안쓰러울 정도였으나 다행스럽게도 그는 그 과정들을 무사히 견뎌내서 이제는 얼굴이 아닌 연기가 되는 배우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영화를 보는 중간 나는 딱 한가지 장면에서 불만이 있었다. 바로 아들 낙안이 고문을 당하는 장면이었는데 전기고문에 유달리 잘 견디는 아니 오히려 그걸 재밌어 하는 아이로 설정이 되어서 나중에는 몸에 전구를 연결해서 불까지 켜는데 보면서 사실 약간 오바한다는 느낌을 받았었다. 그렇지만 그 장면이 지나가고 나서 나는 생각했다. 어린아이의 고문받는 장면을 리얼하고 치열하게 보여주었다면 효자동 이발사는 너무 심각한 영화가 되어버렸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사실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에서 받은 신체학대에 관한 충격이 채 가시지도 않았는데 효자동 이발사에서 마저 아들 낙안이 리얼하고 처절하게 고문을 받았더라면 나는 영화를 이렇게까지 재밌게 보지 못했을것 같다.

아들 낙안은 비록 고문으로 다리를 못쓰기는 하지만 거기서 만약 송강호가 갑자기 똑똑해진다거나 하여 나라와 정부를 비판하고 나서지 않은 것은 이 영화의 가장 큰 미덕이라고 생각한다. 흔히 영화나 드라마를 보다가 보면 갑자기 어떤일을 계기로 약간 무식하고 멍청했던 인물이 지나치게 똑똑해지고 현명해지는 것을 볼 수 있는데 효자동 이발사는 충분히 그런 연출이 가능한 상황에서도 그와같은 우를 범하지는 않았다. 성한모는 아이의 다리를 못쓰게 되자 거리에 나가서 가위로 자기 머리를 자르며 울분을 토하기는 하지만 여전히 청와대 이발사로 각하의 머리를 자르고 마루구스병에 대해 주워들은 것을 이리저리 생각하여 이것이 국가의 음모임을 밝혀내는 일 같은건 하지 않는다. 별로 배운것 없고 가난하며 빽도 없는, 어쩌다 운이 좋아서 대통령의 머리를 깎을 수 있게 된 성한모로써는 너무도 당연한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역사적 사실을 너무 코믹하고도 단순하게 그린 단점이 분명히 있기는 하지만 효자동 이발사는 시대에 관한 영화가 아니다. 이 영화는 이발사인(가끔 깍쇠로 불리기도 하는) 성한모의 눈에 비친 세상이고 성한모식 해석이 가미된 영화이기 때문에 갖은 심각한 사건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내내 무거워지지 않고 처음의 중량을 잘 지켜가며 마무리를 짓는다. 사실 송강호의 전작 살인의 추억이 말 그대로 살인적으로 대단한 영화였기 때문에 그때보다는 다소 흥행 스코어가 떨어질지는 몰라도 내 개인적인 견해로는 살인의 추억은 살인의 추억대로 효자동 이발사는 효자동 이발사대로 매력적인 영화이다. 왜냐면 두 영화 다 너무나 매력적인 송강호라는 배우가 제대로 되었지만 부담스럽지 않은 연기를 하기 때문이다.

끝으로 나는 송강호의 말투가 너무 좋다. 완벽한 표준어도 아닌것이 그렇다고 부산 사투리도 아닌것이 그 매력적인 말투는 배우 송강호만이 지닌 분명한 매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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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우스 2004-05-08 19: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나 반가워요! 저랑 같은 날에 이 영화를 보셨군요!! 님 말씀처럼 송강호가 갑자기 똑똑해지는 게 아니라 다행입니다.

비로그인 2004-05-08 21: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게요. 마태우스 님이랑 한 날에 똑같은 영화에 대한 페이퍼를 올리셨군요.
혹시 두 분이 같이 보신 건...^^*

코코죠 2004-05-08 23: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마태우스님의 저 당황한 듯한 말투....냉열사님 예리하십니닷. 음 수상해 수상해 역시나 수상해

책읽는나무 2004-05-08 23: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금 저도 두분의 영화평을 읽으면서.....헛!! 같이 봤나?? 의심(?)했습니다....^^
또한.....플라시보버전 영화평과.....마태우스버전 영화평을 보면서....같은 영화지만...평을 읽자니...각기 다른 영화를 본듯한 느낌도 드네요^^....전 개인적으로 플라시보버전이 더 와닿네요.....ㅎㅎㅎ

플라시보 2004-05-10 09: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하하. 마태우스님도 저와 같은날 저 영화를 보셨군요. 흐흐. 님들. 의심할껄 하세요. 마태우스님과 제가 있는 도시는 한참이나 떨어져 있답니다.
 

영화를 고르는 방법은 여러가지 일 것이다. 어떤 배우가 나오는지, 장르가 무엇인지, 얼마나 흥행을 하고 있는지 혹은 할 것인지, 그리고 마지막으로 감독이 누구인지도 영화를 고르게 하는 한 부분이다.

나는 영화를 고를때 한 가지를 보지는 않지만 감독이나 배우의 힘을 믿는 경우가 많다. 그 중에서도 감독을 믿는 경우가 더 많은데 팀 버튼이랄지 데이비드 핀처, 데이비드 린치, 코엔형제, 워쇼스키 형제 등의 감독은 신작이 나왔다 하면 장르가 뭐건 어떤 배우가 나오건 간에 선택을 하게 된다.

한국에서도 그런 감독을 꼽으라면 나는 홍상수와 김기덕을 꼽겠다. 물론 이 두 감독은 앞에서 열거한 것들과는 다소 의미가 다르다. 앞에 열거한 감독들은 내가 무조건 애정을 바치는 감독들이고 이 두 감독은 그냥 왠지 봐 줘야 할것만 같은. 의무감이라고 하기에는 좀 뭣하지만. 일단은 영화관에 가서 표를 끊게 만든다. 사실 두 감독 다 내가 추구하는 재미있는 영화를 만드는 감독들은 아니다. 그들은 다소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고 파격적이며 보고 나서 생각이 많아지도록 한다. 그럼에도 나는 이 두 감독을 끝내 외면하지 못한다.

홍상수 감독이 신작 영화를 찍었다고 했을때. 나는 또 봐줘야 하는구나 라는 생각을 했다. 그나마 전작 생활의 발견부터 조금씩 내가 소화하기 쉬워지고 있기 때문에 적어도 강원도의 힘처럼 어렵지는 않겠지 하는 얄팍한 믿음마저 가지면서 말이다.

홍상수가 선택한 배우는 유지태와 김태우 그리고 성현아다. 칸의 레드카펫을 밟을지도 모른다는 추측이 돌고 있는 가운데 나는 어제 이 영화를 봤다. 

남자A와 남자B는 오랜만에 만나서 학창시절을 얘기한다. 그러다 그들이 함께 공유했던 여자 C를 떠 올린다. 그들은 낮술을 먹은김에 C를 찾아 나선다. 그리고 그들은 또 다시 C를 함께 공유한다. 이게 영화 내용의 전부이다. 나는 아무리 노력해도 이 이상 줄거리를 말할 자신이 없다. (이거보다 훨씬 더 길게 이 영화를 소개해 놓은 분들이 참으로 존경스러울 지경이다.)

홍상수 감독의 영화는 일상의 소소함을 징그럽도록 디테일하게 그려낸다. 전작들도 그랬고 이 영화 역시 마찬가지이다. 욕지거리가 나올 만큼이나 현실과 닮았다. 아니 닮았다는 표현도 무색할 만큼. 내 친구는 홍상수 영화를 다큐멘타리라고 말했는데 어쩌면 그말이 꼭 맞아 떨어지는지도 모른다.

나는 이 서재에서 일상으로의 초대라는 카테고리를 가지고 있다. 거기에는 말 그대로 내 일상들이 적혀있다. 물론 일어난 일을 그대로 적긴 하지만 거기다가 어느정도는 손을 댄다는 고백을 해야겠다. 있는 일들만 그대로 올려 놓으면 절대로 재미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약간의 가공을 거친 일상은 꽤나 재미있고 때로는 스펙타클 하기까지 하다. 내 짧은 생각인지 모르겠지만 만약 내가 있는 일상을 조금도 틀리거나 가공하지 않고 날것을 그대로 올린다면 아마도 지금처럼 사람들이 읽어줄지 의문이다. 일상이 되었건 뭐가 되었건 간에 재미가 없는걸 사람들이 견딜리 만무하기 때문이다.  

홍상수 감독의 영화를 보면서 언제나 느끼는 것은 마치 전혀 건드리지 않은 진짜 일상이 스크린 속에서 펼쳐지고 있다는 착각을 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분명 거기에는 배우도 있고 카메라도 돌아가고 있으며 감독과 스텝들이 화면 바깥에 존재하고 있겠지만 그런 사실조차 망각하게 만들만큼. 징글징글하게 사실적이다. 어떨때는 이럴바에야 영화 뭐하러 보나 싶을 정도로 저건 일상이고 우리 주변에 충분하게 있을 만한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또 하나. 홍상수가 정말 영화에 나오는 캐릭터들에게 애정이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그가 그리는 인간군상은 하나같이 비열하고 치졸하며 뻔뻔스럽다. 심지어 그 뻔뻔함에 관객들이 치를 떨 지경이다. 그게 하나의 사건이 아니고 영화 내내 인물들이 너나 할것 없이 수시로 하기 때문에 홍상수의 영화를 가만 보고 있노라면 사는건 참 치사스러운 일이며 인간은 너무 간사하고 가벼운 존재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홍상수의 영화가 작품으로 인정받을 만 한지도 모른다. 그러니 칸의 경쟁부분에 초청이 되었겠지. 그렇지만 매번 똑같은식인 (김기덕도 마찬가지지만) 영화들은 약간씩 질린다. 홍상수의 모든 영화들은 한데 다 같이 버무려놔도 어색하지 않을만큼 소소한 일들로만 가득하다. 영화속 인물들은 무조건 아름다우며 현실적이지 않아야 한다는 것은 아니지만 그의 영화를 보고 있노라면 저런 인간들은 살면서조차 만나지 말았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

내가 보기엔 오히려 엽기코드를 가지고 있는 김기덕 감독이 차라리 캐릭터들에 대한 애정도 뚜렷하고 전달하려는 메세지도 확실해서 훨씬 보기가 편하다. 물론 그의 영화에는 피가 난자하고 가끔은 구역질이 올라올 정도이긴 하지만 그래도 홍상수의 영화처럼 뜬금없이 시작해서 뜬금없이 끝나지는 않는다. 홍상수의 영화는 첫 영화인 돼지가 우물에 빠진날을 빼고는 피도 칼도 나오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홍상수의 영화를 보고 나면 화면가득 피칠갑을 한 영화를 봤을때 보다 더 심기가 불편하다. 어쩌면 현실인지도 모르지만 그걸 마치 거울보듯 스크린 속에서 발견하고 싶지는 않은 내 마음과 영화의 충돌에서 나오는 것일수도 있다.

홍상수의 영화는 눈치없이 구는 친구와 함께 가는 모임같다. 친구의 눈치없는 행동에 부끄럽지만 내 친구라서 끝까지 지켜보긴 해야겠고. 그만 하라고 아무리 눈치를 준다고 해도 결코 알아차리지 못해서 한대 쥐어박고 싶기도 하고 차라리 눈을 확 감고 이 모든게 꿈이길 바라는 그런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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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밀밭 2004-05-05 14: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덤 앤 더머를 보는 것과도 같은 문호와 헌준의 대사는 상당히 재미있기는 했어요. 그것이 현실이라고 생각하면 슬프지만요. 저도 이 영화를 보았는데 느낌은 홍상수와 김기덕은 여자를 모른다는 것이었어요. 그것은 어쩔 수 없는 것 같아요. 남자들은 여자를 미래라고 생각할 지는 몰라도 과거도 현재도 절대 이해할 수 없다고 생각이 되네요. 님의 서재에 글은 처음 남기네요. 님의 일상을 저도 읽고 있지만 진실에 약간의 유머가 있어서 재미있는 글이라 생각되어요. 100% 진실은 조금 갑갑하지요. 님의 글에서는 진실과 여유, 유머가 같이 느껴지는 것이 좋아요.


마냐 2004-05-05 14: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히죽..그래도 이 영화 볼껍니다. 사실 김기덕은 본게 없지만, 홍상수는 언제나 꾸리꾸리한게 전 좋더군요. 저 뵨태인가봐요..헥.

겨울 2004-05-05 23: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홍상수, 왜 좋은지는 모르겠지만 빠짐없이 챙겨보죠.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맞나?, 강원도의 힘, 오 수정, 생활의 발견에 이르기까지 뭔가 필사적이 되어서 봤는데, 왜일까 새삼스럽게 생각을 하자니, 그의 영화에 등장하는 남자들 때문인 것 같다는. 속물스럽고 꾸질꾸질하고 술 한 잔씩 걸친 것 같은 맹한 눈빛이 재미있잖아요. 플라시보님의 글, 언제나 진지하게 잘 읽고 있습니다. 당차고 솔직한 모습에 늘 감탄하죠.

플라시보 2004-05-06 09: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호밀밭님. 정말 덤앤더머 형제 맞아요. 하하. 어찌나 어리버리해 주시는지... 저도 님 생각과 마찬가지로 홍상수와 김기덕은 여자를 모르거나. 알아도 아주 한정적인 일부분만을 안다고 생각합니다.
마냐님. 이번영화 아주 꾸리꾸리 합니다. 님 입맞에 딱이겠는걸요? 하하
우울과 몽상님. 저 역시 계속 챙겨봤지만 이유를 모르겠어요. 그러고 보니 홍상수 영화에는 주인공들이 술취하지 않은 영화가 없군요.

작은위로 2004-05-06 10: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개인적으로 감독보다는 흐흠, 배우 유지태가 끌려서 보기로 결정했다는 사실. 홍상수감독 이름은 많이 들어봤지만 아직 그의 영화를 본적이 없네요. 김기덕감독도 그렇고. 이상하게 보려고 하면 못보게 되는 영화가 그 두영화였어요(아, 이창동감독영화도) 이상하죠?
아무튼 그래서 이번껀 꼭 보고 싶은데.. 못보게 될 확률이 더 높다는 거죠. 왜냐하면, 다음주에도 그 다음주에도 보고픈 영화들이 넘 많거든요...ㅜㅠ

플라시보 2004-05-06 10: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보고싶은 영화가 너무 많을 경우 일주일에 한편이라는 규칙을 깨고 두편 세편 보기도 합니다. 그리고 뭐 비디오도 있고 DVD도 있으니 빌려보셔도 될꺼구요^^. 유지태. 글쎄요. 전 봄날은 간다 이후로는 그의 연기가 그렇게 썩 좋아 보인적은 없었어요. 그래도 가능성이 참 많은 배우라는 생각은 합니다.^^

마태우스 2004-05-06 10: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눈치없이 구는 친구와 함께 가는 모임같다" 캬오, 멋진 표현입니다. 다른 일로 잠을 못자서 비몽사몽이었는데, 님의 글을 읽으니 역시 잠이 깹니다. 눈치없는 친구와 모임 같은 건 안가는 게 좋겠지요?

플라시보 2004-05-06 10: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흐흐. 감사합니다. 어. 근데 저도 어제 잠을 좀 설쳤거든요. 역시 님과 마찬가지로 비몽사몽이며 억지로 깨려고 하기 보다는 이따 점심먹고 한잠 자렵니다.
그리고 눈치없는 친구와 모임은 안가는게 당연히 좋죠. 더구나 큰소리로 저의 바보스러운 실수담 같은걸 말하면 정말이지 등꼴이 오싹해집니다.

구름잡이 2004-06-20 20: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지루한 그림.
잔잔한 일상의 나른함.
홍상수 영화를 보면서 시간을 살립니다.(오락 영화 처럼 시간 죽이지는 안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