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일랜드가 끝나고 난 다음 한동안 나는 방황했었다. 이제 무슨 드라마를 보지? 김수현 극본의 부모님전상서의 경우. 뭐 그럭저럭 봐 줄만 하기는 하지만 김수현의 최대 장점이었던 촌철대사 (양에서나 내용에서나 모두) 가 이제는 조금 진부해져 버렸고 시대성에도 약간 뒤떨어지는지라 (아무래도 작가도 나이가 드니까 어쩔 수 없는 모양이다.) 단지 수다스럽기만 하다는 느낌이 들고 김정수 극본의 한강수 타령은 배우들이 예상외의 호연을 보여주기는 하지만 첫회부터 안 봐서 그런지 드라마가 산만하다는 (즉 내가 내용을 전혀 이해 못하고 있는) 단점이 있어서 좀처럼 안 보게 된다. 그러던 찰나에 눈에 띄는 드라마가 있었으니. 바로 미안하다 사랑한다이다.

미안하다 사랑한다는 처음부터 약간의 문제점을 안고 출발했다. 일단 임수정 이외에는 검증된 연기자가 전혀 라고해도 좋을 정도로 없다. 소지섭의 경우 발리에서 생긴일에 출연하며 연기력이 좀 늘기는 했지만 여전히 모델 출신이라는 꼬리표를 떼기에는 조금 부족해 보인다. 거기다 댄스 그룹 샾 출신의 서지영은 연기력이 전혀 검증되지 않은 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요즘 가수들은 마치 CF를 찍듯 쉽게들 연기쪽으로 진출을 하므로) 이미지가 상당히 좋지 않다. 다들 알다시피 그녀는 같은 멤버였던 이지혜와의 불화로 인해 그룹이 해체되는 위기를 맞았으며 서로 상대방이 잘못했다고 기자회견을 했고 더구나 서지영의 경우 기자회견장에서 자기 편을 들어줄줄 알았던 메니저가 폭탄발언을 해서 기자회견을 하다가 말고 나가버렸다. 그런 그녀가 덧니를 빼고 어색할 정도로 하얗게 치아미백을 하고 살을 빼서 연기자에 도전을 했으니 곱게 보일리가 만무하다. 연기라고는 난생 처음 해 보는 것에다 좋지 않은 이미지까지. 어딜보나 그녀를 안고 가는 드라마는 욕을 먹을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여태까지 나열한 것만 보면 이 드라마에서 그나마 기대 해 볼만한 연기자는 드라마 학교와 영화 장화홍련, ing 에서 호연을 보여준 임수정 뿐이다.


내가 아일랜드를 워낙 열심히 봐서인지 모르겠지만 미안하다 사랑한다는 상당부분 MBC의 아일랜드를 떠 올리게 한다.


1. 소재 / 해외 입양아

여태까지 우리나라 드라마에 입양아가 소재가 된 적은 극히 드물었다. 출생의 비밀 같은거야 심심하면 써 먹었지만 입양아는 잘 없었다. 그러다가 왕꽃 선녀님에서 윤초원. 아이랜드에서 이중아가 입양아로 등장했다. 그 중에서도 아일랜드의 이중아는 해외 입양아가 다시 고국을 찾은 케이스. 사랑한다 미안하다에서도 입양아가 등장하는데 아일랜드와 마찬가지로 해외 입양아이다.


2. 뿌리찾기/ 충격먹고 한국행

극중 소지섭은 호주로 입양이 되었는데 다시 한국으로 들어오게 된다. 그러나 알다시피 해외 입양아들이 한국에 부모를 찾기 위해 오는 케이스는 왕왕 있어도 아예 살기위해 들어오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그들에게 고국은 아마도 현재 입양되어 살고 있는 땅일것이고 한국은 상징적인 뿌리 같은 것이다. 뿌리에 대해 집착을 가지는 한국인의 정서로는 당연한 일인지 모르겠지만 외국에서 생활해서 외국인이나 다름 없는 그들에게는 단지 뿌리를 위해 살고 있던 터전을 버리고 고국으로 온다는건 사실 좀 말이 안된다. 하지만 아일랜드의 이중아와 미안하다 사랑한다의 소지섭은 각자 충격적인 사건을 겪고 (이중아는 부모님과 형제가 몰살당하는 장면을 목격했고 미안하다 사랑한다의 소지섭은 사랑하는 여자가 돈때문에 다른 남자와 결혼을 하고 또 그 결혼식장에서 그녀를 향한 총알을 막느라 대신 머리에 유탄이 박혀서 죽다 살아난다.) 그 충격을 완화하기 위해 혹은 여타 이유로 한국을 찾는다.


3. 한국말 / 잘해도 너무 잘하네

아일랜드 이중아와 미안하다 사랑한다의 소지섭이 가지고 있는 또 다른 공통점은 둘 다 한국어를 잘해도 너무 잘한다는 것이다. 둘 다 아기때 입양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어를 마치 한국사람처럼 유창하게 구사한다. 그들은 여차여차해서 한국어를 배웠다고는 하지만 사전적 의미가 분명한 한국어뿐 아니라 일상적으로 쓰는 깬다, 느끼하다 등도 그들은 잘만 쓴다. 즉 한국땅에서 살지 않는 한, 단지 한국어를 배우는 것으로는 표현 불가능한 단어까지 다 쓰고 이해를 할 줄 안다. 해외 입양아를 다룬 프로그램을 보면 알겠지만 그들이 한국어를 할 줄 아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우리나라가 본격적으로 해외 입양아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다큐멘터리에 영화까지 만들어진 수잔 브링크의 아리랑을 봐도 한국에 대해 무척 애착을 가지고 있고 왕래도 하는 수잔브링크만 해도 한국어라고는 노래인 아리랑 밖에는 모른다. 우리에게 영어가 외국어이듯. 그들에게도 한국어는 외국어인데 외국어를 그렇게나 유창하게 하는 것은 좀 힘든 일이다. 더구나 세계공통어인 영어도 아니고 그땅에서는 전혀 쓰일일이 없는 한국어를 잘 한다는건 묘하다. 한인타운에 사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하긴 이렇게 그들이 한국어를 잘 해야 하는 이유는 아까 위에서 말한 2번에서 덜컥 한국행을 결정하고 눌러살 수 있게 하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일단 한국어를 한국인만큼 잘 하니 한국에 와서 사는 것에 대한 걱정은 하나 줄어든 셈일테니 말이다.


4. 입양아 / 정신적으로 건강치 못한

아일랜드의 이중아는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어서 (가족이 몰살하는 것을 본 충격으로) 늘 약을 달고 산다. 소지섭의 경우 정신적이라기 보다는 물리적인 이유로 역시 정신 상태에 문제가 있다. 머리에 유탄이 박혀 있어서 폭력적인 성격으로 변하는 것. 즉 두 입양아 다 이런 이유건 저런 이유건 멀쩡한 정신상태를 가지고 있지 않다. 그렇지만 그건 극중 장치에 불과할 뿐.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너무 잘들 산다. 미안하다 사랑한다의 경우 앞으로 어떻게 진행이 될 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5. 주변인 / 연예인

아일랜드에서 시현은 연예인이다. 비록 애로배우로 출발을 하긴 했지만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는 배우가 된다. (나중에는 리딩이 안되는 문제로 섹시 화보집을 찍어야 하는 상황이 닥치지만) 미안하다 사랑한다에서는 연예인이 하나로 모자라는지 셋트로 등장한다. 대한민국 최고의 가수라는 설정의 최윤. 그리고 인기 절정의 여배우 강민주가 그들이다. 대한민국에서 연예인이 그리 흔한 직업이 아닐텐데 두 드라마에서는 공통적으로 주인공의 주변에는 연예인이 있다. 공통적인 특징은 바빠 죽겠다는 연예인인데도 그들은 항상 일은 거의 안하고 남아도는 시간에 주인공들 주변에서 사건을 만들기에 여념이 없다는 것이다.


6. 초반부 / 해외로케

사실 요즘 우리나라 드라마에서 해외로케는 별로 뉴스꺼리도 못된다. 그만큼 해외 로케이션이 흔해
졌다는 얘기. 그렇긴 해도 아일랜드가 극중 이중아가 입양되어간 아일랜드에서 촬영한 끝내주는 장면들을 초반부에 흩뿌린것 처럼 미안하다 사랑한다도 역시 마찬가지이다. 그들은 호주의 멋지구리한 풍경들을 담느라 정신이 없어서 때로는 스토리와 별로 상관도 없는 장소에서 주인공들이 오랫동안 대사없이 폼만 잡는다. 거기다 보여준 장면들을 회상장면으로 또 보여주고 슬로우 모션이나 휘돌아 찍기 크레인으로 찍어서 멀리서 부터 서서히 가까이 클로즈업해가며 찍기 등등 화려한 촬영술을 자랑한다. 초반부에 스토리로 강하게 꽝 나가야 하지만 이 두 드라마는 스토리보다는 영상미에 더 치중하는 모습을 보인다. 물론 비싼 돈 주고 해외에 갔으니 최대한 그림을 뽑아와야 하겠지만 드라마가 내용이 아닌 이미지로 가려는것 같아 조금 안타까운건 사실이다.


7. 드라마제목 / 로고화

아일랜드와 미안하다 사랑한다는 드라마 중간중간 제목을 마치 로고처럼 화면의 하단부 혹은 상단부 오른쪽에 노출시킨다. 드라마 제목은 드라마 시작할때와 타이틀로 한번 뜨면 그만인 것으로 족하던 여타 드라마들과 달리 마치 하나의 브랜드처럼 아일랜드와 미안하다 사랑한다는 드라마 제목을 로고화 시켰다. 역시 이미지를 가지고 가려는 의도가 강하게 보인다. 둘은 글자체도 좀 비슷하다.


8. 의상 / 예사롭지 않은 인물들의 패션감각

아일랜드에서 이중아의 의상은 좀 충격이다 싶을 만큼 파격적이었다. 그 컬러에 그 디자인. 일반인들은 절대 소화하기 힘든 옷을 입고 나왔다. 거기다 재복이라는 캐릭터 역시 의상에 많은 신경을 쓴 흔적이 보여 하나의 스타일을 완벽하게 보여준다. 미안하다 사랑한다에서도 배우들의 의상은 매우 신경을 쓴 흔적이 역력하다. 극중 연예인으로 나오는 서지영과 정경호는 말할것도 없고 소지섭의 경우는 매우 그런지하면서도 감각적인 의상을 선보인다. 연기와 캐릭터로 인해 인물의 특성이 생긴다기 보다 두 드라마는 오히려 의상에 의해 극중 캐릭터들이 스타일을 부여받는다는 느낌이 강하게 든다.


9. 만남 / 끊임없이 마주치기

두 드라마에서 엮일듯한 이미지를 주는 남녀들은 계속해서 우연적인 만남이 이루어진다. 그러나 촌스럽게 '어머 여긴 어쩐일이세요?' 하며 그들은 만나지 않는다. 한 공간에서 엇갈려 지나치므로써 오직 시청자들만 안타깝게 지켜볼 뿐. 정작 그들은 서로가 지나쳐가는지도 모르는 설정이 파다하게 등장한다. 지하철을 타면 밖으로 그 혹은 그녀가 지나가고 차를 타고 가면 그 혹은 그녀가 저쪽에 서 있고 계단을 올라가면 그 혹은 그녀는 저쪽에 있는 계단에서 내려오고 있다.


10. 인연 / 알고보니 형제자매

어차피 드라마라는 것이 한정된 등장인물을 끌고 이 세상의 모든 얘기와 우연과 운명을 표현해야 하므로 세상에 사람들이라고는 그들 뿐인양 끊임없이 엮이고 섞이지만 그들은 이미 알고 지냈는데 알고보니 출생과 연관이 있다는 식의 우연이 너무 많이 등장한다. 비록 아일랜드의 경우 재복이와 중아가 형제라는 설정을 했다가 다시 아니다고 번복하기는 했지만 말이다. 미안하다 사랑한다의 경우도 극중 가수로 나오는 최윤과 입양아 소지섭이 형제로 나온다. 뭐 나중에 가서 아일랜드처럼 알고보니 아니네라는 식의 번복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사실 위에서 나열한 특징들은 비단 아일랜드와 미안하다 사랑한다 만의 공통점은 아닐지도 모르겠다. 10번 같은 경우 한국 드라마에서 가장 많이 써 먹는 소재이고 또 그게 없으면 드라마가 진행이 안된다. 나는 아일랜드를 매우 재미있게 봤고 미안하다 사랑한다 역시 관심있게 지켜볼 생각이다. 문제점이 분명히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용서가 된다고나 할까. 아무튼 처음에 이 글을 쓸때는 두 드라마의 특징을 비교 분석해 본다는 거창한 생각을 가졌지만 막상 써 놓고 나니 비판조로 가버린것 같아 안타깝다. 그래도 나는 위의 두 드라마중 한 드라마는 재밌게 봤으며 나머지 한 드라마는 재밌게 볼 생각이다. 끝으로 조금만 덧붙이자면 미안하다 사랑한다에서 임수정은 예상외로 평이한 연기를 보이고 있고 서지영이 생각보다 드라마를 망칠만큼 어설픈 연기를 하지 않아 좀 의외다. 소지섭은 좀 더 지켜봐야겠고 최윤의 경우는 현빈처럼 뜨기는 좀 무리가 아닌가 싶다. 아. 그리고 간만에 중견배우 이혜영을 이 드라마에서 보게 되어 겁나게 반갑다. 시현의 엄마였던 윤여정씨도 겁나게 좋아하는 배우인데 좀처럼 드라마 나들이를 하지 않은 이혜영씨를 미안하다 사랑한다에서 보게 되어 무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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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우스 2004-11-10 13: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매우 탁월한 분석이라고 생각되옵니다. 제가 그렇게 욕을 했던 드라마의 장점을 여럿 제시해 주셨군요. 그리고 전 영국인 줄 알았는데 거기가 호주라니, 으음...어쩐지 아름답다 했죠...

플라시보 2004-11-10 20: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뭐 탁월한 분석 까지야. 흐흐. 음. 영국이 아니라 호주라네요. 전 첨에는 미국인가 했었어요.

digitalwave 2004-11-11 18: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00% 동감입니다. 저도 좀 심하게 비슷하게 가네... 라고 생각하던 중이죠.

플라시보 2004-11-11 20: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digitalwave님. 뭐 그렇다고 해서 '어라 이거 표절이잖아!' 이런 필로 쓴건 아니구요^^ 그냥 제가 전에 좋아했던 드라마랑 비슷하단 느낌이 들어서 죽 나열 해 봤습니다.^^
 


요즘은 계절이 그래서 그런지 유독 따뜻하고 낭만적인 영화들이 많이 나오는것 같다. 극장가를 보면 온통 말랑말랑한 감성을 건드리는 영화들 뿐이다. 우연히 만나 하룻밤을 보낸 남녀가 9년이 지나 다시 만난 이야기 비포 선셋. 아내가 점점 기억을 잃어가고 있고 그것을 안타깝게 바라봐야 하는 남편의 이야기 내 머릿속의 지우개. 사랑하는 애인이 죽은 시점에서 다시 애인이 살아있던 시점으로 돌아가서 일상이 반복되는 이프 온리. 등등 극장가는 이 계절 사랑에 관한 영화를 보지 않으면 대체 무엇을 볼 것인가 하고 묻는것 같다. 그래. 앞서 나열한 사랑 타령을 빼면 볼 영화가 없었다. 그래서 선택했다. 완벽한 그녀에게 딱 한가지 없는 것. 적어도 웃기기는 하겠지 하면서 말이다. 뭐 결과적으로 이 영화 아주 웃겼다. 영화를 만든 제작자들이 존경스러울 만큼 웃겼다. (동시에 무슨 생각으로 만들었는지 진지하게 한번 물어보고 싶었다.)

영화의 원제는 13 going on 30 이다. 차라리 이 제목을 달았으면 나았을것을 우리나라에서는 쓸데없이 [완벽한 그녀에게 딱 한가지 없는 것] 이라는 무지하게 길면서도 영화와 별 상관없는 제목을 달아놓아서 나를 헤깔리게 했다. 영화의 내용은 이렇다. 13살 생일을 맞은 덜생긴 왕따 제나 그녀는 친구들에게 놀림을 받고 옆에는 늘 그녀만 졸졸 따라다니는 남자친구 매트만 있는 지금의 삶이 너무 싫다. 그래서 그녀는 소원을 빈다. 서른살이 되게 해 달라고. 그러자 다음날 거짓말처럼 제나는 서른살이 되어 있다. 주변의 환경도 모두 변해있다. 잘 나가는 잡지사 부편집장. 거기다 엉덩이가 끝내주는 하키선수 애인. 생일날 자신을 따돌리고 맥주를 마시러 가자며 친구들을 모두 데리고 나가서 초를 친 퀸카 루씨는 같은 회사에 근무하는 동료가 되어 있다. 늘씬하고 가슴도 빵빵하고 (그녀는 늘 휴지를 넣어 다녔었다.) 근사한 고급 아파트에 살고. 제나는 더 이상 바랄것이 없는 완벽한 서른의 자신이 너무나도 마음에 든다. 하지만 조금씩 진실을 알게 된다.

이 영화는 아무리 좋게 봐 주려고 해도 13살을 상대로 만든 영화라는 생각 밖에는 들지 않는다. 실제로는 13살인 제나가 서른의 몸을 가지고 좌충우돌 하는 것은 너무 뻔해서 잠도 다 달아날 지경. 거기다 마지막에는 결국에는 순수한 13살의 제나가 개판 오분전의 상황을 모두 수습하고 해피엔딩으로 막을 내림으로써 '이 세상의 모든 순수는 정의와 승리랍니다 여러부운' 해 주신다. 이거 대략 어른들 보라고 만든 영화가 맞는지 심히 의심스럽다. 거기다 제니퍼 가너는 아무리 봐도 무언가 대단히 매력적인 부분이 쏙 빠진 줄리아 로버츠의 이미테이션 같다. 사람 생긴거 가지고 뭐라고 할 처지는 아니지만 우리가 언제 자기 생긴거 생각하고 배우들 생긴걸 따졌는가. 아무튼 제니퍼 가너는 못생겨도 너무 못생겨서 13살의 제나가 꿈꾼 완벽한 서른이 되기에는 좀 모자란다. (그래도 영화사에서는 아역 배우들과 어른 배우들의 닮은꼴을 찾느라 고심한 흔적은 보인다. 누가 누구인지 말해주지 않아도 아. 그 애가 커서 쟤가 된거구나 할 정도이다.)


서른의 삶이 열 세살의 순수로 어떻게 뒤집어 엎을 정도가 된다면 아무도 지금과 같은 서른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거기다 열 세살의 제나는 매트를 무지하게 싫어했는데 단지 서른의 몸을 가지고 나니 갑자기 매트가 좋아졌다는 것은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다. 물론 그녀가 금방 서른이 되었을때는 도움을 청하려고 매트를 찾았지만 매트는 그녀와 고교 졸업 이후 만나지도 않은 사이이므로 실질적으로 그녀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못한다. 그런데 그녀는 갑자기 매트에게 의지한다. 열 세살때는 발견하지 못한 매력이 새삼스럽게 솟구친것 같지도 않은 매트에게 말이다. 그녀에게 닥친 위기들을 해결하는 방식도 열 세살의 수준을 절대로 벗어나지 못한다. 그야말로 순수 만만세다.

이 영화에서 그나마 귀여운 장면이 있기는 하다. 파티에서 마이클 잭슨의 스릴러를 추는 장면. 그 중에서도 가장 압권은 반지의 제왕에서 골룸으로 나왔던 배우 앤디 서키스가 뒤늦게 합세해서 춤을 추는 장면일 것이다. 하지만 추억의 스릴러를 춘다고 해서 영화 전체의 엉성함이 용서 되지는 않는다. 골룸이 나와서 문워크를 한다고 해서 봐 줄수는 없는 것이다.

영화에서 그녀는 전혀 완벽하지 않다. 조금 날씬하고 가슴도 옛날보다 확실히 커지긴 했지만 완벽한 그녀라고 표현하기는 좀 어렵다. 더구나 표면적으로 보이는 것도 썩 완벽치 못한데 그녀의 감춰진 부분이 드러나면 더더욱 그러하다. 백번 양보해서 그녀가 완벽하다 치고 딱 한가지 없는 것이 뭐였을까? 그건 바로 사랑이다. 잘나가는 여성지 부편집장 자리를 잡고 근사한 맨션도, 남자친구도 있는 그녀이지만 영화는 주장한다. 진정한 사랑이 없는 그녀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그래서 결국 그녀는 모든걸 다 잃어버리는 상황이 되어도 사랑하는 매트를 차지해서 다 괜찮아진다. 남자들은 사랑을 하게 되어도 절대로 일을 포기하지 않는 반면. 영화에서 언제나 잘 나가는 여성이 남자를 만나면 일을 포기한다. 마치 '일 따위는 사랑에 비하면 쥐똥같은 존재였어요. 그걸 내가 왜 몰랐을까요. 아하하하하하하' 하는것 같다.

며칠째 일에 시달리느라 죽을것 같은 몸을 이끌고 본 영화가 하필 이 영화라니 하며 한없이 저주스러웠던 영화. 초반기에는 추억의 음악과 패션 덕분에 그럭저럭 즐거웠지만 제나가 서른이 되고 부터는 그 재미마저도 없어서 영화가 꽤나 북적댐에도 불구하고 놀랍도록 지루하다. 이 영화는 단언컨데 영화관에서 보면 백발백중 후회하고 비디오를 빌려 보는 것도 심각하게 고려해볼 문제다. (물론 어린 조카와 꼭 영화를 봐야겠는데 볼것이 없다면 비디오로 보는 것 정도는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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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4-11-07 12: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화보다 님의 평이 훨씬 더 재미있네요. 시원시원 합니다.

옛날 정영일선생이 조선일보에 쓰던 평이 생각날 정돕니다.

테잎이나 DVD는 안보시나 보죠?

케이블 영화평까지는 있는데 이건 없어서요.

sweetmagic 2004-11-07 14: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흐흐ㅡ 재미있는데요 ? ㅎㅎ 님 영화평이...그리고 저 사진속 신발장에 있는 신발들 몽땅가지고 싶네요 ㅎㅎ

플라시보 2004-11-08 11: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hanalei님. 후훗. 전 왜 이렇게 거품물고 욕하면 남들이 잘한다 잘한다 하는걸까요?^^ 이러니 성질이 점점 더러워 질 수 밖에..하하. (핑계는...) 비디오테잎은 간혹 봅니다. 요즘 시간이 없어서 잘 보지는 못하구요. DVD는 아쉽게도 플레이어가 없어 못 봅니다.



sweetmagic님. 저두요. 저 신발 (비록 내 타입은 아니나) 다 내 것이었으면 좋겠어요. 아니. 스타일은 달리 해서 가짓수만 비슷하면 좋겠네. 하하^^

비로그인 2004-11-08 18: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첨단기술의 결정체를 즐기지 못하다니.....안타깝습니다.

플레이어는 무지 싼데 DVD, 이게 도저히 감당하기 힘드네요.

거기다 주변을 좀 갖추겠다고 (대형TV, 6.1CH 오디오, 스피커...) 나섰더니만

파산이 그리 먼길도 아니더군요.

플라시보 2004-11-08 18: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하나 하면 제대로 하고 아님 말자 주의기 때문에 파산할까 두려워서 그냥 TV에 비디오를 보는 구시대기술의 절정체만 즐기고 있습니다.^^
 


이 영화의 예고편을 보면 한석규가 이런 나레이션을 한다. '모든 유혹은 재미있다. 왜 피하겠는가' 하지만 모든 유혹이 다 재미있고 그로 인해 피할 이유가 없는것은 아니다. 누군가에게 상처가 될 수 있는 유혹. 그리고 감추어야 하는 유혹은 결코 재밌게 끝나지 않는다.

영화 [주홍글씨]를 말 하기 이전에 다니엘 호손 원작의 주홍글씨를 살펴보면 대강 이런 내용이다. 17세기. 헤스터라는 여자가 남편이 아닌 다른 남자의 아이를 임신하게 된다. 이를 알게된 마을 사람들은 그녀에게 가슴에 평생 붉은 색 실로 수놓은 A (Adultery : 불륜) 를 달고 살게 한다. 사람들은 그녀에게 간통의 상대자가 누구냐고 추궁하지만 그녀는 끝까지 입을 다물고 펄이라는 딸아이를 낳게 된다. 헤스더의 간통상대는 목사인 딤스데일. 이를 알게 된 헤스더의 남편은 자신의 신분을 감추고 딤스데일에게 접근하고 우연하게 헤스더의 간통상대임을 알아낸다. 딤스데일은 헤스더의 고통을 지켜보고 또 성직자로써 하지 못할 일을 저지른 동시에 비겁하게 진실을 밝히지 못하는 것에 괴로워하며 점점 쇠약해진다. 7년의 시간이 흐르고 새로 부임한 지사의 취임식날 딤스데일은 헤스더와 펄을 부르고 자신의 가슴의 가슴에 있는 A를 보여주며 모든 죄를 고백한다.

영화는 이 소설에서 아무것도 가져오지 않았다. 그 둘 사이에는 단지 불륜이라는 공통점만 존재한다. 강력계 형사 기훈(한석규) 은 첼리스트 아내인 수현(엄지원). 그리고 아내의 오랜 친구인 재즈싱어 가희(이은주)와 아내의 눈을 피해 몰래 바람을 피운다. 그러던 어느날 사진관에서 주인 남자가 죽는 살인사건이 일어나고. 기훈은 죽은 남자의 아내인 경희(성현아)를 살인범으로 의심을 한다.

처음에는 이 영화가 그저 멜랑꼴리한 남이 하면 불륜 내가하면 사랑 정도를 다루었을 것이라고 생각을 했다. 하지만 영화의 중 후반부로 가면 굉장히 임펙트가 강한 사건이 터진다. 기훈이 미처 알지 못했던 비밀이 폭로되는 것 보다 기훈이 겪게 되는 일이 더욱 충격이다. 이미 상태가 엉망인 기훈은 그 비밀에 대해 별로 놀라지도 않는다. 그리고 기훈은 경희를 의심하지만 그건 뭐 눈에는 뭐만 보였기 때문에 가능한 의심이었다. 그에게 세상 여자들이란 그저 남자를 유혹하고 쾌락을 제공하다가 자기 마음대로 되지 않으면 스스로를 파멸시킬수도 있는 위험한 짓을 저지를 수 있는 어리석은 장난감들일 뿐이다. 기훈은 모든것을 다 가졌다고 생각할 만큼 자신감이 넘치고 자신의 주변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에 자기가 중심점이라고 착각을 한다. 

영화를 다 보고 나서 나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김기덕 감독의 나쁜남자의 조제현보다 주홍글씨의 한석규야 말로 나쁜남자라는 말이 잘 어울린다고 말이다. 한석규는 조제현이 가졌던 미친 사랑의 감정마저도 없는 인간이다. 물론 그 미친 사랑이 자기 여자를 창녀로 만든다는 부분에 대해서는 더이상 언급하고 싶지도 않다만 어찌 되었건 그것도 사랑이라고 우길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한석규는 사랑조차도 하지 않았다. 단지 아내 이외에 자신의 정액을 뿌릴 여자가 필요했을 뿐이다. 그는 어느 누구에게도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다. 자기가 배신을 한 아내 수현에게도 또 정상적인 만남을 가지지 못하는 가희에 대해서도. 단지 그는 이 모든게 재밌는 게임처럼 느껴지고 자신은 아주 능숙한 게이머라고 생각할 뿐이다.


이 영화는 개봉 전부터 많은 화재를 모았다. 부산국제영화제 폐막작 인것도 그러했지만 배우 한석규가 다시 예전에 말아먹은 이중간첩 이전의 영향력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인가. 또 비교적 초창기 데뷔작인 송어와 오.수정을 제외하고는 배드신을 하지 않았던 이은주가 한석규와 꽤 수위높은 정사신을 찍었다는것. 그리고 마지막으로 아주 천박한 관심이긴 하지만 이미 누드를 찍은 성현아가 이번에는 얼마나 더 벗은몸을 보여 줄 것인가.

내가 생각하기에는 한석규는 이 영화로 인해 다시 예전의 위치를 어느 정도는 되찾을것 같다. 그가 연기를 잘 해서라기 보다는 이 작품이 흥행을 할것 같은 예감이 들기 때문이다. 한석규는 실패작인 이중간첨 이후 아주 오랜만에 다시 시작했고 또 이전의 인기를 되찾아야 한다는 강박관념속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는지 초록물고기때와 같은 살아 움직이는 연기를 하지는 못했다. 물론 아주 디테일하고 노련하게 연기를 하기는 했지만 그게 한석규라는 배우의 베스트인가 라는 질문에는 고개를 갸우뚱거리게 된다. 그리고 이은주는 비록 영화가 아닌 드라마 불새로 인한 것이지만 한참 올라있는 그녀의 주가를 생각할때는 꽤 과감한 연기를 선보인다. (하지만 전혀 에로틱하지는 않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성현아. 그녀는 어쩌면 여기서 감독이 천박한 호기심을 가진 관객들과 한석규를 동일시 시킨 부분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녀는 우리의 예상 혹은 바램과 달리 차분하고 얌전한 여자로 나온다. 물론 교묘한 편집 때문에 예고편에서는 마치 그녀가 한석규를 유혹하는 것 처럼 나오지만 말이다. 예고편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주홍글씨의 예고편은 진정한 편집의 승리이다. 내가 본 예고편 중에서 주홍글씨 예고편은 드물게 수작이었다. 요즘 영화 예고편을 보면 어떻게서건 관객을 끌어들이기만 하면 그만이라는 생각을 하는 것 같다. 이미 영화의 하이라이트 및 엑기스는 다 모아서 보여주는 바람에 관객이 영화표를 끊도록 할지는 모르겠지만. 막상 표를 끊은 관객들은 영화가 예고편 외에 더 볼게 없는 최악의 상황을 만든다. 그에 비해 주홍글씨의 예고편은 적당히 흥미를 유발하면서도 영화의 중요한 거의 대부분을 감춤으로 인해 관객들로 하여금 예고편을 보고 지례짐작 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영화를 보게되는 재미를 제공한다.

제일 처음 이 영화를 접했을때 나는 영화 누구나 비밀은 있다를 떠 올렸다. 한 남자와 세 여자라는 기본 구성도 그렇고 누구나에서 재즈 가수로 김효진이 나왔다면 주홍글씨에서는 이은주가 재즈가수로 나오는것.  거기다 유혹에 관한 얘기라는 것까지. 누구나가 유혹에 관한 청소년 버전이었다면 주홍글씨는 성인버전이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이 두 영화는 극히 일 부분마저 닮지 않은 영화였다. 내 예상중에 맞아 떨어진 것은 누구나가 청소년 클린 버전이라는것. 주홍글씨가 노컷 성인버전 이라는 것만 맞았다. (배드신의 수위에 따른 구분이 아닌 내용의 충격성과 엔딩을 어떻게 끌어내느냐에 관한 얘기이다.)

만약 불륜의 짜릿함. 그리고 그에따른 약간의 응징 정도를 생각하는 관객이라면 이 영화를 보지 않기를 권한다. 생각보다 영화는 훨씬 충격적이다. 그리고 감독은 이 한편의 영화를 통해서 참으로 여러가지 얘기를 한다. 내가 느낀 그 얘기들을 하자면 스포일러가 너무 강해져 버리기 때문에 여기서는 할 수 없지만. 각자의 생각에 따라 이 영화는 여러가지의 해석이 나올 수 있다. 어쨎든 단순하게 불륜 나빠요. 혹은 불륜은 짜릿짜릿해요 식의 영화는 아니다. 끝으로 한마디 덧붙이자면 세상을 아름답게 보고 싶은 사람은 역시 영화를 보지 않기를 바란다. 영화를 본 당시보다 보고 난 후의 아우라가 너무 강하다. 그리고 영화의 반전이라면 반전이랄까 뭐 그런게 등장하긴 하는데 변혁 감독은 그 반전에 크게 기대지 않는다. 반전이 중요한게 아니라 반전을 알고 난 이후 극중 한 배우가 보이는 반응이 더욱 더 충격적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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깍두기 2004-10-29 13: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굉장히 보고 싶게 쓰셨네요.
(참, 님 덕분에 다빈치 코드 잘 봤습니다^^)

플레져 2004-10-29 13: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영하의 데뷔작 "거울에 대한 명상" 이 원작이래요.
소설의 내용과 영화는 마니 다른 듯 한데요.
안보려고 했는데... 보게 만드시다니...^^
추천이어요~!

플라시보 2004-10-29 14: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깍두기님. 저 영화 스포일러 피하기가 너무 힘들었어요. 흐흐. 보셔도 돈이 아깝지는 않을것 같습니다. 단. 아름다운 얘기는 아니라는걸 미리 알고 보셨으면 해요^^ (제 덕분에 다빈치 코드를 잘 봤다는건 사진을 말씀하신 거겠지요?^^)

플레져님. 아. 안보려고 생각하셨으면 님의 생각대로 밀고 나가심이..(하하. 나중에 행여라도 원망들을까 깨갱하는 것입니다.) 추천 감사합니다.^^

nugool 2004-10-29 17: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그래도 이 영화 너무 보고싶었는데.. 보셨군요. 충무로에서는 이 영화로 엎어졌던 한석규가 다시 일어날 수 있을까... 라며 관심이 많다던데... 자세한 정보를 피하고 싶어서 님의 소중한 글을 띄엄띄엄 읽었어요. ^^;;;

플라시보 2004-10-29 17: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후훗. 나름대로 스포일러 하지 않으려고 애를 썼으나 그래도 어떤 식으로건 영화에 대한 정보가 많이 담겨 있을테니 띄엄띄엄 읽기를 잘하셨어요. 제가 보기에는 한석규의 연기력 때문이라기 보다는 흥행에 성공을 해서 한석규가 다시 일어나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네요.

깍두기 2004-10-29 18: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안 착하고 안 아름다운 얘기 좋아해요^^(그래서 올드보이도 자알~ 봤지요)

마냐 2004-10-30 00: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저두 빨리 올려야쥐..'주홍글씨'...플라시보님껄 컨닝해야겠어요. 흐흐.

2004-10-30 03: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플라시보 2004-10-30 10: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깍두기님. 저도 안 착하고 안 아름다운 얘기 중에 좋아하는게 꽤 있습니다. 님이 말씀하신 올드보이도 그렇구요. 지구를 지켜라도 그렇고. 복수는 나의것, 송어 등이 떠오르네요.^^

마냐님. 후훗 컨닝할 꺼리가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마냐님 리뷰. 기대 만땅입니다.

속삭이신분. 성현아라는 배우를 쓰는 것에는 일종의 두가지 의미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일단은 이슈가 되죠. 영화사 입장에서는 돈 안들이는 흥보가 될껍니다. 성현아씨의 경우 마약과 누드라는 여배우로써는 어쩌면 생명이 끝날수도 있는 행보들을 보여왔기 때문에 그녀의 이름 만으로도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셈이죠. 거기다 우리나라 여배우들은 몇몇을 제외하고는 노출에 극도로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데 성현아라는 배우는 연출자 입장에서 그 부분에 대해 비교적 쉽게 협상(?)이 가능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만약 노출에 대해 성현아씨가 알러지 반응이 있었다면 누드화보 같은걸 찍지는 못했을테니까요. 끝으로 하나만 더 덧붙이자면 성현아씨의 전작이 해외영화제에서 상을 받았기 때문에(비록 그녀의 연기력 만으로 상을 받은건 아니지만) 단순히 노출이 가능한 이슈메이커라는 것에서 상당부분 벗어날 수 있다는 계산도 나올것 같네요. (제가 보기에는 김기덕 감독이 빈집에서 이승연씨를 택한것도 비슷한 맥락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승연씨의 경우 상이나 뭐 그런걸로 연기력을 입증받은적은 없지만 한때는 대한민국에서 제일 잘나가는 여자 연예인이었으니 성현아씨와 마찬가지로 단순이 이슈메이커만은 아니지 않나 싶습니다.)

연보라빛우주 2004-11-06 23: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 그래도 김영하 소설이 원작이 아니냐고 물어보고 싶었어요. 구도가 너무 비슷해서. 한 여자가 더 등장하는 것도 다르고 영화에서 주고자 한 메시지와 김영하 소설에서 주고자 한 메시지와는 전혀 다르겠지만. 플레져님 말씀을 보니 제 생각이 맞는 것 같군요. 차라리 제목을 다르게 다는 게 나을 듯 했네요. 다들 소설 주홍글씨를 생각하는 것 같던데, 말이죠.


연보라빛우주 2004-11-06 23: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간만에 들렀네요. 플라시보님...^^

플라시보 2004-11-07 10: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연보라빛 우주님. 아. 겁나게 반가워요^^ 음. 저는 김영하 소설을 보지 못해서 잘 모르겠지만 플레져님 말씀이 원작이 김영하라고 하네요. 그리고 저도 주홍글씨라는 제목이 별로 마음에 안들어요. 어떻게 생각하면 주홍글씨의 목사와 한석규가 똑같이 좀 비겁하고 그렇긴 한데 그것만 가지고는 저 제목을 붙일 필요가 없을것 같아요. 아무튼 영화는 재밌었습니다.^^

마태우스 2004-11-11 10: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해가 안가서 잼 없었어요.... 머리나쁜 사람도 보지 말라고 해주세요^^

플라시보 2004-11-11 21: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 그러세요. 이런...(근데 님. 머리 좋잖아요. S대 아무나 들어가는거 아닌걸로 아는데...으흐흐흐)
 





 

 

 

 


 

 

 

 

 [화양연화]

참 오래도 기다렸다. 화양연화가 2000년에 개봉했으니 무려 4년을 기다린 셈이다. 왕가위의 신작 2046은 이미 화양연화를 찍을 때 부터 예고를 했으므로 그 기다림은 더 지루했다. 아예 모르면 모를까 존재를 알고 있지만 언제일지 모르는 기다림은 사람을 지치게 한다. 그래서 나는 아주 지친 기분으로 이 영화를 봤다. 배가 고플때는 그 시기를 지나쳐 버리면 더이상 배가 고프지 않다. 나는 이 영화에 목마르지 않았다. 너무 오래 기다렸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럴까? 2046은 이미 배고픈 시간은 지나버렸지만 어떻게건 끼니를 떼워야 한다는 생각에 먹는 라면같은 영화였다. 만약 배가 고플때 먹었더라면 라면은 맛있었을까? 불행하게도 나는 그 답을 알수가 없다.

2046을 얘기하려면 먼저 화양연화를 짚고 넘어가야 한다. 이 영화와 화양연화는 연장선상에 있다. 주인공의 이름이나 중요한 기억들이 모두 화양연화에서 넘어왔다. 시간상으로 2046은 화양연화 그 이후가 된다. 혹시 화양연화를 보지 않았거나 화양연화를 봤지만 기억이 나지 않는 사람들을 위해 잠깐 줄거리를 소개하겠다. 초우(양조위)라는 이름의 남자와 수리첸(장만옥)이라는 이름의 여자가 있었다. 그들은 각자의 배우자가 있으며 연립주택에 이웃해서 살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날 초우의 아내와 수리첸의 남편이 바람을 피우고 있음을 알게 된다. 이들은 만나서 어떻게 해야 할건지를 의논한다. 그러다가 우습게도 자신들마저 사랑하게 되어버린다. 하지만 그 사랑을 확인하지 않는다. 자신들의 배우자가 바람을 피웠기 때문에 이미 사랑으로 충분하게 상처를 받은 그들이기 때문에 그 사랑을 그냥 뭍어두기로 한다. 신문기자인 초우는 싱가폴로 발령을 받으면서 수리첸에게 함께 가자고 하지만 수리첸은 거절한다. 그는 캄보디아의 앙코르와트 사원에 가서 그녀에 대한 사랑을 벽에 난 구멍에다 고백을 한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처럼 비밀을 구멍에다 대고 말한다음 그 구멍을 막아버린다. 그러면 비밀이 탄로날 일도 없으며 누군가에게 말을 하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느라 힘이 들 일도 없다.) 

2046에 등장하는 남자의 이름은 초우(양조위)이다. 초우는 신문기자인 동시에 작가이다. 초우는 싱가폴에서 홍콩으로 막 도착해서 여관을 찾는다. 예전에 수리첸(장만옥)과 함께 묵었던 방번호인 2046호에 묵으려고 하지만 그 방은 수리를 해야 한다고 해서 그는 2047호에 묵는다. 하지만 알고보니 2046호는 수리중이 아니라 루루(유가령)이 자살을 했기 때문에 그 흔적을 치우려고 했던 것이다. 2046호에 또 다른 여자 바이링(장쯔이)이 묶는다. 초우와 바이링은 사랑을 나누는 사이가 되지만 진심인 바이링에 비해 초우는 그녀를 단지 즐기기 위해 만나는것 이상의 의미를 두지 않는다. 여관 주인에게는 딸이 있는데 첫째딸인 왕징웬(왕정문)은 일본인인 애인 (기무라 타쿠야)를 사랑한다. 하지만 아버지는 그들의 사랑을 반대한다. 초우는 기억을 떠 올린다. 예전에 싱가폴에서 검은거미라 불리우던 수리첸(이번에는 장만옥이 아닌 공리이다.)을 만났던 기억. 그리고 루루(유가령)을 만났던 기억. 초우는 소설을 쓰게 된다. 기차를 타고 여행을 하는 남자와 그 남자가 사랑하게 되는 두명의 안드로이드 여 승무원 (왕정문, 유가령)에 관한 이야기인 2046을 쓴다.



 

 

 



 

 

2046

사실 2046은 무척 난해한 영화이다. 내가 줄거리를 쓰면서도 저게 맞는건지 틀리는건지도 모르겠을 정도로 말이다. 아마 말로 줄거리를 설명해보라고 했더라면 나는 한 마디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나마 단편적으로 툭툭 끊어지더라도 어떻게건 이어나가기만 하면 되는 글로 썼으니 나는 저만큼이라도 2046에 대해 설명할 수 있었다. 화양연화와 끝임없이 연결된 것 같으면서도 따로 노는 2046은 거기다 초우가 쓰는 소설 2046과 뒤섞여서 도무지 언제가 언제인지 알 수가 없다. 거기다 수리첸이라는 이름은 예전의 여인인 장만옥과 공리가 똑같은 이름이다. 초우는 화양연화와 이름도 같고 직업도 같으며 캄보디아와 싱가폴에 있었던것 마저 같지만 인물로만 보자면 완전히 다른 인간이다. 화양연화에서의 그는 따뜻하고 소심한 남자였고 사랑에 대해 용기를 가지지 못했던 남자였던 반면 2046의 그는 냉소적인 바람둥이로 변해버렸다. 그래서 나는 도저히 그 두 인물을 동일한 인물이라고 보기가 힘들었다.

내가 처음으로 왕가위라는 이름의 감독을 알게 된 것은 대학에 막 들어가서였다. 내 친구의 자취방에서 짜파게티를 먹으며 왕가위의 아비정전을 봤었다. 그때 받은 충격은 무척 컸었다. 저런 영화도 있구나. 세상에는 저런 스타일로 영화를 찍는 감독도 있구나 하고 말이다. 그리고 그 이후 중경삼림과 타락천사 동사서독 그리고 해피투게더에 이르기까지 나는 왕가위 감독의 열혈 신봉자가 되었다. 2000년이 되어서 본 화양연화는 여태까지의 왕가위 감독이 보여준것과는 조금 다른 아주 정적인 작품이었는데 나는 딱 그때까지가 왕가위 감독의 감각이 살아있던 마지막이 아니었나 싶다. 2046은 다시 예전으로 리턴한것 같은 분위기를 풍긴다. 하지만 감각적이라는 것은 무한할 수 없나보다. 인간의 젊음이 영원할 수 없는것 처럼 말이다. 왕가위의 2046은 그 작품에 등장하는 여 배우들 만큼이나 서글프다. 한때는 아름답고 젊었던 그녀들. 물론 지금도 여전히 아름답지만 그녀들의 얼굴은 세월이 느껴졌다. 차라리 자연스러운 나이의 흔적이면 서글프지 않았으련만 여전히 탱탱한 피부와 주름하나 없는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왕정문도 유가령도 공리도 모두 서글펐다. 오직 실제로도 젊은 장쯔이만이 서글프지 않은 유일한 인물이었다. 왕가위 영화 역시 예전의 감각적인 모습으로 돌아가려고 하지만 이제는 그의 감각은 구닥다리가 되어버렸다는 것을 도저히 숨길수가 없었다. 배우가 보톡스와 화장과 주름살제거 수술로도 세월의 흐름을 감출 수 없듯. 왕가위 감독의 감각도 이제는 퇴보했음이 느껴졌다.

부산 국제 영화제에서 이 작품은 개막작이었고 4분 54초만에 표가 매진되어 버렸다. 그만큼 왕가위 감독이 오랜만에 작품을 냈다는 얘기도 될 것이고 또 아직까지는 왕가위감독의 브랜드 네임이 먹힌다는 소리도 될 것이다. 영화 중간중간에는 LG마크가 자주 등장한다. 왜 그런가 했더니 나중에 자료를 찾아보니까 LG에서 화양연화 개봉당시 내한한 왕가위감독과 PPL 계약을 맺었다고 한다.(계약금액은 5억 7천만원이고 LG마크는 초우가 쓰는 소설인 2046의 미래 도시에서 총 4번정도 등장한다.)

너무 큰 기대를 하고 봐서 그런지 이 영화에 대해 아무런 느낌이 없다. 굳이 가지라면 서글픔 정도랄까. 같이 봤던 친구 역시 왕가위의 열혈마니아 였었는데 그녀는 심지어 영화를 보다가 졸기까지 했다. 내 개인적인 바램으로는 이제 더이상 왕가위가 한때 그의 영화속에서 별이었던 배우들을 데리고 영화를 찍는 일은 그만했으면 좋겠다. 늙은 배우들을 등장시키지 말라는 얘기가 아니다. 왕가위의 영화에서 젊고 아름다웠던 그들은 아직까지도 그 이미지를 그대로 끌고 가려고 하고 왕가위 역시 그들이 그때의 분위기를 내 주기를 바란다. 하지만 세월은 어떤걸로도 막을수가 없다. 그리고 흔적을 지우는 것도 불가능하다. 왕가위에 한참 미쳐있던 스무살의 여자가 이제는 서른이 되어버린것 처럼 말이다.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아쉽고 서러워도 세월이 가는걸 인정해야만 한다. 이제 왕가위 감독은 세월의 흐름을 받아들일때가 온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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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verick 2004-10-14 19: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왕가위보다는 양조위때문에라도 이 영화를 꼭 보려구요..
양조위의 그 표정은 정말이지... 전 남자이긴 합니다만 그의 표정을 보려고
그가 나오는 영화는 다 보려고 하는 편이죠
플라시보님 글대로라면 스포일러를 좀 보는게 나을것 같네요 그래야 이해가 빠를듯 ㅎㅎ

LAYLA 2004-10-14 23: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동사서독볼때 헷갈려서 엄청 고생했었는데 이번에도 ...고생할거 같네요...^^
호화캐스팅이 무조건 좋은게 아니군요 :-)

플라시보 2004-10-15 10: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maverick님. 네 저 영화는 미리 사전정보를 약간 가지고 보는게 좋을것 같습니다. 특히나 화양연화를 보지 않았다면 도무지 무슨 내용인지 이해하기가 힘들거든요. 음. 그리고 양조위. 저도 참 좋아라 하는 배우입니다.^^

LAYLA님. 제가 동사서독을 비디오로 가지고 있었거든요. 한 세번 정도 보니까 완전하게 이해가 가더라구요. 아마 극장에서 봤으면 전부 내용에 대해 토론하느라 정신이 없었을듯^^

tarsta 2004-10-15 20: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악 동사서독. 저는 그때 그 영화에 푹 빠져서는 극장에서만 네 번 봤습니다. 같은 영화를 극장에서 두 번 본 적이 거의 없으니 저로서는 아주 특별한 경우였죠. 비디오로 본 것 까지 합치면.. 꽤 봤죠. 대사를 거의 받아적다 시피 한 적도 있었어요. 그 겨자색사막, 황량하기 그지 없는데도 옐로우오커의 노란 색이 자꾸 눈을 잡아 끌어서 황량하지만 어쩐지 썰렁한 느낌은 없던 그 사막. 언젠가 사막에 한 번 가보고 싶다고 생각하게 됐어요. 실제로 보면 아마도 다른 느낌이겠지만..
비디오로 가지고 계시는군요. 괜히 반가워서 한마디 남기고 갑니다. :)

플라시보 2004-10-16 10: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동사서독 하도 많이 봐서 대부분의 내용은 다 외웁니다. 흐흐. 참 괜찮고도 특이한 영화였죠.

마냐 2004-10-17 19: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벼르고 벼르는 영화인데....옆지기가 "따로 보자"고 하더군요. 이미지 과잉이 이젠 싫다나요...그래서, 잘됐다..이 영화는 옆지기와 보지 않는게 더 좋겠다...하면서 더욱 기다리고 있었슴다..ㅋㅋㅋ 암튼, 님의 리뷰는 좋은 참고가 될 듯 합니다. 한 템포 늦춰서 기대를 조금 죽이겠습니다.
 


이 영화를 보기 전 부터 내 친구는 광분했더랬다. 엘르걸이라는 잡지에서 뽑은 세계 10대 꽃미남에 우리의 원빈이 당당하게 등극했기 때문이다. 반지의 제왕에서 요정으로 나온 꽃미남 올랜드 볼룸. 잘생긴게 축구까지 잘하는 데이비드 베컴. 안드로이드 남창을 연기할 정도로 미끈한 주드로. 더이상 말이 필요없는 조니뎁 등등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된 것이다. 아. 우리의 꽃미남 원빈. 세계로 뻗어 나가는구나. 쫘악 쫘악 뻗어 나가거라 대한의 플라워 프리티 보이여!

처음에 나는 이 영화가 친구의 곽경택 감독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었다. 배경도 부산이고 (친구의 배경은 부산. 똥개의 배경도 부산. 곽경택의 고향은 부산) 주인공이 사투리를 쓰며 거기다 무엇보다도 김태욱 (친구: 도루코역. 똥깨: 진묵역)과 친구에서 선생으로 등장했던 머리털이 별로 없던 배우가 여기서도 선생으로 나오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때 보니 곽경택이 아니라 안권태 감독이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그는 영화 친구의 조감독이었었다.) 안권태 감독은 자신의 데뷔작을 영화 친구에 그 뿌리를 두고 안전하게 출발했다. 만약 감독 이름이 보이지 않았다면 곽경택 감독이었다고 다들 느낄만큼 말이다.

이 영화는 원빈의, 원빈에 의한, 원빈을 위한 영화이다. 신하균이라는 연기를 꽤 하는 배우가 등장하기는 하지만 그의 비중은 그냥 멋진 원빈의 형 정도에서 더 이상 발전하지를 못한다. 싸움 잘하고 욕 잘하는 불량스런 학생 원빈은 시종일관 후줄그레한 추리닝을 입지만 그 마저도 '니가 입으면 집구석 웨어 내가 입으면 빠쑝' 으로 승화시킨다. 너무 잘 생긴 배우들이 흔히 그렇듯 보는 손해도 원빈은 피해가는듯 보인다.(장동건의 경우 잘생긴 얼굴 때문에 배우로 인정받기까지 고생아닌 고생을 해야했다.) 이 영화로 인해 원빈이라는 배우는 막내 혹은 동생의 이미지를 더욱 확고하게 굳힌다. 예전에 TV드라마 꼭지에서도 원빈은 막내였으며 장동건과 함께한 태극기 휘날리며에서도 동생이었고 본 영화에서도 또 동생이다. (여기서의 동생이미지는 태극기 보다는 꼭지에서의 동생과 그 분위기가 사뭇 비슷하다.)



내용은 별거 없다. 태어날때 부터 언청이 (구개열)로 태어난 형 신하균. 형이 태어나자 마자 아빠는 죽고 원빈은 유복자이다. 엄마는 남편없는 여자들이 흔히 그렇듯 억척스럽게 아들들을 키운다. 신하균은 말잘듣고 착한 범생이 스타일이나 외모때문에 늘 엄마의 사랑과 관심을 독차지 한다. 원빈은 자연스럽게 엄마의 사랑을 갈구하다가 껄렁껄렁해져 버린 (하지만 마음속 깊은 곳에는 가족에 대한 사랑으로 그득한) 아이로 자란다. 둘은 같은 학교에 같은 학년 같은 반이 되고 원빈은 형같은 아우. 신하균은 형 대접을 못받는 아우같은 형이 된다. 그러다가 이러저러한 사건에 휘말리고 어쩌고 저쩌고 하다가 보니 단 한번도 원빈을 형이라 부르지 않았던 원빈은 뒤늦게서야 형에 대한 사랑을 밖으로 표출한다.

이 영화가 곽경택 영화의 아류작 쯤으로 보이는 결정적인 이유는 친구나 똥개에 나왔던 배우들 때문만은 아니다. 사투리 나레이션으로 시작하는 것. 양념조의 예쁜 여학생이 등장하는것 (똥개에서는 학생이 아니라 다방 종업원이었지만) 그러나 주인공과 본격적인 로멘스에 돌입하지는 못하고 그냥 미묘한 관심만 가지고 맴도는것. 그리고 무엇보다도 여성은 완전히 거세된듯한 100% 마초적인 남자영화라는 것이 그 이유이다. 주인공이 어린시절부터 나와서 현재로 넘어가는 전개 스타일. 그리고 중간중간 과거 회상장면이 등장하는 것. 잘생긴 배우를 터프하게 혹은 망가지게 그리는것 (친구에서의 장동건. 똥개에서의 정우성. 그리고 이 영화에서 원빈) 까지 무엇 하나도 곽경택의 연출 스타일을 벗어나는게 없다. 친구의 조감독이었으니 별 수 없잖느냐고 말하면 할 말은 없겠지만 그래도 스승과 똑같은 제자는 재미없다.

이 영화가 더더욱 아쉬웠던 것은 비단 곽경택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한 스타일 때문만은 아니다. 복수는 나의것과 지구를 지켜라에서 더없이 좋은 연기를 보여줬던 배우 신하균이 화성으로 간 사나이에 이어 이 영화에서 마저 자신의 연기를 십분 발휘하지 못하고 그저그런 평이한 역에 머무르려고 한다는 것이다. 과거 서프라이즈라는 영화가 신하균이 잠깐 정신을 못차리고 실수 한 것으로 여겼었는데 이렇게 연타를 쳐 버리면 실수라고만 할 수는 없게 된 것이다. 잘생긴 꽃미남 배우의 들러리를 하기에 신하균은 연기를 너무 잘 하는 배우이다. 우리형에서의 종현역은 그가 슬렁슬렁 해도 어느 정도는 할 수 있는 역이었다. 배우에게 베스트를 이끌어내는 것은 감독이다. 하지만 감독은 원빈을 멋지게 그리는 것에 정신이 팔려서 이 연기 잘 하는 배우를 그냥 평이한 조연쯤으로 내버려두는 실수를 저지른것 같다.

원빈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그리고 친구와 똥개를 재미있게 본 사람이라면 이 영화 역시도 그럭저럭 재밌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굳이 극장에 가서까지 볼 필요는 없을것 같다. 비디오로 보거나 아니면 명절을 기다렸다가 TV에서 해 줄때 봐도 결코 늦지 않을 영화이다. 아. 그리고 이 영화에서 엄마로 등장하는 김해숙씨는 발군의 연기를 보여준다. 오 해피데이에서 오바하는 장나라의 엄마로 나왔을때는 그저 그렇다가 이 영화에서는 무척 인상적인 엄마를 연기한다. (비록 엄마의 캐릭터 자체는 진부하기 이를데 없지만)

한가지 덧붙이자면 김태욱의 연기가 참으로 볼만했다. 언듯 생각하면 친구에서나 똥개에서나 이 영화에서나 모두 깡패 연기를 했기 때문에 '쟤는 또 깡패냐? 지겹다 지겨워' 할 수도 있겠지만 세 영화에서 그의 캐릭터를 찬찬히 비교를 해 보면 전부 다르다. 친구에서의 도루코는 의리도 있고 카리스마도 있는 깡패로 나왔으며 똥깨에서의 진묵은 비열하고 비리비리하고 거기다 약간 없어보이기까지 하는 깡패. 이 영화에서는 그야말로 삼류 똘마니로 나온다. 깡패라는 이름의 똑같은 범주안에 든 캐릭터를 저렇게 다양하게 소하를 해 내는것을 보니 그 배우가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이제는 깡패 전문 배우가 된 듯 해서 약간은 지겨운것도 사실이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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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리 2004-10-13 16: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멋진 영화평입니다. 볼 생각도 없엇지만 님의 평을 보니 더더욱 보기가 싫어지는군요. 그리고 전 형이 없답니다.

부리 2004-10-13 16: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반짝반짝 빛나는 추천은 저의 소행입니다. 참고하세요

플라시보 2004-10-13 16: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흐흐. 추천 감사하니다. 님의 아름다운 소행. 내 길이길이 기억하지요^^

sooninara 2004-10-13 18: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어제 우리형 봤는데..님의 글을 보니 전 페이퍼 올릴께 없네요^^
츄리닝만 입어도 베컴 저리가라..멋있던 원빈..
드라마 시티틱한 다 보이는 줄거리..그래도 원빈 얼굴만으로도 즐거웠답니다..
같이 본 친구두명과 셋이서 줄줄 울고 나왔다죠..

플라시보 2004-10-13 19: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화 중간에 찡한 부분이 있었더랬죠. 뻔한 줄거리임에도 불구하고 울게 만든것은 감독의 힘이었다기 보다는 배우들의 연기력에 크게 의존한 것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나온 배우들 모두가 자기가 맡은 역활을 비교적 잘 해낸것 같습니다. (신하균의 경우는 분명 잘 하긴 했지만 더 잘할수 있는 배우였기에 안타까웠구요.)

sweetmagic 2004-10-13 19: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이거 엄마랑 마징가랑 보러가기로 해서 님 리뷰 못 봤어요 영화보고 나서 추천! 드릴게요 히히히

플라시보 2004-10-14 10: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흐흐. 그러세요 매직님^^ (마징가란 남동생 맞죠?)

흰 바람벽 2004-10-15 16: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휴~ 역쉬 안보길 잘한거 같아요. ^^
저도 감독이 곽경택으로만 알고 있었네요. 이런~ (그래서 보면서도 왜 이런 비슷한 영화를 계속 만들어 내는거지 했는뎅.. )

플라시보 2004-10-15 18: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영화 제작사가 친구랑 챔피언 똥깨등 곽경택 영화 제작한 곳이더군요. 대표는 친구에서 선생으로 나온 사람 ('어이 거기 쥐새끼 같은놈 이사가느라 욕본다' 한 선생님요) 이구요. 그 영화사에서는 아예 그런 분위기의 영화만 줄곧 제작하기로 독하게 맘 먹은것 같습니다.^^

마냐 2004-10-17 19: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으...너무나 예쁜 원빈 만으로 볼만하다는 평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줄거리에 따르면, 꼭 그런 식으로 형제의 화해를 유도해야 하나..싶은게 마음에 안들어서...음..여전히 고민중임다.

marine 2004-12-01 17: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화 보고 친구랑 둘이 그랬죠 "야, 이거 60년대 영화 아니냐?" 그래도 원빈은 정말 멋있죠? 원빈 보고 아무 감정 없었는데 그 영화 보고 감탄했다는 거 아닙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