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사 10 - 완결
우루시바라 유키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09년 3월
평점 :
절판



최근 절판의 위험을 감지하고 만화책들을 다시 모아보려고 한다. 물론 신간도 끌리지만 쌓여만 가는 책들과 자리가 부족한 책장을 고려해 예전에 사두었던 책들의 뒷권만 사려고 (노력)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충사/는 어쩐지 '아..지금 사두지 않으면...' 하는 느낌이 아슬아슬하게 드는 책이었다. 뭐, 언젠가 애장판으로 나오지 않을까 싶기도 했지만 그건 장담할 수 없는 일이니까. 그래서 이번에 큰 맘 먹고 9권을 한꺼번에(한 권은 이미 집에 있었기 때문에) 질러버렸다. 신기하게도 소설책과 만화책은 택배를 받고나서의 마음이 사뭇 다르다. 어느 책이나 설레는 건 마찬가지지만 아무래도 만화책이 더 '보기 쉽기' 때문일까 두근두근 신이 난다. 굳이 분석하자면 불쑥 튀어나오는 조급증 덕에 빨리 읽을 수 있는 책에 기뻐진 거지만.

 

/충사/가 도착하던 날은 아직 학기 중이었기 때문에 택배를 받아본 건 엄마였고 나는 저녁 무렵이 다 되서야 택배를 뜯어볼 수 있었다. 묵직한 택배 박스가 책으로 꽉 채워져 있다는 걸 느낄 때면 뜯기가 아까워진다. 선물을 풀러보기 전의 두근거림 같은게 사라질 것 같아서. 물론 난 내용물을 다 알고 있지만 말이다. 그래도 새 책이다! 싶은 마음에 상자를 열고 책들을 침대 위에 쏟아부었다. 어디서 봐도 재미는 덜하지 않겠지만 책은 자고로 편하게 봐야한다는 게 내 진리다. 추운 날은 침대 위에 작은 책상을 펴놓고 이불을 뒤집어 쓴 채 읽는 게 딱 좋다. 거기에 아이스크림이 있으면 더욱 좋겠지만.

 

게다가 '충사'는 어쩐지 침대가 잘 어울리는 이야기다. /충사/는 어딘가 어린 시절 할머니가 머리맡에서 들려주던 전래동화 같은 분위기를 풍기기 때문이다. (물론 우리 할머니는 평범하게 혹부리 영감 같은 이야기를 해주셨지만) 조근조근 펼쳐지는 이야기, 라는 느낌이랄까. 아마 그건 중간중간 나오는 작가의 '할머니/할아버지가 겪은 이야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요즘에는 좀처럼 듣기 힘든 여우/도깨비에 홀렸다-하는 이야기들이 잔뜩 나와 보고있으면 어쩐지 내가 어린 시절로 돌아가 이불 속에서 턱을 괴고 이야기를 듣는 기분이 든다. 이불 속에서 꼼지락 거리며 숨을 죽이고 다음 이야기를 기다리던 그 때의 기분에 취하려면 역시 진짜 이불 속이 좋겠지.

 

내가 만화를 고르는 기준은 대충 3가지로, 그림체와 스토리, 장르-정도로 나뉜다. 그림체, 라고 해도 딱 이거다! 싶은 그림체라기 보다 보기에 예쁘거나 귀엽거나 정감가는 스타일이 좋다. 스토리는 뭐랄까, 개연성이 너무 부족하다거나 너무 노골적인 '인터넷 소설' 류만 아니면 좋겠고... 장르는 탐정/추리 장르면 스토리와 그림체는 거의 상관하지 않는다는 의미라 별 도움은 되지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충사를 처음 고른 건 아무래도 '스토리' 쪽이었다. 당연히 탐정/추리 장르는 아니었고 (사실 제목만 보고는 세*코 이야기, 같은 장르인 줄 알았는데...) 그림체는 확실히 정감가는 스타일이었지만 그 당시 난 귀여운 스타일을 선호했기 때문에 볼까말까 상당히 망설였던 만화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을 보게 된 건 사실 애니판 충사를 먼저 봤기 때문일까. 애니판 충사는 상당히 원작에 충실해서 재미삼아 보기 시작했는데 홀딱 반해 (아직 읽지 못한) 원작까지 사랑스러워지는 작품이었다.

 

/충사/는 옴니버스 식으로 이어져서 몇몇 등장인물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그 이야기에서만 등장한다. 덕분에 몇 권을 집어들든 재미가 덜하지 않는 장점이 있다. 주인공인 '깅코'는 늘 자유롭고 담담한 얼굴을 하고 떠돌아다니는 충사다. (이게 이야기가 옴니버스식인 이유) 살가운 얼굴 보기는 하늘의 별 따기인 주제에 속정 많고 오지랖도 넓어서 가는 곳마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사건을 만난다.

 

/충사/는 '판타지' 장르라고 생각한다. 굳이 겹쳐서 넣자면 '드라마' 쪽이겠지만. 진정한 의미에서는 판타지가 아닐까. 엘프나 호빗같은 종족이 등장하지도 않고 마법이 사용되지도 않지만 그런 느낌이 든다. /충사/의 정확한 시대 배경은 잘 모르겠다. 어차피 일본 역사에 대해서 잘 모르니까 더 할 수도 있지만 작가도 딱히 시대에 연연하지는 않기 때문에 모른다고 해서 이야기의 재미가 덜해지는 것도 아니다. 다만 다들 옛날 (일본) 옷을 입는데 깅코는 어째서인지 현대적인 옷을 걸치고 있는걸까... 하는 생각이 문득문득 든다. (아니 정말 왜일까...?)

 

 

어렸을 때, 눈을 감으면 눈 안에서 무언가 반짝 반짝 거렸다. 그 때는 그 작은 빛들이 꾸물꾸물 움직여서 아메바 같다고 생각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낭만이 없는 아이였지만 어쨌든 내가 보기엔 충분히 아메바 스러웠다.

 

/충사/에서는 그걸 '벌레'라고 말한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파리같은 벌레가 아니라, 생명의 근원과 가까운 그런 존재라고. 1권에서 깅코는 "곤충이나 파충류와는 전혀 다른 '벌레'. 대강 설명하면 이래. 이 손의 이쪽 네 가닥이 동물이고 엄지가 식물을 가리킨다고 하자. 그럼 사람은 여기... 심장에서 가장 먼 중지의 끄트머리에 있는 셈이야. 손의 안쪽으로 갈수록 하등한 생물이 되어가지. 계속 따라가다 보면 손목 부근에서 혈관이 하나로 이어져. 여기 있는 것이 균류나 미생물이야. 이 부근까지 거슬러 올라가면 식물과 동물을 구분 짓기가 어려워지지. 하지만...아직 그 앞에 존재하는 것들이 있어. 팔을 따라 올라가 어깨도 지나간다...아마도...이 부근(심장)에 있는 것들을...'벌레'...혹은 '초록'이라고 부른다. 생명 그 자체에 가까운 것들이지."라고 설명한다. 그리고 "충사"란 그런 벌레를 연구하고 다룰 줄 아는 사람들을 말한다. 깅코는 선천적으로 '벌레'가 꼬이는 체질이어서 어느 한 곳에 정착할 수 없어 이곳저곳을 떠돌며 해를 끼치는 벌레를 쫓아내거나 벌레와 함께 살아가는 법을 알려준다.

 

충사를 읽다보면 확실히 옛날에는 '자연'이라는 게 좀 더 생생하고 무섭고 친근한 어떤 것이었다는 걸 느낀다. 충사의 이야기에는 종종 벌레지만 자연현상과 비슷한 것이 나온다. 무지개를 닮은 벌레, 비를 닮은 벌레, 구름을 닮은 벌레... 거스를 수 없는 것, 두려운 것, 풍요로운 것, 이해할 수 없지만 고마운 것. 지금 같이 일기예보도 자연재해를 막을 수 있는 기술도, 복구할 수 있는 기술도 변변치 않았던 옛날에는 자연재해가 어떤 의미였을까. 그제서야 깅코가 말한 '생명 그 자체에 가까운 것들이지',라는 말을 조금 이해한다. 그런 벌레들은 살아있는 자연에서 파생된 것이니까.

 

지금은 설령 '벌레'가 있다해도 알아채는 사람은 하나도 없을 것 같다.

과연 그게 행일까 불행일까.

 

 

이윽고 다리의 통증은..., 마음의 통증까지 수반하게 되었다.
미비하고 하등한 생명에 대한 교만.
이형의 것들에 대한 이유 없는 공포가 야기한 살생.
그런 것들이 적지 않게 감지된 것이다. -2권 /문장의 바다/

 

네 안에 뻥 뚫린 커다란 공동을 꽁꽁 틀어막아.
영영 돌아올 수 없게 돼버리기 전에... -4권 /빈 누에고치 따기/

 

땅 밑바닥은 차가우냐-.
답답하냐.
무서우냐.
괴로우냐.
맑은 물과... 무수한 별들이...
사는 곳. -9권 /호중천의 별/

 

어릴 적 가슴을 설레게 했던 방울소리가
몹시 애절하게 들려왔다.
마치 살을 에는 것처럼 아름답고 슬픈 소리였다. -10권 /방울 물방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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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제인 마플이 죽었다
수잔 캔들 지음, 이문희 옮김 / 지식의숲(넥서스) / 2008년 2월
평점 :
절판



추리 소설 작가 중 누구를 제일 좋아하냐고 묻는다면 다들 어떻게 대답할까? 책 읽는 범위가 의외로 좁아 다른 사람이 어떤 작가를 좋아하고 어떤 책을 읽는지는 오랫동안 내 관심사가 아니었지만, 내가 읽는 책의 카테고리나 작가가 상당히 좁은 범위에 한정되어 있다는 걸 자각한 후 슬슬 다른 사람의 독서습관이 궁금해 지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궁금해진 건 '좋아하는 추리 소설 작가'. 리뷰를 쓴 책만 봐도 극명히 드러나는 내 독서 취향은 추리 소설이 50% 소설이 30%, 동화와 만화책이 각각 10% 가량일거다. (물론 만화책을 소설보다 실컷 읽고 있지만 시리즈물을 하나로 쳤을 때) 그만큼 추리 소설을 읽는 비중이 큰데도 내 '독서 역사 : 추리 소설 편'은 그저 코난 도일 - 모리스 르블랑 - 애거서 크리스티 로 나뉠 뿐이다. 중간중간 다른 작가들의 추리 소설을 읽지만 작가 이름으로 찾아가며 읽은 작가는 저 세 작가 뿐이니까.

 

어릴 적 엄마가 제일 처음으로 사준 전집이 홈즈 / 뤼팽 전집 이었던 관계로 내가 제일 처음으로 접한 추리 소설은 당연히 홈즈와 뤼팽 시리즈였다. 전집은 어쩐지 1권부터 읽어줘야 할 것 같은 느낌에 차근차근 읽었던 기억이 선명한 그 전집은 시리즈의 앞 부분은 뤼팽이고 뒷 부분은 홈즈였다. 뤼팽의 괴도지만 은근한 남자다움과 인간다움에 감정이 끌렸다면 홈즈의 날카로운 추리와 완벽함은 슬슬 발달하려는 내 이성의 롤모델이었다. (하지만 결국 따라잡는 건 무리였다)

 

초등학교까지만 해도 홈즈와 뤼팽에 홀딱 반해 있었던 내 추리 소설 정신계에 큰 변화가 왔다. 중학생이 되고나서 견문(?) 넓히고자 홈즈와 뤼팽의 뒤를 이을 추리 소설 시리즈를 찾다보니 지금은 기억나지 않는 누군가가 '애거서 크리스티'를 추천해 주었다. 그 당시엔 (지금은 검정 책등으로 나오고 있는) 해문 출판사의 '애거서 크리스티 전집'이 문고판처럼 작(지만 가볍지는 않)게 나와 있었는데 총 80권이나 되는 길고 긴 전집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게 내 책 수집의 시작이었던 것도 같다. 한 푼, 두 푼 모아서 산 애거서 크리스티 전집은 확실히 그 노력의 보상이 되었다.

 

신선한 발상과 트릭, 거기에 뤼팽의 인간미 넘치는 매력이 빛나는 뤼팽 시리즈, 정교한 트릭과 홈즈의 신들린 추리력, 왓슨의 어딘가 어리숙하지만 따뜻한 성품이 매력적인 홈즈 시리즈와 달리 '애거서 크리스티' 시리즈는 주인공이 여러 명(미스 마플, 에르큘 포와르, 부부탐정 등)인데다 어딘가 로맨스 소설적인 분위기의 설명, 다양한 배경 등등 견문 넓히기에는 최적의 추리 소설이었다.

 

내가 이렇게 구구절절 분명 남들은 전혀 관심없을 내 추리 소설 변동기를 써내려가는 이유는 사실 별거 없다. <그리고 제인 마플이 죽었다>에서 애거서 크리스티가 등장하기 때문이다.

 

애거서 크리스티는 그녀의 드라마틱한 소설 같이 드라마틱한 삶의 부분을 안고 살았다. (혹시 궁금하신 분들은 위해 http://ko.wikipedia.org/wiki/%EC%95%A0%EA%B1%B0%EC%84%9C_%ED%81%AC%EB%A6%AC%EC%8A%A4%ED%8B%B0)알만한 분들은 다 아실 애거서 크리스티의 '실종 사건'은 아직도 '진실'이 뚜렷하게 밝혀지지 않고 있다. -라고 해도 총 80권의 책들을 읽어내려가기 바빴던 나는 정작 작가인 애거서 크리스티의 생애나 실종사건, 기억상실증에는 그리 큰 관심이 가지 않았다.

 

하지만 이 책, <그리고 제인 마플이 죽었다>는 소설이라는 허구 속에서 남을 이해한다는 '간접 경험'이 잘 살아있다. '작가'로서만 생각했던 애거서 크리스티의 '인간'으로서의 감정, 상황, 결단을 다시 한 번 (그것이 반드시 진실이라고는 단언할 수 없지만) 살펴보는 계기가 됐달까.

 

쎄쎄는 크리스티타운이라는 테마도시의 이벤트를 총괄하는 업무를 맡은 아마추어 추리소설 작가다. 사랑하는 애인과는 결혼을 결정해야 하고 출판하고자 한 크리스티 자서전은 편집자의 은근한 협박에 유보되고 있지만 크리스티타운의 첫 개장날 개최될 추리 연극에 모든 신경을 집중하고 있던 쎄쎄에게 난데없이 '미스 마플'역의 배우가 사라지는 사건이 일어난다. 최후의 수단으로 스스로 '미스 마플' 역에 도전하는 쎄쎄. 그걸로 그 날의 모든 불행한 사건이 끝날 줄 알았는데...

 

일단, 스토리를 얘기하기 전에 주인공 이름이 '쎄쎄'라 처음 이름이 나왔을 때 나는 외국에서 이탈리아 인사 '챠오'를 쓰듯 중국어로 고맙습니다, 라고 말하는 줄 알았다. 역시나 이름치에 빛나는 착각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제인 마플이 죽었다>는 추리소설로도 애정소설로도 손색이 없는 책이다. 불행히도 아마추어 추리소설 작가 쎄쎄는 회색 뇌세포의 에르큘 포와르만큼 사건을 원활하게 풀어나가진 못하지만 그의 회색 뇌세포를 커버할 수 있는 주변 인물(특히 내가 좋아하는 도트 부인)와의 관계를 재치있고 스릴있게 그려나가 결국엔 올바른 '진실'조각을 찾아낸다. 거기다 현재 애인과의 애정 전선, 어쩔수 없이 마주한 전 남편과 그의 약혼녀 사이의 감정 소모, 알던 사람이 죽었다는 상실감이 뒤섞여 매우 독특하고 복잡한 상황을 만든다.

 

그래도 이 책의 가장 근본적인 '맛'은 수잔 캔들이 사실에 입각해 재구성한 애거서 크리스티의 실종사건이다. 애거서 크리스티의 감정과 쎄쎄의 내적상황이 교묘하게 어우러져 이야기를 이끌어나간다.

 

이 이야기는 쎄쎄가 증거가 아니라 사람의, 자신의, 애거서 크리스티의 감정을 이해하면서 풀리기 시작한다. "한 사람을 사랑하고 한 사람의 사랑을 받는 일보다 더 큰 축복이 되는 다른 일을 나는 알지 못합니다." 애거서 크리스티가 쓰고, 믿은 그 말. 사랑 덕분에 누군가는 아프고 누군가는 기쁘다.

 

추리소설에 애정소설은 언제나 최고의 궁합인 듯 하다. 사랑과 돈은 추리소설 최고의 동기니까. 그런 의미에서 <그리고 제인 마플이 죽었다>는 재미있고 읽기 쉬운, 추리소설이었다. 이런 책이라면 추리소설을 별로 안 좋아하시는 분들도 읽기 쉬울 것 같으니 오랜만에 동생에게 추리소설을 권해봐야겠다.


-책을 덮었다. 책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 내가 원한 건 현실에서의 도피였지 현실을 떠올리는 것이 아니었다. 그런데도 나는 다시 책을 폈다. 범인이 누군지 알아야 했다. (98)

 

-사람들이란 언제나 우리를 시험하려 든다. 과연 우리를 어디까지 몰아갈 수 있을지 알고 싶어 한다. (135)

 

-난 '나의 가장 행복한 주말'이란 코너의 중독자라고 할 수 있는데, 그 큰 이유는 사람의 행복한 주말이 천편일률적으로 모두 똑같다는 게 신기하기 짝이 없기 때문이다. (174)

 

-범죄는 무섭도록 계시적이다. 온갖 수단과 방법을 다 동원해도 행위는 정신을 고스란히 노출시킨다.
다른 사람들의 마음속을 파고들어 그 사람이 숨을 쉬게 하는 것이 무엇이며 또 다른 사람들과 전혀 다른 오직 그만의 방식으로 생각하도록 만드는 것이 과연 무엇인지 그 미스터리를 파헤치는 일은 정말이지 매력적이다. (260)

 

-해가 지도록 그곳에 앉아 생각했다.
내가 기억하고자 했던 것들에 대해.
내가 잊어버리고자 했던 것들에 대해.
그때 불현듯 떠오르는 생각.
난 스스로 기억상실증에 빠진 거였구나.
애거서가 그랬던 것처럼 똑같이. (290)

 

-한 사람을 사랑하고 한 사람의 사랑을 받는 일보다 더 큰 축복이 되는 다른 일을 나는 알지 못합니다. (애거서 크리스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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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로잉 일본 철도 여행 - 스케치북과 카메라로 기록한 드로잉 여행 1
김혜원 글.그림 / 씨네21북스 / 2009년 4월
평점 :
절판



여행, 이라는 단어만큼 두근거림을 가져다 주는 단어가 또 있을까. 물론 난 천성이 실내파라 두근거림에 귀찮음이 한 숟갈 더 추가되지만 그런 것쯤은 여행길을 떠나는 순간 잊혀지기 마련이다. '여행'은 생각만 해도 즐겁다. 어디로 갈까, 얼마만큼 머무를까, 무엇을 타고 가야 하나... 고민하고 결정할 일이 산더미지만 새로운 환경에 새로운 경험을 해볼 수 있는 것 하나만으로 모든 게 들뜬다.

 

현재 내가 제일 가고 싶은 여행 목적지는 멀고도 가까운 이웃나라, 일본이다. 왜냐고 이유를 묻는다면 이거다! 하고 으스대며 얘기할 이유는 없지만 내가 그동안 읽어왔던 일본 만화책, 소설책의 배경들, 혹은 일본에 다녀왔다며 자랑에 사진까지 늘어놓는 친구들 덕분에 그냥 이유없이 일본을 여행해 보고 싶다. 더군다나 다른 나라들과 다르게 가깝기도 하고.

 

예전에 여행을 좋아하는 엄마가 새벽에 출발해 하룻동안 관광하고 돌아오는 '밤도깨비' 일본 여행을 권한 적이 있었다. 불행히도 학교 일정과 약간(이라고 생각하자) 모자라는 여행경비 때문에 계획은 무산되었지만 인터넷을 뒤져 관광정보를 보고 티켓값을 확인하는 내내 가슴이 두근거렸다.

이 <드로잉 일본 철도 여행>은 그 때를 떠올리게 한다. 알듯말듯한 이웃나라에 간다는 기대감, 말이 안 통할텐데 뭘 어떻게 해야 하나 하는 불안감이 뒤섞인 그 기분을.

 

난 여행책자는 무조건 사진이 많은 걸 좋아한다. 아무래도 여행은 좋아하지만 여건상 갈 수 없어 '대리여행'용으로 읽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요새는 여행에세이도 많이 나와있어서 볼거리가 풍성해져 여행을 못 가도 마음이 따뜻하다. 이 책은 사진보다 작가가 직접 그린 만화가 더 많지만 스토리 만화라기 보다 사진처럼 그 지역의 특성을 잡아 그린 일러스트라 독특한 매력이 있다. 솔직히 말하자면 사진을 싣는게 작가 입장에서는 훨씬 쉬웠을 것 같아 나도 모르게 작가분께 박수를 쳐주고 싶었다. 하지만 그만큼 읽는 재미도 있고 사진으로 찍을 수 없는 에피소드를 글로 읽는 것보다 시각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어서 재미있게 읽었다.

 

책을 쭉 읽어내려가면 여행을 가고 싶어서 엉덩이가 들썩들썩해진다. 처음에는 아, 이 곳 멋지다, 여기 가보고 싶다, 이거 먹고 싶다 등등 신이 나서 메모를 해나갔지만 곧 이 책의 모든 장소, 모든 음식을 가고 싶고 먹고 싶다는 걸 깨닫고 적기를 포기하고 책장을 여유롭게 넘기기 시작했다.

 

내 여행의 기억은 그리 방대하진 않다. 기억력도 그리 좋지 않고 지리에 특히 약하기 때문에 어느 곳을 다녀왔어도 가는 길을 까먹거나 풍경은 기억나도 지명이 기억나지 않는 일이 허다하다. 이런 실망스런 딸의 반응에도 우리 부모님들은 워낙 여행을 좋아해 방학 때마다 짐을 한가득 실고 자동차로 국내 방방곡곡을 여행했다. 아빠가 자동차를 몰면 엄마는 조수석에서 과자를 뜯고 사탕을 나눠줬다. 나와 동생은 창밖으로 지나가는 풍경들을 바라보다 눈을 깜박깜박 졸며 언제 도착하냐고 물었다. (그 어린 날의 교훈 한 가지. 어른들의 '5분만 더 가면 돼'는 믿어선 안된다.) 이런 기억 때문인지 '여행' 하면 어쩐지 누군가와 함께 가야할 것만 같다. 왜 수학여행처럼 친구와 함께 가도 재미있을테고. 가족들과 함께 가면 든든할테고.

 

하지만 그래도 한 번쯤은 혼자서 이렇게 여행하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득 심심할 때도 있겠지만 낯선 여행지에서 심심할 일이 많지도 않을테고. 거기다 밤에는 홀로 고독을 만끽할 수 있겠지. 여행지에서의 밤은 두근두근하다. 가족과 함께 있어도 창밖으로 내려다보이는 야경에 가슴이 울렁울렁하는데, 혼자서 보내는 그 밤은 과연 어떤 기분일까.

 

<드로잉 일본 철도 여행>을 읽으면서 일본이라는 나라에 대해 새로운 걸 잔뜩 알았다. 무엇보다 기차 여행! 기차는 타본 적이 거의 없어서 내 생활에서는 거의 없는 존재였는데 이 책에서는 기차가 잔-뜩 나와 '이국적'인 매력을 풍긴다. (물론 기차를 일상적으로 타시는 분들은 별거 아닐 수도 있지만) 거기다 스탬프를 찍는 역도 있다니 관광 기념품으로 간직하기엔 최고일 것 같다. 수집하기에도 좋을 것 같고.

 

거기다 일본하면 온천, 이라는 고정관념에 빠져있는 내게 다양한 지역의 그야말로 다양한 온천은 메모하지 않고 견딜 수 없는 정보였다. 가고 싶은 곳이 너무 많아서 고민이 된다는 문제를 제쳐두고라도.

 

작가분인 김혜원씨는 어쩜 이렇게 꼼꼼히 알아보고 여행을 다니셨을까- 싶을 정도로 일본여행 하기에 알찬 정보가 많다. 좋은 호텔이라든지 기차, 맛있는 음식점, 박물관 등을 비롯해 일본 편의점의 먹거리 같은 소소한 정보까지. 당장 이 책만 들고 일본에 가도 문제없을 것 같은 느낌이 강하게 든다.

여행서를 읽을 때마다 나타나는 부작용이지만 오늘따라 더욱 '여행'이 끌리고 그립다. 언제가 있을 일본 여행에 대비해 한 권쯤은 책장에 소장해 놓고 싶은 그런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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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런던에서 사람 책을 읽는다
김수정 지음 / 달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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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Do not judge a book by its cover"(책을 표지로 판단하지 마라.) 라는 말이 있지만 난 은근 꼬임에 넘어가기 쉬운 성격이라 표지와 제목에 혹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나로서는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고 변명하고는 있지만... 실제로도 표지가 책보다 더 재미있는 책이 종종 있으니 그런 책 앞에서는 스스로도 못 믿을 변명인 셈이다.

 

그래도 이번에는 운좋게 좋은 책을 좋은 제목으로 건졌으니 이런 책고르는 습관도 그리 나쁜 편은 아닐지 모르겠다. 이게 인간 관계로 넘어가면 절대 안 되는데-하는 걱정은 덮어두고라도.

 

<나는 런던에서 사람 책을 읽는다>.  사실 난 제목만 보고 런던의 고서점을 돌아다니며 순박하고 온후한 서점주인분들의 사진과 이야기가 펼쳐질 줄 알았다. '런던'이라는 내게는 한없이 이국적인 장소에 가장 많이 끌렸다는 게 더 맞는 말이겠지만. 하지만, 책은 목차, 프롤로그부터 이색적이고 흥미로운 이야기-지만 고서점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이야기-를 펼쳐놓았다. 바로 "Do not judge a book by its cover."와 관계된 이야기가.

 

리빙 라이브러리(Living Library). 이 굉장히 독특한 이벤트는  '독특한', 즉 다른 사람과 약간 다르기 때문에 '편견'이 박혀있는 사람들을 이해하는 소통의 장으로 제목인 리빙 라이브러리, 즉 살아 있는 도서관이라는 이름은 책을 도서관에서 대출해 차근차근 읽어가듯 사람을 '대출'해 그 사람의 인생을 읽어가자는 의미에서 나왔다.  색다른 이벤트를 좋아하는데다 기본적으로 '도서관' 개념을 좋아하는 나는 프롤로그 첫 문단을 읽으면서부터 이 '리빙 라이브러리'라는 이벤트가 좋아지기 시작했다. 책을 다 읽고나서는 더더욱, 이런 이벤트가 우리 나라에서도 열려야 하는 게 아닐까- 하는 성실한 독자다운 생각을 하게 됐다.

 

성실한 독자답게 인터넷에서 리빙 라이브러리를 검색해봤다. (주소는 http://living-library.org/index.html) 사이트에서 살펴보니 수많은 나라에서 개최되었고 심지어는 가까운 이웃나라 일본에서도 개최되었다고 한다. 내가 언어와 시간, 돈만 된다면 나라들을 돌아다니며 각국의 리빙 라이브러리를 돌아다니면 세계가 무척이나 넓어지겠지.

 

김수정씨의 런던 리빙 라이브러리에서도 남들과 약간 다른 사람들이 '책'으로 참가했다. 싱글맘, 장학사, 레즈비언, 우울증 환자, 여자 소방관, 신체 기증인, 휴머니스트, 혼혈 등 '편견'이 있는 사람들. 평소 탁 터놓고 얘기하기 쉽지 않은 이야기도 자유로이 나눌수 있고 질문도 자유로운 이 행사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대화를 나누고 '책'을 이해하고 시야가 넓어져 돌아갔을까. 우리 나라에서 개최되고 있지 않기 때문에 현재의 나로서는 참가할 수 없는 행사지만, 다행히도 김수정씨의 <나는 런던에서 사람 책을 읽는다> 책을 통해 조금이나마 접할 수 있다는 게 정말 기쁘다.

 

이 책은 행사에 참가한 '책'의 이야기 뿐만 아니라 런던 곳곳의 풍경, 사람들의 사진, 영국의 풍습이나 생활을 전해주고 있어서 '사람'의 이야기 뿐만 아니라 영국에 대해서도 배울 수 있는 유익한 책이었다. 런던 소개책도 아닌데 어쩐지 영국으로 건너가고 싶게 만드는 책이었다. 옛날엔 그저 다 똑같은 외국이었는데 알면 알수록 영국이란 나라에 호감이 가고 동경이 생긴다. 특히 이국적인 사진에 홀딱 반했다. 사실 우리나라의 생활 풍경을 외국인에게 보여줘도 이국적이다, 고 말할테지만 내겐 친근할 뿐이라 외국의 일상 사진만 보아도 여행 가고 싶은 욕망에 휩싸인다.

 

책 곳곳에 사진이 있어서 보는 눈도 즐거웠지만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당연히도 '편견'을 깨트리는 이야기들이다. 내 스스로는 그런 편견이 없다고 생각했지만 책을 읽다보니 은연중에 편견을 갖고 있던 자신을 깨닫는다. 내가 어느 직업, 어떤 사람에 대해 갖고 있는 '이미지' 조차 편견이 될 수 있다는 것 또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자신이 공정하고 '자신'만으로 받아들여지길 바라지 않을까. 그래서 날 좋아해주면 더더욱 좋겠지만 그게 아니어도 내가 나라는 걸 인정해 주는 것만으로도 굉장히 큰 힘이 되지 않을까 싶다. 우리가 임의로 분류하고 있는 남들과 약간 다른 사람들에게도 각기 다른 성격이 있고 가치관이 있고 삶이 있다. 심지어 스스로 평범하다고 생각하고 있는 사람들에게도 '남들과 다른' 점이 분명히 있다. 어떤 사람들은 그걸 장점이라고 하겠고 어떤 사람에게는 약점이 될 수도 있다. 또 어떤 사람들에겐 그게 '개성'이라고 불리고 있겠지. 생각해보면, 모든 사람은 다들 다르다, 모든 사람에겐 자신만의 고민이 있다, 세상에는 하고자 마음만 먹으면 안 되는 게 없다, 라는 일반적이지만 의외로 깨닫기 힘든 깨달음을 이 책을 통해 재차 깨달았다.

 

우리 나라에서도 이렇게 좋은 취지의 행사가 한 번쯤은 열리기를 바란다. 자라나는 어린아이에게도 고민하는 청소년에게도 삶에 지친 어른들에게도, 남들과 아주 약간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고민해왔던 '책이 될' 분들에게도 의미 깊은 행사가 될테니까.

 

 

-하지만 진을 용감하게 만들어 준 건 역설적으로 바로 그 '나이'였다. 노년으로 접어드는 길목처럼 느껴지는 나이 예순 살. 그 나이가 진에게는 마지막 기회처럼 느껴졌던 것이다. 인생의 마지막 챕터를 막 넘기는 나이. 이번만큼은 진정한 자아를 찾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번 기회를 놓치면 영영 불가능하다는 예감이 들었다. (50)

 

-선생님이 결코 가져서는 안 될 게 바로 선입관과 편견이에요. '저 아이는 아마 이 정도 수준일걸' '이런 가정 형편이니 여기까지만 기대해야지', 이런 선입관이 아이의 미래를 망칠 수도 있다는 걸 명심해야 해요. (77)

 

-어차피 내가 지니고 갈 짐은 나의 것이고, 내 인생도 나의 것이에요. 누구에게 잠시 도움을 받을 수도 있고, 위로받을 수도 있지만 결국 마지막에 그 짐의 중량은 내가 안고 가야 합니다. (1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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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규성 살인사건 작가 아리스 시리즈
아리스가와 아리스 지음, 최고은 옮김 / 북홀릭(bookholic) / 2009년 3월
평점 :
절판



또다시 '살인사건'으로 끝나는 제목의 책을 골라봤다. 사실 일본 추리소설은 심리적인 면이 강조되는 작품이 많은 듯 해서 오래전부터 외국 추리소설에 익숙해져있는 나로서는 스트레스를 풀려다 머리 아플정도로 몰입하게 된달까. 결코 일본 추리소설이 싫은 건 아니지만, 내가 원하는 '스트레스 풀기'에 알맞은 추리소설 류는 아닌 듯 해서 의식적으로 일본 추리소설은 피해왔지만 모처럼만의 도서관 나들이에 추리소설만을 빌리려니 냉큼 '절규성 살인사건'이라는 제목이 눈에 들어왔다. 다른 책을 한아름 들고 책장 앞에서 고민하기를 수 분, 어차피 고민할 거 그냥 빌리는 게 낫겠다 싶어서 작고, 척 보기에도 우울한 분위기의 표지를 다른 책 위에 올렸다.

 

들고 다니기 쉽게 작은 책이라 당장 펴들었는데 생각 외로 가벼운(단순히 단편이라 그렇게 느낀 것 같지만) 이야기인데다 단편의 제목이 하나같이 ooo살인사건이라는 점에서 가벼운 흥미를 느낄 수 있었다. 작가 후기를 살펴보니 평소에는 ~살인사건이라는 제목을 피해오던 아리스가와 아리스가 잡지청탁으로 처음 ~살인사건이란 제목을 달게되었다고 한다. 그 후 시리즈물로 쓴 단편을 모아 만든 작품이 바로 이 '절규성 살인사건'이라고 한다.

 

각 단편들의 제목은 흑조정 살인사건, 호중암 살인사건, 월궁전 살인사건 등 작품 안에 나오는(즉 대부분 배경이 되는) 장소의 이름을 딴 살인사건으로 되어 있다. 아무래도 한자를 사용하는 일본이다보니 장소의 이름도 독특한 뜻이 있어서 작품 속의 숨은 재미를 더해주고 있다.

 

<절규성 살인사건>은 총 6편의 단편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범죄사회학자인 히무라 히데오와 대학친구이자 조수로 일하고 있는 추리소설작가 아리스가와 아리스가 사건을 풀어나가는 이야기들이다. 추리소설작가라고 해도 아리스가와 아리스는 이야기에 재치를 더해주는 화자 역할으로 홈즈와 왓슨으로 치자면 충실한 왓슨 역할이다. 어딘가 초연한 성격인 히무라 히데오와 달리 아리스가와 아리스는 성실하고 의욕 넘치지만 그만큼 추리실력만큼은 뒤쳐지는 어리숙함을 매력으로 뽐낸다(어디까지나 개인적인 감상이지만).

 

일본판 홈즈와 왓슨같은 충실한 콤비의 짧은 단편이지만 확실히 일본 추리소설다운 '뒷맛 씁쓸함'이 은연중에 뿜어져 나온다. 특히나 마지막 작품이자 표제작은 '절규성 살인사건'은 작품 중 길이도 제일 길지만 제일 뒷맛이 씁쓸하기도 하다. 추리소설의 이야기를 함부로 할 수는 없으니 뭐라 설명하긴 힘들지만 절묘하고 매우 현실적이며 그래서 더 씁쓸한 작품이었다.

 

책을 읽으며 가끔씩 드러나는 '아리스가와 아리스'의 사고방식에 (추리소설에서는 실로 오랜만에) 웃으며 공감할 수 있었다. 왓슨이 철저히 홈즈에게 초점을 맞추고 있다면 아리스가와 아리스는 좀 더 자신의 일상을 공개하는 편이다. '통조림' 상태의 작가라는 건 만화책에서나 볼 수 있는 건 줄 알았는데 아무래도 실제하는 모양이다. 사실 내가 제일 공감한 건 '개미와 베짱이'에 대한 그의 사고방식이었다. 그 유명하지만 사실상 일상 대화에서는 거의 나오지 않는 이솝우화에 대해 나랑 생각이 같은 사람이 있다니 소소하지만 기뻤다.

 

아무래도 화자가 추리소설 작가다 보니 추리소설에 대해 '읽는' 관점이 아니라 '쓰는' 관점에서 말해주고 있어서 추리소설을 읽으며 추리소설을 다시 생각해보는 독특한 기회가 되었다. 그런 말들을 읽어도 고정관념은 어쩔 수 없는 것인지 왜 추리소설 작가가 이렇게 추리를 못하는 것인가-하는 의문이 자꾸 머리에 떠올랐지만 말이다.

 

아리스가와-히무라 콤비의 추리에 흠뻑 만족하며, 오늘은 이만 추리소설을 접어야겠다.

 

-사람의 마음이란 게 완전히 텅 빌 수는 없는 것이라, 그 빈 머릿속에도 여러 가지 사념의 조각들이 가로지르고 있었다. (10)

 

-추리소설로 사람들을 속이는 테크닉은 마술과 달리 전혀 실용적이지 않아. 작가만 알고 있는 답을 맞춰 보라고 하면서 일부러 독자가 알아채기 힘든 힌트를 이곳저곳에 뿌려 놓고 혼란에 빠뜨리기만 하면 되니까. (21)

 

-그것은 이 안에 있습니까? 그것은 입는 것입니까? 그런 질문을 스무 번 하기 전에 출제가 생각하는 물건이 무엇인지를 맞추는 게임 말이다. 질문의 답을 모으면 모을수록 정답은 점점 미궁에 빠지는 국면의 초조함과, 정답을 듣고 정신이 번쩍 드는 순간의 카타르시스가 이 게임의 참맛이며, 그 맛은 추리소설의 수수께끼 풀이와 아주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21)

 

-뭐가 '마음의 어둠'이란 건지. 그런 알맹이 없는 표현을 통해 자신이 무언가를 포착했다고 생각하는 건가? 전쟁, 빈곤, 질병, 그런 '커다란 이야기'를 소설의 주제로 사용하기 어려워진 요즘, '마음의 어둠'이란 것을 사랑하는 작가들이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웃기지도 않지. 그런 표현을 사용하면 자신이 좀 똑똑해 보일 거라고 생각하는 건가? 마음의 어둠, 마음의 어둠, 마음의 어둠. 얼마나 알기 쉬운 표현인가. 이렇게 읊다 보면 모든 사고를 정지시킬 수 있다. '활기찬 인생', 이런 소리를 지껄이는 은행이나 보험광고에 필적하는 저질 표현이다. 모두 입을 모아 큰 소리로 마음의 어둠을 노래한다. 그 백 코러스는 트라우마, 트라우마, 트라우마. (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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