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으로 지은 집 - 가계 부채는 왜 위험한가
아티프 미안 & 아미르 수피 지음, 박기영 옮김 / 열린책들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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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세계 금융 위기의 시작을 알린 2007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일어난 지 벌써 10년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10년이 지난 지금도, 당시 입었던 상흔을 완전히 치유했다고 말하긴 어렵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실업자가 되었고, 집을 잃었고, 자살했을 것입니다. 80년대의 일본 거품경제 붕괴와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는, 우리가 꼭 알아야 할 사건들입니다. 일본과 미국에 일어난 광풍은 곧 우리에게 닥칠 미래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금융위기를 다룬 유용한 책들이 많이 나와 있으며, 이 책도 그 중 하나입니다. 전조는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저자들은 레버드 로스 프레임워크 방식을 이용해 경기침체를 분석합니다. 심각한 경기 침체 이전에는 거의 언제나 가계 부채가 증가하는 현상이 선행해서 일어난다고 말합니다. 대공황, 유럽의 경제 위축,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이전에도 가계 부채가 급증했습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는 부시행정부의 강력한 주택공급 의지, 그것에 편승한 금융기관의 안이함과 탐욕, 시민들의 맹목적 믿음이 결합된 폭탄이었습니다. 80년대 일본의 거품경제와 마찬가지로, 투기 이면에는 비합리적인 믿음이 강했고, 시장은 그것을 증명해주었습니다. 무조건 '빚내서 집사라'는 부동산불패론, 절대 실패하지 않는 투자라는게 존재한다는 주술적 믿음은 달콤한 독약이었습니다.

1989년부터 1990년 초까지 일본의 부동산 투자액은 1,800조 엔에 이른다. 국고예산이 60조 엔이니 약 30배의 규모다. 이것은 미국을 4개나 살 정도로 엄청난 금액이다. 어마어마한 크기의 투기 이면에는 '주식이나 부동산은 결코 우리를 배신하지 않는다'는 믿음이 강했고 시장은 그것을 강하게 증명해주었기 때문이다. -《굿바이 부동산》p.140


심각한 불황과 이에 선행하는 가계 부채의 증가 사이에는 긴밀한 관계가 있습니다. 그리고 가계 부채의 증가에서 가장 큰 지분을 차지하는 것이 부동산입니다. 가계 부채의 급증은 소비 지출의 감소를 가져오고 장기 불황으로 이어집니다. 은행이 신용이 낮은 사람들에게도 무차별적으로 대출을 해주면서 순자산 하위 20퍼센트 계층은 집값 하락에 따른 위험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었고, 높은 레버리지 비율, 주택 자산에 대한 과도한 투자, 없는 것이나 다름없는 금융 자산의 결합은 이들 가계에 재앙을 예고하고 있었습니다.

돈을 빌린 사람이 있다면, 돈을 빌려준 사람도 있습니다. 저소득층의 부채는 곧 고소득층의 자산입니다. 부동산 거품 폭락에서 인상적인 점은, 주택 자산의 가격이 급락할 때 발생하는 손실은 레버리지에 따라 달라진다는 점입니다. 집값이 하락할 때, 자산이 많은 계층은 별 피해를 입지 않는 반면, 자신이 적은 계층은 큰 피해를 입게 됩니다. 가격 하락으로 인해 가치가 '제로'가 되지 않는 이상 남아있는 가치가 있으며, 남은 자산의 우선권은 금융권, 부자, 정부 등에 있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은 집값 폭락으로 그나마 가지고 있던 것조차 모두 잃어버렸습니다. 빚이 일으킨 레버리지 승수 효과가 이들의 순자산에 치명적인 타격을 가했기 때문입니다. 빚의 근본적인 특징은 정확히 가장 가진 것이 없는 계층에 엄청난 손실을 입힌다는 점입니다.

그 결과 이미 심각했던 부의 불평등은, 2006년부터 2009년 사이 더욱 악화되었습니다. 가진 것이 가장 적은 사람들에게 가장 큰 타격을 입히면서 부의 불평등을 강화했기 때문입니다. 이전에도 미국의 부 불평등도는 심각한 상황이었습니다. 순자산 상위 10퍼센트 계층은 1992년에 전체 부의 66퍼센트를 소유하고 있었으며, 2007년엔 71퍼센트를 소유하고 있었습니다. 2010년엔 74퍼센트로 더 상승했습니다. 저자들은 빚에 과도하게 의존하는 금융 시스템은 부의 불평등을 악화시킨다고 말합니다.

재무부가 채무 가계의 부채 부담 완화를 위해서 사용한 자금의 비중은 전체 자금의 2퍼센트 미만이었다. 반면 금융 기관을 구제하기 위한 자금은 전체 비중의 75퍼센트를 차지했다. - p.198


가계 부채는 빚을 진 가계들의 자산에 타격을 입히는 데 그치지 않고, 경제 시스템을 돌고 돌아 결국 모두에게 손실을 입힙니다. 가계 지출의 감소는 주택 가격 폭락과 결합된 가계 부채와 직접적으로 관련되어 있으며, 순자산 손실이 거의 일어나지 않은 지역에서는 소비 지출이 줄지 않았지만, 결국 집값이 하락하지 않은 지역에서도 소비 지출이 줄어들게 됩니다. 현대 경제에서 생산과 소비가 연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주택 압류 또한 빚이 없는 집에도 가치를 떨어뜨리는 외부효과를 가져오며, 연쇄적으로 발생합니다.

폭탄 돌리기는 언젠간 폭발합니다. 저자들은 가계 부채에 의존한 성장은 매우 위험하며, 구제 금융을 통해 금융 시장의 자금 흐름을 원활하게 하려는 정책 역시 역효과를 낳을 수 있다고 경고합니다. 저자들은 위험 분담 원칙에 입각한 새로운 형태의 모기지 계약, 책임 분담 모기지를 제안합니다. 저소득층에게만 피해가 집중되는 기존의 제도가 아닌, 채무 계약은 돈을 빌려준 대부자도 위험과 책임의 일부를 나누어 가지는 주식의 형태에 보다 가까워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역대 최악의 경기침체, 계속 상승하는 가계대출, 줄어드는 일자리, 세계 최고 수준의 빈부격차, 빚내지 않고는 얻을 수 없는 주택시장.. 지금 대한민국에서 빚내서 집을 사는 것은 자살과 마찬가지일 수도 있습니다. 대한민국은 어쩌면 80년대의 일본, 08년의 미국보다도 더 혹독하고 잔인한 장소가 될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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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미디어 트렌드
이창민 지음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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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신문은 필수품이었습니다. 세상의 정보를 알기 위해선, 매일 아침 배달되는 신문이 아니곤 불가능했습니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TV가 신문의 자리를 점점 차지해갔고, 신문 구독을 종료했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더 흐른 지금, TV 역시 신문과 같은 운명을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현재 있는 TV를 버리진 않겠지만, 더이상 TV를 살 의향은 없어졌습니다.

더이상 신문을 구독하지 않지만, 신문의 영향력이 줄어들지는 않았습니다. 이제 곧 TV를 켜지 않게 되겠지만, 방송사의 영향력도 줄어들었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미디어는 과거에 권력이자 돈이였으며, 현재도 마찬가지이며, 미래에도 그럴 것입니다. 우리는 여전히 신문을, 방송을 소비합니다. 다만 종이의 형태가 아닐 뿐입니다. 회사에선 신문 스크랩 프로그램을 통해 종이에서 PDF파일로 변환되며, SNS를 통해 짧은 글로 압축되고, 카드뉴스를 통해 이미지화됩니다.

저자가 말하는 것은 소셜 퍼스트, 모바일 온리, 테크 저널리즘입니다. 오늘날 미디어는 스낵컬처, 카드뉴스, 로봇과 드론 저널리즘, 스토리 펀딩, 인스턴트 아티클, 라이브 비디오 등의 다양한 형태로 소비됩니다. 미디어 환경의 변화는 공급자와 소비자 모두에게 필수적인 변화를 요구합니다. 변화를 선도했던 페이스북 등 신생 매체들은 가장 영향력있는 미디어 업체가 되었습니다. 전통적 미디어 기업들이 디지털 퍼스트를 넘어 이런 변화에 적응하지 못한다면, 회사 문을 닫을 뿐입니다. 변화에 앞장선다면 오랜 전통을 가진 기업이더라도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아이디어가 오갔다 치자. 그럴지라도 가장 큰 문제는 "그건 아니지" "그건 이거지" 하고 결국은 그 회의의 가장 높은 직위에 있는 사람이 결정을 내린다는 점이다. 그런 회의는 백날 해봤자 '아날로그 퍼스트'가 되고 만다. 원래 브레인스토밍의 최대 미덕은 열린 분위기 속에서 이런 저런 농담이 오가다가 그저 그런 우스갯소리 중 하나가 실제로 구현되며 놀라운 혁신을 가져온다는 데 있다. - p.135


새로운 시대의 기준은 우리가 생각하던 고정관념이 과연 정말인지에 대한 의문을 가지게 합니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신문사는 정말로 조선일보일까? 그 기준은 단순히 발행부수였습니다. 하지만 기준이 모바일 활동지수라면, 사람들이 스마트폰과 컴퓨터를 통해 열심히 읽고, 더 많이 전파하는 영향력을 감안한다면, 가장 영향력 있는 신문사는 다른 곳일 수 있습니다. 어쩌면 오늘날 신문사의 영향력은, 트위치TV나 아프리카에서 방송하는 단 한 명의 방송인만도 못할 수 있습니다.

미디어 트렌드는 바로 지금에도 급격하게 변화하고 있으며, 2020년에는 또 다른 무수한 변화가 생겨나있을 것입니다. 새로운 변화는 장점과 단점을 모두 가지고 있습니다. 더 강한 영향력을 가지게 될 수도 있지만, 수없이 범람하는 낚시성 뉴스 같은 의미없는 정보를 양산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미디어의 변화의 중심에서 오히려 기본에 충실함을 생각하게 됩니다. 박근혜 탄핵 정국에서 KBS나 MBC같은 전통적 언론사의 뉴스보다 JTBC의 '뉴스룸'이 더 사람들의 마음을 끌게 된 것은, 정보 전달의 형태가 어떻게 변화하던 간에, 미디어가 언제까지나 가지고 있어야 할 것이 무언가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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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시장 - 계급, 젠더, 불평등 그리고 결혼의 사회학
준 카르본.나오미 칸 지음, 김하현 옮김 / 시대의창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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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갈수록 결혼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2015년 조혼인율(인구 1000명당 혼인 건수, 통계청 기준)은 5.9건으로,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습니다. 2016년 데이터는 아직 나오지 않았지만, 혼인율이 올라갈만한 요소는 보이지 않습니다. 혼인율이 계속 낮아지는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사람들은 다양한 원인들을 검토해왔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전통적 가족관을 파괴하는 도덕관념의 쇠퇴와 개인주의를 지목했고, 피임기술의 발달에 주목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성 해방과 여권 신장으로 인해 권력구도가 바뀌었기 때문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결혼의 변화에서 주목할 점은, 과연 우리 사회에서 결혼이란 가치가 변화했는가 하는 점입니다.

점점 결혼을 선택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저자 준 카르본과 나오미 칸은 결혼의 가치가 여전히 굳건하다고 말합니다. 사람들은 두 사람이 같이 살아가겠다는 서약을 맺는 것에 대해 여전히 높은 가치를 부여하고 있으며, 하고 싶어합니다. 만약 개인주의의 범람과 도덕의 쇠퇴, 피임의 발달, 또는 성 해방과 여권 신장 때문에 결혼을 하지 않는다면, 모든 부류에서 결혼율이 줄어들고, 고소득 여성의 결혼은 더 줄어야 합니다. 하지만 통계는 엘리트 여성이 역사적 흐름에서 가장 결혼을 많이 하는 집단이 되었다고 말합니다. 사람들은 여전히 결혼을 선택하고 있습니다. 다만, 선택하고 싶다고 해서 모두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오늘날 결혼에 대한 인식은 분명 변화했습니다. 새로운 결혼 및 이혼 모델은 가장 한 명과 전업주부로 이루어진 전통적인 모델을 시대착오적이라고 보며, 부부가 함께 돈을 벌고 함께 가사를 돌보는 것이 결혼의 기본이라고 봅니다. 부부는 가족 경제 및 자녀의 삶에 똑같은 책임을 지는 것입니다. 최근 한 결혼정보회사의 이상적 배우자에 대한 조사는 그런 변화를 잘 보여줍니다. 남자들이 요구하는 상대의 소득이나 자산이 여자들과 비슷해진 것입니다. 연봉 5,000만 원을 받고 자산이 2억 5,000만원이 넘는 사람을 배우자로 만나려면, 자신도 그정도여야 하는 것입니다. 과거엔 모든 계층에서 남자의 소득이 더 높았고, 대부분 자신보다 적게 버는 여자와 결혼했습니다. 계층에 대한 인식은 변화한 반면, 경제적 여건은 그런 변화를 맞춰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임금이 약화되자 경제 사다리의 맨 아래에 위치한 노동자가 큰 타격을 받았다. 노동조합에 적대적인 법률 때문에 노동조합의 힘이 약해지자 남성 임금의 분산값이 14퍼센트 커졌다. 이러한 변화 때문에 임금이 낮아지고, 노동 조건이 악화되고, 고용 안정성이 줄었을 뿐만 아니라 경제 활동 인구가 크게 줄었다. 임금을 통해서건 세금과 공공복지를 통해서건 기업 이익에서 노동자가 가져가는 몫이 줄었다는 사실이 바로 미국 가족에게 일어난 변화의 핵심이다. - p.287


경제 피라미드에서 최상층 남성은 예전보다 소득이 늘어났습니다. 1대 99의 사회에서 상위 1%는 대부분이 남성입니다. 고소득 남성들은 더이상 중산층이나 저소득 여성을 결혼상대로 고려하지 않습니다. 고소득 여성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고소득 계층에서 여성의 수는 남성보다 확연히 적기 때문에, 남성들간에 경쟁이 심화됩니다. 고소득 남성과 여성은, 결혼 전엔 성 해방이 가져온 자유를 마음껏 누리면서, 전통적 결혼관계가 가져오는 안정감까지 얻을 수 있습니다. 여성은 배우자를 고를 수 있는 여건이 되며, 괜찮은 남성을 만나 안정적인 결혼생활을 누리게 됩니다. 고소득 계층은 오히려 옛날보다 더 결혼과 가정에 충실해집니다. 안정적인 결혼 생활, 평화롭고 행복한 가족은 이제 상위 계급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의 상징이 됩니다.

경제적 불평등의 심화와 여성의 경제적인 자유는 남녀가 짝을 찾는 방식을 바꾸었고 결혼관 또한 변화시켰습니다. 이러한 변화는 여성보다 남성에게 더 크게 영향을 미칩니다. 소득 양극화가 심화하면서 상대적으로 중간 계급 남성의 수가 줄어들었습니다. 반면 경제 발전과 여권 신장이 맞물린 결과, 지난 30년간 거의 모든 여성이 소득이 증가하고 교육 수준도 높아졌습니다. 아직 사회의 유리천장이 있기에 여성이 중간계층에 밀집한 반면, 소수의 남성을 제외한 많은 남성들이 저소득자로 몰락했습니다. 중간계층의 여성들은 안정적인 직장과 적당한 소득, 평범한 성격을 가진 '결혼할만한 남자'를 찾는데 애를 먹고 있습니다. 일부 여성들은 탐색비용이 드는 것을 포기하고 골드미스가 되는 길을 택하기도 합니다.

하층 계급으로 몰린 사람의 숫자는 과거보다 늘어났지만, 결혼하기에 적합한 배우자는 더 적어졌습니다. 연구자들에 따르면 시간당 40달러를 벌었으나 해고된 후 시급이 15달러인 일자리밖에 찾을 수 없다면, 그 사람은 보통 일을 덜 하고 남는 시간을 빈둥거리며 보내는 경향이 크다고 합니다. 해고당하지 않은 사람도 자신 역시 해고될 수 있다는 불안감과 스트레스 때문에 술을 더 많이 마십니다. 가정폭력은 늘어나고, 아이들 교육에도 악영향을 미칩니다. 구조조정 인원 삭감에서 살아남은 남성이라 해도, 좋은 배우자는 아닌 것입니다. 여성 입장에서는 원치 않은 임신을 하더라도 집에서 빈둥거리는 남자를 남편으로 거두기보다 혼자 애를 낳아 기르는 것이 더 현명한 판단입니다. 남성 역시 소득도 적으면서 미래가 어떻게 될 지 모르기 때문에, 결혼하지 않습니다. 소득 상위 10%의 20~30대 남성은 82.5%가 결혼한 반면, 소득 하위 10%의 20~30대 남성은 고작 6.9%만이 결혼할 수 있었습니다.

오늘날 출산과 교육은, 계층구조를 더욱 확고하게 다지고 있습니다. 불평등이 초래한 가족의 변화는 더욱 큰 불평등을 초래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려서부터 우수한 교육을 받는 상위 계급은 자신의 계급을 더욱 안전하게 유지할 수 있게 된 반면, 근면하게 일하는 노동자 계급을 더 나은 삶으로 인도하던 계급 이동 사다리는 아예 사라져버렸습니다. 저소득층은 자신 뿐만 아니라 아이까지 희망이 없다는 것을 느끼고 결혼과 출산을 포기합니다. 그래서 저출산은 일종의 사회적 자살이기도 합니다. 준 카르본과 나오미 칸은 왜 가장 가난한 집단은 결혼하지 않는지, 왜 엘리트 여성은 역사적 흐름을 거슬러 가장 많이 결혼하게 되었는지 등을 검토하며 우리 삶에서 계급이 차지하는 역할과 커져만 가는 경제적 불평등이 결혼, 이혼, 육아의 조건을 재정립하는 데 미치는 영향을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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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폐의 종말 - 지폐 없는 사회
케네스 로고프 지음, 최재형.윤영미 옮김 / 다른세상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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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갑이 점점 얇아지고 있습니다. 물가는 오르는 데 반해 봉급은 요지부동인 슬픈 현실도 원인 중 하나지만, 점점 지갑에서 현금이 사라지는 것 또한 원인 중 하나입니다. 과거엔 수십 장의 지폐와 동전을 들고 다녔지만, 지금은 비상용으로 들고다니는 30,000원 정도를 제외한다면, 카드 하나로 모든 금융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아직 현금이 필요한 상황이 간간히 등장하기 때문에 카드 하나만으로 살 수는 없지만, 앞으로 몇 년 뒤면 비상용 현금마저도 필요없어질 수도 있습니다.

현금을 점점 사용하지 않는 와중에, 새로운 지폐가 등장했었습니다. 7년 전, 여러 논란 속에서 50,000원권 지폐가 한국사회에 통용되기 시작했습니다. 새로운 화폐의 등장이 어떤 변화를 가져왔는지 돌이켜보면, 개인적으로 어떤 변화도 느낄 수 없었습니다. ATM기계가 50,000원권 지폐 호환이 되지 않는다고 해도 아무 불편이 없었습니다. 무엇을 사 먹을 때도, 쇼핑을 할 때도, 선물을 줄 때도, 50,000원권의 등장이 가져온 변화는 없었습니다. 아마 대부분의 시민들은 실생활 속에서 50,000원권 지폐를 적극적으로 사용할 일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볼 일도 별로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나라 화폐 발행액 중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하는 것은 50,000원권 지폐입니다. 화폐 중 50,000원권 지폐는 전체의 77%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발행액 비율과 지폐 양이 일치하진 않겠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이 사용하지 않는 그 많은 50,000원권 지폐가 어디에 있는지 의구심이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경향은 대부분의 선진국에서 나타납니다. 지폐 1장에 100미국달러(120,192원), 1만엔(102,355원), 500유로(627,884원), 1,000스위스프랑(1,172,780원)의 높은 가치를 지니는 고액권들은 공급의 80%에서 높게는 90%가 넘습니다.

케네스 로고프의 이 책은《화폐의 종말》로 번역되었지만, 원제는 the curse of cash입니다. 현금 중에서 어떠한 현금이 경제에 저주와 같은 존재인지 케네스 로고프가 말하는 바는 명확합니다. 바로 저 고액권들입니다. 케네스 로고프는 많은 양의 고액권 지폐가 정상적인 경제활동보다 불법적인 경제 활동에 사용되고 있다고 말합니다. 돈세탁, 뇌물 공여 및 수수, 마약 거래, 인신매매, 부정부패, 밀수, 사기, 탈세..과거 부정한 거래를 할 때 무거운 사과박스나 007가방을 사용했지만, 지금은 비타500상자처럼 더 가볍고 더 효율적인 거래가 가능합니다. 바로 고액권 덕분입니다.

케네스 로고프는《화폐의 종말》이란 번역처럼 궁극적으론 현금 없는 사회가 지향점이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현금 없는 사회를 위해선 단기적으론 고액권만 폐지하고 소액권 및 동전은 당분간 사용되어야 하며, 저소득층 및 금융취약계층을 위한 다양한 대책(현금카드 발급, 금융인프라 시스템 접근 완화 등)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말합니다. 크게는 현금 없는 사회, 작게는 고액권 폐지 사회가 되면 범죄비용이 증가하기 때문에 전 세계의 국경을 넘나드는 범죄가 줄어들 것이며, 탈세도 현재의 10~15% 수준 감소할 것으로 예측합니다. 케네스 로고프는 탈세 감소만으로도 시뇨리지(Seigniorage)를 상쇄할 것으로 내다봅니다.

현금을 제한하는 것은 범죄와 테러를 종식시키지는 못하겠지만 심각한 타격을 줄 수 있을 것이다. 현금을 감축시키는 것은 미국 같은 나라가 취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이며 유일한 조치일 것이다. 불법이민자 고용은 말할 것도 없고 고용주들의 최저임금 위반이나 사회보장 보고 등을 회피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에 관심을 두고 있다. - p.297


범죄방지효과보다 더 주목하는 점은 금리정책에 있습니다. 지폐의 폐지는 중앙은행의 제한없는 금리정책에 막대한 영향을 가져올것이라고 말합니다. 케네스 로고프는 지폐가 폐지될 경우 보다 탄력적이고 유동적인 금리정책을 펼칠 수 있으며, 다양한 경기변화에 더 효과적인 대응을 할 수 있으리라고 주장합니다. 정책이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할 때, 케네스 로고프의 주장은 대단히 흥미롭습니다. 금리문제에 가장 많은 부분을 할애하고 있지만, 현금에서 완전 전산화가 되었을 때 일어날 수 있는 여러 문제들, 익명성, 사이버 범죄, 정전, 공중 보건의 영역까지 접근하고 있습니다.

한국은행은 2020년까지 동전 없는 사회를 만들겠다고 선언했습니다. 점점 더 많은 영역이 카드결제만으로 가능하다는 점을 감안할 때, 언젠가는 현실화될 미래라고 생각됩니다. 하지만 케네스 로고프의 주장대로라면, 더 시급한 과제는 따로 있습니다. 동전보다 고액권을, 신사임당을 먼저 없애야 하는 것입니다. 동전을 없앤다면 제조비용이 절약되는 장점이 있겠지만, 고액권을 없애고 모든 금융 거래를 온라인으로 전산화할 수 있다면 투명성이 높아지고 세수 확보에 유리해지면서 체납자와 조세회피자를 찾아내기 쉬워질 것입니다. 박근혜 정부가 지하경제 양성화를 주장한다면, 케네스 로고프의 주장을 들어볼 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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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다이제스터 2016-12-23 22: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신사임당뿐 아니라 화폐 자체를 없애야 하고 없앨 수 있다고 믿습니다. ^^
 
우상들과의 점심 - 상처 입은 우상들, 돈, 섹스, 그리고 핸드백의 중요성에 관하여
대프니 머킨 지음, 김재성 옮김 / 뮤진트리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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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선수가 되고 싶었던 적이 있었다. 그러나 공을 잘 차지도 못했고, 차는것을 좋아하는 것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축구선수를 매력적이라고 생각했던 것은, 축구선수의 골에 수만 명이 환호하는 유튜브 영상을 본 이후였다. 그 순간 수만 명이 행복해했다. 단 한 명이 그것을 가능하게 했다. 만약 국가대항전이었다면 수십, 수백만 명에게 행복한 순간을 제공할 수도 있다. 엄청나게 많은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는 존재, 아이돌 혹은 우상이 되고 싶다는 욕망은 비단 나만의 것은 아니었으리라. 그리고 분명 극소수의 우상들은 지금 이 순간 존재한다. 그들의 삶은 어떠할까.

우상은 모두 유명한 사람들이지만, 모든 유명한 사람이 우상은 아니다. 단순히 이름이 알려지는 것은 누구나 가능하다. 연쇄살인범이 되는 것도 유명해지는 길이다. 하지만 우상은 되지 못한다. 우리가 우상에게 투영하는 가치는 때론 비인간적이기도 하다. 아인슈타인이나 마릴린 먼로는 인간이 아니라 하나의 상징이다. 아인슈타인만큼 뛰어난 다른 학자를 거론할 사람은 얼마든지 있다. 마릴린 먼로는 나에게 있어서 전혀 성적인 매력을 주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그런 상징이라는 점은 부인하지 않는다. 우상은 대중으로부터 지워지지 않는 영속성을 얻은 존재들이다. 그리고 그것은 우상, 또는 아이돌의 사전적 의미처럼 일종의 편견, 그릇된 선입관이기도 하다.

문화비평가 대프니 머킨은 우상들과의 대화를 통해 대중들에게 완벽한 존재로 생각되는 우상의 그림자를 말한다. 우디 앨런, 존 업다이크, 다이앤 키튼, 마릴린 먼로.. 서양문화를 잘 모르는 사람조차도 이름은 들어봤을법한 사람들이다. 만약 내가 기자로서 그런 우상들을 인터뷰한다면, 그들의 후광에 눈이 멀어 본질을, 숨겨진 메시지를 깨닫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대프니 머킨은 대중이 생각하는 우상의 삶을 넘어서 우상을 바라보고 있다. 그럴 수 있었던 것은 아마도 부모로부터 사랑을 받지 못한 대프니 머킨, 살쪄서 슬픈 대프니 머킨, 상처입은 대프니 머킨이었기 때문일 수 있다. 우디 앨런과의 편지를 통해 대프니 머킨은 우디 앨런의 다른 모습, 상처입은 우상을 치유하고자 한다. 그것은 동시에 대프니 머킨 자신을 치유하고자 함이기도 했다.

머킨이 관찰하는 대부분의 우상에 대한 비평이 문화권이 다른 이유로 이해하기 힘든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대신 그녀의 방법론, 사물을 바라보는 절대적인 방식으로 대한민국 사회의 빛나는 별들을 이해해보면 어떨까. 우리 사회에 지워지지 않는 영속성을 획득한 우상들, 그들은 분명히 우리 사회를 움직이는 사람들이다. 수많은 자기계발서들, 그리고 대중문화는 모든 사람들에게 누구도 될 수 없는 자신이 되라고,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라고 종용하고 있다. 무언가 특별한 것, 부자가 되는 것, 명성이 우리네 인생을 하나의 잣대로 측정하고 그것을 위해서 행동의 정당성마저 부여하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대프니 머킨의 말대로라면 그들 역시 찬란하지만 동시에 덧없는, 외로움과 고통을 느끼고, 스스로 자괴감이 생기기도 하는 삶, 우리네 삶과 별반 다르지 않는 하나의 인생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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