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야자키 하야오 - 일본 애니메이션의 거장
헬렌 매카시 지음, 조성기 옮김 / 인디북(인디아이) / 2004년 6월
평점 :
절판


애니메이션에 관심 없는 사람이라도 '미야자키 하야오'의 이름은 들어봤을 정도로, 그는 대단히 유명한 일본 애니메이션 감독입니다. 일본 애니메이션의 거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미야자키 하야오는, 일본 애니메이션의 작품성을 세계에서 인정받게 한 일등공신입니다. 지금은 미야자키 하야오가 충분히 알려져 있지만, 이 책이 나올 당시의 서구 독자들은 미야자키 하야오를 알지 못했기 때문에, 헬렌 매카시의《미야자키 하야오》는 애니메이션 분야의 거장을 서구사회에 널리 알려줬다는데서 그 의의를 찾을 수 있습니다. 헬렌 매카시는 이 거장이 어떻게 탄생하게 되었는지부터 그의 작품에 대해 미술, 구성, 제작, 주제에 대한 비판적 평가를 시도하고 있습니다.

유복한 환경에서 자란 미야자키 하야오는 많은 책들을 읽으며 자랐고, 대학을 졸업한 뒤 만화가가 되겠다는 꿈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애니메이션 작품을 접한 뒤 애니메이션이 지닌 매력과 가능성을 느끼게 되었고, 동화 애니메이터로서 사회생활을 시작합니다. 처음엔 단순작업을 많이 하는 동화작업의 특성 때문에 일에 대한 흥미를 잃어가고 있었지만 당시 다카하타 감독의 극장용 작품팀에 들어가면서 작품 스타일과 줄거리 구성에 활발히 참여해 실력을 쌓을 수 있었습니다. 다카하타는 선후배나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누구든지 스토리보드와 기획 미팅에 참가할 수 있도록 문호를 개방했는데, 이것은 당시로서는 매우 혁신적인 것이었습니다.

사회생활 초기부터 활발한 노조활동을 해온 미야자키 하야오의 정치적 성향은 그의 작품은 물론이고 훗날 세워질 지브리 시스템에도 영향을 미칩니다. 당시 애니메이터들은 계약직 노동자들이었는데, 많은 직원들이 일반적인 봉급생활자의 절반 수준의 수입에 불과했습니다. 미야자키 하야오는 원하는 수준의 작품 완성도를 위해서는 직원들의 임금체계가 변해야 함을 인지하고 있었습니다. 최고의 작품을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직원을 모으고, 훈련하고 우수한 직원을 유지하는 것이 필수적이며, 그 말은 그들에게 정기적인 급여를 준다는 의미일 뿐만 아니라 경제적으로 안정된 작업환경을 만들어준다는 의미이기도 했습니다. 미야자키 하야오는 상업적 성공을 거두기 전에 월급제를 도입했는데, 이는 도쿠마 서점의 끊임없는 재정적 지원 덕분에 가능했습니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은 영화에 대한 해석은 각자의 문제이지만, 자신은 본질적으로 단지 관객들이 재미있게 영화를 보아주기를 바라고 작품을 만든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그의 작품을 보면 감독의 성장배경과 당시의 사회적 환경이 그의 작품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제로센의 부품을 만들던 가족기업에서 성장했다보니 그의 작품 곳곳에서 비행기가 등장하며, 일본의 미나마타 항에서 발생한 수은 오염사건은『바람계곡의 나우시카』를 만들게 된 하나의 계기가 되었고, 웨일스에서 보게 된 공동체의 생존권을 위해 투쟁하는 광산노조의 모습은『천공의 성 라퓨타』에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애니메이션이 해서는 안 될 가장 중요한 일은 팬을 특정 타입으로만 규정하고, 그 특정 대상만을 위해 영화를 만드는 일입니다. 영화를 만들지도 않고 어떻게 미리 판단할 수 있겠습니까?" - p.214

다양한 평론가들은 그의 작품에서 환경주의자적인 모습을, 페미니즘적인 모습을, 반전주의적인 모습을 찾기도 하며, 우익적인 경향을 보인다고 비판하기도 합니다.『마녀배달부 키키』가 미국에서 상영될 당시, 미국을 걱정하는 여성의 모임이라는 단체가 영화 상영을 보이콧하며 가족의 가치를 훼손하고 있다고 말하기도 합니다.『바람계곡의 나우시카』에 대해서도 미야자키 스타일의 우주전함 야마토이며, 가미카제 자살특공대의 감성으로 가득 찬, 강력한 이념적인 작품이라고 평한 평론가가 있는가 하면, 이야기 전개와 미술적 재능을 겸비한 천재가 보여주는 인류문명의 기술의 폭주가 가져다주는 경고라는 평도 존재합니다.

미야자키 하야오의『모노노케히메』에서 여주인공 산은 입가에 피를 묻히고 손에 칼을 쥔 채 자신을 지켜보는 이를 바라본다. 야생적인 모습이다. 그러나 그녀는 단지 어머니로 여기는 늑대 신 모로의 몸에 박힌 총알을 빨아내려고 했던 것뿐이다. 이런 겉모습과 진실 사이의 모순이 영화 속 주제 가운데 하나이다. - p.241

저자 헬렌 매카시는 미야자키 감독이 자연의 힘, 억압에 맞서는 약자의 투쟁, 이상세계에 대한 추구, 사랑에 대한 영원한 중요성을 보여주는 예술 장인이라고 말합니다. 극렬한 평가 속에서도 많은 사람들은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을 보러 갑니다. 그가 보여주는 매력적인 애니메이션들은 관객들에게 감독이 원하던 애니메이션을 통한 즐거움과 휴식을 제공해주며, 관객들에게 새로운 생각의 영감을 불러일으키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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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나리자 훔치기 - 왜 예술은 우리를 눈멀게 하는가 What's Up 7
다리안 리더 지음, 박소현 옮김 / 새물결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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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전에 스페인에서 황당한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산투아리오 데 미제리코르디아 성당에 있는 19세기 화가 엘리아스 가르시아 마르티네즈의 프레스코화가 인상적인 모양으로 훼손된 일이었습니다. 그보다 더 인상적인 것은, 이 프레스코화가 훼손되자 그전보다 관람객이 더 몰렸다는 사실입니다. SNS 시대의 일시적인 유행으로 치부하기엔 그 영향력은 상당히 오래 남았습니다. 스페인의 이 이야기는 미술품에 대한 독특한 질문을 하게 합니다. 우리는 과연 무엇을 보러 갔는가? 이와 비슷한 이야기는 예전에도 있었습니다. 현재 미술작품 하면 누구나 첫손에 꼽을만한 작품,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모나리자〉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1911년 루브르 미술관에서 도난 사건이 발생합니다. 주택 도장공이었던 빈첸조 페루지아가〈모나리자〉를 훔친 것입니다. 이 사건이 알려지자 모든 미디어에서 사건을 조명합니다. 그러자 사람들이〈모나리자〉를 보러 갑니다. 그들의 대부분은 평소에 미술에 관심도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군중들이 보려고 몰려든 것은〈모나리자〉가 사라지고 남은 텅 빈 공간이었습니다. 예술작품이 거기 있기 때문이 아니라 거기 없기 때문에 보러 간 것입니다.〈모나리자〉는 더이상 과거의 작품과 동일한 작품이 아니었습니다. 존재하지 않음으로써 존재하는 모든 작품들보다 월등한 인기를 얻게 된〈모나리자〉는 새로 만들어진 역사를 얻게 되었습니다.

저자 다리안 리더는〈모나리자〉도난사건이 보여주는 흥미로운 현상을 바탕으로 미술에 대한, 더 나아가 우리의 시선에 대한, 보는 것이라는 행위를 정신분석학적 관점에서 바라봅니다. 시선은 인간에게 있어서 굉장히 중요한 요소입니다. 눈이 바라보고 있는 그림이 그려진 포스터만 붙여놔도 절도행위가 줄어드는 심리학 실험이나 문신, 혹은 페르소나에 대한 연구는 이미지가 우리를 사로잡는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라캉은 보는 사람과 시각적 이미지 사이의 비대칭성에 주목했는데, 인간이 이미지나 상을 보는 것이 아니라, 이미지나 상이 인간을 포획한다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인간은 누군가 자신을 빤히 쳐다본다면 그 시선이 부담스러워서 시선을 회피합니다. 라캉 역시 이러한 관점에서 시선에는 선의가 아니라 악의의 차원이 들어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때문에 화가들이 그림을 그리는 심리엔 악의와 욕망이 가득한 타자의 시선을 끌기 위한 것, 시선을 그림에 가두어 화가 자신에게서 멀어지게 만들기 위함이라는 것입니다. 미술작품은 타자의 시선을 그림에 집중시킬 뿐만 아니라, 그 시선을 타자 자신이 바라볼 수 있도록 합니다. 대표적인 기법이 원근법인데, 평평한 종이에 그려지는 이 독특한 시선처리로 인해 바라보는 주체가 바라봄을 당하는 주체가 됩니다. 즉 우리는 미술작품을 통해 거울은 아니지만, 거울처럼 바라봅니다.

 

〈모나리자〉가 도난당한 뒤 루브르에 몰려든 군중들은 미술작품의 진정한 기능을 입증해주었다. 미술작품의 진정한 기능이란 물이라는 텅 빈 장소, 다시 말해 미술작품과 그것이 점하고 있는 장소 사이의 틈새를 환기시켜주는 것이었다. - p.134 

그렇기 때문에 미술작품은 텅 빈 공간에서 태어나고, 텅 빈 공간을 가지고 있습니다. 본질적으로 미술작품은 미완성입니다. 우리의 욕망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것을 보려 합니다. 완전한 누드보다, 살짝 가려져서 보일 듯 말 듯한 것이 더 에로하다고 느끼는 것이 그런 욕망을 말해줍니다. 우리는 본질적으로 비어있고, 미완성인 그림을 보면서 공상적인 사유를 발휘해 그것에 욕망하고, 그런 자신을 바라봅니다.〈모나리자〉가 폭발적인 관심을 받게 된 심리에도 사라진 그 공간에서 자신만의 모나리자를 찾고자 하는 욕망이 숨어 있습니다.〈모나리자〉도난사건 이후로 사람들은 모던 아트가 제공하는 텅 빈 공간을 보려고 미술관과 화랑에 가게 되는 세기를 맞이합니다.

그림이 거기에 없다는 사실이 사물을 다른 식으로 보게 만들었습니다. 한때 비가시적이었던 모든 것이 시선의 대상이 되었고, 이로 인해〈모나리자〉도난 사건은 그 자체로 하나의 예술작품이 되었습니다. 모나리자가 관람객들에게 신비에 싸인 존재가 되기 시작한 것은 팜므 파탈이라는 문화적 현상이 등장하고, 고티에와 페이터같은 사람들이 회화에 대한 평문을 쓰면서부터였습니다. 평론가들은 모나리자의 미소에 팜므 파탈의 모든 특징을 부여했습니다. 그녀는 그저 수수께끼 같은 존재가 아니라 수수께끼 같은 것의 상징이 되었고 도난 사건 이후 그녀의 이미지를 사용한 광고 열풍이 이어지면서 그처럼 기이한 양상은 영원한 것이 되었습니다.

프로이트는 우리는 우리의 시각적 현실 속에 감추어진 것만 찾으며, 그러지 않으면 우리는 아무것도 보지 못한다고 말합니다.〈모나리자〉가 도난당함으로써 비로소 우리가〈모나리자〉를 목격하게 된 것입니다.〈모나리자〉도난사건은 미술작품과 그것이 점하고 있던 텅 빈 공간 사이의 분열이 드러나는 극적인 사례입니다. 이런 극적인 사례는 아니더라도, 미술작품이 사라지지 않아도 이 텅 빈 공간은 여전히 존재합니다. 저자는 그림을 그리는 사람의, 보는 사람의 심리를 정신분석적 측면에서 바라봄으로써〈모나리자〉를 보고 있는 사람의, 스페인의 우스꽝스러운 모습이 된 프레스코화를 보고 있는 사람에게 묻고 있습니다. 지금 무엇을 보고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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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으로 풀어보는 음악의 비밀 - 베토벤에서 비틀스까지, 물리학과 심리학을 넘나들며 재미있게 풀어보는 음악의 수수께끼
존 파웰 지음, 장호연 옮김 / 뮤진트리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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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인가 외출할 때면 필수적으로 mp3 플레이어를 챙기는 습관이 생겼습니다. 저 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길을 걸으며 이어폰을 꼽고 음악을 듣습니다. 매일 음악을 들을 정도로 일상화되었기 때문에, 음악을 좋아하냐고 묻는다면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겠지만 정작 음악이 무엇인지는 잘 모릅니다. 이해하지 못하면서 그냥 즐기는 것입니다. 하지만 음악에 대한 정보를 알고 이해한다면, 음악을 더 즐길 수 있을 것입니다. 음영이나 원근법을 이해할 수 있다면 회화 감상이 더 즐거운 것처럼 말입니다.

음악적 음은 다른 소음과 구별함으로서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음의 파장은 각각이 만들어내는 복잡한 진동들이 한데 모여 만들어지는데, 소음의 경우 서로 무관한 개별적인 파동들이 모인 것입니다. 그에 반해 음악적 음은 계속해서 반복되는 파동 유형을 나타냅니다. 계속 반복되기만 한다면 음의 파동이 복잡한지는 문제가 되질 않습니다. 어떤 수단을 동원하던 간에 초당 20회에서 2만회 사이의 진동을 반복해서 낼 수 있다면 그것은 우리에게 음악으로 들립니다. 이러한 조건을 클리어하는 도구가 악기입니다. 튜브에 공기를 주입하거나, 현을 흔들어서 이 진동 주파수를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과거엔 나라마다, 도시마다 이 주파수의 기준이 달랐지만, 1939년 국제회의에서 결정된 이래 모든 악기는 110Hz를 기본 주파수로 가집니다. 악기를 연주하는 방식에 따라 110의 정수배인 220, 440, 550 등과 같은 주파수를 만들어내지만 사람의 청각 체계는 전부 110Hz로 인식합니다.

하지만 주파수가 같은 것이 같은 소리를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음색은 주파수에 비하면 부차적인 문제지만, 소리에 개성을 부여하며 음악을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정서적 감흥에 큰 영향을 미칩니다. 모든 악기는 저마다의 개성적인 음색을 가지고 있으며 연주방법에 따라 다양한 하모니를 만들어냅니다. 이러한 다양한 오케스트라를 들을 때에도 사람은 독특한 방식으로 음악을 듣습니다. 사람은 음악을 받아들일 때 열 대의 바이올린을 함께 연주한다고 해서 한 대로 연주할 때보다 열 배 더 크게 들리는 것은 아닙니다. 이러한 이유는 두가지를 들 수 있는데, 첫째는 악기와 악기간의 파동이 어긋나 상쇄현상이 이루어지기 때문이고, 둘째는 사람의 귀는 작은 소음은 분명하게 듣고 음량이 커질수록 점진적으로 약하게 받아들이도록 진화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도로를 뚫는 드릴 소리의 강도는 한숨 소리의 무려 1조배에 달하지만, 상대적인 음량으로는 4096배밖에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이러한 음악원리 말고도 저자는 사람들이 가질 수 있는 음악적 편견들 또한 지적하고 있습니다. 그중 하나가 절대음감이라 불리우는 것인데, 절대음감은 여섯살 이전에 특정 악기의 모든 음을 머릿속에 기억했다는 뜻일 뿐입니다. 이런 능력을 가진 사람은 대체로 음악 솜씨가 뛰어나지만, 그것은 여섯 살 이전부터 음악교육을 받은 훈련의 결과이지 절대음감과는 무관하다는 것입니다. 절대음감의 이점은 바이올린 주자가 택시 안에서 혼자 악기를 조율할때나 성악가가 혼자 시골길을 걸으며 자기가 정확한 음을 내고 있는지 확인하는 정도에 불과하다는 것을 지적합니다. 다만 대부분의 음악가들은 부분적인 절대음감을 갖고 있으며 연주회가 시작되기 전 악기들을 조율하는 모습에서 그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절대음감은 유럽과 미국에서는 아주 드물지만 중국과 베트남처럼 성조언어를 사용하는 나라에서는 심심치 않게 발견된다. 이런 성조 언어로 말할 때는 말의 특성과 노래의 특성이 결합된다. 가령 중국어에서는 단어를 어떤 음높이로 노래하는지가 의사소통에 결정적 요소로 작용한다. "점심 준비됬어요, 엄마?"라는 질문이 음높이가 잘못되면 '내 점심 어디 있어, 이 말 같은 녀석?"이 된다. - p.30

저자는 많이 알수록, 다양하게 들을수록 음악을 즐길 수 있다고 말합니다. 서양 음악과 비서양 음악의 차이를 앎으로서 그 개성적인 부분을 들을 수 있으며, 팝, 재즈 밴드들이 드럼과 심벌즈를 자주 사용하는 이유는 음이 아니라 소음을 내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앎으로서 드럼소리가 들릴때 한번 쯤 더 되새겨볼 수도 있습니다. 고전음악의 길고 복잡한 제목 또한 그것의 유래를 안다면 쉽게 받아들이고 오케스트라 연주를 들으러 가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기본5음계의 구조와 뜻을 알고 평균율, 순정율이란 체계를 안다면 노래를 듣는 것에서 더 나아가 직접 음악을 쳐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악기를 다루는 것은 사람들의 편견과 다르게 다른 취미 못지않게 쉽다는 것을 안다면, 캠프파이어를 가기 전 악기를 하나 배워볼만한 용기를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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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조원의 육체산업 - AV 시장을 해부하다
이노우에 세쓰코 지음, 임경화 옮김 / 씨네21북스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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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 비디오, AV에 대한 반응은 다양합니다. 여전히 대부분은 쉬쉬하는 반응이지만, 어느정도는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심지어〈거침없이 하이킥〉같은 TV프로그램에서는 성인비디오를 개그코드로 승화시켰으며, 그에 대한 반응도 긍정적이였습니다. 또한 요근래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아청법에 대한 논란이 주요 이슈화되고 있는데, 아청법이 옳네 그르네를 떠나서 음란물에 대한 것들이 공론화되고 있다는 점은 이 또한 성인비디오에 대한 영향력을 사회적으로 인정하고 있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그런 음란물 중에서 가장 영향력이 있는 것은 아마도 일본AV이 아닐까 합니다. 물론 서양의 성인비디오가 더 영향력이 있을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일본의 성인비디오가 영향력이 작지는 않습니다. 때문에 일본의 AV산업의 실태를 알아보는 것은, 더 나아가 우리나라의 성 문화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이 책은 2002년 기준으로 1조엔 규모의 시장, 현재 환율로는 13.7조원 규모의 일본AV시장에 대한 전반적인 정보를 담고 있습니다. 그 중 흥미로운 것이 몇 가지가 있는데, 갈수록 공격적인 성행위를 묘사하는 비디오가 잘 팔리는 것에 대한 심리적인 분석, AV 여배우들이 배출되기 쉬운 환경적 분석 등이 있습니다. 리처드 윌킨슨이 쓴《건강불평등》에서 특정 질병의 사망률은 그 사회 특유의 구조를 반영한다고 말한 것처럼, 성인 비디오에서 나타나는 결과들 역시 그 사회의 구조를 반영할 수 있습니다. 과거의 성인 비디오는 〈사랑을 나누는 연인들〉에서 안보 투쟁을 다루거나, 〈검은 눈〉에서 미군기지 문제를 다루는 등 포르노 영화라는 이름 아래 사회를 향해 메시지를 전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드라마적인 요소가 배제된 성인 비디오와 폭력은 물감이 물에 풀리듯이 쉽게 융합되었고, 폭력성 강한, 그것도 여성을 대상으로 한 폭력이나 강간 등 여성을 힘으로 정복하는 성인 비디오가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이런 경향은 1980년대부터 시작된 공업화에 따른 도시 인구 집중과 가족 형태의 변화로 자녀 양육 방식, 특히 남자아이의 양육방식이 달라졌기 때문이라고 저자는 말합니다. 경제성장과 더불어 핵가족이라는 가족 형태가 선을 보이면서 형성된 남녀의 성별에 따른 역할 분담이 이루어지게 됩니다. 아버지라는 존재는 잠을 자기 위해 밤늦게야 귀가해 잠깐 집에 머물거나 지방으로 전근이라도 가게 되면 아버지 홀로 떠나는 것이 당연시되다 보니, 어머니가 혼자 가사와 육아를 맡게 됩니다. 이러한 사회분위기에서 아들은 어릴 때부터 어머니의 지나친 애정을 받으며 자라는 환경에 놓이게 됩니다. 많은 어머니들은 자식 교육이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는 현대판 맹모라는 야유까지 받으며 자녀 양육에 헌신했는데, 이는 자식을 위해서라고는 하지만 변명에 지나지 않았고, 아이들은 어머니 자신의 자아실현을 위해 자녀들은 학원에 가야 하고, 미래 또한 이미 다 정해져 있었습니다. 그런 자녀들은 어머니의 애정이라는 굴레에서 벗어나고자 했으며, 어머니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를 키워갔고, 그 부정적 이미지는 모든 여성에게 확대되어 남존여비 사상이나 여성을 멸시하는 사고를 갖게 됩니다.

심리학자 기시다 슈도는 《어머니에 대한 환상》에서 '남자아이가 어엿한 남성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사회적 규범 지키기를 강요하는 어머니에 맞서며 그 갈등을 극복하는 길밖에 없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정신분석학자인 오코노기 게이고는 《아버지와 어머니와 자녀-그 애정의 정신분석》에서 '어머니의 과잉보호 아래 자란 아이들은 어머니에 대한 일체감의 환상이 환멸로 끝날 때는 환상을 품었던 만큼 어머니에 대한 원망도 크다. 그 결과 어머니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가 남게 되고, 더 나아가서는 이 부정적인 이미지가 여성에까지 번지게 되는데 이런 심리가 여성에 대한 지나친 공포나 멸시를 낳는다'고 말합니다. 기시다 슈는 《성적 유환론 서설》에서 마더 콤플렉스, 즉 모자간의 분리가 안된 남성은 성관계 시 상대 여성 안에 자신을 성 불능으로 만드는 어머니의 이미지가 끼어드는 것을 막기 위해 필사적으로 그것을 뿌리치려고 하며, 정서적으로 상대 여성을 배제하려고 하기 때문에 공격적으로 변한다고 지적합니다.

또한 AV 여배우들이 자라온 삶의 과정을 보면 사회의 어두운 면을 알 수 있습니다. AV 여배우 중에는 중산층 가정 출신이나 음악을 하거나 명문대 출신인 이른바 지식층이라 불리는 사람들도 존재하지만, 대부분의 AV 여배우는 가난한 집안 출신이며, 양녀로 들어간 집에서는 양부에게 성폭행을 당한 경험이 있기도 합니다. AV 여배우 42명의 인터뷰를 담은 나가사와 미쓰오가 쓴 《AV 여배우》를 보면 부모가 이혼을 하거나, 부모가 자식에게 정신적, 신체적 학대를 행사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경우 어린 시절 성폭행을 당하면 자기평가가 낮아져 매춘부와 같은 직업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심리학자 해리 할로가 《사랑의 발견》에서 '그 하나의 관계, 최초의 관계는 다른 모든 관계들을 휩쓸어 침수시켜 버릴 수 있는 힘을 가진 중요한 관계이다. 최초의 애착이든, 상호 작용 관계든, 사회에 대한 연결점이든, 뭐라고 부르던 간에 이 최초의 관계가 그토록 커다란 힘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은 어머니보다는 아이 쪽에 더욱 절실한 문제이다'라고 지적하듯이 AV 여배우들이 어렸을때 받은 어린 나이에 어머니의 사랑을 받지 못한다는 경험은 인생에 있어서 치명적으로 작용합니다.

"난 그저 따뜻한 온기를 원했을 뿐" - A양 

해리 할로가 《사랑의 발견》에서 '어떤 끔찍한 상상도 이 살아 있는 원숭이 어미보다 더 사악한 대리모를 창조해 내지 못할 것이다. 어떤 형태의 사랑도 경험해 보지 못한 이 어미 원숭이들은 제 새끼에 대한 사랑이 완전히 결여되어 있었다. 그런데 불행한 것은 이러한 감정의 결핍이 너무나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다'라고 지적하듯이, 이러한 불행은 되풀이됩니다. 그리고 이 불행이 AV 여배우를 낳는데 큰 역할을 하며, 결과적으로 AV산업을 지탱합니다. 또한 AV산업이 요구하는 비디오의 장르는 그러한 트라우마를 해결하기는 커녕, 부추기고 있습니다. 하지만 갈수록 폭력적으로 변해가는 추세에도 그에 역행하는 회사 또한 있습니다. 여성인 가와무라 미호가 대표로 있는 무빅스(MOVIX)가 그 사례인데, 무빅스의 팸플릿을 보면 남성과 성행위하는 장면은 하나도 없으며, 아름다운 여성의 나체도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이 세미 누드입니다. 무빅스는 상품으로서의 성인 비디오가 아닌 작품으로서의 성인 비디오를 만드는 것을 추구하는데, 좀 더 아름다운 영상, 노골적인 성행위 장면이 없는 성인 비디오를 제작하고 있습니다. 예를들면 꽃가게 앞에 앉아 꽃을 바라보고 있는 여성의 목덜미를 찍는 식의 에로스를 추구합니다. 안타깝게도 이 회사는 현재 폐업했지만, 성인 비디오의 긍정적인 방향을 제시했다는 데 의의가 있습니다.

이제는 우리나라에서도 일본AV는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 되었습니다. 일본AV를 편집한 영상이 june과 fimm의 모바일로 서비스되고 있고, 스카이라이프의 미드나잇 채널은 일본의 JAM TV와 전략적 제휴에 들어갔습니다. SOD는 한국, 대만 등의 해외 진출을 시작했고, 한국 현지법인을 설립한 곳도 있습니다. 미드나잇 채널의 이강복 국장의 말처럼, 일본 AV가 우리의 현실이 됐습니다. 언제 어느곳이나 포르노는 존재합니다. 분명한 것은 음란물에 대해 무언가를 변화하고 싶다면, 먼저 알아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15조원의 육체산업》은 쉽게 접할 수 있는 개론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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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타쿠 - 21세기 문화의 새로운 지배자들
오카다 토시오 지음, 김승현 옮김 / 현실과미래 / 200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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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한 TV프로그램을 보고 있었을 때, 배경음악으로 독특하면서도 경쾌한 노래가 흘러 나왔습니다. 나중에 인터넷에서 알게 된 결과, 그 노래의 제목은 "Tank!" 였고 일본의 애니메이션「Cowboy Bebop」에 나온 노래였습니다. 이처럼 오타쿠 문화는 알게 모르게 TV드라마, 예능 프로그램 등과 같이 우리의 삶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책은 제목에서 예상할 수 있듯이, 오타쿠를 다루고 있습니다. 오타쿠와 관련된 업계 이야깃거리부터 오타쿠의 특징, 역사, 다른 문화와의 차이점을 논합니다.

오타쿠란 단어의 유래는 케이오우 대학 출신의 사람들이 애니메이션 회사 '스튜디오 누에'에 취직해서 만든「초시공요새 마크로스」가 성공을 거둠으로서 시작됩니다. 당시 일본의 비영리 SF축제인 '일본 SF 대회'에서 이들은 동경의 대상이었고, 이들과 팬들은 상대방에 대한 가벼운 경칭인 오타쿠(お宅)라는 단어를 사용했습니다. 초창기의 오타쿠는 처음 만난 사람에게 실례가 되지 않기 위한 호칭이란 사회적 요소가 있었지만, 다른 팬들도 이를 흉내내기 시작하면서 당시 서브컬처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로 뜻이 확장됩니다. 이렇듯 단어가 애매하게 만들어지다 보니, 오타쿠라는 단어의 원뜻인 '실내indoor'의 이미지가 작용하면서 '집에만 있는 사람들' 과 같은 오해를 사기도 했습니다.

저자는 오타쿠의 특징으로 '고도의 백과사전적 능력'과 '향상심과 자기 과시 욕구'를 말합니다. 다양한 분야의 장르를 깊이 즐기며, 관련 정보를 끊임없이 수집하고 분석하고 과시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특징들은 다른 분야에 있는 사람들에게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야구로 예를 들면, 일반인들은 가끔 TV중계로 야구 결과를 본다면, 야구 팬들은 매번 야구장에 찾아가 좋아하는 팀을 응원하는 것이고, 오타쿠적으로 야구를 즐긴다는 것은 수많은 야구 통계를 분석하는 세이버 매트리션이 되는 것입니다. 때문에 오타쿠에겐 또 다른 특징이 있습니다. TV의 보급을 바탕으로 영상의 세기인 20세기에 태어난, 영상에 대한 감수성을 크게 진화시킨 '시각적 인간'이라는 것입니다. 이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찾을 한창 어린 나이에 TV를 통해 다양한 영상을 접했고, 이러한 분야에 재미를 느꼈고, 그 재미를 극한까지 추구하는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때문에 오타쿠들은 아주 까다로운 소비자들입니다. 오타쿠들은 장르를 넘나들며 작품을 간파하고, 끊임없이 더 높은 수준을 요구합니다. 오타쿠들은 한정된 자원으로 최대의 재미를 추구해야 하기 때문에, 어렸을 때부터 온갖 정보의 범람 속에서 정보의 가치를 판단하는 법을 배웁니다. 사회적으로 가치관의 다양화를 우선시하는 문화가 정착되면서 개성을 추구할 수 있게 됬지만, 동시에 주된 유행을 없앤 결과를 가져오기도 했습니다. 대다수의 보통 사람들은 무언가 재미를 추구할 방법을 쉽게 찾기 힘들어졌고, 오타쿠들은 이런 상황에서 문화산업의 방향을 주도할 수도 있습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구매력입니다. 통계적으로도 오타쿠들의 구매력은 보통의 구매층보다 높은 편이며, 제품에 대한 충성심도 높습니다.

한국에서는 오타쿠들이 이런 식의 '정치적 소비'의 선구자가 되었다. 고속 인터넷 망이 깔려 불법 복제와 다운로드가 일반화되었을 때에도 꿋꿋이 CD를 사고 만화책을 사 모았던 것은 바로 오타쿠들이었다. 이들은 "다운로드를 받지 왜 바보처럼 정품을 사니?"라는 주변 사람들의 핀잔 속에서도 자신들의 소비 행태를 고수해 왔다. 처음에는 소유욕으로 시작되었지만, 나중에는 자신이 좋아하는 창작품을 계속 구매해야 창작자들이 계속 창작할 수 있음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그런 정치적 소비의 결과, 오타쿠들은 한국 사회에서 지적 재산권 문제에 대해 가장 민감한 집단이 되어 버렸다. -《열정은 어떻게 노동이 되는가》p.232 

오타쿠들은 까다로운 소비자이면서 동시에 생산자가 되었습니다. 오타쿠의 기질을 발휘해 다양한 영상기법과 연출을 실험했고, 이를 오타쿠들이 비평하면서 계속 발전해 나갔습니다. 대표적인 예로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SF영화「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를 들 수 있습니다. 이 작품에서는 1초의 화면을 위해 4시간을 촬영해야 하는 '장시간 노출' 촬영 기법이나 너트를 이용한 촬영 기법, 슬라이드 스캔이라는 광학 촬영, 목성을 표현하기 위해 만들어진 쥬피터 머신이라는 매커니즘 등이 동원됬습니다. 그 후에도「스타워즈」나「쥬라기 공원」을 비롯해 계속 발전중인 SFX의 연출에는 이런 오타쿠스러움이 있었습니다. 저자는 고도화된 정보 네트워크 사회에서 창조적인 작품을 만들고 세계 시장에서 겨룰 수 있는 인재는 오타쿠적인 시야와 사고방식을 가질 수도 있어야 한다고 지적합니다.

'오타쿠'는 일본의 미디어 서브컬처를 즐기는 사람들로 한정지을 수도 있겠지만, '오타쿠스러움'은 다른 분야에서도 충분히 주목할 만한 특징들입니다.《열정은 어떻게 노동이 되는가》에서 지적하듯이, 현대의 사회적 메시지는 '일이 곧 생활이고, 생활이 곧 일'인 사회인이 되라는 것입니다. 이 새로운 노동윤리가 정착되는 과정에서 일은 시키지만 보수는 제대로 주지 않는 사회적 풍토가 열정 노동이라는 악순환을 만들긴 했지만, 오타쿠스러운 열정은 분명 한 분야에서 훌륭한 업적을 이룰 수 있는 원동력이기도 합니다. 이런 독특한 엔진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활용할 수 있을지는 바로 우리의 판단에 달려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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