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사람이 더 합리적이다 - MIT 경제학자들이 밝혀낸 빈곤의 비밀
아비지트 배너지.에스테르 뒤플로 지음, 이순희 옮김 / 생각연구소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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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사람들의 행동을 보면 불합리한 행동을 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언제나 영양결핍에 시달리면서도 소득이 늘어도 먹는데 투자하지 않거나, 무료로 예방접종을 해준다고 해도 받지 않거나, 장기적으로 보면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는것이 이익이라는 증거가 확실함에도 학교에 아이들을 보내지 않거나, 저축을 할때도 돈을 은행에 저축하는 것이 아닌 벽돌을 사서 모은다던지와 같은 불합리한 행동들을 합니다. 하지만 가난한 사람들의 비상식적인 행동은 과연 정말로 비상식적인가에 대한 의문에 저자들은 아니라고 말합니다. 가난한 사람들이 내리는 결정은 그 어느 경제학자보다도 합리적이라고 말합니다. 비합리적인 행동을 하는 삶의 결정이 합리적이라는 이러한 모순에서 저자들은 빈곤 문제를 해결할 열쇠가 있다고 말합니다.

기존의 빈곤 문제 해결을 위한 방법론은 제프리 삭스와 이스털리의 논쟁속에 있었습니다. 제프리 삭스는 S자형 곡선과 빈곤의 덫 이론을 주장했고, 이스털리는 L자형 곡선을 주장합니다. 삭스는 S자형 곡선의 빈곤의 덫 영역을 탈출시킬 수 있게 해준다면 빈곤을 벗어날 수 있기 때문에 직접적 원조를 주장하고, 이스털리와 같은 경제학자는 꾸준히 저축하고 노력하면 언젠가는 부자가 될 수 있기 때문에 빈곤의 덫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합니다. 이러한 보편적 모델도 중요하지만, 구체적인 해답을 제시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저자들은 말합니다. 그렇기 위해선 가난한 사람의 생활상과 관련해 구체적인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가난한 사람이 어떻게 살아가는가를 양적, 질적 측면에서 이해할 수 있다면 어떤 정책이 성과를 거두고 어떤 정책이 그렇지 못한지를 알 수 있습니다.

대부분의 식량 정책은 가난한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것은 값싼 곡물뿐이라는 전제 하에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이는 대부분 가난과 굶주림을 동일시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빈곤선 또한 기아를 근거로 개념을 규정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가난한 사람들을 지원해줘서 소득이 늘어도 굶주림에 허덕이는 사람은 가진 돈을 몽땅 털어 더 많은 음식을 사지 않습니다. 그 증가분을 더 많은 열량을 섭취하는데 투자하는 것이 아니라 더 맛이 좋고 비싼 식품을 구매합니다. 문제는 열량이 아니라 영양소에 있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은 필요한 열량을 모두 스스로 찾아야 하기 때문에 균형잡힌 영양을 섭취하기가 힘듭니다. 선진국의 사람들은 아무 생각 없이 소금을 사도 철분과 요오드를 섭취할 수 있지만 가난한 사람들은 스스로 철분과 요오드를 구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결과는 국제기구의 식량 정책인 단순한 곡물 지급량 증대로는 가난한 사람들의 균형잡힌 식사에 별 도움이 되지 않음을 암시합니다.

가난한 사람들이 무료로 예방접종을 해준다고 해도 거부하는것도 이러한 관점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정보 부족과 박약한 신념, 자꾸만 뒤로 미루는 버릇은 가난한 사람이나 그렇지 않은 사람 모두가 부딪치는 문제입니다. 가난하지 않은 사람이 좀 더 배운것은 사실이지만 그 차이는 별로 크지 않으며, 우리는 흔히 자신이 아는 것이 많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는 수많은 편의 시설에 둘러싸여 살고 있고 그것을 당연한 일로 여깁니다. 상수도가 설치된 덕분에 아침마다 식수에 염소를 첨가해야 한다는 사실을 떠올릴 필요도 없고, 하수는 저절로 흘러나가므로 그것이 어떻게 배출되는지 알 필요도 없습니다. 우리는 다음 식사 때 먹을 식품을 어디서 구할지 걱정하지도 않습니다. 이처럼 우리는 자제력과 결단력에 의존할 필요가 거의 없습니다. 하지만 가난한 사람들은 늘 자제력과 결단력에 의존해야 합니다. 무료 예방 접종을 가난한 사람들이 잘 찾지 않는 이유는, 의료 서비스가 안정적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예방접종을 위해서는 10km 이상을 걸어가야 하는데, 보건소가 언제나 정해진 시간에 열려있지 않은 경우가 많습니다. 결국 사람들은 예방접종을 외면하게 되고, 예방보다 더 돈이 많이 드는 치료에 돈을 씁니다. 가난한 사람들이 가격에 민감하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무상 제공, 보상 지급, 디폴트 옵션 방식의 예방 의료 체계 구축을 무엇보다 우선시해야 하며, 쉽게 예방의료의 혜택을 누리도록 하고, 의료 행위의 품질을 규제하는 보건 의료 정책을 주요 목표로 설정해야 합니다.

교육이 장기적으로 소득증대에 도움이 된다는 결론은 잘 알려져 있지만, 빈곤정책에서 학교를 세우고 교사를 채용하는 것은 교육비용을 낮추기 위한 첫 단계에 불과하며 이것만으로는 충분치 않습니다. 선진국은 대부분 부모에게 선택권을 주지 않는데, 부모에게는 특정 나이가 될 때까지 자녀를 학교에 보낼 의무가 있습니다. 그렇지만 국가의 역할이 제한적인 나라에서는 의무교육을 강제하기 어렵습니다. 부모의 소득이 교육 투자를 결정하는 핵심 요인이라면 부모가 부유한 아이는 재능이 뛰어나지 않아도 교육을 더 받고, 부모가 가난한 아이는 재능이 뛰어나도 교육을 받지 못하는 일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결국 교육 문제를 시장에만 맡겨둘 경우 모든 아이가 가정형편과 관계없이 자신의 능력에 따라 교육받는 것은 불가능해집니다. 많은 개발도상국의 교과 과정 및 수업 내용은 일반 학생보다 엘리트 학생에게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단순히 투입확대를 통한 교육 개선 노력은 대체로 실망스러운 결과를 낳게 됩니다. 이런 입장을 근거로 부상한 새로운 대안이 조건부 보조금 제도입니다. 소득 격차를 완전히 해소할 수 없다면 공적 주체가 공급에 개입해 교육비 부담을 덜어줌으로써 모든 아이가 동등한 기회를 누리게 하는 것이 사회적 효율성에 근접하는 길입니다. 결국 부모가 자녀를 학교에 보내는 것이 경제적으로 가치 있는 일이 되도록 정부가 나서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가난한 사람들은 언제 불행이 닥칠지 모른다는 불안감을 안고 있기 때문에 많은 비용을 들더라도 충격을 완화할 전략을 선택합니다. 즉, 가난한 사람들은 분산 투자를 선호합니다. 경작지를 마을 곳곳에 분산시키며, 흔히 여러 직업에 종사합니다. 이러한 전략은 보수적이기 때문에, 비료의 사용이 이득임을 알고 있어도 전통적인 방식을 선호하기 때문에 새 종자를 구입하지도 않고, 비료를 사용하지도 않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이 위험에 대처하기 위해 사용하는 이러한 방식은 비용이 많이 듭니다. 이것은 농업 분야에서 뚜렷이 나타나는데, 강우 유형이 불규칙한 지역일수록 가난한 농민이 더 보수적이고 비효율적으로 자원을 투입합니다. 이렇게 비효율적인 행동을 하는 이유는,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주는 국가의 보험 제도가 없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가난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는 보험에 보조금을 지원하면 이들의 소득을 증대시키는 효과를 거둘 수 있습니다. 실험 결과 저렴한 보험에 가입한 농민은 그렇지 않은 농민보다 농작물에 비료를 사용하는 비율이 높았고 그 결과 소득이 늘어났습니다. 이를 고려하면 보조금을 지원하는 보험 정책은 공적 자금을 이용해 공익을 도모하는 최적의 분야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은 저축을 잘 하지 않습니다. 저축을 하려면 자제력이 필요한데, 가난한 사람은 유혹에 쉽게 넘어갑니다. 부유한 사람은 상대적으로 쉽게 자신의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으며, 저축 여부를 결정할 때 부유한 사람은 미래를 위해 저축한 여윳돈이 목적대로 쓰일 거라고 예측합니다. 달콤한 차를 전형적인 유혹재라고 하면, 부유한 사람은 달콤한 차의 유혹에 빠지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부유하기 때문에 차를 몇잔 더 마신다고 해서 저축한 돈이 줄어들지 않습니다. 하지만 가난한 사람들이 간절히 원하는 물품은 상대적으로 비싼데, 수중에 돈이 없기 때문에 자포자기하게 되며 유혹재의 영향이 더 크게 나타납니다. 이러한 자포자기는 악순환으로 이어지는데, 저축하지 않으면 가난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문제는 자제력이 근육과 같아서 쓰면 쓸수록 피로가 심해진다는 점입니다. 때문에 가난한 사람일수록 저축을 더 힘겨운 일로 여깁니다. 가난한 사람들은 적립기금이나 퇴직연금 등의 제도를 이용할 수 없습니다. 또한 일반적인 은행에 저축을 할 수도 없는데, 가난한 사람들이 일반적이고 간단한 저축 방식을 이용하지 못하는 이유는 은행이 관리비용을 이유로 소액 예금계좌를 기피하기 때문입니다. 예금계좌를 개설할 때는 까다로운 문서 업무가 따르는데, 그러다보니 소액 예금계좌는 발생하는 수익보다 문서 업무로 인한 비용이 큽니다. 이로 인해 가난한 사람들은 번듯한 은행계좌가 아니라 복잡하고 비용이 많이 드는 대안을 이용합니다. 당연히 저축 금액은 은행계좌를 이용할 때보다 적으며, 매주 혹은 매달 저축할때마다 자제력을 발휘해야 합니다. 케냐에서의 실험은 은행계좌 개설비용이 줄어들면 가난한 사람들의 형편이 나아진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지만, 이러한 요소들은 가난하기 때문에 더 저축하기 힘들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결국 가난한 사람은 가난을 벗어나기 힘듭니다.

저축을 하는 대신, 가난한 사람들은 영세사업을 하는 비중이 높습니다. 하지만 가난한 사람과 그들의 사업은 주변의 수많은 사업과 차별화되지 않기 때문에 수익이 보잘것 없습니다. 이러한 난관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사업을 성장시켜야 하며, 영세사업을 빠르게 성장시키려면 많은 자금을 빌려야 합니다. 하지만 가난한 사람들은 이율이 높기 때문에 많은 자금을 빌릴 수 없습니다. 이렇듯 가난한 사람들이 사업을 확장하지 못하는 까닭은 사업하기가 매우 어렵기 때문입니다. 충분한 돈을 빌릴 수 없고, 높은 수익을 내지 않으면 장기간 저축을 해야 하는데, 저축 또한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합니다. 저축으로 빈곤의 덫을 넘기려면 60~80년이 걸리게 된다면 가난한 사람은 빈곤의 덫을 넘어갈 의지를 잃게 됩니다. 저축을 해봐야 자신이 바라는 소비 수준에 도달할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자포자기하게 되며 미래보다는 현실에 돈을 투자합니다. 이렇게 사업이 쉬운게 아님에도 불구하고 가난한 사람들이 무작정 사업에 뛰어드는 이유는 일자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가난한 사람들은 사업에 특별한 열정이 없어도 사업을 선택하는데, 사업은 취업을 하지 못해 어쩔 수 없이 선택하는 하나의 방편입니다. 여러 사례들을 보면, 안정된 직장은 커다란 효과를 발휘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안정된 직장은 인적자본 투자의 선순환을 이루어지게 하고 그만큼 미래의 고용 기회도 더 늘어납니다. 고용이 보장될 경우 사람들의 생활에 급격한 변화가 일어나는데, 고용된 상태에서 돈이 생기면 사람들은 건강과 교육에 더 많은 돈을 지출합니다. 안정적인 미래가 있다는 믿음은 빈곤층과 중산층을 가르는 표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가난한 사람들의 삶에서 보여주는 사회구조적인 모순성, 일자리의 중요성 등은 결국 좋은 정치, 더 나아가 좋은 정책이 중요하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정치 환경이 나빠도 좋은 정책을 실행할 수도 있으며, 정치 환경이 좋아도 나쁜 정책이 실행될 수 있습니다. 거대한 거시경제 정책이나 제도 개혁보다는 작은 변화가 큰 성과를 낼 수 있다고 저자들은 말합니다. 가난의 뿌리를 근절할 스위치 같은 것은 없으며, 기대야 할 것은 시간과 조용한 혁명의 신호탄들이라고 말합니다. 그렇기 위해선 이른바 따기 쉬운 열매들, 쉽고 저렴하면서도 뛰어난 변화를 발휘하는 방법들을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그 시작은 가난한 사람들의 의사결정 방식 뒤에 숨어 있는 합리성에 주목하는 것부터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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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볼
마이클 루이스 지음, 김찬별.노은아 옮김 / 비즈니스맵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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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야구팀 오클랜드 애슬레틱스는 매우 가난한 구단입니다. 오클랜드 구단이 선수들에게 지급하는 총 연봉은 2002년 기준으로 4194만 달러로, 오클랜드가 경쟁해야 하는 다른 구단에 비하면 턱없이 적은 수치입니다. 2002년에 애너하임은 6275만 달러를, 시애틀은 8608만 달러를, 텍사스는 1억 691만 달러를 지급했습니다. 가격이 선수들의 실력을 반영한다면, 오클랜드는 단연 리그 최하위를 달려야 했습니다. 하지만 오클랜드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오클랜드는 텍사스에 비해 반도 안되는 연봉을 지급하면서도 텍사스와 승차31을 벌리며 아메리칸리그 서부지구에서 리그 우승을 차지합니다. 그리고 20연승이라는 신기록과 4년 연속 플레이오프 진출이라는 결과를 냅니다. 그 힘은 채드윅부터 시작해서 빌 제임스가 창시한 세이버메트릭스의 힘이였고, 그것을 메이저리그에 접목시킨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의 단장 빌리 빈의 힘이였습니다.

과거의 야구 스카우터들은 기록의 중요성에 동의하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선수들의 과거 기록이 앞으로 그 선수가 얼마나 성장할 수 있을지의 가능성을 보여주지는 못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관념은 비과학적이고 비합리적인 부분을 낳았는데, 문제는 메이저리그 선수를 물색하는 방식에 있었습니다. 당시 스카우터가 선수를 찾아내는 방법은 수만 킬로미터를 운전해 싸구려 모텔에 묵고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끼니를 때워가며 넉 달간 고등학교와 대학 선수들의 경기를 평균 200회씩 관전하는 식이었습니다. 그리고 그중에서 199회는 보통 아무런 성과도 얻지 못하며, 그러다 200회의 경기 중 단 한번 우연히 아무도 알아보지 못한 뛰어난 선수를 찾아내는 것이였습니다. 그런 선수를 알아보는 것은 첫눈에 반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이러한 스카우터들의 평가를 기본으로 진행되는 신인 드래프트는 당연히 실패율이 매우 높았고, 50명을 뽑고 2명만 성공해도 기뻐하는 실정이였습니다. 과거엔 야구선수들의 연봉이 높지 않았기 때문에 이런 실패가 심각한 타격을 주진 않았지만, 갈수록 높아지는 연봉은 점점 선수를 잘 뽑아야 한다는 필요성을 제기했습니다.

야구인들의 주관적인 평가에서 벗어나 통계 분석을 통해 야구 이면의 합리성을 밝힐 수 있다고 생각한 사람은 1845년 박스스코어라는 개념을 고안한 핸리 채드윅에서 시작합니다. 하지만 채드윅은 통계의 의미를 파고드는 일보단 통계의 대중화에만 매달렸기 때문에 볼넷의 의미를 잘못 고안하는 등 여러 문제점이 있었는데, 이때부터 타율은 선수의 공격력을 평가하는 핵심 지표가 되었습니다. 그후 경제학과 문학을 전공하고 스토클리밴캠프 식품공장의 야간 경비원으로 일하던 빌 제임스는 야구 데이터 역사에 핵심적인 역할을 합니다. 그는 자비로 『1977년 야구개요:18개 항목의 야구통계 독점 제공』이라는 68쪽 분량의 책을 출판했는데, 급진적이고 독창적인 주장이 담겨 있었습니다. 책을 통해 야구의 통계가 부적절할 뿐만 아니라 거짓도 섞여 있음을 말하며 야구의 통념에 대한 공격을 시작합니다. 그는 꾸준히 책을 냈고, 득점생산력이라는 모형[RC=(안타+볼넷)*총루타 수 / (타수+볼넷)]을 제시하기도 합니다. 빌 제임스 말고도 딕 크레이머, 피트 팔머와 같은 사람들도 야구에 관한 새로운 이론을 검증했는데, 팔머와 크레이머는 출루율과 장타율을 합친 OPS라는 지표를 개발하기도 했습니다. 빌 제임스는 이러한 연구 분야에 세이버메트릭스라는 명칭을 붙였고 점점 많은 호응을 얻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방식을 실제로 도입하기란 매우 어려웠습니다. 1999년 플로리다 말린스를 사들인 존 헨리라는 부자도 빌 제임스의 오랜 독자였고 팬이였습니다. 그는 가상 야구 게임에서 제임스의 방법을 활용해 즐겼고 실제로 높은 승률을 자랑했습니다. 하지만 그가 소유한 실제 야구팀은 제임스의 방식과는 상관없이 움직였습니다. 헨리가 당면한 문제는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측면을 포함하고 있었는데, 구단주가 되어 전적으로 새로운 방식을 도입하겠다는 것은 기존의 감독과 스카우터, 선수를 포함해 팀의 모든 관계자를 소외시키는 것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랬다간 구단주라 할지라도 결국 조직으로부터 외면당하고 맙니다. 하지만 도입 시도는 그 후 샌디 앨더슨으로 이어집니다. 다트머스대학과 하버드 로스쿨을 졸업한 샌프란시스코의 변호사 샌디 앨더슨은 야구를 해본적도 없었지만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의 단장으로 부임합니다. 현장에 뛰어든 앨더슨은 야구를 이해하려 애썼고 경기중의 작전부터 선수 평가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은 야구인의 연륜과 경험을 토대로 하기보단 과학적 조사 방식, 통계를 기반으로 둔 데이터 분석에 따라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애슬레틱스의 구단주는 전혀 돈을 쓰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에 앨더슨은 가장 효율적으로 돈을 써야 했기 때문에 그러한 필요성이 더 컸고, 앨더슨은 출루율이라는 단 하나의 통계를 중심으로 구단의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냅니다. 하지만 그의 변화는 마이너리그에서만 이루어졌을 뿐 메이저리그에서는 통제력을 발휘할 수 없었습니다.

빌리 빈은 1999년부터 오클랜드의 단장으로 취임했습니다. 그는 젊었을 때 정말 뛰어난 신체능력을 가졌고, 야구에서 대성공할 수 있는 재능을 지녔습니다. 결국 그는 프로 야구선수가 되었지만, 그는 정신적인 부분에서 프로선수가 되기엔 벅찼고, 결국 선수생활 도중 프런트로 자리를 옮깁니다. 앨더슨은 빌리 빈을 자신의 보좌관으로 삼았고, 빌리 빈 또한 세이버메트릭스의 영향을 받습니다. 그는 단장이 되었지만 수많은 문제에 직면합니다. 4000만 달러의 예산으로 2억 2600만 달러까지 쓸 수 있는 구단과의 승부에서 승리해야 했습니다. 당시 메이저리그 선수들의 평균 연봉은 230만 달러였는데, 오클랜드는 150만 달러도 채 줄수 없었습니다. 그는 어린 선수나 시장에서 과소평가된 기존 선수를 찾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재능있는 선수들은 부자 구단이 모조리 쓸어갔을것 같았지만, 빌리 빈에겐 여전히 기회가 남아 있었습니다. 빌리가 단장으로 취임할 당시에도 야구계는 서서히 OPS라는 새로운 지표에 눈길을 주고 있었습니다. OPS는 출루율과 장타율을 단순하게 합산한 수치인데, 단순하기는 해도 팀의 득점을 예측하는데 다른 어떤 공격 부문의 통계보다 훨씬 정확한 지표였습니다. 하지만 두 가지 기록을 단순히 합산하는 방식은 이 둘이 동등한 중요성을 지녔다는 식으로 해석될 소지가 있었습니다. 빌리의 보좌관인 폴은 그것이 부조리하다는 결론을 내렸는데, 그의 공식에 따르면 출루율 증가는 장타율 증가보다 세 배나 큰 가치가 있었습니다. 당시 선수의 출루 능력은 다른 능력에 비교해 대단히 낮게 평가되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출루, 다시 말해 아웃을 피하는 능력은 수비 능력이나 빠른 발과는 비교도 되지 모했으며 장타력에 비해서도 하찮게 여겨졌는데, 그 덕분에 팀의 승리에서 가장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출루율 좋은 선수를 헐값에 사들이는 것이 가능했던 것입니다.

"아마 프로야구계의 누구도 동의하지 않겠지만 브랜트는 미국 최고의 타자일 겁니다. 내가 정말 신나는 이유가 뭔지 아세요? 사람들은 그 선수가 치명적인 단점이 있어 고려할 가치도 없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그것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겁니다." - 폴 디포디스타 

그렇게 해서 사들인 선수들은, 기존의 야구팀 관계자나 기자들이 보기엔 그야말로 스포츠 선수의 자격이 떨어지거나 별 쓸모없다고 판단한 선수들이였습니다. 빌리가 드래프트나 트레이드 등을 통해 얻은 선수들은 제러미 브라운, 브랜트 콜라마리노, 제이슨 지암비, 스콧 해티버그, 짐 메시어, 채드 브래드포드 등과 같은 선수들이였습니다. 제러미 브라운이나 브랜트 콜라마리노는 지독한 뚱보였고, 스콧 해티버그는 포수였는데 부상때문에 송구를 할 수 없었습니다. 짐 메시어는 절뚝거리며 걸었는데, 양쪽 발이 모두 내반족이었습니다. 제이슨 지암비는 리그 최고를 자랑하는 출루율이 제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결국 야구계의 관념으로 보기에 반쪽짜리 선수들였던 그들이 내놓은 결과는 그야말로 최상급이였습니다. 당시 공격력에서 제이슨 지암비보다 뛰어난 타자는 배리 본즈가 유일했고, 해티버그의 볼넷 비율은 메이저리그 최고 수준이였습니다. 브래드포드는 130킬로미터밖에 되지 않는 공을 던졌는데, 당시 마크 맥과이어와 새미 소사의 홈런 경쟁이 치열했을 무렵이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채드 브래드포드에게는 홈런을 쳐내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너무 작거나 마르거나 뚱뚱하거나 느리다는 이유로 야구계에서 무시당했던 선수들이였지만, 빌리 빈은 오직 야구 결과를 잘 낼수 있는 선수들을 찾았고, 결국 빌리 빈이 옳았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빌리 빈의 방식도 한계가 있었습니다. 포스트시즌 제도는 왜 야구계가 과학적 연구의 성과나 합리적인 구단 운영 방식에 그렇게까지 반발하는지를 부분적으로 설명해줍니다. 플레이오프에서는 합리적인 운영 방식이 수포로 돌아가고 마는데, 정규 시즌과 달리 단기전에서는 표본 사이즈가 너무 작아 예상밖의 일들이 벌어지기 때문입니다. 세이버메트리션인 피트 팔머의 계산에 따르면 실력에 따라 좌우되는 점수는 경기당 1점이지만, 운에 따라 좌우되는 점수는 경기당 4점이나 됩니다. 장기간에 걸쳐 시즌을 치르다 보면, 각 구단에 운이 공평하게 돌아가고 결국 실력 차이가 빛을 발합니다. 그러나 단기전은 다르며, 5차전 경기라면, 가장 형편없는 팀이 최고의 팀을 이길 확률은 15퍼센트나 됩니다. 빌리 빈도 "내 역할은 플레이오프에서는 통하지 않거든요. 내 역할은 플레이오프에 올려놓는 데까집니다. 그 뒤에 벌어지는 일은 빌어먹을 운에 달렸죠." 라고 인정합니다. 가장 중요한 포스트시즌에서 과학이 적용되지 않기 때문에 메이저리그의 시즌 운영 방식은 결국 합리성을 조롱할 수밖에 없도록 짜여 있습니다. 또한 빌리 빈의 한계는 스스로에게도 원인이 있었습니다.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의 성공과 『머니볼』의 충격은 다른 구단에게도 새로운 가치를 받아들이게 해 오클랜드가 과거와 다르게 싸고 우수한 선수를 구하기가 힘들어졌기 때문입니다.

빌리 빈은 과거부터 소수의 매니아를 중심으로 이어져온 세이버메트릭스를 메이저리그에 접목했고, 성공했습니다. 그는 다른 사람들이 주목하지 못한 진짜 가치에 주목했고, 가치에 투자함으로써 투자 대비 최고의 성과를 거둡니다. 이는 곧 야구계가 무능한 부분이 있었음을 보여줍니다. 하지만《사커노믹스》에서 말하듯이 '축구 클럽이 무능한 것은 무능해도 괜찮기 때문이다.'는 평가는 야구에도 적용됩니다. 야구는 사업체라기보다는 사교클럽에 가까웠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빌리 빈은 사교클럽의 단점을 찌를 수 있었습니다. 예전에 교보문고를 돌아다닐 때 《만약 고교야구 여자 매니저가 피터 드러커를 읽는다면》이라는 인상깊은 제목의 책을 본 적이 있습니다. 만약 저 책이 제목을 듣고 제가 예측한 내용이 맞다면, 여자 매니저는 피터 드러커를 읽는게 아니라 이《머니볼》을 읽는게 더 나을 것입니다. 물론 머니볼의 교훈은 야구판에만 적용되는 것은 아닙니다. 오해와 편견에 눈이 멀어 진실된 가치를 제대로 평가하지 못하는 것은 수없이 많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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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칙한 경제학 - 세상을 움직이는 힘에 관한 불편한 진실
스티븐 랜즈버그 지음, 이무열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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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에이즈 확산을 막는 방법을 묻는다면, 그 방법 중 하나는 성행위를 하지 않으면 된다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에이즈의 감염경로는 혈액, 정액, 질분비액이므로 성행위를 안한다면, 에이즈를 막을 수 있다는 사고방식은 상식적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저자는 오히려 성행위를 권장해야 에이즈 확산을 막을 수 있다고 말합니다. 잘못된 상식과 통념, 시장을 왜곡하는 비경제학적 정책과 제도에 맞서기 위해선 증거와 경제학적 논리를 가져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의 주장은 매우 도발적이여서, 그 주장이 비록 논리적이라 할지라도 발칙하다고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문란한 성생활이 에이즈를 확산시킨다는 상식에 반해 왜 문란한 성생활이 실제론 에이즈를 방지할 수 있는지에 대한 해답은, 에이즈는 일부일처제와 순결주의, 성적 보수주의의 대가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한 여성이 성관계를 하고 싶다고 가정하면, 섹스에 신중한 남성이 짝짓기 게임에서 빠짐으로서, 상대적으로 더 신중하지 못한 바람둥이이면서 동시에 에이즈를 보유할 확률이 높은 남성과 성관계를 맺게 된다는 것입니다. 또한 성관계를 하고 싶은 남성은 순결을 지켜야 하는 여성이 주변에 있을 경우, 에이즈를 보유할 확률이 높은 성구매를 선택할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이런 사례들은 모두 에이즈가 확산될 확률을 증가시킵니다. 하버드 대학의 마이클 크레머 교수는 1년에 2.25명 미만의 파트너를 상대하는 사람들이 다른 파트너를 더 빈번하게 취한다면, 즉 18세에서 45세의 인구 75%에 해당하는 평범한 사람들이 더 음란해진다면, 에이즈를 줄일 수 있다고 말합니다. 『슈퍼 괴짜경제학』에서 매춘사업의 가장 큰 경쟁자는 남자친구와 무료로 섹스를 하는 일반적인 여성들이라고 지적하듯이, 사람들의 섹스를 장려할수록 음지의 성산업과 에이즈같은 질병을 줄일 수 있습니다. 반대로 금욕은 공해의 한 형태가 됩니다. 금욕은 짝짓기 연못에서 상대적으로 안전한 파트너의 비율을 줄임으로써 섹스환경을 오염시킵니다. 즉, 에이즈에 걸리지 않은 사람이라면 섹스를 더 즐기는 것이 자신과 사회 모두에 이익을 가져온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인센티브의 효과는 여러 분야를 설명할 수 있는데, 육아보조금에 대한 논의도 이런 경제학적 관점에서 해석될 수 있습니다. 번영의 엔진은 기술 진보이고, 기술 진보의 엔진은 사람입니다. 때문에 사람이 많을수록 다양하고 독창적인 아이디어가 많으며, 더 나은 사회를 만들 수 있습니다. 더 부유한 사회는 더 많은 사람을 부양할 수 있으므로 더욱 부유해집니다. 하지만 이렇게 이익은 사회 전체가 얻는 반면에, 사람을 낳고 키우는 비용은 개인에게 돌아갑니다. 이익과 비용의 주체가 다르기 때문에, 그 이익을 비용의 주체에게 어느정도 돌려줘야 그 선순환이 지속될 수 있습니다. 또한 인센티브의 방향을 조절하면 범죄율과 같은 분야도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 수 있습니다. 대부분의 경우 범죄자들은 작은 처벌의 높은 가능성보다 큰 처벌의 낮은 가능성을 선호하는데, 작은 처벌의 높은 가능성을 선호하는 사람들이 범죄가 아니라 건설 공사장이나 탄광과 같은 고된 삶의 현장으로 가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범죄자들에게 범죄를 덜 매력적이게 만들려면, 처벌의 강도를 높이는 것보다는 유죄 판결 확률을 높이는 편이 더 낫다는 것입니다.

만일 1인당 소득이 인간 행복의 올바른 척도라면 농장 동물의 출산은 축복이고, 아이의 출산은 저주일 것이다. - 경제학자 피터 바우어 

인센티브가 실제로 적용되고 있는 사례들도 있는데, 그중 하나는 특허에 관한 사례입니다. 현재의 특허권은 독점권력을 일정 기간동안 허용하는 제도인데, 이 제도의 문제점을 보완하려면 발명에 성공한 사람들에게 독점 권력이 아니라 현금으로 업적의 대가를 지불하는 것이 더 낫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루이 다게르가 1839년 사진 기술을 발명했을 때 프랑스 정부는 그 특허를 사들여 공공 영역에 내놓기도 했습니다. 경찰과 소방 서비스에서 가짜 신고를 하는 경우 벌금을 내는 것은 이미 우리나라에서도 시행중입니다. 하지만 더 강력하게 시행하려면 진짜 신고의 경우 보상금을 주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도둑에 대한 방지책중에서 흔히 사용되고 있는 도난 경보기와 같은 경우 도난 경보기를 설치했을 경우 생각 있는 도둑이라면 도난 경보기가 없는 다른 표적을 고를 것입니다. 이것은 해충 퇴치업자를 고용하여 온갖 해충들을 옆집으로 몰아내는 것과 같기 때문에 다른 형태의 경보기가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대표적으로 차에 설치하는 로잭과 같은 경우인데, 로잭은 차가 도난당한 뒤 작동하기 시작하여 경찰을 도둑에게 연결시켜주는 숨겨진 무선 송신기입니다. 송신기는 차 어느 곳에도 숨겨놓을 수 있으므로 도둑들이 그것을 찾아 작동을 정지시키기가 쉽지 않으며, 사회적 관점에서 보면 로잭은 이웃들을 돕는 장점이 있습니다. 일반 경보 장치는 도둑들에게 다른 누군가의 차를 훔치도록 유도하는 데 반해서, 로잭은 도둑들에게 훔치지 말라고 설득합니다. 경제학자 이안 에이어스와 스티븐 레빗은 10개 도시에서 로잭의 효과를 조사한 결과, 로잭 판매의 1퍼센트 증가가 절도율을 20퍼센트 이상 낮출 수 있는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즉, 로잭에는 마땅히 보조금을 지급해 활용도를 높여야 하며, 그와 같은 효과를 지닌 다른 정책들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저자가 말하고 있는 경제학적 논리, 비용과 편익 분석 등은 그 외에도 다양한 경우에서 독창적인 답을 내놓고 있습니다. 스크루지는 세상에서 가장 이타적인 인간이며, 정치나 사법제도를 변화시키는 방법, 아들보단 딸을 낳았을때 이혼이 증가하는 이유에 대한 생각들, 가장 효과적으로 기부하는 법, 다이어트에 대한 문제까지 여러 분야에서 상식으로 말해오던 논리들을 공격하고 있습니다. 이런 주장들은 때론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불편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에이즈를 예방하기 위해 애인과의 관계뿐만 아니라 원나잇 스탠드를 더 즐기라는 말은, 성과 관련된 부분에서 보수적인 사람들에겐 받아들일 수 없는 말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그의 논리는 꽤나 매력적이며, 세상을 움직이는 사람의 결정이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해볼 거리를 제공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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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경제학 GAMIFICATION
이노우에 아키토 지음, 이용택 옮김 / 스펙트럼북스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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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정보기술에 관해 조사하는 리서치 전문 회사 가트너는 2011년의 새로운 IT 유행어로 웹 2.0, 매시업, 클라우드 등과 함께 '게이미피케이션(Gamification)'이라는 개념을 선택합니다. 게임의 개념이나 디자인 기법 등의 요소를 게임 이외의 사회적 활용이나 서비스에 적용하는 것이 게이미피케이션인데, 가트너는 이 게이미피케이션을 통해 많은 기업들이 기술혁신 과정에 게임의 요소를 도입할 것이며, 마케팅과 고객 유지를 위해 한 개 이상의 게임화된 응용프로그램을 갖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게임은 더 이상 일부 어린애들의 취미가 아닌, 비즈니스를 변화시키는 핵심 키워드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전망은 이미 우리 주변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걷기, 다이어트, 여행, 식사, 영업, 공부, 소비, 절전, 금연, 운전 등의 다양한 활동이 모두 게이미피케이션의 대상이기 때문입니다.

게이미피케이션의 한 예는 실제로 제가 사용하고 있는 제품이기도 합니다. 바로 신발회사 나이키에서 만든 '나이키 플러스' 입니다. 나이키 플러스는 특수한 전용 센서를 장착한 신발을 신고 달리거나 걸어서, 이동 거리뿐 아니라 이동 속도와 시간까지 잴 수 있는 상품으로, 이 데이터는 컴퓨터나 스마트폰을 통해 인터넷상에 저장해서 다른 유저와 기록을 공유할 수 있습니다. 기존의 신발은 단순히 개인적 상품이였고, 걷기 또한 지극히 개인적인 운동이였지만, 나이키 플러스는 게이미피케이션을 접목시켜 일상의 게임으로 확장되게 합니다. 나이키 플러스 이전에도 걷기를 게임화한 제품은 존재했습니다. 바로 1998년에 닌텐도에서 출시한〈포켓 피카츄〉인데, 많이 걸을수록 피카츄와 더 친해지는 시스템이였습니다. 하지만〈포켓 피카츄〉는 자기 자신과의 관계에만 한정되는 한계점이 있었습니다. 그에 반해 나이키 플러스는 네트워크상의 소셜에 연결되어 더 강력한 게임으로서의 모습을 보여 줍니다. 걷기 운동의 게임화는 쉽게 지루해질 수 있는 걷기 운동에 더욱 많은 피드백을 제공함으로서, 결과적으로 걷기 운동을 장려합니다.

그 외에도 다양한 게이미피케이션의 사례를 접할 수 있는데, 그 중 하나로 세스 프리배치가 만든 스케빈저가 있습니다. 스케빈저는 물건찾기 경주를 현실에서 구현한 사례입니다. 스케빈저는 현실에서 물건찾기 경주를 미션으로 받을 수 있는데, 예를 들어, 박물관에 들어가면 특정 작품을 찾아보는 미션을 스마트폰으로 전송받는 식입니다. 목표가 뚜렷하게 주어지기 때문에 미션을 해결하면서 박물관 안을 샅샅이 탐색하고 즐길 수 있습니다. 과제를 유저에게 주고, 그 과제를 달성한 사람에게는 포인트를 부여하는데, 유저는 포인트에 따라 무료 콜라나 할인 혜택 등을 얻을 수 있습니다. 또 다른 사례는 포스퀘어인데, 포스퀘어는 자신의 위치를 스마트폰 앱으로 등록함으로써 체크인한 장소나 횟수에 따라 뱃지를 얻게 됩니다. 특정 장소에 체크인한 횟수가 가장 많은 사람은 시장이라는 칭호를 받는데, 이를 응용하면 음식점이나 행사장 등에서 긍정적 반응을 유도할 수 있습니다. 좋아하는 단골 가게에 많이 갔다는 성취감과 실질적 혜택이 주어지기 때문입니다.

게임은 이러한 비즈니스적 분야 외에도 다양한 분야에 영향을 미칠 수 있고 미치고 있습니다. 미국 대통령이 된 오바마의 선거전략이 그 예인데, 오바마는 마치 온라인 게임 같은 선거운동을 만듬으로써 많은 호응을 얻어냈습니다. 오바마는 마이 버락 오바마 닷컴이라는 사이트를 만들어 사이트에 참가하는 사람들이 후원금을 내거나, 전화 선거운동을 했거나, 이웃 방문 선거운동을 하는 등의 데이터를 통해 랭킹과 업적 시스템을 도입함으로써, 사이트에서 지지자의 활동을 롤플레잉 게임과 비슷하게 만들었습니다. 오바마는 일방적으로 후원금을 기부하는 것이 아니라, 후원금 자체를 지지자의 공략 가능한 미션으로 규정하고, 개개인의 감각에 맞춰 게임으로 재편성합니다. 결과적으로 게이미피케이션을 통한 대통령 선거전은 오바마 개인의 게임뿐 아니라, 수백만의 지지자들에게도 자신만의 게임으로 받아들이게 함으로써 높은 호응도를 끌어냈고, 이는 선거의 승리로 연결되었습니다.

그 외에도 유니클로, 스타벅스, 디즈니 등이 이러한 게이미피케이션을 응용한 전략을 도입함으로써 고객을 창출하고, 직원들을 더 효율적으로 관리하고 있습니다. 또한 다양한 웹 사이트에 게임의 요소를 넣고 있습니다. 게임의 요소를 도입하기 위해서는, 수량으로 셀 수 있어야 하고, 플레이어의 행동을 평가하기 위한 시스템이 제대로 가동해야 합니다. 많은 분야에서 게이미피케이션이 적용될 수 있었던 이유는 측정 기술의 비용 구조가 바뀌었기 때문입니다. 기원전 17세기의 것으로 추정되는 파이스토스 원반이 인쇄술의 보급을 이끌지 못한 이유에 대해 《총, 균, 쇠》의 저자 제레드 다이아몬드는 사회가 그것을 대규모로 활용할 수 없었던 시대였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마찬가지로, 과거의 대부분의 사람은 게임의 힘이 작용하는 세계를 보지 못했으며, 현대에 이르러서야 게임이 요구하는 필요조건이 달성되었기 때문입니다. 측정 기술의 발달, 인터넷을 통한 빠른 피드백, 게임을 즐기는 사람의 증가라는 세 가지 요소가 결합되면서 게이미피케이션이 등장할 수 있었습니다.

이 세상은 게임이 될 수 있는 것으로 가득합니다. 하지만 잠재적으로 게임이 될 수 있는 것은 게이미피케이션의 바깥쪽 주변에 위치합니다. 이 세상은 게임이 될 수 있는 것으로 가득하지만, 대부분이 자연적으로는 게임의 형태가 되는 데 성공하지 못합니다. 이 세상에 가득한 잠재적 게임들에게 뚜렷한 게임의 형태를 부여하는 일, 선명하게 보이도록 보조선을 긋는 일, 그것이 바로 게이미피케이션입니다. 이 세상에 가득한 수많은 잠재적 게임은 시점을 조금만 바꾸거나 보조선을 긋는 것만으로도 게임이 될 수 있습니다. 물론 인류는 아주 먼 옛날부터 게임을 즐겨 왔습니다. 하지만 게임을 보급하는것조차 오랜 시간과 많은 비용이 들었으며, 게임은 게임의 틀 이상을 벗어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게임은 진화했고, 점점 다양한 게임이 디자인되는 사회가 되었습니다. 저자 또한 가정마다 보급되어 있는 전기계량기의 데이터를 이용해 절전게임을 만듬으로써 게이미피케이션의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게임의 힘은 매우 크며, 그 힘을 이용하는 게이미피케이션은 미래의 커뮤니케이션이나 정보 처리를 하는데 빼놓을 수 없는 요소가 될 것입니다. 이는 게임이, 게이미피케이션이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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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렌드 코리아 2013 - 서울대 소비트렌드 분석센터의 2013 전망
김난도 외 지음 / 미래의창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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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사회가 어떤 모습으로 만들어질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과거의 지식인들이 그렸던 현대의 모습들을 지금 와서 보면, 실제 현대와 많이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역사적인 거장이였던 마르크스도 미래의 사회를 예상했지만 맞추지 못했습니다. 이런 사례들에서 알 수 있는 것은 먼 미래를 예상해본다는 것은 너무나 힘든 일이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아주 가까운 미래, 혹은 현재 진행형이면서 당분간 지속될 흐름은 비교적 자신있게 말해볼 수 있습니다. 이 책《트렌드 코리아 2013》은 그러한 관점을 취하고 있습니다. 이 책은 2012년에 출간되었고, 2013년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지만, 이 이야기들은 이미 시작된 우리의 현실입니다.

책은 두 가지를 이야기합니다.《트렌드 코리아 2012》에서 이야기했던 것을 바탕으로 한 2012년의 흐름과 2013년의 흐름입니다. 2012년의 흐름은 이미 우리가 경험해온 과거 혹은 현재이기 때문에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차량용 녹화장치 블랙박스의 열풍으로 알아볼 수 있는 객관성과 공정성에 대한 바램, 인기 서적들과〈힐링캠프〉와 같은 TV프로그램에서의 힐링 열풍이 말해주는 것들, 미디어 매체에서 점점 더 리얼을 요구하는 소비자들, 케릭터의 시대, 싸이와 김기덕으로 대표되는 마이너의 반란 등이 2012년 우리 사회의 한 흐름이였습니다. 그리고 이 트렌드들은 제야의 종소리와 함께 사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많은 트렌드는 2013년에도 이어져 우리사회를 이해하는 하나의 창이 될 수 있습니다.

2013년의 트렌드들 또한 이제 곧 시작될 사회적 유행이 아닙니다. 이미 유행은 시작되었고, '아마도' 2013년 내에선 그 기세가 꺾이지 않으리라고 생각되는 것들입니다. 그 중에서 인상깊은 현상인 일은 물론이고 놀때마저 지쳐 쓰러질 때까지 놀도록 요구하는 소진사회의 개념과 같은 것은 쉽게 바뀌지 않을 것입니다. 소진사회의 개념은 이미 우리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기본적인 개념은 꽤 오래전부터 시작된 것입니다. 제가 수험생이였을때만 해도 주변에 박카스를 물 대용으로 마시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현재는 박카스보다 훨씬 강력한 고 카페인 에너지드링크를 마시고, 밤샘 공부를 합니다. 그리고 쌓인 피로를 다시 고 카페인 에너지드링크로 풉니다. 온게임넷의 예능 프로그램〈켠김에 왕까지〉는 그야말로 끝까지 달려야 하는 프로그램이며,〈끝장토론〉은 그야말로 마라톤같은 토론을 보여줍니다.

저자는 이런 소진사회에 대해 거론하면서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밤낮없이 업무에 매진하고, 스펙을 쌓는 데 시간과 비용을 투자하며, 뒤쳐지지 않기 위해 건강을 희생하는 현대인들의 이런 모습은 강박증에서 비롯된 일종의 병적 질환이라고 지적합니다. 때문에 정신적 긴장감을 해소하기 위해서 모든 기운이 빠져나갈 때까지 일을 합니다. 이는 일종의 중독이며, 지나치게 강한 중독에 길들여진 사람들은 탈진과 방전상태를 빠져나오지 못합니다. 성과위주의 사회에서 효율적이지 못한 것과 게으름은 죄악시되며, 때문에 자신을 혹사시키는,《피로사회》에서 언급하듯이 자기착취를 반복합니다. 우리나라 근로자의 근무시간은 OECD 회원국 중 1위이며 여가시간은 최하위이고, 행복지수도 낮으며 자살률 또한 1위를 달리고 있습니다. 이 통계는 우리가 자기착취를 하는데 있어서 탁월한 사람들이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이 통계가 근면성실의 결과로 볼 수는 없는데, 노동생산성은 현저히 낮기 때문입니다.

이런 습관은 우리가 일을 할때 뿐만 아니라 언어습관, 놀이문화 등에서도 영향을 미치며, 이는 자학적일 만큼 소모적입니다. 개발주도의 패러다임 속에서 이러한 모습은 세계적인 강점으로 작용했습니다. 하지만 창의성과 지속가능성 발전이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이 등장하면서 이러한 사회문화는 점점 우리의 발목을 잡고 있습니다. 긍정 과잉과 생산성에 대한 강박에서 벗어나 새로운 사회로 나아가려면, 먼저 그 이전의 문화를 정확히 인식해야 합니다. 그것은 곧 사회 트렌드를 인식한다는 말과 같습니다. 책은 올해와 내년을 주제로 20개의 큰 트렌드 주제를 담고 있습니다. 한 분야의 세밀하고 전문적인 지식을 얻을 순 없지만, 다양한 분야에 걸친 광범위한 사회문화적 흐름을 인식하는데엔 괜찮은 관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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