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 가치
이타마르 시몬슨.엠마뉴엘 로젠 지음, 고영태 옮김 / 청림출판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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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에 두 개의 가방 사진이 올라온 적 있습니다. 두 개의 가방은 동일한 제품이었지만, 한 사진은 가방의 브랜드 마크를 뗀 사진이었습니다. 같은 제품임에도 불구하고 브랜드 마크를 뗀 가방에는 혹평 일색이었던 반면, 프라다 마크를 단 가방에는 호평 일색이었습니다. 이 아이러니한 반응은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합니다. 첫째는 브랜드의 가치가 가진 힘이 강하다는 것이고, 둘째는 사진을 올린 사람은 같은 품질의 가방임에도 불구하고 로고에 현혹된 사람들의 어리석음을 비판하면서, 제품 본연의 가치에 초점을 맞춘 구매가 합리적이라는 말을 하고 싶었으리라는 점입니다. 여전히 많은 사람들은 비합리적인 소비를 하고 있지만, 변화는 시작되었고 가속화되고 있습니다. 저자 이타마르 시몬슨과 엠마뉴엘 로젠이 말하고 있는것도 이 새로운 변화입니다.

현대의 마케팅은 심리연구를 기반으로 한 다양한 기법들을 동원해 소비자의 판단을 유도하고자 합니다. 프레이밍 효과, 맥락 효과, 태스크 효과, 포지셔닝 효과 등 다양한 심리학적 기법들은 실제로 효과가 있었습니다. 같은 소고기임에도 불구하고 90퍼센트 살코기로 홍보하느냐, 10퍼센트 지방으로 홍보하느냐에 따라 소비자들의 반응은 엇갈렸습니다. 같은 48%의 지지율을 보인 대통령을 과반수에도 못 미치는 반쪽짜리 대통령이라고 평가하느냐, 과반수에 육박한 진정 국민 모두의 대통령으로 평가하느냐의 차이는 받아들이는 유권자 입장에서 분명 다르게 느낍니다. 기업들은 이런 마케팅을 통해 자신의 브랜드를 강화하고, 소비자의 구매를 유도하며, 제품의 외적인 가치를 통한 이윤을 얻는 것이 가능했습니다.

그러나 새로운 쇼핑 환경이 등장했고, 새로운 환경에서는 이전의 마케팅 효과가 힘을 쓰지 못하는 경향을 보입니다. 소비자들이 마케팅 전략에 영향을 덜 받는 것은 이전보다 더 똑똑해졌거나 논리적이어서가 아니라, 검색 엔진의 발전, 다른 사용자들의 평가, 전문가와 지인들에 대한 접근성 등 여러 가지 새로운 도구들의 등장 덕분입니다. 아마존으로 대표되는 대형 인터넷 쇼핑몰과, 블로그, SNS를 통한 수많은 상품평가들은 소비자로 하여금 제품의 절대적인 가치를 더 주목하게 합니다. 과거엔 기존에 써봤던 브랜드라는 이유로, 막연한 정보를 바탕으로 제품을 구매했다면, 요즘은 제품에 대한 수많은 정보와 평가를 실시간으로 얻을 수 있습니다. 로튼토마토를 통해『라스트갓파더』대신『다크나이트』를 선택할 수 있고, GOTY를 통해『빅 릭스』대신『더 라스트 오브 어스』를 선택할 수 있습니다.

체육관 이름을 '여성을 위한 피트니스 타임'이라고 짓기만 하면 여자들이 알아서 등록할 거라는 생각은 오산이다. 핏타임이 여성에게 어필하기 위해 갖추어야 할 특징으로는 청결, 금남, 다양한 피트니스 수업, 놀이방 등이 있다. 핏타임이 이런 특징을 갖추면 고객들에게는 이곳을 선택할 분명한 이유가 생긴다. -《로드사이드 MBA》p.84

소비자들이 선택할 수 있게 된 새로운 정보들의 중요성은 마케팅 회사들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네이버 블로그를 수십만원을 주고 산다고 제의하고, 웹툰의 평점을 조작하며, 사재기로 베스트셀러를 만들고, 가짜 상품평을 올리는 등 어뷰징 행위를 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행위는 새로운 쇼핑 환경에 암적인 부분이지만, 평가 사이트 및 기관이 스스로의 생존을 위해서 조작을 방지하기 때문에 일정 수준 이상의 영향력을 발휘하기 힘듭니다. 가트너 그룹은 소셜미디어에 있는 평가 가운데 10~15 퍼센트 정도가 가짜일 것이라고 추정했고, 바자보이스는 인터넷의 1 퍼센트 정도가 가짜라고 추정했습니다. 평가 사이트를 자주 활용하는 소비자들 역시 가짜 평가를 은연중에 감지하기도 합니다.

전문가, 사용자, 그리고 다른 유용한 정보 서비스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지면서, 브랜드의 영향력은 감소하고 있습니다. 브랜드가 자신의 강점을 홍보한다면 소비자들은 그 주장을 확인할 여러 방법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볼보 자동차가 안전하다는 추상적인 믿음 대신에 객관적인 충돌 테스트 수치가 그 자리를 대신합니다. 삼성 갤럭시 핸드폰이 타사 핸드폰보다 튼튼하다고 홍보한다면, 유튜브엔 삼성 갤럭시와 노키아 핸드폰의 강도 테스트 영상이 올라올 것입니다. 옴니아가 손톱터치가 된다고 말하고, 마이크로소프트의 태블릿이 전문가를 대상으로 만들었다고 말해도 소비자들은 회사가 말하는 것들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소비자들은 이제 제품을 평가함에 있어서 회사가 말하는 부분을 평가하는 대신, 평가 포인트를 자신들 스스로 결정합니다.

새로운 소비형태는 소파에 누워 TV를 보듯 계속 정보를 검색하고 수집하는 카우치 트래킹 현상, 소비자들의 의사결정이 더 빨라진 현상, 소비자들의 의사결정이 가슴보다 머리에 더 의존하게 된 현상을 보입니다. CF에서 말하는 것보다 인터넷의 글을 더 신뢰하고, 그런 수많은 글들을 신뢰해 주저없이 구매하며, 믿는 브랜드여서 구입하는 것이 아니라 제품 자체의 질적 측면을 고려해서 구입합니다. 이런 경향이 기존의 유명 브랜드에게 위기라면, 새로운 브랜드에겐 기회가 됩니다. 수많은 돈을 들여 브랜드를 홍보하지 않아도, 제품 자체의 질적 경쟁력만 갖춘다면 소비자들이 찾아주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브랜드가 가진 힘이 전부 무력화된 것은 아니며, 기존의 심리학적 연구결과에 기반을 둔 마케팅 기법들이 통하지 않는것은 아닙니다. 여전히 사람들은 마케팅 회사의 심리기법에 따라 구매가 유도되며, 제품의 질과 상관없이 브랜드만 보고 제품을 구매하기도 합니다. 가방, 화장품과 같은 사치품이나 음식 등 개인적 기호에 해당하는 제품들은 여전히 브랜드가 강세를 유지합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러한 경향이 줄어들고 있다는 것이며, 상황에 따라서는 사라질 수도 있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소비자들이 얼마나 많은 정보를 얻느냐 하는 점입니다. 평생 델 컴퓨터밖에 모르던 사람은 다음 컴퓨터 역시 델 컴퓨터를 구입하겠지만, 다른 대안들을 접하게 되면 선택은 변화할 것입니다. 이런 변화는 브랜드가 강세를 보이는 분야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평생 진로 소주만 마시며 술의 맛, 어른의 맛 운운하던 사람도 수많은 술들을 접하게 된다면 다른 술을 더 좋아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저자들은 소비자들이 새로운 정보에 더 의지하게 되면서 기업들이 소비자들의 선호를 바꾸려는 시도에 대한 의존도를 줄여야 한다고 말합니다. 경쟁사의 제품보다 좋다고 홍보할 시간에, 경쟁사의 제품보다 질적인 우위, 절대 가치를 만드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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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 기업 - 일본을 먹어 치우는 괴물
곤노 하루키 지음, 이용택 옮김 / 레디셋고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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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지난 10월 계약직 여직원이 엉덩이를 만지고 허리를 쓰다듬는 등의 성추행을 당하는 바람에 3개월 만에 직장을 그만둔 일이 발생했습니다. 안타깝게도 이렇게 성추행, 성폭행 사건이 알려지는 비율은 그리 높지 않을 것입니다. 지금도 수많은 청춘들이 성추행, 성폭행, 잦은 야근 같은 불합리한 일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17개월의 수습사원 기간을 버티고 정규직 전환을 앞둔 직원에게도 성추행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그러나 담당검사는 가해자의 업무상의 위력을 입증할 수 없다며 증거불충분으로 불기소처분을 내렸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회사는 이 시대 청춘들에게 아파도 청춘이니까 참으라는 메시지를 남긴 힐링계 자기계발서 《아프니까 청춘이다》를 내놓은 출판사였습니다.

청춘들이 직장생활을 하면서 불합리한 일들을 참고 견딜 수밖에 없는 이유는 약자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회사의 이익을 위해 그 약자들을 쥐어짜서 결국 죽음에까지 이르게 하는 기업들이 있습니다. 일본에서 온 단어로, 그런 기업들을 ‘블랙 기업’이라고 합니다. 저자 곤노 하루키는 일본에서 POSSE라는 NPO단체를 이끌며 1,500여 건의 노동 상담을 받았습니다. 그는 블랙 기업들이 수많은 청춘들을 망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장기적으로 일본에 큰 해악을 끼칠 것이라고 말합니다. 외견적으로 그 기업들은 일본의 희망, 일본을 이끄는 기업들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큰 이익을 내는 기업들입니다. 그러나 그 눈부신 성공과 경영성과는 청춘들을 갈아 만든 피로 이룬 것입니다.

블랙 기업은 위법적인 고용 형태로 청년들을 일회용품처럼 쓰다 버리는 기업들을 말합니다. 그들은 청년 직원들을 대량 고용한 뒤 장시간 근무와 부조리한 명령으로 혹사시키는데, 도태된 사람들은 퇴사하거나 심한 경우 자살을 선택합니다. 블랙 기업은 신입 사원을 비용 낭비라고 생각하는 회사, 대량 채용 후 대량 퇴직으로 직원을 선별하는 회사, 권한도 없는 이름뿐인 직급을 주는 회사, 연봉을 과장하는 회사라는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는 이런 기업들을 인지시킬 수 있는 단어가 아직 사용되지는 않지만, 이미 존재하고 있음을 취업자들은 알고 있습니다. 취업 커뮤니티에서 자주 채용공고를 내는 기업은 가지 말라는 조언만 봐도 블랙기업의 존재를 알고 있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오늘날 청년노동의 주요 프레임은 비정규직 문제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블랙 기업은 비정규직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정규직 전환 채용이라 불리는 사람들의 문제이며, 수많은 경쟁자들을 뚫고 취업전쟁에서 승리한 정규직 신입직원들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회사는 이들을 장시간 노동을 시키고, 청춘이 조금이라도 힘들어한다면 버려버립니다. 이들을 버릴 수 있는 이유는 청년 실업자들이 대량으로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블랙 기업에게 대학교를 갓 졸업한 청년 세대는 가치가 매우 낮은 인력이며, 대체 인력이 얼마든지 있기 때문에 청년 노동자는 쓰고 버리는 재고에 불과합니다. 이런 대량 자원이 있기 때문에 비로소 블랙 기업의 인사 관리가 성립합니다.

예전에는 노예가 비쌌다. 그래서 노예가 살아 있는 동안에는 그를 돌봐야 했다. 요즘에는 몸값이 싸다. 노예들이 너무 많아서 더는 쓸모없어진 노예는 버릴 수 있게 되었다. 이제 그들은 일회용 인간이다. -《일회용 사람들》

대량 모집 후 자체 선별을 거치고 마음껏 쓰고 버리는 블랙기업의 전형적인 고용 패턴은 비정규직, 정규직을 가리지 않습니다. 다만 정규직의 경우 더 우수한 인재를 모을 수 있는 반면 버리는 과정이 조금 더 번거롭습니다. 비정규직은 그냥 해고하는 반면, 정규직은 자진 퇴사를 유도해야 하기 때문인데, 이를 위해 사내 괴롭힘을 실행합니다. 식사시간에 따돌리고, 책상을 엉뚱한 데로 옮겨놓고, 다른 직원들 앞에서 강제로 코미디를 해야 하는 등 육체적, 정신적으로 괴롭혀 자진해서 퇴사할 것을 강요합니다. 쉽게 퇴직을 선택하기란 힘들기 때문에 노동자는 처음엔 버티지만, 결국 자진해서 퇴사할 수밖에 없습니다. 일찍 퇴사하거나, 정신병을 얻고 늦게 퇴사하는 차이는 있습니다.

1부 상장 외식 업체인 다이쇼의 24세 남성 정규직 직원이 입사 후 불과 4개월 만에 급성 심부전으로 사망했다. 남성은 월평균 112시간의 잔업을 했다. 매일 아침 9시에 출근해서 밤 11시까지 일하는 생활을 반복했다고 한다. 출퇴근 시간을 빼면 개인적으로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시간은 거의 없는 셈이다. 당연히 산업 재해로 인정받았다. - p.77

이런 블랙 기업은 중소기업, 중견기업부터 누구나 선망하는 대기업까지 존재합니다. 블랙 기업이 직원들을 쥐어짜는 것은 결국 이윤 때문입니다. 사회에 널려있는 청년들이란 자원을 누구보다 빨리 빨아먹고 버림으로서 경영 이익을 달성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로 인해 피폐해지는 청년들에 대한 대책은 사회적 비용으로 처리되기 때문에 기업들은 사회에 비용을 전가하고 이익만 가져가는 무임승차를 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계와 재계는 고용유연성을 주장하며 고용 규제를 완화하고 비정규직을 늘려야 한다는 논의가 주류입니다. 이들은 탄력적인 근로시간을 도입한다는 취지하에 근로시간의 조정 권한도 기업에 넘겨주고, 쉽게 만들 수 있는 시간제 일자리 정책만을 내놓습니다. 이런 흐름의 한편에선 취업난의 문제는 청년들에게도 있다는 류의 자기계발서와 주장이 만들어집니다. 그러나 저자는 청년 비정규직이 증가하는 문제가 결코 청년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명확히 합니다.

블랙 기업에 대한 저항이 일본에서 시작되고 있습니다. 일본의 대형 규동 체인 스키야의 집단 퇴직 사건은 주목할 만한 일 중 하나입니다. 스키야의 가혹한 노동환경과 저임금을 감내하던 노동자들이 인터넷을 통해 집단으로 당일에 퇴사함으로서 회사에 저항한 것입니다. 스키야는 엄청난 타격을 받았고, 블랙기업적인 요소를 개선하겠다고 나섰습니다. 일본에서 유행하던 것은 곧 한국에도 유행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블랙기업에 대한 논의도 이제 일본에서 넘어와 한국에서 시작되려 하고 있습니다. 최근 청년유니온과 민주노총은 한국의 블랙기업을 알려가겠다고 선언했습니다. 그렇다면 첫 시작은 그런 기업들에게 이름을 붙여주는 일입니다. 언어적으로 인지한 뒤에야 대응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일본의 블랙기업의 사례는 한국 노동자들에게도 생소한 일은 아닙니다. 한달에 25일 출근, 하루 12시간 노동, 절반 이상의 노동자들이 월 200만원도 벌지 못하는 현실 등 가혹한 노동환경에 대해선 자랑스럽게도 일본에 뒤쳐질 한국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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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크 선장의 보이지 않는 손 - 알려지지 않은 해적의 경제학
피터 T. 리슨 지음, 한복연 옮김 / 지식의날개(방송대출판문화원)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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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적에 대한 이미지를 묻는다면, 코믹하고 능글맞은 블랙펄의 선장을 떠올릴 수도 있고, 몸이 늘어나는 밀짚모자 선장이 생각날 수도 있으며, 삼호 주얼리 호를 피랍한 소말리아 해적이 생각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아마도 가장 전통적인 이미지라면, 블랙비어드(검은 턱수염)이라는 이름으로 더 잘 알려진 악명 높은 해적, 에드워드 티치와 같은 해적일 것입니다. 기괴한 외모, 자유분방함, 잔혹함, 보물, 범법자 같은 이미지를 지닌 해적들은 2세기동안 무시무시한 소문을 몰고 다니며 바다에서 활약했습니다. 그러나 저자 피터 T 리슨은 이런 해적의 전통적인 이미지와는 다른 해적들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피터 T 리슨이 보여주는 해적들은 폭력적인 평화주의자들이고, 이성을 욕망하는 동성애자들이며, 자유주의적인 사회주의자들이였습니다. 또한 자본주의적인 공산주의자였고, 요란하게 자신을 홍보하는 비밀스러운 범죄자들이자, 권위적인 민주주의자들이었습니다. 해적들은 잔인한 사람들이라는 이미지와 다르게, 역사학자 앵거스 컨스텀에 의하면, 당시 세계에서 가장 악명 높고 무서웠던 해적 에드워드 티치는 로버트 메이너 해군 대위와 마지막 전투를 벌여 죽을 때까지 단 한 명도 죽이지 않았습니다. 이런 해적들의 모순적인 모습을 이해하기 위해 저자는 경제학적 관점에서 그들의 행동을 해석합니다.

해적들은 놀랍게도 오늘날 민주주의라 부르는 체제를 완성했고, 사회복지제도를 만들었습니다. 그들은 독재자를 견제하고 1인 1투표에 근거한 선거를 실시했습니다. 인종적인 평등을 구현했고, 빈부격차를 억제했습니다. 21세기인 오늘날에도 많은 국가들이 달성하지 못한 이런 가치를 실현할 수 있었던 원동력으로 저자는 해적들의 경제적인 동기, 이윤추구에서 비롯되었다고 말합니다. 이윤을 추구하려는 욕망이 이런 가치들을 언제나 구현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해적 특유의 환경과 이윤추구가 만났을 때, 오늘날 우리가 선하다고 인정하는 가치들이 만들어졌습니다. 물론 해적들의 동기는 결코 선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돈을 벌고자 했고, 남의 돈을 빼앗고자 했을 뿐입니다.

누군가 집에 와서 물건을 가져가려고 하면 당신은 어떻게 할 것 같습니까? 당연히 싸우겠지요. 바로 그겁니다. 불법 어업의 희생자가 되느니 사냥을 하는 것이 낫습니다. -《해적국가》p.61

당시 뱃사람들이 선택할 수 있는 직업은 두 가지였습니다. 그들은 합법적인 상선에서 종사할 수 있었습니다. 또 하나는 해적이 되는 길이었습니다. 해적은 언제든 사형당할 수 있다는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상선을 타지 않고 자진해서 해적선을 탔습니다. 상선은 소수의 선주들에 의해 운영되었고, 그들에 의해 임명된 선장이 전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독재자들은 언제나 그렇듯이, 독재자였던 상선의 선장 역시 수많은 악행을 저질렀습니다. 그에 반해 해적들은 투표를 통해 해적선장을 선출했습니다. 선장 뿐만 아니라 사무장 등 선장을 견제할 수 있는 직책도 투표를 통해 선출함으로서 권력을 분산시켰습니다. 권력자들을 견제하는 수단을 가지게 됨으로서 해적들은 월등한 노동환경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1695년에 헨리 에브리 해적 함대는 600,000파운드 이상의 귀금속과 보석을 운반하던 선박을 나포했다. 그 결과 해적 1인당 1,000파운드의 배당금을 받았는데, 이 금액은 당시 경험 많은 상선 선원의 약 40년치 수입에 해당했다. 1721년에 존 테일러 선장과 올리버 라 부쉬 선장의 해적 연합은 단 한번의 공격으로 해적 1인당 4,000파운드의 경이로운 수입을 올렸다. - p.35

해적들을 지켜줄 것들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해적들은 스스로를 지키고 돈을 벌기 위해 평등하고 평화로운 정책들을 만들었습니다. 해적일을 하다가 부상을 당할 사람들을 위해 복지기금을 만들었고, 약탈품을 분배할 때 가장 많이 분배받는 선장도 선원 2인분 이상을 받지 못하도록 빈부격차를 최소화했습니다. 열심히 활동하는 선원에게 전투시 가장 좋은 무기를 지급하는 등의 시스템을 통해 평등적 정책을 펼치면서도 경쟁을 독려했습니다. 그들은 망망대해에서 해적선이란 좁은 공간에서 같이 살아가는 가족과 같은 존재들이었기 때문에 질서를 준수했습니다.

해적들은 본질적으로 범죄자들이었고, 잔혹무도하기도 했습니다. 포로들에게 상상하기 힘든 고문을 가하기도 했고, 무법자답게 전투를 했습니다. 그러나 해적들은 대부분의 경우에 그런 상황을 원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해적기라는 것을 사용합니다. 항복한다면 자비를 베풀지만 저항한다면 모두 죽이겠다는 의사표현은 징기스칸 당시 몽골군이 사용했던 전략이기도 했습니다. 그들은 해적기라는 신호효과를 사용해 자신들의 피해를 줄이면서도 이윤을 추구할 수 있었고, 약탈당하는 상선측에서도 목숨을 뺏기지 않는 효과를 가져왔습니다. 양측 모두가 이득이 되는 해적기의 효과를 유지하기 위해선 저항할 경우 무엇보다 무자비해져야 했고, 항복한다면 대단히 자비로워야 했습니다.

해적들의 이러한 모든 행위는 이윤창출을 위한 행위이고, 약탈당하는 측에선 대단히 억울한 일이지만 해적들의 행위는 개인의 이기심이 사회의 이익이 되기도 한다는 사례를 보여주기도 합니다. 해적들의 약탈행위 덕분에 상선의 선장들이 가혹한 행위를 쉽사리 하지 못했습니다. 과거에 괴롭혔던 선원이 해적선에 들어갈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해적들은 선원들의 평가가 나쁜 상선의 선장들은 가혹한 처벌을 가했지만, 선원들에게 평가가 좋은 상선의 선장들에겐 정중하게 대접하기도 했습니다. 그들이 가진 공포라는 이름의 브랜드는 자신들의 이익을 지켜줬을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악행을 하는 동기를 견제했던 것입니다.

해적들은 또 다른 목적, 즉 착취적인 선장들에게 정의를 구현하기 위해 야만적인 고문을 가했다. 해적의 정의를 두려워했던 상선의 선장들은 선원들을 덜 가혹하게 다루게 되었고, 이런 점에서 해적들은 상선 선원들의 복지에 이바지했다고 볼 수 있다. - p.206

비록 범죄조직을 효율적으로 이끌기 위해서였긴 하지만 해적들이 프랑스 혁명이나 영국 의회의 역사보다도 빠른 시기에 확립한 민주적 장치들은 대단히 흥미롭습니다. 해적들은 자유인들이 모여 어떻게 하면 목표를 효율적으로 달성할 수 있느냐는 대답에 경제학적인, 민주주의적인 해답을 내놓은 것입니다. 해적 조직은《파리대왕》의 학생 사회보다 세계 500대 기업에 더 가까웠습니다. 해적들은 경제적 이득을 추구한다면 조직의 부를 최대한 평등하게 분배하고, 권력자를 견제하며, 합리적으로 조직원의 의욕을 고취시키라고 말합니다. 오늘날 대한민국호라는 배가 운행함에 있어서 해적선이 내놓았던 이러한 교훈은 경청할 만한 내용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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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제국은 왜 실패하였는가? - 태평양 전쟁에서 배우는 조직경영
노나카 이쿠지로 외 지음, 박철현 옮김, 이승빈 감수 / 주영사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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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력한 군대를 바탕으로 서쪽으로는 미얀마, 북쪽으론 쿠릴열도, 남쪽으론 파푸아뉴기니, 동쪽으론 태평양의 절반을 차지할 정도로 강대했던 일본 제국은 2차 세계대전에서 패배했습니다. 아시아에서 승승장구하던 일본 제국이 패배한 원인으로 여러 가지가 지목되고 있지만, 저자 노나카 이쿠지로, 스기노오 요시오, 데라모토 요시야, 가마타 신이치, 도베 료이치, 무라이 도모히데는 조직론적 평가를 도입해 일본의 실패원인을 일본군대라는 관료제 조직의 특징에 주목합니다. 가장 발달된 관료제 조직이라고 자랑하던 일본군대지만, 그 내부는 비합리성으로 가득했던 것입니다. 저자들은 일본군대가 조직으로서 큰 패배를 경험한 노몬한 사건, 미드웨이 작전, 과달카날 작전, 임팔 작전, 레이테 해전, 오키나와 전투를 예로 들면서 일본군이, 일본이 실패한 원인을 찾고자 합니다.

일본은 메이지유신으로 근대화한 이후 중일전쟁, 러일전쟁의 승전국가라는 강렬한 사건을 통해 세계무대에 데뷔합니다. 특히 러일전쟁의 결과는 세계를 놀라게 했는데, 이는 일본으로서도 놀랄만한 전과였습니다. 서양의 강대국을 이겼다는 경험으로 인해 러일전쟁 당시 사용된 육군의 총검돌격전술과 해군의 함대결전전술은 하나의 사상으로 굳어질 정도였습니다. 일본이 성장할 당시에 큰 성공을 가져왔던 이런 전략들은 당시 놀랄만한 위력을 보여줬고, 그 결과 일본은 아시아를 호령하는 제국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역사가 말해주듯이 무패를 자랑하던 일본은 미국과 전쟁을 시작하면서 패배를 경험하기 시작합니다.

저자들은 전쟁 당시에 일본이 충분히 이길 수 있는 상황도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에게 밀리기 시작하게 된 이유는 일본군, 더 나아가 일본이라는 조직 내부의 문제점이라고 지적합니다. 일본군이 그동안 자신보다 많이 약한 나라들을 침공했을 땐 드러나지 않았던 조직의 약점들이 강대국들과 싸우기 시작하면서 드러났다는 것입니다. 미드웨이 작전만 하더라도 일본은 아카기, 카가, 소류, 히류의 4척의 항공모함을 보유해 미군과 싸울만한 전력을 가지고 있었고, 야마토급, 공고급 등 일본 연합 함대 함정의 80퍼센트를 투입한 레이테 해전만 하더라도 훗날 구리타 반전 사건만 아니었더라면 이길 수 있었을것이라고 평가할 정도였습니다. 즉 실패의 요인은 물질적인 차이보다는 관료제 조직끼리의 충돌에서 더 비합리적인 조직구조가 패배한 것입니다.

당시 육군과 해군 사이에는 은근한 알력이 있었다. 쌍방 수뇌부는 이전부터 줄곧 대립 관계를 형성해 오면서 자신들의 체면을 중시하는 바람에 나약한 소리는 내지 못했다. 당연히 어느 한쪽이 철수 의사를 보일 때까지 다른 쪽은 절대 그 말을 꺼내서는 안 된다는 경향이 뚜렷했다. - p.133

노몬한 사건, 미드웨이 작전, 과달카날 작전, 임팔 작전, 레이테 해전, 오키나와 전투는 여러 사단이 참여한 전투 또는 해군과 육군이 같이 참여하는 복합적인 전투라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또한 대국적인 관점에서 전쟁을 수행하는 일본 본토의 대본영과 실제로 전투에 참여하는 현장 부대의 의견이 엇갈린 전투이기도 합니다. 일본군은 애매한 전략 목적을 설정했을 뿐 아니라, 러일전쟁부터 이어져 내려온 단기기습전술에 너무 의존했고, 패배를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패배를 가정한 의심은 나약함으로 간주되어 비상시의 대책을 세우지 않았습니다. 비상시에 적용할 대책을 강구하지 않아 계획이 빗나갔을 때 사태를 수습하지 못했습니다.

일본군은 전투강령이 엄격했는데, 고급 지휘관의 행동을 세밀하게 규제하는 일본군의 강령은 지휘관의 시각이 좁아지고, 상상력이 빈약해지며, 사고가 경직되는 현상을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일본군엔 이런 지휘관에게 반대의견을 제시할 사람이 부족했습니다. 인맥 편중의 조직 구조는 장교들에게 체면과 보신 위주로 행동하게 했고, 조직 내 융화를 중시하느라 원리나 논리보다는 감정과 분위기로 상황을 판단했습니다. 부하 장교들이 자신의 안색을 살펴서 심중을 읽어주길 원했다던 무타구치 렌야의 말은 수많은 병사들이 죽어가는 상황에서의 지휘관으로서 상상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일본군이 개인 및 조직이 공유해야 할 전투에 대한 과학적 방법론을 가지지 못했던 것에 비해, 미국은 그야말로 논리실증주의가 구현된 전투프로세스를 전개했다. 이에 비해 일본군 엘리트 중에는 하나의 개념을 창조하고 이를 실제 작전에 옮길 수 있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작전 계획서는 "전기가 무르익었음", "결사 임무를 수행하여 성지에 따를 것", "천우신조", "신명의 가호" 등의 추상적이고 허무맹랑한 문구로 가득할 뿐, 그 문구를 구체적으로 어떻게 실현할지라는 방법론은 찾아볼 수 없었다. - p.291

‘백발백중의 포1문이 백발일중의 포 100문을 제압한다.’는 해군의 정신론에서 알 수 있듯이, 일본군은 정신론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정신론은 모든 것을 정신의 책임으로 해석하기 때문에 성공과 실패의 원인을 제대로 분석하지 못하게 합니다. 성공할때는 괜찮지만, 실패할 때 정신력이 부족해서 그런 것이라는 해석은 전쟁과 같은 상황에서 특히나 치명적이었습니다. 정신적인 부분을 강조했기 때문인지 일본군은 기계화된 전투부대, 보급, 정보통신, 후방지원이 연결된 통합 근대전이 시작되었음에도 그런 전환기에 대처하지 못했습니다. 미군이 특정 전투에서 불리한 전력과 전황에도 불구하고 승리할 수 있었던 데는 이러한 통신을 통한 정보전에서 우위에 있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임팔 작전 당시 제15군 사령부에서 열린 병단장 회동에서 우스이 보급참모가 보급이 원활할 것 같지 않다고 말하자, 무타구치 군사령관이 벌떡 일어서서 "뭐라고? 그딴 걱정은 하지 마. 적을 만나면 총구를 하늘에 대고 3발만 쏘아보라고. 그러면 자동으로 항복하게 되어 있어" 결국 적의 식량을 탈취해 충당한다는 방침이 통과되고 말았다. - p.292

결국 일본제국이 전쟁에서 패배하게 된 원인으로 조직의 목적이 불명확하고, 전략이 단기적이며, 대안이 좁고, 인간관계를 바탕으로 한 인맥주의의 폐해, 정신론만을 강조하는 불합리성과 같은 일본군 관료제가 지닌 조직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저자들은 일본군이 이런 폐해들을 가지게 된 원인 중 하나로 러일전쟁의 승리를 지목합니다. 러일전쟁의 승리가 너무나 강렬했고, 과거의 성공에 얽매인 나머지 조직으로서 자기 혁신을 이루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결국 2차세계대전 당시의 일본군은 변화하지 않는 조직은 몰락하고 만다는 교훈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일본군대라는 조직의 실패를 오늘날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전쟁이 끝난 뒤 일본군이 가지고 있던 조직 특성을 계승한 곳이 일본 기업이고, 일본 기업의 조직에 많은 영향을 받은 것이 한국 기업조직이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한국 조직의 문제점을 개선하고자 한다면,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 제국의 모습을 면밀히 살펴보는 것은 의미있는 일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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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의 기계 시대 - 인간과 기계의 공생이 시작된다
에릭 브린욜프슨 & 앤드루 맥아피 지음, 이한음 옮김 / 청림출판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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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유튜브에 인상적인 동영상이 올라왔습니다. 영상엔 자동차로 주차를 하는 장면과 고속도로를 주행하는 장면이 담겨 있었는데, 인상적인 점은 그것이 모두 인간의 손을 거치지 않은 자동이라는 점입니다. 자동차는 전진, 후진, 평행정렬을 하며 자동으로 주차에 성공했고, 고속도로에선 액티브 크루즈 컨트롤, 스티어링 어시스트 기능을 이용해 사실상 무인운전을 해냈습니다. 더 인상적인 점은 이 차량들이 연구소에서 연구중인 시험용 차량이 아닌 현재 시판되고 있는 차량이라는 점입니다. 구글은 자사의 시험용 차량으로 자동주차, 고속도로주행에 이어 시내주행에 성공했다고 발표했습니다. SF영화나 소설에서나 볼 법한 일이 바로 눈 앞의 현실에 다가와 있습니다.

기술이 아무리 발달하더라도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일이 있다고 믿었습니다. 운전하고, 춤추고, 사고하는 일들은 로봇은 해낼 수 없는 영역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기계의 가능성은 점점 넓어지고 있습니다. 인간에게 승리한 유명한 체스 컴퓨터 딥블루를 시작으로 자동 주행 자동차가 등장했고, 뉴스를 쓰는 기계마저 등장했습니다. 인간의 전유물로 생각했던 영역으로의 침입은 새로운 시대가 도래하고 있음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운전자라는 직업이 사라질 시대, 대부분의 기자들이 사라질 시대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에릭 브린욜프슨과 앤드루 맥아피는 그것을 제2의 기계 시대라 부릅니다.

에릭 브린욜프슨과 앤드루 맥아피는 사회를 급변시킬 제2의 기계 시대를 디지털로 인한 변화라고 말합니다. 디지털이 사회적 흐름이 된 지는 오래되었지만, 반도체의 성능이 18개월마다 2배로 증가한다는 무어의 법칙처럼 초기엔 그 변화치가 크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배수로 증가하는 그 성질처럼 일정 기간이 지난 뒤엔 그 변화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게 됩니다. 에릭 브린욜프슨과 앤드루 맥아피는 이런 디지털 시대의 변화가 산업혁명 변화의 과정과 비슷하다고 말합니다. 산업혁명도 초기엔 전기와 같은 새로운 혁신이 등장하더라도 그것을 활용해 발전하기까지엔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그러나 일정 시간이 지나자 새로운 혁신은 엄청난 탄력을 받고 신성장동력이 됩니다. 에릭 브린욜프슨과 앤드루 맥아피는 바로 지금이 디지털로 인한 기하급수적 성장기가 시작되었다고 말합니다.

인공지능 연구자들은 오래전부터 동시 위치 추적 및 지도작성(SLAM)이라는 문제에 몰두했다. 대다수의 사람은 거의 무의식적으로 수행하는 일을 기계에게 가르치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임이 드러났다. 2008년의 한 논문에는 로봇공학의 근본적인 도전 과제 중 하나로 지목했다. 이 문제는 너무나 어려웠기 때문에 해결에는 실질적으로 진척이 없었다. 이 논문이 발표되고 겨우 2년 뒤에 150달러짜리 비디오 게임 주변 기기가 등장하기 전까지 말이다. 2010년 마이크로소프트는 엑스박스 게임 플랫폼에 딸린 감지기기인 키넥트를 선보였다. 밴쿠버에서 열린 시그래프 박람회에서 연구진은 키넥트를 이용해 로봇공학의 오랜 도전 과제인 SLAM을 해결했음을 보여주었다. - pp.73~74

디지털이 사회의 신성장동력이 되었다는 것은 모든 것이 디지털화된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이런 디지털 사회의 특징은 한계비용이 제로에 가깝다는 것과 혁신동력으로 재조합을 이끌어내는데 있습니다. 오늘날 생산성 향상을 이끄는 디지털 요소들은 한계비용이 제로에 가깝기 때문에 과거에 비해 그 제약이 적어 엄청난 속도로 전파될 수 있습니다. 또한 다른 분야의 기술과 아이디어를 사용해 문제를 해결하는 재조합 혁신은 세계적인 학자들도 풀지 못했던 천체물리학계의 난제를 은퇴한 무선 주파수 기술자가 풀고, 소수의 전문가가 풀지 못하는 문제를 대학교 교양수준의 지식을 익힌 다수의 대중이 풀어내는 시대를 만들었습니다. 이런 재조합은 그 특징상 하나의 새로운 혁신이 모든 분야에 영향을 미치게 되는 시너지를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즉 재조합할만한 것들은 아직도 무궁무진하기에, 우리가 이뤄낼 수 있는 혁신들도 무궁무진하다는 것입니다. 디지털 혁신은 비용이 거의 들지 않으면서 생산성을 향상시키는 새로운 혁신이기 때문에, 사회의 파이를 더욱 커지게 만듭니다. 즉 풍요의 시대를 만듭니다.

번영의 엔진은 기술 진보이고, 기술 진보의 엔진은 사람이다. 아이디어는 사람에게서 나온다. 사람이 많으면 아이디어도 많아진다. 아이디어가 많으면 우리는 번영한다. 다른 사람들이 더 많은 아이를 가질 때 그것은 언제든지 기뻐해야 할 경사다. 그 아이들이 당신의 삶을 풍요롭게 해줄 게 거의 확실한데, 다른 누군가가 그들의 양육을 모두 떠안는 것이다. 그것은 다른 사람들의 출산에 대해 기꺼이 보조금을 줄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발칙한 경제학》

그러나 동시에 디지털 혁신은 빈곤의 시대를 가져옵니다. 그 이유는 운송기술이 개선되고 네트워크가 표준화된 글로벌 시대이기 때문입니다. 디지털이 만드는 풍요는 그 특성상 전세계에 영향력을 미칩니다. 트위터, 페이스북, 그 외 수많은 유용한 앱들, 그리고 디지털 시스템으로 더 효율적으로 변하는 기업들은 우리들의 삶을 풍요롭게 만들었지만, 동시에 디지털이 가져다주는 부는 소수에게 집중됩니다. 과거엔 세계 1위의 실력을 지닌 축구선수라도 봉급엔 한계가 있었습니다. 그가 동원할 수 있는 관중은 경기장의 수를 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1위는 아니더라도 그에 크게 밀리지 않는 사업자들도 나름대로의 성장을 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세계적으로 유명한 축구선수는 전세계의 소비자에게 영향력을 미칠 수 있습니다. 기업도 마찬가지입니다. 따라서 그 봉급도 그 영향력만큼 상승합니다. 과거에 존재했던 공간적, 시간적, 금전적 제약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디지털은 공간을 초월하고, 시간을 통일하며, 한계비용을 제로로 만들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시장 전체를 독차지하는 슈퍼스타와 다수의 빈자가 존재하는 사회, 승자 독식 사회를 만들어냅니다.

디지털 혁신이 지닌 이 두가지 특징에 대해 에릭 브린욜프슨과 앤드루 맥아피는 안타깝게도 이대로 계속된다면 빈곤이 풍요를 억압하게 될 것이라고 지적합니다. 혁신이 만들어낸 부가 불평등을 만들어내고, 그 불평등이 혁신을 저해한다는 것입니다. 경제학자 제이슨 디베커와 브래들리 하임 연구진은 1987년부터 2009년에 걸친 세금 환급 자료를 조사한 결과를 내놓았는데, 밑바닥과 중간에 있는 사람들은 생애 내내 같은 지위에 머물러있는 경우가 많으며, 그들의 가정 역시 세대가 바뀌어도 같은 처지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을 보여줬습니다. 이것은 경제나 사회의 건강에 좋지 않은 일입니다.

번영은 혁신에 의존하며 모두를 위한 공평한 경쟁의 장을 마련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혁신 잠재력을 낭비하게 된다. 즉 우리는 또 다른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페이스북이 어디서 나올지 알지 못하며, 그것을 창조할 인물이 어쩌다 학교에 들어가지 못해 대학에 진학할 수 없게 된다면, 그것이 실현될 가능성은 크게 줄어든다. 미국은 대체로 혁신과 투자에 보상해왔기에, 지난 200년 동안 수많은 혁신과 경제성장이 이루어질 수 있었다. 그것은 진공 상태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다. 엘리트나 다른 편협한 집단이 정치권력을 독점하여 그것을 사회 전체를 희생시키면서 자신의 이익을 위해 이용하는 것을 막는 특정한 정치 제도의 집합이 그것을 뒷받침했다. - p.218

절대다수의 빈곤은 디지털 혁신이 지닌 특징이기도 하지만, 오늘날 우리가 제2의 기계 시대를 제대로 대비하지 못하는 데서도 비롯된다고 지적합니다. 오늘날 쓰고 읽고 말하고 외우는 교육체제를 재고해 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단순 암기식 교육은 디지털 시대엔 전혀 쓸모가 없으며, 디지털 환경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인간의 능력들, 창조력, 아이디어 등을 교육시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산업혁명이 가져다 준 혜택들, 자동차, 전화기 등이 인간의 물리적인 한계를 극복시켜줬다면, 제2의 기계 시대엔 새로운 기술들이 정신의 한계를 극복시켜주면서 동시에 요구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제2의 기계 시대에 중요한 것들은 무엇보다도 혁신을 이끌어내는 창의성과 개성, 그리고 그것을 뒷받침해줄 민주주의와 자유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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