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입] Preisner Kielowski
Virgin / 200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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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영화를 좋아하다 보니 아무래도 영화음악을 많이 듣는다. 위대한 영화음악가라면 누가 있을까. 아무래도 고전 중엔 [길], [8과 1/2], [태양은 가득히], [대부] 등 무수히 많은 작품들을 통해 제대로 비감 어린 선율을 들려준 니노 로타 그리고 오손 웰즈의 [시민 케인]을 비롯,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 연출작들부터 마틴 스콜세지의 [택시 드라이버]까지 영화사에 남을 굵직굵직한 작품들 테마를 도맡다시피 작곡한 버나드 허만 두 사람을 들게 된다. 한 사람 더 들자면 역시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와 [시네마 천국]으로 유명한 엔니오 모리꼬네까지. 물론 그의 작품 연보를 살펴보면 시골 밤하늘에 수놓인 별들처럼 주옥같은 명곡들이 많다.

 

동시대 영화음악가 중엔 누가 뭐래도 폴란드 출신 즈비그니예프 프라이즈너를 첫손에 꼽게 된다.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의 [대부] 삼부작과 페데리코 펠리니 감독 일련의 걸작들을 니노 로타의 음악 없이는 생각하기 힘들 듯이 크쥐시토프 키에슬롭스키 감독의 극영화들이 획득한 작품적 성과는 즈비그니예프 프라이즈너가 창출해낸 아름답고 신비로운 선율에 상당 부분 빚을 지고 있다. 키에슬롭스키 감독 사후 절친한 작업 동지를 잃어설까. 작품 활동이 뜸해져 아쉽지만 아직까지 그의 음악을 듣고 있노라면 아득히 황홀경을 헤매게 된다. [데칼로그] 연작은 물론 [베로니카의 이중생활]과 [세가지 색] 연작에서 테마로 쓰인 곡들이 이 음반에 갈무리 돼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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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오홍의 황금시대 - 긴 사랑의 여정을 떠나다
추이칭 지음, 정영선 외 옮김 / 자음과모음(이룸) / 2014년 11월
평점 :
절판


[황금시대]는 '생사의 장'과 '후란강 이야기' 등의 대표작으로 1930년대 중화민국 시기 천재 여류 소설가로 알려진 샤오홍의 일생을 그린 일종의 전기 영화다. 허안화 감독은 봉건 가정에서 태어나 매정한 아버지보다는 할아버지로부터 사랑과 온정을 느끼며 성장, 정략결혼을 거부하고 가출 후 국공합작과 중일전쟁 등 숱한 정치적 격변 속에서 병약한 몸으로 세상 풍파에 떠밀려 떠도는 구름처럼 살다 쓸쓸하게 죽어간 샤오홍의 일대기를 일반 극영화와 재연 다큐멘터리 형식을 오가며 담아낸다.

 

 

 

 

표면적으로는 샤오홍(탕웨이 扮)과 그녀의 연인이던 샤오쥔(풍소붕 扮)의 애증을 다루는 데에 많은 러닝타임을 할애하지만 나는 세간에 알려진 바처럼 극중 샤오쥔이라는 인물이 샤오홍의 일대기에 접근하기 위한 결정적인 열쇠라고까지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기엔 출연 분량에 비해 그 비중과 존재감이 미비했을 뿐더러 내가 본 [황금시대] 속 샤오홍에게 샤오쥔은 실패한 첫사랑 루저쑨이나 그녀의 마지막 남자 두완무(주아문 扮) 혹은 한때 교류하며 시대정신을 나눴던 중국문단의 대가 루쉰(왕지문 扮)처럼 혹독한 운명을 일깨운 숱한 시련 중 하나였고 생성과 변화를 거쳐 필멸하는 자연 만물 이치의 일환이었다.

 

 

 

 

서글프게도 ​​샤오홍에겐 범속을 향하는 욕망이 없었다. 오로지 글, 글을 쓰기 위한 생존과 자유, 글 앞의 실존만이 있었다. '이것이 나의 황금시대인가. 가난하지만 자유롭고 편안하며 조용하고 여유로운 이 순간이. 그래. 배를 곯진 않으니까. 이렇게 새장 속에서 보내고 있는 지금이야말로 나의 황금시대다.' 한 아이로서, 소녀로서, 여인으로서, 그리고 잠시나마 한 생명체의 어미로서도 그녀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나같은 범인의 촉으로 가늠하기엔 너무도 가혹한 삶을 감내했다. 그러면서 31세의 나이로 홍콩의 성스테판 여학교 임시병동에서 숨을 거두기까지 백 편의 주옥같은 글을 남겼다. 그녀의 사후, 영화 속 후일담으로 그녀 지인 중 한 사람은 항전 소설과 전시 선전문학이 판치던 때 샤오홍이 역발상의 주제 선택으로 후대 사람들에게 재발견되고 기억되었노라고 회고한다. 아니, 결단코. 그녀는 그저 썼다. 겉으로 표출되지 못하고 안으로만 켜켜이 쌓여 깊이 침잠한 격정을 벼르고 벼려서 '원형질'의 글을 썼다. '내 이미 가난과 굶주림을 겪어 알지만 이렇게까지 몸서리쳐지도록 쓰여진 글은 처음 봤다.' 그녀의 글을 읽은 독자들이 사무칠 수밖에 없던 이유일 것이다.

 

 


관객들이 여러 가지 각도에서 샤오홍이라는 인물을 바라볼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싶었다는 허안화 감독은 샤오홍과 생사고락을 함께 했던 당대 문인들이 각자의 입장에서 회술하는 다양한 얘기들을 가상 인터뷰 방식으로 영화 곳곳에 주석처럼 달아 놓았다. 어쩌면 그 속에서 나는 감독이 제시하고자 했던 '샤오홍'보다는 내가 보고픈 작가상과 인간상으로서의 '샤오홍'을 만났을지도 모른다. 그 둘이 완벽히 일치한다고는 할 수 없어도 많은 부분 겹쳐져 공명했으리라 믿는다.

 

 

P.S. 영화 리뷰이나 해당 영화 타이틀이 알라딘에 존재하지 않아 책에 엮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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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almA 2015-02-07 10: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색계에서의 왕치아즈(탕웨이)를 다시 또 떠올리게 게 되네요. 배우에서 스파이로 끊임없이 연기해야 했던, 여기 자신의 글을 써나간 샤오홍(탕웨이)은 좀더 나은 상황인 걸까요. 시대 속에 휩쓸린 예술가에 대해서 생각해보는 또 지금의 짧은 순간.

풀무 2015-02-09 08:24   좋아요 0 | URL
아무래도 더 비운의 삶을 살다 간 주인공은 왕치아즈가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샤오홍은 자신이 갈망하던 글을 실컷 쓸 수라도 있었으니 말이죠.

2015-05-21 15: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풀무 2015-05-21 19:28   좋아요 0 | URL
프레이야님 서재엔 책과 일상, 연극와 영화.. 무척 다채로운 공간이네요. 반갑습니다. 제가 알라딘 서재에 자주 오진 못하여.. 게으른 친구가 될 것 같아요. 미리 양해 말씀 올립니다. ^^;
 
[수입] Gone Girl (나를 찾아줘)(지역코드1)(한글무자막)(DVD)
20th Century Fox / 2015년 1월
평점 :
품절


영화 장인으로서 데이빗 핀처 특유의 손길과 숨결이 땀땀이 새겨진 웰메이드 치정 '스릴러'인줄 알고 봤다가 뒷통수를 호되게 얻어맞은 기분이다. 정통 스릴러 장르로서 접근하자면 [나를 찾아줘]는 결코 높게만 평가할 수 없는 영화라고 여겨진다. 아무리 천의무봉의 연출장악력을 휘두르는 데이빗 핀처라 한들, 기상천외한 남편 징벌 '자작극'이 중심축을 이루는 길리언 플린의 원전 내용 자체에 너무 억지로 끼워 맞춘 작위적인 트릭들이 난무하니까. 허나 극 중반 이후 기묘한 블랙유머 기류마저 감지되는 '풍속극' 스타일로 넘어가면서 [나를 찾아줘]는 결혼과 미디어, 각종 제도 및 그 위에서 허위의 삶을 영위하는 인간군상에 대한 '잔혹우화'로서의 본래 정체를 드러낸다.

 

베스트셀러 작가 부모에 의해 어릴적부터 타인의 시선과 욕망, 상술에 노출되면서 '어메이징 에이미'로서 판타지로 점철된 유년을 보낸 여주인공의 병적인 심리상태를 일방적인 자기애, 나르시즘이라고만 얘기하기도 난감하다. 우선 자기가 있어야 자기애도 있는 법. 그​녀는 마음이 텅 비워져 있다. 그녀의 내면 중심엔 '나', 건전한 에고가 존재하지 않는다. 그녀 자신은 물론 주변 사람들, 그리고 자신과 그들의 관계로 이뤄진 세계까지 그녀에겐 온통 판타지 덩어리에 다름 아니다. 누구에게나 자기 판타지가 있겠지만 그녀는 도를 넘어도 한참 넘어서, 속이 텅 빈 그녀의 진면목을 알아채고 그녀의 완벽한 판타지서사를 깨거나 그 전개를 망치는 타인이 생기면 가차 없다. 과거 사귀던 연인들도, 심지어 배우자도 그 살벌한 원칙에서 예외일 수 없다.

 

영화에서 가장 섬뜩한 장면은 역시 침대 위에서 성애를 나누던 중에 에이미(로자먼드 파이크)가 셔터칼로 콜린스(닐 패트릭 해리스)의 목을 따는 장면이다. 그 폭력 수위 때문에도 끔찍하지만 티비쇼에서 가장된 진정성으로 읍소하는 남편 닉(벤 애플렉)을 보며 그야말로 여전히 자기 판타지를 충족시켜줄 수 있는 유일무이 짝패임을 깨닫고서 모든 계획을 순식간에 뒤집어 버리는 차가운 광기, 그 매서운 극단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또 하나 꼽자면 자신을 짝사랑하고 스토킹해온 갑부 콜린스의 납치극으로 모든 사건을 조작하고 귀가한 아내의 미친 이면을 속속들이 깨닫고도 그녀의 판타지에 굴복, 결탁하며 안주하게 되는 남편 닉의 선택과 향방, 이 시대 중산층 유부남의 지옥도라고 할 수 있다. 이토록 서로 증오하고 조종하며 아프게 하면서까지 같이 살아야 하느냐는 닉의 질문에 에이미는 '바로 그것이 결혼'이라고 일갈한다. 마치 '본래 그것이 현상적인 삶'이라는 얘기로도 들린다. 그들은 자본과 결혼이데올로기로 유지되는 체제를 더불어 살아가는 공범, 공생관계인 셈이다.

 

​[나를 찾아줘]라는 국내 전용 개봉 제목을 배급사에서 단독으로 지었다고 전해진다. 보기 전엔 'Gone Girl', '사라진 여인'이란 좋은 원제를 놔두고서 이 무슨 삘짓인가 싶었으나 다 보고 나니 참으로 잘 지은 제목이란 생각이 든다. 제목에서 간곡히 찾아달라고 청하는 '나'는 과연 누구인지, 영화를 보고 나면 관객마다 다른 층위의 '나'를 염두에 두게 될 작품이다. 그 '나'가 오직 극중 한 인물만을 지칭하는 것도 아닐 것이다. 어쩌면 이 영화는 진정한 '나'를 잃고서 극악스럽도록 각자의 판타지를 쫓으며 살 수밖에 없는 지금 여기, 우리 모두에 해당하는 통렬한 우화일지도 모르겠다. 미혼이라서, 인문적 각성을 이뤄서, 기타등등... 그래서 누구만은 예외일까? 글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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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almA 2015-02-03 04: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시대 중산층 유부남의 지옥도˝...이런 강렬한 문구를 참 잘 뽑아내시는 듯b
여러가지 오버랩이 되는 게 많네요. 잘 읽었습니다/

풀무 2015-02-07 09:37   좋아요 0 | URL
지난한 포스트 늘 꼼꼼히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못이 없어 편자를 잃었다네

편자가 없어 말을 잃었다네

말이 없어 기수를 잃었다네

기수가 없어 전투에 졌다네

전투에 져서 왕국을 잃었다네

 

제임스 글리크의 [카오스(Chaos: Making a New Science)] 중에 나비효과 즉, 초기 조건에의 민감한 의존성을 설명하면서 인용된 영국 전래 민요인데 요 근래 내가 처한 상황과 딱 맞아 떨어지는 것 같아서 필사해둔다. 소낙비가 쏟아졌으면 아예 처마 밑에서 비를 피했겠고 태산이 무너질 량이면 깔려 죽을까 멀찌감치 도망이라도 쳤을 텐데. 가랑비에 옷 젖고 작은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고 마는 것이 인간사 아닌가 싶다. 결국 결정적인 건 어떤 기회나 사건보다는 평소 습성과 습관이고 성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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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15-02-03 04: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필사해 둬야겠어요!! 감사!! 그리고 오랫만~~~.^^

풀무 2015-02-07 09:39   좋아요 0 | URL
무탈히 지내셨죠..? 제가 알라딘에 워낙 간간히 들르게 되니.. 몇몇 서재 지기 분들께 죄송스럽습니다. ^^;

AgalmA 2015-02-03 04: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식이 뜸하셔서 궁금했는데 뭔가 많은 사정이 있으셨군요. 기운내시길...

풀무 2015-02-07 09:39   좋아요 0 | URL
사려깊으신 분 같아요. 고맙습니다. :)
 
더 울프 오브 월스트리트
마틴 스콜세지 감독,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외 출연 / 아트서비스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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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2013년작 [더 울프 오브 월 스트리트]는 1990년대 월가에서 투기적 저가주 판매와 기업 공개 주가 조작으로 떼돈을 벌며 억만장자에 등극, '월가의 늑대'란 별칭을 얻고 여색과 마약에 빠져 환락에 중독된 '5년천하'를 누리다가 불법 자금 세탁 및 은닉죄로 일순간에 몰락한 주식 브로커 조던 벨포트의 자서전이 원작이다. 마틴 스콜세지 감독이 만들어온 일련의 걸작들은 현대 미국 사회라는 시스템에서 영락을 거듭하는 개인을 늘 그 중심에 둬왔다. 도시 뒷골목 범죄조직원들의 추례한 욕망을 다룬 [비열한 거리]와 [좋은 친구들], 편집증에 걸린 출세지향 배우 지망생 루퍼트 펍킨의 난장 해프닝 [코미디의 왕], 다혈질 복서 제이크 라 모타의 흥망성쇠를 유려한 흑백영상에 담은 [성난 황소], 괴짜 대부호의 강박과 기행을 그린 [에비에이터]... 모두 소위 아메리칸 드림, '탐욕이 곧 선(善)'이 되는 미국식 성공의 이면을 들추면서 인간의 삶과 그를 에워싼 세상 간 마찰, 그 명암과 허실을 냉철하게 직시하거나 거꾸로 뒤집어 보는 작품들이었다.

 

[더 울프 오브 월 스트리트]도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다. 글로벌 금융 일번지라는 월가 한복판에 비상한 머리와 화려한 언변, 비뚤어진 야심의 양아치 사기꾼 조던 벨포트를 던져 넣고 그의 비행과 추락을 지켜 본다. 다만, 예전 대표작들에서 선뵌 '시네마' 내지 '필름'으로서의 무게감은 덜어내면서 블랙코믹 터치를 강화, 철저히 '만화경' 혹은 '요지경'에 가까운 난장판을 보여 준다. 영화 대부분을 차지한다고 할 수 있는 난잡 파티 장면들, 나르시즘과 테스토스테론, 헤로인으로 들끓는 변태 행각들... 온통 '호갱님'들 후려낸 빚잔치로 마련한 돈다발과 섹스와 마약으로 점철된 역겨운 카니발 묘사 수위가 거의 피에르 파올로 파졸리니의 역작 [살로, 소돔의 120일]에 맞먹는다. 20세기 중엽 유럽 부르주아들 자리에 현대 금융자본가들만 대입해 놓은 격. 그 효과는 금융자본의 욕망 과잉과 도덕적 해이, 그 비정상·비인간적인 메커니즘의 기형성과 야만성에 대한 통렬한 독설, 체제 비판과 인간 풍자를 아우른 조롱으로까지 와닿는다.

 

70대 노장 감독 작품이라고 믿기 어려울 지경으로 영화적 활력과 에너지로 넘치는 작품이다. 20세기 로버트 드니로와 마찬가지로 어느덧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21세기 페르소나로 자리잡은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출중한 연기가 한 몫 단단히 거듦은 물론이다(특히 마약으로 인한 유사 뇌성마비 시퀸스가 압권). 마지막, 3년(겨우?) 형량을 마치고 자기계발 전도사로 거듭난 조던 벨포트가 뉴질랜드 세일즈 세미나에서 수강생들을 상대로 '내게 이 펜을 팔아봐'(추신 참조)를 거듭 되뇌이던 엔딩의 페이소스는 [성난 황소]에서 결국 밤무대 코미디언으로 연명하게 된 제이크 라 모타가 거울을 보고 반복하던 독백 '자, 이제 무대로 나가는 거야 챔피온'을 그대로 연상시킨다. [에비에이터]의 하워드 휴즈가 뇌깔이던 'That's the way of the future, the way of the future...'도. [더 울프 오브 월 스트리트]는 한마디로 웃픈 영화다. 권선징악 교훈극도 아니고 한시절 풍미한 주식 야바위꾼을 미화한 회개록은 더더욱 아니다. 금융자본이 금본위제를 이탈한 이래로 촉발된 모순된 욕망과 가치 전도의 거대한 환영을 반영한 풍속도, 화끈하고 신랄한 블랙 희비극이라 하면 그나마 적합한 표현이 될지 모르겠다. 세 시간에 육박하는 기나긴 러닝타임이 전혀 지루하지 않은 수작이었다.

 

P.S. 영화 중간, 조던 벨포트가 페니 스톡 투자회사 '스트래튼 오크먼트'를 차리기 위해 소집한 죽마고우들에게 '내게 이 펜을 팔아봐'라는 화두를 던지면서 '수급이 재료나 실체에 앞선다'는 주식 세일즈 교훈을 주입시키는 장면이 있다. 화두의 답은 펜의 장점과 필요성을 역설하는 게 아니라 지금 당장 싸인을 해달라며 억지로라도 수요를 창출하라는 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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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15-01-11 13: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재밌게 본 영화라 반갑네요~~~^^. 그런데 연기에 대한 얘기는 안 하시네?? 저는 영화보면 주로 연기 얘기만 하거든요~~~ 역시 서쪽섬님같은 전문가적인 분과 멋도 모르는 저와의 차이점!!ㅋ

풀무 2015-01-11 19:50   좋아요 0 | URL
전문가적이어서가 아니라 지면 부족 및 성의 부족으로.. ^^; 이 영화야 말로 배우들 연기 얘길 시작하면 한도 끝도 없을 것만 같습니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는 물론이고 초반에 잠깐 나와서도 엄청난 화면 장악력을 선뵌 매튜 맥커너히까지.. 그리고 마틴 스콜세지 감독 작품들이 늘 그래왔듯이 여성 캐릭터들 묘사에 대한 아쉬움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