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기기관차 미카 어른을 위한 동화 13
안도현 글, 최성환 그림 / 문학동네 / 200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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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 처음 철도가 생긴 것은 1899년. 지금 같은 고속 열차가 없던 그 때는 사람들에게 기관차가 지상에서 가장 빠른 것이었을테지. 그래서 미카는 그리운 게 아닐까? 옛날을 그리워하는 외로움이 물씬 풍기는 소설이었다. 아무짝에도 쓸모 없기에 철도 박물관 앞을 지키는 기관차 미카와 그의 늙은 기관사. 그들은 서로 말없는 대화를 나눈다. 옛날 한반도의 남쪽 바다에서 폭설이 내리는 만주벌판까지 달리며 바라보았던 모습들을 회상하면서. 그리고 추억하면서. 수십년 같은 세월을 뒤로하고 만난 기관사와 그의 기관차는 그렇게 서로의 마지막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이젠 팔순을 넘기신 우리 할아버지. 어땠을까, 기관사란 일은. 여기 나온 기관사처럼 낭만적인 일이었을까? 할아버지는 한번도 기관사라는 것에 대해 얘기해주신 적이 없다. 어쩌면 얘기하기가 너무 가슴 아픈 건지도 모르겠다. 먼 훗날 나 역시도 그런 추억을 울고 웃으며 말할 수 있을까? 그리고 그넌 나의 옆엔 누가 있을까? 그렇게 말할 수 있는 추억은 얼마나 될까? 오래된 건 너무 빨리 잊혀져 버린다. 너무 슬프다, 그런 사실이. 누군가에게서 잊혀진다는 건 잔혹하다. 미카와 기관사가 하늘에서 만큼은 더 힘차고, 멋지게 달려볼 수 있길. 곳곳에 그림들이 너무나 아름다운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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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아이 God Child 5 - 백작 카인 시리즈 5
유키 카오리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0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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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때부터 유키 카오리의 팬이 되어버린 나는 유키 카오리의 작품을 대부분 읽었다. 한국엔 아직 '루드비히 혁명'이 나오지 않았지만 인터넷이란 즐거움을 톡톡히 누려온 끝에 소장. 친구들과 소장한 만화를 돌려볼 때마다 유키 카오리는 스토리 전개 속도를 못 맞추는 작가로 비판 받는 작가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녀만의 삐뚤어진 세계관과, 고정관념을 깨는 상상력은 분명 나와 내 친구들을 사로잡을만 했다.

본론으로 들어가서 '백작 카인'은 내가 처음 소장해본 만화책이었다. 카인은 분명 매력적인 캐릭터임이 틀림없다. 그 차가운 미소와, 불행한 과거, 미스테리한 사생활. 그리고 그의 그림자 리프. 그의 다른 만화 천사금렵구의 주인공 세츠나보다는 덜 미움 받는 캐릭터다. 어쨌든 다른 사람은 이 만화책을 무엇으로 분류할까. 탐정물? 판타지? 설마 순정? 설사 탐정물이라 할지라도 전혀 예측할 수 없고, 판타지라도 초자연적인 현상은 없고, 순정이라면 사랑이 없다. 아마 유키 카오리는 갖가지 요소 요소를 다 모아서 복합해 버린 것 같다.

유키 카오리는 생각보다 다방면에서 신경을 쓰는 사람이다. 영국에 관심이 많아 영국에 실제 건물을 사용하는가 하면, 서양에서 전래동요처럼 불리던 마더구스를 이리저리 비틀어 스토리를 전개하기도 한다. 아마 이런 것이 '유키 카오리만의 맛'이 아닐까. '백작 카인'의 '잊혀진 줄리엣', '소년이 부화하는 소리', '카프카', '붉은 양의 각인', 그리고 '갓 차일드' 1-2권까지 대부분 마더구스를 이용했다. 물론 앨리스 시리즈도 있지만. 그래도 내게 가장 재미있는 편은 '붉은 양의 각인' 편. 영국을 떠들썩하게 했다던 살인마 잭을 이용한 추리극. 천사금렵구 연재 후 실력이 는 유키 카오리의 후작 '갓 차일드'보다 흥미로웠다.

'갓 차일드'에선 카인이 본격적으로 알렉시스에게 반기를 든다. 소중한 사람을 지키기 위해. 어쩌면 영국을 지옥 끝으로 몰아넣는 아버지 알렉시스를 죽이기 위해. 시간이 갈수록 카인은 아군을 만들어가기 시작한다. 그리고 아버지의 숨통을 조인다. 이야기가 점점 막바지에 들어서는 느낌이다. 이제 지자벨의 과거와, 알렉시스의 최후만이 남은 상태. 막바지에 들어선 만큼 유키 카오리도 스토리를 깔끔하게 마무리 해주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8년동안 기다린 독자들을 실망시키지 않을 '백작 카인'이 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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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왕자 비룡소 걸작선
생 텍쥐페리 지음, 박성창 옮김 / 비룡소 / 200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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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 삽화에 그려진 금발 머리에 펜싱용 같은 검을 든 <어린 왕자>는 솔직히 이국적이었다. 솔직히 어린 왕자가 살고 있다는 '소혹성 B-612호'같은 별 이름엔 관심도 없었다. 어린 왕자 무릎까지도 못 미칠 정도로 작은 화산 두개와, 장미꽃 한송이가 살고, 가끔씩 바오밥나무 씨앗이 날아오는, 그리고 해가 마흔 세 번이나 지는 아담한 별. 이게 아이들과 어른의 차이일지도 모른다. 대부분의 어른들이 그렇다. 새로 사귄 친구 얘기를 하면 꼭 숫자에 관한 얘기를 꺼내지 않더라도, 정작 그 친구의 내면을 알려고 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런 그들을 나쁘다고 생각할 수만은 없다.

내가 좋아하는 글 중에 이런 구절이 있다. '우리는 흔히 어른들은 말과 행동이 다르다고 불평을 한다. 이제는 그 이유를 알 것 같다. 아이들은 꿈과 희망, 그리고 미래를 보지만, 어른들은 현실을 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을 비난하면 안된다. 현실을 본다는 것은 의외로 잔혹하다'. 어른들과 우리는 분명히 통하지 않는 무언가가 있다. 그것이 세대 차이인지,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우리도 언젠가는 어른이 된다.

'어린 왕자'가 지구로 오기전에 만난 사람들. 임금님, 허영심 많은 사람, 술꾼, 사업가, 가로등 끄고 켜는 사람, 그리고 지리학자……. 바로 우리 인간의 모습이다. 임금은 언제나 남 위에 군림하고 싶은 사람. 허영심 많은 사람은 터무니 없는 망상 속에 빠진 사람. 술꾼은 허무하게 삶을 흘려 보내는 사람. 사업가는 물질 만능주의자. 가로등 끄고 켜는 사람은 자아를 잃어버린 사람. 그리고 지리학자는 이론에만 치중하는 사람……. 하지만 '어린 왕자'는 그들을 이해할 수 없었기에 그는 지구로 오게 되었다. 그는 사막에서 노란뱀과 볼품 없는 꽃을, 장미 정원에서 장미꽃들을 만났다. 하지만 내가 주의 깊게 읽은건 역시 여우와의 만남이었다.

나는 여우와의 만남에서 내 마음속에 깊게 새긴 몇가지 구절을 적어보려 한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구절. '무엇이든지 마음의 눈으로 볼 때 가장 잘 볼 수 있다는 거야. 가장 중요한 것은 눈에 안 보이거든'. 귀가 들리지 않는 자는 마음의 귀로 듣고, 눈이 보이지 않는 자는 마음의 눈으로 본다. 흔히 도인이나 현인들이 자주 하는 말이다. 마음으로 보라. 육체의 눈은 보이는 것을 그대로 보여준다. 나쁜 것도, 좋은 것도, 물질적인 것도……. 하지만 마음의 눈은 다르다고 생각한다. 마음은 무방비한 육체의 눈과 다르다. 투명한 막으로 좋은 것과 나쁜 것, 정신적인 것과 물질적인 것을 걸러낸다. 하지만 육체의 눈으로 본 정말 두렵고 나쁜 것은 그 막까지도 깨고 들어와 마음에 상처를 주는 게 아닐까.

그리고 '너의 별에 핀 장미꽃이 그토록 소중한 것은 그 꽃을 위해 네가 많은 시간을 보냈기 때문이지.' 누구나 자신의 죽음을 두려워한다. 그렇지만 나는 나의 죽음보다 내가 소중하게 여겼던 사람의 죽음을 더 두려워한다. 나 혼자서 보낸 시간은 즐겁지 않아서 잊혀지기 마련이지만, 내가 좋아하는 사람과 보낸 시간은 영원히 잊을 수 없으니까. 그래서 내가 죽는 것보다 다른 사람이 죽는게 더 슬플 것 같다.

이렇게 지구로 온 '어린 왕자'의 회상이 끝나고, '어린 왕자'는 육체를 놔두고 자신의 별로 떠나갔다. 그건 죽음이지만 죽음이 아니다. 이 세계에선 죽음이지만, '어린 왕자'의 세계에선 돌아가는 여행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런 생각을 했다. 비행사가 나이고, '어린 왕자'는 나의 소중한 사람.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사실은 육체 없는 '어린 왕자'가 아니었을까. 그들이 살고 있던 어딘가에서 육체를 가지고 '지구'라는 별로 잠깐 여행온 게 아닐까. 그리고 시간이 다 되면 육체를 버리고 원래 자신의 별로 돌아가는게 아닐까. 만일 그렇다면 죽음은 그리 슬픈 일이 아닐 수도 있다. 먼 훗날 나도 육체를 버리고 나의 별로 돌아가다가 그 사람을 다시 만나게 될지도 모르니까. 하지만 내가 죽어가는 그 사람에게 웃으며 다시 만나자고 말할 수 있을지…….

저 하늘 어딘가에서 지금도 어린 왕자는 웃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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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 금렵구 20 - 완결
유키 카오리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0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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웬만한 만화광이라면 '유키 카오리'라는 작가가 낯설지 않을 것이다. 화려한 그림, 동화와 동요를 바탕으로 한 스토리, 고정관념을 깡그리 부숴버리는 예측불허의 인물들……. 사람들이 잊고 지나친 내용을 콕 집어 비판하는 스토리가 일품이랄까. 복잡하고 이해할 수 없는 내용이 많아 싫어하는 독자더러 있긴 하지만 난 그녀의 만화를 보는 동안 어느새 그 사람의 '마니아'가 되어 있었다.

내가 유키 카오리라는 작가를 처음 만난 건 2000년 초겨울. 그 때 지금은 없어진 모 만화책방에서 만화책을 뒤적거리다가 유난히 내 눈길을 끌은 책이 있었다. 척 봐도 해적판이었던 그 책의 제목은 '천사금렵구 天使禁獵區 (천사 사냥 금지 구역)'. 그게 내 굳어진 '관념'들을 묵사발로 만든 첫 번째 책이었다.

주인공 무도 세츠나의 영혼은 본래 유기천사 알렉시엘로서 신이 쌍둥이 동생 무기천사 로시엘만을 사랑하여 천계대전을 일으킨 전쟁의 여신이었다. 알렉시엘은 로시엘을 봉인하지만 반란이 진압되어 '몸과 영혼이 분리되고 영혼만이 수없이 윤회하다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 형벌'인 엔젤 크리스탈 형을 받게 된다. 그리고 지구가 멸망하는 그 날. 그처럼 비극적으로 죽게 될 무도 세츠나를 대신해 사랑하던 여동생 무도 사라가 저승으로 가게 되고, 세츠나는 지옥과 천상을 오가며 사라의 영혼을 찾는다. 그리고 사라의 영혼이 물의 천사 가브리엘이었다는 사실을 알게되어 자피켈와 함께 다시 제 2차 천계대전을 일으킨다. 후에 세츠나와 사라는 다시 만나 맺어진다는 것이 이 이야기의 끝.
어른들이 이 만화를 봤다면 절대 보지 못하게 했을 것이다. 수수께끼같은 말과 근친상간, 이단, 동성애, 걷잡을 수 없는 살인. 이것들의 반복이 <천사금렵구>의 주된 내용이었으니까. 세츠나와 사라는 친남매였지만 같은 피끼리는 사랑할 수 없다는 것을 몰랐던 어린 나는 그것을 더럽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하와도 아담의 갈비뼈에서 나왔으니 그와 같은 피가 아닌가. 또 고대 이집트에선 형제끼리의 결혼이 가능했고, 프랑스 왕정에서도 사촌과 결혼하는 일이 흔했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그건 아무래도 상관 없었다. 내 머리 속에 틀어박혀 나오지 않은 건 단 하나, '이 세계는 '신'이라는 존재가 만든 시나리오'라는 말이었다.

우리는 흔히 '천사'라고 하면 깨끗하고 선한 존재로만 생각한다. 그러나 카오리는 그 '관념'에 '왜?'라는 질문을 달아 우리에게 슬며시 던져 주었다. 깨끗한 척하는, 위선적인 천사보단 자신이 원하는 일을 이루려 하는 악마가 낫지 않느냐면서. 카오리는 '천사는 인간처럼 고통을 느끼고, 욕망을 가지고 있으나 단지 '신'의 사자라는 이름으로 신성하게 여겨지는 것 뿐이다'라는 말을 매개체인 만화로 전하고 있다. 오직 주만 섬기기 위해 기계처럼 만들어진 천사. 사랑하면서도 서로 안을 수 없는 그들. 자유롭지 못하면서 신의 종노릇을 하고 선의 편인 천사와, 신에게 버림 받아 그를 버리고 자신의 자유를 위해 싸우며 원하는 것을 추구하는 악마, 과연 더 나은 자는 누구일까?

생각해보면 아이들이 볼 만한 내용의 만화는 아니었다. 아니, 보지 말았어야 할 만화였는지도 모른다. 시커먼 어둠 속에서 갑자기 엄청난 양의 빛을 보는 것 같은 강렬한 느낌이었으니까. 하지만 그때 내가 '천사금렵구'를 선택한 건 분명히 필연이었을 거라고 믿는다. 그렇지 않았다면 난 지금까지도 분별없고 보수적인 사람이 되어 있지 않았을까? 따지고 보면 '천사금렵구'가 예외적인 일도 금방 적응하고 까다로운 지금의 나를 만든 것이다.

가끔 사람들은 자기가 정해놓은 상상에 휩쓸려 불안해하고 괴로워 한다. 또 시도 해보지도 않고 포기해 버릴 때도 있다. 그것은 현실에 대한 진실을 보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힘들고 어렵다고 해서, 볼 수 있는 진실을 보려고 하지도 않고 도피해 버리는건 바보 같은 짓이다. 그렇다고해서 그 고통을 못 이겨 남에게 의지할 수는 없는 일. 어차피 사람은 혼자 태어나 혼자 돌아가는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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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잔상 - 유키 카오리 단편시리즈 4
유키 카오리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0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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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나서 묘하다. 역시 유키 카오리는 일 벌려놓기의 천재. 끝 마무리가 약간 엉성한 사람이다. 그래도 유키의 단편 중에 이 'Boy's next door <소년잔상>'이 가장 마음에 든다. 다만 유키 카오리 특유의 그로테스크한 대사, 잔혹하리만치 아름다운 대사를 읽을 수 없어 유감이다. 물론 그것들이 정확, 완전히 번역 되었더라면 나 같은 청소년은 읽을 수 없었겠지만. 어쩌면 좋은 작품은 엉망인 일본어 실력이라해도 원판을 보는 것이 나을 것 같다. 솔직히 유키 카오리는 그림 못지 않은 대사가 일품인 작가라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이 만화 주제는 잔혹한 살인자도 사랑을 할 수 있다는 얘기가 되나? 절정은 뭐, 여느 순정만화와 다를 바가 없었다. 다만 금단의 사랑일 뿐. 몇 년 전 작품이지만, 앞으로도 스토리를 더 탄탄하게 다듬을 수 있는 유키 카오리가 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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