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 반짝이는 정원
유태은 지음 / 미디어창비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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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새싹만큼 작았을 때, 할아버지의 정원은 아주 컸어요.

유태은 작가의 <사랑이 반짝이는 정원>의 책소개를 보는 순간, 이건 '내 아이와 우리 아빠의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아빠의 농장에도 그림책에 등장하는 멋진 정원이 있는데 그곳에서 아이는 유아용 자동차를 타고 씽씽 달리기도 하고, 연못에 사는 물고기에게 밥도 준다. 장난감 덤프트럭과 포크레인으로 식물에게 물을 주기도 한다. 노는 것 처럼 보여도 아빠는 아이에게 이것저것 알아두면 좋은 이야기를 들려 주신다. 그러니 이 책을 아이에게 꼭 보여주고 싶고 또, 추석에는 아빠와 아이가 함께 읽는 모습도 보고 싶어졌다.

정원에서는 흙냄새가 났어요.

꽃도 가득했고 작은 곤충들도 많았어요.

아이들은 책을 읽을 때 책 내용에만 집중하지 않는다. 어른들도 물론 그렇지만 독서지도를 할 때 강사들끼리 고민하는 내용 중엔 주변환경과 소품을 활용 부분도 비중이 크다. 후각으로 전해지는 영향도 막대한데 '흙냄새가 났어요'라는 이 부분이 사소한 듯 하지만 나중에 커서 아이는 비슷한 냄새를 맡게되면 할아버지와의 소중한 추억을 떠올리게 된다. 이따금 어린 아이가 어른을 도와 이것저것 열심히 해내는 경우가 많은데 조금 무리한 설정이라고 생각되었다. 농장에서 사용하는 물통은 아이가 조금 흘리는 정도의 수준이 아니라 빈 물통이 아닌 이상 드는 것 조차 무리다. 오히려 <사랑이 반짝이는 정원>속 할아버지와 소녀처럼 할아버지가 열심히 정원을 가꾸는 모습을 이곳저곳에서 지켜보기도 하고 그 모습들을 가만가만 마음속에 저장해두는 편이 현실적으로 다가왔다.

나의 모란꽃은 점점 자랐고,

나도 자랐어요.

할아버지 당신이 좋아하는 꽃이 아닌 손녀가 좋아하는 모란꽃을 선물해주는 멋진 할아버지. 그 모란꽃과 함께 성장하는 소녀의 변화된 모습이 그림으로 마주하는데도 감동적이었다. 이제는 제법 할아버지를 도와 분갈이하는 모습은 아이가 성장했음을 잘 보여준다. 곁에 있던 강아지가 개로 성장한 것도 깨알같이 귀엽다.

내가 해바라기만큼 자랐을 때,

할아버지는 작은 집으로 이사했어요.

아이는 아직 이 문장이 주는 안타까움을 알지 못했다. 하지만 어른이 되버린 나는 좀 전까지 미소지으며 읽다가 울컥 하고 말았다. 내가 아빠를 만날 때 마다 이제 조금만 더 있다가 병원이랑 마트가 가까운 아파트로 이사하는 게 좋지 않냐며 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는 부모님의 편의와 건강을 염려해 했던 말인데 이렇게 글로보니 너무 내 입장만 생각했음을 깨달았다. 아직 시간 개념이 자리잡지 않은 아이는 여전히 "아까 나도 할아버지랑 꽃에 물 뿌렸어. 덤프로 물 줬어."라고 신나했다.

이제 막 한글을 배운 아이는 그림이 많았던 책 보다 글밥이 조금 많은 책을 함께 읽는다. <사랑이 반짝이는 정원>은 한글을 몰라도 그림 자체가 정말 예쁘고 색감이 풍부해서 맘에 들었지만 아이와 함께 읽기에도 좋았다. 또 앞서 언급한 것처럼 내용자체도 입장에 따라 심오한 생각으로 연결시킬 수도 있어 꼭 추천하고 싶다. 만약 정원이 있거나 식물 기르기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 또한 선물로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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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구멍 속의 유령 암실문고
데리언 니 그리파 지음, 서제인 옮김 / 을유문화사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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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데리언 니 그리파의 <목구멍 속의 유령>은 저자가 아일랜드의 고전 시인 <아트 올리어리를 위한 애가>의 아일린 더브의 삶을 쫓는 과정을 담은 책이자, 네 명의 아이를 출산하고 양육하는 ‘엄마’의 삶을 이야기한 책이다. 제목으로 쓴 ‘누가 누구의 삶의 출몰하고 있는가?(본문 237쪽) 역시 책의 구절을 그대로 옮겨왔는데 아일린이 저자의 삶의 출몰한 것처럼 보였지만 그 과정속에서 오히려 저자가 아일린의 삶의 혹은 동시대를 살았거나 시대가 아무리 바뀌어도 여전히 남성으로부터 혹은 시대로부터 삭제되어진 여성들이 서로의 삶의 출몰한 것처럼 느껴져 망설임없이 제목으로 정했다. 왜냐면 이 책은 시작부터 끝까지 ’여성의 텍스트‘기 때문이다.

📖
​나는 아일린 더브가 이 고통을 혼자 겪게 두지 않을 것이고, 당신 또한 그럴 것이다. 걸어 들어가 그와 함께 서자. 우리는 이 순간에 이성이 끼어들게 놔둘 수 없다. 우리의 움직임을 막을 생각은 하지 마라. 201쪽

✍🏼
사랑하는 연인이자 두 아이의 아빠인 아트를 잃은 아일린을 사랑하게 된 이후 저자는 이 불편을 당연하게 감내한다. 숨을 거둔 남편 곁으로 단 세걸음에 뛰어갔을 때 두 사람 주변에는 늙은 노파뿐이었다. 이 노파는 나이든 아일린의 현현이라고 추측하기도 하지만 저자는 그 노파의 모습이 우리 중 누구라도 이상하지 않다고 말한다. 책을 읽는 이유가 여기에 있지 않을까. 작품 속에 등장하는 인물이 전혀 모르는 타인이 아니라 과거의 나를 떠올리고 상처받았던 소중한 이를 떠올리게 하면서 그때 하지 못했던 위로를 건네며 동시에 스스로를 치유할 수 있다. 아일린 더브를 쫓는 과정도 이토록 절절하게 다가오지만 저자에게 더 큰 매력을 느끼는 부분은 그녀가 이웃을 바라보는 시선에 있다. 어느 날은 애인으로부터 데이트 폭력을 당한 여성을 위로하기 위해 남편의 의견을 무시하고 그녀에게 달려가 위로한다. 그 순간 저자는 이전의 노파처럼 그녀에게 ‘괜찮아질거에요‘라는 거짓아닌 진실을 이야기하며 오래 전 해부학 실습을 견디지 못해 도망치고 삶을 포기하려 했던 순간의 자신을 잡아준 실재하지 않은 존재를 떠올린다.


📖
살이 빠졌다. 눈 밑에 다크서클이 늘었고, 머리는 지저분해진 데다 배에서는 꼬르륵 소리가 났지만, 나는 이 노동이 어떻게든 가치 있는 것으로 증명되리라는 생각을 하며 스스로를 위로했다. 다만 어떤 식으로 증명될 수 있을지 아직 확신할 수 없을 뿐이었다. 158쪽


✍🏼
실재하지 않는 것 같지만 두번 다시 만날 일 없는 여성을 돕는 자신을 보며 여성이 여성에게 흔적으로 남는 텍스트를 통해 혹은 구전되어 내려오는 이야기들을 통해 실존 한다는 것을 증명한다. 상처입은 여성을 안아주며 위로하는 저자의 체험을 보며 나또한 길을 잃었을 때 나의 손을 잡아준 여성을 떠올리며 공감하고 저자의 의견에 적극적으로 동조한다. 이웃을 바라보는 시선만큼이나 눈길을 끄는 부분은 자신이 머무는 공간과 사물에 대한 시선이었다. 새로운 집에 딸린 정원을 바라보며 ‘온전히 내것’이라는 생각 대신에 오래전 처음 그 정원을 가꾸었을 여성을 생각한다. 그가 심어놓은 구근, 그가 바라보았을 찬란한 빛의 율동성을 떠올리며 자신만의 힘으로 이룬 것이 아니라 그 집을 거쳐간 여성들의 노고가 쌓이고 쌓여 자신이 그 사랑스러운 정원을 만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이 아일린 더브를 알고, 사랑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떠나고 싶지 않다. 나는 천천히 차를 몬다. 집에가면 기운이 날 만한 일을 하고 싶은데, 아무래도 숨겨둔 새 공책을 펴는 게 좋을 것 같다.

-중략-

나는 내가 노트의 첫 페이지에 쓸 문장을 이미 알고 있음을 깨닫는다. 시작을 담당할 메아리, 이것은 여성의 텍스트다. 376쪽

✍🏼
순수하게 책을 읽는데 들인 시간은 4시간 10분이지만 손에 쥐고, 육아를 하느라 읽지 못해 안타깝고 아쉬워한 날들은 그 보다 훨씬 길다. 저자처럼 어린 아이를 육아하는 여성들의 책읽기란 별별 방법을 다 시도하게 만든다. 그 방법은 하나같이 불편하고 도대체 그렇게까지 읽어야 할 이유가 납득되지 않을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읽는다. 왜냐면 그 모든 시련과 기쁨이 전부 ‘여성의 텍스트’가 되었고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 후기를 읽은 누구라도 동참할 수 있는 텍스트이기도 하다.

#도서제공 #암실문고 #소설추천 #소설책추천 #문학 #목구멍속의유령 #을유문화사 #데리언니그리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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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종의 마음 시인동네 시인선 205
이제야 지음 / 시인동네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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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이제야 시인의 <일종의 마음>을 읽었다. 글이 작가의 손을 떠나 한 권의 ‘책’이 되어 독자에게 읽히는 순간, 그 이야기를어떻게 해석하고 받아들일지는 온전히 독자의 몫이라던 그 말을 믿고 좋아했다. 하지만 이 시집을 읽으면서 시인에게 물어보고 싶고 부탁하고 싶어졌다. 끝없이 추락하는 이 아픔이 맞는건지, 시집을 읽다가 시어들로 눈물이 차오를 때 휴지를건네달라 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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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의 마음에 영원을 두지 않은 것이 사랑이라면
어느 날이 가장 아름다운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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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우리는 바다로 뛰어들 준비가 되어 있었지.
<벽에 기댄 화분>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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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영원한 것이 아님을, 영원한 것만이 사랑은 아니라는 것을 어른이 된 지금은 알고 있다. 좀 더 빨리 알았더라면 가장 두렵고 불안했던 날들이 시인의 말처럼 ‘가장 아름다운 날’인 것을 알고 덜 슬퍼하고 더 기뻐할 수 있었을까. 아닐 것이다. 오히려 <우리의 바다>에서, ‘기다리지 않음으로 가까워지는 것들이’있음을 알고 아름다울 수 있는 날조차 거부했을것이다. 해설을 보면 시인은 ‘내가 보는 너, 나의 짐작’대로 상대와 관계를 못박지 않았다고 했다. 그렇게 상대를 규정한다면 스스로 얼마나 교만과 슬픔에 갇혀버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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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돌을 쌓던 아침이 있었지
무너지고 싶지 않은 사람이 만드는 집에는
쌓인 것들이 피어나 지붕이 된다는데
<끝의 마음>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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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와 문자로 마음을 쌓을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런 바람으로 시를 쓰고 소설을 쓰고 책을 출간할테지만 어쩌면 그것은모든 마음들의 지붕이 되어 지켜줌과 동시에 하늘로부터 가리워지고 만다. 인간이 인간에게 솔직해질 때 신과의 거리는얼마나 멀어지는 것일까 생각해본다. 연인처럼 사랑이 곧 기쁨이고 이별이 곧 소멸인 관계에서 더 나아가 아이와 어른, 자녀와 엄마의 관계에서는 어떤 말들로 서로의 마음을 새길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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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깊은 다정함이 깊은 믿음을 만들 수 있을까

어른은 지나지 않는 계절들이 많아지는 것이라는데
풍선이 날아가는 곳으로 마음을 모두 주던 때가 있었지
<구름과 그네>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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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아, 하고 부르고 저렇게 묻고 싶다. 아이를 향한 나의 다정함은 아이부터 나를 신뢰하는 마음과 비례할 수 있을까. 아이가 커 갈수록, 표정이 다양해지고 감출 수 있는 때가 되고보니 그것을 확신할 수 없어 이따금 불안하다. 여전히 나는 아이처럼 ‘풍선이 날아가는 곳으로 마음을 모두 주던’아이에게 전부를 주고 있다. 시인은 <가장 작은 위로>에서 ‘마음을 모음이라고 잘못 쓴 밤이 있었’다는데 요즘 나와 아이는 감정카드를 가지고 결국 마음이 모든 감정의 ‘모듬’속에서 상황에맞는 카드를 꺼내야 한다는 것을 배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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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이 여름으로 지나는 시간에
그럴긋한 속사정들이 서로를 붙잡는 밤이 있지
<다정한 여름>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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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추도 지났는데 여전히 더운 날이 지속되는 날들에 <일종의 마음>을 읽고 서두에 밝힌 것처럼 감정이 갈피를 잡지 못해여기저기 흩어지고 있었다. 이렇게 글로 적어가며 ’누군가의 정신과 사유는 언어를 통해 전달도기보다는 언어속에서 드러난다‘(해설 내용 중, 발터 벤야민의 발췌문 인용)는 말이 꼭 맞았다. 이 시집이 누군가의 어떤 사정을 나눌 수 있을지 기대된다. 많이 읽히길, 많이들 나눌 수 있기를 바라며 추천한다.

#일종의마음
#이제야시집
#이제야
#시인동네시인선205
#가지고다니는책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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듀얼 - 전건우 장편소설
전건우 지음 / 래빗홀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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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듀얼>속 연쇄살인범 리퍼는 살인에 이유가 있고 그것이 단순한 쾌락이나 우발적이지 않다고, 심신미약이 아니라 계시를 받은거라고 말한다. 성서에 실제 등장하는 ‘밀과 가라지’의 비유를 찾아봐도 알겠지만 오히려 예수는 밀라지 베일까 염려하며 가라지를 그냥 두라고 말한다. 리퍼의 저 변명은 그야말로 ‘시키지도 않은 짓’을 하는 것이다. 정확하게 어떤 기준으로 피해자들이 가라지로 선택되었고, 몇몇 사건을 제외하고는 구체적인 살해방식도 등장하지 않는다. 이점이 맘에 든다. 간혹 고어물을 좋아하거나 영상처럼 생생하게 장면이 떠올라 섬찟해지는 것을 즐기는 독자들도 있겠지만 이 책의 저자후기만 봐도 저자가 노린 것은 그런 쾌락이라기 보다는 철저하게 ‘악마’로 태어나 성장한 살인범의 모습이었다. 악마 리퍼를 잡기 위해 아내로부터 괴물이 되어간다는 말을 들을만큼 집착했던 형사 최승재 경위. 이 소설의 흥미로운 부분은 단순히 이 두사람이 쫓고 쫓는 과정만이 아니라 ‘환생’이라는 소재를 이용 해 또다른 사건을 동시에 해결해간다는 점이었다. 성폭행을 당하고 억울하게 죽은 여동생을 위해 보복살인을 한 우필호의 몸으로 환생하면서 그 기이한 인연과 환생이라는 것 자체에 의문과 호기심을 갖는 사람들을 동시에 보여준다. 개인적으로는 환생이나 기이한 현상을 두고 완전 부정이나 긍정도 아닌 ‘그럴 수도 있지’ 라고 생각하며 살아와서 그런지 저자의 표현처럼 ‘대어’를 낚는 듯한 소재 발견이라는 점에서는 칭찬하고 싶다.

중간중간 소설이 현실에서 출발할 수 밖에 없음을 느끼게 하는 가슴아픈 상황과 사연들로 마음이 아프지만 누군가의 말처럼 300페이지가 좀 안되는 소설인데 지루할 틈도 없이 흥미롭게 읽었다.

"나는 리퍼(reaper), 추수하는 자야. 이 세상의 가라지를 모조리 베기 위해 이 숭고한 작업을 시작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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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리 나우웬의 안식의 여정 - 마지막 한 해, 만남과 기도로 꽃피운 일상 영성의 기록
헨리 나우웬 지음, 윤종석 옮김 / 두란노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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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동안, 안식년이 주어진다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아니 무엇을 하고 싶을까. 헨리 나우웬이 집필한 <안식의 여정>은 저자의 안식의 해, 1년간의 일기를 담고 있다. 쓸 수 밖에 없고, 쓰는 행위를 통해 기쁨을 얻었던 저자의 글들은 독자에게도 읽는 그 순간만큼은 쉼이 되어주었다.



성경 말씀을 읽고 그것이 오늘 우리 삶에 주는 의미를 묵상하며 어려움에 처한 많은 사람을 위해 기도하고 예수님의 살과 피를 받는 것이야말로 어떤 유익한 대화나 근사한 식사로도 이룰 수 없는 방식으로 우리를 하나 되게 해 준다. 35쪽



매주 주일마다 교회에 나가 말씀을 듣고 예수님의 살과 피를 받으면서도 어떤 때에는 감정이 격해질 때도 있고, 또 어느 때에는 의무처럼 무감각 한 적도 전혀 없진 않았다. <안식의 여정>은 감정이 고조되는 부분이 있다거나 특별하게 와닿는 문장이 많은 정도가 아니다. 그냥 하루하루 그의 일기속에 나의 신앙고백이 절로 되었다. 기도하는 시간이 늘어나지 않는 것, 그것이 이웃에 대한 사랑이 늘지 않는다는 말과 같았다.



오늘 나는 집에 남아 글을 쓰고 기도하며 쉬고 있다. 친구 집에라도 가서 추수감사절 저녁을 함께 먹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 보았지만 결국 조용히 집에 있는 것이 제일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107쪽



아이가 없었던 과거에는 특별한 날에는 꼭 누군가와 함께 있어야 한다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저자가 말하는 ‘완전한 침묵’의 소중함을 깨닫고 있다. 아이의 소리가 귀찮거나 창밖의 소음이 시끄러운 것이 아니라 침묵을 소중하게 느낄 수 있는 일상의 분주함으로 인한 감사였다. 안식년의 쓰인 일기다 보니 카페나 가족들과 함께 있을 때에는 책의 페이지가 무덤덤하게 넘어갔다. 그러다 모두가 잠든 시간, 이른 새벽과 밤, 여행지에서 읽을 때는 글자가 그대로 살아 움직였다.



크리스마스와 생일날 많은 선물을 받았다. 꼭 가지고 가야 할 것은 무엇일까? 처분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 간혹 나는 내가 들고 다니는 ‘짐’의 양에 짜증이 난다. 왜 좀 더 가볍게 다닐 수 없는 것일까? 188-189쪽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길을 떠날 때 짐을 꾸리지 말라고, 돈도 가져가지 말라고 하셨다. 내 삶이 기도가 되기 위해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런데도 짐은 자꾸 늘어난다. 기도는 늘지 않고 짐은 늘어나는 나의 삶, 저자가 짐 때문에 짜증이 난다는 말에 웃음이 나면서도 읽는 순간 여행지에 들고 온 짐을 둘러보았다. 기념사진을 위해 가져온 키링, 마찬가지로 예쁜 사진을 기록하기 위한 디카 등 굳이 챙겨오지 않아도 될 짐들이 가득했다. 다행인건 출발 전 부터 책은 <안식의 여정>한 권이면 충분하다고 여겨 다른 책은 가져 오지 않았다는 사실이었다. 다른 책은 정말이지 필요없었다. 올 여름, 태풍과 무더위로 걱정과 지침의 연속이었던 3주 동안 이 책을 손에 늘 들고 다녔던 까닭이다. 천천히 읽어주길 바란다는 추천사의 말이 참이었다. 저자가 그러했듯 책을 읽는 동안, 저자의 일기를 읽는 동안 사회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귀를 기울이며 기도했고, 전시를 관람하고 다른 책을 읽으면서도 늘 머릿속에는 무언가 나도 적고 싶다는 생각으로 가득했다. 그것이 나 뿐 아니라 이웃, 나아가서는 주님께서 베푸신 은총 하나하나를 더 잘 깨닫게 하는 과정이었다.


#안식의여정 #헨리나우웬 #두포터 #휴가철필독서 #북캉스 #두란노 #나를복음으로살게한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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