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사를 품은 영어 이야기 - 천부적 이야기꾼이 들려주는 영어의 역사
필립 구든 지음, 서정아 옮김 / 허니와이즈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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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를 품은 영어 이야기 - 필립 구든 지음(서정아 역)

 

영어는 어떻게 세상을 정복하게 되었는가? 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이 책은 왜 영어가 지금과 같은 영향력을 발휘하게 되었는지는 물론 책을 읽다보면 간접적으로 세계사를 공부할 수 있는 부교재로도 손색이 없다. 영문학을 전공하고 세월이 꽤 지난 나와 같은 독자들이라면 새삼 복습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셈이고, 현재 학습중이거나 아직 초중등 과정을 수학하는 학생들에게는 영어를 왜 공부해야 하는지에 대한 해답을 찾을 수 있다.

 

종교와 상관없이 '바벨탑'과 관련된 일화를 들어본 적이 있을것이다. 원래는 모든 사람이 하나의 언어, 통일된 단어를 사용했지만 신에게 도전이라도 할 것처럼 높은 바벨탑을 쌓아올리자 신이 노여워하여 인간들이 서로 다른 지역에서 다른 언어를 사용하게 만들었다는 이야기다. 하나의 언어를 사용한다면 어떨까? 의사소통이 원활해서 지금 보다 분쟁이 덜 했을까? 외국어 교육이나 관련 업종 등등이 사라지면서 언어에 쏟았던 노력을 한 곳으로 집중해 효과적인 지식을 쌓아올릴 수 있었을지는 미지수다. 하지만 사람들이 만국공통어를 가지려는 까닭은 이해할 수 있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이 사용하는 언어는 중국어지만 지역 분포도를 보면 영어가 가장 많이 사용되고 있다. 반드시 직업적 성공이나 좋은 학점을 위해 영어공부를 해야 한다고 강요할게 아니라 다양한 국가의 다양한 문학, 문화등을 공부하기 위해 언어가 기본이라는 점을 깨닫고 스스로 공부하게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다면 영어의 시작은 어느 곳, 어느 시대인가?

 

로마인들이 나타나기 이전 영국과 아일랜드에는 켈트어를 쓰는 사람들이 살았다. 켈트어는 유럽 어족에서 오래전에 갈라져 나온 어파다. 그 후 영국은 로마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 -25쪽-

 

영어의 중심 잉글랜드는 본래 켈트어를 사용했다. 하지만 켈트어를 현재까지 사용하는 사람들은 스코틀랜드 지역의 극히 일부다. 로마인들이 지나간 이후 유럽 북서부 끝자락에 살던 집단들이 몇 백 년에 걸쳐 영국을 침략했는데 이 침략자들의 언어가 곧 영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저자는 말한다. 주변국들의 세력다툼으로 프랑스가 영국을 집권한 때도 있었지만 언어를 지배하지는 못했다. 언어를 지배한다는 것은 문화를 통째로 지배할 수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멀리 볼 것도 없이 일본이 우리나라를 침략했을 때만 떠올려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앵글로색슨인은 켈트 문화를 업신여기고 무시했다. 우월감은 커녕 열등감을 느꼈기 때문이라고도한다. 39쪽

 

앵글로색슨인에게는 제대로된 글자가 없었지만 원시적인 문화는 아니었다고 말하며 <베어울프>서사시를 그 증거로 언급한다. 기독교가 전파되면서 알파벳과 같은 문자가 만들어질 수 있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이후 200년간 잉글랜드는 평화를 맞이했지만 프랑스 등 인근 나라의 침략은 이어졌다. 언어를 지배하지는 못했지만 침략의 흔적은 남았다. 고대 노르드어를 사용한 바이킹의 경우 앵글로색슨어(고대 영어)와 유사한 점이 많았다는 점도 한몫했다. 때문에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영어 중 상당수가 고대 노르드어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그런가하면 영문학을 공부할 때 가장 처음 배우는 작가 제프리 초서와 관련한 흥미로운 사실을 알게되었다. 다름아닌 그가 표준어가 아니라 사투리를 사용하였으며 당시 사투리는 다른 지역 사람과 의사소통이 어려울 정도로 제각각이었다는 점이다. 초서가 <캔터베리 이야기>이야기를 사투리로 쓴 덕분에 그가 사용한 사투리가 표준어가 된 것은 작가인 초서조차 상상하지 못했을거라고 작가는 말한다. 영어의 가장 큰 장점은 맞춤법이 엄연히 존재하지만 변형이 쉽고 확장될 수 있는 여지가 크다는 점이다. 저자가 그 사례로 든 작품은 셰익스피어의 작품들이었는데 그가 쓴 작품(멕베스, 햄릿, 템페스트 등)을 보면 하나의 단어에 여러가지 뜻을 부여하거나 품사를 변경시킨 흔적이 자주 보인다. 셰익스피어의 경우 별도의 챕터를 구성해서 그를 둘러싼 흥미로운 가설과 일화등을 알려주는데 좀 더 관심있는 사람들은 책을 통해 호기심을 만족할 수 있을 것이다.

 

현대 영어가 발달하고 세계를 지배하는 언어가 된 계기는 16세기 말에 나타났다. 영국이 제국을 건설하고 해외 시장을 개척하기 시작하면서 미대륙 동부 해안에 소규모 식민지가 하나둘씩 세워졌다. 이러한 식민지 건설은 청교도의 도착과 더불어 신대륙에서 영어가 뿌리를 내리는 데 기초를 마련했다. -147쪽-

 

 

 

 

영어의 탄생배경과 영문학 초기의 문학 및 영문학이 꽃피울 수 있었던 셰익스피어 등을 포함, 영어의 발달사가 총 7장 중 3장까지 이어진다. 4장부터가 근대 영어 및 미국의 독립을 다루고 6장 부터가 영어의 세계화라는 큰 제목으로 영어가 다른나라에 전파되었던 계기와 19세기 영어에 대한 설명이 실려있다. 리뷰가 너무 길어지는 까닭에 두번째로 핵심이 될 만한 영어가 과연 앞으로 어떤 양상을 보일 것인지를 다룬 6장을 좀 더 자세하게 살펴보면 저자는 202년경에는 영어를 사용하거나 배우는 모든 사람 가운데 원어민의 비중이 상대적으로 줄어들 것으로 예상했다. 현재도 가장 많은 영어학습자는 중국인이며 이 숫자가 미국의 총 인구수를 뛰어넘는 다고 한다. 그들이 배우는 영어가 단일화된 표준 영어라고 생각하면 안된다고한다. 쉬운예로 우리가 영어를 배우러 어학연수를 떠나는 국가는 미국보다는 그보다 학비가 저렴한 말레시아, 싱가포르, 뉴질랜드 그리고 호주다. 영어의 근원지인 영국도 미국과 마찬가지로 비싼 학비가 부담스러워 정작 우리는 표준영어라고 떠올리는 장소가 아닌 다른 나라에서 영어를 배운다. 물론 그곳에 영어도 표준영어다. 저자는 이렇게 다양한 변종 영어가 나타난 이유를 역사에서 찾았다.

 

말레이반도와 같이 영국의 지배를 받던 지역에서는 현지인도 영어를 익혀야 살아가는 데 유리했다. 로마제국의 통치를 받던 브리튼인이 라틴어를 몇 마디라도 알아둬야 했던 것과 마찬가지다. 264쪽

 

위의 경우 생존과 편의를 위해 영어를 배웠지만 실제 원어민의 교육을 받기 쉽지 않았기에 조금 다른 영어가 파생되었다고 말하며, 말레이시아의 경우와 달리 중국은 무역과 상업 분야에서 성공하기 위해 영어를 배우기 시작했다고 말한다. 그런가하면 싱글리시, 즉 싱가포르식 영어는 영어, 말레이어, 중국의 푸첸어 단어를 섞어 쓰는 말로 영어 단어의 뜻이나 형태가 바뀌는 일도 있다고 한다. 이유야 어떻든 영어를 긍정적으로 '배우기'위해 변종된 경우도 있지만 스페인과 프랑스처럼 영어의 번성을 부정적으로 받아들여서 변종 영어가 탄생되기도 한다. 영어가 세계 공용어가 된다면 이런 변종 영어는 긍정적인 면도 있지만 부정적인 면도 있다. 영어를 사용하면서 지역이나 민족간의 서로 이해하지 못할 단어가 존재하며 요즘은 이메일이나 인터넷 등을 사용하면서 생겨난 신조어까지 통일된 언어라고 부르기에는 문제점을 갖고 있다. 이런 문제를 구체적으로 7장에서 다뤘다.

 

영어권 사람들이 '무슨 말이나 허용되는'언어 공동체에 살고 있다 생각하면 착각이다. 320쪽

 

말, 그리고 글은 본디 어떤 목적을 가지고 있다. 그것이 정치적으로 사용되면 한 개인의 문제를 떠나 국가간의 문제로 번질 수 있기에 조심해야 할 필요가 있다. 영어가 전 세계로 뻗어 나갈 수 있었던 과정에서 '침략' 및 '민족적 우월성'등 부정적인 측면도 많이 포함되어 있다. 특히 인종차별적인 단어를 작품에서 그대로 표현한 마크 트웨인의 <허클베리 핀의 모험>을 사례로 들며 저자는 말의 위험성을 강조했다. 영어를 잘 사용하면 긍정적인 효과는 말로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다. 하지만 그 반대의 경우도 저자가 언급한 것처럼 긍정적인 측면에서의 영어의 활용과 학습의 방향성을 잃지 말아야 한다.

 

책을 읽는 동안  잊고 있었던 내용과 몰랐던 부분을 알아가며 호기심을 충족할 수 있어 좋았다. 하지만 책을 읽고나서가 문제였다. 서두에 밝힌 것처럼 부교재로 사용하기에 손색이 없는 이 책의 리뷰를 어떻게 써야할지 책을 다시 펼쳐서 읽을 수 밖에 없었다. 단순히 영어공부하는 데 목적의식을 가질 수 있어 좋고, 영어는 싫지만 영어의 탄생과 파생과정을 세계사 속에 녹여내어 쉽게 이해할 수 있다고 짧게 평하기에는 책이 가진 장점이 상당했다. 무엇보다 쉽지 않은 내용을 국내 독자가 쉽게 받아들일 수 있게 번역해준 역자의 노력도 상당해 감사한 마음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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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어떻게 철학이 되는가 - 더 자유롭고 지혜로운 삶을 위한 철학의 지혜
천자잉 지음, 박주은 옮김 / 블루엘리펀트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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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은 늘 어렵기만 하다. 철학서를 펼쳐보면 정의도 제각각인데다 심지어 제대로 이해하기 어려운 단어를 열거해놓아 배경이나 사상, 학자들의 이론에 접근하기 전, 정의에서 손을 놓아버리게 만드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이 책, [삶은 어떻게 철학이 되는가]는 도입부터 우리가 흔히 경험하는 사례를 들어 철학의 정의까지 수월하게 접근할 수 있도록 돕는다. 우리가 하는 선의의 행동이 타인에게도 우선순위가 일치하는지와 위험에 처한 타인을 구할 때 망설이는 행동들이 자신과 상대방과의 관계와 우연성에 의해 결정된 다는 것이다. 어릴 때 가르침을 제대로 배우고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젊은 시절의 주된 임무는 학습이지만, 성인이 되고 나서의 주된 임무는 행동이다. 더 뛰어난 자아를 실현하고 싶다 해도, 이제 가장 중요한 문제는 이것이다.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이것은 나는 어떤 존재가 되고 싶은가 하는 문제보다 더 중요하다. 32쪽

 

저자는 철학의 정의를 ‘그렇게 된 이유’를 밝히는 데 있다고 말한다. 과학이 어떤 사건의 메커니즘과 원리를 증명할 수는 있지만 목적과 이유를 밝히려면 ‘철학’적인 접근만이 가능하며, 사례로 지금까지 살아있는 사람들은 종족을 보존하고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이기적 유전자’들에 대한 내용이었다. 메커니즘은 그렇다하더라도 반드시 이기적인 유전자만 살아남은 것은 아니다. 우리가 흔히 의인이라 불리는 사람들만 봐도 알 수 있다. ‘자살폭탄 테러’의 경우 과학적인 현상만 봐서 그 사람이 이기적인지 명분을 가지고 실행에 옮긴 이타적 인간인지 판단하기 어렵다. 해당 국가의 전통과 종교적인 문제 등 다양한 ‘철학적’사고를 통해 접근해야한다.

 

 

생물학, 경제학, 게임이론 등은 각각 과학적 테두리 안에서 인간 행동의 일부를 연구하고, 나름대로 유용한 성과도 얻었다. 하지만 이런 학문이 인성 전반을 연구하거나 ‘인간의 본질’을 발견한 적은 없다. 64쪽

 

총 3부로 나뉘었지만 큰 의미를 두지 않고 읽어도 좋다. 저자가 철학을 공부해야 하는 이유가 1부에 있다고 했는데 사례로 들어준 내용을 살펴보면 우리 삶에 어떻게 철학이 적용되는지를 보여주는 3부의 내용이 나오고 철학이 세상을 바꿀 수 있는지를 묻는 2부 역시 각각의 장에서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알려준다. ‘네 자신을 알라’라는 말이 더 이상 자기 자신만 제대로 파악해야 한다는 게 아니라 나와 관련된 타인, 사회와 그들과의 관계를 이해하라는 의미라는 것을 깨닫는 것, 발생된 모든 일과 존재하는 모든 사물의 ‘소이연’을 탐구하는 것이 철학이다. 철학을 공부하게 되면 우리가 할 수 있는 것과 하지 못하는 것을 알 수 있고 저자가 말하는 진정으로 행동하는 사람이 될 수 있다. 부록처럼 실려 있는 라이프지 인터뷰 내용은 철학자의 은거생활이란 주제로 본문만큼 흥미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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튜링 : 이미테이션 게임
앤드루 호지스 지음, 박정일 옮김 / 해나무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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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본 사람이거나 이전에 튜링과 관련된 서적을 읽었다면 이 책이 전혀 새로운 버전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지난 해 이미 출간된 완역 판과 달리 이 책은 분량을 간소화 하여 출간된 것으로 튜링과 관련된 어느정도의 정보를 알고 있는 사람, 간략한 내용만 알려는 사람에게 적합하다. 소설화 시킨 다른 저자의 책처럼 스토리가 있는 것도 아니고 튜링게임의 탄생배경과 그 이후 학자들의 견해 등이 담겨져 있는데 분량을 축소하다보니 비전공자에게는 난해하기 까지 하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앤드루 호지스가 앨턴 튜링을 오랜 시간 연구해온 사람으로 700여페이지의 내용을 집필 한 후 직접 간추리 책이라는 점이다. 또한 핵심만 담았다는 점에서 불필요하게 장황한 설명을 읽지 않아도 되는 전공자들이나 앞서 언급한 것처럼 영화를 보기 전 대략의 지식을 원했던 이들에게는 좋을 수도 있다. 개인적으로 앨런 튜링을 알게 된 것은 별로 오래 전이 아니었다. 2차 세계대전과 관련된 정보를 찾으면서 접했고 애플의 사과 로고등과 관련된 일화는 영화개봉을 통해 접할 수 있었다. 이런 사적인 부분말고 도대체 앨런 튜링, 그가 대단한 수학자이며 컴퓨터의 아버지인 까닭이 무엇인지 책에서 발췌했다.


그리고 그는 생물학적 이론보다는 오히려 자신의 삶의 경험을 토대로, 행동의 조정은 학습하는 뇌로부터 학습하는 기계로 맞추어질 수도 있을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88쪽


책을 읽다보면 튜링은 철학자의 말을 인용한다거나 혹은 기존의 이론에 입각한 어려운 설명대신 쉽게 전달하는 방식을 택했다. 영화제목이 된 '이미테이션 게임(혹은 흉내 내기 게임'은 다름 아닌 논문이었다. 이 논문을 바탕으로 모형을 설정했고 이 기계가 다름아닌 튜링 기계가 된 것이다. 기계가 왜 생각할 수 없느냐고 했던 까닭은 인간이 실제로 어떻게 계산하는지를 관찰 한 후 기계에 적용, 말그대로 기계가 흉내내기를 통해 연산하면 인간이 생각에 의해 판단한 것처럼 기계도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마치 영화 페피에서 마음을 연산화 해서 다른 기계에 옮겨놓으면 새로 태어날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이 부분은 정확하게 그렇다고 말할 수는 없다. 내가 이해한 바에 의한 것으로 자세한 것 각자 읽어보고 이해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튜링은 인간이 실제로 어떻게 계산을 수행하는지를 관찰한 후, 계산의 본직절 요소를 추출하여 재구성함으로써 튜링 기계를 구성해냈기 때문이다. 159쪽


이 책의 장단점을 위에 나열한 것처럼 아쉽게도 이 책만으로는 제대로 이해할 수도 없었고, 영화에서 느꼈던 소설적 장치가 없어 난해한 면이 컸다. 무작정 두꺼운 책이 부담스럽거나 어느정도 이해를 한 사람이라면 충분히 만족할 수 있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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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의 수업
수산나 타마로 지음, 이현경 옮김 / 판미동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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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 노라와 두 아이를 잃은 전직 의사 마테오는 나이든 노인에게 아무도 사지 않을 것 같은 낡은 숲속 집을 구매 해 살고 있다. 산행하는 사람들을 그를 성직자라 생각하며 묻지 않은 고민을 털어놓기도 하고 어떤 이는 이유없이 그를 미워하며 화를 내기도 한다. 노라의 이야기라던가 마테오 부모님의 이야기가 나오기 전까지 독자도 헷갈렸을 것이다. 그는 왜 은둔 생활을 자처하고 있을까. 가족을 잃은 상실감은 겪어보지 않으면 알 수 없다는데 그토록 괴롭고 힘들었던 것일까.  그것은 아내와의 이별이 결코 제 3자의 의한 '어쩔 수 없는'사고 때문이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중고차를 끌고 오던 중 아내와 큰 아들 그리고 뱃속의 둘째가 탄 차가 마치 자살이라도 하려던 것 처럼 사라져버렸다. 아내가 내가 알지 못하는 이유로 나를 버리고 이 세상을 버렸다는 오해속에 마테오의 상실은 회복될 수도 끝낼 수도 없는 상태가 된다. 나중에 그것이 자살하려던 게 아니란 것을 알려주지만 작가 수산나 타마로는 문제의 해결이 어디에 있든 마음 먹기에 달려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누구나 사고를 당하고 인정하고 싶지 않은 결별을 맞이하면 성인처럼 쉽사리 마음을 다 잡지 못한다. 마테오 뿐 아니라 우리 모두가 서로 다른 이유로 연약함을 가지고 있다. 마테오가 가진 연약함은 청소년기의 얻어진 결과물이 아니었다. 그가 태어나기 전 아버지가 느꼈던 아픔이 그대로 육신과 함께 전해져 내려왔다고 믿고 있다.


아마 내 연약함 속에는 이것, 그러니까 눈에 보이는 것에 넘어 가지 않는, 이런 면이 들어 있었을 거야. 55쪽


마테오가 노라에게 자신의 어린 시절 이야기, 산속에 들어오게 된 계기, 그리고 현재의 삶을 전달하는 편지형식의 구성을 띄고 있다. 노라에게 미처 말하지 못했던 그의 이야기는 스스로 무엇이 문제였는지 찾아가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 과정속에 아버지를 이해하게 된다. 앞이 보이지 않았던 아버지는 마테오가 점점 성장하고 자신의 말을 더이상 믿어주지 않는 다는 것을 깨닫게 되면서 급격하게 약해진다. 마테오가 부모로 부터 연약함을 물려받았다면 그의 아버지는 보이지 않는 시력과 더이상 아이에게 해줄 수 있는 일이 없어져버린 무기력함에서 온 것이다.  굳이 숲속까지 찾아 들어가 자급자족 하는 삶까지 살아볼 필요도 없다. 살면서 누군가의 죽음 때문에 삶 전체가 달라지는 이야기를 접하게 된다. 하지만 앞서 말한 것처럼 자신을 구원할 수 있는 것은 오직 마음에서 시작된다. 신이 당신을 구원 해 줄 거라 믿는다면 우선 신을 믿는 그 마음부터 시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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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찰의 인문학 - 같은 길을 걸어도 다른 세상을 보는 법
알렉산드라 호로비츠 지음, 박다솜 옮김 / 시드페이퍼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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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찰의 인문학 - 알렉산드라 호로비츠 지음


머리가 아프거나 생각 정리가 잘 되지 않을 때 무작정 걷는다. 낯선 길을 걸을 때도 좋지만 늘 다니던 동네를 산책하는 것도 즐겁다. 가장 재미있는 산책길은 책에서 잠깐 나온 것처럼 이사가기 위해 새로운 동네를 살펴볼 때라고 생각한다. 살던 동네와 어느 점이 다른지 차는 많이 다니는지 쓰레기 수거는 잘 진행되고 있는지 등 전에 살펴본 적 없던 것들까지 꼼꼼하게 관찰하기 위해 '노력'하기 때문이다. 이 책이 단순히 보지 못했던 것을 더 자세히 살펴보라는 내용으로 이어졌다면, 그래서 작가 혼자 이곳 저곳 산책하는 내용만 담았어도 재미있을 것이다. 산책을 즐겼던 옛 사람들의 책만 봐도, 근래에 인기 있던 베스트셀러만 봐도 그저 새로운 동네를 길고양이처럼 누비고 다니는 내용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관찰의 인문학! 그보다 한 발 더 나간 산책이 책 속에 담겨져 있다. 총 12번의 산책 여행이다.


첫 번째 산책은 저자가 작심하고 관찰하며, 이전에 관심두지 않았던 것을 관심가지고 산책했다. 산책하고 나서 스스로 자신하며 이정도면 완벽하다고 뿌듯해 한다. 하지만 두 번째 산책, 전문가들과 함께 걷기 전 이제 막 걸음마를 시작한 아들과 산책부터 놀라운 사실을 발견한다. 아이의 산책은 어른과는 다르다. 개를 연구하면서 관찰만큼은 자신있다고 했던 저자조차 아이, 동물, 시각장애인 등 개별적인 특성에서 오는 차이만큼은 쉽게 따라갈 수 없었다. 걷는 것 자체가 산책이지만 걷고 멈추는 그 반복 또한 산책의 일부다. 알파벳 'O'에 집착하고 길가에 돌맹이에도 탄성을 지르는 아이만 봐도 더 순수한 시각으로 산책을 즐길 수 있다. 세번째 산책 부터는 특정 분야 전문가들과 함께 한다. 목차를 통해 총 12명이 누구인지 확인하며 호기심이 생긴 산책들은 음향 엔지니어 스콧 레러와 반려견 피니건과 함께 한 산책이었다. 하지만 막상 읽어보니 지질학자 시드니 호렌슈타인과 함께 한 산책도 재밌었다. 어린시절 땅만 쳐다보던 버릇 때문에 곧잘 넘어지곤 했는데 길을 가다가 돌멩이를 유심히 바라보는 사람은 거의 시드니 박사일 확률이 높다고 하는 말에 동질감을 느낀 것이다. 도시학을 공부했던 학부시절이 떠올라 프렌드 켄트와 함께 걷는 것도 재미있었다.


프레드 켄트에게 중요한 것은 시간이 아니라 공간이다. 도시 공간이 어떻게 사용되고 방치되는지, 무엇이 그 공간을 유용하거나 불편하게 만드는지 같은 문제가 그의 관심사다.  -187쪽-


이 부분을 읽다보면 도시학자가 서울 곳곳을 산책하며 공간개발과 과거와 개발된 현재를 비교한 책이 떠올랐다. 그 책을 보면서 늘 상점을 찾기위해 오가던 거리가 많이 달라보이고 공부해야 할 과제가 많다고 느꼈던 그때가 새삼 떠올랐다. 그런가하면 시각이 아니라 냄새를 쫓아 산책로를 정하는 피니건과 함께 하는 산책도 기대했던 것 만큼 재미있었다. 열두 번의 산책 모두 즐겁고 신선하며 이전에 알지 못했던 부분들을 알게되어 길위에서의 독서와 책상에서의 독서 양쪽 모두를 경검할 수 있었다. 다만 책 원서 자체가 어려워서 그런지는 모르지만 몇개의 문장이 도저히 이해가 안될정도로 해석이 잘된건가 의심스러울 때가 있긴 했다. 지나치게 전문적인 서적이 아닌 데도 불편함이 느껴서 조금 아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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