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면 산티아고로 떠나라, 그녀처럼
이수아 지음 / 자연과인문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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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여행을 앞두고 마지막까지 고민했던 행선지가 산티아고였다. 보통 한달 여정으로 떠나지만 짧게는 15일 전후로 일정을 조절할 수도 있었기 때문에 프랑스행 비행기 티켓을 결제해놓고도 미련이 남았었다. 올 초부터 하루 10km걷기와 주말마다 20km전후로 걷기를 병행했던 것도 오로지 건강만을 위해서라기 보다 혹시나 떠나고 싶을 때 체력이 염려되어 가지 못하는 일은 없어야 할 것 같아서였다. 하지만 마지막 아웃 일정을 스페인이 아닌 런던으로 했던 것은 비움을 위한 산티아고 행 이전에 학부시절 부터 꿈꿨던 '더블린'을 직접 보고와야겠다는 목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헌데 저자가 순례여정을 마치고 런던으로 돌아가는 길에 더블린을 경유했다고 하니 좀 더 유연하게 생각했어도 좋았겠구나 싶었다. 물론 여행에서 돌아온 지금 그 선택의 후회도 없고 오히려 준비없이 산티아고로 떠났다면 그것은 고행이 아니라 무지였겠구나 싶었다. 무작정 걷는 것보다 최소한의 준비와 목적을 가졌을 때 비로소 산티아고의 진정한 매력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을 책, [사랑하면 산티아고로 떠나라, 그녀처럼]을 다 읽고서 든 결론이었다. 저자 이수아, 그녀는 왜 산티아고로 갔을까.

 

평생 독신으로 살거라 다짐했던 저자는 우연한 계기를 통해 남편 고든을 만나게 된다. 첫사랑이 결혼으로 이어진 것은 부럽고 축하할만한 일이지만 안타깝게도 사랑을 키워가는 그 시점, 고든이 피부암으로 시한부 판정을 받았다는 것을 알았다고한다. 죽음이 다가오는 것을 직접적으로 느끼면서도 고든은 순례길을 떠난다. 어떤 기적을 바라고 떠난 것이 아니라 암환자를 위한 모금활동을 위해 떠난 그 여행을 고든이 하늘로 간 뒤 사랑을 이루기 위해 그녀가 산티아고 순례길에 오르게 된 것이다. 흔히 순례기나 여행기를 보면 길위에 적어놓은 메모 혹은 일지를 바탕으로 회상하며 쓰기마련인데 이 책은 달랐다. 바로 그 길위에서 쓴 그 이야기를 순차적으로 보여준다. 길을 떠난 지 3일 째 되던 날이 첫 일지고, 그 다음날, 어떤 날은 걷고 난 뒤 숙소에서 바로 쓴 내용도 있다. 마치 책을 펼쳐 읽는 게 아니라 현재 여행중인 블로거의 포스팅을 접하는 생생함이 느껴졌다. 산티아고 순례길 하면 다들 큰 시련과 상처를 껴안고 좀 더 단단해지기 위해 떠나기 마련인데 '사랑'을 위해 떠난 그녀 덕분에 회환이나 우울함은 느껴지지 않는다. 발에 상처가 생기고 아킬레스건이 당긴다고 고통을 호소하지만 오히려 그녀가 고통을 호소하는 그 순간마저 '살아있음에 감사'하는 겸손함이 느껴졌다. 동행과 함께하는 저녁식사, 처음으로 마셔봤다는 보카디요는 과연 어떤 맛일까? 싶으면서 꼭 산티아고 여정에 발을 딛는다면 마셔봐야겠다는 다짐도 하게 되었다. 길위에서는 누구나 오랜 벗처럼 느껴진다. 오로지 걷는 것 밖에 할일이 없고, 견디는 것이 전부인 그 여정은 타인의 이야기를 사심없이 들을 수 있는 좋은 대화의 장이 되기도 하고 동행이 없을 때는 내면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철저하게 혼자만의 시간이 되기도 한다. 일상으로 돌아왔을 때 그녀가 속한 곳은 스코티시 챔버 오케스트라이다. 동양인 최초 첼리스트로 조금 거만할 것도 같은데 책에 실린 사진을 보면 늘 웃고 곁에 있는 누구던지 그녀에게서 '사랑'이 느껴졌다. 흥미로운 것은 떠나는 목적자체가 희망을 품어서인지 길위에서 만나는 멋진 풍경과 동행자들과의 추억이 왠만한 고급 여행과 비교해도 부족함이 없이 여유로웠다.

오늘 밤에는 또 다른 아홉 사람을 위한 친교의 만찬이 있었다. 요리는 제이드와 죠지의 몫이었다. 와인은 넘쳐났고 우리의 만찬은 늦은 밤까지 계속되었다. 77쪽

하지만 걷고 또 걷는 여정이 늘 파티로만 가득찰 수는 없다. 일찍 일어나 아침식사를 하기전 여유롭게 걷는 계획을 실행에 옮기기 전까지 그녀는 뒤에서 다른 이들을 쫓아야 했고 때로는 숙소를 구하지 못해 식당에 찾아가 하룻밤을 부탁해야 할 때도 있었다. 순례길의 날씨는 예측은 할 수 있지만 변화무쌍해서 비가 오기도 하고 갑자기 바람이 불거나 추워질 때도 있고 뙤약볕에 노출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고통스러운 부분을 적어가는 날에도 그녀는 긍정적이었다. 비를 많이 맞았지만 숙소를 잘 만나 사태를 수습할 수 있었다거나 하는 부분을 감추지 않았다. 구토로 인해 아에 일정자체를 포기해야 하는 순간이 다가왔을 때는 친구들이 그녀에게 위로가 되었고 그 순간을 제대로 즐길 줄 아는 사람이었다.

 

나는 그것을 수긍할 수밖에 없었고 그것을 즐겨야 했다. 음악은 나를 즐겁게 했고 말할 수 없는 감동을 주었다. -중략-그것은 나로 하여금 음악에 맞춰 일어나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했다. -226쪽-

고든과의 만남이 우연이었던 것처럼 그녀가 순례여행을 시작한 날도 우연처럼 고든과의 1주년 결혼 기념일이었다고 한다. 남편과의 추억과 그가 미처 마치지 못한 모금활동을 위해 길위에 올라섰지만 그녀 스스로 표현하기를 자신에게 '환골탈태'가 일어났다고 할 만큼 더 큰 행복과 기쁨을 얻고 여행을 마칠 수 있었다. 순례여행을 떠나기 전에 읽은 파울로 코엘로의 '순례'의 마지막 부분을 읽으면서 산티아고에 다녀왔어도 참 좋았겠다 하는 아쉬움은 남았지만 역시나 처음 든 생각은 변함이 없었다. 준비없이, 목적없이 떠났다면 그녀처럼 사람들과 어울리지도, 무엇을 얻고 무엇을 비울 수 있었는지조차 알 수 없었을 것이다. 외국에서 나고 자란 까닭에 번역된 언어로 이야기를 듣는 것이 아쉽기는 했지만 과감없이 써내려간 그녀의 순례여정은 그동안 읽었던 산티아고 여행기 중 가장 직접적이고 현실적으로 다가왔다. 깨닫기 위해서가 아닌 사랑을 위해 떠날 수도 있는 순례길, 혼자가 아니라 누군가와 함께 하는 그녀의 일지는 일말의 두려움으로 망설이고 있는 예비 순례자들에게 좋은 안내서가 되어줄거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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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베라는 남자
프레드릭 배크만 지음, 최민우 옮김 / 다산책방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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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세. 아내를 잃고 자살을 결심한 오베라는 남자.

사교술 제로. 신기술 무시에 원리원칙이 중요하며 세상에 지켜져야 할 규칙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사람.

 

봄 가을 남색 재킷, 겨울용 재킷 그렇게 같은 컬러의 재킷을 계절로 구비하며 사는 오베. 그가 거주하는 지역에서 쓰레기라도 실수로 흘리면 호된 소릴 들을 것 같은 그다지 마주치고 싶지 않은 이미지라고 연상된다. 묘사가 장황하지도 않고 지나치게 인물에 개입해 하나하나 변명해주지 않는 작가의 문체는 덤덤하면서도 피식 하고 웃을 수 있는 여지를 남겨주었다. 오베의 유년시절부터 스페인 버스 관광까지의 일들과 현재 오베에게 일어나는 일들이 한 챕터 씩 교차되어 등장하는 구성으로 어렸을 때 아빠에게 자동차 사브에 대해, 엔진에 대해 그리고 '남자'에 대해 배워가는 어린 오베의 모습을 만나는 건 어느 말없는 그렇지만 정직한 소년의 모습이었다. 오베의 아버지가 그랬듯 오베도 그렇게 남자답게 성장했다. 사브에서 일하는 아버지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오베는 처음으로 신에게, 운명에게 그리고 자신앞에 놓여진 현실앞에 좌절한다. 하지만 그 좌절은 길지 않았다. 돌아가신 아버지의 선불임금 중 일하지 않는 날들을 계산 해 돌려주려고 갔던 그 날만큼 일하지 않겠냐는 제의를 받게 된다. 그의 성실함은 윗사람에게 만족을 주고 사브는 아버지에게 그랬던 것처럼 오베에게도 '운명의 장소'가 된다. 오베의 인생을 접하면서 시종일관 산다는 것은 결코 계획대로 되지 않고 어긋난 계획일지라도 나중에 보면 그것이 정말 신의 축복이라고 여겨질 만한 일로 보상받는 다고 느껴졌다. 동료에게 미움을 사 쫓겨나다시피 일자리를 옮겼을 때도 얼핏보면 억울하고 분통터지는 일이지만 덕분에 소냐를 만날 수 있었다. 하지만 이웃을 사랑하고 나눔과 공유가 무엇인줄 알았던 소냐에게 닥친 불행은 아무리 멀리 보고, 곱씹어 봐도 신이 하신 일 중 오베가 납득할 수 없는 부분이라는 것을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보험회사로 부터 사기를 당하고 공무원들의 안일한 처리로 집이 불에 홀라당 타버리고 나서 오베는 이전보다 더 세상을 친절하게 바라보지 않았다. 친절하게 바라보지 않는다고 해서 그것이 부정적이고 등을 돌리며 제멋대로 살아간다는 의미는 결코 아니었다. 원리원칙을 지키는 것 만큼 오베에게 중요한 것은 없기 때문이다.

 

셰익스피어를 좋아하고 책을 사랑하며 '감정'을 중요시 여기는 소냐는 오베에게는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는 꼭 필요한 사람이었다. 물론 소냐의 주변인물은 그녀와 어울리기에는 학벌도, 낭만도 부족한 오베가 여전히 맘에 들지 않았지만 적어도 세상과 등지고 살만큼 외골수였던 소냐의 아버지의 인정을 받아낼 만큼 오베는 제법 괜찮은 남자였다. 하루하루 자살을 꿈꾸는 현실 속 오베는 새로 이사온 파르바냐와 사사건건 부딪히면서도 오베의 따뜻한 진심을 눈치챈 그녀 덕분에 주변사람들과 다시 융화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파르바냐의 세살 짜리 딸은 모든 사람을 단색으로 표현하면서도 오베만큼은 화려하게 색칠하여 그려 줄 만큼 아이의 눈은 어쩌면 이런저런 안개로 가려진 어른 들의 시야보다 훨씬 더 정확하게 오베를 바라보고 있고, 작가는 아이를 통해 오베가 얼마나 재미있는 사람인지를 알려주었다. 소냐의 사고 이후 지금처럼 차갑게 변한 오베지만 이 부부의 사연을 읽다보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기위해 노력하고 사람을 미워하지 않기 위해 애쓰는 소냐의 예쁜 마음을 전해져 슬프지만 따뜻해지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책의 표지는 심술궂은 할아버지의 모습이 등장하지만 오베만큼 진정한 의미에서 '친절하고, 남자다운'사람은 결코 흔하지 않다. 어쩌다 마주친다면 역시나 유쾌하지 않겠지만 이웃을 고를 수 있는 선택권이 주워진다면 분명 오베같은 사람을 택하게 될 것 이다. 물론 미래의 남편감으로도 충분히 멋진 사람이다.

 

*인상깊은 구절*

우린 사느라 바쁠 수도 있고 죽느라 바쁠 수도 있어요, 오베.

우리는 앞으로 나아가야 해요. 27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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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럼 분 PLUM BOON 2015 - Vol.1, 창간호
RHK타이완문화콘텐츠연구소 편집부 엮음 / RHK타이완문화콘텐츠연구소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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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보다 할배를 통해 다시금 주목받고 있는 대만을 집중적으로 다룬 잡지 플럼분 창간호.

 

여행은 서로 다른 문화를 접하거나 함께 여행하는 집단과 유대관계를 맺음으로써 고전적인 '통과의례'의 의미를 갖기도 한다. 19쪽

 

먹거리가 많고 볼거리가 많은 대만은 우리에게 친숙한 나라는 아니다. 물론 수교를 맺었던 과거가 있고 대만 현지 대학에서 한국어과가 개설되어 있으며 역사적인 특성을 볼 때 일본의 지배를 받았다는 아픈 역사가 있다는 점도 유사하다. 하지만 작은 중국 정도로만 여겨져 있으며 대만 현지에서는 한류열풍이 불기는 해도 여전히 반한감정도 깊다는 사실을 인지해야만 한다. (타이완의 정식 국호 또한 대만 혹은 타이완이 아닌 '중화민국'이나 통상적으로 대만 혹은 타이완으로 알려져 있다.)단순히 대만여행지의 가이드북의 역할을 넘어서 우리가 알아야 할 역사와 문화를 전달해주는 플럼분은 솔직히 기대 이상이었다. 학자들의 연구를 바탕으로 한국인이 대만에 거주하게 된 배경이라던가, 일본의 지배를 받았던 당시 건너가 살았던 한인들의 직업 분포도 등 특별히 관심을 갖지 않고서는 접할 수 없었던 중요한 내용들이 잡지에 담겨져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단편소설까지 실려 있는데 창간호에 실린 작품은 조우펀링의 '화동부호' 전편이었다. 소설의 내용은 그야말로 대만의 근현대 역사를 쉽게 접할 수 있는 2.28 사건(디아오위다오 보호운동 관련)을 배경으로 문자를 사랑하는 한 남자의 '뿌리찾기'가 주된 내용이었다. 소설내용 자체로도 흥미롭지만 역자가 피력한 것처럼 한국의 한일협정 반대운동과 유사점을 비교하며 읽는 학술적인 재미도 충분했다. 소설을 다 읽고나면 특별대담 코너, 저자 조우펀링과 천팡밍의 대담이 실려있는데 앞서 읽었던 소설과 관련하여 좀 더 자세한 내용을 들을 수 있는 페이지도 준비되어 있어 좋았다.

 

 타이완 여행기도 잡지에서 빠질 수 없는 데 이번호에서 다룬 내용은 '101빌딩 불꽃 축제'다. 내용을 떠나 해당 부분은 너무 아쉬웠던게 불꽃 축제지만 실린 사진들이 모두 흑백이라 전혀 여행의 감흥을 살리지 못했기 때문이다. 다른 페이지는 컬러화보가 불필요하다고 해도 여행지의 생생함을 흑백으로만 접하는 것은 정말 아쉬운 부분이었다. 아쉬운 점이 이외에도 한 가지 더 있었는데 교통카드 관련 부분으로 유효기간이 이미 잡지가 발행된 시점을 전, 후 마감되었거나 한달 이내 마감인 경우가 대부분이라 잡지를 보고 여행정보를 얻었다고 보기 어려웠다.

 

타이완의 한국어 교육을 다룬 기사는 개인적으로 흥미로웠고 유익했던 부분이다. 현지에서 한국어 교수로 재직중인 박병선교수의 컬럼은 한국어를 전공하는 학생이거나, 외국어로서의 한국어 교사를 희망하는 사람들에게는 단비같은 내용이었다. 교수는 대만에 한국어 교사가 많지 않은 것에 대해 의구심을 갖고 한국학 전공자들의 사고의 전환이 필요하다며 강조했다. 이어진 내용은 24시간 운영하는 매장을 가지고 있는 천핑서점의 이야기였다. 모든 매장이 24시간이 아니라는 점은 미리 알아두고 가야하는데 대다수 매장이 모두 밤 12시 전후로 운영한다는 점에서는 밤에도 책을 읽을 수 있는 장소인 것은 분명하다. 진열된 책 대부분 샘플 도서가 있어 그자리에서 책을 읽기 좋고 400여명이 앉을 수 있는 좌석이 마련되어 있어 누구라도 편하게 책을 대할 수 있다는 점은 칭찬할 만하다. 이런좋은 점들은 나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인정받았기에 여러가지 굵직한 상들도 많이 받았다고 한다. 운영자 마인드 자체가 책을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게 만들기 위해서라고 말할 만큼 열려있으며 무엇보다 매출이 매해 증가한다는 사실도 놀라울 따름이다. 물론 책 자체의 매출은 40%정도고 그외에 문구류나 기프트류에서 이윤을 남긴다고는 해도 작은 서점을 비롯 오프라인 매장이 점점 문을 다는 현실을 따져보면 본받을만한 점이다.

 

이 외에도 대만하면 떠오르는 야시장, 야시장에서 즐길 수 있는 먹거리, 대만 영화와 연극 등에 관한 이야기도 담겨져 있다. 반드시 여행을 가고자 하는 사람 뿐 아니라 대만에 대해 좀 더 자세하게, 그리고 폭넓게 알고 싶은 사람, 어려운 논문이나 학술서보다 편안하게 접근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추천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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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호시 스토리 하모니 - Shihoahi Story Harmony
권정아 지음 / 알비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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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해 출간된 시호시스토리는 엄마 권정아와 아이가 함께 선보이는 모녀룩과 스타일링에 관한 부분이 많았다. 새 책은 시호시스토리라는 타이틀보다 더 큰 폰트로 '하모니'라고 쓰여있다. 보여지는 겉모습보다 사람사이의 관계와 조화에 대한 조언을 담았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책의 내용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인간관계'에 대한 가장 핵심과 기본을 담은 책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아이를 아이답게 키우기 위한 조언도 빠지지 않았다.

 

아이에게 돈을 많이 벌어주는 아빠도,

늘 옆에 함께 있어 주는 아빠도 나쁘지 않지만,

엄마를 사랑하는 아빠가 최고의 아빠입니다. 35쪽

 

부부관계는 사회를 넘어가기 이전 가장 기본이 되는 '관계'다. 아이가 태어나 처음 만나는 관계도 바로 '부부'의 모습이다. 알지만 막상 아이를 낳고 기르다보면 말처럼 쉽지만은 않다. 싸우지 않으려고 노력하다보면 오히려 쌓이고 쌓여서 더 큰 화를 부르기 쉽다. 오랜 세월 각자 살아온 방식이 다르고 각자 부모님에게 받은 교육이 다른 만큼 아이에게 전달하는 교육방침도 다를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서로 조금씩 양보하고 사랑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 만큼 좋은 교육은 없다고 본다. 이혼이 잘못은 아니지만 아이에게 상처를 준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부모의 사랑속에 태어나 자란다는 것은 아이가 사람을 신뢰하고 반대로 타인을 감싸안을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가르침이다. 시호가 말하는 행복은 '늘 기다려 지는 것들'이라고 한다. 전혀 생각지 못했는데 듣고 보니 이보다 더 행복을 잘 설명해주는 것도 없는 것 같다. 시호가족의 기다림이 무엇인지 보면서 과연 내가 늘 기다리는 것은 무언가 떠올려보니 왜 살이 찌는지 알것도 같다. 난 늘 '안정되고 다채로운 식사'를 기다리기 때문이다. 아마 이런식으로 생각을 이어가다보면 내가 무엇을 가장 좋아하고 행복을 느끼는지 깨닫게 되면서 정말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도 알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제가 생각하는 가장 나약한 사람은 상대방과 자신의 '다름'에 대해서 인정하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내 생각이나 가치관, 습관, 성향이 다른 상대를 향해 '다르다'대신에 '틀렸다'라고 단정하려 듭니다. 자신은 늘 옳고 맞는데 상대가 나와 다르므로 다 틀립니다. 67쪽

 

책을 읽으면서 가장 많은 시간 머물렀던 내용이었다. 상대방이 나와 의견이 다른 것은 말그대로 '다른'것일 뿐 '틀린'것이 아니다라고 머리로는 생각하면서도 늘 행동과 말투는 상대방이 틀렸음에도 내가 이해하고 받아준다고 생각해왔다는 것을 깨달았다. 다른게 아니라 틀렸다고 인정하는 순간부터 틀린길로 가는 상대방이 늘 불안해져 사서 걱정하기에 이르렀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저자는 바로 이를 두고 '하모니'를 배우지 못해서 나온 휴유증이라고 말한다. 하모니를 서른이 훌쩍 넘은 지금에라도 제대로 알게 되어 다행인건지 너무 늦어버린 건 아닌지 다음 페이지를 넘기는 것이 쉽지 않았다. 저자가 강조하는 또 다른 한가지는 타인과의 비교를 멈추라는 것이었다. 비교하다보니 상대방의 의견의 옳고그름을 따지게 되고, 그로인해 자만이 생기거나 자학하는 불안한 심리상태에 놓이게 된다. 결국 타인의 시선으로 살아가는 삶은 하모니를 배우지도 못하고 관계를 이어가지도 못하는 삶이 되는 것이다. 그것은 자녀와 부모사이에서도 마찬가지다.

 

솔직한 말로 나를 바꾸기 싫을 때, 옆 사람 또는 환경을 탓한 것이 기쁘게 삶을 살지 못하는 이유였다는 걸 깨닫게 됩니다. 185쪽

 

저자도 처음부터 유연한 사고와 모든 것이 완벽한 상태였던 것은 아니었다. 결혼하고나서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는 배우자에게 실망하고, 서로 다름을 인정하기 까지에 시련은 누구나 겪을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상대를 고치려고 하는 마음만이라도 접을 때 관계가 개선되고 상대가 변하지 않더라도 내가 변하는 순간 호전된다는 사실은 지난 번에 읽었던 법정스님의 [스님의 주례사]에서도 나온 이야기였다. 상대를 바꾸려고 할 게 아니라 나를 바꾸는 것, 참 어렵지만 모두가 이야기 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는 것을 한번 더 깨달았다. 더불어 생각이 너무 많아 고민인 사람들에게 조언하는 책이 근래들어 많이 출간되고 있다. 생각이 다양하고 깊게하는 것은 그저 '많이 생각하는 것'과는 다르다. 저자의 말처럼 생각이 많은 사람 옆에 있으면 불안하다. 연애시절 상대방이 날 정말 사랑하는지 늘 의심하고 질문하는 것은 그야말로 생각이 많아서이다. 하지만 생각이 깊은 사람은 상대방의 말과 행동, 당시에 느껴지는 모든 것을 깊게 헤아리며 상대방이 어떤 마음인지 보다 현재 자신이 느끼는 행복에 더 중점을 둘 수 있다. 그런 모습에 상대방도 안정감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결국 행복하려면 내 마음에 집중하고 상대방과의 관계에 문제가 생겼을 때 타인도, 상대방도 아닌 나의 문제점을 들여다 볼 수 있을 때 좋은 관계를 지켜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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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잃은 개 - 절망 끝에 선 남자의 모터사이클 도망기
장준영 지음 / 매직하우스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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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아프거나 잘못된 길로 들어설 때 손을 내밀어 찬찬히 이끌어주는 부모도 있지만 반대로 걱정이 커 역정을 내는 부모도 많다. 아무도 부모연습을 하고 부모가 되는 것이 아니기에 어떤 방식이 더 좋은 방법인지 내 아이에게 당근과 채찍 중 어느 것을 먼저 주어야 할 지 알기 어렵다. 이 책의 저자 장준영씨의 아버지 또한 그랬다. 자기가 누리지 못한 유년기의 행복을 너무 다 해주려고만 하다보니 자신의 본심을 알아주지 않는 아들이 밉고 급기야 연을 끊는 극단에 이른다. 부모님에게 버림받은 청년이 안식을 누릴 만한 곳은 많지 않다. 공부나 연구에 매진하거나, 돈을 벌거나 혹은 이성을 만나 또다른 사랑을 만나는 것이다. 저자는 한 여자를 만나 그녀에게서 안식을 찾았다. 그렇게 마무리되면 좋겠지만 그랬다면 그가 굳이 세상의 끝을 찾아 인도까지 떠날 기회는 얻지 못했을 것이다. 많이 사랑하고 믿었던 그녀는 그를 만날 때 항상 가면을 썼다. 가면에 가려진 그녀의 본모습을 마주했을 때 저자는 한번 잃었던 '가족'과 '사랑'을 두번 잃는 비참함을 맛보게 된다. 상실감과 고통이 너무커 결국 죽을 마음으로 인도로 떠나 '길 잃은 개'꼴이 된다. 막상 인도에 도착하자 상상했던 이미지는 보이지 않고 악취와 낯선이를 바라보는 두려운 눈빛들이 그를 주눅들게 했다. 바이크를 타고 떠나겠다고 무작정 구매하려 나섰다가 사기도 당하고 준비없이 떠난 여행은 그야말로 시련의 연속이다. 시련이 닥칠수록 신기하게도 그를 돕는 손길이 등장한다. 마치 행운과 행복은 '시련'이라는 포장을 하고 신이 인간에게 준다는 말을 그대로 재연이라도 하듯 시련이 크면 클수록 그를 돕는 '좋은 사람'들의 수도, 그 크기도 커져만 간다. 하지만 저자는 이런 시련과 좋은 사람들과의 만남에서 무언가를 '얻었다'라고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버려야 했던 비루한 감정들을 '버리고'왔다고 말한다.

​인도에서 용서라는 구원의 열매를 얻었다면, 유라시아 대륙에선 무엇을 얻을지 잘 모르겠다. 그러나 훗날 여행을 마치고 '얻음'에 대해 생각해 보았을 때, 난 '얻음'이 없었다. 다만 비워져 있었을 뿐이었다. 194쪽

뿐만아니라 '타'와'아'의 싸움이라는 표현을 자주 쓰는데 겉으로 보여지는 '타'와 미처 성장하지 못하고 아버지를 그리워하고 사랑하는 연인을 여전히 가슴에 품고 있는 여린 '아'의 싸움은 여행을 하는 내내 그를 따라다닌다. 얻는 것이 아니라 버린다고 표현한 것은 아마 '타'와 '아'의 간극을 좁히는 과정이었다고 해도 될 것 같다.

한국에서의 나는 부모님, 선생님, 직장상사들의 '눈'에 의해 자아가 아닌 타아의 존재였고, 이곳에서 처음으로 남들 '눈'을 신경 안쓰는 내 가슴에서 막 태어난 '자아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막막의 사막을 건너는 동안 '아'와 '타;의 싸움이 시작했다. 77쪽

인도방랑이 끝인가 싶었는데 아직 다 비워내지 못한 미련과 유라시아를 바이크로 횡당하겠다는 목표는 그를 영국으로 이끈다. 그곳에서 유라시아 횡단을 위한 경비를 모으기 위해서였다. 한국에 들어와 돈을 모아도 상관없지만 군복무도 그렇고 무엇보다 아직 스스로 '끝'이라는 느낌없이 되돌아갈 수는 없었던 것이다.​ 지난 주에 런던에 있었던 까닭인지 그의 영국 무용담은 남다르게 다가왔다. 특히 한식당에서 벌어지는 노동력착취는 익히 알고 있었던 부분이라 어린 나이에 고생했던 저자도, 이민국 관리단에 의해 그와 함께 일했던 동료 대다수가 추방되었다는 부분을 읽을 때는 덤덤해지지 못했다. 나중에 바이크 장비를 빌려주는 호인들의 말처럼 '합법적'으로 일하라는 조언은 더욱 와닿았다. 탓하려는 말이 아니라 때로 자신을 힘들게 하더라도 '법'의 테두리 안에서 그나마 지켜지는 안전과 안정을 절실하게 깨닫지 않았을까 싶다. "인생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다."라고 말해줄 수 있는 어른 MARK씨는 지금은 또 누군가에게 좋은 길잡이가 되고 있을지 궁금하다. 저자의 여행이야기는 개인 블로그에 간간히 포스팅되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죽으려고'갈 맘은 아니었던게 분명하다. 중간에 마음이 바꼈다고는 해도 저자가 인정한 것처럼 미치게 살고 싶어서 떠난 여행이란 생각이 읽을수록 굳혀졌다. 떠나지 않으면 살 수 없어서가 아니라 진정한 의미의 '길을 찾기위해'우선 길을 잃어야했던 것이다. 러시아 비자문제가 끝까지 발목을 잡아 결국 목표했던 유라시아 횡단을 하지 못하고 귀국했지만 누구도 그의 여행이 '미완성'이라고는 말하지 못할 것이다. 생명이 위태로울 때도, 불필요한 지출이 발생할 것을 알면서도 부당한 것을 부당하다고 말할 줄 알고 치기어린 모습일지라도 당당하게 자신의 생각을 말하는 모습은 정말 부러웠다. 귀국 후 아버지와 뜨거운 포옹으로 그간에 쌓였던 미움과 오해를 풀어낸 장면에서는 정말 드라마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찌보면 여행에세이라고 부르기 아까울 만큼 위기도 많고 행운도 많았던 그의 여행기는 소설만큼 흥미롭고 읽는 내내 즐거움을 전해주었다. 물론 그가 무사히 살아돌아와 글을 썼다는 전제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그리스에서 그를 떠나보내며 많은 걱정과 눈물을 보인 선생님의 심정을 헤아리고도 남았다. 만약 그가 비자문제가 해결되어 러시아에 들어갔다면 이 책이 세상에 무사히 나왔을지 아무도 확신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제대로 마음을 비우고, 앞으로 채울 수 있는 기회만 남은 젊은 저자에게 응원을 보내고 싶다.​ 한가지 아쉬운 점은 표지에 실린 장발의 이미지가 너무 '길 잃은 개'와 같아서 내용을 제대로 살린 것은 분명하나 너무 잘 살려서 서점에서 책을 집어들기가 꺼려진다는 것이다. 저자 프로필에 찍힌 사진을 보면 정말 핸섬한 얼굴을 보면 뭐랄까 안도감이 들정도다. 표지를 좀만 순화시켜주었으면 싶은 바람이 있다는 정도외에는 용기 불끈, 의욕 충전하기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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