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일 5Mile Vol 1. - 창간호, Made in Seoul
오마일(5mile) 편집부 엮음 / 오마일(5mile)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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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MILE은 책을 집필하거나 출간하는 출판사가 아니다. 그런데 잡지를 발간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기존에 만나는 주류 잡지가 지나치게 화려한데 반해 남는게 없어 그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 직접 펴냈다고 한다. 여백의 미를 살리고 독자가 부족한 부분을 채울 수 있는 잡지를 만들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잡지를 펼치면 온통 여백투성이고 독자의 공간만 활짝 열렸다고 생각하면 안된다. 생애 한번 가보기 어려운 화려한 휴양지가 없다는 의미가 될 수도 있고, 입거나 한번 맛보기에 지나치게 값비싼 상품이 없다는 의미로 느껴졌다. 그래서 우리가 쉽게 만날 수 있는 '서울'과 '동네서점', '달걀' 그리고 사람이다.

 

 

어찌보면 서울을 중점으로 제작한 서울가이드북에서 봤던 내용일 수도 있고 서울에서 나고 자란 이들은 도대체 '서울'에 집착하는 이유를 캐묻고 싶을 것이다. 이젠 다른 잡지에서 하도 봐서 가보지 않고도 소장하고 있는 책의 종류와 주인장의 사연을 세세하게 다 알고 있는 동네서점 페이지도 식상한것도 맞다. 하지만 이런 사소한 몇가지 이유로 5MILE을 평가하기에는 섣부른 판단이다. 우선 서울을 즐기는 각자의 추천일정을 보자. 다른 잡지라면 에디터가 협찬을 받은 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낯선 가게가 등장할만도 한데 일반 시민의 추천 일정이라는 점이다. 회사원, 북디자이너, 책방주인 등 그들의 직업도 각각 다르다. 회사원 강지원씨가 추천하는 서울은 산길따라 걷는 도보여행이다. 심지어 걸으면서 생각을 정리할 수 있도록 혼자가는 일정을 추천해준다. 통인시장에서 시작해서 윤동주 문학관을 거쳐 수성도 계곡을 건너고 인왕제색도의 실물을 보고 다시 통인시장으로 내려오는 루트다. 걷기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맘에 안들 수도 있고 혼자 먹는 점심이 불편하다고 느끼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가장 맘에 드는 코스였는데 서울하면 대도시라는 느낌에서 벗어나 북촌이나 서촌이 아닌 그야말로 한적한 도심내 산길을 만나고 시냇물을 접할 수 있는 흔치 않은 코스기 때문이다. 2번째 코스는 식도락 혹은 맛집여행, 그리고 요리자체를 즐기는 이들을 위한 코스로 이태원에서 평소에 약속을 자주 가졌거나 했던 사람이라면 이미 익숙한 코스기는 했다. 요새 핫한 경리단길에서 벗어나 다른 장소를 찾는 이들에게는 물론 추천할 만한 코스다. 여행을 떠났다면 그곳에서 만나는 '물건'에 대해서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별도의 페이지를 할애해 '서울의 그 물건'이란 기사를 실었는데 다른 것도 신기했지만 김현주 작가의 '한지'를 접시처럼 활용한 내용이 좋았다.  작년에 읽었던 나무그릇이 자연스럽게 떠오르며 종이로 트레이를 만들면 쉽게 상하는게 아닐까 했는데 한지에 옻칠이나 셀락을 덧바르면 방수 기능을 더 할 수 있고 무엇보다 종이가 재료라 깨지는 일이 없어 안전하다고 한다. 아까 잠깐 언급한것처럼 도시에서 만나는 숲은 시골에서 만나는 그것과는 전혀 다른 느낌을 준다. 안산 자락길의 풍경을 담은 사진과 기사는 잡지를 읽는 장소가 어디든 상관없이 마음이 차분하게 진정되는 효과를 줄 것 같았다.

 

 

이외에 서울에서 만들어진 소품들의 사진과 간략한 내용, 강아지 한강이의 이야기 그리고 현재 전시가 진행중인 '앤디워홀 전'에 관련된 기사가 실려있다. 잡지에 실린 사진의 분위기가 통일되어 좋고 독자들의 귀여운 강아지 한강이의 사진은 강아지를 보고 첫눈에 반한다는 말을 쓸 줄 몰랐다는 필자의 말에 적극 공감했다. 이제 막 시작을 알리는 창간호라 독자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겸손함도 느껴지는 잡지 5MILE은 아직 완벽하게 색다른 잡지라고 말할 순 없지만 적어도 화려함이나 광고에 이끌려 독자를 괴롭힐 것 같지 않아 좋았다. 지금의 컨셉이 끝까지 변함없기를 바랄 뿐이다. 

 

 

*스페셜 기프트로 앤디워홀 입장티켓을 증정(선착순 5000명)한다. 전시회에 관심있는 분들이라면 놓치지 마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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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세기는 끝났는가
조지프 나이 지음, 이기동 옮김 / 프리뷰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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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존 관련분야 베스트셀러 1위 / 조지프 S. 나이 - 미국의 세기는 끝났는가

 

미국의 세기가 종말을 맞이했는지를 논의하기 전, 저자는 각국의 관련 전문가들이 말하는 미국의 세기가 언제부터 시작했는지를 두고 이야기를 시작한다. 미국의 종말이야 관점에 따라 달라지지만 대략 의견을 모아보면 저자의 말처럼 미국의 세기라고 부를 수 있는 시점은 2차 세계대전이 발발했던 때라고 볼 수 있다. 이전까지는 대영제국의 산업혁명이후 쌓아올린 헤게모니가 세계를 지배했다고 볼 수 있으므로 경제적으로 그리고 소프트파워면에서 볼 때 미국의 영향력이 크게 작용한 때는 그 1941년 전후가 된다. 물론 미국의 세기가 시작되었던 그 때가 미국의헤게모니 시대라고 말할 수는 없고 절반의 헤게모니라고 표현하는데 그 까닭은 소련의 핵무기 보유를 지켜봐야 했다는 점과, 한국전쟁에 참전했지만 결국 휴전이라는 완전하게 끝난 상태가 아닌 상황을 받아들여야 하는 점 등을 꼽았다. 군사적으로 엄청난 영향력을 가지고 있고, 경제적인 측면으로 볼 때 유럽과 긴밀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는 점만은 분명한 사실이었다. 미국의 세기가 끝났다고 말하는 사람들의 의견을 저자는 조목조목 여러가지 상황을 들어 부정하는 데 우선 쇠퇴라는 단어가 갖는 이중적인 의미부터 짚어준다. 한 국가가 쇠퇴했다고 보려면 그 쇠퇴가 내외적으로 한 국가가 몰락했다고 볼 수도 있지만 네덜란드처럼 이웃하는 영국의 파워가 세지면서 쇠퇴의 길로 접어들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첫번째 의미로 보자면 여전히 미국은 건재한 편에 속한다. 그럼 미국을 쇠퇴했다고 말할 수 있는 나라가 있는지를 따져보면 아마도 대부분 '중국'을 거론하게 될 것이다. 중국을 자세히 살펴보기 전 2장에서 러시아, 일본, 인도, 유럽, 브라질 등의 나라가 과연 미국을 견제할 만한 상대인지 알려준다. 인구가 많거나, 자원이 많거나 혹은 영토가 넓거나 소프트파워가 더 세거나 하는 등 더 나은 점이 있을수 있고 유럽연합, 혹은 두개국 이상이 협력했을 경우도 예상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상대가 안되는 까닭도 자세하게 설명해준다. 본격적으로 앞서 언급한 중국은 과연 미국의 상대가 될 수 있을까? 아마 이 책의 주된내용이 다름아닌 중국과 미국을 비교하는 내용이 아닐까 싶다.


국가의 소프트파워는 크게 세 가지 요소로 만들어진다. 문화와 정치적 가치, 그리고 대외정책이다. 다른 나라들에게 호감을 주는 문화를 보유해야 하고, 국내외적으로 표방하는 가치가 호소력이 있어야 하며, 또한 대외정책 면에서 정당하고, 도덕적으로 다른 나라들로부터 인정받을 만한 정책을 추구해야 한다. 94쪽

우선 중국의 영토는 인도와 견주어도 결코 작지 않으며 러시아와 협력할 수 있다는 여지를 갖고 있다. 러시아 뿐 아니라 일본과 협력했을 때를 예상하면 그게 현실가능하다는 전제하에 미국의 위협을 가할 수 있다. 중국의 유교사상이나 일본이 가지고 있는 문화컨텐츠의 힘은 미국뿐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인정하고 인기있는 부분이다. 하지만 그럴확률이 적은 이유도 명백하다. 과거 일본이 중국에서 벌였던 잔인한 학살과 현재 해협을 사이에 두고 표면적으로 진지하지만 민감한 사항이 엄연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중국의 공산당의 존재는 소프트파워면에서는 결코 좋은 영향을 줄 수 없는 것도 분명하다. 결국 미국의 세기가 끝나는 시점은 다른 나라에 의한 쇠퇴가 아니라 미국이 앞으로 어떤 정책을 세우고 어떻게 소프트파워를 이어가느냐에 따른 것으로 볼 수 있다. 영국에서 분리되었을 초창기만해도 미국은 고립된 정치를 펼쳤던게 사실이다. 그때만해도 이웃나라에 영향력을 펼치는 정도가 미약했다. 하지만 자만에 빠져 이라크 침공이라는 실수를 범했을 때도 마찬가지로 국가이미지는 좋지 않았다.

미국이 해결해야 할 진짜 문제는 불평등, 그리고 미래 인력을 어떻게 교육시킬 것이냐 하는 것들이다. 정치제도를 어떻게 개선시켜 나갈 것인지도 심각한 문제이다. 139쪽

저자는 외부로 부터 들어오는 위협이나 비교로 인한 쇠퇴는 여러가지 근거를 통해 불가능하다고 결론지었다. 내부적인 요소만 해결한다면 미국의 세기는 결론적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며 다만 그 양상만 달라질 거라고 말한다. 어찌보면 미국은 예나 지금이나 우리의 눈으로 보면 강대국이고 따라잡을 수 없는 롤모델이나 다름없다. 하지만 중국의 닫힌 정책과 모방하려는 기술력이 주는 위험과 마찬가지로 인종주의와 역사적인 과오를 인정하지 않음으로 약해지는 일본, 주변국과의 유대관계를 개선하지 않는 브라질, 한가지 자원만 개발하려는 안일함과 국수주의에 늪에빠진 러시아를 통해 앞으로 우리나라가 성장하기 위해 어떤 정책을 펼쳐야하고 어떤 노력을 해야할지를 간접적으로 배울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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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빌라 - La Villa de Paris
윤진서 지음 / 달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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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진서 소설 [파리 빌라] La Villa Ed Paris

 

작가의 전작 에세이 [비브르 사 비]를 읽고서 다음 작품은 분명 여행에세이, 오로지 여행을 중심으로 쓴 특정[지역]의 낭만기라고 짐작했었다. 그때는 장기여행을 중단한지 꽤 오래된 상태라 그렇게 예상했던 거고, 여행에 다녀온지 얼마 지나지 않은 지금, 그녀가 왜 에세이나 산문이 아니라 '소설'을 택했는지 알 것 같았다. 하고 싶지만 할 수 없었던 것, 일어나지 않았지만 일어났으면 싶었던 일, 아예 일어나면 안되었던 일등 자기가 했던 여행을 좀더 아름답고 소중한게 간직하기 위해 선택한 장치가 소설이었을거라 생각한다. 그녀가 왜 떠났는지는 생각할 필요없다. 작품속에서는 '실연'이 계기가 되었지만 세상에 많고 많은 여행자들 중 실연보다 더 많은 이유와 아예 이유없음 상태로 많이들 떠난다. 뭔가를 얻기 위해 떠나는 여행보다 비우기 위한 여행이 많고 소설 속 그녀도 여행을 통해 '인생의 축제'와 같았던 사랑을 보낼 수 있었다.

 

"상대가 모르는 걸 가끔 나도 모르는 거요." 13쪽

 

서른의 그녀는 다툼 후 횡하고 나가버린 남편을 두고 저렇게 말하는 아내의 말뜻을 처음에 이해하지 못한다. 오히려 상대방이 모르는 걸 알고 있어야 부부의 호흡이 잘 맞는게 아닌가 생각한다. 상대의 부족함을 채우는 것, 이론적으로 보면 완벽한 부부의 모습이다. 하지만 상대가 원하지 않는 다면, 너무 꽉찬 상태보다 누군가 손길을 뻗을 수 있도록, 바람이 오갈 수 있도록 약간의 여유와 빈틈이 생긴다면 사랑도 그만큼 부담스럽지 않고 유연해 질 수 있음을 그녀, '나'는 여행이 길어질 수록 깨닫게 된다. 그녀가 미처 말로 뱉을 수 없었던 인연들에 대해, 사랑을 생각하는 다른 관점에 대해서는 친구 '효정'이 대신한다. 빌라에 문을 열고 들어서면 반겨주는 이가 연인일 때도 행복하지만 말할 수 없는 피곤함이 전신을 차지해버릴 때는 오히려 '친구'가 열어주는 그 장소가 천국이 된다.

 

집에 돌아와 벨을 눌렀다. 벨을 누르고 집으로 들어가는 행위는 언제나 기쁘다. 다른 누군가의 집이건 나의 집이건 간에 그곳은 가장 아늑하고도 모든 비밀이 숨겨져 있는 공간이 아니던가. 54쪽 

 

계획없이 떠난 그녀의 여행은 예상하지 못한 인물들을 만나고 그 인물들이 말해주는 자신의 얼굴과, 삶을 전해듣는다.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는 얼굴, 가진게 없는 얼굴, 텅빈 얼굴은 얼핏 들으면 '재미없는 얼굴'이자 전혀 호기심이 일지 않는 얼굴일 수 있지만 욕망과 위선이 가득찬 세상에서는 오히려 누군가에 의해 채워질 수도 있고 아예 망가뜨릴 수도 있는 '무(無)'의 상태가 훨씬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법이다. 하지만 그런 얼굴을 가진 그녀라도 여행지에서 비포선라이즈에 나오는 일들은 등장하지 않는다. 소설 속 그녀가 그런일은 소설속에서만 일어나는 일이었구나를 깨닫는 것처럼 [파리 빌라]는 분명 소설이지만 그래서 낯설지가 않고 편안하게 다가온다. 일을 만들어내는 것은 마치 책이 아니라 이 책을 읽고 있는 독자, 우리들의 몫이라고 말해주는 것 같아 으쓱했다.

 

모두가 현재의 역사를 만들고 있다. 모든 과거는 미래를 낳는다. 오늘의 나는 사라지고 내일은 또다른 내가 태어난다. 매일매일이 조금 다른 '나'일 것이다. 내일이 온다. 136쪽

 

'나'의 사랑은 갑자기 뜨거워졌다가 갑자기 식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상대가 모르는 걸 아는 척해서 떠나버린 것도 아니다. 어쩌면 상대가 감추고 싶었던 것을 들춰내서 떠나버렸는지도 모른다. 적당한 비밀과, 적당한 무지가 공존해야만 사랑이 유지될 수 있는 걸지도 모른다. 그래서 사랑하면 웃음이 많거나 눈물이 많거나 혹은 둘 모두의 상태가 되버린다. [파리 빌라]는 작가가 그동안 보여준 연기와는 정반대라고 말해도 될 것 같다. 격정적이지도 않고 순백에 가까운 여리여리함도 느껴지지 않는다. 그냥 삶과 사랑, 그리고 서른 살의 적당한 어리석음과 아직 많이 남아있는 희망이 느껴졌다. 개인적으로는 여행을 떠나기 전 읽었을 때 보다 돌아와서 다시 읽었을 때 더 좋았던 것 같다. 누군가의 이야기로 내 여행을 좌지우지 당하지 말고 내여행과 그녀의 여행이 어땠었는지 비교하며 반추해보고 거기에 약간의 상상을 덧붙여 완성시키는 조작된 추억이 더 아름답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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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장에서 식탁까지 100마일 다이어트 - 도시 남녀의 365일 자급자족 로컬푸드 도전기
앨리사 스미스.제임스 매키넌 지음, 구미화 옮김 / 나무의마음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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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주지 반경 100마일 이내에서 생산된 음식만 먹고 사는게 얼마나 어려운지 감이 오지 않았다. 서울을 기준으로 하면 부산까지는 무리고 전주 정도가 약 160km, 즉 100마일이다. 그렇게 따져보니 소금은 물론 거의 대부분 수입해서 먹는 설탕과 소금은 없어도 되지만 결코 없어서는 안될 '후추'까지 포기해야만 한다. 제임스가 처음 제안할 때 앨리사가 왜 곧바로 동의하지 못했는지 이해되었다. 며칠 지나지 않아 제임스의 제안에 말려버린 착한 앨리사지만 나였다면 절대 반대, 무조건 안된다고 소리높였을것이다. 세상에 밀가루 없이 어떻게 6개월을 버텼을까? 그러다가도 감자로 샌드위치를 만들어내는 창의적인 손을 가진 남자가 함께 한다면, 그것도 요리는 무조건 남자의 몫이라면 또 생각이 달라진다. 리뷰를 적는데 왜이렇게 중심을 못잡냐고 묻는다면 이 책 자체가 그렇다고 말하고 싶다. 어느 부분에서는 나도 해볼란다 로컬푸드! 했다가 또 페이지 몇장 넘겨 그들의 고난을 읽노라면 결코 할 수 없다 로컬푸드! 싶어지는 것이다. 하지만 역자의 추천글을 유심히 읽어본 독자라면 이 책이 출간된지 10년이나 지났으면서도 한국에 번역되어 나왔는지 알 수 있을것이다. 이 책은 로컬푸드를 위한 책이 아니라 우리의 먹거리 그 자체에 관한 이야기이자 앨리사와 제임스라는 두 남녀를 통해 우리 자신을 되돌아볼 수 있는 특별한 책이었다.

 

현대도시에 살면서 이런일이 얼마나 자주 일어날까? 내가 미소 짓는 이유는 정말 단순했다. 토요일 아침, 나는 독수리 한 마리를 보았고, 자전거에 신선한 채소 한 보따리를 실은 채 신나게 달리고 있었다. 106쪽

 

로컬푸드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정말 간단했다. 외딴 곳에서 손님을 맞아야 하는데 양배추 한덩어리 밖에 없었다. 주변 강가로 나가 물고기를 잡고 밭에 나가 채소를 거둬들이고 과수원에가서 과일을 가져와 샐러드와 디저트를 만들어 먹은 한끼의 식사가 제임스에게 '로컬푸드'로 풍성한 식탁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하지만 소금이나 설탕 등의 재료는 전혀 고려하지 않았던터라 막상 로컬푸드를 선언하고 난 뒤 고생이 시작된다. 그리고 먹거리에 대한 관심과 연구도 함께 시작되었다.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당시 연구발표에 의하면 우리가 식탁에 올리는 먹기리는 평균 250마일 떨어진 곳에서 옮겨지는 데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주변에서 나는 식재료로 먹는 것이 운송비도 들지 않고 싱싱하게 먹을 수 있는데 왜 그 먼곳에서부터 식재료를 공급받는 것일까? 그것은 값싼 노동력을 포함 운송비를 감안하더라도 훨씬 저렴한 비용이 들기 때문이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당장 국내 시장만 가봐도 중국산과 국산의 가격차를 봐도 알 수 있다. 또 한가지 책을 통해 알게된 사실은 '유기농'이라 할지라도 100마일 넘어에서 들여온 식재료가 많다는 것이었다. 로컬푸드로 1년 살아보기를 선언하기 이전에도 제임스와 앨리사는 유기농 식재료를 선호하는 편이었고 유기농이란 단어가 로컬푸드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재배방식의 차이일 뿐 결국 멀리서 넘어오기는 마찬가지다.

 

도시에서는 수백 개의 브랜드가 강렬한 광고를 동원해 경쟁하고, 새로 등장한 체인점들은 손해를 보더라도 싸게 파는 전략을 구사해 소비자들이 기존 업체와 관계를 끊도록 유도했다. 사람들이 농촌으로 돌아가는 일은 없었다. 83쪽

 

이렇게만 보면 로컬푸드로만 식단을 구성하기 위해 엄청난 비용이 들 것 같고 실제 초반에는 꽤 많은 돈을 들여 한끼 식사를 준비할 수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어느정도 안정기에 접어들고 100마일 이내에서 생산되는 밀을 찾아내면서 보통때와 비슷한 비용으로 식탁을 차릴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한가지 더. 현명한 이 커플은 예외사항을 미리 마련해 두었다. 친화를 목적으로 한 모임에 참가하는 경우라던가, 여행을 떠났을 때는 여행지를 기준으로 100마일 로컬푸드를 먹으면 되고 앞서 언급한 모임이 중식당에서 개최되면 해당 요리를 먹어도 무관하다는 것이다. 본문 뒤에 Q&A를 통해 궁금했던 사항이 상세하게 나와있으니 참고하면 된다. 중간중간 로컬푸드로 만들 수 있는 레시피도 일러스트와 함께 실려있어 그림이나 레시피를 다 읽은 뒤 혹은 읽기전 훑어보거나 표시해두고 나중에 레시피북으로 활용해도 된다. 로컬푸드를 제철에 다량으로 구입하는 이점을 활용하기 위해 저장방식등도 나오는데 실패담은 꼭 참고해야 한다. 무턱대고 많이 사들였다간 앨리사의 옷장처럼 옷대신 식재료가 자리를 차지할 수도 있다. 심지어 상해서 버릴 수 밖에 없는 상황도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을 잊어선 안된다.

 

먹거리에 관한 이야기만 잔뜩 늘어놨지만 솔직히 앨리사와 제임스의 지인들이 벌이는 헤프닝도 만만치 않게 재미있고 앨리사네 가정과 제임스네 이야기만 읽어도 부족함이 없다. 요리를 좋아한다고 믿었던 할머니가 알고보니 그다지 요리에 관심이 없었다던가 유년시절 할아버지와 함께 과일을 따러다니는 추억이 있었으면 더 좋았겠지만 그저 평범했다는 이야기를 보면 이런 책을 쓰는 사람이라고 해서 반드시 영화나 소설속에 등장하는 유년기를 경험하거나 제임스처럼 요리에 재능이 있는 것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요리를 잘하는 남자는 언제나 매력적이지만 난관에 매달려 구애를 펼치거나 정말 좋아하는 구두랍시고 낡은 줄도 모르는 엉뚱한 남자를 사랑해주는 여자도 충분히 멋져보였다. 지인들과 연구논문과 로컬푸드 도전기와 가족이야기가 끊임없이 제임스와 앨리사를 오가며 등장하기 때문에 300여 페이지에 달하는 이 두꺼운 책이 조금도 지루하지 않았다. 가볍게 펼쳤다가 중간즘에는 메모하고 다시 펼쳐보는 재미를 주는 100마일 다이어트! 동참할지 말지는 나중문제니 로컬푸드를 실천할 생각이 없다며 읽지도 않는다면, 진정한의미의 '식사'를 놓치는 셈이다.

 

유리잔에 천국을 담을 수 있는 곳, 그것이 바로 미네소타였다. 그렇다면 벤쿠버는? 반쯤 열린 껍데기에 담긴 생굴과 화이트와인 한잔. 이런 사치가 없다면 삶은 음울할 것이며, 그것들을 제 땅에서 제철에 발견하는 일이야말로 세상을 보물창고처럼 경험하는 방법일 것이다. 3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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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 것도 없는 풍족한 섬
사키야마 가즈히코 지음, 이윤희.다카하시 유키 옮김 / 콤마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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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읽으려던 책이 아니었고, 반드시 보려고 했던 영화가 아니었는데 우연하게 만나 깊은 감동을 받을 때가 있다. 마치 당시의 내 상황과 고민을 다 알고 있는 것 처럼 느껴질 때 소위말하는 '연'이 아니었는가 싶다. 책, [아무 것도 없는 풍족한 섬]의 저자는 대학 졸업 후 입사한 출판사가 연이었다고 말하고, 유학을 다녀 온뒤 일본 내에 출간하는 책을 해외로 알리는 중요한 작업을 즐겁게 할 수 있었던 것도, 하지만 한계를 느끼고 평생 나이들어 할 수 있는 일을 원할 때 섬, 카오하간을 만난 것도 모두 '연'이라고 말한다. 누군가 '연'이라고 말할 때는 단순히 그 행동이나 결과가 만족스러울 때를 뜻하지 않는다. 부족함이 없는 상태, 그야말로 더 뺄것도 더할 것도 없이 '풍족한'상태를 뜻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제목도 아마 '아무 것도 없는 풍족한 섬'이 될 수 있었던 게 아닐까.

생활을 위해 돈을 버는 일이 아니더라도 자기가 하고 싶은 일. 지금까지의 인생에서 얻은 경험으로 이것 만큼은 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여겼던 일. 영리 사업이 아닌 일. 모두가 즐겁게 하는 일. 미래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는 일. 25쪽

알고 지낸 변호사를 통해 필리핀의 사유지를 구매하려고 나섰을 때 확인해보니 이전 소유자는 제대로 된 채무와 법적권리를 가지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저자는 차분하게 일을 처리해나갔고 주변의 도움을 받아 1988년 드이어 완전하게 섬 카오하간에 주인이 된다. 그곳에 이미 살고 있던 섬주민 300여명의 문제도 그가 오로지 영리목적이나 휴양의 목적이었다면 지인들의 조언대로 내보냈겠지만 그가 원하는 것은 자연과 더불어 사는 것, 누군가를 해치거나 상처주는 일이 아니었기에 주민들과 함께 사는 방법을 고려했다. 자신도 즐겁고, 주민도 삶의 영토를 잃지 않으면서 지인들도 와서 편안하게 쉴 수 있는 섬을 만드려고 노력하는 과정은 2장에 자세히 소개되어 있다. 우리나라에도 사유지로 등록된 섬이 있는 데 책을 읽으면서 자연스럽게 비교가 되었다. 어느쪽이 좋은 행정이라고 섣불리 말할 수는 없는 상황이지만 떠올려지는 것은 문자 그대로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제주에 유명한 세가지 중 한가지가 바람이듯, 카오하간도 바람이 늘 머무는 섬이다. 그래서인지 바람을 이용해 움직이는 작은 돛단배 사카양이 교통수단이다. 바람을 이용하는 이동수단은 섬에 가본적도 없는 데 여유가 느껴지게 하는 부분이다. 바람을 이용할 줄 아는 사람들, 자연을 거스리거나 기술이라는 명목으로 망치지 않고 그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고 있는 섬주민들을 내쫓았다면 저자가 과연 섬에서 지금처럼 평안을 얻기는 어려웠을 것 같다. 심신이 더울 때 한 자락의 바람이 위로와 위안이 되어주기도 하지만 섬인 만큼 태풍의 위협도 만만치 않았다고 한다.

태풍의 무서움을 경험을 통해서 잘 알고 있는 섬 주민들은 쓸데없이 태풍에 맞서려고 하지 않는다. 태풍에 날아가지 않는 집을 건축하려고도 하지 않는다. 제 뜻대로 할 수 없는 이기지 못할 적에게는 헛된 저항을 하지 않고, 부서져 버리면 다시 고쳐 짓기를 반복하는 것이다. 33쪽

바람과 태풍의 이치를 거스리지 않고 살아가는 것 처럼 식수와 관련된 부분도 섬주민들은 지혜를 발휘한다. 비가 내릴 때 허둥지둥 하지 않고 빗물을 모아 마시기도 하고 요리에 사용하기도 한다. 벌레가 이따금 떠 있을 때도 신경쓰지 않는다. 물론 저자는 요리용으로는 그대로 사용하지만 식수는 끓여마신다고 하고 외부에서 온 손님들은 세부에서 사온 생수를 마신다고 한다. 놀라운 사실은 섬의 빗물과 외부인들이 사온 생수의 오염도를 측정했을 때 빗물이 훨씬 깨끗했다는 사실이다. 섬을 산 이후에도 지인에게 기존에 하던 업무와 유사한 일을 부탁받았을 만큼 저자는 아에 일을 놓고 섬에만 거주하는 것은 아니었다. 평생할 수 있는 일과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모두 수용할 수 있는 저자의 일복이 참 탐나기도 했다. 일본에 돌아왔을 때 서점에 들려 섬에 가져갈 책을 고르는 행복은 활자로만 읽는데도 행복한 기운이 전해졌다. 섬에 돌아가면 이내 저자는 섬주민들의 일상을 옅보고 좋은 점과 일본사회에 다른 점을 독자에게 알려준다. 자연을 거스리지 않는 삶은 끝도 없고 흥미롭기만 했다. 심지어 섬의 사는 개는 도시의 고양이처럼 누군가에게 길들여지기 보다는 자기만의 삶을 사는 동등한 입장이라는 부분은 웃음이 났다. 도시의 유약하고 주인만 바라보는 주인바라기 개들이 카오하간으로 간다면 더 행복하지 않을까 싶다.

인도에는 이런 철학이 있다. "인생에는 배울 시기, 사회 속에서 살아갈 시기, 사회에서 배운 것을 사회로 돌려주는 시기가 있다. 그리하여 그것들을 통과한 다음에는 자신만의 세상에 다다르기 위해 숲으로 들어간다." 219쪽

저자는 아직 자신이 현세를 떠나 숲으로 갈 시기는 아니라고 말한다. 배운 것을 사회에 돌려주는 시기, 어쩌면 현세를 떠나는 마지막 시기직전이 가장 어려운 시기인지도 모른다. 최근 화두가 되고 있는 것 중 하나가 '나눔'과 '공유'다. SNS가 자기과시와 타인과의 끊임없는 비교, 정보의 홍수의 대표라고 말하지만 순기능적인 면을 보면 그것은 단연 공유였다. 카문기 섬의 주인처럼 오로지 평화를 위해 섬을 꾸려나가진 않지만 섬에서 전해져 오는 방식 그대로를 수용하는 저자의 카오하간 운영방식이 내 입장에서는 훨씬 '공유'에 가깝게 느껴졌다. 그것이 저자가 말하는 카오하간의 특징이자 진정한 의미에서 '풍족할 수 있는'방법인 것이다. 섬을 통해 교류가 늘어나고 동반자를 만날 수도 있었던 만큼 카오하간은 저자에게서나 그 섬을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그야말로 '연'이다. 그 연은 두 역자에게도 이어진 듯 했다. 늘 불어오던 바람과 더불어 살아숨쉬는 '젊은 바람'이 불어주길 기대한다고 저자는 말했다. 책을 읽는 내내 이런 섬을 만나면 어떤 기분일까 싶다가도 내가 젊은 바람인지에 대한 확신은 서지 않았다. 혹 책을 읽고 마음이 동하거나 '연'이라고 느끼는 사람들이 생긴다면 저자가 그토록 기다리는 젊은 바람이 되어 카오하간으로 날아가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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