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풍의 언덕 별글클래식 파스텔 에디션 27
에밀리 브론테 지음, 한정훈 옮김 / 별글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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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밀리 브론테.
11월의 어느 일요일. 오전 10시 부터 15시까지. 꼬박 5시간을 한 자리에 앉아 읽었다. 초반에는 록우드의 거만함과 교만에 어이가 없었고, 작품의 주요 인물인 히스클리프와 캐서린의 다소 엉뚱한 면모에 난감해지다가 이들의 자녀들이 태어나 학대받는 장면에서는 읽기 힘들만큼 괴로워졌다. 나도 한 아이의 엄마였기 때문인데 다소 당황스러운 것은 원작 소설 완독은 처음이지만 꽤 오래전 영화화된 폭풍의 언덕을 보았을 땐 이런 부분이 등장했다는 사실조차 전혀 기억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영화를 다시 봐야 정확할테지만 분명 그때는 폭풍과 연인들의 엇갈린 모습만 보였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매번 책을 읽을 때 마다, 특히 나이의 앞자리가 달라진 상태에서 재독할 때면 느끼는 것이지만 독자의 상황(결혼이나 출산 등)에 따라 전체적인 감상평은 어떨지 몰라도 부분 부분이 달라진다는 것은 분명한 것 같다.

간략한 줄거리는 히스클리프와 캐서린이 서로 사랑하지만 신분의 차이라고 해야할까, 그런 이유로 캐서린이 다른 안정된 가문의 수려한 외모는 물론 둘의 사연을 알면서도 그녀를 집착아닌 안정된 상태로 사랑하는 남자와 결혼을 한다. 그렇게 각자 안타까운 이별을 받아들이고 잘 살았으면 좋았겠지만 ‘폭풍의 언덕’이란 타이틀만 보더라도 이어질 내용이 짐작된다.

하지만 행복한 시간은 그리 길지 못했어요. 사람이란 결국에는 자기 자신을 위해 살아가는 존재이니까요. 온화하고 마음이 넓은 사람들조차 까다로운 사람들보다 조금 덜 이기적일 뿐, 상대방이 자기를 배려하지 않느다고 생각하게 되면 그들 역시 다른 마음을 품게 되는 법이지요. 156쪽

아내(캐서린)이 다시 돌아온 히스클리프를 열렬하게 환영하는 것 까진 좋았지만 자신과도 친해지길 바라는 것이 못마땅할 뿐 아니라 배려하는 데도 한계란 것이 존재하기 때문에 너그러웠던 에드거의 마음이 흔들릴 수 밖에 없었다. 이미 한 번의 발작과 열병을 앓았던 캐서린의 상태와 양쪽 모두의 평화를 바라던(사실 상 불가능하지만) 그녀의 마음과는 달리 히스클리프와 에드거는 도저희 원만하게 화해할 수 없을 지경이 되고 만다. 특히 히스클리프는 에드거에 대한 미움도 있지만 캐서린 오빠로 부터 당한 학대(교육과 안정된 거처를 빼앗김)로 그야말로 ‘나쁜’ 사람이 되어버렸다.

“난 아이를 학대하는 방법을 제대로 알고 있어. 알아듣겠냐?” 그 악당 놈이 몸을 숙여 바닥에 떨어진 열쇠를 집으며 험학한 표정으로 말했어요. 447쪽

읽으면서 가장 납득이 안되었던 부분이자, 그의 사랑이 결코 ‘완전한 사랑’이 될 수 없다고 느껴졌던 부분이 바로 이 지점이었다. 히스클리프는 그토록 사랑하는 캐서린의 딸을 읽는 것 조차 불쾌할 정도로 학대한다. 심지어 그 재산을 몰수하기 위해 감금은 수시로 일어난다. 성인이었던 에드거의 동생에게 가한 폭력도 용납이 안되는 데 이어지는 세 아이의 인생을 모두 망가뜨리려는 그의 모습은 어린 시절의 심각한 학대와 사랑의 배신 때문이라는 이해의 선을 오래전에 넘어섰다.

방금 전에 헤어튼이 사람이 아니라 내 젊은 시절의 화신처럼 느껴졌어. 헤어튼을 보면 심경이 너무나 복잡해져서 제정신으로는 말을 걸 수 없었지. 무엇보다 헤어튼이 캐서린 언쇼와 놀라울 정도로 닮아서 끔찍스럽게도 그녀를 연상시키는 거야. 529쪽

다행인지 어쩐지 모르지만 그를 저주하면 세상을 등진 캐서린의 환영은 히스클리프의 복수도 삶의 의지도 모두 끌어내렸다. 그렇게 어이없이 어느 순간 히스클리프가 행했던 폭력은 힘을 잃었고, 헤어튼과 캐서린의 딸 캐시는 드디어 안정을 찾을 수 있었다. 이렇게 적으니 학대와 폭력으로 가득한 이 작품이 왜 고전의 반열에 올랐는지 의아할 수도 있는데 이 책은 출간 당시 여성의 문학의 제대로 자리잡을 수 없었던 환경을 견뎌낸 작품이자 통속적이라고 할 수 있는 서로 으르렁 거리던 남녀가 사랑에 빠지거나 엄청난 싸움으로 결별할 줄 알았던 연인이 오히려 그 다툼을 통해 더 깊은 사랑으로 빠져들 수 도 있다는 설정을 담아내기도 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시대상의 아이들의 위치와 성차별적인 부분을 확인할 수 있기도 하다. 게다가 이야기가 가져야 할 가장 필요한 조건, ’한 번 펼치면 멈출 수 없는 놀라운 필력‘이 느껴졌다. 그러니 5시간을 한 자리에서 다 읽지 않았겠는가. 다시 재독할 마음은 아직은 들지 않지만 나의 아둔함으로 찾지 못한 여러 장점을 발견하고자 하는 마음은 여전히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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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세스 - 지금 시작하는 목표 설계의 비밀
하이디 그랜트 할버슨 지음, 장원철 옮김 / 북파머스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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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세스 #하이디그랜트할버슨 #북파머스 #사회심리학 #심리학 #자기개발 #동기부여 #목표설정 #긍정

사회심리학자 하이디 그랜트 할버슨의 ‘석세스’는 목표을 설정하는 방법부터 달성할 수 있도록 ‘자기통제력’을 훈련하는 방법과 그동안 수없이 실패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와 성공할 수 있는 방법을 여러 학자들의 연구와 심리학 기반의 이론을 토대로 들려준다. ‘들려준다’라고 말한 이유는 이 책은 분명 어려운 이론과 용어, 연구와 논문이 거의 매 순간 등장하지만 마치 이야기를 듣는 것처럼 재미있고 쉽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특히 괄호를 통해 들려주는 사적이지만 무척이나 공감되는 저자의 이야기는 집중하는 순간 순간 휴식처럼 다가왔다.

내가 이 책을 쓰게 된 진짜 이유는 목표를 세우고 이를 달성하기 위한 구체적이고 실천적인 방법들을 제시하기 위해서이다. 18쪽

간극인지, 그동안 다른 자기개발서에서 ‘높고 명확한 목표’+ ‘긍정적 사고’+ ‘반드시 성공하리란 믿음’ 까지는 읽어서 알고 있었다. 하지만 ‘간극인지’, 목표를 달성하는 과정에서 마주하게 될 어려움에 대해서 생각해야 오히려 성공률이 높다는 건 몰랐다. 안되는 이유를 찾는다기 보다는 어려움을 미리 예상하고 준비해서 성공률이 높일 수 있다는 맥락으로 책을 읽으며 그동안 가장 많이 실패했던 목표를 차근히 다시 설정하고 수정할 수 있었다. 특히 자신이 선호하는 방식 혹은 성향을 확인하고 목표에 따라 어떤 방식으로 접근해야 하는지를 알 수 있는데 ‘왜’ or ‘무엇’에 더 집중하는가, 또는 승급 지향인가 아니명 예방 지향적인가를 적절하게 적용해야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데 무조건 한 가지 방식만 고집하면 실패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문제를 해결하고 목표를 설정할 때 단순히 행동하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모든 사람에게 통용되는 대응 전략은 없다. 155쪽

개인적으로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나’에서 멈추지 않고 도움을 받거나 줄 수 있는 상황 그리고 올바른 피드백과 칭찬에 대해 언급한 부분이었다. 단순히 내 목표를 위해 조력자를 찾는 정도에서 그치지 않고 ‘함께’ 성장하는 부분이 와닿았다. 나처럼 학생이면서 강사이자, 아이를 양육함과 동시에 신앙적으로는 여전히 미성숙한 상태이다보니 크게 와닿았다. 책의 부제가 ‘지금 시작하는 목표 설계의 비밀’이다. 청소년기의 자녀와 부모가, 동료나 동기들이 함께 읽어가며 목표를 설정하고 그 과정을 독려하고 기록하기에 더 없이 좋은 책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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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은 죽었다
박원재 지음 / 샘터사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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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은 죽었다

#예술은죽었다 #원앤제이갤러리 #박원재 #예술 #교양 #인문 #샘터 #샘터사 #art 

예술은 죽었다. 그 선언은 과장이 아니라 냉정한 진단이다. 우리는 예술을 삶의 언어로 받아들이기보다 소유의 대상으로 다뤄왔다. -에필로그 중에서

‘예술은 죽었다.’ 라는 타이틀이 다소 거칠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어떤 시선으로 보느냐에 따라 그렇다고 볼 수도 있다. 그 시선이란 무엇인가. 어떤 기준으로 보았을 때 예술이 죽었다고 저자는 느꼈던 것일까. 책을 읽기 전 개인적으로는 예술을 수집하는 행위 자체가 기업이나 단체 혹은 자본주의 서열 최고위층이 아닌 평범(이란 단어가 애매하긴 하지만)한 사람들마저 수집하는 요즘 만큼 예술이 살아있던 때가 있었을까 싶었었다. 10년 째 전시 해설사로 활동하면서 느끼는 변화도 10년 전과 비교했을 때 해설을 들으러 오는 분들 뿐 아니라 ‘도슨트’를 희망하는 사람들 자체가 엄청나게 많아졌다는 것을 실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는 달리 말하면 여전히 ‘해설’이 필요한 작품들이 전시되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또 작품을 소장하려는 사람들이 다양해진 것은 분명하지만 소장하려는 작품이 신진작가나 비주류 작가들의 작품이 아닌 권위있는 상을 수상했거나 저자가 지적한 것처럼 국내 작가인데도 해외에서 ‘인정’받지 않으면 외면당하는 것도 사실이었다.

보이스와 부르주아의 작업은 예술이 개인과 공동체 모두를 삶의 주인으로 설 수 있게 돕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점을 명확히 보여준다. 146쪽

저자는 단순히 자본주의에 휘둘리고, 소수에 의해 인정받은 작가들만이 존재하는 예술 측면을 부정하거나 비판하는 내용을 담은 것이 아니었다. 진정한 의미의 ‘예술의 역할’과 그의 부합하는 작가들의 작품을 독자에게 전달하며 예술이 어떤 목적을 가지고 존재해야 하는지에 대해 이야기하고 그것이 강제나 독단이 아닌 ‘연대’와 ‘함께’라는 현 시대의 가장 필요한 덕목과 연결지어 이야기한다. 이런 연대를 위한 예술, 작가가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지역사회의 경제적인 이득을 가져다주는 경우외에도 ‘다름을 인정하는 매체이자 주체로서의 예술’을 언급한 부분이 특히 와닿았다. 최근 여성, 노인 그리고 장애와 퀴어를 주제로 전시에서 여러 ‘손’을 전시한 후 그 손 위로 유리를 놓아 관람객이 유리 한장을 사이에 두고 마주잡은 듯한 체험을 유도한 작품을 관람한 적이 있었다. ‘그들의 손’을 간접적으로 맞잡거나 포개는 그 잠깐의 행위를 통해 ‘다름’ 그 자체가 아닌 다른 시선을 깨닫게 된 순간이었다. 

다양성은 이제 윤리도 미덕도 아니다. 그것은 지금 우리가 함께 살아가기 위해 반드시 확보해야 하는 현실이다. 140쪽

그리고 예술의 장점이자 가장 큰 특징이 규칙에 의한 획일화 혹은 폭력에 의한 강제가 아닌 존중에 의한 공존을 가능하게 한다고 말한다. 이를 도울 수 있는 방식으로서의 소셜미디어의 역할을 언급하기도 한다. 저자가 예로 든 작가외에도 SNS를 통해 매일 자신의 하루를 사진으로 혹은 드로잉으로 연작처럼 전시하는 사람들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또 팬데믹 이후 그 시절 직접 마주할 수 없었던 도시와 개인의 집안을 촬영하여 한 권의 책으로 출간한 경우도 있다. 이런 행위가 타인의 사적인 공간을 훔쳐보는 일탈이 아니라 ‘혼자서도 잘 해내야 하는’ 강박에서 꺼내어 직접적인 몸과 몸이 아닌 시선과 시선으로도 충분히 공감과 위로를 끌어낼 수 있음을 느끼게 한다.

우리는 예술을 통해 ‘다름을 보는 눈’이 아닌 ‘다름을 느끼는 몸’을 갖게 된다. 그것이야말로 예술의 힘이며, 오늘날 우리가 예술을 다시 삶의 중심에 두어야 할 가장 깊은 이유다. 113쪽

책을 읽으면서 저자가 혹은 인용한 학자들의 ‘예술이란 ~이다.’라는 정의를 마주하면서 내가 생각하는 예술의 목적과 역할 그리고 방향성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었다. 특히 책에서 언급한 부르주아 전시와 바스키아의 작품이 현재 전시중이라 책을 읽으면서 전시를 다녀와서 그 감상을 이곳에 풀어내면 좋을 것 같아 서평을 늦추려는 마음과 하루라도 빨리 더 이 책을 읽고 사람들이 찾았으면 하는 마음 사이에서 갈등이 심했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예술의 부활’만을 생각하기로 했다. 예술이 부활하기 위해 필요한 접근성, 체험 그리고 소장과 공유의 방법들이 전혀 없거나 아주 새로운 것들이 아니었다. 이미 시작된 것들의 안정화와 확대 무엇보다 예술 자체에 대한 관심과 참여가 아마도 저자가 기대하는 독자의 반응이지 않을까 싶다. @isamto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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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을 배우다 - 소소한 일상에서, 사람의 온기에서, 시인의 농담에서, 개정판
전영애 지음 / 청림출판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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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을 배우다

#전영애 #여백서원 #괴테마을 #청림출판

작가 헤벨이 주는 정답은 이렇다. 천사가 당신에게 나타나 세 가지 소원을 물어줄 경우 답해야 할 첫째 소원은, 무슨 소원을 빌어야 할지 알 수 있는 지혜를 달라는 것. 둘째 소원은 무얼 빌어야 할지 물어서 알게 된 그 소원을 비는 것. 마지막으로 빌어야 할 세 번째 소원이 중요한데, 바로 후회하지 않게 해달라는 것이다. 34쪽

전영애 교수의 <인생을 배우다> 서평의 시작을 어떻게 적을까 하다가, 아무래도 최근에 종방한 드라마에서 다룬 이야기자, 연말 산타 할아버지가 생각도 나길래 소원과 관련된 발췌문으로 시작했다. 소원. 사실 내게는 소원이 단 하나이거나 엄청나게 많은 것을 밤새 떠들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이 때로는 허무하고 허망했다. 전영애 교수님의 여백서원과 관련된 다큐를 몇 년 전(이라고는 해도 제법 시간이 흘렀다) TV에서 알게 된 후 저자의 저작(역서를 포함)을 찾아 읽었다. 지인 중에는 교수의 책을 정말 맘에 들어하는 분들도 계셨다. 참 순수한 분이자 주어진 삶을 어떻게 살아내야 하는 지를 아는 분이라고 그때도 생각했다. 하지만 이내 내게 주어진 삶의 고비고비를 넘다보니 잊혔다가 지난 주 개정판으로 다시 <인생을 배우다>를 마주했다. 개정판이라고 하면 많은 부분 수정하거나 새로이 추가되는 경우가 많은데 이 책은 그러지 않았다고 해서 더 좋았다. 세월이 흘러 자꾸 수정되는 이야기는 애초에 이야기에 감흥받은 독자들에게 왠지모를 서운함을 가지게 하기 때문이다. 크게 달라지지 않은 책을 읽었으나 세월이 흘러 읽는 내가 그때와 다르지 새롭게 다가오는 부분이 제법 많았다. 그때는 저자를 보며 롤모델 혹은 닮고 싶은 부분이 많았었는데 이번에 깨달은 것은 ‘감사함의 중요’ 였다.

“문학은 사람을 만듭니다.”
유럽에서 어떤 국가적 차원의 문화정책이나 발전된 문화 시설보다도 더 부러운 것이 그런 여유들이다. 아직도 남아 있는 그런 교양 시민층이다. 그것은 물론 사회의 여유에서 비롯된 것이겠지만, 또한 그런 개인들의 여유가 사회의 여유를 만들어나가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144쪽

개인에게 여유가 있으려면 사회차원에서 안녕과 안정을 보장해줘야 한다고만 생각했었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과연 그런것들이 보장된다고 개인의 노력없이 교양 시민이 되는 것일까 하면 그또한 말이 되지 않는다. 저자와 같은 나눔의 삶이 가능한 이유가 내게는 개개인이 가지는 ‘감사’에 있다고 느꼈다. 그녀가 나라 안팎에서 연구하는 삶은 누군가에겐 말도 못하게 부러운 환경일 것이다. 하지만 그런 환경이 주어졌을 때, 그녀가 자주 오해받았던 것처럼 개인의 명예를 위해서가 아니라 진실로 감사함과 기회를 나누기 위해 애쓰려는 사람이 많지 않다. 그녀가 들려주는 어려운 날들의 이야기 속에도 누군가를 향한 ‘날선 비난, 혹은 분노’ 보다 배려와 충만한 베풂에 감사하는 이야기가 훨씬 많다. 그런 이야기를 읽는 동안 나는 또 얼마나 차분해지고 겸손해질 수 있었는지. 특히 제자들이 낸 문집을 언급하며 비춰지지 않은 수많은 빛들에 대해 이야기할 때, 과연 어른들이 젊은 세대를 보며 비난하거나 힐난만 하는 것이 아니라 이토록 가치있고 빛나는 존재라는 것을 일깨워주기 위한 노력은 그에 비해 얼마나 하였는지를 반성하게 되었다. 그런 화사함 속에서도 지인들의 부고와 그에 대한 애도도 적잖케 섞여 있다. 11월은 가톨릭 교회에서 ‘위령 성월’이다. 죽은 모든 이를 애도하는 이 11월에 이 책을 읽고 차분하게 마음을 다독여본다. 아직 살아 남은 이들에게는 분명 헤야할 일들도 함께 남아있을 것이다. 저자가 여백서원을 짓게 된 배경과 과정을 읽으며 죽은 이와 남겨진 사람들, 그리고 앞으로 이 세상을 찾아올 이들에게 이와 같은 일을 하는 그의 ‘일’이 참 감동적으로 다가왔다. 덕분에 내게 주어진 날들과 해야 할 일을 생각하며 다음의 문장으로 마무리 해본다.

도시에서 시달리던 사람들이 와서 조금 숨을 돌릴 수 있는 여백과도 같은 공간은 그렇게 구체화되었다. 그렇게 ‘오해’되어도 참 좋은, 실은 남을 ‘여’자가 아니라 같을 ‘여’를 쓰는 여백서원이다. 여백은, 아버지의 호이다.(…)
‘여백을 위하여’는 전통을 계승하겠다는 뜻도 있지만 이름 그대로 흰빛처럼 맑은 사람들을 위한 곳이라는 뜻을 담았다. 201-20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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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미들 - 마음의 고통과 읽기의 날들
수잰 스캔런 지음, 정지인 옮김 / 엘리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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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대회]

수잔 스캔런의 <의미들>의 부제는 마음의 고통과 읽기의 날들이다. 먼저 읽은 독자의 친절함을 걸치고 저자가 직접 쓴 예상 독자는 다음과 같다.

하지만 나는 이 책을 쓸 때, 책을 읽으며 내가 이 사람일 수도 있어, 하고 생각할 사람들을 위해 쓰고 있다. 내가 패트릭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이건 나야, 하고 생각했던 것처럼 420-421쪽

‘이 사람’이란 어떤 사람인가. 우울감을 가지고 있고, 외로움을 누구보다 예민하게 느끼며 관계에 어려움을 가질 뿐 아니라 소중한 누군가를 잃거나 잃어가는 중이며 무엇보다 자신을 더이상 살아가도록 놔둘 수 없는 사람들이다. 그렇다. 사는 것을 그만두고 싶은 충동을 경험했거나 그런 충동이 일어날 것 같은 슬픔을 느꼈던 사람들이라고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차마 병리적으로 정신의 이상이 있다는 진단을 받고 꽤 긴 시간 입원하거나 내원했던 사람들이라고 말하고 싶진 않다. 저자는 자신이 겪었던 일, 가령 열 살 이전에 엄마를 사별한 일, 나중에 알고 보니 자신이 세상에 태어나 말을 하고 걸어다니 던 시절부터 이미 엄마는 ‘암환자’였고, 삶보다 죽음에 더 가까운 상태였다. 그렇게 자신을 두고 떠난 엄마의 자리를 채운 사람이 안타깝게도 사고로 병원에 입원한 딸에게 달려간 아빠에게 ‘나를 그곳에 버리고 갔다’라며 피해자의 위치마저 질투하는 새엄마라는 사실이 너무 마음 아팠다. 어떤 경우에라도 엄마는, 나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이며, 때때로 혹은 그보다 자주 언성을 높이며 싸우더라도 곁에 머물며 화를 낸 후에는 반드시 안아주는 사람이었다. 그런 엄마의 자리가 비워진 후 그녀가 세상을 대하는 방식이 그다지 희망적이거나 긍정적일 수 없다고 짐작하는 것이 어렵지 않다. 저자가 직접 표현한 것처럼 그런 상실과, 정신병동에서 스스로 체결한 수동적인 상황에서 결국 ‘자살하지 않기로 결심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록산이 말했다. 치료의 80퍼센트는, 그 이상은 아닐지 몰라도 바로 너야. 환자라고.(...)
네가 너 자신의 이야기를 해야 한다고, 그러지 않으면 그들이 네 이야기를 하게 될 거라고. 의사들뿐 아니라. 네 가족들도. (...)
나는 그 말을 결코 잊지 않았다. 366쪽

저자가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싶다고 결심한 것은 퇴원 후 시간이 꽤 지난 후였다. 그러나 ‘미쳤다는 소리‘를 듣거나 정반대로 결코 ’아프지 않다‘라고 강제하는 가부장적인 사회에서 자신의 소리를 낸 여자들을 알았다. 그녀들이 남긴 작품을 통해서 혹은 에세이를 통해서 끊임없이 들을 수 있었다. 약물로 인해 정신이 정말로 흐릿해져 기억이 소멸되는 순간이 늘어날 때에도 병원에서 그녀는 계속 읽고, 계속 썼다. 그리고 학교에 다녔던 그녀의 상황이 그녀를 ’누구나 다 죽는 그 삶‘에서 순위를 지나치게 앞다투지 않게 만들어 주었다.

읽기에 대해, 쓰기에 대해 그리고 작가들, 특히 여성 작가들의 이야기를 저자를 통해 마주하는 기분은 사실 슬프고 또 슬펐다. 아이를 낳은 후 결코 스스로 생을 마감하게 될 일은 없을거라 확신했던 저자처럼 출산과 양육은 그 어려움과 고통에 비례할 정도로 삶의 의지를 가늠할 수 없을 만큼 끌어올렸다. 하지만 동시에 적어도 지금까지는 여자들만이 가능한 그 경험들의 숭고함보다 여자이기 때문에 인식하지도 못한 채 받았던 상처들을 체감하게 되었다. 그래서 감히, 저자의 표현대로 상투적이라 느껴질지 모르지만 내게 이 책은 인생책, 단 한 권의 책만 남아, 남아 있는 생에 그 책만 읽어야 한다면 신앙과 관련된 책을 제외하고는 이 책을 서슴없이 고를 것 같다. 아프고 아픈 사람들, 너무 아파서 오히려 정신병원으로 도망쳐야했던 그들에게 위로(달리 무슨 말로 대체할 수 있을까)와, 자신의 소리를 내주었던 그녀들에게 무한히 감사한다.

#의미들 #인생책 #엘리 #수잰스캔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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