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방스 숲에서 만난 한국문학
장클로드 드크레센조 지음, 이태연 외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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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방스숲에서만난한국문학
#장클로드드크레센조
#문학과지성사

•어떤 책을 다시 읽을 때도 같은 방식으로 감정이 표출된다. 그책으로 ‘다시 돌아온‘ 것 같은 느낌으로, 처음 그 책이 우리에게주었던 기쁨에 다시 파고드는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옷걸이에모자를 걸고 실내화로 갈아 신으며 집으로 돌아온 듯한 기분을느낀다. 간혹 책을 읽다가 나도 모르게 ˝집에 왔다˝고 중얼거릴때도 있다. 108쪽

이전 피드에도 잠시 고백했지만 한국에서 나고 자라 배우고 경제활동을 하면서도 때때로 중심안에 있다는 이유로 ‘한국’, ‘한국인’의 정서와 반복되는 갈등 구조에 대해 잘 알지도 알고자 노력도 하지 않았다. 낯선 도시로의 거주지가 옮겨지고, 내가 경험할 수 없는 시대를 살아가야 할 아이가 태어나면서 반은 의무감으로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뉴스를 비롯한 언론사의 평가 혹은 기관의 해석이 아닌 감춰져 있거나 감춤당한 이들을 만나기 위해 내가 택한 경로는 ‘문학’이었다.

•두려움은 그녀가 무엇을 두려워하는지 알고 있다. 유숙객의두려움은 타자에 대한 두려움과 자기 자신의 욕망에 대한 두려움의 복합체이자 결과물이다. 두려움은 정신 현상의 가장 깊숙한 곳에 매장되어 있기에 그 두려움의 존재에 대한 명확한 이유는 없다. 결국 공백에 대한 두려움이다. 우리는 이 병합되어 굳어진 두려움을 불안이라 부른다. 72쪽

책 <프로방스 숲에서 만난 한국문학>은 저자 서문부터 한국문학이 전후 시대와 90년대 이후 작가들이 가지는 주요 주제 즉, 갈등과 적에 대해 명확하게 나누어 풀이한다. 더불어 시대가 가지는 ‘외부의 적’보다 자신을 나약하게 하고 스러지게 만드는 가장 두려운 ‘내부의 적’의 관해서도 이야기 해준다. 팬데믹 시대에 저자가 걷던 프로방스 숲에서 좀 더 적극적으로 마주한 한국문학 속에서 다뤄진 ‘적’이 누구 혹은 무엇이냐에 따라 당연하게도 공감의 정도가 달라졌다. 생년에 따른 차이가 아니라 자라온 환경과 결의 문제라고 생각된다.

•아버지, 형제, 남편에 의해 휘둘리는 여성들은 집안일에 매어 있거나, 전문직에 대한 환상에 사로잡혀 있고, 남성들은 자신의 일에 파묻혀 있거나 사회적 지위를 쫓는다. 이들 각자는 삐그덕거리는 상황에 자신을 맞추기 위해 애쓰지만 그 끝에는 어둠과 고독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다. 어떤 행동, 어떤 반응도 피할수 없는 출구로 몰고 갈 뿐이다. 84쪽

영문학을 전공했지만 저자처럼 ‘학자’의 위치가 아닌 그저 배움이 의무처럼 느껴졌던 그 시간들이 소환되는 진기한 시간들이었다. 본문에 언급된 작품의 절반 이상을 아직 읽지 않았기에 즐거운 과제가 나를 기다리는데 이것이 마냥 설레고 좋은 이유는 역자의 말처럼 낯설지만 익숙한 혹은 그 반대의 신선함이 책을 읽는 내내 지속되기 때문이다.

#책 #추천 #문학 #한국문학 #한국소설 #책추천 #사인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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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은 언제나 당신과 함께 정보라 환상문학 단편선 2
정보라 지음 / 퍼플레인(갈매나무)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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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은 언제나 당신과 함께

정보라 작가의 소설은 사실 부담스럽다. 저주토끼를 읽을 때도 그 이후에도 아무런 감정이 없던 사물을 혹은 사건을 다르게 보게 만든다. 소설에 빠져들어 불편을 감수하며 읽는 자체는 독자로서 신나고 고맙지만 한 사회의 구성원으로서는 피하고 싶거나 외면하고 있는 자신을 모른 척 하고 싶을 때가 있다. 작가는 바로 그 지점을 문학이라는 도구를 이용해 과감하게 들춰낸다. 표제작 <죽음은 언제나 당신과 함께>는 공포영화에서 흔히 마주하는 구성이다. 집단 폭행 이후 반성이나 속죄없이 살아가던 가해자들이 하나 둘 피해자로 짐작되는 비현실적인 존재에게 공격을 당한다. 권선징악이라는 보편적인 구성에 작가는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절대적인 존재 혹은 독자외에 또 다른 존재가 함께 지켜보는 듯한 독특한 방식으로 이야기를 풀어낸다. 이어지는 작품<감염>은 폭력의 연쇄성을 보여준다. 시집살이를 호되게 당한 시어머니가 더 고약하게 며느리를 괴롭히고 군대나 운동처럼 폐쇄적인 집단의 가혹행위가 바로 그렇다. 작가는 여기에서 더 나아가 폭력을 당한 적이 없더라도 그런 어두움에서 자유로울 수 없음을 보여준다. 시작이 강압이나 동정 혹은 금전이나 또 다른 불가항력적인 이유라도 일단 시작된 폭력은 상대의 과거와 환경이 어떤 방패도 되지 못한다. <내 친구 좀비>는 앞서 읽었던 작품들과 다른 결로 안타까웠다. 가정과 가정 밖 집단에서 행해지는 폭력의 문제도 심각하지만 가정이나 사회 안팎으로 끊임없이 비교 당하고 무언가 내보여야만 하는 사회적 존재로서 당하는 또 다른 폭력을 다룬다. 이렇다보니 과연 나는 이 모든 폭력을 ‘읽기’만 하는 독자인지 마치 수기처럼 ‘공감’하는 독자인지 혹은 방관하거나 외면하는 문자 그대로의 독자이기만을 원하는지 고민하게 만든다. 고민이라고 적었지만 서두에 밝힌 것처럼 괴로워하면서도 작가의 다른 작품이 또 기다린다. 마치 <감염> 속 그들처럼. 그러니 이 작가는 얼마나 무서운 작가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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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녀를 위한 변론
송시우 지음 / 래빗홀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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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녀를위한변론 #송시우 #소설 #달리는조사관 #리라이팅 #다시쓰기 #전래동화 #재구성 #래빗홀



내가 이렇게 웃긴 사람이었나.

두 번째 소설집 원고를 출판사에 보내놓고서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작가의 말 중에서



표제작 선녀를 위한 변론 외에 인어의 소송, 누구의 편도 아닌 타미, 모서리의 메리 그리고 앞의 내용과 다른 알렉산드리아의 겨울을 제외하고는 저자의 저말에 격하게 공감한다. 어릴 때 읽었던 동화를 법정 스릴러로 리라이팅한 <인어의 소송>과 <선녀를 위한 변론>은 시도 자체가 재미있는데다 이야기의 흐름이 낯설거나 거부감없이 흥미롭고 즐거웠다. 개인적으로는 마녀를 법정에 세우는 장면 등이 영상으로 제작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타이틀 자체는 <선녀를 위한 변론>만큼 집중되는 것은 없으나 내용만 봤을 때는 별다른 감흥이 없었다. 작품마다 그동안 독자들이 인물들에게 가지는 답답함과 현실세계로 옮겨왔을 때 부당하게 느껴졌던 부분들을 건드렸다는 점에서는 작품 모두 흥미로웠고, 서두에 발췌한 문장에 어울리는 작품은 <누구의 편도 아닌 타미>였다. 회사마다 도저히 이해되지 않고 하고 싶지도 않은 인물이 한 명씩 있기 마련인데 그런 인물들에게 의외의 사연이 있었다는 식의 이야기로 그치지 않았다는 점, 타인의 고통을 자신의 무기로 쓰는 것이 아니라는 점, 엄청나게 영리한 동물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도 좋았다. 이어서 등장하는 <모서리의 메리>역시 엄청난 지능으로 인간에게 힌트를 주거나 사람을 구하는 것이 아니었다. 충분히 있을 수 있는 교감과 상황을 위트있게 글로 풀어나는 작가의 강점을 잘 살린 작품으로 누군가를 향한 진심어린 걱정과 따뜻한 시선은 인간과 동물을 넘어서 작지만 큰 힘을 발휘한다는 것을 깨닫게 해준다.



˝얘가 마음만 먹으면 제 손가락쯤은 금방 분질러먹을 수 있을 거예요.˝

기숙 씨가 말했다. 타미의 하얗고 튼튼한 송곳니를 보면 능히 그럴 성싶었다.

˝그런데요. 그러지 않는 게 얼마나 착해요?˝

기숙씨는 환화게 웃으며 타미의 궁둥이를 툭툭 쳤다.

그래. 사랑하기로 마음먹으면 모든 면이 다 놀랍고 기특한 법이다.

모서리의 메리 중에서



동시에 사는 동안 말을 할 수 있다는 이유로 불필요한 잔소리를 얼마나 많이 해대고 사는지 반성하게 만든다. 그런가하면 결이 전혀 다르다고 했던 <알렉산드리아의 겨울>은 읽고나서 긴 시간 맘을 불편하게 만들었다. 작품을 목차 순으로 읽다보니 점점 커져가는 흥미와 즐거움이 극대화 되었을 때 읽어서 그런지 어린 아이를 무참하게 살해한 사건을 모티브로 한 작품을 대했을 때, 실제 사건은 보다 더 참혹했음을 검색을 통해 알고서는 한참을 멍하게 마음을 진정시킬 수 밖에 없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수록된 작품 중 그 어떤 작품을 무작위로 선택해 읽더라도 작가의 전작이나 후속작을 기대하게 만들 것 같다. 이미 알던 이야기를 리라이팅 할 때의 좋은 점은 전작의 성공으로 기대를 높일 수 있다는 장점과 어쩔 수 없이 비교대상이 될 수 밖에 없다는 단점이 있을 것이다. 그런 기준으로 봤을 때 <선녀를 위한 변론>은 동화나 사건이 가지는 시대적 이질감과 모호한 결말을 해결해주고 시공간을 넘어 한번 더 공감을 자아낸다는 점에서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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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살 위로 사전 - 나를 들여다보는 100가지 단어
박성우 지음 / 창비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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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 #위로 #마흔살위로사전 #박성우

나이의 앞자리가 바뀔 때 마다 그 나이대에 맞는 응원과 조언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헌데 마흔을 앞두고는 응원보다는 위로가 필요했다. 나이의 앞자리에 3자가 있을 때만해도 이렇게 ‘인생‘이 내 맘대로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지 못했었던 것 같다. 가장 큰 결실이자 그 무엇보다 절대적인 의무를 동반하는 출산과 함께 마흔을 맞이했다. 그렇다보니 안그래도 필요한 위로에 위로를 더해 내게는 ‘마흔살 위로 사전‘이라는 책의 타이틀에 크게 동요하며 기대감을 가지게 만들었다.

급기야는 측은히 여겨지는 마음에 이르고 만다.
말은 나를 크게도 하고 작게도 만드는데, 특히나 변명은 나를 작게 한다. 57쪽

구차하다. 라는 표현을 이전에도 그리고 현재도 잘 쓰진 않지만 마음속에서는 여러번 품었던 단어였다. 임신 사실을 알게 된 이후 그 어떤 상황에서도 ‘아이를 핑계대지 말자‘라고 다짐했다. 또 여러 매체나 대화속에 오가는 ‘무슨 아이가 종합병원이야. 맨날 아프대.‘라는 비난들에도 살짝 공감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진짜 어린 아이들은 매일 아프다. 말로 표현할 수 없었던 영아기 때는 미열에도 엄마들은 가슴을 졸인다. 말을 할 수 있는 유아기에는 맘이 아플 때도 열이 나는 시기라 마찬가지로 맘을 졸인다. 코로나가 심각해졌을 때는 아이를 원에 맡길 수 없어 일을 그만둘 수 밖에 없었다. ‘아이가 아프다는 변명, 아이를 핑계대지 말자‘라는 나의 다짐을 지킬 수 없을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요즘 사회는 아이는 ‘함께 키우는 것‘이 절대 아니기 때문이다.

무겁다
벽에 있어야 할 벽돌이 머리에,
바닥에 있어야 할 바위가 가슴에 있다 97쪽

몸이 무겁다는 경험을 처음 한 것이 언제였을까. 아마 30대 중반 이후일 것이다. 아침에 일어나면서, 회사에 앉아 커피를 마시면서도 머리는 이미 무거워진지 오래였으므로 몸이 무겁다고 느낀 것은 아마 그 무렵이었을 것이다. ‘내 나이가 되어봐라‘라고 협박도 아닌 당연한 수순을 어른들이 말씀하실 때 크게 와닿지 않았다. 그러고 보면 마흔이란 나이는 누군가의 경험이나 감정을 간접적이 아닌 직접적으로 깨닫는 나이인지도 모르겠다. 사실 몇 가지 감정을 꺼내어 놓긴 했지만 이 책의 타이틀에 ‘사전‘이란 단어가 들어간 이유를 몇 페이지 넘기지 않고도 알 수 있었다. 우리가 생각해왔던, 사용했던 단어들의 의미를 마흔이란 나이에서는 이렇게 받아들여지는구나 하는 공감과 위로가 실제 일어났기 때문이다. ‘나이테‘가 늘어나면서 어쩌면 마음에는 여유가 생긴지도 모르겠다. 절대적으로 궁핍해진 상황에서는 누군가의 위로도 전해지지 않는다. 당연히 위로를 기대하지도 않는다. 그저 문제가 해결 되길, 어줍짢은 위로보다 문제를 해결해주는 것이 더 중요하고 시급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이 이토록 친절하게 다가오는 까닭은 그만큼의 여유는 남아있는 것 같아 읽는 내내 참 감사하고 행복했다.

힘차다
힘차다는 것은, 내가 그렇게 못난 사람은 아니라는 것을 문득 깨닫는다는 것. 208쪽

마흔이 아닌 누구에게라도 ‘힘차다‘는 느낌을 공유하고 나눠줄 수 있으면 좋겠다. 아직 열매는 커녕 꽃도 피우지 못했더라도 괜찮다. 마흔이라고 다 열매맺는 것은 아닐 것이다. 다만 스스로 힘차게 나아가는 것, 그것이 가장 중요하지 않을까 싶다. 정호승 시인의 말처럼 ‘마흔살은 책임을 지는 나이‘다. 그렇다보니 우리에게는 때때로 처방약도 필요하고 위로가 필요한데 시인의 말처럼 이 책이 그런 마음의 처방약이 되어주어 고맙고 추천하고 싶다.

#창비 #추천 #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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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뜻대로 안 될 때 - 낙심, 피로, 분노, 불안을 끊는 온전한 연결
카일 아이들먼 지음, 정성묵 옮김 / 두란노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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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뜻대로안될때 #카일아이들먼 #낙심 #피로 #분노 #불안 #두포터 #나를복음으로살게한문장

우리의 방법이 통하지 않을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일은 포도나무와 연결되는 데 집중하는 것이다. 이것이 이 책의 기본 전제다. 우리의 방법이 통하지 않아 낙심이나 피로, 분노, 불안이 밀려오거든 다시 그분의 가지가 되라. 접붙이기는 언제라도 다시 연결이 가능하다는 점을 보여준다. 249쪽

참포도나무는 단 한 분, 주님 뿐이시다. 그런데 실제 우리는 참포도나무가 아닌 ‘가짜 포도나무‘를 찾고 있다. 저자가 말하는 가짜 ‘포도나무‘에는 정보 포도나무, 정치 포도나무, 로맨스 포도나무 그리고 ‘나‘포도나무가 있다. 결혼 전 연애를 할 때 모든 것을 연인에게 기대려고 하는 경우가 많다. 정치인의 정책도, SNS를 포함한 여러 매체에서 얻을 수 있는 정보 마찬가지다. 일시적인 해결, 단기간의 쾌락은 얻을지 몰라도 영원을 약속하진 못한다. 그렇게 다른 가짜 포도나무 여럿을 전전하다 결국 우리가 만나는 것이 ‘나 포도나무‘다. 이부분이 정말 뜨끔했다. 주님께 의탁하고 있다고 생각했던 나조차도 ‘기다리는 것‘을 하지 못해 무엇이든 열심히 해보겠다며 자기개발에 심취해 결국 가짜 포도나무에 기대며 그것이 나의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다고 착각할 때가 많았기 때문이다. 여기서 주의할 점은 주님께 의탁하는 것은 결코 이 세상에서 말하는 ‘평온한 상태, 환난이 없으며 충만한 상태‘를 뜻하지 않는다. 물론 고통이나 시련을 예고없이 주시진 않는다. 저자는 요한복음을 인용하며 수난 전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충분히 고난이 닥칠 것을 알려주시고 그런 때가 오면 어떻게 대처해야 할 지도 알려주셨다고 말한다. 그것은 다름아닌 ‘포도나무에 붙어 있는 것‘이다. 실제 떨궈진 나뭇가지, 막대기 등을 다시 살릴 때 살아있는 나무의 일부를 베어내어 그곳에 접붙인다고 한다. 용어 자체가 ‘피 흘리기(bleeding)이다. ‘예수님의 보혈‘의 거룩한 의미를 목회자들을 통해 제대로 인식할 수 있게 되어 기쁘고 감사하는 마음이 들었다. 더불어 <삶이 뜻대로 안 될 때>를 읽으며 깊게 새길 수 있었던 내용은 ‘너희는 가지요‘라는 부분이었다. 그동안 나 혼자 어떻게든 예수님께 붙어있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해왔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개인주의를 말씀하신 것이 아니었다. 서로의 짐을 나누어지라고도 하셨는데 그 뜻이 단순히 내가 상대방의 짐을 대신 지는 것이 아니라 내 짐도, 내 허물과 힘겨움도 나눌 수 있어야 한다는 의미였음을 새삼 깨닫는다. 이런 깨우침이 중요했던 이유는 이전까지는 ‘나만 참아야 하는‘억울함, 분노에 빠지는 경우가 많았는데 ‘나의 짐‘을 상대방도 함께 지고 가고 있음을 헤아리다보니 그 또한 주님께서 나와 함께 동행하고 계심을 깨달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참으로 내가 어떻게 하더라도 주님의 사랑이 떠나지 않을 것이라는 성경말씀과 저자의 의도가 그대로 느껴지는 부분이었다.

그 무엇도 그 사랑을 바꿀 수 없다. 우리의 시간 낭비도, 우리의 냉담과 무관심도, 우리의 은근한 불순종도, 이혼이나 중독, 불륜도, 우리의 게으름이나 나쁜 습관도, 우리의 참을성 없는 성미나 가혹한 말도, 우리 삶에서 가장 후회스러운 일도, 금색 스티커가 하나도 붙어 있지 않은 표라 할지라도, 그 무엇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떼어 놓을 수 없다. 168쪽

무언가 열심히 하였는데도 원하는 성과에 이르지 못하고, 또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시련의 파도가 끊임없이 밀려올 때가 있다. 그럴 때 지금까지 내가 해왔던 방식을 내려놓고, 또 내가 옳다고 믿었던 신념이 아닌 예수님께서 친히 가르쳐 주신 말씀에 전적으로 의지해야 해야만 한다. 저자가 공개한 ‘가지치기‘기도문의 일부만 보더라도 ‘삶이 뜻대로 안 될 때‘ 참포도나무이신 예수님께 찰싹 붙어서 아프더라도 ‘가지치기 당함‘을 구해야 할 이유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제가 용서해야 할 사람, 은혜를 베풀어야 할 사람이 있습니까? 제가 눈감아 줘야 할 잘못이 있습니까? 제가 가라앉혀야 할 분노가 있습니까? 하나님, 제 삶에서 들리는 목소리들을 가지치기해야 합니까? 제가 그만 귀 기울여야 하는 목소리들을 밝혀 주옵소서. (191쪽, 가지치기를 요청하는 기도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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