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셀름 그륀의 의심 포용하기 - 당신의 믿음에 나쁜 의심은 없다
안셀름 그륀 지음, 황미하 옮김 / 가톨릭출판사 / 2021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네 손가락을 여기 대 보고 내 손을 보아라. 네 손을 뻗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아라. 그리고 의심을 버리고 믿어라.”(요한20,27)

안셀름 그륀의 ’의심 포용하기‘에서 저자는 성경 속 인물들을 통해 의심이 반드시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성경 속 의심을 살피기 전 일상에서 우리가 품는 의심, 의심의 종류에 대해서 다룬 1장을 보면 ’의심은 무조건 맹신하지않게 하고 당신에게 가장 잘 맞는 것을 찾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한다고 말한다. 이제 막 연애를 시작하는 연인들이 상대에게 품는 의심은 자신의 기대가 지나치게 높은 것인지 아니면 상대방과 맞지 않는 부분이 있는지를 깨닫게 해준다. 또의심은 과학계의 있어서도 끊임없이 연구하고 발견하는 가장 기본적인 출발이 되기도 한다. 저자는 물 위를 건너오시는예수님께 의심을 품었던 베드로, 모든 것이 풍족했던 때에 가족과 질병으로 절망에 빠진 상태에서 품는 의심, 모든 것을의심하고 심지어 이성과 지성마저 불완전 하다고 여기면서도 주님께서 만드신 모든 것에 경외심을 갖는 코헬렛 그리고위의 발췌문의 등장하는 토마스의 의심을 예로 든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찾아오셨을 때, 토마스는 믿지 않았다. 토마스의 의심은 지금까지도 신자가 아닌 대부분의 사람들에게서 찾아볼 수 있는 의심이다. 토마스가 의심을 품었을때, 예수님께서 보이신 행동은 그의 손을 끌어다 자신의 상흔에 가져다 대시거나 분노하시지 않으셨다. 토마스로 인해 의심을 가지는 것이 주님께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그렇다면 주님으로부터 멀어지게 만드는 의심은 무엇이 있을까.


믿음에 대해 철저히 의심하는 사람은, 믿지 않으려고 수많은 이유르 찾습니다. 그렇지만 그는 자기의 이러한 의심에 의혹을 갖고 있기도 합니다. (…) 그들이 이렇게 하는 이유는 대개 믿음으로 인해 실망했거나 상처받았기 때문이라는 것이지요.103쪽


실망과 상처로 믿음이 방해받는 경우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하느님 상‘에 대한 기대로 인해 발생한다고 말한다. ’나에게좋은 것만을 주시는 분‘이신 선하신 예수님께서 나의 가족의 아픔, 질병의 해방을 그냥 두고 보신다는 것을 납득할 수 없다. 쉼없이 기도하는 것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되리라 생각했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을 모두 알고 있다. 결국 소중한 누군가를 잃고 나면 믿음을 부정하는 것 외엔 답이 없어보인다.


절망은 빅터 프랭클이 말했듯이 모든 ’우상화‘와 결별하라는 하나의 영적 도전일 수 있습니다. 절망은 우리가 그 위에 우리 삶을 세운 중요한 토대가 무너졌음을 보여줍니다. 이 토대가 무너졌다고 느낀다면, 그것은 더이상 무너질 수 없는 근원에 이를 때까지 더 깊이 나아가라는 기회입니다. 169쪽


안셀름 그륀은 우리가 어떤 상황에서 의심을 품게 되는 지, 또 수많은 의심 사이에서도 믿음으로 향하는 의심과 그렇지못한 의심은 무엇인지를 명확하게 이야기 해준다. 애초에 그 어떠한 의심도 없이 체험을 통해 굳건한 믿음으로 나아갈 수있다면 좋겠지만 예수님은 성경을 통해 그런 믿음이 쉽지 않다는 것을 이미 알고 말씀해주신다. 역자의 말처럼 그들의 예시를 보며, ’의심에서 확신으로‘(173쪽) 나아가는 삶의 좋은 길잡이가 되어줄 책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하얀 바다 바뢰이 연대기 2
로이 야콥센 지음, 손화수 옮김 / 잔(도서출판) / 2024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바뢰이 #바뢰이연대기 #로이야콥센 #보이지않는것들 #하얀바다 #섬 #잔 @zhanpublishing

바뢰이 연대기 2 하얀 바다.

로이 야콥센의 하얀 바다는 전쟁과 그로 인한 상처가 개인과 공동체에 미치는 깊은 영향을 탐구하는 소설이다. 전쟁이 불러오는 참혹한 현실을 배경으로, 주인공 잉그리드와 그녀의 고향인 바뢰이 섬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이야기는 인간성, 기억, 그리고 치유의 복잡한 교차점을 탐색한다.

바뢰이는 침묵의 땅이었다.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말을 통해 교육하기보다는 직접적인 행동으로 삶의 방식을 가르쳤고, 아이들은 그저 그 행동을 따라 하며 세상을 배워 나갔다. (244쪽) 이 문장은 바뢰이 섬, 그리고 이 소설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세대 간의 침묵과 전통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침묵의 공간에서 사람들은 서로를 이해하고, 지시보다는 본보기를 통해 삶의 방식을 익힌다. 그러나 이 침묵은 단지 무언의 규범을 따르는 데 그치지 않는다. 전쟁이 시작되면서, 잉그리드와 그와 함께하는 사람들은 고통스럽고도 중요한 변화를 겪게 된다.

바뢰이 연대기 1편 보이지 않는 것들에 이어지는 하얀 바다는 성인이 된 잉그리드가 전쟁의 상처로 황폐화된 바뢰이 섬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과정을 그린다. 독일군의 지배 아래, 섬은 전쟁포로와 난민들로 가득 차고, 영국군의 폭격으로 침몰하게 된 독일 포로 수송선 병사들 중 일부가 겨우 숨만 붙은 상태로 바뢰이 섬에 밀려들어온다. 결국 모두가 죽은 가운데 숨이 붙어있던 한 러시아 병사를 잉그리드가 집으로 데려와 돌보며, 인간적인 용기와 연민을 보여준다. ˝나라면 결코 할 수 없었을 일˝이라는 말이 허망하게 느껴질 만큼, 그녀는 섬 사람의 방식으로 그와 그녀 자신을 살려낸다. 하지만 시신이 섬에 가득차 있다는 상황을 보고하게 되면서 결국 독일군의 의심을 사게 되고 기억나지 않은 ‘그날’ 그녀는 깊은 상처를 입고 병원으로 이송된다. 잉그리드가 병원에서 어느 정도 심신을 회복한 후에도, 그녀의 기억은 완전히 돌아오지 못했지만, 섬으로 돌아가는 배에서 만난 난민들을 외면할 수 없었던 잉그리드는, 그들의 거처를 마련해 주기 위해 ‘저는 갈 수 없어요’라고 선언한다. 그 여정 속에서 그녀는 혈연이 아닌 타인들과 ‘식구’가 되어 바뢰이 섬으로 돌아오게 된다.

넬비의 죽음 이후, 살아남은 이들은 삶을 계속 이어나가는 데 큰 어려움을 겪는다. 비록 그들은 각자의 삶을 ‘문제 없이‘ 살아가고 있다고 여길지 몰라도, 그들의 내면에는 전쟁이 남긴 상처가 여전히 깊이 배어 있다. (228쪽) 이 구절은 전쟁으로 폐허가 된 자리를 복원한다고 해도, 저 마다 가지고 있는아픔은 세월이 흐른다고 해서 저절로 사라지지 않음을 깨닫게 해준다.

이 소설은 전쟁이 가져오는 폭력과 상처를 묘사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것이 인간 사이의 자비와 연민을 어떻게 다시금 끌어내는지를 보여준다. 백남준의 작품 중 ‘과달콰날 레퀴엠’에 등장하는 바다와 파도, 그리고 천진하게 웃는 아이들의 모습과 교차되는 수많은 시신의 모습이 마치 바뢰이 섬에서 잉그리드와 주변인물들의 웃음과 고통을 겪는 모습인 것처럼 다가왔다.

하얀 바다는 잉그리드라는 한 여성을 통해 전쟁이라는 참혹한 상황에서, 양심을 버리고 어떻게든 살아남으려는 생의 비릿함 너머를 이야기한다. 이름, 출신, 그 이상의 무언가도 서로 알 순 없지만, 인간이라면 마땅히 가져야 할 자비와 양심의 진정성을 깨닫게 된다. 1편을 읽지 않아도 이 소설을 읽는 데 전혀 불편함은 없지만 확실히 잉그리드의 태생과 자라온 환경, 바뢰이 섬의 분위기를 더 잘 느끼고 공감하기 위해서는 1편을 먼저 읽는 편을 추천하고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보이지 않는 것들 바뢰이 연대기 1
로이 야콥센 지음, 공민희 옮김 / 잔(도서출판) / 2021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바뢰이 #바뢰이연대기 #로이야콥센 #보이지않는것들 #하얀바다 #섬 #잔

바뢰이 연대기 1 보이지 않는 것들.

본섬에서 떨어진 여러 섬 중 하나인 바뢰이 섬에서는 아직 어린 잉그리드를 중심으로 할아버지 마틴, 아버지 한스, 어머니 마리아 그리고 고모 바브로가 있다. 마틴은 이제 나이가 들어 이전 처럼 총명한 기운도 없고 때때로 납득할 수 없는 행동으로 며느리 마리아의 심기를 건들지만 섬에서는 경험만큼 값진 없기에 중요한 결정에 있어 한스는 아버지 마틴의 의견을 가벼이 여기지 않는다. 생계유지를 위해 한스는 때가 되면 큰 배를 타러 떠나고, 바다에서의 일은 누구도 장담할 수없기 때문에 긴장하면서도 그가 반드시 바뢰이 섬으로 돌아오리라는 것은 의심하지 않는다. 마리아가 성인이 되어 자신이 살던 곳을 떠나 이곳으로 온 것처럼 바브로 역시 때가 되어 본섬으로 들어가 일자리를 구하려 하지만 이런저런 이유로결국 섬에 남게 된다. 이들의 일상은 거칠어보이기도 하고 지나치게 단조로운 것 같아 보일 뿐 아니라 외부와 거의 단절된 상태처럼 보인다. 바뢰이 가문의 사람이 아니라면 어느 누구도 그 섬안으로 들어올 수 없을 것 같아보이지만 섬에 살며 자연과 어울려 살아갈 줄 아는 이들이었기에 때로는 어느 누구보다 큰 포용력으로 사람들을 맞이한다. 갈등이 고조되는 순간이 빈번하다고도 할 수 있고, 반대로 평이한 스토리처럼 느껴지기도 하지만 짙은 안개, 파도에 밀려오는 다양한조개 껍데기들, 솜털오리의 촉감이 생생하게 전해지는 등의 묘사만 보자면 지루하다고는 결코 말할 수 없다. 어린 잉그리드를 대하는 아버지 한스와 어머니 마리아의 교육은 다른 듯하면서도 잉그리드를 강인한 한 사람으로 성장시키는데 각각의 역할을 해냈다는 점에서는 가정에서 부모의 역할의 중요성을 새삼 깨닫게 해준다. 외지인과의 만남으로 바뢰이 섬을떠났다가 아들 라스를 데리고 온 이후 부터는 이야기가 급속도로 빠르게 진행된다. 1권에서는 잉그리드의 유년기와 청소년기가 한없이 명량하게 이어질 것 같았던 예상은 빗나간다. 1권의 바뢰이 섬 그 자체에 관한 이야기 였다면 2편 하얀 바다에서는 성인이 된 잉그리드와 전쟁으로 인해 이전과는 다른 모습의 섬 이야기가 이어진다.


+
“폭풍은 널 해치지 못해.”
한스가 딸의 귀에 대고 소리쳤다.
하지만 잉그리드는 들리지 않았다. 두 사람 다 들리지 않았다. 그는 섬이 요동치고 하늘과 바다가 사나워졌지만 섬은 흔들릴지언정 물속으로 가라앉지 않으며 영원히 그 자리에 딱 붙어 있다는 걸 몸소 느껴 보라고 소리쳤다. 이 순간 딸과 공유하고픈 신앙 같은 거였다. 한스는 날이 갈수록 더 이상 아이를 가질 수 없으니 딸 하나로 만족해야 한다는 확신이 들었고, 그래서 섬이 절대 좌초하지 않는다는 기본 원칙을 가르쳐야 했다.
​+



번역도 조금 달라졌는데 1권에서는 ‘보트 하우스’ 그대로 번역된 부분이 2권에서는 ‘정고’로 번역되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호라이즌
배리 로페즈 지음, 정지인 옮김 / 북하우스 / 2024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그는 자기가 지나간 바다에 표시가 남지 않는다는 사실을, 그리고 어쩌면 언제까지나 그런 상태로 남으리라는 사실을 잘 알았다. 유일한 경계선은 눈으로 볼 수 있는 것과 마음으로 상상만 할 수 있는 것을 가르는 수평선, 바로 바다와 하늘이 만나는 경계선이었다. 117쪽

아주 오랜 기간 여행을 한 사람이 있다. 배리 로페즈. 그의 자서전 격인 이 책 ‘호라이즌’은 그가 여행을 떠나게 된 배경과 여행을 하면서 만났던 사람들은 물론 여행지에서 가져온 물건에 관한 이야기다. 시간과 물질적 여유가 생긴다면 여행을 떠나고 싶다는 사람들이 많다. 또 누군가에겐 낯선 환경에서 마주할 수 있는 사람들, 그리고 그 사람들이 거울이 되어 바라볼 수 있는 자아를 발견하기 위해서일 수도 있다. 배리의 여행은 앞서 나열한 모든 것이지만 휴양지만을 좇는 여행과는 결코 다르다. 그가 마주한 섬, 바다, 개척지에서 사람들이, 동물들이 죽거나 기한이 정해져 있지 않은 영원한 고통에 허우적거리고 있다. 그가 여행지에서 가져와 잠자리에, 그리고 글을 쓰는 장소에 두는 기념품의 의미를 언급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장소가 어디든 잠을 잘 때 곁에 두는 화살촉은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다른 생명을 빼앗아야만 현실과 부양의 의무를 기억하기 위함이라고 한다. 글을 쓰는 책상위에 두는 돌은 다음과 같다.

그것은 내게 과거와 현재에 인간이 겪고 있는 파국적 고통에 대한 세계적인 무관심을, 내가 살아오는 동안에는 시베리아와 캄보디아에서, 피노체트 치하의 칠레에서 일어난 것들을 포함하여 수많은 학살을 겪어온 인류의 운명에 대한 전 세계의 무관심을 상기시키는 물건이다. 79쪽

최근 한강 작가의 ‘소년이 온다’ 소설 리뷰에 ‘크든 작든 우리는 모두 그들에게 빚을 지고 있다.’라고 쓴 적이 있다. 그래서인지 저자가 말하는 ‘세계적인 무관심’이란 단어가 낯설거나 부당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그런가하면 소설 ‘라이프 임파서블’에서 그레이스가 마주한 심해의 신비로움을 떠올리게 하는 부분도 있었다.

심해 해저로 내려가는 동안 트리에스테호는 태평양에서 우리 인간이 아직도 잘 이해하지 못하는 소리 터널 중 하나를 통과했을 가능성도 있다. (...) 127쪽

긴 시간 역사와 사건 그리고 삶의 방향성을 뜨개질 처럼 쉼없이 이어지는 서술구조라 과학, 역사, 인문 그리고 배우 박신양에서 화가로 또 다른 출발을 이끈 래릭과 같은 예술가들의 이야기까지 연결되어 있다. 에스프레소 잔의 길이만크 두꺼운 책인게 다행일만큼 흥미롭고 진중하게 마음을 건드린다. 올해도 이제 얼마남지 않았다. 새해는 곧 찾아오는데 당장의 여행이 아니라 영원의 여행을 희망하는 이들에게 꼭 권하고 싶은 ’호라이즌‘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소년이 온다 -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한강 지음 / 창비 / 2014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시간이 더 흐르기 전에 적어본다.



소년이 온다.
어떤 내용을 담았는지, 그 날 이라는게 어느 곳, 어느 때인지 너무 잘 알아서 차마 읽을 수 없었던 책이다. 소설이라서, 정말 소설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책에서도 등장하는 다른 나라에서 벌어진 사건들은 그렇게 건조한 시선으로 볼 수 있었던게 다행일까, 그만큼의 비겁함이었을까.



광주. 5.18. 계엄군과 대치했던 도청에 있었던 사람들, 그리고 소년과 소년 못지 않게 어리고 여린 삶들이 있었다. 총과 칼이 살상무기이기 보다는 두려운 마음을 서로가 서로에게 덮어주려는 담요와 같았다고 느꼈다. 소년은 그렇게 2024년 12월 내게로 왔다.


소년은 빛으로 가야한다. 빛으로 데려가기 위해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우리가 기억해야 할 사건이고, 희생이었다며 혹은 문학 그자체로서 가치가 있다며 주변사람들에게 권하는 것이 좋을까. 차마 권할 수 없었다. 그 사건을 한 줄의 문장 정도로 알고 있는 여린이들에게 차마 권할 수가 없었다. 오래전 아직 만 스무 살이 되기 전 한 장의 사진을 보았다. 책에서 묘사했던 참혹하고 너무 잔인해 3초도 제대로 쳐다볼 수 없었던 사진 그날의 사진 한장. 성별조차 알아볼 수 없을 만큼 군홧발에 뭉개져버렸던 그날 그곳에 있었던 누군가의 ‘얼굴’.


소설에서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혼들의 움직임이었다. 서로를 부를 수도 없고 서로가 서로인지 알아볼 수도 없지만 곁을 내어주고, 잠시나마 서로가 서로에게 위안이 되어줄 수도 있다는 것이 그나마 다행이었다.


자식을 잃고 잘 견디는듯 하다가 조금씩, 천천히 무너져가는 어미의 모습도 잊히지 않는다. ‘만약에’, ‘억지로라도’그럴 수 있었다면, 소년은 잘 살아갈 수 있었을까. 살아도 살아 있는게 아닌 것을 알면서도 그렇게라도 숨이라도 붙어있길 바라는 그 마음을 생각할수록 억울하게 죽어간 영혼보다 살아남아 수천번을 되뇌이고 되뇌이는 이들의 영혼들이 더 안타깝게 남았다. ‘왜 나는 살아있는가.’


책을 다 읽고 난 후 문득 죄 짓지 않고 살기보다 누군가의 도움이나 누군가에게 빚을 지지 않고 살아간다는 게 더 어려운 일이란 생각이 들었다. 1980년 그 해 여름. 살아남은 모두는 누군가에게 적게든 많게든 빚을 진거라고. 그래서 그 빚을 갚는 방법이란게 결국 그들을 빛으로 이끄는 것이니 서두에 던진 내 임무를 다시 상기시킨다. 어떻게 하면 그들을 빛으로 이끌 수 있을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