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장 아동기를 없애자

… 여성 존중처럼 아동 ‘존중’은 여전히 더 큰 사회의 일부였을 때인 16세기 이전에는 알려지지 않았다가, 명백하게 억압받는 집단을 형성하는 지금에는 필수적인 것이 되었다. 아이들의 소외와 분리가 시작되었다. 아동중심적인 새로운 부르주아 가족은 끊임없는 감시를 수반했고, 초기의 모든 독립성은 없어졌다.
이러한 변화의 중요성은 아동 복식의 역사에서 구체적으로 보여진다. 복식은 사회적 신분과 번영을 표시하는 방식이었다. 특히 여성에 있어서는 지금도 그렇다. 특히 유럽에서 지금까지도복식의 부적절함에 실색하는 것은 ‘지위를 헝클어뜨리는’ 복식의 부적절함에 주로 기인한다. 의복이 비쌌고 대량생산이라고는 들어보지도 못한 시대에서 의복의 이 기능은 훨씬 더 중요했다.
의복이 성과 계급의 불평등을 여실히 드러냈기 때문에, 아동 복식의 역사는 어떤 일이 아이들에게 생겼는지를 알려주는 귀중한 실마리를 제공한다. - P118

소녀들의 복장은 어떤가? 여기에 놀라운 사실이 있는데, 그것
은 아동기는 여성에게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여자아이는배내옷에서 곧장 성인 여성의 복장으로 간다. 그녀는 우리가 앞으로 보게 되는 바와 같이 아동기를 구조화하는 제도인 학교에가지 않는다. 아홉 살이나 열 살 때쯤 그녀는 말 그대로 ‘작은 숙녀‘처럼 행동한다. 그녀의 행동은 성인 여성의 행동과 다르지 않다. 빠르면 열 살이나 열두 살 정도인 사춘기에 이르자마자 그녀는 훨씬 나이 많은 남성에게 시집 보내진다.
아동기의 계급적 기초는 이렇게 드러난다. 즉, 소녀들이나 노동계급의 소년들이 옷으로 따로 구분할 필요가 없었던 이유는,
그들의 성인 역할이란 상층계급 남성들을 위해 봉사하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자유에의 통과의례가 필수적인 것은 아니다. 소녀들은 성장해야 할 아무 이유가 없었으므로 복장의 변화를 겪을 이유도 없었다. 성인 여성들은 남성과의 관계에서 여전히 하층계급 - P120

에 속했다. 오늘날까지도 노동계급의 아이들은 복장 제한으로부터 자유롭다. 왜냐하면 그들의 성인 모델들 역시 지배계급과의 관계에서 ‘아이들이기 때문이다. 중·상층계급의 소년들은 일시적으로 여성과 노동계급의 지위를 공유하지만, 그들은 점차 이러한 예속된 계급으로부터 빠져나와 상승하게 된다. 반면 여성과 하층계급 소년들은 거기에 그대로 남게 된다. 페미니스트들이 억압적인 여성 복장의 종식을 논했을 때 어린 소년들의 복장의 여성화가 폐지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양자의 의복 스타일은 계급적 종속과 여성 역할의 열등성과 완전하게 연결되어 있었다. 소공자 Little Lord Fauntleroy』는 페티코트petticoat와 같은 운명에 빠졌다.(나의 아버지도 긴 바지를 입은 첫날을 기억하지만, 오늘날까지도 유럽의 어떤 나라에서는 이러한 복장의식의 풍습이 여전히 지켜지고 있다.)
우리는 또한 새로 생긴 아동기라는 개념의 계급적 기초를 그것과 함께 생긴 아동교육 제도에서도 볼 수 있다. 아동기가 추상적 개념일 뿐이라면, 근대의 학교는 그것을 현실화한 제도이다.
(우리 사회에서 생애주기에 관한 새로운 개념은 제도들을 둘러싸고 조직된다. 예를 들어 19세기에 만들어진 청소년기 adolescence는 병역에서 징병을 용이하게 하려고 만들어진 것이다.) 근대의 학교교육은 사실상 아동기라는 새로운 개념을 명료하게 했다. 학교교육은 재정의되었다. 더 이상 성직자나 학자에게 국한되지 않았고, 아동기로부터 남성기로의 과정에서 사회적 입문 social initiation의 정상적 도구가 되도록 넓게 확장되었다.(진짜 성인기를 맞아볼 일이 없는 소녀들과 노동계급 소년들은 수세기 동안 학교에 가지 않았다.) - P121

요약하자면, 아동중심적인 핵가족의 시작과 함께 아이들을 가능한 한 오래 부모의 관할 아래 두는 ‘아동기‘를 구조화하는데 있어서 제도가 필수적인 것이 되었다. 고전학문과 실용적인 도제훈련을 이론교육으로 대치하면서 학교의 수가 늘어났다. 이론교육의 기능은 배움을 그 자체를 위하여 전수하기보다는 아이들을 ‘훈련‘시키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근대 학교교육이 성장을 증대시키기보다는 지체시킨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아이들을 성인 세계로부터 격리시키고ㅡ결국 어른들이란 속세의경험을 가진 좀 더 큰 아이들에 불과하다 - 또한 인위적으로 1대 20 이상의 어른 대 아이 비율에 예속시키면서, 어떻게 마지막 결과가 아이들을 평범한 지능으로 평준화시키는 것 이외의 것이기를 바라겠는가? 그것으로도 충분하지 않자 18세기 이후에는 나이의 엄격한 분리의 구분이 생겨났다("학년"). 아이들은 더 나이가 많고 더 현명한 아이들로부터 더 이상 배울 수 없게 되었다. 아이들이 깨어있는 시간의 대부분은 연령별로 잘 끌어모은 동료집단, 그리고 그다음에는 떠 먹여주는 ‘교과과정‘에 제한되었다. 그러한 엄격한 등급화는 성인기로 입문하는 데 필요한 수준을 높였고, 아이가 자신만의 속도로 직접 나아가는 것을 어렵게 만들었다. 학습동기는 창의성을 확실하게 죽이는 외부 지향적outerdirected이고 승인 의식적approvalconscious인 것이 되었다. 한때는 - P126

단순히 어린 성인들로 보였던 아이들은 우리가 반쯤 자란 강아지를 미래의 다 큰 개와의 관계에서 보듯이 이제 경쟁을 조장하는 그 자신의 내적 지위를 가진 뚜렷한 계급이 되었다. ’이 구역에서 가장 큰 녀석’, ‘학교에서 가장 똑똑한 녀석’ 등등, 아이들은 위계질서적 용어로 생각하도록 강요되었다. 모든 것은 지고한 말인 ‘내가 자라면.…..’으로 평가되었다. 학교의 성장은 나이와 계급에 따라 점점 더 분리되어가는 바깥세상을 반영했다. - P127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그래서 책을 샀다. 는 뻔한 이야기. 

구매함을 열어본다. 흡. 


어쩌다 린 마굴리스에 꽂혀서... <공생자 행성>을 5월초에 먼저 사고 오늘 몇 권 더 지름. 실은 그동안 책을 지를 마음의 여유도 없었...ㅋㅋㅋ 네 제가 요즘 좀 바쁩... 서재에 뜸하죠잉? 
















<공생자 행성> 

<과학자처럼 사고하기>

<마이크로 코스모스> 


새책 헌책 섞어서 샀다. 갑자기 웬 과학. 음음. 그러나 세상은 참 신기하지 않아요? 내 몸 생각하는 것도 과학이야. 생각하다 보면 느무느무 신기한 것. 그 뭣이냐, <코스모스> 쓴 사람, 칼 세이건? 사람도 책도 이름만 알고 ㅎㅎ 읽어보고 싶다고 막연히 생각만 함. 그런데 린 마굴리스라는 과학자가 칼 세이건 부인이었다는??? 공저자 도리언 세이건은 아들이라는??? 뒤늦게 알아갖고 신기신기해함.ㅋㅋ <생명이란 무엇인가>도 사고 싶다. 살 거다, 조만간. 
















어맨다 몬텔 <워드슬럿> 

이거 몇 월 여성주의책이죠? 암튼, 전자책이 있어갖고 전자도서관에 희망도서 신청해놨는데 중고가 떴길래 종이책으로 샀다. 

















에린 윙커 <웃어넘기지 않는다 - 페미니스트 킬조이가 보내는 편지> 

중고책 금액 맞추다가 고른 책. 예에전부터 살까말까살까말까 하다가 계속 말았던 책이다. 주욱 말아야 하는데 쩝. 

















엘리자베스 그로스 <몸 페미니즘을 향해> 

5월 초 책 한 권을 뭘 살까 한참 고민하다 보관함에서 선택당한 책. 담아놓은지 오래 되면 내용이며 목차가 생각 안 나서 다시 훑어봐야 하는 게 고역이다. 그런데 작년에 담아놓은 책들 다시 보면 음 이거 안 담았어도 되지 않았니? 하는 시점이 자주 온다. 왜 때문? 좀 지우고 살자. 보관함 만 갠가, 상한선도 생겼더라. 

















제인 베넷 <생동하는 물질> 

그러니까 나는 과학 공부를 하고 싶은 게 아니라 그냥 궁금한 거다. 궁금. 목차를 보면 진짜 확 끌린다니까??? ㅋㅋㅋㅋ


















크리스틴 델피 <가부장제의 정치경제학> 

아, 이 책은 진짜 안 사고 싶었는데 ㅋㅋㅋㅋ 예전에 공쟝쟝님 서재에서 보고 책을 얇게 찢어서 시리즈로 내는구나, 그렇다면 나는 프랑스어판으로(응?) 보거나 한글판을 사지 말고 빌려 보거나 해야지, 했는데. 중고 맞추다가 얇으니 사자, 가 되어버렸다. 흠흠. 


















클라리시 리스펙토르 <별의 시간> 

<달걀과 닭> (아직 다 못 읽음 ㅠㅠ) 좋아서 <야생의 심장 가까이>(아직 못 읽음) 잘 샀다, 이러고 있음. 더 사야지. 제목 좋다. 별의 시간. 소설 사면 주는 굿즈 금박 노트 지를까말까 또 망설임. 굿즈야 그만 꼬셔. 전에도 안 샀으니 이번에도 안 삼. 




그리고 전자책 두 권. 















희정 <일할 자격> 

생각이 많다. 일함, 노동, 자본주의, 생계, 돈, 뱅글뱅글. 돈(&노후대책) 없는 엄마 세대, 돈(&노후대책) 없는 나 세대, 돈(&노후대책) 없는 아이 세대. 이렇게 적고 보니 없는 것은 대물림되는가. 그렇다, 그런 것이다. 조금씩 읽고 있는데 생각이 많... 생각만 많... 가끔 정말 다 버리고 산으로 들어가고 싶은 마음이 불쑥, 마음만 불쑥 솟는다... <러스트벨트의 밤과 낮>과 연결되는 지점이 있을 것도 같다. 


루이자 메이 올콧 <초월주의의 야생귀리> 

예전에 한국 갔을 때 제주의 작은 서점? 북카페? 에서 떡볶이 시켜먹으면서 읽던 책이다. 그때 다 못 읽어서 아쉬웠음. 전자책 있길래 샀다. 이거 말고 한 권 더 있다. 제목이... <가면 뒤에서>다. 이것도 나중에 전자책으로 살 예정. 읽은 단편들은 오! 하며 재밌었는데 전자책 사서 펼쳐보질 않아 나머지는 모르겠다. 



+ 그리고 오랜만에 먹는 굿즈.ㅋ 

아니 이거 왜 상품넣기에 없나요?????? 사진 캡쳐~~~ 




이렇게 다양한 맛 쫀득이라니!!! 추억 돋쟈나요!!! ㅋㅋㅋㅋㅋ 

그래서 다섯 가지 맛을 샀다. 이런 거 안 사야 하는데 또 금액 맞추다 보니... 개미지옥... 

뭐가 젤 맛날까????? 바로 받아 맛보고 백자평 쓸 수 없음에 조금 슬픔.ㅋㅋㅋㅋ 





바쁜 와중 중심을 놓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 이리저리 미는 힘이 많다. 어쩌면 그건 모두 내가 만들어낸 가짜 힘일 수도 있고. 남의 말, 남의 시선에 휘둘리지 않는 삶이란 어떤 것인고. 도를 닦자, 도를. 그리고 나를 믿어! (그러나 하루에도 수십 수백 번...@@ 흔들리는 나여...) 





댓글(8) 먼댓글(0) 좋아요(2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유수 2023-05-17 01: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면 뒤에서, 또는 여자의 능력> 제가 많이 좋아합니다 ㅋㅋ 그 책 생각만 해도 즐겁군요. 그렇담 저는 ~~야생귀리를 읽어보겠어요. 린 마굴리스 아들이면 그럼 사샤 세이건과 이복남매가 계신가 보군요 ㅎㅎ 가계도에 작가가 포진해있네예.. 궁금한 책도 많고 겹치는 책도 좀되어서 한창 궁금한데 자러 갑니다. 많이 읽으시고 또 어떤가 올려주세요!!!

난티나무 2023-05-17 03:22   좋아요 0 | URL
오 <가면 뒤에서>도 좋군요!!!! 저 <야생귀리> 읽으면서 어맛! 올콧! 느낌표 퐝퐝 찍었거든요. 기대 만빵!! 역시 좋을 줄 알았어요.ㅋㅋㅋㅋ
나중에 겹치는 책도 말씀해 주세요~~~~^^

cyrus 2023-05-17 06: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전에 도나 해러웨이에 꽂혔을 때 린 마굴리스의 <공생자 행성>과 <마이크로 코스모스>를 샀어요. 늘 그렇듯이 사기만 했어요. 두 권의 책 어딘가에 있을 거예요.. ㅋㅋㅋㅋ

난티나무 2023-05-17 18:21   좋아요 0 | URL
ㅎㅎㅎ 매우 공감하는 바입니다. 저도 언제 읽을지 모른다는… 책을 제 손에 받을 즈음에는 관심이 식어있을 수도 있고요.ㅋㅋㅋ

책읽는나무 2023-05-17 13: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워드 슬럿>은 9월의 책입니다^^
제가 딱 기억하고 있어요. 왜냐하면 저도 그 책을 갖고 있거든요ㅋㅋㅋ
근데 쫀드기인 줄 알았더니 쫀득이였군요?
쫀득이 맛이 넘나 고퀄이군요?
츄러스랑 말차랑 보이차 세 종류 먹어보고 싶네요^^

난티나무 2023-05-17 18:22   좋아요 1 | URL
책읽는나무님 알려주셔서 감사해요! 매번 헷갈림 ㅎㅎㅎ 암튼 이제 완벽 구비입니다.
전 쫀득이 별로 안 좋아했는데 저건 왠지 맛있어 보이는 @@ ㅋㅋㅋㅋㅋ 상술에 잘 놀아남! ㅋㅋㅋㅋㅋ

얄라알라 2023-05-25 14: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일로 바쁘신거라 상상하며 팍팍 응원의 기운을 바다 건너로..


그나저나 쫀득이 사진 어쩜 저리 잘 찎으셨대요 ㅎ
쫀득이 안 먹던 사람들도 먹고 싶어지려해요


엘리자베스 그로스의 글은 매우 예전에 읽다가 이해 못해서 울 지경으로 몰고 갔던 글이라 겁이 나네요. 어떻게 읽으셨는지?^^

난티나무 2023-05-26 18:12   좋아요 1 | URL
얄라알라님 응원 감사합니다~^^
쫀득이 사진은 알라딘 상품소개에서 캡쳐한 건데 진짜 먹고 싶게 만들었죠?ㅋㅋ
저도 쫀득이 별로라 하는데 그만 홀라당 넘어갔습니다. ㅎ
엘리자베스 그로스 책은 아직 제가 받지도 못해서 ^^;;;; 언제 읽을지 기약이 없어요...ㅋㅋㅋ
어렵다니 좌절...ㅠㅠ
 















이렇게 좋을 일?!?! 

나온 지 오래 됐지만 좀더 많이 읽혀야 하는 책이 아닐까? 

2권을 다 읽어가고 나에게는 3권이 남아 있다. 

오늘 읽은 5장(개인 속의 역사, 기억으로서의 역사)에서 밑줄. 




⌈우리는 '가족'이라는 고리가 너무 강하여서 '자각'을 한 여성들도 결혼을 하면 그 속에 묻혀 버린다는 것을 알고 고심했다. '의식 전환'은 아주 미약한 효과를 낼 뿐이다. 그런 면에서 어줍잖은 여성 해방적 지식은 자기 분열만 가져온다. '주변성'을 보다 확실히 할 필요가 있다. 여성들 자신이 가진 '주변성'에 보다 확실하게 정체성을 심어야 한다.⌋ (198) 



⌈억압의 상태에서 벗어나려면 해방의 언어만 배우면 된다고 간단하게 생각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실제로 지배 언어의 눌림 속에 만들어진 그 '말 같지 않은 말'을 알아들을 수 없는 사람이 '해방의 언어'를 만들어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얼마나 큰 착각인가? 그런 착각은 '해방의 언어'를 외부에서 끌어 오는 '식민지 엘리트'들이나 할 일이다. 이제는 오히려 지배 담론에서 비껴나 있는 그 '횡설 수설'하는 말을 바탕으로 새 말을 만들어 가야 한다. 억압 상황에서 '말 같지 않게' 사용되어 온 '말'을 살려 내지 않고서, '억압'을 줄여 가고 없애 갈 것을 기대하는 것은 너무 무지한 일이라는 것을 우리는 확인했다. 그 동안 '말이 아니라고 생각해 온 말'의 형태로 자신이 해왔던 말을, 또는 생각을, 주변성을 공유한 사람들과 함께 나누어 가기 시작해야 하는 것이다.⌋ (204~205)



⌈다시 나의 실험 현장인 <또 하나의 문화>로 돌아와 매듭을 지어 보자. 외부에서는 이 모임에 대해 모든 것을 다 가진 '혜택 받은 사람'들만 모여 있다고 말하기도 한다. 동인 중에는 어느 누구보다 '혜택을 받지 못하고 산'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이런 것은 실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혜택을 받고 안 받고가 아닐 것이다. 각자 자신이 선 자리에서 삶의 실험을 하면서 충실하게 말을 만들어 가고 있는지, 그럼으로써 새로운 정치적 공간을 만들어 가고 있는지의 문제일 것이다.⌋ (207) 



⌈사회 운동이란 역사성을 되찾는 작업이며, 일상성 속에서 개인을 역사와 연결시켜 내는 것이다. 목소리를 통일하기보다 우선 목소리를 살려내야 한다. 그런 면에서 '다름'을 성급하게 없애는 것은 가장 위험한 일이다.⌋ (211)



⌈지식은 경험을 통해 만들어지는 것이다. 이론이라는 것도 자신의 경험을 성찰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지는 것이다. 

...... 여기서 경험이란 경험 주체자가 가진 시선과 상호 작용하는 가운데 만들어진 성찰적 경험을 뜻한다. 역사란 그러한 자기 성찰적 경험을 쓰는 일이다. 경험 주체자의 적극적 기억 행위, 또는 서사 행위에 의해 새롭게 해석되고 또 경험되는 글쓰기 과정이 곧 역사 쓰기인 것이다.⌋ (213 /215)



⌈자기가 자기를 보기 어렵듯이 '중심'에서는 '중심'을 보기 힘들다. 더구나 자신이 가진 '중심'에 매달려서 그것을 놓치지 않으려고 하는 시선에는 새로운 것이 들어올 수 없다. '주변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인정하지 않으려 할 떄는 자신이 가지고 있지 않는 것만 보인다. 그러나 일단 그 자리를 인정하면 '있는 것'이 보이기 시작한다. 자신의 '가난한' 자리가 시선의 변화에 따라 매우 풍성한 자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알지 않고는 실은 근본적인 변화를 이루어낼 수 없다.⌋ (220) 







+ 그리고 좋은 소식. 좋으니까 조금 큰 글자로.ㅎㅎㅎ (북플에서는 죄 같은 크기로 보이겠지만....) 




연휴라서 하루 일찍 발행했대요!!!!! ♥️😍♥️







댓글(10) 먼댓글(0) 좋아요(2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시에나 2023-05-05 10:1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와, 저도 이 시리즈 다 있는데 진짜..명저죠. 정희진 샘도 2권은 꼭 읽어보라고 강추하신 책이고요.

밑줄그으신 부분 저도 좋아하는 부분인데요.

이 책 후반부에서인가, 저런 여성들의 글을 모으려고 했으나 결국 실패하신 이야기를 하지 않나요. 그 부분에서 좀 마음 아팠어요..저 당시 주제별로 발간된 책도 찾아서 읽어보기도 했는데, 저도 어딘가 좀 부족하다는 느낌이 들긴 했어요. 수다나 하소연, 또는 약간의 자기 자랑에서 벗어나지 못한 글들이...여성이 자기의 주변성을 치열하게 탐색하는 글이란 진짜 어려운 것이구나....아흑... 조한 샘도 어느 책에선가 그 당시 글쓰기의 한계를 지적한 게 있었는데, 어딘지 기억은 안 나네요.

대신 저 시도가 2010년대 중반부터 아닐까, 저 책 나오고 약 20년이 지난 후에서야 여성들은 자기 언어를 봇물처럼 쏟아내게 된 걸까..그런 생각 했어요.

난티나무 2023-05-05 12:05   좋아요 2 | URL
맞아요! 명저! 정희진 샘이 2권 강추하신 이유 너무 잘 알겠고요.

여성들의 글, 그렇죠. 찾아서 읽어보셨다니 와 🙌
일상 대화에서도 그렇잖아요. 수다, 하소연, 자랑… 에 그치고 마는. 말이나 글이나 그렇게 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가 고민이고, 결국 경험을 성찰하는 단계까지 가야 하는 일이고요. (우리가 그래서 ‘통하는 대화’에 희열을 느끼지 않습니까.ㅎㅎ )
그런데 또 한편으론… 그렇게 수다로 하소연하는 일을 후려치면 안 된다는 생각도 해요. 그게 시작점이 될 수 있고 되어야 하니까요.
말씀하신 것처럼 20년 후가 되었네요. 그래서 조혜정 샘과 이 책이 더 우러러 보였어요. 학교 수업 이야기할 때면 아 나도 그런 수업 들었었다면 하고, 또하나의문화 이야기할 때면 아 나도 그런 공부하는 데서 공부했었으면 하고, 제 8-90년대를 돌아보기도 했고요. ㅎㅎ 오프라인 공부모임 만들고 싶다는 생각도 늘 하는 거고.^^;;

댓글 반가워서 또 말이 길었어요.^^ 말하고픈 건 더 많지만 ㅋㅋ 다른 부분도 인용해서 좀 올려봐야 겠습니다. 많이 읽으면 좋겠어요!

2023-05-05 13: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5-05 19: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5-05 22: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5-09 05: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공쟝쟝 2023-05-05 13: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책들이 유수님이랑 페이퍼에서 등장해서 저도 샀어요!! 😤

난티나무 2023-05-05 19:25   좋아요 0 | URL
굳!!!!!! 👍👍👍

hnine 2023-05-08 15: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글읽기와 삶읽기 정말 오래된 책인데...저 책 1권 나왔을때 읽은 세대랍니다.

난티나무 2023-05-09 05:02   좋아요 0 | URL
우어!!!! 저는 이제야 알았… ㅎㅎㅎ 전 그때 어디에 살고 있었던 걸까요?????@@
 





5장 밑줄 올리면서 사진도 같이 올리고 싶었는데 북플 밑줄긋기 하니깐 사진 올릴 수 없대... 컴으로 들어와서 저장페이퍼를 누르니 글쎄 행복의 약속 읽으면서 주절주절 휘갈긴 글이 세 개나 있다. 그런데 올리기가 쫌... (다들 이래서 조용하신 거 맞아유?) 뭐 별 내용 없고 감상적이라 그렇기는 하다. 이케저케 만져보고 싶으나 잘 안 되는 ㅋㅋㅋ 어쩔? 리뷰 쓰는 게 목표인데 이래서야 리뷰는커녕 백자평 쓰기도 어렵겠다. 

아무튼 결론만 남았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일케 생각을 많이 하게 만드는 책이라니, 어렵거나 말거나 그저 좋구만. 미리 별 다섯 드림. 아메드 다음 책 <고집스런 주체> 언제 나옵니까, 후마니타스????? 




















댓글(6) 먼댓글(0) 좋아요(1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공쟝쟝 2023-04-26 00:2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ㅋㅋㅋㅋㅋ 읽으면서는 오만 생각이 드는 데 읽고나니 아무생각이 없어지는 행복의 약속ㅋㅋㅋㅋㅋㅋㅋ

난티나무 2023-04-26 13:42   좋아요 2 | URL
ㅋㅋㅋㅋㅋㅋ 그러면 안 되는데 말입니다? 무의식에 남기를! 어쩌면 행복! 🤔

다락방 2023-04-26 08:2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너무 좋아요. 저는 아직도 여전히 읽는 중이지만, 오늘 아침엔 불현듯 한 줄 정리가 되더라고요.

‘내 행복은 내가 정한다!‘ ㅋㅋㅋㅋㅋ

난티나무 2023-04-26 13:43   좋아요 1 | URL
역쉬 다락방님!! 내 행복은 내가 정한다!!! 👍

라로 2023-04-26 12: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또 이런 어려운 책을 장바구니에 넣게 만드는 님아!^^;;

난티나무 2023-04-26 13:44   좋아요 1 | URL
라로님 그간 바쁘셔서 못 오신 동안 저는 꾸준히 책을 샀더랍니다.(응?) ㅋㅋㅋ
이 책 어렵지만 좋아요!!!!
 

“질문을 한다는 것은 곧 정서적으로 이방인이 되는 것이다.” (342)

“당신 자신이 당신이 드러내는 불행의 원인이 되는 것이다.” (353)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형태의 행복과 약속의 형태를 띠는 행복은 우리가 그것을 현재 이곳이 아닌 다른 어딘가에 있다고 상상하는 한 같은 지평에 속한다. 그리고 현재 행복이 존재한다 해도, 그것은 불안한 것, 시간의 흐름 속에서 상실할 수 있는 것이 되면서 멀어질 수 있다. 현재 행복이 존재한다 해도 우리는 방어적이 되어 행복에 위협이 되는 것(혹은 사람으로부터 두려운 마음에) 멀어질 수 있다. - P294

여기서 허위의식은 부르주아가 자신의 동기를 모른다는 것, 자신의 믿음과 자신의 이해관계가 우연히 일치함을 알지 못하는 상황을 기술하기 위해 사용되고 있다. 의식적인 믿음들은 이데올로기다. 사람들은 의식으로부터 그런 믿음의 이해관계적 성격을 탈각함으로써 이해관계를 유지한다. 우리는 "허위의식" 관념이 이제는 더 이상 가능하지 않은 허위/진실의 이분법에 의존하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이 생각은 너무 지배적이어서 "허위의식"이라는 - P301

말 자체가 구시대적인 말처럼 들릴 정도다. 하지만 내가 2장에서 지적했듯이, 의식을 개인 주체에 속한 것으로 볼 필요가 없다면, 이 개념을 다시 살려 낼 근거가 있다. 의식이란 주체들의 도착보다 선행하는 기만들이 공유를 통해 사회적인 것을 배열하는 방식에 대한 것일 수 있다. 루카치가 잘 기술하고 있듯이 "부르주아 사회의 본성에 드리운 베일은 부르주아지 자신의 생존을 위해 없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Lukács 1971: 66[154]). 그 베일은 질서의 재생산을 은폐함으로써 사회질서를 재생산한다.
핵심은 진실과 허위의 구분이라기보다는 진실의 재생산에서 허위가 담당하는 역할이다. 다른 말로, 의식이 허위인 이유는 그것이 스스로와 결코 일치하지 않기 때문인데, 이런 상태가 이해할 수 있는 것 혹은 참인 것의 지평을 규정하면서 특정 질서의 재생산을 가능케 한다. 따라서 재생산은 이런 불일치에 대한 인식의 실패에 기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질서를 의식하게 된다는 것은 진짜 의식, 즉 진실에 대한 의식을 획득한다는 의미에서 자신과의 일치를 의미하는 게 아니다. 혁명가란 단순히 일치의 실패를 목격한 사람이라 할 수도 있다. 베일이 벗겨진다고 진실이 드러나는 것은 아니다. 베일이 벗겨진다 해도 모든 게 다 드러나는 것은 아니고 그 폭로에는 결함이 있을 수밖에 없다.
의식의 불일치를 인정하는 것은 그것의 허위성을 의식하게 되었음을, 그리고 사회적 믿음이 가지는 이해관계적 본성을 의식하게 되었음을 말하는 또 다른 방법이다. - P302

소외를 의식하기 위해서는 고통을 인식해야 할 뿐만 아니라 그 고통의 원인을 인식해야 한다. 소외를 의식하게 된다는 것은 자신의 존재가 어떻게 강탈되었는지 의식하게 된다는 것이다. 단순히 세상에서 소외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소외가 어떻게 이미 세상에 존재하고 있는지를 의식하게 되는 것이다. - P304

혁명 의식이 세상과 맞지 않는다는 느낌 혹은 세상이 이질적이라는 느낌 같은 것을 의미하는 건 우연이 아니다. 당신은 주어진 세계- 좋은 습관과 예절로 이루어진 세계, 복종과 선의를 다하면 안락함을 약속하는세계-로부터 멀어진다. 느낌의 구조로서 소외는 불타오르듯 강렬하게 현존한다. 그것은 당신을 소외시키는 타인들 앞에서 일어나는 느낌으로, 마치 당신을 억누르는 동시에 멀어지게 하는 힘처럼 느껴질 수 있다. 당신은 자세를 바꾸고, 머리를 숙이고, 땀을 흘리고, 초초하고 불안하다. 모든 것이 당신을 짓누른다. 세상 전체와 싸우는 것 같고, 세상도 당신에게서 등을 돌린 것처럼 느껴진다. 더 이상 잘 적응된 상태가 아니다. 세상에 적응할 수가 없다. 혁명가는 이런 특정한 의미에서 정서 이방인이다. 당신은 몰입할 수가 없다. 당신은 스트레스를 받는다. 당신이 세상에 저항할 때는 당신이 경험하는 세상도 저항의 형태로 다가오는 것이다. - P306

우리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방법의 하나로 불행[불만]을 선택할 수도 있다. 즉, 하나의 믿음으로서의 불행은 어느 정도 무관심하게 대상들 사이를 떠돌면서 현재를 붙들고 있는 한 방법이 될 수 있다(모든 게 다 불만이라는 것은, 어떤 한가지를 기대하고 있어서 그것이 일어나기 전까지는 불행하다는 것이다). - P307

아이들의 부재는 그에게 내 희망을 유예할 수 있는, 그를 위해 현재의 내 고통을 정당화할 수 있는 그 누군가의 부재를 나타내는 기표다. 다른 말로, 아이들은 이 판타지의 무게를 지고 있다. 그렇다고 아이들이 없는 삶은 의미가 없다는 생각이 도전받아서는 안 된다는 말이 아니다. 사실 "자기 자식 없는 삶을 살아가는 많은 이들은, 아이 없이는 삶이 무의미하다는 말을 듣는 것도, 아이가 꼭 있어야 삶이 의미 있는 건 아니라고 주장하는 것도 지친다. 우리가 아이 없는 삶은 무의미한 삶이라는 이 관념을 어떻게 해석하든, 여기서 표현된 불안은 관념으로서의 미래가 상실되었다는 불안, 그리고 그 상실에 대해 걱정함으로써 미래가 있다는 관념을 회복할 필요가 있다는 불안이다. - P332

이는, 4장에서 설명했듯이, 돌봄에 특정 형식을 부여하고 돌봄을받는 사람이 어떤 식으로 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이는 행복 돌봄이라기보다 우연 돌봄hap care이라고 할 수 있다. 즉, 누군가를 돌본다는 것은 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지 걱정하는 것이다. 우연 돌봄은 돌봄에서 불안을 제거하려 하지 않는다. 심지어 우연에 대한 돌봄care for the hap 이라고까지 할 수 있다. 누군가를 돌보는 것보다 더 취약한 것은 없다. 그것은 내가 아닌 존재에 내 에너지를 쏟는 일일 뿐만 아니라 내가 통제할 수 없는 것을 다뤄야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돌봄이란 불안한 일이다 - 관심 가득하다 full of care, 조심스럽다careful는 것은 그들의 미래가 걱정스러워서(미래 - P335

가 그 존속이 중요한 대상의 허약함 속에 담겨 있기 때문이다) 이런저런 것들에 신경 쓰는 것이다. 관심을 갖게 된다는 것이 착해지거나 다정해진다는 의미는 아니다. "돌봄"을 자신의 자아 이상으로 삼고 있는 사람들은 보통 자신들의 선한 이미지를 보호하기 위해 아주 무뚝뚝하게 행동한다. 돌본다는 것은 대상을 내버려 두는 게 아니라 자신의 것이 아닌 것에 빠져 자신을 포기함으로써 대상에 집착하는 것이다. - P336

만약 불행할 자유가 없다면, 행복할 자유는 인간의 자유를 제한한다. 반드시 행복해야 한다는 필연성이 자유라는 가면을 쓰고 있을 때 불행은 자유가 될 수 있다. - P350

우리는 불행이 집단적인 것, 공유되는 것이라는 점을 인식해야할 뿐만 아니라 행복에 도전하는 일이 우리 모두가 공유하는 기획이어야 함을 깨달아야 한다. 다수의 불행을 하나로 만드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무언가를 위해 투쟁할 때에도, 열망의 순간에도, 계승과 재생산 사이의 간극에서 춤을 출 때도 페미니스트 아카이브, 퀴어 아카이브, 반인종주의 아카이브가 집단적인 불행의 직조물들인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만약 행복할 권리에 도전하는 것이 곧장 뻗어 있는 똑바른 경로에서 이탈하는 것이라면, 정치 운동이란 그런 이탈을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는 것을 말한다. 이탈을 함께 나눌 때 즐거움과 경이, 그리고 희망과 사랑이 있다. 만약 이탈을 공유하는 것이 불행의 원인을 공유하는 것이라면, 즐거움과 경이, 희망과 사랑조차 불행 없이 살아가는 방식이 아니라불행과 더불어 살아가는 방식이 된다. - P354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