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으로 미국의 여성참정권운동의 역사와 그 흐름을 대략 파악할 수 있었고 인종간, 성별간, 계급간의 갈등, 그 복잡한 관계의 역학도 들여다볼 수 있어서 아주 유익한 독서였다. 막 재밌지는 않았는데 아마도 딴나라 역사이기 때문인 듯하다. 관계 없다고 할 수는 없지만 말이다. 항상 이런 책을 읽을 때면 반성의 자세를 갖게 된다. 한국의 역사에 무지, 여성사 무지, 정치사 무지, 대체로 다 무지한 탓이다. 독서가 천편일률적으로 '서양'에 치우친 경향이 있다. (일단 사놓은 책부터 몇 권 읽으려고 주섬주섬... 책도 백인지향인 것같아 씁쓸하다. 외국저자의 책 한 권을 살 때마다 한국저자의 책 한 권을 사는 식은 어떨까. 몰라서 못 읽는 책도 많을 것같다. 한국의 좋은 책들, 묻혀있는 책들, 좀 발굴해서 수면으로 띄워주시길. 훌륭한 저자들이 좋은 책 많이많이 내주시길.) 


일차적 책 감상은 이게 다다.^^;; 책 뒷부분(11~13장)은 따로 더 쓸 말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다른 이야기를 좀 해보자면. 

읽다가 딴생각 하게 만드는 부분들이 있다. 예를 들면 아래처럼. 


.......... 


" 흑인 여성의 클럽 운동은 단호하게 흑인해방투쟁에 전념했지만 그 중간계급 지도자들은 때로는 안타깝게도 흑인 대중에 대해 엘리트주의적인 태도를 취했다." (210) 


: '엘리트주의적인 태도' -> 엘리트주의에 빠지지 않는 엘리트의 자세 


" 웰스는 이런 무거운 짐을 바로 짊어지기 위해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을 시작했다. 하지만 인종주의 반대 운동에 들어서지 못할 정도로 그렇게까지 개인적인 고난이 압도적이지는 않았다." (213) 


: '개인적인 고난' -> 개인적 고난이 예술에 미치는 영향 


" 그리고 때로는 "부르주아 이웃과 자기 가족들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하녀' 욕설에 참여하는" 죄를 범한다." (261) 


: -> 남의 험담에 동참하거나 뒷담화를 선동하거나



.......... 


각각이 고민해볼 주제이다. 명확하지는 않아도 어느 정도는 이 주제들에 대해 내 생각도 있기는 하다. 그런데 뭔가 꺼림직하다. 이런 질문들이 떠오르는 것도 결국은 나를 어떤 위치에 올려놓았기 때문은 아닐까? 거기 올라서서 주위를 둘러본답시고 '아래'로 규정지은 곳을 내려다보는 건 아닌가? 

그래서 아래와 같은 구절들이 더 눈에 띄었는지도 모른다. 


.......... 


"프레데릭 더글러스는 19세기의 가장 명민한 흑인해방 지지자였음에도 자본가에 대한 공화당의 충성심을, 그리고 이들에겐 흑인 참정권에 대한 초기의 요구만큼이나 인종주의가 쓸모 있다는 사실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다. 평등권협회 내 흑인 참정권을 둘러싼 논란의 진정한 비극은 참정권이 흑인들에게 거의 만병통치약 같은 역할을 하리라는 더글러스의 입장이, 어쩌면 여성참정권에 대한 페미니스트들의 인종주의적 완고함을 부추겼을지 모른다는 점이다." (142) 


"... 한 여성은 이렇게 말했다. 


나는 유색인종이 정직함이나 청결함, 믿음직함이라는 면에서 너무 폄하된다고 생각해요. 내 경험상 그 사람들은 모든면에서 흠잡을 데가 없어요. 완벽하게 정직하고요. 정말 그부분은 더 할 말이 없어요.


인종주의는 복잡다단한 방식으로 굴러간다. 백인보다 흑인 하인을 더 좋아한다는 말로 자신이 흑인을 칭찬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고용주들은 실제로는 하인-솔직히는 노예-은 천생 흑인의 숙명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152)


"백인 여성들은 더 나은 일을 찾을 수 없다는 확신이 서지 않으면 절대 가사노동을 직접 하지 않았기 때문에..." (153)


"앤젤리나 그림케가 「남부의 기독교 여성들에게 호소함(Appeal to the Christian Women of the South)」에서 선언했듯 노예제에 맞서지 않은 백인 여성들은 노예제의 비인도성에 대해 무거운 책임이 있었다." (157) 


"수전 B. 앤서니는 어떻게 인권과 정치적 평등을 믿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동시에 자기 조직 회원들에게 인종주의 문제에 침묵하라고 조언할 수 있었을까? 부르주아 이데올로기-그리고 특히 그 인종주의적 요소-가 정말로 테러의 실제 이미지를 모호하고 사소해 보이게 만들고, 고통받는 인간의 끔찍한 비명을 잘 들리지 않는 웅얼거림으로, 그러다가 침묵으로 희석해버리는 힘을 가지고 있는 게 틀림없다." (192)


.......... 



내가 '나'로 세상을 본다는 건 말처럼 간단하지 않다. 왜냐하면 나는 그냥 '나'일 수가 없기 때문이다. 나는 '나'이면서, 내가 위치한 자리, 즉 나의 상황, 내 곁에 있는 사람, 그(들)의 위치, 나와 그(들)과의 관계, 그 관계에서 파생되는 역학들, 기타등등의 복잡한 맥락 속에 있다. 만나는 사람에 따라 그 위치는 움직인다. 개인적 위치에서 사회적 위치로 나를 옮겨놓으면(그것이 가능하다는 전제 하에서) 또다른 내가 있다. 전체 속의 나. 전체를 이루는 부분인 나. 그 또한 간단하지 않다. 개인적 위치의 나일 때처럼 전체의 부분인 나에서 파생되는 관계의 역학이 거기에도 있다. 이것도 이분법적 발상이지만. 어쨌거나 나는 이러저러한 개인적 맥락을 가진 인간이고 아시아의 한 나라 한국의 여성이면서 '백인들'을 바라보며 살고 있다. 동일시의 함정에 빠지는 건 쉬운 일이다. 그렇지만 항상 거울을 앞에 두고 내 정체성을 정의하며 사는 것 또한 웃기는 일 아닌가? 그렇게 하지 않아도 자동으로 인식하게 만들어주긴 하지만 말이다, 이 사회가. 그러니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이게 아니었는데... 나는 내 위치를 착각할 수 있다. 또는 '안정된' 위치로 정해두고 거기 안주하려고 할 수 있다. 그런 태도가 언행에서 나온다. 나는 '나'로 세상을 보고 있나? 그 '나'는 내가 위치지은 그곳에 있는 '나'가 아닌가? 이런 생각이 들면 농담처럼 던지는 말이나 이렇게 끄적거리는 글도 무서워질 때가 있다. 

고통에 위계를 둘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분명 내 고통보다 더한 고통을 겪는 사람들이 있다. 그렇다고 해서 내 고통은 저것보다 크기가 작으니까 별것 아니라고 넘길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누구나 '내 고통'이 가장 큰 법이다. 흑인여성의 이야기를 들을 때면 따라오게 마련인 '고통'이라는 단어가, 그들을 이해하는 데 방해물로 작용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상에서 사람들을 만날 때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나는 어떤 생각으로 사람들을 봐야 할까.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하는 질문과 다르지 않다고 느낀다. 스스로를 객관적으로 판단하고 자기 위치를 제대로 알고 그것을 항상 염두에 둔다는 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나는 내 위치를 얼마나 잘 알고 있으며 그것이 언행일치로 이어지는가 하는 질문은 늘 나를 찔리게 한다. 책의 구절들을 그냥 보고 넘길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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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하는 말이라 하면서도 지겨우려 하지만 아마도 죽을 때까지 그러지 않을까 싶다.) 우리가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것, 옳다고 믿었던 것 들이 그렇지 않다는 사실(현재 시점으로 사실)을 알아나가는 과정은 괴롭다. 항상 괴로운데 이게 '욕망'과 '쾌락'에 관한 것이면 더 괴롭다.




















(2장 욕망에 대하여)

               

" 여성이 특히 낮은 욕망으로 인해 고통받는다는 인식은 자발적 욕망과 반응적 욕망이라는 두 가지 종류의 욕망을 구분하지 못해서 나오는 듯하다. 이 장의 서두에 인용한 '애스크맨'에서 언급하기도 하는 이 반응적 욕망이 여성들에게는 좀 더 보편적이다. 브리티시컬럼비아 대학 성의학 센터의 센터장이며 이 분야의 권위자인 로즈메리 바손은 환자들을 연구한 내용을 바탕으로 지난 20년간 이러한 견해를 제시해왔다. 성적 경험을 자발적으로 갈망하고 기대하는 경험인 자발적 욕망은, 지금 "섹스하고 싶어"라고 생각하고 있지는 않아도 섹스를 할 가능성은 열어두고 있는 여성에게는 별로 적당하지 않다. 상황이 맞으면 욕망이 나타날 수도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여성은 먼저 흥분을 경험한 뒤에 욕망을 느낀다. 욕망이 먼저가 아니다. 이는 선형적이 아니라 순환적 과정이다. 그러나 상황이 결정적 역할을 한다. 서로의 관계, 권력의 동학, 안전과 신뢰, 섹스가 벌어지는 이유, 즐길 수 있는 에로티시즘, 여성이 자신의 몸이나 쾌락과 맺고 있는 관계, 여성이 흥분된다고 생각하는 자극의 존재 여부 등 당시의 성적 맥락이 모두 흥분과 욕망의 선순환을 가동하거나 방해하는 데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맥락이 가장 중요한 요소이며 맥락에 따라 욕망이 보다 자발적으로 느껴지는지, 반응적으로 느껴지는지도 결정된다. ...... 맥락으로부터 벗어나 순전히 자율적인 성적 욕망은 없다. 욕망이 반응적이지 않은 경우는 매우 드물다. 우리가 어떤 상황을 맥락으로 생각하기를 잊을 뿐이다. 

부정적인 맥락도 역시 맥락이며, 이것이 결과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

성적 욕망이 항상 긴급하고 자발적인 형태를 취할 필요는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은 중요한 함의를 가진다. 우리가 반응적 욕망도 욕망으로 본다면, 대체로 남성과 관련되어 있는 지배적이고 자발적인 모델에 대한 여성의 '편차'를 비정상으로 보지 않을 것이다." (96~98)


"맥락으로부터 벗어나 순전히 자율적인 성적 욕망은 없다." 


이 '맥락'에 대한 이야기는 케이트 밀렛도 벌써 했더라. 


"성교는 진공 상태에서 행해진다고 볼 수 없다. 성교는 그 자체로 생물학적이고 육체적인 행위처럼 보이지만 인간의 행위가 위치한 더 큰 맥락 속에 깊이 관계하고 있다. 그러므로 성교는 문화가 규정하는 다양한 태도와 가치를 보여주는 하나의 응축된 소우주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그 무엇보다도 개인적 혹은 인간적 차원에서 작동하는 성 정치학의 모델로 기능한다." (69, <성 정치학>) 

















......                     

그러나 애석하게도 남자들은 (일반적으로) 맥락을 모른다. 통탄할 노릇이다. 관계가 소통으로 친밀함과 단단함을 쌓아나가는 것이라면 맥락 파악이 꽝인 남자들이 소통을 잘 할 리가 만무하다는 건 뭐 뻔할 뻔자 아니겠는가. 그들이 단순히 멍청해서 맥락 파악이 꽝인가 하면, 이게 또 통탄할 노릇인 게, 그들은 그럴 필요가 없기 떄문에 안 해 온 거라는 사실. 그야말로 유아독존, 되시겠다. 말로도 안 되고 몸으로도 안 된다. 그들은 그럴 '필요'가 없었고 따라서 '무지'하다. 


여성을 자기비하, 자기반성으로 몰아넣는 수많은 것들 중 하나, 사람이면 (이성애적) 욕망을 느껴야 하고 그게 안 되면 그럴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것. 욕망이 노력으로 되는 것일까? 사랑은? 오랜 시간 의문을 품어왔던 지점이다. 결국 여성이 성적인 자기반성을 하게 만드는 건 남성의 '성적 욕망(그것을 욕망이라 치자)'을 충족시키기 위함임을, 어떻게든 섹스에 임하게 하려는 술책임을, 우리는 깨달아야 한다. 단체로 가스라이팅을 당해왔음을 인정해야 한다. 아래의 인용구들은 특히 많은 기혼여성에게 뼈아프게 들리리라 생각한다. 




"그러나 관계는 섹스를 통해 다져지게 마련이고 낮은 욕망은 반드시 노력을 통해 극복되어야 하는 것이라면(이 노력은 섹스에 수용적인 태도를 유지하는 것, 즉 원하지 않더라도 섹스의 가능성을 열어두는 것이다), 우리는 관계를 위한 합당한 '노력'과 섹스에 대한 부당한 강압의 차이를 어떻게 구분할 수 있을까? 성적 중립 상태를 강조하는 것, 즉 적절한 맥락 속에서는 흥분에서 출발하여 욕망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모델은 자신에게 성적 행동을 거절할 권리가 있다는 믿음을 약화시키지 않는가? 이 모델이 파트너에게 압력을 가할 수 있는 구실을 마련해주지는 않는가?" (104) 


"우리는 욕망의 모델에 의문을 제기하고, 욕망을 활성화하거나 금지하는 맥락과 조건을 인정해야 한다. 그러나 여성에 대한 욕망의 언어를 없애는 것이 도움이 될까? 이것이 그저 이미 문제적인 현상, 즉 여성에게 섹스는 주로 그들의 이해관계를 가늠하여 판단할 문제이지만 남성의 섹슈얼리티는 근원적 필요로서 온전히 남아 있다는 주장을 더욱 공고히 하지는 않는가?" (106)


"남성 섹슈얼리티에 대한 우리의 관념을 비슷한 방식으로 살펴보지 않은 채 맥락 및 타인에 대한 반응성을 여성 섹슈얼리티의 본질적 특성으로 규정하면, 남성은 섹스를 원하며 요구하는 존재이고 여성은 자신의 성적이지 않은 관심사를 계산한 후 요구에 응할 수도 있는 존재로 묘사하는 상당히 문제적인 클리셰를 소환하게 된다. 여성이 섹스를 거절하면 뻔뻔한 무시와 강압적인 회유를 너무나 일상적으로 마주하게 되며, 여성이 섹스에 응하면 도덕적 비난을 받는 동시에 보다 고상하다고 여겨지는 목표를 위한 봉사라며 합리화되는 세상에서, 남성 섹슈얼리티는 충동으로서 그저 온전히 남겨둔 채로 여성의 섹슈얼리티만을 섹스에 대한 수용적 특성이라는 결정적 측면으로 규정하려는 것은 심각한 문제다. 이러한 시나리오에서 남성은 원하고 밀어붙이며, 여성은 계산하고 결정하고 저항해야 한다. 이는 이미 자신의 욕망은 부속품으로 보는 남성에 의해 완전히 이용당하고 있으며 이용당할 수 있는 시나리오다. 젠더권력의 역학을 면밀히 살펴보지 않고 여성의 욕망을 반응적으로 보는 관점은 순식간에 악몽 같은 강압의 환상으로 탈바꿈할 수 있다." (108~109)


......               

'의무방어전'이라는 단어는 흔히 농담에 사용된다. 어느 여성은 남편과 대화를 하려면 섹스를 해줘야 한다고 말했단다. '대화를 하려면'이라는 구절에는 많은 다른 말이 대입될 수 있는데, 여기서 언급하지 않아도 웬만하면 무슨 말인지 아실 듯. 섹스를 했을 때와 하지 않았을 때, 공기 중에 감도는 불편함의 정도가 여성의 스트레스 지수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결혼제도가 섹스를 의무로 만들어버리는 것이긴 하지만 제도에서 벗어나 있다고 해서 여성이 갖게 되는 '의무감'이 사라지지는 않을 것같다. 


'반응적 욕망'을 설명하는 부분에서 아하, 했다가 이어지는 이런 구절들에서 번쩍! 여성의 욕망 무지 어렵고 복잡하고 모호하고 그렇지만, 그래서 힘들지만, 남성의 욕망에 대해서는 깊이 생각해본 적이 드물다. 남성이면 말할 것도 없겠지. 남성의 욕망에 대해 또 더 찾아봐야겠다. 당신의 욕망은 욕망인가? 남성 또한 사회적 가스라이팅의 피해자이다. 피해를 입었다고 생각하는 남성이 없어서 문제지.ㅠㅠ 


북플에 2년전 올린 글이라고 떠서 보다가 겹치는 부분이 있어 가져온다. (2년전에 읽었으니 기억 못하는 건 너무나 당연하지만 정확히 같은 말을 하고 있는데 자꾸 읽을 때마다 새로우면 이건 안 되는 것 아닌가. 하.)


"현재의 토론에서는 욕망 자체가 주축을 이룬다. 미투의 특징은 여성들이 자신의 육체적 욕망을 수동적 역할로만 인정한다는 데 있다. 결국 미투 운동은 남성의 욕망에 대처하고 남성의 욕망을 물리치며 남성의 욕망으로부터 여성을 효과적으로 지킬 수 있는 전략을 목표로 삼는다. 이런 노력에서 여성적인 것 자체의 자리를 찾아보기란 어렵다. 우리는 여성의 욕망에 대해 아무것도, 정말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 

 도저히 도망칠 수 없는 폭력에 노출되었더라도 여성이 섹스에 적극적이어야 한다는 말을 하자는 것이 아니다. 남녀 관계의 중심에 전능한 남근이 있고 그것을 중심으로 세상이 돈다고 주장하는 고리타분한 욕망의 경제학을 뜯어고쳐야 한다. 남성의 욕망이 우월하므로 여성은 그저 반응만 할 수 있다고 말하는 그 욕망의 경제학 말이다." 

"더 심각한 문제는 'Yes Means Yes' 규정의 해방적 효과가 근본적으로 의심스럽다는 데 있다. 여기서도 성적 만족을 원하는 공격적이고 힘 있는 남성과 그에게 허락을 하거나 그를 거부하는 여성이라는 도식이 되풀이된다. 슬라보예 지젝의 표현을 빌리면 이런 논의의 귀결점은 여성을 "훨씬 더 굴종적인 위치로 데려다 놓는다. 극단적으로 표현하자면, 여성은 남성이 자신을 정복하기를 원한다고 시인해야 한다. 근본적으로 남성이 그렇게 해주기를 바란다는 공개 설명의 등가물을 제시해야 하는 것이다." " 

"그러므로 생물학을 들먹이며 남성은 공격적이고 적극적이며, 여성은 방어적이고 수동적이라고 말하는 헛소리는 땅에 묻어버리자. 그 무엇도 그런 이분법이 옳다고 입증하지 않는다. 

 역사적으로 여성을 약자의 지위로 추방해버렸던 것은 자연이 아니라 남성의 마음 깊은 곳에 숨어 있는 오래된 공포다. 힘 있는 여성을 향한 남성의 두려움이다." 

(<힘 있는 여성 - 페미니즘은 어디로 가야 하는가> 스베냐 플라스푈러 



















......                      

그러니까, 나는 이런 글을 읽을 때마다 '맞다, 나는 너무 모른다, 나도 모르겠고 너도 모르겠어서 정말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를 반복한다. 정말 너무 모르지 않나, 나는? 단순히 욕망이 적은 것이라고 치부하면 그만이겠으나 또 내가 얼마나, 어떤 욕망을 갖고 있는지를 탐구하기는 너무 귀찮단 말이다. 그거 꼭 해야 함? 이렇게 되어버리는 것. 몰라도 살 수 있고 안 해도 살 수 있다. 왜 노력해야 함? 안 하면 안 됨? 근데 또 슬쩍 궁금하기도 하단 말이지. 이것 참. 그런데... 내가 궁금해한다는 바로 그 사실도 사회적 가스라이팅의 결과에서 온 것이... 아닐까? 평생을 그 가스라이팅 때문에 이런 내가 되었는데? 쾌락은 모두에게 좋으니 무조건적인 탐구를 명한다! 얼씨구, 언제는 알려주지도 않아놓고 이제와서 이러기야??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면서 '모르겠다'고 말하는 것이 좀 편안해졌다. 아무튼 지금의 내 생각은 이렇다. '(이성애)(삽입)섹스는 평등할 수 없다. 그건 불가능하다.'



......

여기까지 써놓고 단발머리님이 쓰신 글에 달린 댓글들을 보는데 아 이런! 동질감! 뿜뿜 하고 말았다. (단발머리님의 좋은 글 -> https://blog.aladin.co.kr/798187174/14327166) 에이섹슈얼도 아니고 바이섹슈얼도 아니고 그렇다고 이성애 욕망의 전차 위에 탑승할 수도 없는 그 애매모호한 위치에 있는 분들이 나 말고도 있쒀!(짐작은 했다.) 그렇다면 이건 대체로 기혼여성들이 경험하고 그래서 알고 있고 나와 비슷한 상황이라는 말인데. 나는 처절(?)한 논쟁과 스트레스 속에서 이런 상황을 해결?개척?전환?해나가는 중이다. 그러나 내가 나를 잘 모르니(헷갈림) 해결은 묘연하고, 이런 이야기를 해주는 사람은 없고. 이런 스트레스를 받아가면서 과연 이 상황을 바꿔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에 대해 또 고민하고. 며칠 전에 산책을 하다가 그런 생각을 했다. 이끼는 좋겠구나. 그냥 그 자리에서 태어난 대로 살면서 다른 유기체도 품어주고 해가 비치면 해를 쬐고 그늘이 지면 그늘을 쬐고 비가 오면 비를 맞고 눈이 오면 눈도 맞고 그러다 파헤쳐지면 파헤쳐진 자리에서 또 살아가고 밟혀도 그만 안 밟혀도 그만... 나는 이끼가 되고 싶네. 여러 가지 문제로 골머리 앓을 때마다 나는 이끼가 되고 싶네. 인간은 정말 머리아픈 존재다. 



(제목만 거창한 갈팡질팡 페이퍼가 되고 말았다... 뭐 그런 거지...) 




남성도 여성과 마찬가지로 성적이지 않은 이유로 섹스를 추구하도록 동기를 부여받는다. 그들은 자신의 남성성을 주장해야 하기 때문에, 발기·사정·권력 간의 연관관계 때문에, 실패에 따르는 사회적 처벌 때문에 섹스를 추구한다. 여성에겐 섹스를 해야 할 이유와 이득이 있는 것이 아니고, 남성에겐 순수한 욕망이 있는 것도 아니다. 우리가 남성의 성적이지 않은 동기, 그들의 이유, 그들의 이득을 보이지 않게 은폐했을 뿐이다. 우리는 이것을 자세히 살펴보지 않은 채 방치했고, 남성의 욕망을 사회적으로 활성화되고 인정되고 강제된 행동이 아니라, 처음부터 생물학적으로 주어진 것으로 취급한다. - P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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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티나무 2023-02-06 21:0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대표책 이미지 뒤바뀌는 거 북플의 버벅 중 하나다. <성 정치학> 읽으면서 쓴 글 아니라고.

미미 2023-02-06 21:1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난티나무님 여성과 남성 모두 가스라이팅을 당해왔다는 지적에 공감합니다.
<힘 있는 여성> 바로 위의 글은 그 책의 내용인가요?

난티나무 2023-02-06 21:30   좋아요 2 | URL
네 맞아요~^^

시에나 2023-02-07 12:4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전자책으로 더 좋은 섹스... 이 책 주문하고야 말았습니다. 아우 궁금해요.

˝관계는 섹스를 통해 다져지게 마련이고 낮은 욕망은 반드시 노력을 통해 극복되어야 하는 것이라면우리는 관계를 위한 합당한 ‘노력‘과 섹스에 대한 부당한 강압의 차이를 어떻게 구분할 수 있을까?˝
>>> 저 여기에 진짜 손 들고 일어나고 싶어요. 섹스에 대한 욕망이 모두에게 자연스럽지 않다고 생각하고, 특히 한 3년 지나면 상대에 대한 성욕이 감소하는 건 전혀 이상한 게 아니라고 보거든요. 그런데 그걸 억지로 노력해서 끌어올려라, 아니면 너희들은 불행해질 것이다!! 라고 말하는 게 너무나 너무나 이상합니다. (고미숙 샘은 성애적 사랑은 10년 이상 가기 어렵고 만약 그게 가능한 커플이라면 엄청난 인연이라고) 여기에서도 우린 끝없이 정상/비정상을 나누는 거 같아요.

난티나무 2023-02-07 19:02   좋아요 1 | URL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말씀하신 책 부분 정확히 일치하는 지점이고요.
이게(강압) 조금이라도 관계에서 드러나면 다행인데 그렇지 않은 경우일 때 정말 모호하고 답을 찾기 어려운 것 같아요. 그러나 한편으론 정도야 어찌 됐든 결과적으로 강압이라는 생각도 들고요. 여성뿐만 아니라 남성도 인식이 바뀌어야 할 텐데 그건 요원해 보이고요...

책 저는 좋았어요.^^

다락방 2023-02-07 11:5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내일의 섹스는 더 좋아질 것이다> 제목 때문에 되게 사기 싫은 책이었는데 오늘 난티나무 님 페이퍼에서 언급되는 걸 보니 사고싶어지네요. 특히 섹스의 ‘맥락‘ 때문에요. 맞습니다, 맥락이죠!
이런 당연한 말이 회자되지 않고 항상 성적 욕망, 욕망, 욕망.. 만 돌아다니는걸 보면 확실히 힘있는 쪽이 어느쪽인가를 알 수 있을 것 같아요. 맥락속에 발생되는 욕망이 맞잖아요? 맞는 말을 이미 누군가 어디서 했잖아요? 그런데 왜 이 맥락에 대해서는 어느 매체에서도 말하지 않고 주변에서도 말하지 않을까요? 아무튼 저 책 읽어보겠습니다. 제목은 여전히 정말 읽기 싫은 제목이지만...

난티나무 2023-02-07 19:04   좋아요 2 | URL
그러니까 말입니다. 그래서 자꾸 이야기되어야 하고 이야기된 것을 자꾸 다시 말해야 하는 것같아요. 그러므로 이 책을 사읽으시길 추천하는 바입니다.ㅎㅎㅎ
책 제목은 푸코가 한 말이라고 하는데 어떤 ‘맥락‘에서 나온 말인지는 잘 모르지만 저도 처음엔 표지도 그렇고 참 별로다 생각했어요. 다행(?)스럽게도 표지에 물음표를 가득 찍어놓아 그나마 좀 낫네요.ㅎㅎ

공쟝쟝 2023-02-08 08:08   좋아요 1 | URL
현대의 뇌과학과 신경과학은 중독 역시 맥락의존적이라고(중얼중얼)...... 찾아서 댓글 달겠습니다.

책읽는나무 2023-02-08 06:1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맥락, 가스라이팅, 자발적 욕망, 반응적 욕망...
섹슈얼에 대한 나의 반응이 ‘병‘이라고 친구 하나가 그러던데, 물론 제 남편도 그러던데....가스라이팅 당했었군! 생각 들면서, 이제사 분노가~ㅋㅋㅋ
올려주신 책들 이야기!
좀 놀라움이로군요?
천천히 찾아 읽어볼만한 책들입니다.^^

난티나무 2023-02-08 18:41   좋아요 1 | URL
분노를 터뜨려주십시오, 책읽는나무님~!~!!!!!ㅎㅎ
분노해야 합니다~!!!
우리가 이상한 게 아니라 사회가 이상한 거예요...ㅠㅠ
책읽는나무님의 책읽기를 늘 응원합니다.^^

단발머리 2023-02-08 07:4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우아, 난티나무님 이 글 너무 좋네요. 최근에 읽은 책이 겹치는게 이런 좋은 점이 있네요. 조금 더 이해가 쉽고요. 물론 아직 모르는 부분이 더 많지만요 ㅎㅎ 좋은 글이라고 링크까지 해주시니 가문의 영광입니다^^

전 이 부분과는 별개로.... 사실 전 남성의 욕망에 대해서는 별로 궁금하지도 않고, 지나치게 과장된 측면이 있다, 정도로 짚으면 된다고 생각하거든요. 전, 여성의 욕망에 대해 관심이 있어요. 그러니까, 이것이 자신의 욕망이라고 ‘믿고 있는‘ 여성의 (교육된 혹은 강요된) 욕망과 그리고 진짜 순수한, 동물적인 욕망이요. 이 선이 얼마나 얇고 투명한지를 밝힌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에 가깝다는 걸 알지만, 전 그게 궁금해요. 어디까지 문화인가, 어디까지 본능인가.
좋은 글 읽다보니 생각이 많아지네요. 오늘도 잘 읽고 갑니다. 다음편을 기다리는 마음 ㅋㅋㅋㅋㅋㅋ

난티나무 2023-02-08 18:48   좋아요 0 | URL
저도 남성의 욕망은 단순하게 생각했는데, 생물학적 설명에 솔깃!하기도 했었고요, 그런데 그렇게 단순하게 치부해버리면 남성들은 자신의 욕망을 영영 생각하지 않을 것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여성들이 여성의 욕망에 대해 고민하고 탐구하는 것처럼 남성도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요, 그게 되어야 섹스와 욕망에 변화가 오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러니까 제가 남성의 욕망도 파헤치겠다는 말은 아님.ㅋㅋㅋ
단발머리님이 말씀하신 그 선, 그거 정말 알기 어렵고요, 저도 궁금하고요, 그 지점이 일치해 반갑고요^^, 생각 많은 거 어유 그거 말로 이루 다 못하죠.ㅠㅠ

공쟝쟝 2023-02-08 08:1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333) 이와 관련해 최신 신경과학이 밝혀낸 가장 놀라운 사실은 모든신경활동이 맥락 의존적인 특성을 지닌다는 것이다. 우리의 사고와감정, 행동은 전부 신경화학적인 뇌 활동의 산물인데도 이 활동을 일으키는 원인은 대부분 뇌 안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뇌는 우리가속한 진화론적, 사회적, 문화적 맥락을 반영한다. 뇌는 우리의 사고, 감정, 행동이 자라날 수 있는 흙의 역할을 하지만, 이들 각각은 뇌내부의 구조물 및 외부의 요인들이 상호작용한 결과물이다. 우리는 사회적 동물로 유전체의 구조와 활동, 그리고 뉴런 간의 전기화학적 흐름에 깊은 영향을 미쳐 결국 우리의 모든 행동과 경험에까지 영향을주는 다양한 맥락 속에서 성장한다. 그러므로 중독 문제의 해답은 뇌안에서만 찾을 것이 아니라 여러 맥락을 고려해야 한다. 현재 인류는진화의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도 세계가 겪는 비극과 고통을 날카롭게 인식한다. 그에 따른 부담을 외면하고 부정하려는 시도가 점점 더절박하고 만연해가는 고통스러운 상황이기도 하다.˝
- <중독에 빠진 뇌과학자>

온사회가 가스라이팅 하는 것 맞고요, 그런 ‘말들‘이 내 몸에 작용하므로, 나 에게 맞는 맥락을 창조하기 위해서 끝없이 질문 하는 거. 나는 그거 제일 잘하는 사람이 난티님이라고 생각해요. 좋은 뇌를 가지셨네요? 뇌를 자극하는 좋은 친구들을 가지셨고요 ㅋㅋㅋ 참고로 저도 이 책 샀어요 ㅋㅋㅋ 언제 읽을지는 모르겠는데 갖춰는 놓음ㅋㅋㅋ

난티나무 2023-02-08 19:03   좋아요 0 | URL
어엇 저 어제 <성정치학>읽다가 밀렛이 잠깐 언급한 중독, 보면서 와 진짜 맥락,이구나, 생각했는데 공쟝쟝님이 똭! 알려주시니 이렇게 감개무량(응?)할 데가요~!! 모든 것은 연결되어 있따!!!
제가 좋은(?) 뇌를 가졌는지는 ㅋㅋ ㅠㅠ 잘 모르겠지만 뇌를 자극하는 좋은 친구들은 진짜 맞아요, 맞고요!!! ㅎㅎㅎ ♥️♥️♥️
쟝님 책 샀다는 글 본 듯합니다. 준비된 자! ㅋㅋㅋㅋㅋㅋㅋㅋ
 















(1장 동의에 대하여)


 "추정적인 진화의 역사는 실제로 어떤 특정한 성적 행동도 만들어내거나 정당화하지 않는다. 섹스에 대해 논할 때 진화의 역사가 각광받는 것은 대개 현대의 성적, 사회적 합의를 (과학적 입장을 살짝 묻혀서) 합리화하기 위해서다. 그리고 상당히 이분법적인 이 남성과 여성의 섹슈얼리티라는 개념은 남성의 폭력은 불가피하다는 관점과 밀접하게 붙어 있다. <더 게임>에서 스트라우스는 자신과 동료인 "미스터리(픽업 아티스트의 세계에는 터무니없는 별명이 많다)'가 서툴고 사회적으로 미숙한 남성들에게 가르치는 기술이 사람을 조종하는 기술이라는 윤리적 문제에 대해 깊이 고민한다. 그는 스스로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며 이 문제를 말끔히 합리화한다. 


 "꾸준히 신문이나 논픽션 범죄 르포를 읽는 사람이라면 다들 알겠지만, 납치부터 총기 난사까지 폭력 범죄의 상당한 비율이 남성의 좌절된 성적 충동 및 욕망으로 인한 결과다. 따라서 미스터리와 나는 이러한 유형의 남자들을 사회화시켜주면서 이 세상을 더 안전한 곳으로 만들고 있다." 


 남성에게는 성적 배출구가 필요하며, 배출하지 못하면 그들은 폭력적으로 변한다는 것이다." (76)


인간 진화의 역사는 추정적인 것이다, 생물학적 진화의 역사는 섹스에 대해 합당한 근거를 제시하지 못한다, 는 의견에 동의한다. 섹스를 생물학적 관점에서 논하는 글들을 읽을 때 일견 수긍하면서도 의아함을 떨쳐버리지 못한 이유를 말해주는 문장들이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몇몇 책이 떠올랐다. 특히 위 인용구의 마지막 문장을, 까딱 잘못하면 완전히 지지하는 것처럼 읽을 수도 있는 그 빨간 책. 


"그러나 우리는 해결책을 발견해야 한다. 만일 여자가 더 이상 강제적으로 한 남자에게 묶여 있을 필요가 없으면, 욕구를 충족하지 못하는 남자는 그걸 해소할 수 있어야 한다. 만약 그렇게 하지 않으면 새로운 문명은 남자의 공격성으로 인해 몰락할 위협을 받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진심으로, 다음에 소개할 제안을 여자를 노예화시키라는 요구로 받아들이지 말라고 부탁하고 싶다. 또한 섹스를 못 하는 남자도 야만적이라고 보지 말아달라고 부탁하고 싶다. 나는 예나 지금이나 모두를 위해 더 공정한 세상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여성 선택>) 


저자가 이렇게 진심으로 부탁하고 있음에도 뒤에 이어지는 제시안들은 눈을 부릅뜨기에 충분한 내용들이다. 인간의 진화과정과 생물학적 특성, 사회와 가부장제의 억압, 등에 대한 흥미 있고 훌륭한 책이라고 생각하며 읽던 독자는 말미에 이르러 그만 이 책을 아무에게도 추천하지 못하는 신세가 되었음을 통감하게 된다. 오호 통재라. 저자의 부탁에도 불구하고 이 세상이 두 조각 나면서 천지개벽하는 때가 오지 않고서는 제시안들이 제대로(?) 행해지기란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 (독자의 궁금증 유발을 위해 그 제시안들은 옮기지 않는다. 다만, 책 말미만 읽지 말고 처음부터 읽기를 권하는 바이다. 이렇게 별로 마음에 안 드는 구절을 인용하며 소개하고 싶지는 않았으나 쩝. 일단 소개.) 

















...

" "왜 여자들이 나를 좋아하지 않는지 모르겠지만, 그 죄로 내가 너희들을 전부 처벌할 거야... 너희들을 싹 다 죽여 버리면 기분이 정말 좋겠지... 너희들이 나의 행복한 삶을 빼앗아갔으니 이제는 내가 너희들의 목숨을 전부 가져갈게. 그래야 공평하니까... 여자들이 내게서 섹스를 박탈한 죄를 지었으니 나는 여자들을 전부 처벌할 거야." "(77, 여성혐오범죄로 유명해져버린 엘리엇 로저의 말 같지도 않은 말)


 "여성이 섹스를 해주지 않으면 폭력이 닥쳐올 수도 있기에, 폭력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여성은 남성에게 섹스를 빚지고 있다."(77) "만일 남성이 오직 좌절한 성욕으로 인해, 이제껏 제대로 충족되지 못한 성적 충동으로 인해 범죄를 저지른다면, 여성은 그들과 섹스를 해야 할 의무가 있다. 따라서 남성들은 좌절된 성욕 때문에 강간을 저지른다는 믿음은 여성에게 섹스를 강제하면서 그것을 여성 자신이나 다른 여성의 강간을 예방하기 위한 일로 정당화한다."(78)


'섹스할 권리'. 아무에게도 있지 않은 권리를 스스로에게 부여하며 권리를 박탈당했다고 생각하는 인셀. '섹스할 권리'는 없다. 아미아 스리니바산은 바로 그 구절을 책의 제목으로 삼고 391쪽(한글판)에 이르는 책을 썼다. <내일의 섹스는 다시 좋아질 것이다>에서 잠깐 언급된 엘리엇 로저 사건은 <섹스할 권리>에서 세세하게 다루어진다. 


"... 페미니스트들은 엘리엇 로저와 더 넓게는 인셀 현상을 분석하며 남성의 성적 권리의식, 대상화 및 폭력을 중점적으로 언급했다. 그러나 욕망, 즉 남성의 욕망과 여성의 욕망, 그리고 이 둘의 이데올로기적 형성에 대해서는 거의 다루지 않았다."(138, <섹스할 권리>) 

" ... 우리는 페미니즘이 여성비하나 내숭 또는 자기부정 없이 (즉 여성 개개인에게 '당신은 본인이 원하는 게 뭔지 잘 모르고 있다'라거나 '합의에 묶인 채로는 당신 본인이 사실상 원하는 바를 누릴 수 없다'라는 식으로 말하지 않고서) 욕망의 토대를 면밀히 들여다볼 수 있었으면 하고 바란다. 하지만 일부 페미니스트들은 이것이 불가능하다고 여기는데, 왜냐하면 욕망에 대한 비평의 문을 활짝 열어놓는다 한들 필연적으로 권위주의적 도덕주의가 따라올 것이라 보기 때문이다(우리는 이런 페미니스트들이 주디스 슈클라가 권위주의적 대안들에 대한 공포로 생겨난 자유주의, 즉 '공포의 자유주의'liberalism of fear를 주장했듯 일종의 '공포로 인한 섹스 긍정주의'를 옹호하는 주장을 펼친다고 생각할 수 있다). 더욱이 욕망을 재정치화하는 데에는 성적 권리의식 담론을 부추길 위험도 존재한다. 성적으로 부당하게 주변화되거나 배제된 사람들에 대한 논의는 이들에겐 섹스할 권리가 있으며, 이들과의 섹스를 거부하는 사람은 이들의 권리를 침해하는 격이라는 견해로 이어질 수 있다. 그야말로 끔찍한 관점이다. 다른 누구와 성관계를 가질 의무는 아무에게도 없다. 이는 자명한 진리요, 엘리엇 로저를 순교자로 추앙하며 분노하는 수많은 인셀과 마찬가지로 로저 본인이 외면하려 한 진실이기도 하다. ..." (153~154, <섹스할 권리>) 


<내일의 섹스는 다시 좋아질 것이다> 2장의 제목도 '욕망에 대하여'다. 우리는 다른 모든 '개념'들과 마찬가지로 '욕망'이라는 것에 대해서도 제대로 생각해보지 않았던 것같다. (왜냐하면 생각하면 할수록 머리만 아파오지 뚜렷한 답이 나오지 않기 때문에, 사실은 욕망이 어떤 것인지조차 잘 모르기 때문에, 어떤 것이라고 정의내리기 모호해서, "당신이 다른 여성의 몸이나 얼굴, 매력, 여유로움, 탁월함에 느끼는 질투가 실은 질투가 아니라 욕망이라면?"(171)같은 스리니바산의 질문에 대답하기 어렵기 때문에, 기타등등의 이유로.) 역사적으로 여성의 욕망에 대해서는 많은 학자들이 연구를 했다. 그러나 남성의 욕망은? 남성의 정체성은? 어째서 남성은 남성을 연구하지 않는가? 이 질문에 남편이 칼같은 정답을 내놓았다. '남자들이 남자를 연구하면 다 뽀록날 테니까.'  

위의 인용구는 생각할 거리를 많이 던져주고 있는데, 가령 '페미니즘이 여성비하나 내숭 또는 자기부정 없이', '권위주의적 도덕주의', '공포로 인한 섹스 긍정주의', '욕망을 재정치화' 같은 구절들이 그렇다. 하. 머리 복잡해. 복잡하기만 하고 그냥 그 상태라서 더 복잡하다.ㅠㅠ


마구잡이로 쓰다 보니 <섹스할 권리>를 자꾸 인용하게 된다. 책을 읽고 무엇이 됐든 글을 써두지 않으면 이렇게 되는 법.ㅎㅎ (아무튼 이 책은 인셀을 분석하면서 페미니즘의 방향을 생각하게 하는 책으로, 매우 재밌으니 읽어보시기를 권유함. 이 페이퍼의 주된 목적이기도 한 책소개.^^;;) 



















...
최근 본 책들 중 <남성 특권>도 한 장에서 인셀을 다룬다. 아래와 같은 관점을 가지고 인셀범죄를 분석하고 있다는 점을 높이 산다. 

" 게다가 좀 더 섬세히 따져보면, 인셀이 더욱 폭넓고 뿌리 깊은 문화적 현상의 징후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말하자면 인셀은 타인이 자신을 지속적으로, 애정과 존경을 담아 우러러보길 기대하는 남성들이 가진 유해한 특권의식의 결정체다. 그리고 이들은 그런 눈길로 자신들을 추앙하지 않았거나 그렇게 하기를 거부한 사람들을 겨냥하고 심지어 파괴한다. 그런 애정과 추앙을 마땅히 받아야 한다고 믿는 특권의식이 가정폭력, 데이트폭력, 그리고 친밀관계에 있는 파트너에게 폭력을 가하는 상당수 남성들과 공유하는 특질이기도 하다는 것을 이 책에서 밝히고자 한다." (37~38, <남성 특권>)

















...

다시, 이 책, 우리의 푸코옹께서 했다는 말, "내일의 섹스는 다시 좋아질 것이다"로 돌아가야 하는데, 너무 길어질 듯해 여기서 줄여야 겠다. 다음 페이퍼는 '여성의 욕망'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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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오 2023-02-04 04: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아아악 진짜 너무 싫어요 진짜 아오 ㅅㅂ 섹스 못하면 섹스 안하고 살면 되지 섹스할 권리가 어딨냐 이 도태남들아!!! 진짜 섹스 필요 없는 사람으로서 이해가 안 됩니다. 할 수 있는데 안 하는 거랑 하고 싶은데도 못 하는 건 다른 건가? 근데 섹스 안 해도 되잖아? 밥은 못 먹으면 죽는데 섹스는 안 해도 살잖아. 나도 시그니엘 살고 싶은데 못 산다고 폭력 저지르고 다니지는 않는다고. 진짜 너무 싫다... 아무튼 섹스할 권리랑 남성 특권은 저도 궁금한 책입니다. 다락방님이 최근에 리뷰 올리신 섹스 자본이란 무엇인가에서도 인셀을 다루는 것 같고요. 이 새벽에 또 열뻗치네...

난티나무 2023-02-04 05:05   좋아요 3 | URL
‘섹스는 안 하면 안 되는 것이며 ‘나‘에게 남근이 있는 한 죽기 전까지 그것을 여성에게 사용해야 하며 남자라면 무릇 응당 그러해야 한다‘는 것이 일반적인 (이성애)남성의 생각인 듯 합니다.ㅠㅠ 정도의 차이만 있지 않을까, 혼자 생각해요. 새벽에 열뻗쳐서 어케요.^^;;;;;
섹스할 권리, 남성 특권, 두 권 다 좋아요. 섹스 자본이란 무엇인가,도 나중에 도전~

공쟝쟝 2023-02-04 09:50   좋아요 0 | URL
제가 남자 아니어서 남자 몸 가진 사람한테 물어봤는 데 2차 성징이 시작되면 고추가 못견디개 근지럽대요…. 크크크크크크크크크크큭 (그만 하자…)

독서괭 2023-02-04 08:5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그래서 제시안이 뭘까? 궁금해하며 읽는데 제시안을 제시안해주시다니… ㅠㅠ

독서괭 2023-02-04 08:53   좋아요 2 | URL
더 길게 쓰려고 했는데 등록을 눌러버렸네요 ㅋ 섹스할 권리. 성매매가 필요악이라고 하면서 드는 논거중에 장애인등 섹스하기가 어려운 사람들의 권리(?)가 있잖아요. 그거 정말이지 여자를 타자로 보는 시선이라고 생각해요. 아니 섹스할 권리라니, 섹스가 혼자 하는 건가! 상대의 권리는 어디로??
엘리엇로저 이야기 여기저기서 많이 보는데 넘 싫네요. 저는 <디어마이네임>에서 읽었습니다.

은오 2023-02-04 09:26   좋아요 2 | URL
제시안을 제시안해욬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아 ㅜㅜ 괭님 일부러 하신 드립 성공하셨습니다.
그리고 저도 궁금하더라고요. 진짜 저 책 읽어봐야 하나... 근데 제시안은 여자 제공하자는 거 말고는 없을 것 같은데 말입니다. 장애인의 섹스할 권리... 뭐 성봉사... 이런거 저도 같은 생각이에요.

독서괭 2023-02-04 09:36   좋아요 2 | URL
은오님이 웃어주시다니 기쁩니다 ㅋㅋㅋㅋ

난티나무 2023-02-04 17:08   좋아요 0 | URL
푸하하 독서괭님!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맞습니다. 섹스할 ‘권리‘라니, 말도 안 되는 소리죠.ㅠㅠ
인셀 범죄를 분석하는 페미니스트들의 저서가 쏟아져나와 그런 듯하지만 저도 책에서 너무 자주 보게 되어 진짜 싫어요. 범죄자의 얼굴을 뉴스에서 하도 봐서 알아버리게 되는 거랑 비슷한 맥락인 것도 같고요...

난티나무 2023-02-04 17:09   좋아요 0 | URL
그래서 제가 제시안 책을 제안하지 못했습니다... 또로록
남성저자임을 감안해 기특하다 하고 읽었는데 끝부분이끝부분이.....ㅋㅋㅋㅋㅋㅋ

공쟝쟝 2023-02-04 09: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시 끝까지파는ㅋㅋㅋㅋ 난티나무 ㅋㅋㅋㅋ 야호!!!! 난티나무의 섹탐구!!!

난티나무 2023-02-04 17:10   좋아요 0 | URL
끝까지 파면 뭐가 있을까요? 참 궁금하다~~~ㅋㅋㅋㅋㅋㅋㅋ

미미 2023-02-04 10: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그래서 난티나무님 별점을 안주신거였군요!
제시안들 너무너무 궁금합니다.ㅋㅋㅋㅋㅋㅋ
˝왜 여자들이 나를 좋아하지 않는지....˝는 총기난사범들이 하는 변명하고
참 비슷하네요. 여기 해당되는 남성들의 섹스할권리의 맥락은 ‘군 위안부 문제‘와도
연결되는 것 같구요. 다음 페이퍼도 기다립니다. <섹스할 권리>찜~♡

난티나무 2023-02-04 13:35   좋아요 1 | URL
아앗 저기 제시안 책은 빨간 책이에요! 내일의 섹스…,가 아닙니다.^^;;;;
혼란스럽게 썼군요 제가.ㅠㅠ 이따 수정할게요.ㅎㅎㅎ 급하게 이 댓글만 먼저 달아놓고요.^^

난티나무 2023-02-04 17:15   좋아요 1 | URL
말씀처럼 ‘군 위안부 문제‘도 ‘성매매‘도 연결되지 않는 것이 없죠. 총기난사범들, 데이트폭력 휘두르는 자들, 아니 거의 모든 남자들의 무의식 속에 깔려있는 것 아닐까 싶어요. ‘자아‘가 남근이고 세상의 주인이 ‘나‘인 사람들=남성,이라고 하니까요. 평범한 남성도 기본 마인드는 그런 듯.ㅎㅎ 웃을 일이 아닌데 웃음이 난다...@@

단발머리 2023-02-04 12: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최근에 <섹스할 권리>를 읽어서 반가워하면서 읽었습니다. 오래오래 생각해 볼 문제이고, son‘s mom으로서도 고민되는 지점이에요. 다음 페이퍼 기다리고 있을게요, 난티나무님!! 잘 읽고 갑니다!!

난티나무 2023-02-04 17:19   좋아요 0 | URL
어휴 단발머리님, 공감합니다. 여성으로 살기도 힘들어 죽겠는데 역할이 도대체 몇 개인가요. 그 중에서도 내가 세상에 내어놓은 ㅠㅠ 아이들, 그 땐 몰랐지만 지금은 알아서 괴로운 게 너무 많아요. ㅠㅠ

바람돌이 2023-02-04 14:3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섹스를 못하는 것을 대부분의 여성은 개인의 취향이든 선택이든 아니면 포기든 하여튼 어쨌든 개인의 문제로 받아들이는데, 남성은 그것이 섹스의 문제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남성사회 내에서의 서열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듯합니다. 말로는 남성의 성욕은 참을 수 없는 것이다라고 하지만 사실은 남성연대와 남성특권을 유지하기 위해 자신들 세계 내에서도 서열짓기를 하고, 이를 빙자해 안되면 폭력으로라도 여성을 억압하면서 자신의 서열을 유지하고자 하는 욕망. 이 문제를 개인의 문제로 읽어버리면 진짜 저 나쁜 놈들 거세하는거 외엔 답이 없어지므로 좀 더 다방면에서 접근되어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난티나무 2023-02-04 17:29   좋아요 2 | URL
바람돌이님, 구구절절 옳으신 말씀!! 그런 의미에서 남성의 섹욕은 섹욕이 아닌 거죠. 성욕,이라는 말에 우리가 얼마나 속아왔는지. 남성문제는 연구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남성들이 이걸 안 해요.ㅠㅠ 할 필요가 없는 세상이야! 페미니스트들만 애가 탑니다... 안타깝고요.

더하여, 자신의 섹스에 대한 여성의 인식도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실제로 저만 해도 섹스와 관련된 것들을 예전에는 내가 문제다,라고 생각했었거든요. 너의 생각도 문제야, 이건 개인적인 문제만이 아니야,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각성이 필요합니다.

시에나 2023-02-06 08: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섹스할 권리‘ 아직 안 읽었는데, 저게 남자들이 주장하는 섹스할 권리를 말하는 거였군요? 으악.
대체 섹스가 뭐길래!! 남자들은 저딴 식인데.. ..

저도 섹스탐구 (지금은 다른 책 읽느라 쉬고 있지만) 계속 해봅니다. 섹스를 ‘안 해도‘ 되는 권리의 정당성을 만들고 싶어요.

난티나무 2023-02-06 19:55   좋아요 1 | URL
매실님의 탐구를 응원합니다. 대차게 탐구해주세요.ㅎㅎㅎ
많은 기혼여성이 비슷한 생각을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말하지 않을 뿐이죠.ㅠㅠ

다락방 2023-03-16 14: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전 왜 이 글을 지금 읽었죠? 난티나무 님이 링크 주시지 않았으면 이걸 계속 놓치고 살았겠네요. 그리고 다행히도 저는 <섹스할 권리>도 <내일의 섹스는 다시 좋아질 것이다>도 사두었다고 합니다. 이제 읽는 일만 남았네요. 난티나무 님이 인셀 에 대해서 이렇게 독자적인 페이퍼를 써주셨다니, 우리의 관심사가 통했네요!!

난티나무 2023-03-17 00:31   좋아요 0 | URL
아! 다락방님도 놓치는 글이 있다! ㅎㅎ 저도 가끔 그렇습니다. 못 읽고 넘어가는 글들이 있어요.

역시 모두 갖추신 다락방님^^ 두 권 어떻게 읽으실지 벌써부터 궁금하고 기대되어요~~
 

















제목이 내 눈길을 끌었음을 부정하지 않겠다. 남편의 아름다움이라고? 이 부분에서 나와 같은 느낌을, 같은 생각을 한 사람이 많으리라 본다. 남편의 아름다움? 그 아름다움, 어떤 아름다움을 말하는 건가? 얼마나 어떻게 아름다운지 한번 볼까? 진정 남편의 아름다움이란 말이냐? 반어법이겠지? 


그렇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 남편은 아름답지 않다! 유수의 학자와 비평가들이 뭐라고 말했건간에 나는 그렇게 읽었다. ㄱㄴㅁㅅㅋ 라고 할 수 있겠다. 앤 카슨은 어쩌면 의미를 꼬고 또 비꼬아 겉으로는 마치 아름다움을 찬양하는 것처럼 보이도록 해놓고 이 사람들아 뭐가 아름다운 건지 알기나 하고 아름다움을 논하는 것이야? 이러면서 남자들을 대차게 까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존 키츠라는 옛 시인은 사랑하는 여인을 향해 어마어마한 양의 송가, 사랑시를 썼다고 한다. 앤 카슨은 존 키츠의 시 등에서 문장들을 가져와 서두에 놓고 한 여자와 한 남자의 이야기를 한다. 이성애의 결과인 결혼과 별거, 이혼, 이후에 이어지는 전남편과의 관계. 남자는 줄기차게 너를 사랑해, 너만을 사랑해, 지금 내 곁에는 비록 아기와 여자가 있지만 그래도 내 사랑은 너 뿐이야, 이 ㅈㄹ을 한다. 아주 가지가지 골고루도 하지. 앤 카슨이 존 키츠를 가져온 것에는 분명 이유가 있다. 

허구의 에세이라고 부제가 붙은 글은 에세이의 형식으로도 시의 형식으로도 규정할 수 없게 규정(?)을 벗어난다. 남자는 규정을 벗어나지 않는다. 남자들의 규정, 남자들의 시각, 여자를 대하는 태도. 그러면 여자는 어떤가 하면, 답답하게도 역시 규정을 벗어나지 않는다. 별거와 이혼을 거치고 전남편의 ㅈㄹ편지를 받으면서도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게 아름다움 때문이라고? 글쎄올시다. 그 아름다움, 나는 반댈세. 그래서 책 뒤의 옮긴이의 말에도, 책소개글에도, 공감하지 못하겠다. 아름다움에 대한 갈망이라니. 나는 그냥 내 맘대로 읽을란다. 삐딱하게. 


앤 카슨은 "캐나다 출신의 시인, 에세이스트, 번역가. 고전학자"라고 한다. 책날개 저자 소개글을 읽으면서 이 작가의 글이 그토록 난해하게 느껴졌던 이유가 이해되었다. 고.전.문.학. 고대 그리스어 전공. 해박한 지식을 바탕으로 쓴 앤 카슨의 글이 이해가 잘 될 리 만무. 하지만 그래도 읽기는 다 읽었다. 끝까지 읽은 것으로 일단은 충분하다. 암. 자고로 독후감은 일단이 아니라 이단이 백미 아니던가. 어쨌거나 <남편의 아름다움>은 읽었으니 이제 다른 한 권, <빨강의 자서전>이 기다린다. 좀더 오래 기다리라고 해야겠다. <빨강의 자서전>에는 헤라클레스와 게리온이 등장한다. 배경지식이 필요하다. 젠장. 



+ 존 키츠 <그리스 항아리에 부치는 송가> 에서 시작한 글이라고. 그 시는 다음과 같은 구절로 끝난다. 

"아름다움은 진리이며, 진리는 아름다움이다. 이는 그대가 지상에서 아는 모든 것이고, 알아야 할 모든 것이다." (책날개 글에서 발췌. 검색해 찾은 한글판 책에서 조금 가져오면 "늙음이 지금 세대를 쇠약하게 만들 때 / 너는 우리의 고통과 다른 괴로움 속에 남아 / 인간의 친구로서 인간에게 이렇게 말할 것이다. / "아름다움은 진리요, 진리는 아름다움이다."라고 - 이것이 / 너희들이 이 세상에서 알고 있는 전부요, 알아야 할 전부이다.") 

존 키츠가 말하는 아름다움은 앤 카슨이 말하는 아름다움과 정녕 같은 것일까? 그.럴.리.가. 나는 끝까지 의심한다. 아니죠, 앤 카슨님?????? 



++ 오늘 아침 북플에서 독서괭님의 글을 읽다가 '존 키츠'의 이름을 보았다. <다락방의 미친 여자>를 인용하셨는데 거기에 키츠의 이름이! 아, 나는 일년 전 <다락방의 미친 여자>를 읽었는데... 그러니까 존 키츠가 책에 언급되었다는 사실을 기억 못하는 거 당연한 거죠?ㅠㅠ 심지어 책 뒤의 찾아보기에는 존 키츠가 언급된 곳이 이렇게나 많아...@@ 


너무 신기하다. 어제 이 페이퍼 쓰면서 존 키츠 누구냐, 이러면서 궁시렁대고 오늘 똭 우연하게도(아니 필연인가 @@) 키츠의 이름을 보게 되다니. 얼른 벽돌책을 꺼내와서 해당페이지를 펼치고 괭님이 인용해주신 부분 포함 몇 페이지를 읽었다. 오 놀라워라. 이렇게 재밌을 수가! ㅋㅋㅋㅋㅋㅋㅋㅋ 그럼 그렇지, 키츠가 얼마나 위대한 천재시인이었는지는 몰라도 역시 그는 남자였어. 나만 재밌을 수가 없어서 그 부분 몽땅 가져온다. 좀 길지만 읽어보셔유. (며칠 전 은오님 올려주신 아이퐁 기술을 사용했음을 밝힌다. 그런데 오타 작렬이야. 고친다고 눈 좀 아팠다. 그래도 오타 있을 수 있음.) 

....................

 이 모든 것에, (로세티와 그녀의 오빠들이 매우 칭송했던) 존 키츠가 열아홉 살 때 이미 진지하고 열정적으로 예술가의 길에 뛰어들었다는 점을 지적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키츠가 스물한 살이 될 때까지 사실상 그는 자기 발전을 위해 엄청난 계획을 세웠다. ‘오, 10년 동안 나는 시로 나 자신을 압도하리라. / 그리하여 나 자신의 영혼이 명령했던 / 행위를 할 것이다.' 의미 심장하게도 압도하다는 단어가 암시하는 자기희생 이미지는 여기에서 ‘행위‘로서의 시 쓰기나 ‘영혼 만들기‘와 같이 강하게 자신을 주장하는 ‘남성의' 개념에 의해 상쇄된다. 물론 키츠는 적절한 겸손과 심지어 굴욕의 필요성도 이해했다. 이보다 더 효과적인 독학법이 있을까? 동시에 키츠는 자신의 무지조차 모호한 ‘비범함'으로 보며 자신이 사후에 ‘ 영국 시인들‘ 사이에 자리할 것이라는 직관을 주저 없이 선언했다. 이런 자기평가가 ‘허영‘은 아닐까 하는 의심은 추호도 없었다. 모드처럼 키츠도 (1816년 리 헌트와 함께) 시 백일장에 참여했으며, 모드처럼 주어진 주제에 대해 빠르고 즐겁게 소네트를 썼고, 소네트에 자신의 깊은 근심을 투사했다. 소네트의 첫 문장은 (모드의 ‘어떤 수녀는 빛나는 하얀 모슬린 옷을 입고'와 대조적이게도) ‘지상의 시는 결코 죽지 않는다'였다. 키츠가 자신의 소네트에서 시가 모든 곳, 즉 자연의 모든 것에 있듯이 자신에게도 있다는 것을 확신하는 건강함과 기쁨을 표현할 수 있있던 까닭은 적어도 자신이 창조의 주인이라는 남성적 확신 때문이었음에 틀림없다. 이와 대조적으로 모드 로세티는 자신을 연약하고 허영심만 가득한 여자로 보았고, 자연의 지배자가 아니라 고통받은 하인으로 여겼다.
 로세티의 여자 주인공처럼 키츠 또한 터무니없이 이른 나이에 죽었다. 모드는 불안해하는 저자에 의해 불가해하게 ‘전복당했지만, 키츠는 (바이런의 농담이나 셸리의 의심에도 아랑곳없이) 다른 힘이 아니라 유전이라는, 세상에서 가장 적대적인 힘에 쓰러져 죽었다. 모드는 기꺼이 죽었지만 키츠는 소멸과 힘겹게 싸웠고, 한편으로는 ‘편안한 죽음‘을 원하는 고통스러운 소망과도 싸웠다. 키츠가 죽었을 때 친구들은 그의 약혼녀 패니 브론이 보낸 상당수의 편지를 그와 함께 묻었다. 그러나 친구들은 키츠가 썼던 단 한 구절도 없애지 않았다. 로세티는 모드의 일기장을 죽은 저자와 함께 묻는다는 발상을 키츠에게서 얻었을 수도 있다. 동시에 이는 여성 시인이 남성의 은유를 ‘불안과 죄의식‘이라는 여성 이미지로, 얼마나 마조히즘적으로 변형시켰는지 보여준다.
 끝으로, 모드의 마지막 시는 허영심 때문에 ‘그대가 약해질 때를 감지해 그대가 두려워하지 않도록 덮어줄 어둠의 힘'과 어쩌면 허영심을 잡아줄 가부장적 신이 부여한 십자가의 속박이 자신에게 필요하다는 것을 강조하지만, ‘여기 물 위에 자신의 이름을 쓴 자가 누워 있다‘는 키츠의 신랄한 묘비명은 시인이 자신과 예술, 즉 자신의 이름이 영원하리라는 믿음에 열정적으로 헌신했음을 반어적으로 강조한다. 사실 초기 소네트 「키츠에 대하여」에서 크리스티나 로세티는 이 묘비명을 정확하게 인용했는데, ‘이 강한 남자'에게 ‘멋진 운명이 / 비옥한 땅에 떨어졌다. 땅에는 가시가 없고, / 그 자신의 데이지만 피어 있으며, 그의 이름은 노래하는 모든 소박한 가슴에 / 참으로 사랑이 흘러나오는 샘이 될 것‘이라고 선언함으로써 묘비에 새겨진 글귀를 반박하기 위해서였다. 물론 키츠도 자신의 정직하지 못한 묘비명을 부정했다. 이 시는 일반적으로 죽음을 넘어서까지 맹렬하고 노련한 열정으로 시를 쓰고자 했던 키츠의 마지막 상태를 기록했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이 살아 있는 손, 지금은 따뜻하고 마음을 다해 
붙잡을 수 있지만, 만일 무덤의 얼음 같은 침묵 속에서 
차가워진다면, 이 손은 그대의 낮을 괴롭힐 것이며 
그대의 꿈꾸는 밤을 얼어붙게 하리니.
그대가 그대 자신의 가슴속 피가 마르기를 원할 정도로 
그리하여 나의 핏줄에 붉은 생명이 다시 흐르기를 
그리고 그대 양심이 평온해지기를 - 보아라, 여기 있다 - 
나는 그것을 그대에게 내민다.
 
모드는 죽어서 수동적으로 천사처럼 예의 바르게 누워 있는 반면(그리고 살아 있는 크리스티나 로세티가 ‘우리 모두를 위해 아멘‘을 쓰는 데 일생을 바치기 위해 펜을 집어든 반면, 죽은 존 키츠는 죽기를 거부하고 그를 잊어버리겠다고 위협하는 살아 있는 세계를 향해 분노의 주먹을 휘두른다. 키츠는 자신의 마지막 편지의 마지막 문장에서 자신이 공손하지 못했다고 상냥하지만 조롱기 섞어 고백했다. ‘나는 항상 어색하게 인사했기‘ 때문에 인생의 따뜻한 방에서 떠나기를 주저한다고 말이다.


- <다락방의 미친 여자> 15장 체념의 미학 938~941쪽

....................





































억압은 다른 어떤 형태의 담론보다 섹스를 더 잘 말해준다.
현대의 전문가들은 그렇게 주장한다. 사람들은 어떻게 서로에게
지배력을 갖게 되는가?는 대수적()질문이다.

당신은 말하곤 했다. "욕망이 두 배면 사랑이고 사랑이 두 배면 광기야."
광기가 두 배면 결혼이지
내가 덧붙였다
그 독설이 황금률을 만들 의도가 없는
무심한 것이었을 때. - P53

그는 거의 슬픔을 몰랐다. 한 신이 그를 이끌었기에
그는 자신의 운명을 의심하지도 않았다. 나폴레옹이 이렇게 말하곤 했던 삶과 비슷해 보였던.
나는 세상과 세상 사이에 나 자신을 쓴다.
그가 무엇을 쓰는지는 누구와 함께 있느냐에 달려 있었다. - P155

... 우리는 우리가 안전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피신처는 없다. ... - P1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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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3-01-31 23: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응? 하고 들어왔습니다^^
아아!
하고 읽었습니다.

난티나무 2023-02-01 16:45   좋아요 0 | URL
ㅋㅋㅋ 제목이 그렇죠??? ㅎㅎㅎ

잠자냥 2023-01-31 23: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전 이 책 제목 때문에 영 손이 안 가던데! ㅋ 이제 읽어보고 싶어집니다. ㅎㅎㅎ

난티나무 2023-02-01 16:45   좋아요 0 | URL
저는 그래서 오히려 호기심이 발동했어요. ㅋㅋㅋ

다락방 2023-02-01 08: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 책 출간 당시 남편의 아름다움이란 제목에 혹해서 읽었는데 도대체 뭔소린지 모르겠어서 읽자마자 팔아버렸더랬습니다. -.-

잠자냥 2023-02-01 08:52   좋아요 0 | URL
아하 참고 … ㅋㅋㅋㅋㅋ

다락방 2023-02-01 11:01   좋아요 0 | URL
잘 기억 안나지만 제가 안좋아하는 글의 형식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ㅎㅎ

난티나무 2023-02-01 16:51   좋아요 0 | URL
똑똑한 사람들은 글을 그렇게 쓰고자 하는 것일까요? ^^;;;
저도 낯설고 어렵고 이해 안 가는 글이었지만 읽고 나서는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여성은 남성적 글쓰기에서 벗어나야 한다, 혹은 여성의 글을 써야 한다, 식수와 이리가레가 그렇듯이, 앤 카슨도 이런 명제를 세우고 글을 쓴 것은 아닌가 하고요. 그래, 그렇다면 어느 정도는 이해해야지, 하고요. ㅎㅎㅎ
평을 다 읽어본 건 아니지만 그래서 이 책에 대한 평가는 좀 의아해요. 엘리엇상을 받은 이유도 좀 의심이… 남자의 아름다움을 찬양(?)한다고 생각한다면 남자들이 얼마든지 상을 줄 거 같거든요.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그건 아닌 것 같단 말입죠.ㅋㅋㅋㅋㅋㅋ 물론 이건 내용 해석에 대한 생각이니 상과는 별 상관 없겠지만…. ㅋㅋㅋ
 















"애나 울프는 남아프리카에서의 경험을 담은 첫번째 소설의 인세에 의지해서 살아가고 있으나, 지금은 작가로서 글을 쓰지 못해서 고통을 겪고 있는 중이다. 세상이 이토록 끔찍하다면 자신이 무엇을 쓰든지간에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느낀다. 왜냐하면, 자신은 그저 현실의 부정확한 버전만을 창조해낼 뿐임을 알기 때문이다." (137)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아니 자주 하는 것같다. '이게다무슨소용이야' 모드로 들어갈 때, 들어가 앉아있을 때, 내팽개쳐져있을 때. 글쓰기와, 그밖의 아주 사소한 것들까지, 뭣하러, 해서 뭐하게, 의미 없다, 무슨 소용이람. 이런 감정이 어쩌면 책에 나오는 '자기 회의'이겠지. '공격은 자기 회의의 또 다른 면이다.'(141) 나는 어째서 나를 공격하는가. 그러나 이 감정은 고정된 것이 아니어서 시시각각 조금씩 변화도 하고 그 상황에 맞게 치장도 한다. 공격과 동시에 수비가 이루어지는 방어의 기술이 또 현란하다. 이런 상태가 꽤 오래 지속될 때도 있다. 가장 최근에는 지난 두세 달이 그랬다. 무력감과 자기회의를 넘나들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무력감이 워낙 우세해서 자기회의가 쭈그러들 수밖에 없었다는 사실이다. 


그렇게 대체로 못 읽고 못 쓰고 있다가 이런 구절을 만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슬그머니 의욕이 솟는다. 


" "여성은 자신의 몸으로부터 추방된 것처럼 글쓰기로부터 추방당했다. 여성은 여성 자신을 글로 써야 한다. 여성에 대해서 써야 하고, 여성을 글쓰기로 도입해야 한다 - 똑같은 이유로, 똑같은 법으로, 똑같은 치명적인 목표를 가지고" " (206) 


엘렌 식수의 글이다. 작년부터 읽고자 하였으나 떄를 기다리느라(?) 읽지 못하고 있던 책을 마침 또 꺼내두었길래 인용구가 들어있는 부분, [메두사의 웃음] 챕터를 야금야금 읽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런 구절들!


"그대는 왜 글을 쓰지 않는가? 글을 쓰라! 글쓰기는 그대를 위한 것이다. 그대는 그대를 위한 것이다. 그대의 육체는 그대 것이다. 그것을 취하라. 왜 그대가 글을 쓰지 않았는지 나는 안다. (스물일곱 살 이전에 내가 글을 쓰지 않았던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글쓰기가 그대에게는 너무나 높고, 동시에 너무나 위대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글쓰기는 위대한 자들, 다시 말해서 '위대한 남자들'에게 국한된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건 '바보짓'이다. 게다가 그대는 약간 글을 썼었다. 그러나 숨어서 썼었다. 그건 좋지 않다. 숨어서 썼기 때문이다. 글을 쓴다는 것을 스스로 벌했기 때문이다. 끝까지 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니면 글을 쓰면서 저항할 수 없이, 우리가 몰래 자위를 하듯이, 멀리 가고자 한 것이 아니라 그저 긴장을 완화시키고자 했기 때문이다. 너무 지나쳐서 고통스럽게 되지 않을 정도로만 긴장을 풀고자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향유하고 나자마자 우리는 서둘러 자신에게 죄의식을 부과했었다 - 스스로를 용서받게 만들기 위해서. 아니면 서둘러 망각하고 매장했다. 다음번까지. 

글을 쓰라. 아무도 그대를 만류하지 못하리라. 아무것도 그대를 멈추지 못하리라. 남자도, 바보 같은 자본주의 기계도 그대를 멈추게 하지 못하리라. 

......

나는 여성을 쓴다. 여성이 여성을 써야 한다. 그리고 남성은 남성을 써야 한다. 그러므로 이 글에서는 남성을 향한 간접적인 사색밖에는 찾아볼 수 없을 것이다. 남성의 남성성과 남성의 여성성이 남성에게 어떤 것인가를 말하는 것은 남성의 소관이다. 남성들이 자기 자신을 볼 수 있는 눈을 뜨게 될 때, 그때서야 그것은 우리와 상관있는 일이 될 것이다. " (<메두사의 웃음> 12~13) 




얼결에 [메두사의 웃음] 챕터를 다 읽었다. 금방 기분'이가' 좋아져서 컴터를 켠다. 애나 울프의 불안과 자기회의를 떨치기에 차고 넘치는 메두사의 웃음이었다. 글쓰기를 강권(강력히 권유)하는 이 곳, 서재 이웃분들이 생각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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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쟝쟝 2023-01-27 07: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흐흐 넘 좋아요! 제가 밑줄그은 부분과 정확히 일치합니당 (꺄~)

난티나무 2023-01-27 22:48   좋아요 0 | URL
죽어(?)가는 <페미니즘 이론과 비평> 책의 감상을 엘렌 식수가 살렸다! ^^;;;
저도 꺄~~~~~

2023-01-27 08: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1-27 22: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다락방 2023-01-27 08: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용하신 부분 너무 좋네요? 메두사의 웃음 사야겠어요!!

난티나무 2023-01-27 22:51   좋아요 0 | URL
아 의외입니다. 다락방님께 메두사의 웃음이 없다는 사실이~!!! ㅋㅋㅋㅋㅋㅋ

바람돌이 2023-01-27 10: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표지의 저 분이 메두사십니까? 아니 너무 아름답잖아요. 하긴 메두사가 원래 너무 아름다워서 문제였죠. ㅎㅎ
이 책도 사고싶고 아 참... 이 곳은 개미지옥입니다. 오랫만에 오셔서 또 막 뽐뿌를....이 글이 난티나무님 슬럼프 탈출 글이면서 또 책뽐뿌글인거죠. ^^

난티나무 2023-01-27 22:52   좋아요 1 | URL
저의 주된 임무(?)가 책 뽐뿌 아니겠슴니꽈.ㅋㅋㅋㅋ
그런 의미로다가 최근의 책탑도 올려야 하는데 말입죠. 곧~~~ㅎㅎㅎ
슬럼프 탈출!! 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