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 싶은 책이라고 하려다가 보고 싶은 책이라고 쓴다. 요즘은 '읽기'가 아니라 그냥 '보기'가 되어버리고 마는 것 같아서 힘빠진다. 어쨌거나 보고 싶은 책들~
(이거 쓰는 시간에 읽고 있던 책을 보는 게 낫지 않을까 싶은 생각은 애써 떨치고. 언제나 새로운 책에 대한 호기심에 지고 만다. 책 읽기 싫다고 해! 그러면서 왜 자꾸 사고 싶어 하는 건데!)
아침과 오후마다 마시던 커피를 끊은 지는 한참 되었지만 그래도 커피맛을 잊지 못해 대체커피를 마시는 나. 확실히 습관이고 중독성 있다. 옆지기는 아직도 생두를 볶아 드립도 하고 더치도 내리고 에스프레소도 만든다. 내가 마시지 않으니 양과 횟수는 아주 많이 줄었다. 다행인 것은 급할(?) 때 한번씩 가동하던 네스프레소 기계를 치운지 오래 되었다는 사실.
알라딘 메일 훑다가 책 제목을 보고 보관함으로~ 부제 '기후변화와 커피의 미래' 궁금.
"P. 223 같은 기관이 발표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오늘날과 같은 속도로 기후변화가 지속된다면 2050년에는 이론상 적합하다고 알려진 재배 면적의 절반인 1,600만 헥타르에서만 민감한 아라비카를 재배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크로체 가족의 농장에서도 가까운 브라질의 미나스제라이스처럼 덥고 건조한 지역은 물론, 인도와 니카라과의 특정 지역이 어려움을 겪을 것이다. 오늘날 이 지역들에서 가장 많은 아라비카가 재배되고 있지만, 2050년까지 이 지역의 80퍼센트에서 커피 재배는 불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아라비카의 경우 지역들의 의존도가 워낙 높기 때문에 전 세계적으로 공급에 상당한 차질이 빚어질 것이다.
기온이 낮고 일정한 콜롬비아, 에티오피아, 케냐, 인도네시아는 기후변화의 영향이 덜할 것이라고 예측한다. 하지만 여기서도 아라비카 재배에 적합한 경작지 3분의 1은 사라질 것이다. 국제열대농업연구센터International Center for Tropical Agriculture, CIAT의 연구원 크리스티안 번은 “커피 수요가 점점 늘어나기 때문에 미래에는 더 많은 경작지가 필요하지만, 재배 가능 면적 자체가 감소할 것”이라고 말했다."
_ 커피 농장의 안과 밖, 두 세계 사이의 투명성
"P. 246 오늘날 우리는 이미 더 질 좋은 음식을 요구하고 건강과 유기농, 로컬푸드와 탄소발자국에 주의를 기울이고 있다. 그럼에도 우리라는 ‘기계를 작동시키려고’ 어떤 흙탕물이든 커피 잔에 따른다.
우리가 잠깐이라도 멈춘다면 어떻게 될까?
커피의 탄소발자국 대부분이 집 안에서 발생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쓸데없이 커피메이커를 켜두거나 필요 이상으로 커피를 추출하지 않는 것으로 탄소발자국을 줄일 수 있다. 국가별 커피 소비량 통계는 왜곡되어 있다. 판매된 중량을 국민 1인당으로 환산하기 때문인데, 실제로 마시는 양과는 전혀 다르다. 실제로는 다 마시지도 못할 만큼의 커피를 내려 커피메이커를 보온 상태로 두었다가, 결국 부엌에 점점 커피의 쓴 냄새가 퍼지면 남은 커피를 하수구에 흘려보낸다. 오늘날 프렌치 프레스와 모카포트, 푸어 오버pour over(핸드드립) 같은 트렌디한 도구를 사용한다면 커피를 맛있게 마시고 싶은 만큼 낭비 없이 즐길 수 있다. 그러나 일회용 커피 머신, 이른바 캡슐 커피는 해결책이 아니다. 캡슐 커피는 가장 비윤리적으로 카페인을 즐기는 방법이다."
_ 선택의 여지는 없다
제목만 보고 몸으로 하는 운동인 줄. 원제가 Political Action 이다. 항상 내자리에서 뭘 어떻게 해야 할 지 모르겠는 나에게 도움이 되려나?
P. 71 자신의 결의와 열정적인 활동에 자부심을 갖는 것은 좋지만, 자신을 예외적인 사람으로 여기는 것은 잘못이다. 정말이지 활동가들이 남들과 근본적으로 다르다면 효과적으로 활동하기는 어렵다. “당신이 발 딛고 선 곳에서 시작하라.” 이 말은 윤리적인 삶과 관련해 자주 언급되는 중요한 격언 가운데 하나지만, 정치운동의 세계에서도 자신이 발 딛고 선 곳에서 시작해야 할 경우가 많다.
P. 77 가난한 사람들 속에서 운동을 할 때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운동의 대의보다 더 절박하고 더 즉각적인 관심사가 있다는 사실이다. 중산층이 가진 최악의 편견은 다른 모든 사람이 자신들과 마찬가지로 여유로운 생활, 사심 없는 마음, 이상에 대한 열정을 갖고 있다거나 그래야만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P. 81 목표가 중복되거나 유사한 집단들 사이에서는 갈등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그들은 전략에 대한 의견도 다르고, 공략하는 지지층도 다르며 (그러나 실제로는 같은 운동 공간에 있는 핵심 활동가들을 영입하기 위해 경쟁하며), 서로에 대해 멍청이, 골칫거리, 심지어 배신자라고 손가락질하며 비난한다. 이 모든 문제에도 불구하고 연대와 연합은 가능하고 필요하다. ‘낯선 이들과의 동침’도 필요하다는 격언은 사실상 준칙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평소 같으면 말도 섞고 싶지 않을 사람들과 ‘동침’하는 것이야말로 정치활동, 즉 일상적으로 행하는 주장과 책략을 통해 이뤄 내야 할 목표다.
P. 103 흔히들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정치권력을 갖고 싶어 하지 않는다. 이런 사람들에게는 명령을 내리고 싶은 욕구도 없고, 어떻게든 자기주장을 관철하려는 고집도 없다. 다만 옳은 일을 하고 싶고, 누군가 자신에게 무엇이 올바른지 말해 주기를 바랄 뿐이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이제 막 시작한 운동이 직면하게 되는 큰 어려움 중 하나는 운동에 참여한 사람들 가운데서 리더를 선출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 시민 활동가가 리더로 선출되어야 하고 필요한 지원을 받아야 한다. 나는 시민정치가 성공하려면 (특히 지역 수준에서) 시민 리더의 육성보다 중요한 일은 없다고 생각한다.
P. 118 일부 활동가들에게는 보수를(때로는 꽤 많은 보수를) 지급해 그들이 (일시적이나마) 직장을 포기하고도 가족을 부양할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 운동은 일정 수준의 준전문가주의를 수용해야 한다. 왜냐하면 많은 사람들이 ‘아마추어’로 계속 남아 있는 상태에서는 운동이 성공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들에게 보수를 지급하겠다는 태도는 운동이 이들의 활동에 가치를 부여한다는 징표다. 즉, 이들이 무보수로 활동할 수 있을 만큼 재정적으로 여유가 있더라도 보수를 지급하는 것은 그들의 활동이 운동에 꼭 필요하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의사표시다.
P. 122 여성들의 종속적 지위가 시민정치에 가져온 한 가지 결과라 할 수 있는, 수많은 아마추어 운동들이 오래 가지 못하고 단명하는 문제만큼은 꼭 짚고 넘어가고 싶다. 이 문제의 원인은 적어도 어느 정도는 운동 내부의 권력이, 지역에 뿌리내리고 지역에서 책임 있는 역할을 하는 사람들(즉 수많은 여성들)로부터 멀어지고, 지역공동체에서 중요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집중돼 있기 때문이다.
P. 136~137 활동가들이 가져야 할 이상적 태도는, (자신들에게 날아올지도 모를) 비방과 모욕에 대해서는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정치적 이견의 미묘한 차이에 대해서는 민감하게 대응하는 것이다. 현실에서는 이 두 가지가 어느 정도 균형을 이루며 섞여 있다. 패거리 집단이 위험한 이유는, 그들이 공적 논쟁과 사적 음모 간의 균형을 후자 쪽으로 옮겨 놓기 때문이다. 이것은 리더십이 한 무리의 친구들로 구성될 때 특히 더 위험하다. 왜냐하면 그런 상황에서는 자신이 리더십에서 배제된 이유가 정치적인 것이라고 받아들이면 기분 나빠하지 않을 많은 활동가들조차, 인간적인 이유로 배제되었다고 생각하며 분노할 것이 틀림없기 때문이다. 현명한 리더는 친구가 아닌 사람, 심지어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과도 어울리고자 하는 사람이다.
나와 그와 내 아이들과 세상의 모든 사람들을 이해하고 싶다.
목차
서문
1 과잉주체
: 우리는 왜 과잉하는가
2 ADHD의 시간
: 집단 ‘주의력결핍장애’에 걸린 한국사회
3 공황장애의 무게
: 과잉자아의 또 다른 신체반응
4 SNS 조울증
: ‘좋아요’ 이면의 우울함
5 연쇄살인과 묻지마 범죄
: 어떤 범죄도 저지를 수 있다는 ‘전능함’
6 폭식증 자본주의
: 모든 것을 집어삼키는 돈의 힘
7 경계선 주권장애
: ‘과잉주체’들이 모여 만든 민주주의
8 과잉에 저항하기
: 타인을 만나는 훈련
"P. 25 모든 과잉주체는 나르시시스트다. 편집증자이기 때문이다. 자아와 세계의 경계가 철폐되었는데도 과잉하지 않을 수 있는 겸손한 과잉주체란 없다. 아무리 겸손하고 수줍은 행동도 ”투사의 남용“이라서 이미 과잉이다. 심한 경우 그는 ”자신의 피부를 경계(skin-boundary)로 받아들이는 능력을 상실한다. 대출이자도, 월세의 압박도, 엄마의 잔소리도, 어떤 현실의 윤리도 이 결론을 막을 수 없다. 과잉주체는 자신의 자아를 이미 현실에 두지 않기 때문이다. 모든 과잉주체는 하이퍼리얼리스트다."
"P. 44 순간을 권장하는 사회는 ADHD 사회다. 오늘날 시간이 순삭되고 있다. 순간은 지난 세기 패러다임이 그럭저럭 지켜왔던 시간의 경계들을 철폐함으로써 시간 자체를 삭제한다. 이제 인스턴트는 시대정신이다. ‘순간’은 내면화되었다.(...) 순간은 인간에게서 되돌아보는 능력, 시간의 앞뒤를 가리는 능력을 박탈한다.. 순간은 반성, 휴식, 기억 같은 행동을 싫어한다. 되돌아보고 판별하여 경계를 확정하는 행동으로서 과잉을 멈춰 세우기 때문이다. 순간은 저항을 경멸한다."
"P. 65~66 지난 세기의 대미를 장식했던 ‘중2병’과 이번 세기 대유행 중인 ‘관심병’은 본질적인 차이가 있다. 중2병은 멜랑콜리 병이다. “난 지금 미쳐가고 있다. 이 헤드폰에 내 모든 몸과 영혼을 맡겼다. 음악만이 나라에서 허락하는 유일한 마약이니까. 이게 바로 지금의 나다” 중2는 제정신은 상실했어도 ‘나라’라는 국경을 가지고 ‘지금의 나’도 가진다. 반면 초고속 인터넷과 모바일 환경에서 자라난 관종은 정반대의 패러다임이다. 중2가 멜랑콜리 환자라면, 관종은 조증 환자다. 그는 허세를 어그로로 대체하며, ‘좋아요’와 조회 수를 위해서라면 뭐든지 과잉한다. (...) 더 많은 관심, 더 많은 댓글, 더 많은 ‘좋아요’만이 관종의 존재를 증명한다."
나이와 노화와 은퇴와 노년, 이 단어들에 얽힌 무수한 관계, 어떻게 살 것인가와 별다르지 않은 질문들. 그래서 눈에 띄는 책.
책 소개 :
"이게 새로운 은퇴자들의 시대예요." 책 속 인물의 말 한마디가 이 책에 대한 가장 간략한 소개 같다. 집 대신 차에서 살며 평생 일하는 삶, 미국 노년층의 뉴노멀이다. 책은 이 노마드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좇는다. 평생 일했고, 성실했고, 전문 분야가 있었고, 한때 다른 이들에게 학문을 가르치기도 했고, 존경받기도 했던 이들은 지금 길 위에 있다. 세상이 시키는 대로 꼬박꼬박 열심히 살았지만 삶에서 튕겨져 나오는 데는 오랜 시간 걸리지 않았다.
스스로는 상상하지 않았던 미래라도 세상은 이들을 이용할 준비가 되어 있다. 아마존의 물류창고는 차에서 살며 일하는 노년층을 환영한다. 값싸고 성실하고 금방 교체되는 인력, 사용자 입장에서는 반길 조건이다. 노마드 노동자들은 물류창고에서, 캠핑장에서, 놀이공원에서 쉼 없이 노동하며 하루하루 스스로를 먹여 살린다.
열악한 풍경이지만 이들의 삶이 온통 잿빛인 것은 아니다. 차 안에도 기쁨과 낙관, 새로운 희망의 자리는 있다. 이들은 서로를 붙잡고 꿈을 꾼다. 인생의 바닥에서 여전히 농담할 여유를 찾고 삶을 긍정하는 모습은 아름답다. 그러나 왜 늘 애쓰는 건 개인뿐일까. 파괴되고 배신당한 삶들에 대한 책임마저 개개인에 맡긴다면, 국가의 의미는 무엇인가. 크고 굵은 질문을 남기는 책이다
.- 사회과학 MD 김경영 (2021.04.06)
그저께 오랜만에 욕조에 물을 받아 몸을 담그면서 지난 팟캐스트를 들었다. 「듣똑라」에 나온 김하나. 언젠가 다른 팟캐스트를 듣다가 잠깐 접한 것 말고는 기회가 없었다. 악. 이 언니, 왜 이렇게 좋지? 뭔가 신뢰를 주는 목소리와 발성과 화법이다. 왜 갑자기 눈물이 나지? 목소리들을 듣는데 눈물이 난다. 줄줄 난다. 왜 울었는지 모른다. 「책읽아웃」도 챙겨들을게요!! 남을 위로하는 말이 나를 위로하는 말인 것 같다. 책 하나도 읽은 게 없어서 주섬주섬 다 찾아 보관함에 넣었다. 이북으로 이 책 먼저 사볼까. 전자도서관에 있는 책부터 먼저 빌려보자.
늘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살림에 대한 생각.
"P. 21 남자와 아이의 안위와 행복을 우선 순위로 두어 오던 가정집이라는 동화의 벽지를 뜯어낸다는 건 그 뒤에 고마움도 사랑도 받지 못한 채 무시되거나 방치되어 있던 기진한 여자를 찾는다는 의미다."
"P. 33 더는 사회와 혼인 관계로 얽히지 않은 몸이 된 나는 이제 다른 무엇 또는 누군가로 전환해 가는 과정에 있었다. 그런데 그게 무엇 또는 누구인 걸까? 용해되는 동시에 재조립되고 있는 것만 같은 이 기묘한 느낌을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단어는 마음을 열어젖혀야 한다. 마음을 닫게 만드는 단어는 누군가의 존재를 무화했을 가능성이 크다."
"P. 78~79 그래, 내가 아는 여자 중에 여성성이라는 유령을 복원시키고자 하는 이는 몇 되지 않았다. 게다가, 유령이 뭔데? 여성성이라는 유령은 허상이자 망상이자 사회적 환상이다. 연기하기에 매우 까다로운 인물이며, 그 역할(희생, 감내, 고통의 와중에도 발랄함을 잃지 않기)을 연기하다 끝내 이성을 잃고 만 여자도 수두룩했다. 그런 이야기라면 결단코 다시 듣고 싶지 않았다. "
"P. 100 가부장제의 가면이 기형적이고 도착적이라는 걸 남자도 모르는 바 아니지만, 그에게 가면은 상처로부터 자기를 보호해 주는 유용한 수단이다. 가면에 장식이 많이 붙을수록 그는 여자와 아이와 다른 남자를 위압하면서도 이성적인 사람으로 보일 수 있다. 무엇보다도 가면은 다른 남자들의 눈에 낙오자로 비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으로부터 그를 보호하기 위해 존재한다. 남자가 성공적인 사람으로 간주되는 이유가 여자들을 (가정에서, 일터에서, 침실에서) 진압하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라면, 사회는 이런 측면에서 실패하는 것을 위업으로 여겨야 마땅하다. "
"P. 106 아버지가 세계에 나아가 해야만 하는 일들을 할 때, 우리는 그게 아버지가 응당 해야 할 몫이라며 용인한다. 어머니가 세계에 나아가 해야만 하는 일들을 할 때는 어머니가 우리를 버렸다고 느낀다. 이리도 모순되고 사회의 가장 강력한 독기를 머금은 잉크로 쓴 메시지를 어머니가 용케 견뎌 내는 게 가히 기적이다. 그러니 이성을 잃지 않을 수가 있나. "
"P. 160~161 여자가 새로운 삶의 방식을 찾기 위해 자기 이름을 지워 버린 사회의 서사와 결별할 때, 그가 맹렬한 자기 혐오에, 미칠 것만 같은 고통에, 눈물이 멎지 않는 회한에 빠지리라는 게 사회 통념이다. 이런 것이 여자를 위해 마련된, 그가 원하기만 하면 언제든 손에 쥘 수 있는 가부장제의 왕관에 박힌 보석들이다. 눈물지을 순간이 넘치는 건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아무런 가치도 없는 그 보석들에 손을 뻗느니 검고 푸르스름한 어둠을 두 발로 통과해 지나는 편이 낫다."
나의 아들은 페미니스트로 자랄 것이다, 라는 제목이 나의 소망과 너무 일치하여 ㅠㅠ
이미 다 자라버린 아이들 페미니스트로 만들기,가 더 맞는 표현이긴 하겠지만.
프랑스책이니 원서로도 살 것이다.
며칠 전에 집안일 분담 문제로 한바탕 꽥꽥 난리를 치뤘는데 이 책이 도움이 될 수 있으면 좋겠다.
*** 오늘은 여기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