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텔방의 아침
독서등을 켜고
<나의 페미니즘 공부법>
읽다가 나온 <젠더 트러블>!!!!!!!
야심차게(?) 젠더트러블 책이랑 정리노트까지 챙겨들고 온 건 비밀, 책 안 읽히는 건 안 비밀.ㅋㅋㅋ
본문에 젠더 트러블 글자를 마주하니
반가우면서도 왠지 뜨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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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21-07-11 21: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휴가지에 젠더 트러블과 정리노트까지 챙겨가셨다니!! 뜨끔할 일이 아니라 자랑스러워할 일인데요!! 👍🏼👍🏼👍🏼

난티나무 2021-07-12 05:21   좋아요 0 | URL
아아 가져간 건 잘한 일이었는데 못 읽은 건 ^^;;;;;;;
아침 시간에 읽으면 되는데 집중을 못하겠더라고요. ㅎㅎㅎㅎ
그래도 가지고 다닐랍니다!^^
 















샬럿 퍼킨스 길먼, <내가 마녀였을 때> 


우와!!! 말이 필요없네. 우와. 


팬 하겠습니다. 이 책은 전자책으로 빌려봤지만 나중에 살게요. 이미 산 두 권의 책은 곧 받게 되겠지요. 번역 아주 살짝 매끄럽지 못하다고 느끼긴 했어도 원서로 읽을 깜냥이 안 되니 만족하겠습니다. 샬럿 언니 소설 얼마나 썼나요? 모조리 다 갖고 싶습니다. 


이 책에 실린 단편들 : 


내가 마녀였을 때

몰리의 의식

엄마의 자격

모두가 행복해지는 방법

정숙한 여인

전화위복

과부의 힘

누런 벽지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며, 경제적으로 독립하는 것, 늘 바라는 바이지만 더더욱 갈망하게 된다. 그리고 연대. 모두가 행복해지는 방법은 그런 면에서 아주 새로웠다. 관계에서 또다른 방향을 볼 수 있게 해 주는. 누런 벽지」. 이제야 읽었다. 가라앉고 있지만 가라앉지 않고 벽지를 뜯어내버리는 용기에 감탄한다. 파묻혀 사라지지 않겠다는 의지, 그러나 비장하지만은 않은 말 속의 유머. 아아 너무 훌륭하지 않나. 다른 단편들도 다 좋았다. 본받고 싶다. 내가 마녀였을 때는 몇몇 문장이 조금 거슬리는 정도로 눈길을 끌었다. 그래도 이런 마법의 능력을 갖고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은 생각을 나만 하는 건 아니겠지. 몰리의 의식에는 남성이 디폴트인 물건 사이즈, 주머니 같은 이야기가 나와 무척 반가웠다. 아니 어떻게 그렇게 일찍 깨달았지? 지금 아직도 모르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 나도 몰랐었고.ㅠㅠ 흐유 이런 생각 하면 슬프다. 

그런데 샬럿 언니, 정녕 우리의 남성들은 구제할 방법이 없겠습니까? 


















이 세 권은 종이책으로 구입해둔 책들. 아직 한국에서 못 뜨고 있으니 적어도 9월 말이나 10월 초 되어야 내 손에 들어올 듯. 
















<허랜드> 사야 하는데 세 권이나 있다. 읽으신 분들 어느 책이 더 좋을런지 추천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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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딩 2021-07-05 23: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흥분과 감격에 가득한 서평에 저도 손이 가네요 ㅎㅎㅎ 우와
이건 아하의 순간 만큼이나 좋네요

난티나무 2021-07-06 00:10   좋아요 0 | URL
소설들 좋아요! ^^;;;;; 진짜, 우와!!!!

다락방 2021-07-08 10:1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누런벽지>는 압권이죠! 샬럿 퍼킨스 길먼이 누런벽지 써서 자신에게 지적활동을 금하라 했던 정신병원의 의사에게 보냈다고 하는데, 그게 사실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너무 짜릿했어요.
저는 허랜드 맨 왼쪽 걸로만 읽어서 다른 것들보다 더 나은지 어떤지를 모르겠네요.

난티나무 2021-07-09 05:18   좋아요 0 | URL
저도 허랜드 세 권을 다 읽어보신 분들은 없겠지 했어요.^^;;;;;
미리보기 비교해 보는 걸로~ㅎㅎㅎ
의사에게 보냈다고 하는 거 저도 책에서 본 거 같아요. 아 진짜 너무 멋진 언니인 거죠!!!

공쟝쟝 2021-07-14 19:04   좋아요 0 | URL
저도 맨 왼쪽 걸로만 읽었어요. 누런벽지 무서웠어요 ㅜ_ㅜ 맨 왼쪽 책은 허랜드 / 누런벽지 / 그리고 기억 안나는 단편까지 세가지 소설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난티나무 2021-07-15 02:07   좋아요 1 | URL
맞아요 좀 무섭… 그래도 미치지 않고! 작품으로 써낸 기백이! 일단 한 권 선택해서 읽고 나중에 한국 가면 빌려서 비교해 보는 걸로 하겠습니다. ㅎㅎㅎ
 















정말 어려워보여서 기나긴 앞부분(해제/서문들) 모두 건너뛰고 본문을 읽기 시작했다. 판단 착오? 처음엔 도대체 뭘 어쩌라는 거야만 반복하다가 도저히 안 되겠어서 소리내어 읽었다. 아아, 소리내어 읽으면서도 딴 생각을, 아니 아무 생각없이 소리만 낼 수도 있다는 걸 깨달은 시간이었다. 맙소사, 한 문장 서너 번 반복 읽기. 웃프다. 이 사람은 도대체 뇌 속이 어떻게 생겼길래 이렇게 말할 수 있지, 뇌가 어떻긴 뭐 어때, 다 거기서 거기지, 이런 뻘생각만 하다가, 다른 학자들도, 여기 나오는 보부아르나 이리가레도 다 비슷하게 그랬으리라는,그러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올려다보아야 하는 사람들. 대단한 사람들. 비꼼 아님, 칭찬임. 그러니 읽는 수밖에. 그래도 정말 조금만 쉬웠으면 좋겠네. 


애초에, 그러니까 애초에. 

섹스는 무엇이고 젠더는 무엇인가. 무엇인가를 어떤 언어로, 어떤 방법으로, 어디까지를 이야기할 수 있는가의 문제. 니 눈 앞에 있는 그 돌이 진짜 돌이 맞는지 잘 봐봐. 앞에서 보면 돌 같은데 뒤에서 보면 똥일지도 몰라. 아니면 새로 이름 붙여야 할 그 무엇인가가일 수도 있지. 이런 느낌이다. 주디스 버틀러. 아무래도 서문을 읽어야 겠어.ㅠㅠ 


일상에서 느끼는 감정들. 페미니즘이라는 단어만 나오면 지겹다는 눈빛, 진저리난다는 몸짓. (뭘 얼마나 들어봤다고) 페미니즘, 좋다 (치자), 하지만 이상하고 발광하는 미친 페미니스트들은 싫어, 라고 말하는 사람들. 니가 뭔데 좋다 싫다를 말해, 이건 니가 좋다고 계속 하고 싫다고 그만할 일이 아니야, 니가 '허락'할 일이 아니라고. 페미니즘이라는 단어 하나에 여성들을 욱여넣지 마! 생각하면서 모든 것이 흔들리고 뒤바뀌는 기준들 중 어느 것에 맞추어 대답을 하고 행동을 할지 여전히 감을 잡지 못한다. 존재하지 않는 것은 무엇이고 존재하는 것은 무엇이고 그도저도 아닌 것은 무엇인가. 이런 실존의 고민이 질병 앞에서도 가능한 것인가. 가능하다면 어떻게 나타날 것인가. 정치, 정체성, 연합, 범주... 이런 단어들에 대한 생각, 두서없이 깊어지는. 깊어져봐야 난 고개만 들면 수면이야. 물이 너무 깊어 나는 도대체가 그 깊이를 헤아릴 수가 없다네.@@


85~114페이지 읽고(읽었다고 할 수 있을지?ㅎㅎ) 두루뭉술 어렴풋 뜬구름 잡고 있는. 허우적. 아이고 머리야. 서문 읽어, 서문! 


아 그러고 보니 어젠가 언제 Vita님 올리신 인용구 중 안티고네, 이야기 정말 하나도 모르는데 ㅠㅠ 얼마 전 작은넘이 학교에서 읽고 있다며 나더러 읽으라고 한 책이 바로 그 안티고네였어. 장 아누이 희곡인데 모조리 다 죽는 비극이라고, 무슨 내용이냐 읊어라 했더니 읽어보라고. 아직 안 읽음. 그 안티고네가 앞부분 옮긴이 해제에 나온다. 알라딘 검색하니 주디스 버틀러가 안티고네 책도 썼네. 어떤 이야기인지 이참에 자세히 알아야 겠다는. 내내 책상에 얹혀있는 책 Antigone 도 슬며시 앞으로 끌어와본다. 흑. 읽을 책이 너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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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아 2021-07-03 23:3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긴긴 서문 싫지만 어떤 서문은 전체 내용을 짐작할 수 있게 잘 정리하기도 해서 읽음 도움이 되기도 하더라구요😭 (후덜덜) 겁나지만 궁금하네요ㅋㅋㅋㅋ

난티나무 2021-07-04 04:14   좋아요 2 | URL
맞아요 미미님! 서문 읽는 중.^^
서문 읽으니 어렴풋,이 좀 덜 어렴풋해지네요.ㅎㅎㅎ

수이 2021-07-04 09: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해제 괜찮아요 언니 해제도 읽어보세요. 전 이제 서문 들어가는중.

난티나무 2021-07-04 21:34   좋아요 0 | URL
넵 초판 서문 읽고 개정판 서문 읽는 중, 담에 해제 읽으려고요.^^

공쟝쟝 2021-07-05 23: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건너뛰고 본분 안돼여….ㅋㅋㅋㅋㅋ

난티나무 2021-07-06 00:11   좋아요 0 | URL
다시 돌아가서 다 읽었어요.ㅋㅋㅋㅋㅋ 그래도 오리무중~ 에헤라디여 ~~~~ ㅎㅎㅎ
 
아홉번째 파도
최은미 지음 / 문학동네 / 2017년 10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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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페이지가 이렇게 안 읽히는 소설은 오랜만이다. (아, 소설이 별로라는 말은 아니니 오해 금지) 오랜만이라기보다는 요즘 소설을 덜 읽어서 그런 것일 수도. 가장 큰 이유는 역시 '묘사'다. 풍경 묘사. 소설의 첫부분이 기나긴 묘사일 때 집중을 하지 못한다. 길지도 않은 프롤로그만 몇 번을 다시 읽었는지. 소설 시작 부분도 마찬가지로 여러 번을 보아야 했다. 나는 설명을 싫어하나 보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설명하지 않고 보여주기를 잘 하는 게 글을 잘 쓰는 거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설명처럼 보이지 않게 설명하기.ㅎㅎ 


처음의 고비를 넘으니 다음부터는 책장이 빨리 넘어갔다. 1/3 즈음 되자 이야기가 점점 넓어지면서 몰입하게 만든다. 그 이야기들 속에 얼마나 많은 문제들이 속속들이 들어앉아 있는지, 스케일이 엄청나다. 얼마나 자료조사를 했을까 골치가 지끈지끈했겠다 싶을 정도다. 마무리가 어떻게 되었을까, 그래서 이 이야기는 어디로 흘러갈까. 


그러던 며칠 전, 아침을 먹으면서 읽으려고 식탁에 얹어둔 책을 옆지기가 집어들더니 책 뒤에 실린 추천글을 꼼꼼히 읽는다. 그러고 보니 나는 그것도 보지 않고 아무런 정보 없이 2/3을 읽은 상태다. 책 안 읽어도 되겠다, 다 써 있네, 라는 말에 아무 생각 없이 나도 그걸 읽는다. 권여선과 이다혜의 글. 괜히 읽었다. 스포 하는 소개글 싫어한다. 리뷰의 줄거리 요약도 되도록이면 읽지 않는 편이다. 책 겉면에 실리는 소개글들은 홍보를 위한 것들이다. 나도 책을 살 때 참고하기 위해 읽어보기는 하지만 전적으로 신뢰하지는 않는다. 막상 책을 읽어보면 나의 느낌과 다를 때가 많았기 때문이고, 감상은 각자의 것이라 비슷할 수도 다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두 작가의 추천글에 등장하는 단어들 몇 개가 이미 소설의 성격을 규정지어버리는 것 같다. 소설의 2/3을 읽은 나는 그 소개글이 싫다. 아, 이런 내용이구나 하는 편향된 선입견을 갖게 한다. 선입견을 갖기에는 이 소설이 너무 크다. 한참 이야기에 빠져있었는데 그만 흥이 깨지는 느낌이다. 와, 도대체 깔린 게 얼마나 많은 거야, 하나하나 꼽던 중이었다. 오전의 독서는 뒤로 미루어졌다. 


그 날 밤, 마지막 부분은 끝내 손에서 놓을 수가 없어서 일상의 취침시간을 넘겨 새벽까지 다 읽어버리고 말았다. 후련하다 시원하다 아쉽다 섭섭하다 이런 감정들보다, 묵직한 무엇이 가슴을 누르고 있는 것 같은 느낌. 매우 찜찜하고 여전히 답답하고, 속시원하지 않아 캥기는, 우리가, 우리 사회가, 우리 나라가 가지고 있는 총체적 난관의 단면을 보는 것 같은 느낌. 스포 하고 싶지 않아 애써 둥글려 말해보자면. 온갖 유착과 비리와 알력과 권력관계와, 빈곤과 노년과 약품과 돌봄과 건강을 빌미로 하는 사기와, 노동과 환경과 종교와 트라우마와, 멀쩡히 보이지 않는 세계를 밟고 선 인간들. 위선. 혹은 무지. 개인과 개인의 엉키고 꼬인 관계가 개인들을 타고 넘어 다시 그들을 묶어버리고 마는. 그 사이사이 켜켜이 들어앉은 반목과 힘겨루기. 인간이란... 아, 추천글만 읽어도 흥이 깨지는데 이런 단어들의 나열이 거기에 보탬이 되지 않으리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인지. 진퇴양난이로다. 그러나 이게 최선이다.ㅠㅠ 그만 두자. 


아무튼! 추천합니다. 추천글보다 소설이 훨씬 좋았어요. 다음에 다시 읽으면 어떨란지 그건 그때 가봐야 아는 거고, 한번만 읽은 지금은 그렇습니다. 그런데 제목이 왜 <아홉번째 파도>인지 모르겠... 역시 다시 읽어야... 


작가가 캐릭터에 매몰되지 않은 것은 좋았지만, 작가님, 그런데 서상화는 왜요? 왜죠? 왜때문이죠? 그럴 수밖에 없으셨을까요? 흑흑. 등장인물 어케 하든 작가님 마음이지만 그래도, 별 하나 뺄 거야. 흑흑. (소설 쓰기 진!짜! 어렵겠다.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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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유행열반인 2021-07-01 07: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상화야!!! 흑흑흑 저도 왜 그랬어요 왜요 하고 작가님께 묻고 싶었습니다만. 왜 그런지는 솔직히 알 것 같습니다. (아파야 소설이지 제일 좋은 건 잠깐 줬다 뺏어야지 암암 하는) 저는 도시 하나를 한 권에 이렇게 담기도 하는 구나 하고 놀라면서 또 슬퍼하면서 읽었던 것 같습니다.

난티나무 2021-07-01 15:49   좋아요 1 | URL
맞아요, 뒤로 갈수록 놀라움이 커지는. 슬프고 어처구니 없고 복잡한 마음이 들었어요. 살짝 결말이 마음에 안 들어도, 뭘 더 어쩔 수 있었겠나 싶었고요.ㅎㅎㅎㅎ 소설에서 현실을 그대로 보는 것이 좋은지, 그대로 보되 조금은 낙관적인 결말을 보는 게 좋은지, 이 책 읽으면서 생각해 봤습니다.

반유행열반인 2021-07-01 17: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 방금 알았는데 저는 2018년 6월 30일에 이 책 읽었다고 북플이 알려주네요 ㅋㅋ이런 우연이 ㅋㅋㅋㅋㅋㅋㅋ

난티나무 2021-07-01 19:28   좋아요 1 | URL
오!!!!!!
 

6월에 읽기로 혼자 약속한 <가부장제의 창조>. 


어떤 역사든 간에 두루두루 잘 모르는 나라서, 이름만 들어본 것 같은 메소포타미아나 아시리아, 고대국가 이야기, 소크라테스 무슨 ~스 등의 철학자들, 솔직히 정확히 언제적 이야기를 하는 건지 매우 헷갈려서 읽는 내내 혼란 속에 헤매긴 했으나, 큰 줄기를 놓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어느 문명이 어느 위치에서 정확히 언제부터 언제까지 존재했는지를 모른다 하더라도 기원이라는 시간의 기준보다 훨씬 더 오래전부터, 인간이 정착하여 사회를 만들기 시작할 때부터, 그 이전부터, 세상에 이미 존재했었던 여성에 대한 통제와 억압이 어떻게 오늘날까지 이어졌는지를 아는 데는 지장이 없으니까. 


마지막 남은 챕터(11장)를 오늘 오전에 꼭꼭 눌러 읽었다. 페이지마다 스티커를 붙이고 있으려니 빨간 색연필을 들고 이 장의 첫글자부터 끝글자까지 색칠을 하는 게 낫겠다 싶었다. 그렇게 황칠을 해놓으면 다시 보기 불편하겠지 싶어 손대지 않고 단락마다 스티커를 붙였... 이 부분을 읽으려고 나머지를 잘 견디며 읽었구나. 요약 정리도 잘 해주고 저자 참 좋다, 하다가. 390페이지의 '수다'라는 단어에 그만 넘어져 눈물이 터졌다. 조금 길지만 인용해본다.


"... 추상적으로 생각하는 방법은 마음속에 모형을 창조하고 상세하게 정의하고 그로부터 일반화를 끌어내는 것이다. 남성들이 우리들에게 가르쳤듯이, 그런 사고는 감성을 배제해야만 한다. 가난한 사람들, 종속적이며 주변적 위치의 사람들처럼 여성들은 모호함에 대해, 섞여 있는 감정에 대해, 추상적인 것을 채색하는 가치판단에 대해 근접한 지식을 가지고 있다. 여성들은 항상 자아(self)와 공동체의 현실을 경험해 왔고, 그것을 알고, 또 다른 사람들과 공유해 왔다. 그러나 그들은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는 세계에 살기 때문에 그들의 경험은 중요하지 않다는 오명을 안고 있다. 따라서 여성들은 자신의 경험을 불신하고 평가절하하는 것을 배웠다. 월경 속에 무슨 지혜가 있을 수 있는가? 모유로 가득 찬 젖가슴 속에 무슨 지식의 원천이 있는가? 일상적인 수유와 청소 속에 추상성을 위한 무슨 재료가 있는가? 가부장적 사고는 그와 같은 성별 정의된 경험들을 비초월적인 '자연스러움'이라는 영역에 소속시켰다. 여성의 지식은 단순한 '직관'(intuition)으로 되었고, 여성들의 이야기는 '수다'(gossip)로 되었다. 여성들은 특히 희망이라고는 없는 특수한 것들을 다룬다. 그들은 자신들의 서비스 기능(음식과 쓰레기를 처리하는) 속에서, 끊임없이 방해받는 시간 속에서, 그들의 분산된 주의집중 속에서, 매일 매시간 현실을 경험한다. 그 특수한 것들이 자신의 소매를 당기는 동안 사실들을 일반법칙으로 추론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상징을 만들고 세계를 설명하는 그와, 그의 신체적·심리적 욕구와 그의 자녀를 돌보는 그녀 - 그 둘간의 간극은 엄청나다." (11장 p.390) 



창 밖의 하늘을 쳐다보며 나는 지금 왜 눈물을 흘리는가를 생각했다. 본문에 나오는 '모호함', '섞여 있는 감정', '가치판단' 같은 단어들이 내 눈물을 어느 정도 설명해 준다고도 생각했다. 그러니까 말하자면, 말하기 어려운 복잡한 감정들 때문이라는 소리. 말하기 어려워서 억울하다는 생각. 수다,라는 단어 하나에, 그 단어 뒤에 있는 수많은 여성들의... 이루 헤아릴 수 없는 이야기들과 비슷비슷한 경험들과 한숨과 터질 것 같은 답답함과 그러면서도 어쩔 줄을 모르고 다시 집으로 돌아가는 그들의 뒷모습이, 보지 않아도 알 것 같은 그 뒷모습들이, 그런 그들을 폄하하고 조롱하고 업신여기는 그들의 남편들이, '수다'조차도 마음대로 나누지 못하는 그들이, 그런 그들이 한심하다는 말에 동조라도 하듯 넘어가곤 했던 지난날의 내가, 겹쳐지고 겹쳐지고 겹쳐지고. 


그리고 어쩌면 나의 모습이, 남들보다 정도가 덜 하니까, 큰 탈 없으니까, 별 것 아니니까, 이 정도면 괜찮은 거라고, 누구만큼 힘든 건 아니지 않냐고, 그냥 넘겨버리려고 했던 작은 이야기들의 모음인 나의 모습이, 스스로를 작고 작다고 여기려 했던 나의 모습이, 이전의 나와 지금의 내가 서로 타협하려고 애를 쓰는 그런 이율배반에 갈팡질팡하는 나의 모습이, 글자들 속에 박혀있는 내가. 


필연의 중간 어디쯤에 와 있다고 생각하기로 한다. 실제로 그렇기도 하다. 

나는 내 눈물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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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6-30 00: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6-30 00: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다락방 2021-06-30 06:05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면 좋겠지만 눈물을 흘리는 것은 또 그 나름의 의미가 있다고 저는 확신합니다. 아마도 그래서 난티나무 님도 눈물을 좋다고 마지막에 쓰신거겠지요.
마음을 담아 읽고 쓰셨다는 게 전해져서 저까지 이 글에 동조되어 가슴이 저릿해져요. 필연의 중간쯤 까지 오시느라 수고 하셨습니다. 앞으로도 눈물 흘리겠지만 멈추지 말고 갑시다. 가시는 길 함께 가며 응원할게요!

난티나무 2021-06-30 15:13   좋아요 0 | URL
끝은 없겠지만 출발선에 서있는 거 아닌가 싶어 중간이라는 단어 쓸 때 망설였어요. 시작과, 끝이 없는 끝의 사이라면 중간도 맞다 싶기도 했고요. 아무렴 어떠나, 아무튼 돌아갈 수는 없으니 하기도..ㅎㅎ
항상 응원 고맙습니다~^^

공쟝쟝 2021-06-30 08: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ㅠㅠㅠㅠㅠㅠ 같이 운다 ㅠㅠㅠㅠ 저도요 제 눈물 좋아요 ㅠㅠㅠㅠㅠㅠㅠ 그리고 이 넘어짐이 아픈데… 좋아요 ㅠㅠ

난티나무 2021-06-30 15:14   좋아요 1 | URL
같이 울어주셔서 고마워요~ 가슴 아프고 좋은 거.. 뭐라 이루 말할 수가 없네요. 흑흑.

공쟝쟝 2021-06-30 15:16   좋아요 1 | URL
웅 많이 울어요, 토닥토닥! 내맘 내가 잘 알아주면 돼죠 // 우리에겐 책과 글쓰기가 있다!!!

난티나무 2021-06-30 15:24   좋아요 1 | URL
뽜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