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박3일의 여행을 떠나기 전, 책꽂이를 살핀다. 달리는 차 안에서 틈틈이 읽을 만한, 너무 어렵지 않고 또 너무 가볍지는 않은 책. 소설이 별로 끌리지 않아 잠깐 맴돌다 집은 책은 <나의 페미니즘 공부법>. 기대했던 내용이 아닌 것 같아 미뤄뒀었다. 어땠기를 바랬을까? '기대'야말로 모든 악감정의 근원이라고 어디선가 봤는데. 아마도 제목과 목차에 끌려서 샀었나 보다. 특히 끝부분의 "싸움을 하는 열 가지 방법"이라는 소제목. ㅎㅎ
공부,라는 것에 대해 생각해본다. 대학을 다녔음에도 내가 제대로 하지 못한, 공부. 하긴 제대로 공부한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일 수도 있는데, 후회는 하지 말자. 다만 지금도 나는 '공부'에 거부감을 갖고 있다. 많이 알고 싶으면서도 어려운 말에 몸서리치고, 머리 아픈 이론은 멀리하고 싶고, 규칙적으로 강의를 들으며 배워보고 싶다고 생각'만' 하면서.
이런 생각은 '나는 왜 공부하려고 하는가'라는 질문에 가 닿는다. 한마디로 나는 싸우고 싶다. 원대한 목표, 커다란 희망, 인류애, 다 좋지만 나는 우선 내 삶이 먼저고 우선 내가 살아야 겠기에. 나만 빼고 모두 남성인 이 4인의 사회에서 살아남고 싶어서. 솔직히 싸우기 싫다. 겁나 피곤하다. 그런데 책에서 이런 구절들을 만난다.
"기술 없는 이론이 무력하다면 왜 이론이 필요할까? 실생활에서는 넘쳐 나는 이론보다 거친 기술이 더 도움이 되지 않을까?
우에노 지즈코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직관이란 분절되기 전 논리의 다른 이름이다. 직관에서 논리까지 거리가 멀어 보이지만 그 사이에는 연속성이 존재한다. 그렇지만 직관만 존재하는 차원에서는 자신 외의 사람들을 설득할 수 없다. -「기억의 정치학」 "
(<나의 페미니즘 공부법> p.91)
그렇다. 거친 기술을 갖기 위해 이론을 공부해야 하는 것이지. 옳습니다. 옳아요. 하지만.
"여성학 강의를 듣고 변하는 남성은 거의 없다. 남성이 교육으로 변하지 않는 현실은, 젠더가 적대를 전제로 하는 권력 관계이기 때문이다. 계급 불평등을 개선하기 위해 자본가를 교육하고 각성시켜야 한다는 주장은 없다. 자본가는 촛불 시위나 특별 검사 같은 제도나 물리력을 통해 '젼화'하고, 동시에 언제나 역전을 노린다. 그들은 멈추는 법이 없다."
(<한국 남성을 분석한다> p.29 정희진 「한국 남성의 식민성과 여성주의 이론」)
ㅠㅠ. 교육도 설득도 안 된다면, 그렇다면 싸움밖에 길이 없다는 말인가. 정녕 그러합니까, 선생님. 싸우자고 마음을 먹었지만 틈을 만드는 것이 어렵다. 왜 어려운가. 내 지식이 얕은 탓도 있고 자꾸만 말에 휘둘리고 마는 그동안의 습성 탓이기도 하다. 어릴 때부터 계속, 너는 잘 몰라, 니 생각은 틀렸어, 그거 아니야, 어떻게 그걸 모를 수 있어? 같은 말들을 들으며 확신을 잃어가는 경우. 나도 그랬던 것 같다. 결혼 초기까지도 옆지기가 하는 말이 대체로 다 옳다고 믿었다. 그거 아니잖아, 라는 소리를 들으면 아 그런가 하고 넘어갔다. 어느 순간 결국엔 내가 한 말이 맞았음을 알게 되면서 깨달았다. 그동안 오간 대화가 항상 핀트가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것이 사실은 그가 나의 말을 자르고 부정해서 더이상 진전이 없었던 것임을. 최근 상황 하나를 예로 들어보자.
날은 무척 더웠고 낡은 차는 에어컨 기능이 부실해 창문을 열고 달리는 중이다. 장을 보고 돌아가는 길, 집까지 뻗은 4킬로미터 정도의 도로 양쪽으로는 모두 포도밭이다. 나갈 때 이미 농약을 치고 있는 기계들을 보았다. 나의 도그코는 사방에 흘뿌려진 농약 냄새를 마스크를 쓰고서도 감지해낼 수 있다.
- 사방에 농약차 천지네. 창문 닫아야 겠다. (창문 닫으라는 소린데 더 강하게 하지 못하는 나.ㅠㅠ)
- 모든 도멘이 다 농약 치는 건 아니야. (응 나 그거 안 물었거든. '사방 천지'라는 발언에 반발하는 말. 어김없는 예외의 법칙 등장)
- 농약이, 치는 포도밭에만 딱 흡수되는 거 아니잖아. 공기 중에 다 날리는데 창문 닫아야지. (역시 안 강한 나.ㅠㅠ)
- 요즘은 비오디나미(친환경농법) 하는 데도 많아. (아니 그거 물은 거 아니라고. 딴소리 시전하기.)
- 지금 농약 뿌리고 있고 냄새도 나는데 적어도 여기 달리는 동안에는 창문 닫아야 하는 거 아니냐고! (버럭!)
- 아니, 그러니까 내가 농약 칠 때 창문 닫아야 하는 건 맞다고 그랬잖아? (얼씨구. 안 한 얘기 했다고 우기기.)
- 그런 말 한 적 없거든?! 처음 말했을 때 다 농약 치는 거 아니라 했고, 두번째엔 비오디나미 얘기했잖아? 그런 적 없거든?! (버럭버럭!)
대체로 이런 식이다. (옆지기는 끝내 창문을 닫지 않았다. 설왕설래 하는 동안 길을 거의 다 지나왔기 때문이다.ㅠㅠ) 며칠 전 식탁에서 나와 옆지기의 대화를 듣고 있던 큰아이가 말했다. 아빠는 맨날 엄마한테 아니라고 하더라. 흑흑 너라도 알아주어 고맙다. 내가 그동안 그렇게 살았다.ㅠㅠ 이제는 그렇게 살지 않으려고. 불끈. 오늘은 또 무슨 말 때문에 싸우게 될까. ㅎㅎ
"싸움 뒤에는 권력투쟁이 있고, 포기 뒤에는 지배가 있다."
(<나의 페미니즘 공부법> p.124)
"모르니까 쓰지 못하는 게 아니다. 쓰지 않으니까 모르는 채로 있게 된다. 말로 할 수 없는 생각이 있는 게 아니라 그 생각이 말을 하게 만든다. 그래도 말을 할 수 없다면, 말을 할 수 없다고 말하면 된다. 말은 적극적으로 사용하려고 할 때만 가능성의 싹을 틔운다."
(<나의 페미니즘 공부법> p.275)
"세계가 말로 표현된다기보다는 말이 세계를 구성하고 있다 - 노구치 유지, <내러티브테라피의 세계>
우리는 대화를 통해 세계의 모습을 확인하고 변경한다. - 앞의 책"
(<나의 페미니즘 공부법> p.273~276)
"모든 걸 다 페미니즘에 기댈 게 아니라 자신이 페미니즘을 어떻게 이용할지를 고민해야 한다. 그리고 그 동기는 각자 자기 안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 자신을 말로 표현해서 이해하지 않고 무엇을 어떻게 해소하겠다는 건가?
자기는 자기에 대한 언설을 통해 구성되어 간다. - 앞의 책
자기를 가시화하지 않으면 페미니즘을 이용할 수 없다. 사람은 말하기를 포기해도 말로 사고한다. 감정도 말로 지각한다. 사람이 언어로 이루어진 사회에서 구축된 존재임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
(<나의 페미니즘 공부법> p.276)
여행길에서 제법 읽고(탁월한 선택) 집에 와서 마저 읽고. 어쩌면 휘리릭 읽어버릴 수도 있는 책이지만, 한번씩 발을 걸고 넘어뜨리는 구절들에서 이런저런 생각을 한다. 책을 들고 파는 것만으로도 잘 싸울 수 있을까. 가끔 넋두리처럼 늘어놓는 글로 내 생각을 잘 정리할 수 있을까. 무엇보다 말을 잘 하게 될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이 들면 대도시로 이사를 가고 싶다. 내가 그나마 잘 할 수 있는 말과 글로, 나와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을 만나서, 이야기하고 이야기하고 이야기해보고 싶다는 열망. 그러나 빠리로 간다고 한들, 그런들 달라지는 거 있으려나. 그동안 겪어보지 않았나. 그리고 줌도 두려워(?)하는 사람이 너잖아.
사람들은 항상 환상을 꿈꾼다.ㅎ
우에노 지즈코의 책을 한 권도 못 읽었다. 궁금함이 물결처럼 일어나는 와중에 페미니즘 책읽기를 전투적으로 하는 이웃님의 블로그에서 우에노 지즈코의 <가부장제와 자본주의>를 본다. 마리아 미즈의 책과 제목이 같아 자주 혼동한다. 마리아 미즈의 책은 살 수 있지만 우에노 지즈코의 것은 품절이다. 중고도 없다. 하고 많은 지즈코의 구입 가능 책들 다 놔두고 낙심한 와중 한 줄기 빛과 같은 **님의 구원이 내려왔다. 그렇다. 나는 중고도 없는 <가부장제와 자본주의>를 구했다! 거기에 더해 역시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는 <다락방의 미친 여자> 까지! 우리~ 만남은~ 우연이~ 아니야~
하루카 요코가 책 말미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각자 자기의 방식으로 열심히 말하고 있는 거다. 학자는 어려운 말로, 누군가는 좀더 쉬운 말로. 그러니 이제는 버틀러의 <젠더 트러블>도, 푸코도 크리스테바도, 어렵다고 투덜대지 말자.ㅠㅠ
그리 길지도 않은 말 하다 보니 어느새 점심시간 지나려 한다. 바람이 불고 해도 나고 구름도 있는 좋은 날이다. 더위가 가고 시원함이 왔다. 이 또한 이상기후지만 어쨌든 시원하니 좋다. 이미 늦어버렸으니 점심은 라면이다. 내가 이럴라고 라면 사다 놨지. 각자 자기 거 끓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