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채경, <천문학자는 별을 보지 않는다>
나는 정말 삐딱하다. 좋은 구절에 밑줄을 긋는 게 아니고 읭? 싶은 곳에 밑줄을 긋는다. 사람들이 좋다고 하는 데에 어느 정도는 동의한다. 모두를 만족시키는 글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알면서도 아쉬움이 남는다. 처음 글로 만난 심채경이라는 천문학자의 글이 아마도 더 좋을 수 있으리라는 기대감이 생겼기 때문일 것이다. 단어를 선택하고 문장으로 쓸 때 한번 더 고심해 보았으면. 한국인 최초의 우주인이라는 타이틀 아래에서 힘들었을 이소연 이야기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몰랐던 것들이다.
"돌이켜 생각해보건대, 도중에 그만두지 못했던 것은 떠날 용기가 없어서였다. 그러나 남은 채 버텨내는 데도 역시 대단한 용기가 필요했다. 떠난 이들은 남지 못한 게 아니라 남지 않기를 선택한 것이었고, 남은 이들은 떠나지 못한 게 아니라 떠나지 않기를 선택한 것이었다. 이제는 안다. 어느 쪽을 선택했든 묵묵히 그 길을 걸으면 된다는 것을. 파도에 이겨도 보고 져도 보는 경험이 나를 노련한 뱃사람으로 만들어주리라는 것을. " (14% 지점)
응응, 그렇지, 좋은 말이다. 하고는 삐딱선을 탄다. 그저 묵묵히 내가 선택한 길을 걸으면, 그러면 되는 건가요? 먹고 살아야 하는데요? 파도에 이기고 지다가 그만 휩쓸려 죽는 뱃사람도 있지 않을까요? 뭐 이런 식...ㅠㅠ
"남편의 배려를 얻어 한동안 연달아 야근을 했다. " (31% 지점)
이런 구절이 걸리적거린다고 끌어오다가, 내 아이들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모습이 떠오른다. 엄마, 쫌! ㅠㅠ
"그러나 그 숭고한 '연쇄 선물마'를 따라 하기에는 나의 인간관계가 턱없이 빈약했다." 57%
보자마자 거부감이 생기는 저 단어, 다른 사람들은 괜찮은지 모르곘다. 꼭 이렇게 표현해야 하나 싶다. 오해는 마시길. 좋은 구절 많으니까.
외계인 이야기를 읽으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광활한 우주에 지구에만 인간과 같은 생명체가 사는 것은 아닐 거라는 궁금함과 호기심이 과학자들에게 우주로 신호를 쏘아보내는 일을 하게 만들었다면, 있을 지 없을 지 모르는 그 외계인들이 지구를 찾아 연락을 하거나 방문(?)하게 된다면 그것은 지구 인간들에게 좋은 일일까. SF 영화를 보면서 식구들과 가끔 하는 이야기다. 외계인은 정말 영화에 나오는 것처럼 인간보다 월등한 능력을 갖고 있을까? 왜 영화 속에서 지구는 항상 외계인의 침략을 받고 파괴당할까? 반대일 수도 있지 않나? 아, 반대의 경우라면 외계인이 지구를 찾아내는 것이 아니라 지구인이 외계인을 찾아내고 침략하는 시나리오가 만들어지는 건가. 아아, 그래서 영화가 그렇게 만들어지는 것이로군. 쩝. 외계인은 있을까? 부터 다시 시작해야 겠는데.
책을 읽다가 <어린 왕자>를 꺼내러 갔다. 'tirer ta chaise de quelques pas' 표현에 대해 작은넘과 잠깐 이야기를 나눈다. 천문학자의 눈으로 읽는 어린왕자.ㅋㅋㅋ 나도 노을을 좋아한다. 그런데 수성에서는 해 지는 광경을 엄청나게 오래 볼 수 있다고 한다. 오! 했다가, 해가 지는 데 88일이 걸리고 다시 뜨는 데 또 88일이 걸린다는 말에 윽! 했다. "수성은 일몰을 사랑하는 게으름뱅이에게는 최고의 행성일지 모른다"는 말은 틀렸다. 일몰을 사랑하지만 88일 동안 볼 수 없다면 그게 뭐야. 짧아도 매일 보는 게 훨씬 좋아. 그리고 왜때문에 게으름뱅이??????
우주선을 쏘아올리겠다는 생각은 진취적인 것일까 허황된 것일까. 달에 우주선이 착륙한 사건이 있은 지 오랜 시간이 지났고 여러 나라가 달에 가려고 이런저런 계획들을 세운다. 우주선 한 대를 쏘아올리는 데 필요한 인력과 기술과 장비와 시간과 물리적/정신적 뒷받침들, 세세하게 생각해 본 적 없던 이런 내용을 읽다 보니 도대체 우리는 왜 우주 탐사를 열망하는 것인가 싶다.
우주에 조그마한 미생물도 남기지 않으려는 노력은 인간의 행동이 우주에 해를 끼치면 안된다는 윤리의식에서 출발한다. "우리는 관찰자일 뿐, 바깥 전체를 마음대로 주무를 권리는 없다. 생태계를 위해 어떤 잔인한 포식자 종을 절멸시키거나 가여운 피식자를 집중적으로 키워낼 권리가 우리 인류에게는 없는 것처럼." 그러나 지구가 인간들에 의해 파괴되어가고 있는 건 사실 아닌가? 우주에 인간의 영향을 끼치지 않으려는 노력과 자세를 지구에도 적용시키면 좋을 텐데 하는 씁쓸함.
달에 집을 짓는다면 어디가 좋을까 부분에 이르자 달의 땅을 분할해서 파는 사람, 그것을 사들여 매매계약서를 가지고 있다는 돈많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돈을 번 사람은 어떻게 되었을까? 관련 법이 없어서 처벌도 못 한다는데.
중간중간 두서없이 떠오르는 생각들. 본의 아니게 좋은 말보다 안 좋은 말을 더 많이 쓴 것 같다. 그러나 이런 에세이는 응원해야 한다. 더 깊고 더 날카로운 이야기가 쏟아져야 한다. 말하다 보면 바뀔 수 있다고 했다. 불안한 직장, 구조의 모순, 출산과 육아의 함정 들이 뒤집어지는 세상이 되기 위해, 더 많이 써주시길! 무언가를 끝없이 공부하고 탐구하고 노력하는 사람은 왤케 다들 아름다운지! 게다가 천문학이야!
지금 눈 앞에 보이는 사실이 전부가 아닐 수도 있다는 것, 그것만이 언제나 어디서나 진실이다. (36% 지점) (- 이런 좋은 구절들도 많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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